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본다



노사정위원회의 본질

- 그에 대한 대응과 전략·전술에 대한 반성 -




이 일 재(민주노총 자문위원)


세계화된 자본의 횡포와 노동자들의 대응

전일화된 세계자본주의 경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종주국 미국은 7년간의 호황으로 경제성장률이 계속 3%를 유지하고 있고 고질적이었던 이른바 쌍둥이 적자, 즉 재정적자, 경상수지적자가 정상으로 돌아 왔다. 그러나 금융경기의 팽창은 생산과잉 공항으로 폭발할 위기를 안고 있고, 빈부의 격차는 마이너스 성장기보다 더 벌어지고 있다. 여기에 대응한 미국의 노동조합은 자본의 고용유연화 정책에 대항하여 싸우고 있다. 그리고 존 스위니를 위원장으로 하는 AFL-CIO는 전투적인 조합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통합을 앞둔 구라파는 심각한 실업사태를 맞이하여 프랑스의 조스팽 정부는 법정노동시간을 오는 2000년부터 실질임금 삭감없이 주 35시간으로 단축하여 일거리를 나누어 가짐으로써 고용을 유지하려는 정책을 쓰고 있고, 독일에서는 DGB측이 노사정 사회적 합의기구에 주 25시간 노동을 요구하고 있다. 이렇게 선진자본주의 국가는 21세기를 맞이하여 후기 정보산업주의로의 전환기에 구조조정을 끝냈거나 그 과정에서 오는 심각한 고용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자본주의체제에서 자본과 노동의 관계 즉, 고용관계는 기본적인 틀인데 이것이 파괴되고 있다. 마치 가변자본인 노동의 참여 없이 자본주의가 지탱이라도 할 수 있는 것 같이 그들 정부는 고용의 유연화라는 자본주의 생산관계에서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지지 않는 정책에 사로잡혀 있다.

한편 후발자본주의의 성공사례로 치켜세워지던 아시아적 모델들이 붕괴하고 있다. 그 중심국 일본은 돈놀이 경제의 거품이 빠지자 산업이 공동화되어 1달러에 150엔까지 엔의 가치가 하락하고 있다. 이것은 일본자본주의의 조락(調落)을 상징하고 있다. 1달러:150엔이라는 지수는 전에도 있었지만 단순히 무역결정에서 유래한 것으로는 해석되지 않는다.

아시아적 발전모델의 국가들인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타이, 싱가포르, 대만, 한국 등은 마치 조수처럼 밀렸다가 빠졌다가 하는 세계화된 자본, 특히 헤지 펀드의 밀물과 썰물에 곤두박질 치고 있다.

이러한 세계자본주의의 혼란과 격동 속에서 그들의 정부가 선택한 길은 구조조정과 고용의 유연화정책으로 노동자들에게 그 부담을 전가시키는 것이었다. 고통전담정책은 자본주의 그 자체의 속성으로서 전에도 그래 왔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러한 정책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며 이상하지도 않다. 다만 남는 것은 세계노동자계급이 이 구조조정, 고용의 유연화정책에 어떻게 과감하게 또 슬기롭게 대처하느냐의 문제이다.

구조조정, 고용의 유연화에 대한 한국정부의 대응

한국자본주의는 아시아적 발전노력의 성공사례였다. 그러나 세계화된 금융자본의 탐욕과 솔로스, J.P 모간 같은 자들의 농간으로 몰락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천민자본주의가 여기에 대처할 능력은 없다. 오직 그들에게 맡겨서 살려 주기를 기다리는 길밖에 없다.

