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와 사회의 해체

- 가족을 중심으로 -



성 숙 진

연구위원·한신대 재활학과




1. 들어가면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급격하게 변해가는 세계 정세속에서 특히 초국적 자본이 개별 국가의 주권마저 위협할 정도의 위기 상황속에서 이러한 복합적이고 난해한 문제들을 풀어가기 위해서는 사회 모든 영역의 성원들의 성숙한 심리적인 대처역량과 문제해결 능력이 무엇보다도 절실한 시점이다. 거시적인 관점으로 볼 때 한국 사회가 처한 상황은 너무도 취약한 입장에 이미 몰려있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잡기가 상당히 불투명한 듯이 보이고, 미시적인 차원에서의 한국 사회 현황을 볼 때도 역시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미래는 너무도 불투명한 것이 사실이다.

경제위기 이후에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가족해체 상황과 자살, 범죄의 급증 현황은 경제위기 이후에 새롭게 나타난 현상은 결코 아니었다. 경제위기가 시작되기 몇 년 전부터 여러 지표상으로 나타나는 사회해체 현상은 우려의 수준을 이미 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내 구타와 자녀 학대로 나타나는 가정폭력은 위험수위를 넘어가고 있었고 경제위기 이후엔 더욱 가속화되어 가는 추세이다. 경제위기 이전의 청소년 가출 (40∼60만명)과 아내 가출 그리고 증가하는 이혼율(6쌍중 1쌍)이 경제위기 이후에 더욱 증가하고 있다. 또한 대량실직과 부도를 맞으면서 가출한 성인남성들이 거대한 '노숙자' 집단을 형성해가고 있는 중이며 이 와중에 많은 숫자의 아동들과 노인들이 대책 없이 버려지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청소년 자살, 약물 중독, 범죄도 경제위기 이전부터 심각한 수준으로 확산되어가고 있었고 학교 폭력은 한 연구조사에 의하면 남학생의 57%, 여학생의 37%가 경험한 적이 있다는 상황이었다. 전 인구 4명중 1명에 해당되는 사람이 우울증 증세를 보인다는 인구보건연구원의 연구결과가 나오기도 하였으며 그 와중에 한국인들만의 특유의 정신질환인 '화병'이 외국의 정신질환분류의 공식언어로 채택되는 상황이 되기도 하였다. 매일 100만명의 남성들이 매매춘 활동에 참여하고 있었고, 가출 10대 소녀들부터 20대 직장여성들, 여대생들, 30∼40대의 주부들, 그리고 50∼60대의 노인 여성들(탑골공원 등에서)까지도 매매춘 활동에 참여하는 상황으로 전락해가던 중이었다. 이런 상황에 매년 150∼200만 건의 낙태가 발생하고 있었다. 전 인구의 자살율도 이미 1993년에 세계 2위를 기록하였고, 이중 30∼40대가 차지하는 비율이 47%이며, 남성이 여성보다 2배나 더 자살율이 높았다. 성폭행 범죄도 세계 2위를 기록하고 있었고 알콜소비와 교통사고율 등에서도 모두 세계 2∼3위를 기록하는 상황이었다. 또한 이런 와중에 노년층의 황혼 이혼율도 점차 증가하여 전체 이혼건수의 11%를 차지하기도 하였다.

어떤 현상들(예를 들어 가족 해체, 자살)은 하위계층에서 더욱 심화되어 발생하여 왔으나 그외의 현상들은 계층에 상관없이 사회전반에 걸쳐 폭넓게 발생하여 왔음을 보여준다. 이제 대량실업 사태가 발생하면서 사회성원들이 감당해야할 현실적인 어려움은 더욱 심화되는 상황에서 이전부터 진행되어오던 사회적 해체현상이 더욱 가속화되어갈 것은 너무 당연한 일로 볼 수 있다.

