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투쟁의 성격과 방향
- 최근 정세를 둘러싼 몇가지 특징과 단상 -
곽 탁 성
정세분석실장
민주노총의 노사정위원회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악의적인 여론공세가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요즈음, 현재 전개되고 있는 5, 6월 총력투쟁의 성격과 방향을 검토하는 것은 조금은 애매한 작업일 수 있다. 그만큼 정세의 복잡성과 유동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조금 더 깊게 현재의 상황을 검토한다면 정세변화를 관통하는 몇 가지 문제의식과 과제를 발견할 수 있다. 이 글은 이러한 수준에서 접근할 것이다. 투쟁력은 그 강도와 속도를 규정하는 요인이 될 것이며 문제가 풀려나가야 할 방향은 분명하다는 점, 그것이 이 글을 관통하는 핵심 기조이다.
1. 상반기 투쟁의 성격
"경제위기시에 대중투쟁이 가능한가?" "그러한 역사적 경험이 존재하는가?" 97년 말 IMF 구제금융을 계기로 외환위기, 경제위기가 전면화 되면서 앞서와 같은 질문이 던져지기도 했었다. 투쟁이 현실화된 5월을 경과하면서 이러한 의구심은 정리되었지만 우리의 투쟁이 갖고 있는 의미와 그 전망에 대한 포괄적 정리, 자각정도는 대단히 미흡한 상태이다. 이러한 문제가 투쟁이후의 평가만으로 해결될 수 없으며 투쟁과정에서 일정정도 공유되어야 사실상 평가를 통한 정리와 교정, 보완이 가능한 것임은 지난 10여년간의 투쟁경험이 증명해 주고 있다.
1) 한국사회의 재구조화를 둘러싼 대장정의 출발
'한국사회의 재구조화를 둘러싼 대장정의 출발' 현재의 투쟁은 이렇게 성격을 규정할 수 있다. 이것은 두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현재의 경제위기가 단지 경제위기만으로 전개되거나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관계 전체의 위기로 발전하고 있고 이에 대한 노동자·민중의 저항이 여러 수준과 측면에서 불가피하다는 점이 첫번째 의미이고 당면 5, 6월 투쟁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지만 이 투쟁은 한판 승부가 아니라 요구의 심화와 확장을 통해 지속적인 투쟁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점이 그 두번째 의미이다.
최근 1년간 진행된 30대그룹 구조조정의 내용을 보면 '상위권 뒷걸음, 중하위권 게 걸음'이라는 표현처럼(주1) 현대, 삼성, 대우, LG 등 주요 그룹의 계열사는 늘어났거나 별 변동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고 대부분의 그룹이 투자축소에도 불구하고 부채가 늘어 자산이 증가하고 있는 상태이다. 또한 부유층 소득의 75%를 유지하던 중산층의 소득이 내년에는 67%대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중산층이 붕괴하고 있다"는 진단이 도처에서 내려지고 있다. 또한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자본의 공세는 이제 '공장을 넘어' 대학 등 사회 각 영역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계급적·사회적 양극화를 수반하는 자본의 위기탈출책이 구체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저항이 지금은 공장을 중심으로 노동자들에 의해서 주도되고 있다. 한국사회의 재구조화가 자본의 논리와 의도대로 비교적 순조롭게 계급적·사회적 양극화를 수반하면서 나타날 것인지, 이러한 경향이 일정정도 저지되면서 나타날 것인지 그것은 주체의 실천에 달려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렇듯 재구조화의 성격과 방향을 둘러싼 갈등이 현재의 경제위기를 경과하면서 전면화되어 계급갈등을 격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어떻게 보면 투쟁은 강제받고 있기조차 하다.
