[정세초점]

다시 총파업으로



남 구 현

연구위원·한신대 사회복지학과




온 나라가 도탄에 빠져 있다. 실업자 수가 폭발적으로 증대하여 정부의 공식발표에 따른다고 하더라도 지난 4월 주당 평균노동시간이 1시간 미만인 실업자수가 143만4천명(실업률 6.7%)에 달하고, 일시휴직자 13만6천명, 주당평균노동시간이 1시간 이상 18시간 미만인 불완전취업자가 38만2천명에 이른다. 이들을 합하면 실질실업자는 총 195만2천명에 달하고 있다. 취업할 의사가 있지만 사실상 포기한 실망실업자가 공식 통계에 의해도 200만이 넘어 이를 모두 포괄한다면 실업자는 400만명에 이른다. 문제는 노동시장의 유연화라는 명목하에 정리해고의 문이 활짝 열린 지금의 신자유주의적인 정책기조가 지속된다면 경제가 회복되어도 이러한 대량실업사태는 해결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일자리를 유지해도 작업현장에서는 조업단축, 배치전환과 함께 부당노동행위가 일상적으로 자행되고 있다. 사측은 지난 수년간 노동자 투쟁의 결과 감히 해오지 못하던 모든 형태의 노동통제를 때를 만난 듯이 구사하고 있다. 나아가 임금체불, 임금동결과 함께 공공요금 및 물가 인상에 따라 실질적인 임금삭감이 발생해 생존이 위협받고 있다.

경제위기의 부담은 노동자·민중의 어깨위에 굴려져 일종의 '사회적 재앙'으로 온 국민이 고통받고 있다. 역과 공원을 가득 채운 노숙자들은 수백명씩 떼를 지어 생활하며,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당장 매끼의 식사를 걱정해야 한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들의 94%가 일자리를, 72%가 안정된 잠자리와 급식을 주요한 욕구로 제시하였다. 가정은 파탄되어 이혼율이 급증하고 있으며, 아동은 보호소로 보내지고 있고, 매월 2천명이 자살하고 있다. 생계형 범죄가 만연하여 교도소가 미어 터져, 적정 수용인원인 5만6천5백명보다 1만3천5백여명이나 초과한 7만10여명이 수용되어 있는데, 이는 해방 이후 가장 많은 숫자라고 한다. 분신 등 자살하는 수많은 노동자, 처자를 죽이고 자신도 자살하는 가장, 아이들이 차 뒷자리에서 보고 있는데도 은행 강도로 나서는 젊은 부부, 아빠로부터 떨어지며 아동 보호소 벽을 부여안고 통곡하는 어린이...... 참으로 가슴이 찢어지는 듯 참담하기 그지없다.

우리 사회의 한쪽에서는 위기의 주범들이 털끝하나 다치지 않고 의연히 부를 향유하며 적반하장격으로 눈을 부라리고 있다는 점에서 비극의 도를 더하고 있다. 저들은 온 나라가 망하던 말던 부를 쌓는데 혈안이 되고, 여차하면 부를 챙겨 도망치려 준비하고 있지 않은가. 온 국민이 금 모으기 운동을 하는데 금괴 챙기고 앉아 있었고, 달러 값이 널 뛸 때 환투기로 떼돈을 벌지 않았는가. 민생은 어떻게 되던 정쟁을 일삼으며 자리 하나 차지해 보겠다고 선거철 표몰이에만 날 새고 있지 않은가. 지금 이 순간에도 수천만원씩 하는 호화예식장은 만원 예약 사태로 미어진다고 한다. 최소한의 부르주아적 양심조차 내던진 이들은 도대체 뭐하는 사람들인가. 이런 자들과 함께 21세기로 넘어가야 한다는 생각만 해도 고단하기 짝이 없을 지경이다.

"모두가 죽느냐, 아니면 일부만 고통을 감수하느냐 하는 문제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것이 저들의 처방이다. 대통령은 약간 다르게 표현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80%가 살기 위해서 20%가 죽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우리는 한 배에 타고 있다'고 되뇌이며, 모두가 죽지 않으려면 구조조정을 해야하고 이를 위해 정리해고(소위 감량경영)는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과연 정리해고는 불가피한가. 저들이 좋아하는 배의 예를 들어보자. 상식에 따르면, 배가 침몰의 위기를 맞을 때에는 감량을 위해 물건을 먼저 버리고, 도저히 침몰을 피할 수 없을 경우, 어린이, 여성, 노약자를 우선 구하고 선장은 배와 함께 침몰한다. 그러나 우리의 지도자들은 자신의 재물에는 손을 못대게 하고, '감량'을 위해 사람을 바다로 내던지고 있지 않은가. 그것도 구명대도 주지 않고. 비겁하고 비열한 방식으로 저들은 아마 마지막까지 재물을 지키려 할 것이며, 사람들이 떼죽음을 당한다고 하더라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재물을 옮겨 싣고 도망치려 할 것이다. 이러한 선장의 지휘를 누가 받으려 할 것인가.

정리해고제가 없어서 위기가 도래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과잉축적·과잉생산과 출혈 경쟁 - 노동자는 이때 항상 자본축적의 피해자이며 어떠한 경우에도 경쟁의 승리자가 될 수 없다 - 이 위기의 원인으로, 정리해고제의 도입은 당연히 위기의 해결책이 아니다.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노동자들이 연대하여 일자리를 지키겠다고 하는데, 이를 반대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실제로 대량실업에 고통받는 프랑스에서는 주당 35시간제 도입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시도하고 있다.