국민의 기대를 모아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이룩한 김대중정부는 약간의 자유주의적인 공약마저 버리고 전적으로 몰락하는 천민자본의 편을 들고나섰다. IMF 재협상은 간데 없고 한국경제를 그들의 경제신탁통치에 맡겨버렸다. 세계자본의 이익과 한국천민자본의 편을 들고나서는 이상 김대중정부는 필연적으로 반노동자적 입장에 설 수밖에 없다. 김대중정부는 김영삼정부 때부터 물려받은 고통분담을 외치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정책을 내세우면서 구조조정에서 오는 정리해고, 고용의 유연화로 한국자본의 군살을 빼준다고 하고(한국자본의 재무구조가 군살로 되어 있는데 군살 다 빼버리면 죽어버릴 것이다) 있다. 또한 세계자본이 수월하게 들어올 수 있는 길을 닦아주고, 임금부담을 격감시켜 주고 있다.

그러나 개발독재 때의 박정희처럼 폭력으로 할 수는 없다. 이제는 한국의 제도민주주의가 정착되어 있고 시민사회의 형성으로 그들에게, 강요된 동의라도 얻어야만 정권을 유지할 수 있다. 그리고 더 결정적인 것은 1300만 한국노동자들의 동의를 보수적인 언론기관을 동원하는 방법으로는 얻기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비록 분열되어 있고, 조직율이 12%정도라 하더라도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라는 중앙조직이 존재한다. 이 둘을 강제로라도 끌어들여야만 하는 데 김대중정권의 고민이 있다.

노사정위원회는 한국판 코포라티즘(Corporatism)이다

이러한 사정에 근거하여 김대중정부는 한국판 코포라티즘의 한 형태인 노사정위원회를 추진시켜 사회적합의체를 발족시켰다. 신보수주의의 신봉자, 시장경제의 전격화를 믿는 김대중은 신보수주의의 산모격인 대처의 사생아인데도 노사정합의라는 유연화정책을 쓰는데는 대처를 닮지 않았다. 여기에 김대중정부의 이중성과 한국 노사관계의 복잡성이 있다.

코포라티즘(사회적 합의주의)은 역사상 때와 장소에 따라 각양각색으로 나타났다. 그 전형적인 것은 1950∼60년대 아르젠틴의 페로니즘이라는 변형적인 파시즘체제 하에서 나타난 포퓰리즘(Populism)이다. 여기서 노동조합과 노동단체는 아예 자본가권력기구인 정부라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협의기구에 흡수되어 버렸다. 모든 노동조합과 노동운동단체들은 이 정부라는 협의기구에서 자기의 주장과 권익을 펼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노동조합은 정부의 한 기구로서 움직이기 때문에 조합비 같은 것은 받지 않고 국가에서 노동조합세를 국민에게 부과하여 이것으로 조합을 운영하고 있다. 지금도 아르젠틴은 물론 브라질 등 여러 나라에서 이 포퓰리즘이 남아 있다.

그리고 1960∼80년에 걸쳐서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의 구조조정기에 나타난 노사정3자협의체(Tripartism)도 이 코포라티즘의 한 형태이다. 1960년 후반 독일의 기민당, 사민당 연립정부에서 3자협의체계(KA)는 인플레이션을 노동자들의 임금억제로 저지하려는 자본의 사회협의체이다. 그때 독일의 독일노동조합전국연합(DGB)이 이 3자협의체에 참가하여 일정기간 인플레는 정지되어 경제의 안정은 이루어졌으나 이것은 전적으로 독일노동자들의 고통전담으로 이루어졌다. 그후 독일노동조합전국연합은 기층노동자의 불만이 신임을 물어오게 됨에 따라 독일 노동운동 사상 가장 전투적이며 공격적인 파업을 감행하였다. 그래서 이 3자협의체의 1차적 시도는 독일에서 실패하였으나 그후 독일 사민당 정권 하에서 이 3자협의체는 지속되었다. 여기서 특기할 것은 독일노동조합전국연합이 3자협의체를 통해서 노동조합의 경영참가와 사회보장제도의 법제화에 대해 일정정도 양보를 얻어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은 싸워서 얻는 것보다는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참고로 영국의 예를 보면, 1950∼1960년 초까지 영국의 만성적인 국제수지 적자로 주기적인 국제자본위기에 직면한 정부는, 낙후된 산업을 부흥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국가경제개발위원회(NEKC)라는 3자협의기구를 만들어서 영국노동조합회의(TUC)를 참가시켰으나 정부의 의도대로 성공을 거두지 못 했다. 물론 부담을 노동자들에게 전가시키려는 자본과 정부에 영국노동조합이 반대했기 때문이다. 그후 1974년의 윌슨의 노동당정부 하에서 정부와 영국노동조합전국회의는 사회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이 협약이 존속하는 4년간 노동자의 실질임금은 반으로 떨어져 경제위기의 모든 것을 영국노동자가 감내하게 되어, 1977년 TUC총회는 사회계약의 무효화를 선언하고 1979년 대처가 집권하기까지 총파업국면이 지속되었다. 그후 대처리즘은 신보수주의라는 이름으로 아예 협의를 폐기해 버리고 노동자와 정면으로 대결하는 국면이 되었다. 지금의 노동당 정부는 적어도 노동정책에 있어서는 대처의 신보수주의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으며 3자협의기구 같은 것은 시도하지 않고 있다.

