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IMF를 앞세운 신자유주의의 노동자 죽이기



장 임 원

이사장





일터를 빼앗긴 160만의 노동자가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빈털터리로 밀려났다. 살길이 막막하다.

쥐꼬리만한 실업급여마저 그 수혜자는 실업자 100명중 6명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실업자가 기댈 최후의 보루는 복지가 아닌 산업인력의 정책으로 1993년에 도입된 고용보험이 그 전부이다. 그런데 이 보험이 규정하고 있는 실업급여의 대상과 수준 그리고 고용안정과 직업능력개발사업은 명목뿐인 것으로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실업급여의 대상은 고용보험에 가입한 5인 이상 사업장의 상용노동자와 주당 30.8시간의 시간제 노동자로 임시 노동자와 일용 노동자, 태반의 시간제 노동자 그리고 86만여 개의 5인 미만 사업장의 420만 노동자는 몽땅 그 대상이 아니며 73,283개(98년 4월 현재)의 5∼9인 사업장의 고용보험가입율은 50.3%에 불과하다.

그나마 실직하기 전 18개월 동안 1년 이상 보험료를 납부한 경우에만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어 현재 실업자의 6.6%, 그리고 내년에 예상되는 실업자의 경우에도 실업급여 수혜율은 10%를 밑돌 것으로 추정된다.

실업급여의 수준 역시 평균임금의 50%, 60∼120일 분에 지나지 않는다. 앞날이 캄캄하다. 어떻게 살아가나. 이들에게 저축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있다면 빚뿐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남아 있는 사람에게도 IMF는 적신호다.

오늘 7월 2일은 15살난 소년 문송면군이 수은중독으로 죽임을 당한지 꼭 10년이 되는 날이다.

산업재해, 여기에 더 무서운 그림자가 드러워지고 있다.

송면이가 세상을 떠난 1988년 그 해 재해 사망자수는 1,925명, 재해 건수율(종업원 백명당 재해건수)은 2.48, 강도율(연작업시간 천시간당 작업손실일수)은 2.52이었고 1997년에는 각각 2,742명, 0.81, 2.32로 재해건수가 많이 감소하고 작업손실일수가 다소 줄어든 듯 하나 상당한 재해가 정부주도의 무재해추진운동으로 공상 또는 의료보험으로 처리되었음을 감안하여야 한다.

재해로 인한 사망자수는 종업원수 대비로 보아서는 차이가 없고 절대수는 42.4%나 늘어, 노는 날을 빼면 하루에 9명이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고 있고 년간 10번 정도의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있는 셈이다.

IMF경제관리체제하의 지금, 재해 사망자쯤은 아예 관심밖이다.

너나없이 월드컵 축구에, 그리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소떼 방북과 금강산 유람에 들떠있다.

더 큰 문제는 민주노총에서도 한국노총에서도 산업재해 억제를 위한 실천적 노력을 보기 어렵다는 데 있다. 산업재해로 인한 죽음의 몫이 나와는 무관할 것이라는 설마하는 안이함 때문일 게다. 그리고 많은 노동자들조차도 재해는 재수가 없어서, 아니면 개인 부주의로 발생한다는 인식이 알게 모르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일 거다. 나아가 생명경시풍조의 감염이 몸뚱이 하나로 먹고 살아가는 노동자에게까지 만연된 현상의 결과이기도 하다.

재수가 없어서라는 말이 단순히 비과학적 사고의 발로로 나타나는 것만은 아니다. 그 말 속에는 재해가 일어날 조건은 상시적으로 존재한다는, 그리고 그 조건에 대한 개선노력은 이미 체념했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하지만, 산업재해로부터 생명을 지키기는 노동운동은 동시에 인권운동으로 확실히 자리잡아야 한다.

그렇지만 우리의 노동운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생명 지키기 싸움이 인권운동이라는 생각을 갖기에는 유감스럽지만 미흡하기 짝이 없다.



많은 대기업 노동지도자에게 산안활동 직책은 인기도 없고 산안활동에 별로 관심도 없다. 더욱 가슴아픈 일은 재해가 많이 발생하기 마련인 영세 하청사업장 노동자에 대한 대기업 노동자들의 우월감과 무관심을 적지 않게 발견할 때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산업재해로부터 생명 지키기가 인권운동으로 움트고 확산되기는 어렵다. 인권 운운은 입에 바른 역겨운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산업재해에 대한 무관심, 비과학적 사고, 생명경시의 감염증에 대한 대책이 없이는 재해 사망자는 결코 줄지 않는다.

이런 판에 IMF 한파가 잘 지켜지지도 않는 그나마의 산업안전보건을 위한 규제장치마저 완화한다면 산업현장에서 죽임을 당하는 노동자는 하루에 열명도 넘을 것이라는 예측은 그리 어렵지 않다.

노동자 죽이기는 노동자로부터 착취한 과잉축적의 자본 특히 금융자본이 시장 세계화를 노리는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 전략에 의해 확대될 것이다.

배고품도 서러운 판에 죽임을 당해서야 말이 안된다.

언필칭 국민의 정부 김대중 대통령은 여러 기회에 노동자의 경영권 참여를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임을 밝혔다.

그러나 적어도 안전 및 보건관리에 관해서는 반드시 노동자의 주체적 참여가 있어야 하고 그것은 지극히 정당한 것이다.

임금은 노동력의 대가이지 노동력 훼손 또는 생명의 보상이 아니고 노동자의 자산인 노동력과 생명을 지키는 일은 노동자의 천부적 권리이자 의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의 내몸 지키기를 자본의 손에 맡기기를 계속 고집한다면 국민의 정부의 '국민'은 실종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 정당한 요구마저도 노동자의 치열한 자기와의 싸움과 권력과 자본과의 투쟁에서만 관철될 수밖에 없음을 우리 노동자는 명심하여야 한다. 이 점을 우리가 아끼는 민주노총에 특별히 전하고자 한다.

끝으로 우리 연구소는 거리로 내몰린 160만 노동자의 건투를 빌며, 문송면 군 10주기를 맞아 그 영전에 고개숙여 천만 노동자의 건강을 지키는데 작은 힘을 보탤 것을 약속드린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