산업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보장제도는 그 사회의 안정과 통합을 위해 필연적인 것으로서 국민의 당연한 권리로 인식되어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그동안 복지를 일부 취약계층에 대한 '자선'의 개념으로 인식해온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대량실업으로 인해 생계를 맡아오던 가장들의 실직은 그 가장이 부양하던 전가족을 위기로 내몰게 되었다. 지금껏 한국 사회에서의 복지정책은 '선가정 후복지'의 원칙에 기초한 것으로서 국가의 책임을 가족에게 전담시켜온 것이 사실이다. 또한 강한 혈통중심의 가족주의가 전통사회로부터 산업사회가 된 지금까지도 굳건하게 유지되어오는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들 스스로도 복지제도 확립 등 사회개혁 의지보다는 임금인상 등을 통한 개별적인 가족복지 증진에 더 관심을 가져왔던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선가정 후복지'의 이념은 높은 경제 성장률과 낮은 실업률이 어느 정도 유지되는 시기에는 아슬아슬하기는 하여도 외형상으로는 가족제도를 어느 정도 유지시키는데 기여하였지만 대량 실업사회로 진입한 이 시점에서는 가족해체의 가속화로 인해 개별 성원들을 보호할 안정망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모든 산업화된 자본주의 사회가 복지제도를 어느 수준으로 확충 해 놓은 것은 아닌 것을 볼 때 사회성원들의 '안정망'으로 존재하는 또 다른 체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즉, 국가 주도의 공식적인 복지제도이외에도 사회성원들의 안전망의 기능을 하는 것이 '비공식적인 지지체계'(informal support systems)인데 여기에는 가족, 친척, 친구, 이웃, 종교기관 등 기타 여러 지역사회 자원들이 포함된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 성원들은 사회적 관계망(social network) 측면에서는 다른 사회에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친인척간의 교류도 많고, 학연 지연간의 교류도 많고, 기독교, 불교 등 종교를 가진 비율도 다른 나라에 비해 상당히 높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적 관계망들이 사회적 지지(social support)로 작용해 왔는지에 대해서는 상당히 회의적이다. 사회적 지지는 사회적 관계망 속의 성원들이 어려움에 처할 때 정신적 위로, 물질적 도움, 정보적 그리고 평가적 도움 등과 같이 상호간에 서로 주고받는 유형, 무형의 도움을 의미한다.

비슷한 경제위기를 겪는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한국 사회에서 발생하는 세계 2위의 자살률, 세계 2위의 강도, 살인, 폭력, 성폭력 범죄율 등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비공식적 자원들이 그 외형은 존재하지만 내용면에서 무엇인가 그동안 문제가 있었음을 시사한다. 즉, 이러한 위기상황에 처할 때 사회성원들이 상호간의 사회적 지지망을 통해 상호부조의 정신으로 스트레스에 공동대처하는 상황이었다면 개개인들이 자기 파괴적이거나 타인 공격적인 방식의 대처를 하는 상황으로 가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급격한 사회해체 현상은 사회성원들이 맺고 있던 인간관계 방식에서 문제의 원인을 일부 추적해 볼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우리 사회 성원들의 인간관계 맺기의 원형은 일차적으로 가족관계 속에서 습득하여 내면화 할뿐 아니라 혈통중심의 가족주의가 여전히 지금까지도 개개인의 정체성과 행동양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는 측면에서 한국 가족의 본질에 대하여 냉철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2. 사회해체의 원인 - 가족을 중심으로

농경사회에서 압축화된 산업화를 거치면서 급격한 사회변화를 겪어온 우리 사회에서는 봉건사회의 인간관계 원칙을 산업화된 사회에 걸맞는 새로운 합리적인 인간관계 원칙으로 점진적으로 변화시킬 여유가 없었음이 사실이다. 농경사회에서 혈연으로 맺어진 씨족들이 모여 사는 일차적 집단에서 통용되던 호칭들이, 주로 계약관계로 이루어지는 산업화된 사회관계 속에서도 계속 사용되는 것이 한 예이다(아저씨, 아줌마 등). 성별, 나이에 따라 엄격하게 위계질서를 유지하던 전통적 가족관계는 산업사회에 와서는 역기능을 유발하고 있다. 산업사회에서는 가족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 '정서적 기능'이다. 가족 성원들이 평등한 관계속에서 따뜻한 정서적 위안을 주고받아야만 비인간화되어 가는 경쟁이 지배하는 산업사회 속에서 온전한 심리적 재충전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봉건적 인간관계 원칙이 이미 의식주 등에서 서구화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여전히 적용되면서 일상의 인간관계를 지배하고 있을 때 어떠한 정서적 문제들과 대인관계적 손상이 올 수 있는지 몇 가지 측면에서 고려해보고자 한다.

첫째로, 남성 중심, 연장자 중심의 위계질서가 여전히 중시되는 현재의 한국 가족에서는 여성들과 자녀들의 반발이 자연히 생길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남성들은 '폭력'을 권위를 유지하기 위한 통제수단으로 자주 삼는 것으로 여겨진다. 기혼여성의 60%가 남편으로부터 맞은 경험이 있고 초등학교 아동들의 70%가 아버지에게 심하게 구타당한 경험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이를 잘 입증한다.