사회적 합의주의의 아주 독특한 길을 걸어 온 곳은 일본이다. 전후 일본은 국가기관에 노동자 대표를 파견하고 있었다. 물론 사용자 대표도 참가하고 있었다. 1972년의 조사에 따르면 각 성(부)에 설치된 심의회(審議會)의 수는 236개이고 총평(일본노동조합총평의회)의 대표가 참가하고 있는 중앙의 심의회가 37개 기관, 위원수는 연 77명이나 되었다. 이것의 형태는 3자협의체보다 남미의 민중주의에 가깝다. 그리고 총평을 중심으로 하는 노동조합측의 대응은 자못 자주적이고 노사대등주의를 견지하고 있었다. 총평측의 대표들이 견지한 기본입장은 좀 길긴 하지만 인용을 해보고자 한다. 그 이유는 앞으로 한국의 노동자대표가 노사정위원회에 참가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에서 노동조합과 그 대표들에게 참고가 될 것 같기 때문이다. 그것은

"노동자대표가 국가기관인 중앙, 지방의 심의회 등에 참가하는 것은 단순히 노동자, 근로국민의 요구, 의견을 진술하기 위함이 아니다. 노동자대표가 수행하지 않으면 안될 첫번째 임무는 정부의 정책, 정부, 자본가 및 그 대표자로 구성되어 있는 공익위원들의 주장의 오류, 모순을 철저하게 추궁하고 노동자, 근로국민이 고통받고 있는 실정을 밝히고, 절실한 요구, 의견을 부각시킬 것, 그리고 요구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을 명시해서 두번째로, 정부정책, 자본가, 공익위원의 주장과 의도하는 바에 대항하여 대중투쟁을 조직하는데 협력하는 일이다.

노동조합은 국가기관에 대표자를 보낼 때 관례를 따르든가 형식적으로 대표를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근로국민의 대표에 상응한 유능한 인재를 선출하여야 하고 선출한 조직이 책임을 져야 한다. 정부의 자료제출을 십분 활용해서 자료를 사물화하지 말고 대중선전과 대중투쟁의 조직에 사용해야할 것이다. 제도적 문구가 국회, 심의회 등의 흥정과 주고받는 의견서나 답변서에서 실현될 것 같은 환상을 안겨 주어 대중투쟁의 고양을 억제하려는 정부, 자본가의 공격은 교묘해졌다. 중앙, 지방의 국가기관에 참가하고 있는 노동자대표는 상당한 수에 이르므로 심의회의 위상설정과 임무를 명확하게 하고 이 싸움을 전진시키는 의의는 대단히 크다."