우리 노동운동이 갖고 있는 특징이자 가장 유리한 점은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의해 노동운동의 주도적인 흐름이 포섭되거나 무력화되지 않은 건강함과 전면적 저항의 힘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에게 좀 더 많은 창조의 가능성을 부여하는 것이며 전세계 노동운동이 우리를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경제위기라는 정세하에 노동과 자본의 대결이 다시 시작되고 있다. 사실상 그 출발점은 지난 2월이었고 그 결과는 정리해고제 등의 입법화, 민주노총 지도부의 불신임 그리고 당면 투쟁에서의 패배였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면서 5, 6월 총력투쟁이 전개되고 있다. 그 주된 대립지점은 임금, 고용 등 노동자계급의 생존권 문제이지만 사실상 그것은 경제위기 극복의, 한국사회 재구조화의 방향이 자본 위주의 경쟁 논리, 시장 논리로 이루어질 것인가, 노동자·민중의 생존권 보장과 연대의 원리로 이루어질 것인가를 둘러싼 노동과 자본의 지난한 대결이며, 우리는 그 출발점에 서 있음이 다시 한번 확인되어야 할 것이다.
2) '선거정치와 사회적 합의'의 구도를 넘어서 - 신자유주의에 대항하여
90년대 중반 이후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산별노조건설이 과제로 등장하면서 선거에 대한 노동운동의 개입과 이른바 사회적 합의의 문제는 주요한 쟁점으로 위치지워졌었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문제가 전술적 사안으로 위치지워지는 것이 아니라 전략적 사안으로,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경향성이 증가해 왔다는 점이다.
이것은 우리에게서만 나타나는 고유한 특징이 결코 아니며 노동과 자본의 동반자관계를 기본구도로 하고 있는 각국의 노동운동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러나 어느 경우에도 그것은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를 저지해내고 노동자·민중의 삶의 질을 유지·강화하며 단결을 높여내는 데에는 실패했다. 오히려 이러한 구도를 뛰어넘으려는 아래로부터의 투쟁이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주2)
국민승리21이 참여했던 대통령선거의 과정과 결과, 1기 노사정위원회의 잠정합의와 민주노총지도부의 사퇴라는 우리 민주노조운동 진영의 경험도 선거정치와 사회적 합의의 구도가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소재일 수 있다. 이러한 구도로는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대응할 수 없음을, 노동운동의 무력화, 신자유주의적 구도로의 포섭과 흡수만이 그 귀결점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주3)
현재 벌어지고 있는 5, 6월 총력투쟁은, 오랫동안 누적되어 이제는 그 뿌리가 상당히 깊은 '선거정치와 사회적 합의'라는 낡은 구도를 뛰어넘어, 아래로부터의 투쟁력에 근거하여 자주성을 확보하면서, 경제위기라는 조건하에 더욱 강화되고 있는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를 극복하고자 하는 성격을 갖고 있다.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의 결합'이라는 김대중 정권의 슬로건이 노동기본권과 노동자·민중의 삶을 심각하게 후퇴시키고 있는 현실과 '양보는 없고 고통의 감수'만을 요구하는 자본의 공세는 허구적인 노자 동반자관계의 구도를 극복할 훌륭한 가능성을 만들어 가고 있다.(주4) 이러한 시도는 최근 4∼5년에 걸쳐 약화된 우리 노동운동의 계급적·민주적 성격을 복원한다는 점뿐만 아니라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를 극복해가고자 하는 세계적 차원의 흐름에 결합해 나간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3) 운동지형의 새로운 변화 - 그 동력창출의 고리
9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부터 조직발전논쟁(약칭 조발논쟁)과 전선재편 등의 개념이 널리 사용되어 이제는 상당히 친숙한 용어가 되었다. 이것은 운동지형의 변화를 위한 논의와 실천이 오랫동안 모색되어졌지만 그 만큼의 성과가 축적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최근 들어 운동지형의 변화와 이를 둘러싼 논의가 다시 전개되고 있는데, 그 특징은 여러 수준에 걸쳐서 '총체적인' 변화의 조짐이, 그리고 '현실적인' 변화의 모습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먼저 노동조합운동 수준에서는 산별연맹의 건설과 연맹에서 산별노조로의 이행을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금속산업연맹(98. 2. 15)과 보건의료산별노조(98. 2. 27)의 출범, 그리고 공공연맹의 출범(98. 4. 19) 등 조직지형의 커다란 변화가 나타나고 있고 교섭권위임 등을 고리로 한 연맹으로의 집중성 강화가 시도되어 왔다. 현장조직운동 수준에서는 현장조직대표자회의 통합력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96∼97년 전국총파업투쟁의 성과로 등장한 민주연대가 무기력해진 후 98년 민주노총의 총력투쟁을 맞아 현재 {고용실업대책과 재벌개혁 및 IMF 대응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가 52개 노동·사회단체의 참여로 구성되어 활동하고 있다. 이후의 추이를 보아야 하겠지만 전선운동에서의 변화는 범국민운동본부의 성과와 한계에 의해서 규정될 것이다.
