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연대 성명서






다시 한번 투쟁의 결의를 모아냅시다

6월 10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 드리는 글



1998년 6월 10일

노동자 민중의 정치세력화 진전을 위한 연대(준)





우리는 1기 노사정위원회의 악몽 속에 100여일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새로운 싸움을 준비할 수 있었다.

지난 2월, 민주노총 대의원대회는 제1기 노사정위원회 잠정합의안을 부결시켰다. 대의원들의 요구는 너무도 정당하고 떳떳했다. 정리해고와 파견제 도입 저지를 결의하였고, 나아가 올해 산업별 협약과 단협에서 고용안정 쟁취를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였다. 그렇지만 잠정합의안 부결 이후 비상대책위원회의 총파업 철회 등 지도부의 혼선과 지도력의 공백 상태는 대의원과 민주노총 조합원 및 전체 민중의 가슴에 커다란 불신과 패배감을 안겨 주었다. 그러나 살아 숨쉬는 민주노총 조합원의 의지는 '혁신과 투쟁'의 기치를 내건 제2기 민주노총 지도부를 세워내면서 새로운 투쟁을 준비하였다.

제2기 민주노총은 임단투 동력과 기조가 사업장과 연맹 중심으로 진행되는 상황에서 이를 어떻게 전국적이고 집중적인 투쟁으로 발전시킬 것인가를 고민하였고, 마침내 4월 16일 중앙위원회를 통해 총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 방침을 결정하였다. 4월 18일에는 '부당노동행위 척결, 고용안정, 민중생존권 사수 결의대회'를 지역 동시다발로 전개하면서 제2기 지도부 출범 이후 최초의 대중투쟁을 벌여냈다. 이렇게 형성된 고용안정 쟁취와 민중생존권 사수를 위한 노동자의 투쟁의지는 지난 노동절 투쟁에서 힘있게 확인되었다. 노동자의 투쟁열기는 결코 수그러져 있지 않았다.

이 투쟁에 힘입어 5월 14일 중앙위원회와 5월 20일 대의원대회를 거치면서 민주노총은 전체 투쟁의 목표와 상, 기조와 일정을 정리하였다. 그 주된 내용은 5대 요구안의 정식화와 대정부 직접협상 요구, 모든 투쟁을 민주노총의 이름으로 할 것, 5월 27∼28일의 1차 총파업과 6월 10일의 2차 총파업 결행이었다. 이를 준비하면서 5월 16일, 23일 투쟁을 배치하였고, 27∼28일 양일간 벌인 총파업투쟁에서는 연인원 23만 총파업투쟁 참가, 12만여명의 가두집회 참가라는 고조된 투쟁 열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민주노총은 이 투쟁에 힘입어 대정부 직접협상까지 강제하였다. 자본과 정권은 다급해졌고 강온 양립구도 속에서 분출하는 노동자의 투쟁의지를 꺾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민주노총 지도부는 여기서 더 치고 나가지 못했다. 6월 5일 민주노총 중앙위원회는 6월 10일 총파업 강행, 노사정 불참 방침을 철회하는 결정을 내렸다. 대정부 직접협상에서 '굴복'하고 만 것이다. 2월 대의원대회의 총파업 결의를 무산시킨 비대위에 대한 원망과 원성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노동절 투쟁 이후 고양되어 온 투쟁의 결과를 채 맛보기도 전에, 6월 총파업투쟁 철회와 노사정 참여라는 결정을 하고 만 것이다. 정부와 자본측의 전략과 방책을 폭로하고 분쇄해 나가는 결연한 지도부의 모습을 만날 수 없게 되었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전체 56만 조합원 앞에 책임을 져야 한다