위에서 예시한 바대로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의 노사정 3자의 사회적 합의기구가 성공한 사례는 없다.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될 것은 대체로 각국 정부가 경제적인 어려움과 위기에 처했을 때 상기한 사회적 협의기구를 발동하여 노동자를 끌어넣은 뒤, 그것을 사회적 합의라는 명분으로 이용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처음부터 이 사회적 합의기구는 그 나라 정부가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었고, 노동조합과 노동단체들은 강요된 이 사회적 합의기구로 인해 극심한 피해와 곤란이 닥쳐왔을 때 총파업 등의 투쟁으로 전환했다는 사실이다.

1기 노사정위원회의 발족과 노동조합의 대응

완전히 파탄지경에 이른 경제를 이어 받은 김대중정부는 선거기간 중에 IMF 재협상의 카드를 버리고 IMF 구제금융에 의지하게 되었다. 그래서 IMF 구제금융자본의 구조조정, 고용의 유연화 등의 요구를 충실히 실행하기 시작했다. 또한 구조조정에서 오는 대량실업과 정규직 노동자의 비정규직 노동자로의 대량전환을 위해서 정리해고제, 근로자파견제를 법제화하려 했다. 이것은 국내자본의 요구이기도 하지만 구조조정에 의해서 파괴된 한국경제를 침탈하려는 외국자본의 강요였다.

정부가 노사정위원회를 발족하자 한국노총은 그 어용성을 십분 발휘하여 산하 조합원으로부터 불신을 당하지 않을 정도의 거부감을 나타냈다가 참가를 결정했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대의원대회를 통해 노사정위원회에 참여는 하되, 정리해고제, 근로자파견제는 끝내 반대하기로 결의하였으나 직무대행기구에 있던 교섭단은 어이없게도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의 비준도 없이 조인해버렸다. 곧 대의원대회에서는 직무대행기구를 불신임하고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들어갔으나 비대위마져 대의원대회에서 결의한 정리해고제, 근로자파견제 반대를 위한 총파업을 무위로 돌려버렸다.

상기한 1기 노사정위의 구성으로 한국 노동자들은 노사정위라는 3자합의기구를 통한 사회협약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알게 되었다. 대중은 항상 이론이 아니라 경험으로써 공부하고 교훈을 찾는 것인가 보다!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에 참가하는 것을 반대한 학자들은 극히 소수였다. 대다수의 이론가를 자처하는 학자들이 신문 논설, 강연에서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에 참가한 것은 한국 노동자들의 세력이 성장했음을 의미하고, 노사정위를 통해 한국 노동자는 국가 정책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찬사를 보냈었다. 그들은 200만의 실업자가 생겼고 앞으로 국제자본의 적대적 M&A에 의해서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거리로 내몰릴지 모르는 상황에서 정리해고제, 근로자파견제를 사회적 합의라는 허울 좋은 노사정위의 참가와 합의로 줄 것은 주고받을 것은 받았다는 말로 자위하고 있다.

1인당 GNP가 30,000달러,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가에서 걱정해 주고, 실업을 당해도 임금의 70%를 받을 수 있는 나라 스웨덴을 보자. 이런 복지사회가 스웨덴 노사정협의체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조직률이 84%인 스웨덴노동조합연맹(LO) 등 강력한 노동조합과 노동자정당이라고 자칭하는 사회민주당의 힘의 배경없이 복지사회가 이루어질 수는 없는 것이다(지금 스웨덴 사회민주당은 집권당이기도 하지만 자본주의의 틀을 넘어 설 수는 없는 것이다).

독일의 예를 보자. 며칠전 신문에 독일의 노사정협의체에 DGB가 주 25시간 법정노동시간제를 제안했다는 기사가 실렸었다. 독일의 노동조합은 노사정협의체를 통해 경영에 참가하고 있고 국가 정책에 노동자가 참가하고 있다.