노동자 정치운동의 방향과 관련하여 주요한 관심을 모았던 국민승리21은 2월 7일 중앙위원회를 통해 정치조직으로 전환할 것을 결의하였고 현재 지방자치제선거에 집중하고 있다. 국민승리21은 지자체선거 이후 다시 조직의 상과 활동방향을 점검하고 확정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정치연대(준)또한 발전적 해소를 결의한 상태이다.
상반기 투쟁의 성과와 한계로부터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을 단위는 노동조합운동, 특히 민주노총이 될 것이다. 투쟁의 성과 여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적어도 현재까지의 성과만을 놓고 보면 연맹의 수평적 결합체가 아닌 전국적 투쟁의 구심으로서의 민주노총 중앙의 위상은 높아져 가고 있다. 이렇게 민주노총 중앙이 굳건하게 서서 대중속에 뿌리내리는 과정이야말로 연맹이 안착하는 과정이며 단위사업장이 강화되는 과정이다. 이러한 성과가 관료적 집중성이 아닌 민주성을 더욱 강화하고 내부를 혁신하는 '위로부터의 혁신'의 계기로 수렴된다면 이는 노동운동의 정치화와 산별노조로의 이행에 큰 자양분으로 작용할 것이다.
연맹의 안착과 산별로의 이행준비에도 투쟁의 성과가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꼼짝달싹하지 않는 자본측을 교섭석상으로 끌어내는 것은 하부에서의 교섭권 위임이라는 형식보다도 - 그 자체로 물론 필요하지만 - 확실한 대중투쟁 능력이다. 현재의 투쟁이 상반기 투쟁으로 제한되지 않고 일정한 연속성을 갖는다면 - 중앙과 산별, 단위사업장 간의 원심력과 구심력의 긴장관계가 존재하겠지만 - 중앙과 연맹 그리고 단위사업장의 결합력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짧게는 민주연대 이후, 길게는 전국연합의 결성 이후 노동운동을 중심으로 한 민중연대투쟁의 조직화는 지연과 정체, 굴절의 과정을 거쳐왔다. 노동운동이 자신만의 문제에 매몰되거나 노동운동의 취약한 사회적·정치적 영향력을 지원하는 수준에서 전선운동을 이해하는 측면이 강하게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제 경제위기를 계기로 사회적·계급적 양극화가 선명하게 진행되고 민주노총이 투쟁의 구심으로 서 나가고 있는 현실은, 자본의 신자유주의 공세로 고통받는 전체 민중의 투쟁에 노동자가 개입하고 그 투쟁을 노동자가 이끌어 나간다는 관점에서 전선운동이 추진되고(주5) 재구축될 수 있는 조건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 현실성 여부는 당면투쟁의 진전과 전선의 계급적 재편과 강화를 위한 목적의식적인 활동여부에 달려 있을 것이다.