또한 성별, 나이에 따른 위계질서적 가치관의 가족관계는 '의사소통'의 측면에서도 심한 역기능을 유발하고 있다. 현재 부모-자녀간 갈등의 많은 부분은 왜곡된 의사소통에서 기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부분의 부모는 자녀들에게 '단정조, 명령조, 비난조, 설교조, 조언조, 경고조, 협박조'의 일방적인 의사소통에 익숙할뿐, 자녀들의 감정과 사고를 반영해주는 '서로 주고받는 공감적인 의사소통'에 너무나도 익숙하지 못하다. 예를 들어, 아이가 "학교에 가기 싫다"고 말했을 때 대부분의 부모는 "너 또 학교에서 뭔가 잘못한 일 있구나" "까불지 말고 학교에 다녀!", "공부는 다 때가 있는데 지금 학교 안다니면 되냐?" "부족한 것 없이 다 해주는데 뭐가 아쉬워서 학교에 안간다고 그래?" "너, 그런 말 한 번만 더하면 가만히 안두겠다" "너 혼나고 싶어서 까불어?" 이런 식으로 반응한다. 이런 경우 공감적인 의사소통인 경우라면 "학교에 가기 싫어? 학교에 가기 싫어진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한데 말해줄 수 있겠니?"로 시작하여 아이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그 아이의 경험과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대화가 시작될 수 있다.

왜곡된 의사소통의 파장은 생각보다 심각하게 나타나는데 우리 사회에서는 부모의 권위주의적이고 일방적인 의사소통이 청소년 가출과 자살의 직·간접적인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한 조사에서 청소년들의 75%가 가출 충동을 가지고 있고, 이중 12%가 실제로 가출을 단행해본 적이 있다고 했는데 그 주된 원인이 '가정에 대한 불만'으로 나타났었다. 일본 총무청 산하 청소년대책본부에서 실시한 세계청년 의식조사에 의하면 자살의 동기로 '부모의 이해부족'을 꼽은 청소년은 한국이 유일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족안에서 이러한 의사소통에 익숙해진 성원들은 가족 밖의 영역속에서 맺게되는 인간관계속에서도 이러한 일방적 의사소통을 너무도 당연시한다. 어른-아이, 학생-제자, 선배-후배, 부하-상관과 같은 관계가 맺어지면 힘의 관계에서 우위에 있는 사람은 그 관계를 본질적으로는 평등한 인간관계로 인식하기보다는 상-하 관계로 인식하고 성별이나 나이면으로 '아래 사람'에게 요청받지 않더라도 일방적인 '한 말씀만 하소서' 증후군을 발동시키는 것이다. 아이들이 어느 곳을 가던 어른들로부터 "공부 잘 하고 부모말씀 잘 들어라"와 같은 설교조의 이야기를 질리도록 들어야 하는 것이 한국사회이다. 젊은 사람들이 나이든 사람들을 기피하는 것은 나이를 먹은 사람을 아무런 이유 없이 단지 나이가 들었다고 혐오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일방적 설교조의 의사소통에 너무도 식상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이 심각한 세대간의 '심리적 단절'의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정신건강적 측면에서 본다면 이러한 형태의 의사소통은 인간사이의 친밀하고 솔직한 정서적 교류를 차단시키고 그에 따라 인간관계를 매우 피상적이고 상투적인 수준에 머무르게 한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 경제위기 이후, 사회적 관계망은 많이 가지고 있었으나 진정한 사회적 지지는 별로 가지고 있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의 상황은 이미 예상할 수 있었던 일이다. 한국사회처럼 많은 관계망을 가지고 있는 사회속에서 그 관계망들이 사회적 지지로 제대로 작용하였다면, 그동안 개인적인 어려움을 털어놓기 위해 여성의 전화, 남성의 전화, 노인의 전화, 아버지의 전화, 생명의 전화, 사랑의 전화, 청소년 전화, 성폭력상담 전화, 며느리의 전화, 시어머니 전화 등과 같은 수많은 상담전화를 사용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 상담전화들이 전문인력을 배치한 전문적 상담기관으로 볼 수 없다는 점에서, 전화 상담을 원하는 사람들이 일상적인 사회적 관계망을 사회적 지지로 여길 수 있었다면 충분히 깊은 대화로 해결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하지 못했음을 반영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사회에선 관계망은 많지만 그런 관계망들의 본질은 매우 피상적, 상투적 관계이고 그 속에서 개별 인간들은 극단적인 고립감과 외로움에 힘겨워해 왔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그에 따라 크고 작은 위기에 처할 때 어떻게 문제해결을 해야할지 모르고 자기 파괴적이거나 타인 공격적인 극단적인 대처방식으로 쉽게 빠져 들어간다.