이제 제3세계의 나라 남아공의 예를 들어 보자. 산업의 90%가 백인의 소유이고 국민의 대다수가 절대빈곤에 허덕이고 있고, 범국민적인 실업상태에 있는 남아공은 그래도 희망의 나라다. 수백년 내려 온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정책)의 종식, 빈곤과 문맹의 퇴치, 민주주의의 미래를 향해가고 있다는 사실은 자타가 공인하고 있다. 그런 것들이 집권당인 남아프리카민족회의(ANC), 남아프리카공산당(SACP), 남아프리카노동조합회의(COSATU)의 삼각동맹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으며 정부·사용자 중심의 노사정협의체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한국의 총자본과 노동진영의 역관계는 전적으로 자본의 편을 드는 정부와 건전하지 못한 천민자본의 절대 우세라는 국면에서, 1300만 노동자 중 조직노동자가 겨우 12%밖에 안되는 조직률을 가진 노동조합이 그것도 민주노총과 항상 집권당의 편에 서 있는 한국노총으로 양분되어 있다. 그뿐인가? 총파업 등 총력투쟁으로 얻은 성과를 발전시킬 정치세력이 전무한 상태에서 어찌 노사정협의체를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단 말인가! 1996년 노개위 때도 그랬지만, 1946년 9.23 총파업 후 노개위라는 노사정협의체에 참가하였을 때도 의회에서, 정부 집권당의 심의과정에서 쥐꼬리만한 성과도 건져 내지 못했다.

2기 노사정위원회에서 민주노총의 대응

민주노총은 1기 노사정위에서 민주노총 창립이래 가장 큰,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다. 정리해고제, 근로자파견제를 노사정위에서 합의해 버린 것이다. 노사정위에 참가하여 정리해고제, 근로자파견제에 조인한 것은 물론 잠정적인 합의안에 대한 조인이었다. 그 합의안은 반드시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의 인준을 받아야만 효력이 발생하는 것이다. 정부와 외국과의 조약 절차와 같은 것이라 하더라도 잠정합의안 조인 자체는 악명높은 노동조합의 단체협약체결의 직권조인과 같은 것이어서 민주노총의 직대체제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그 뒤 비대위의 총파업 철회로 민주노총은 혼란에 빠졌으나 제2기 민주노총 지도부가 선출되어 노사정위원회에 대응하게 되었다. 5월 14일 제9차 중앙위원회와 5월 20일 대의원대회를 통해 5월 27∼28일 1차 파업과 6월 10일의 2차 총파업을 결의하였다. 노사정위원회의 참가는 정리해고제, 근로자파견제의 문제점에 대한 제도적·행정적 보완 방안을 노사정위원회에서 논의한다는 안이 거부당하자 참가도 불참도 아닌 엉거주춤한 공적 태도를 취하고, 뒤에서 물밑접촉을 감행하면서 5월 27∼28일 파업을 감행했다. 파업은 참가인원 22만, 집회참여인원 11만으로 성공적으로 수행됐고 협상력의 담보가 되는 6월 10일의 파업준비를 해갔다. 그러나 민주노총 내의 협상지향파와 투쟁지향파간의 의견 불일치, 민주노총 지도부로 지도·집행력을 집중하는 데에 대한 각 산별·업종연맹의 소극적 태도, 파업준비 작업의 불철저한 집행, 2기 민주노총지도부의 준비를 위한 시간적 부족과 경험부족으로 5월 20일 대의원대회의 결의사항을 다시 번복하게 되었다. 6월 3일 ① 정부측 협상단을 수용할 수 없다. ② 노사정위원회에 참석할 수 없다. ③ 6월 10일 총파업투쟁을 조직한다. ④ 이후 투쟁에 대해서 위원장에게 전권을 위임한다는 결의를 하고, 노사정위 국면에 대해서 옳은 결정을 내려놓고도 사태는 급전환하였다. 6월 5일, 정부와의 협상안에서 문제의 핵심인 근로자파견제에 대한 재논의는 고사하고 제도적·행정적 고려마저 못 하도록 된 상태에서 참가를 결정해 버렸다. 민주노총 집행부는 6월 5일 임원회의, 중앙집행위원회 산별연맹대표자 연석회의를 열어 정부안을 수용하고, 총파업을 감행해야 할 6월 10일 대의원대회를 소집하여 협상에 참여하고 총파업을 폐기해 버렸다. 1300만 현장노동자들은 정신을 잃고 어리둥절해졌다.