국민승리21, 정치연대(준) 등 노동자 정치활동을 준비하는 조직들이 당면 정세에 공공연한 정치선동 등을 통해 개입하는 모습은 발견되지 않는다.(주6) 남는 문제는 제한된 조건에서나마 이번 투쟁에 대한 정치적 태도를 표현하면서 당면투쟁 나아가 이후 지속될 투쟁의 성과를 어떻게 수렴하고, 어떻게 주체형성과 훈련의 계기로 만들어 나갈 것인가이다.
단위사업장에서의 노동조합 및 조합원 대중과의 관계, 산별노조운동의 현황 그리고 현단계 노동자 정치운동의 수준 등에 의해서 규정될 현장조직운동도 - 현재 주로 단위사업장 수준에서의 대응을 중심으로 활동이 전개되고 있다 - 미약하나마 자기 진단과 과제 도출, 발전의 모색을 요구받게될 것이다.
물론 운동지형의 변화가 투쟁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각 주체들이 투쟁에 결합하는 양식과 수위에도 차이가 있으므로 이것만 가지고 전체 지형의 변화를 논의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현재 진행중인 투쟁은 내부지형 변화를 이끌어낼 핵심적인 동력이다. 그리고 이 투쟁의 경과와 성과 및 한계를 어떻게 진단하고 수렴하는가에 따라 각 주체의 향방이 결정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아직은 '굳어있지 않은' 노동자 정치운동과 노동자 대중운동의 지형이 경제위기시에 나타나는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대한 저항을 계기로 만들어지고 있고,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2. 투쟁의 주요한 특징과 과제
1) 전선의 복원과 불안정성, 유동성 - 만들어가는 투쟁, 다가가는 조직화 !
현재 진행되고 있는 투쟁의 주요한 특징은 96∼97년 총파업 때처럼 - 부분적으로는 노동법 날치기 통과에 의해서 증폭되면서 - 하부에서의 광범한 투쟁이 일어나고 이를 중앙지도부에서 받아나가는 양식과는 반대로 무너진 전국전선을 중앙지도부가 앞장서서 만들어 나간다는 데에 있다. 이는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 등 제반 악법의 철폐와 고용, 노동시간, 임금 등의 요구가 현재의 정세에서 상당한 정치적 부담과 지도력을 요구한다는, 투쟁 그 자체의 성격으로부터 그리고 연맹과 단위사업장 수준에서는 2, 3월경부터 임단투를 중심으로 전선이 만들어졌지만 중앙지도부는 사실상 4월 중순부터 가동이 시작됐던 시기상의 문제로부터 그 주요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중앙과 연맹, 단위사업장 간의 인식의 혼돈 등 투쟁의 초기국면에서 발생한 기조와 초점의 차이는 투쟁이 전개되면서 정리되고 있다. 이는 돌발적인 상황이 전개되지 않는 한 일정정도 지속될 전망이다.
메이데이 중앙집중투쟁, 5.16, 5.23 투쟁을 거쳐 만들어 낸 제1차 총파업투쟁과 대정부 중앙교섭의 쟁취는 - 그 성과의 절대화와 미화라는 차원이 아니라 - 노동운동진영 내부에서조차 반신반의하던 투쟁과 협상을 물질화시켰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사실 5.27∼28 총파업투쟁을 거치면서 민주노총의 5대 요구는 알려졌고, 23만이라는 제한된 숫자의 참여였지만 중앙과 연맹, 단위사업장은 하나의 투쟁대오로 단결할 수 있었다. '끝없이 밀려 떠내려가던 그래서 나중에는 형체조차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암담했던 한국노동운동이 대자본과의 투쟁에서 대자본의 공세에 잠시 정지명령을 내린 것'(주7)이라는 진단에서 알 수 있듯이 자본의 공세에 조직적 반격을 가하면서 힘 관계의 반전을 시도하였고, 이를 통해 자신감을 되찾기 시작한 것은 소중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투쟁을 통해 그동안 공백상태에 있던 전국적 수준의 전선은 다시 설치되었고 이를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가 6월 투쟁의 과제로 제기되고 있다.