둘째로, 유교적 전통으로 인해 한국가족은 가족관계의 질보다는 형식치레를 훨씬 더 중요시한다는 점이다. 매년 명절때 조상에 대한 차례를 지내기 위해 인구의 반 이상이 이동하는 현상을 보이는데 얼마나 유교적 전통에 입각한 형식치레가 한국인들에게 중요한지를 잘 입증하는 현상이다. 현재 제사 문화로 인한 여성들의 부담으로 가족내에 갈등이 엄청나지만 '살아 있는' 사람 중심의 행복과 복지보다는 이미 세상을 떠난 '죽은' 사람에 대한 형식적 예를 갖추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가치관을 여전히 버리지 못한다.

또한 앞으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남녀 성비 불균형의 문제에서도 보듯이 자녀의 생명에 대한 존중보다는 단지 아들인가 아닌가, 즉 가부장제의 대 잇기의 형식 갖추기가 더 중요한 가치관으로 자리잡고 있다. 딸이면 유산시키고, 선천적 기형의 장애아가 생기면 쉽게 포기하는 현상에서 인간존중의 가치관, 자녀에 대한 무조건적인 애정은 가족내에서 찾기 어렵고 단지 혈통을 이어갈 어떤 존재, 즉 형식유지가 더 우선하는 가치관을 볼 수 있다. 인간의 '애착'의 가장 근간이 되는 일차적 집단인 가족내에서 이러한 '잔인한' 인간성향을 당연시 여기고 형식을 중요시하는 가족이 기초단위가 되는 사회에서, 위기에 처할 때 급격한 사회해체 현상이 오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 아닐까 한다. 경제위기 이전부터 본인들에게 불편함을 야기시키면 장애인이 된 배우자, 병든 노부모나 자녀들을 버리는 현상들이 많았었고 경제위기가 시작된 후 그 현상들은 더욱 가속화되어가고 있다.

전통 농경사회에서는 비록 가족관계의 '형식'을 중요시한다고 해도, 대가족이 하나의 생산단위로서 장애인, 노인 등을 모두 보살피는 안전망으로 기능하는 순기능을 수행한 면이 있지만 산업화된 사회에서는 그러한 순기능은 사라지고 역기능만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여겨진다. 이런 형식치레 중심의 가족관계는 소비자본주의 시대로 진입하면서 부모에게 '효도 관광'을 보내주었는지, 자식에게 얼마나 비싼 과외를 시켜주었는지 아내에게 결혼기념일에 어떤 선물을 사주었는지와 같은 소비지향적인 외형적 형식치레로 변질되었다고 보여진다. 이와 같이 형식치레를 중요시 여기는 인간관계 성향은 가족 밖으로 나갔을 때 각종 촌지, 과도한 경조사 비용으로 표출된다. 이러한 형식치레를 위한 과도한 경제적 부담은 오히려 인간관계를 더 황폐화시켰을 뿐이었다.

셋째로, 고질적인 성역할 고정관념이다. 남자는 일을 하여 가족을 부양하고 여자는 육아와 가사를 전담해야 한다는 사고를 말한다. 이러한 가치관으로 자녀를 키운다면 결국 '반쪽인간'을 키워내는 셈이 된다. 일생을 살아가면서 인간은 어떠한 상황에 놓이게 될지 모르는데 어떤 상황에서도 적응할 수 있는 포괄적인 삶의 관리 기술을 습득하도록 키우지 않고, 단지 한쪽 기능만을 수행할 수 있는 반쪽인간으로 만들어낸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는 경제위기 이후에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실직한 남편을 둔 아내는 가정에서의 역할이 없는 남편이란 존재를 매우 부담스럽거나 귀찮게 여기면서 생계를 어떻게 꾸려가야 할지 막연해 하고, 또 가출한 아내를 둔 남편들은 자녀 키우기와 가사일을 어찌해야 할지 암담해 한다.