제2기 임원진과 산별·연맹대표자 그리고 중앙위원 전체는 터무니없는 정부안 수용에 대한 명백한 책임을 져야 한다. 6월 5일 정부가 다시 제출했다는 협상안은 몇가지 현안을 덧붙여 구색을 맞춘 것 말고는, 1기 노사정위원회에서 합의된 것에서 벗어나지 않았던 6월 3일까지의 그것과 하등 다른 것이 없었다. 정부와 자본측은 정리해고제, 근로파견제 철폐를 포함한 민주노총의 5대 요구안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6월 3일까지도 6월 10일 2차 총파업투쟁 강행 입장을 천명했던 지도부가 불과 이틀만에 철회 결정을 내린 이유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11차 중앙위원회에서 총파업 철회에 대해 한마디의 반대토론도 없이 결정되었다는 것은 지금 민주노총 지도부 전체가 직면해 있는 문제와 맞물려 있다는 점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상반기 총파업투쟁 과정에서 민주노총 내부적으로는 여러 차이와 입장이 복잡하게 교차되었다.

첫째, 98년 상반기투쟁 목표에 대한 민주노총 전체 지도부(임원진, 산별연맹대표자)의 입장의 불일치, 둘째, 민주노총이 제출한 5대 요구안, 특히 정리해고제와 파견근로제에 대한 입장의 차이, 셋째, 교섭과 투쟁의 병행 전술에 대한 입장의 차이, 넷째, 투쟁 일정 배치의 집중, 특히 5월 27∼28일 제 1차 총파업투쟁의 위상에 대한 입장 차이, 다섯째, 노사정위원회에 대한 인식의 차이 등이 5월 투쟁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민주노총 내부의 차이를 효과적으로 조율하여 정부와 자본에 대항하는 성공적인 총파업투쟁으로 이끌지 못하고 정부안 수용, 총파업 철회 방침을 내린 것에 대해서 민주노총 지도부는 그 책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 책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정부안 수용'과 '총파업 철회' 결정으로 인해, 첫째, 정리해고와 외자유치를 통해 경제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김대중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노동정책에 대한 명백한 전선을 형성하지 못하게 되었다. 둘째, 2월 노사정 잠정합의 이후 어렵게 복구되어 온 전국적인 투쟁전선이 와해됨으로써, 단위현장은 다시 총자본의 집중적인 공세에 직면하게 되었다. 셋째, 투쟁을 통해 고용안정과 생존권을 쟁취하고 민주노총을 밑으로부터 혁신해 나가려던 조합원 전체의 대중적 열망이 좌절될 상황에 처했다. 넷째, 민주노총의 총파업투쟁을 중심으로 구축되어 가던 도시빈민, 학생, 실업자 등의 민중연대투쟁 전개에 찬물을 끼얹었다.

지도부의 '제2기 노사정위원회' 참여 결정은 잘못된 결정이다

제2기 지도부의 노사정위원회 참여 결정은 노사정위원회의 본질과 기능에 대한 지도부의 불철저한 인식을 반영한, 잘못된 결정이다. 2기 노사정위원회는 김대중의 방미 이후 본격화할 구조조정에 따른 대량의 해고와 그에 따른 현장 노동자의 저항을 위로부터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기구일 뿐이다. 제1기 노사정위원회에서 정리해고제 입법화 관철에서 보여지듯이 당면 정리해고에 따른 노동자 대중의 저항을 흡수하기만 하면 용도폐기될 것이고, 정부와 자본측은 그러한 목표를 최우선하여 관철시켜 나갈 것이다. 물론 정부와 자본측은 그 목표를 현실화하기 위해 노동시간 단축이나 연맹별 중앙교섭 수용 등 일정한 조치를 취할 것이다.

이와 같은 2기 노사정위원회 구상의 전체적인 구도는 노동자들의 조직적인 저항을 최소화함으로써 김대중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위기 극복책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것에 있다. 조직노동자 요구의 일부와 민주노총 상층(연맹)의 요구를 부분적으로 보장함으로써 이를 미조직노동자, 실업자, 나아가 민중 전체의 이해와 분리시켜,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계급의 선진적인 부분이 우리사회의 대안적인 사회세력, 정치세력으로 발전하는 것을 차단해 내는 것이 바로 2기 노사정위원회의 정치적인 목표인 것이다.