투쟁의 성과를, 이러한 투쟁이 나올 수밖에 없는 대중의 상태(주8)를 애써 외면하고 악의적인 선전과 왜곡을 일삼는 여론의 반응은 역설적으로 이 투쟁에 대한 자본의 반격과 부담감의 표현(주 9)이었다고 할 수 있다.
대정부협상이라는 새로운 형식의 확보도 - 김대중 정권이 이를 노사정위원회와의 연관속에서 위치지우고 있긴 했지만 - 또 하나의 가능성을 확인한 성과였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한발 한발을 내딛는 것이 힘겹고 어렵게 느껴졌던 상황에서 노동자 대중이 현실을 변화해 나갈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음을, 다시 단결할 수 있음을 확인시켜 냈다는 점이다. 자신의 가능성과 조건을 자각하는 과정이야말로 승리를 위한 관건적 요소임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노학연대투쟁의 복원, '노동운동과 함께 하는 학생운동'의 부활은 지난 96∼97년 총파업투쟁의 한계를 넘어 이번 투쟁에 나타난 고무적인 현상중의 하나이다. 학생운동에 대한 탄압에 반대하고 예비실업자로서 다른 노동자·민중들처럼 현재 한국사회의 모순을 체현하고 있는 학생운동과 학생층에 대한 노동운동, 정확하게는 민주노총이 보여준 개방적이고 적극적인 태도가 현재의 상황을 만들어 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판단된다. 특히 지난 5월 30일 개최된 범국민운동본부 주최의 제1차 국민대회에서 심미특수강 해고자, 도원동 철거민 등이 중심이 되어 학생들의 집회참여를 막으려고 하는 경찰의 불심검문에 맞서 이를 저지해낸 점은 학생운동과의 적극적인 연대를 노동운동과 민중운동 진영이 확보해 냈다는 점에서, 나아가 민주노총에 대한 고립화전략을 공세적으로 돌파해 냈다는 점에서 훌륭한 성과였다고 할 수 있다.
5월 투쟁과 6월 초순 협상을 거쳐 이제 전선은 6.10 투쟁으로 집중되면서 그 대립은 더욱 선명해지고 있다. 제1차 총력투쟁의 성과를 이어받아 민주금융노련 등 10여개의 연맹이 총파업을 결의하면서 전선은 더욱 확대되고 있고, 여러 노동·사회단체들도 이 투쟁의 엄호와 확산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 온갖 교란요인과 어려움을 뚫고 진행되는 '만들어 가는 투쟁!' 투쟁의 성과와 그 확산에 의한 '다가가는 조직화!' 그것은 이번 투쟁이 갖고 있는 또 하나의 실험적 특징이기도 하다.
2) 노사정 위원회 : 투쟁의 방향과 수렴을 둘러싼 대립
제1기 노사정위원회 이후 잊혀지고 있던 노사정위원회가 다시 등장한 것은 ASEM 회의 이후 김대중에 의해서였다. 물론 이러한 배경에는 해외투자여건 완화라는 자본의 위기탈출책과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대중동력의 새로운 복원이 함께 맞물려 있다. 이 카드는 언론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정국을 주도할 수 있는 자본측 무기로서의 역할은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오다가 최근 들어 그 영향력이 강화되고 있다.
메이데이 이후 노사정위원회 카드와 관련자 98명 수배·구속 등 강온전략의 구사에도 불구하고 5월 총파업은 성공적으로 수행되었고 '선 파업철회 후 협상', 143명 입건 등 강경조치에도 불구하고 대정부 협상은 추진되었다. 또한 6.10 총파업투쟁의 대오는 다시 정비되고 있으며 한국노총을 포함한 가운데 6월 3일 노사정위원회가 흡사 그 자체가 목적인 듯이 초라하게 출범하였다.