인간은 상호의존(inter-dependence)하며 살아 가야하지, 공생적 의존(co-dependence)으로 살아가면 위기상황이 닥칠 때 관련된 모두를 동시에 취약한 입장으로 떨어뜨리게 만든다. 경제능력과 가사능력을 모두 가진 남녀가 모여서 살게 되면 한쪽이 위기에 처했을 때 융통적으로 일상에 적응이 될 수 있지만 (상호의존성의 관계), 한쪽은 경제능력, 다른 한쪽은 가사능력만을 가진 두사람이 모여 살 때는 (공생적 의존성의 관계) 상황이 순조로울 경우엔 큰 어려움 없이 지낼 수 있지만 한쪽 파트너가 위기에 처할 땐 두 사람의 삶과 함께 가족전체가 붕괴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제 평생직장의 개념이 허물어져 가는 상황에서 전통적인 성역할 고정관념으로 계속 가정에서 자녀를 양육시킨다면 이들이 성장하였을 때 위기상황에서 가질 수 있는 심리적, 실질적인 대처 자원을 매우 빈약하게 만들뿐이다.

넷째로, 또 다른 전통적 가족중심 사고의 여파는 가족과 집안을 위한 출세 의식이다. 남자는 일을 통한 출세, 여자는 결혼을 통한 출세의 사고가 여전히 가족을 지배하고 있다. 살인적인 경쟁의식을 아주 어려서부터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주입시키면서 내면화시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사회의 성원으로서 준비를 시키는 교육이 아니라 가족이기주의의 실현을 위한 교육을 시키는 것이다. 남과 같으면 안되고 남보다 뛰어나야 한다는 사고를 아이에게 강요하는 것은 평등주의적 사고를 유아시절부터 박탈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해방이후 공교육이 대중화되기 시작하면서 학교는 전통적인 가족이기주의의 실현의 장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하였고 공교육을 받은 세대들이 그 다음 '유식한' 부모세대가 되면서 그러한 경쟁적 사고는 더욱더 심화되어 이제는 학교가 거의 살인적인 경쟁의 장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해가 지나면서 갈수록 청소년들의 자살과 학교폭력, 가출 등이 더욱 증가해온 현상은 얼마나 부모세대가 이들에게 감내할 수 없는 살인적 경쟁을 강요하였는가를 잘 반영한다. 유아시절부터 '조기교육' '영재교육' 등이 판을 치고 자신의 아이만을 보살펴 달라는 이기심에 '촌지'가 일상화되었고 또 '과외열풍'으로 온 나라가 들끓는 상황의 뒤엔 이러한 가족이기주의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협조'와 '상호 보살핌'의 중요한 인간관계 기술습득은 유아기 때부터 인간사이의 '애착'역량을 배우면서 가능하고, 대부분의 정신질환이 대인관계 부적응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을 볼 때 가족이기주의는 한 개인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사회속에서 적응하는데 가장 필수적인 사회심리적 대처자원인 대인관계 기술 습득을 박탈한다는 점에서 그 문제는 너무 심각하다. 시간이 갈수록 자기중심적이고 유아적인 대인관계 성향을 보이는 공주병, 왕자병으로 불리는 '자기도취적 성격장애'(narcissism)나 친밀한 인간관계를 맺지 못하고 착취적인 대인관계 성향을 보이는 '반사회적 성격장애' 유형이 많아지는 것은 바로 이러한 자녀키우기 방식에서 기인한다.

또한 유난히도 가족, 학교, 직장 등 여러 조직속에서 인간관계 갈등이 많은 이유는 오직 '공부'만이 중요하다는 가치관속에서 다양하고 깊은 인간관계 맺기의 경험을 충분히 하지 못한 사람들이 상대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파악할 수 있는 감정이입 능력(empathy)을 성장기에 습득하지 못한 성원들끼리 모였을 때 당연히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상대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으니 쉽게 피해망상적 사고로 가게되어 '불안장애'를 경험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고, 어떻게 의사소통을 하면서 친밀한 인간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를 모르니 소외되고 고립되어 '우울증'으로 가는 사람들이 급격하게 늘고 있는 것이다.