지금 제시되고 있는 정부의 대책은 정리해고를 구조조정의 핵심사안으로 제시하면서 - 사실 IMF의 구제금융조건에서조차 정리해고는 여러 가지 중의 하나로, 핵심이 아니다 - 발생하는 대량 실업사태에 대해서는 7조9천억의 대책기금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실업기금의 재원은 사실은 기존의 고용보험기금을 위시해 정부예산, 공무원 봉급 삭감으로 마련되는 추경예산, 비실명 장기채권과 심지어는 범국민 모금 등 결국 노동자·민중의 호주머니에서 나와야 한다. 게다가 금융 구조조정을 위한 부실채권 정리를 위해 정부가 지급보증하면서 64조원의 공채를 발행한다고 한다. 이를 위한 정부 재정부담은 일단 내년까지 11조∼12조원에 이르러, 4인 가족 가구당 1백10만2천원의 조세부담을 감수해야 한다니 나라를 망친 저들을 살리기 위해 온 나라가 죽어나야 할 판이다. 언제는 시장 논리에 맡겨야 한다더니, 그 시끄럽던 경제학자들은 어디에 갔는지 궁금하다. 우리의 계산에 따르면, 국민의 0.00006%인 30대 재벌총수가 부정축재한 부분을 환수하면 20조 정도의 실업기금의 기초가 마련되며, 고액 금융소득자들의 불로소득에 약간의 세금만 부과해도 수십조원의 임금·고용보장을 위한 재원이 마련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한다고 해도 저들이 평생 먹고 살 것은 남을 터이니, 단지 욕심을 버리라는 것일 뿐, 저들처럼 죽으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민주노총은 다시 총파업 투쟁으로 의로운 싸움을 시작하였다. 96∼97년의 총파업은 지난 10년간 투쟁속에 건설하였던 민주노조운동의 법적 지위 설정과 향후 착취조건을 규정하는 노자관계의 재편을 핵심적인 내용으로 하는 노동법 개정 문제가 쟁점이었다면, 지금은 세계적인 축적조건의 변화 속에 우리나라의 지난 수십년 간의 자본주의 발전과 함께 심화되어온 모순이 폭발하며 발생한 경제위기(실제로는 자본의 위기)를 노동의 위기로 전가하려는 자본에 의해 위협받는 노동자·민중의 생존권을 지켜내고, 나아가서는 모순의 핵심고리를 척결하는 과제가 눈앞에 놓여 있다. 96∼97 총파업을 통해 해결하지 못한 과제가 아직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듯이 지금의 투쟁의 결과는 우리의 미래를 규정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민주노총은 노사정 1기 참여를 둘러싸고 일어났던 지난 2월의 혼란을 극복하고 다시 대오를 정비해 5월 27일 1차 총파업투쟁을 성공적으로 완수함으로써, 지도부와 조합원 대중 사이의 신뢰를 회복하였다. 이러한 힘을 바탕으로 정부와는 실질적인 협상을 진행하였다. 민주노총의 투쟁은 언론의 일사불란한 부정적인 여론몰이에도 불구하고 - 이번에는 심지어 진보를 표방해오던 언론사까지 똘똘 뭉쳤다 - 고통받는 일반 국민들에게 유일한 희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 70%가 민주노총의 파업을 지지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누군가는 이런 시기에 민주노총이 있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라고까지 이야기하였다.

흔히 노동자들이 파업하면 해외투자가 불가능해진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의 경제위기가 재벌의 무분별한 축적욕구와 재벌에 기대어 각종 특혜와 이권사업에 개입하고 있는 정치권에서 기인하였다는 점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고, 온 세계가 알고 있는 사안이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수하르토의 족벌체제에 대해 인도네시아 민중이 투쟁하고 있을 때, 투자하지 않는 해외투자가의 입장에서 인도네시아 민중의 투쟁을 자제하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넌센스이듯이, 지금 세계는 거꾸로 우리나라의 노동자투쟁이 우리나라의 모순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지를 주목하고 있다. 해외투자를 막는 것은 오히려 지금의 모순 구조이다. 또한 모든 사안을 노사정위원회에 들어와서 논의하자고 이야기되어지고 있다. 만약 개혁할 의지가 있다면 왜 노사정위원회에 들어가기 전에는 못한다는 말인가. 지금 민주노총에 있어서 중요한 지점은 노사정위원회에 들어가고 말고가 아니라 실질적인 개혁을 어떻게 완수하고 노동자·민중의 생존권을 지켜낼 것인가이다. 93∼94년도의 노경총 임금합의, 96년도의 노개위, 98년도의 노사정 1기 등의 경험은 투쟁력을 바탕으로 하지 않을 경우 노동자들은 정치적으로 이용만 당하고 끝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뿐 아니라 결국은 노동자들이 노사정 합의의 틀을 나와야만 했던 멕시코의 경우나 자본가가 스스로 합의를 깨버린 독일의 경우 역시 이를 입증하고 있다.

지금은 내부의 다양한 견해를 민주적으로 수렴하여 단결된 투쟁을 이끌어 내고, 이 힘을 바탕으로 고통받는 민중과 연대하여 전체 사회를 바꾸어 내야하는 역사적인 시점에 서있다. 오직 지금의 투쟁의 결과가 미치는 정도만큼만 우리의 미래는 바뀌어 질 것이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