고통을 인정하고 감수할 것을 요구하는 제2기 노사정위원회가 투쟁의 열기에 의해서 완전히 실종되어버릴지 상당히 변형된 모습으로 정리될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노사정위원회는 경제위기는 노동과 자본의 동반자 관계와 이에 근거한 이른바 고통분담에 의해 극복되어야 한다는 인식을 그 바탕에 놓고 있는 포섭기구라는 점이다. 자본측의 목표는 '노사관계의 안정'이다. 노사정위원회는 이를 위한 형식이다. 이는 우리에게 '노자관계의 분명한 반전'과 이를 반영한 노동과 자본의 협상 및 이를 담보할 형식을 요구하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대정부 직접협상이라는 파격적인 발상과 그 구체화가(주 10) 노사정위원회를 둘러싼 논의로 다소 그 빛이 바래지기는 했지만 투쟁동력이 다시 정비되면서 정세의 주도력은 민주노총으로 옮겨지고 있다. 노동운동의 힘이 '강'할 때 협상이 이루어지고 노동운동의 힘이 약화되면 그 협상내용은 헌신짝처럼 버려졌으며 이른바 노사 동반자관계에 의한 사회적 합의가 신자유주의로의 노동운동의 포섭과 무력화를 가져왔다는 점 또한 우리가 유념해야 할 노동운동의 역사적 경험이며 교훈이다. 그 어떤 조건과 수준에서 힘의 균형점이 만들어진다고 해도 그것이 일시적인 균형이며 이후 투쟁의 출발점이 된다는 점과 한시도 계급현실로부터 시선을 놓아서는 안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이 시점에서 다시 한번 확인하여야 할 것이다.
3. 맺으며 - 평가투쟁의 조직화, 그 새로운 과제를 향하여
유동적인 정세를 앞에 놓고 평가투쟁의 조직화를 논하는 것이 조금은 앞서나가는 것처럼 비쳐지지만 현재 평가투쟁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두가지 수준에서 의미를 갖는다.
첫째로 경험으로는 도달했지만 의식으로 자리잡고 있지 못한 많은 경험과 사례를 정리하고 이를 주체역량의 강화로 수렴하기 위해서 치밀한 평가사업이 요구된다. 지난 96∼97년 총파업투쟁이 아무런 평가를 조직해내지 못한 채 백서제작으로 이월된 점, 97년 대선활동에 대한 평가가 국민승리21 내에서의 절충적인 평가문 작성으로 마무리되고 민주노총내의 논의로 모아지지 못했던 점 등은 평가사업이 얼마나 지지부진하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확인시켜주는 좋은 예이다.
둘째로 현재의 투쟁이 일과성의 한판 승부가 아니라 경제위기시에 더욱 강화되는 자본의 신자유쥬의적 공세와 이에 대한 저항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한국사회 재구조화를 둘러싼 자본과 노동의 대장정이라는 점에서 전체적인 방향 감각을 유지·강화하고 투쟁 성과의 계승과 확인 및 한계의 극복을 위한 집단적 노력을 기울이기 위해서도 이 작업은 절실히 요구된다.
투쟁과 조직 그리고 의식발전의 변증법적 결합은 평가투쟁에서 관철되어야 할 원칙이자 방법론이다. 향후 투쟁의 성격과 목표, 방향에 대한 총체적인 정리를 근거로 투쟁의 성과를 수렴하기 위한 치열한 모색이 각급 수준의 조직에서 진행될 것이다. 전체적으로 놓고 보면 대중조직의 정치적, 조직적 강화가 그 중심을 이루겠지만 노동운동의 선진층을 새롭게 정비·훈련하기 위한 모색도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경험을 의식으로 전환해 내고 주요 사안에 대한 태도를 정립해나가며 다양한 의견과 활동방식을 모아나가기 위한 노력이 자연발생적으로, 동시에 목적의식적으로 전개될 때 여러 수준에서 전개될 운동지형의 변화는 그 계급적 성격을 더욱 강화하게 될 뿐 아니라 속도도 훨씬 빨라질 것이다.