결국은 만족스런 인간관계에서 얻어져야할 '정서적 충족감'의 결여는 허전함을 불러일으키고 그에 따라 각종 중독현상(돈중독, 알콜중독, 마약중독, 도박, 종교중독, 쇼핑중독, 섹스중독 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또한 과도한 부모의 기대와 객관적 현실사이의 괴리는 정신분열증의 한 원인이 되기도 하고 좌절감으로 인한 자살로 이끌게 하기도 한다. 한국 가정에서 남아에 대한 기대가 여아에 대한 기대보다 더 높고 그것이 두 배나 더 높은 남성들의 자살율을 일부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정서적 충족감의 결여가 자신의 내부로 향할 때 위에서 언급한 각종 정서장애, 행동장애로 나타나지만, 그러한 것이 외적으로 표출될 때는 타인에 대한 공격적 성향으로 나타나 신체적 폭력이나 성폭력 그리고 기타 여러 범죄의 행동양식으로 나타난다.

다섯째로, 또다른 전통적 가족중심적 가치관의 파생물은 가족 체면주의이다. 우리 사회에서 가족관련 문제가 유난히도 고질적이고, 곪아터지는 상황에 가서야 표출되는 이유중 하나는 가족에 관한 어떤 '문제'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가족 성원들이 금기시한다는 점이다. 가족중에 신체적, 정신적 장애인이 있다거나, 이혼한 사람이 있다거나, 범죄경력을 가진 사람이 있다거나, 가족 갈등이 있을 경우 가족은 그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극히 꺼려한다. 따라서 가족문제는 가족내부에서만 고립되어 곪아터지는 경우가 흔하다.

이런 가족 체면주의가 사회적 관계망을 사회적 지지로 전환되는데 억제적인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가족에 관한 일은 '자랑거리'만을 남에게 이야기하지 그외의 것은 숨기는 성향을 가지므로 대부분의 사회적 관계망속에서 자신의 문제를 솔직하게 터놓고 도움을 받을 수 있기보다는 단순히 '가식적'인 의사소통만을 하는 경우가 흔하다. 흔히 사용하는 표현인 '남의 눈이 무섭다'에서 '남'이란 무연고의 타인이 아닌, 지속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관계망 속의 사람들을 의미하는데 결국 가족체면주의는 가족의 어려움을 은폐하게 만들뿐, 솔직하게 공개하고 도움을 받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아는 사람들은 많지만 솔직하게 터놓고 어려움을 나눌 수 있는 가족 밖의 사람은 별로 없는 상황에 많은 이들이 놓이게 된다. 즉, 가족과의 동일시를 강하게 하는 개개인들은 일상의 의사소통에서 '자기 노출'(self-disclosure)을 별로 하지 않는데 친밀한 인간관계를 맺는데 필수적인 자기노출이란 자신의 어려움 등 개인적인 약점 등을 솔직히 친밀한 관계속에서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가족체면주의에서 파생된 개인적 어려움과 약점에 대한 노출에의 금기시는 개개인들로 하여금 일상의 가족 밖의 인간관계속에서 '자기 허세'는 많게 할지언정 솔직한 자기노출은 꺼리게 하는 편이다. 아마도 이런 이유로 유난히도 한국인들은 모이면 자신의 느낌과 생각 등 개인적 삶의 경험을 솔직하게 나누기보다는 정치이야기, 연예인 이야기, 참새 시리즈 등과 같은 넌센스 유머 나누기 등에 몰두하거나, 아니면 대화가 필요 없는 노래방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혹은 술잔 주고받기나, 고스톱 치기 등 '대화중심'보다는 '활동중심'으로 인간관계를 맺는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렇게 피상적이고 상투적인 수준으로 맺어지는 인간관계속에서 상호간의 깊은 이해는 불가능하며 따라서 진정한 사회적 지지망으로 기능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전통적 농경사회에서는 한 가족성원의 어려움은 대가족 성원들 안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지만, 산업사회에서는 가족이란 사회 속의 다양한 체계 속의 한 단위일 뿐 가족이 수행하는 기능은 전통사회에 비해 매우 제한적이므로 가족안에만 가족 성원들의 어려움을 고립시키고자 하려는 가치관은 문제해결을 어렵게 하며 매우 역기능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그리고 가족성원중 다른 가족들이 숨기고 부끄러워해야 할 존재로 낙인찍힌 특정 성원(공부를 못한다거나, 이혼했다거나, 직업이 없다거나,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에게 미치는 부정적인 심리적 여파는 또한 깊고 클 수밖에 없다. 가장 보살피고 감싸주어야 할 가족 성원들조차 자신을 부끄럽고 수치스런 존재로 여긴다는 사실로 인한 심리적 손상은 매우 크고, 그로 인한 정신질환의 발병 역시 매우 흔하다.