노사정위 국면의 정리와 교훈이 왜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첫째는 '사회적 합의주의'에 대한 불철저한 인식이다. 충분치는 못하나 대체로 그 본질이 해명되었으므로 재론하지 않겠다. 둘째는 총자본과 노동 양진영의 힘이 절대적인 불균형 상태에 있었다. 낮은 노동조합 조직률과 민주노총, 한국노총의 양분 등으로 1300만 노동자의 사활을 건 싸움의 장인 노사정위에 통일된 대응을 하지 못 하였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통합은 쉽게 이룩할 수 없는 전략적인 과제이다. 그러나 통합이 되는 과정으로서라도 노사정위에 공동전선을 펴서 싸우고 정부·자본과의 협상에 대처해야 했다. 한국노총은 어용이라고! 100만의 노동자가 어용노조의 산하에 있어서 민주노총이 득 볼 게 무엇인가? 민주노총이 이번 노사정위에 대응한 과정은 그 계급적 입장과 대중노선의 견지와 전투성에 있어서 한국노총과는 오십보 백보로다.

셋째는 투쟁과 협상과의 관계 설정이 명확하지 않았다.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투쟁과 협상은 동전의 양면이다" "투쟁만 있고 협상은 없는 지도부다" "투쟁이 뒷받침되지 않는 협상은 무의미하다" 등등 투쟁과 협상에 대해서 토론이 전개되었다. 그러나 이런 옳은 입장들도 IMF의 구제금융, 정리해고제, 노사정위원회라는 국면이 세계적인 자본의 공세로서 한국 노동자들에게 가한 총체적인 공세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이 국면에서 한국 노동자는 방어적이고, 수세적인 입장에 서 있는 IMF의 자본침탈에 맞서 한국경제를 지켜야 하고, 고용의 유연화정책에 반대하여 노동자들의 생활과 생존을 지켜야 한다. 이 본질을 왜곡하고 한국경제와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팔아 넘기려는 세계자본의 하수인 김대중정권의 노사정위원회를 깨야 한다. 전략적으로는 방어, 수세적인 국면이고 전술적으로는 적의 공격을 받아 넘겨야 하는 공세인 국면이다. 그래서 '수세적 공세의 국면'으로 파악하여 협상과 투쟁의 전술을 구사하여야만 했다. 한국 경제위기의 첫 사태는 기아부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때 기아노동조합이 대응한 전술은, 전략적으로는 수세이지만 전술적으로는 공세기라는 국면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기아기업 살리기에 나서 돈을 거두고, 군살을 뺀다며 비정규직 노동자를 5000명이나 해고시키고 우리사주조합을 통해서 경영에 참가하려고 했다. 그리고 학자들은 국민주를 공모하여 국민기업을 만들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물론 노동조합은 경영에 참가해야 하고 국민주를 모아서 국민기업같은 것도 모색해야만 한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노동자는 자기의 생활과 생존에 위협을 받을만큼 심각한 위기에 처하고 있다. 세계자본과 한국 재벌, 정부는 노동자 죽이기에 맹공을 퍼붓고 있다. 지금은 고용안정, 특히 고용의 유연화정책 반대, 임금저하 반대, 노동시간을 줄여서 일거리를 나누어 가질 전술을 위해 슬기롭고 과감한 공세를 취해야 할 때다. 이것이 수세적인 공세인 것이다. 지금의 기아사태를 보면, 기업은 세계자동차자본 GM, 포드의 도마위에 놓여 있고 노동자들은 정리해고의 대상으로 변하고 있다. 전술적으로 수세적인 공세를 취하지 않았던 예는 민주노총의 6월 10일 파업연기에서 총체적이고, 단적으로 나타났고 그 피해와 후유증은 막심하다.