따라서 민주노총이 제2기 노사정위원회에 참가하게 되면, '투쟁력에 기초한 교섭' 혹은 '투쟁과 교섭의 동시 병행'이라는 원칙은 훼손될 수밖에 없다. 노사정위원회에 안들어가서 버티는 것도 만만치는 않으나 노사정위원회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 당면 노동자의 생존권과 권리 요구를 위한 투쟁의 전개는 더욱 어렵게 될 것이다. 따라서 '노사정 참여' 결정은 부결되어야 한다.

살아있는 투쟁동력을 이끌어 지금부터 하반기 투쟁을 준비해야 한다

총파업 철회는 그 자체로는 '굴복'이지만 그것은 민주노총 지도부의 굴복이지, 민주노총 전체 조합원의 굴복은 아니다. 정세적 측면에 있어서도 지자체 선거의 전반적 승리와 총파업 철회를 끌어 낸 김대중정권이 힘의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 민중진영이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는 정세는 아니다. 6월 총파업투쟁 철회로 한 풀 꺾이기는 했으나 아래로부터의 대중적 투쟁동력이 소멸된 것은 결코 아니다. 광범한 대중들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우려했던 지난 5월 27∼28일의 총파업투쟁을 통해서 우리는 이를 충분히 확인하였으며, 오히려 앞으로 더욱 강도 높게 추진될 구조조정에 따른 정리해고의 위협에 압박당하게 될 노동자의 조건과 이에 따른 분노는 새로운 투쟁조건이 형성될 수 있다면 더욱 큰 힘으로 조직될 것이다.

하반기 김대중정부는 정계개편을 통해 국회내에서 안정적인 다수를 확보하고, 지배세력 내부의 주도권을 다진 다음, '개혁'이라는 명분을 들어 대대적인 자본합리화 공세를 가해 올 것이다. 이에 따라 대량 정리해고 등 조직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임금체불 등 부당노동행위와 실효성 없는 실업정책에 더 이상 기댈 곳 없는 미조직 노동자들과 실업자의 생활상의 고통은 더욱 가중되고, 이는 이 사회 전체에 대한 분노로 발전해 나갈 것이다. 주어진 상황만으로 본다면 노동자 민중의 투쟁은 불가피한 것이다.

이러한 정세 하에서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계급의 선진부분은 어디에 서야 하는가? 노사정위원회에서 자신의 부분적인 요구를 얻는데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전체 노동자와 민중의 생존권과 민주기본권 쟁취 투쟁에 앞장서서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저항하는 새로운 사회·정치세력으로 발전해 나갈 것인가의 기로에 서 있다.

하반기 투쟁은 바로 지금 시작되어야 한다. 오늘 대의원대회에서 '노사정위원회 참여'를 대중적으로 부결하고 하반기 투쟁 방향에 대해 결의를 모아내는 것은 하반기 투쟁의 출발이다. 이러한 결정과 결의는 민주노총의 지도력을 훼손시키거나 민주노총 내부의 분열을 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을 바로 잡고 그 지도력을 더욱 강화시키는 것이다.

또한 총파업투쟁 계획을 확정해 가는 과정에서, 민주노총 내부에서 6월 이후 투쟁의 목표와 성격, 요구, 투쟁일정 등에 대한 토론을 활성화해야 한다. 내부의 입장 차이를 투명하게 드러내고, 모든 조합원의 광범위한 토론을 조직하는 가운데 그 차이를 좁혀내야 한다. 모든 과정은 철저하고 투명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당면 투쟁의 정점에 있는 서울지하철노조, 기아자동차노조 등의 싸움에 즉각 결합해 들어가야 한다. 이 투쟁의 불꽃을 하반기 투쟁의 동력으로 살려 나가야 한다. 단위사업장 역시 자신의 투쟁을 단사 현안에 한정하지 말고 전체투쟁의 일부로 자신들의 투쟁을 배치해 나가야 한다.

오늘 우리의 투쟁이 내일 우리의 삶을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