마지막으로, 전통적 가족중심의 개념은 변화하는 사회속에서 가족에 대한 재정의를 하는 것을 가로막는다. 예전에 세계보건기구에서 '가정의 해'를 선포하였을 때 가장 논란이 되었던 점은 '가정'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관한 것이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가정을 결혼한 부부에 혈연으로 맺어진 자녀를 가진 것에 한정하여 개념화한다. 하지만 이렇게 가정을 개념화할 때는 편부모 가족, 무자녀 가구, 독신 가구, 친한 이들끼리 사는 가구, 동거 가구 등이 다 제외되는 것이다. '주류'의 개념을 합법적 결혼에 근거한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형태로 한정시킬 때 나머지 형태의 관계들은 모두 비정상적인 것으로 여기는 '편견'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편견적인 관점들이 여전히 다양한 욕구를 가진 사회성원들을 한틀로 집어넣는 결과를 낳게 되고 그것이 또 가족갈등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주류'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억지로 사는 부부가 너무 흔하고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10쌍의 부부중 3쌍이 호적상으로는 부부지만 남남처럼 한집에서 사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고하였다), 그것은 만성화된 가족 갈등을 야기시키며 모든 가족성원들의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미쳐온 것이 사실이다.

3. 나오면서

현재 발생하고 있는 사회해체 현상은 물론 경제위기가 오면서 더욱 가속화된 것이 사실이므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위기가 왔을 때를 대비하여 국가 주도의 공식적인 '안전망' 조처를 구축해 놓지 못한 구조적인 문제에서 일차적으로 파생함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사회해체 현상은 경제위기 이전부터 이미 어느 시점부터 상당히 위험한 수준으로 진행되어오기 시작한 것이었고 또한 청소년 자살, 비행, 약물중독 등의 문제나 성인들이 보이는 각종 중독 현상들, 이혼, 자녀 유기, 정신 질환과 같은 현상은 하위계층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단순히 '경제적' 문제에서만 기인하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또한 다른 후발 산업국가에서도 공식적인 복지체계를 제대로 갖추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사회해체의 지표상에서 한국이 세계 2위, 3위의 수준을 달리고 있음은 그런 사회안에서는 순기능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비공식적 지지 체계가 우리 사회에서는 '외형'상으로는 존재하고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오히려 '경쟁'과 '상대적 비교'의 대상으로서 작용했을 뿐, 진정한 지지체계로 작용하지 못하였다고 보았다. 그렇게 된 연유에는 우리 사회에 유난스럽게도 뿌리 깊은 유교적 가족중심적 가족관계에서 인간관계 성향의 뿌리를 찾아볼 필요가 있었고, 이 글에서 그러한 점들을 지적하고자 하였다.

진정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 병든 사회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는 건강한 개개인들이 존재할 때 가능하다. 하지만 현재 아동기, 청소년기, 청년기, 중년기, 그리고 노년기에 이르는 전 세대중 어느 세대도 힘겹지 않은 세대가 없기에 누가 가장 먼저 이러한 현재의 상황에서 주도적으로 문제해결의 주도권을 잡고 노력해갈 수 있을지가 난감해 보이기도 한다. 전세대가 가족 생활주기(family life cycle)를 겪어 가는 과정속에서 변화해가면서 서로에게 피해자와 가해자의 역할을 주고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하다. 예를 들어, 아동기 때 부모의 학대를 받으면서 피해자의 입장이었던 자녀가 청소년기나 성인이 되어 가출, 부모 학대 등으로 가해자로 바뀌는 경우이다.

가장 늦었다고 생각될 때 새로 시작하는 것이 현명한 결정이라는 말이 있듯이, 곪아 터져 본격적인 사회해체 현상을 보이는 이 시점이 오히려 새로운 인식전환과 행동전환의 적기일수도 있다고 여겨진다. 현재 나타나는 적나라한 사회현상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동안 지니고 있던 굳건한 방어기제들 (즉 현실에 대한 부인, 회피 등)에 더 이상 매달리지 못하게 만들 수 있고 또한 현실변화에 대한 저항의 근거를 상실하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몇 가지 문제해결의 실천방향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로, 우리 사회와 달리, 서구 산업사회에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이론이 미친 여파는 엄청나다. 프로이트의 이론의 출현이후 심리학, 정신의학 그리고 상담이론 등은 급격하게 발전해왔고 따라서 개인심리, 대인관계 심리, 가족 심리, 조직 심리, 의사소통 심리 등에서 엄청난 지식과 임상경험을 축적해왔다. 인간의 기본 욕구와 인간의 동기(motivation) 등에 대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지식은 복잡해진 현대사회에서 사회성원들로 하여금 각 영역에서 어떻게 상호교류 해야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지침을 제공하여왔다.