넷째로 노동조합의 민주적인 중앙집권제를 저버려서는 안된다. 민주성만 강조하다가는 힘없는 조합으로 떨어지고 중앙집중성만 강조하다가는 동맥경화증과 관료화가 생긴다. 대의원대회에서 결의한 파업과 노사정위의 전술적인 참가를 중앙집행위원회 또는 산별·업종연맹대표회의에서 폐기했다는 사실은 민주적인 여러 절차와 중앙집중화의 형식적인 틀을 완전히 무시한 결정이었다. 대의원대회의 결의를 집행하고 협의하는 단위인 상집회의와 업종·산별대표자회의에서 대의원대회의 결정을 폐기한다니 민주노총의 이름으로 부끄럽게 생각하자. 좋은 내용에는 그것을 담을 좋은 형식이 있어야 한다. 그 형식을 깨뜨리면 그 내용도 쏟아져 없어진다. 절차적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알아야 한다.

다섯째, 내부의 대립과 분열을 안고 싸우면 백전백패다. 평소 조합의 모든 기관에서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고, 그럼으로써 획일적인 결정에서 오는 결정적인 피해를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일단 다수결의 원칙에서 소수는 다수에 따라야 한다. 자기가 소속한 지역, 산별, 이념적인 정파의 주장을 기탄없이 제시하고 토론하고 설득하는 작업은 있어야 하나, 일단 결정된 뒤에는 반대, 찬성의 입장에 서서는 안된다. 인맥을 중심으로 한 파벌들이 노사정위국면에서 끼친 피해는 청산되어야 한다. 특히, 과오를 범한 동지들은 행동을 통한 자기 비판이 있어야 하고, 노동조합의 집행부는 그들에게 자기비판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

여섯째 협상과정에서 권력층과의 접촉이 생긴다. 그 과정에서 성실함과 겸허함을 저들에게 보여야겠지만 자기 조직의 협상대표로서의 분수와 책임감을 항상 잊어서는 안된다. 만약 노동자들의 지도자로서 절제와 긍지를 잃어버리면 그는 노동조합의 브로커로 전락해 버린다. 노동자대중은 바보가 아니다. 곧 그를 불신임 할 것이다.

일곱째, 승기를 잡아야하고 그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 그러나 후퇴시 질서정연하게 엄호해가면서 퇴각하지 않으면 궤멸을 면할 수 없다. 1기 노사정위원회 때 정리해고, 근로자파견법 합의 조인후의 민주노총의 혼란, 당황은 이후 슬기롭게 극복되고 조직이 재정비되었으나 그럴 때 올바른 퇴각전술이 구사되어야 한다.

맺음말

따라서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는 협조적 노조주의가 아마도 노동자와 노동조직의 피해를 줄일 수 있는 현실적인 전략일 것이다. 노사정위의 협상이 궁극적으로 결렬되거나 아니면 국가와 자본이 합의된 사안을 지키지 않더라도 노동은 강력한 전투적 투쟁을 강행할 보다 강력한 명분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앞 문장이 노사정위의 참여를 강요하는 위협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뒷 문장은 노사정위의 합의를 자본과 정부는 깨뜨리더라도 참고 견디라는 노사정위의 들러리 서기와 일방적 굴복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었기를 바란다. 파업의 명분은 노사정위를 거치지 않더라도 넘치고 있다. 왜 그렇게 노동자들의 고통을 이해 못하는가? 노동자들은 협상에 겸허하고 성실하게 임해왔다. 그러나 노사정위의 협상으로서는 민주노총 5대요구인 1. 정리해고, 근로자파견제 철폐 및 부당노동행위 근절, 2. 고용안정과 생존권 보장, 3. 고용, 실업자 대책을 위한 제도적 장치마련, 4. 정경유착 근절과 재벌해체, 노동3권 보장, 노동자 경영참가, 5. IMF재협상의 요구가 궁극적으로 해결되리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