경제위기의 심화와 장기화 그리고 지구화가 예상되는 현 시점에서 전개되는 투쟁은 한국사회의 성격과 발전방향을 규정하는 그야말로 '정치'적이며 장기적인 투쟁이다. 현재의 경제위기를 노자 동반자관계에 의해 돌파하려는 자본의 의도가 우리의 투쟁에 의해 분쇄되고 경제위기가 지배세력의 정치적 위기로 발전하면서 노동자·민중의 주체형성의 계기로 수렴되어질지 낙관할 수는 없지만 이를 위한 유리한 조건이 만들어지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상황은 한국사회의 재구성을 향한 새로운 정치적 프로젝트를 만들어 가는, 그리고 그 프로젝트가 구체화되는 역사적 시기인 셈이다.(98.6.4)
<미주>
1) 동아일보 4월 6일자 참조.
2) 이 주제와 관련한 최근의 소재로는 "국제노동동향 : 자본과 국가의 신자유주의적 공세와 노동자들의 저항", {노동동향분석} 창간호,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정세분석실 26∼33쪽 참조.
4) {노동동향분석} 창간호 24쪽,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정세분석실
5) 박성인, "'투쟁' '혁신' 그리고 '새로운 주체형성'을 위하여", {현장에서 미래를}1998년 5월호, 36쪽,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6) 현재 정치연대(준)의 경우는 범국민운동본부 활동에 집중하고 있고, 국민승리 21은 지방자치체선거에 집중하고 있다.
7) 공익노련 총파업속보 8호.
8) 경제위기의 극복이라는 이름하에 진행되는 각종의 정책은 사실상 경제위기를 더욱 심화시켜 나가고 있으며, 대중의 삶의 주소는 후퇴에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 "1년만 고생하면 경제위기 끝"이라는 진단은 김대중만 얘기하는 공허한 주장이 된지 이미 오래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분석은 "자본과 정부의 동향 : 외환시장 안정에서 본격적 구조조정 추진으로", {노동동향분석} 창간호,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정세분석실.
9) 이들 언론의 악의적이고 악질적인 반응은 예상을 넘는 투쟁동력에 대한 자본의 신경질적 대응이자 은폐된 공포감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파업비난 여론 드세 지고 참여 열기는 시들'(중앙일보 5. 29), 국민회의에서 불러준 내용을 그대로 옮겨 적었다는 '서툰 협상이 긴장 덧내'(한겨레 6. 1) 등이 그 예이다. 특히 보도와 주장을 구분하지 않은 채 주관적 염원만을 적어 놓은 중앙일보의 기사는 - 그들은 중앙지도부의 분열, 중앙과 하부, 노동운동과 사회단체와의 괴리를 염원하고 있다 - 역으로 우리가 중앙지도부의 단결, 중앙과 하부의 굳건한 결합, 노동운동과 민중운동, 지식인 운동과의 연대강화가 더욱 요구되고 있음을 잘 가르쳐주고 있다.
10) 사실 지난 96∼97 총파업이야말로 이러한 문제의식이 제출되고 그 구체화를 시도할 수 있는 좋은 계기였다. 이러한 협상전술이 제출되고 투쟁동력이 정비되었다면 투쟁은 민주노총이 하면서도 논의의 주도력은 국회로 넘어가는 무기력한 모습은 극복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러한 대정부 직접협상 전술은 - 노사정위원회에 대해 더욱 더 분명한 태도를 갖지 못한 아쉬움이 남지만 - 대단히 파격적이고 의미 있는 협상전술이었다고 판단된다. 이러한 성과가 대중적으로 공유되고 자각되면서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으로 인식되지 못한 점은 이후 투쟁에 큰 부담으로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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