가정에서의 아동양육과 학교에서의 교육, 직장 등 각종 조직에서 어떻게 인간관계를 맺는가에 관해서 '마구잡이식'의 개별적인 철학이나 가치관에 근거하기보다는 실증적인 지식에 토대를 둔 인간심리 이해에 근거하여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많은 '거시적'인 서구의 이론들은 유입되어 대중화된 것에 반하여, 인간심리에 관한 부분은 정규교과 과정중에도 빠져있고 그에 따라 인간심리에 대한 이해는 매우 초보적인 상태에 머물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자 심리를 도무지 모르겠다' '남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요새 애들은 도무지 이해하기가 힘들다'와 같은 일상적 언어가 인간심리에 대한 초보적 이해조차 결여된 우리 사회성원들의 상황을 잘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사회전체로 볼 때는 정규교과 과정중에 이러한 심리, 정신 건강 관련 과목들이 채택되어져야 할 것 같고, 노동운동 분야에서는, 조합원들의 교육과 훈련 프로그램 중에 개인심리, 가족심리, 의사소통 방법, 부모교육훈련, 정신위생 등을 포함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둘째로, 한국 가족에 대한 냉정하고 객관적인 평가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노동운동이 궁극적으로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를 지향한다면 권위주의적이고 억압적인 관계형태로 이루어지는 한국가족에 대한 성찰이 무엇보다도 우선되어져야 한다. 앞으로 우리사회가 떠맡고 있는 과제가 너무도 엄청난 현실속에서 지금 자라나는 세대들이 일상적으로 자유롭고 평등한 인간관계를 가족안에서 체험하면서 자라야만 그러한 가치관이 내면화되어 그들이 성장한 후 함께 살아가는 평등한 사회구현을 위한 노력을 지치지 않고 계속 지속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로, 가족 이기주의적인 교육에서 탈피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공동 육아나 열린교육과 같이 '경쟁'보다는 '협조'와 '상호 보살핌'의 인간관계 가치관을 내면화시킬 수 있는 교육 경험을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제공하는 것이 시급하다. 또한 성고정 관념에서 벗어나 반쪽인간을 키워내기보다는 '온전한' 인간을 키워내는 것이 너무도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세대가 '시범'을 보이는 것이 너무도 중요하다. 또한 오로지 '공부'만을 강조하면서 다른 다양한 삶의 경험을 모두 박탈시켜 성인이 되었을 때 아무런 삶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그러한 건조한 인간을 양산해내는 우리 사회의 인간 교육의 문제점을 부모세대가 본인 스스로의 삶을 통해 성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노동운동은 앞으로 이러한 이슈들에도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정신질환 특히 우울증이 앞으로 가장 중요한 사망요인중의 하나로 대두된다는 세계보건기구의 예측이 있고, 이미 높은 자살율을 보이는 한국사회는 특히 여기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현실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심각한 사회해체 현상으로 '비공식적 지지체계'가 사회성원들의 안전망으로 효과적으로 크게 작용하고 있지 못하는 이 상황에서 '공식적 지지체계'의 도입을 위한 국가의 노력이 무엇보다도 시급하고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현재와 같은 사회해체 현상을 방치한 채, 외국 자본의 유입으로 경제가 다시 활성화되면 사회는 정상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보는 관점은 바로 '인간심리에 대한 극단적인 몰이해'를 극명하게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버림받고 학대받은 아동과 청소년들, 그리고 깊은 심리적 상처와 절망감으로 인한 다양한 심리적 부적응 증상들을 보이는 성인들이 계속 방치되어질 때, 이들이 겪은 심리적 손상의 여파는 사회전반에 골고루 퍼져 오랜 기간 동안 역기능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 전체가 정신질환자를 수용하는 대형 정신병원이나 범죄자를 수용하는 대형 감옥과 같이 변해가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는 각 인구 집단에 대한 적절하고 효과적인 사회복지서비스 제공이 무엇보다도 시급하다고 여겨진다. 더욱 급변할 세계질서 속에서 융통적으로 대처하며 적응할 수 있는 충분한 사회심리적 자원을 가진 건강하고 성숙한 개개인들의 존재가 너무도 절실한 시점이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