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자본을 해체하는 구정조정이 필요할 때
김 영 규
이사
남한사회에서는 지금 자유시장경제논리를 본격적으로 앞세운 구조조정(restructuring)으로부터 누구나 자유로울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이 구조조정은 이미 90년대 벽두 시작된 공황으로 인해 남한자본의 생존전략인 이른바 국제화, 세계화란 명분으로 시작된 것이었다. 다시 말해 신자유주의적 세계질서로의 남한자본주의의 통합이 바로 세계화를 앞세운 구조조정이다. 이 새로운 세계질서는 어느 국민경제나, 다국적·초국적 자본에 의해 산업·금융자본의 재편에서부터 권력, 정치, 정부, 언론, 대학, 예술·문화 등 사회 모든 부문의 재편이란 가히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이 혁명적인 변화가 남한사회에서 본격적으로 가동하게 된 계기는 바로 지난해 IMF 구제금융과 그 경제프로그램이다. 제국주의자본의 '문지기'인 IMF는 바로 구제자금을 지원하는 조건으로 국내경제의 구조조정을 요구한 데에서 남한사회의 구조조정은 '강제력'이라는 날개를 달게 된 것이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국민들은 자본과 권력의 음모로 '소리없이' 진행되어 온 구조조정에 대해 그 진면목이나 전체상을 좀처럼 의식하기가 어려웠다. 아니 정확히 말해, 대다수 국민들은 구조조정을 하나의 '당위론'으로까지는 간주하지 않았으며, 그냥 경제가 주기적으로 어려울 때 하는 경기적 조정이나 OECD로 가는 과정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다. 이는 가까운 일본에서 92년이래 공황의 깊은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과 지난해 봄 태국과 인도네시아가 통화위기, 금융위기를 겪고 있던 것을 우리는 순전히 남의 일로만 치부하고 있었던 사실과 궤를 같이한다.
20세기말 남한사회의 구조조정은 그런 경기적 조정이 아니라 이름 그대로 사회의 구조를 종래와는 달리 완전히 뜯어고치는 대작업이다. 그래서 50년전 남한국가를 수립한 이래 처음 시도되는 혁명적 작업이라 하여 보수언론들은 '제2의 건국'으로 까지 비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남한사회는 무엇이 잘못되었길래 완전히 뜯어고치지 않고는 안되는가?
구조조정 과정
우리는 먼저 한국정부와 IMF가 맺은 경제프로그램(IMF Stand-By Arrangement, Summary of the Economic Program, December 5, 1997)의 내용부터 들여다보자. 이 경제프로그램은 지난해 12월 5일 IMF 상무이사회의 최종 승인이 난 이래 지난 5월 17일까지 4차례 수정되었지만 그 기본 골격은 아래의 총 7개 분야의 구조조정사안으로 짜여져 있다. 거시구조조정으로는 거시경제목표의 수정과 함께 통화신용정책의 조정과 재정정책의 수정 등 3개 사안, 미시구조조정으로는 금융부문, 기업 및 노동시장에 대한 구조조정 등 3개 사안, 그리고 대외거래와 관련된 구조조정은 무역·자본자유화이다. 이를 달리 분류하면 국내 개혁과 대외개방, 간단히 말해 '개혁'과 '개방'이 남한구조조정의 기본 테제이다.
우선 먼저 금융기관은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8% 이상 유지를 요구하는 재무구조의 건전성을 기준으로 구조조정이 단행되었다. 이에 따라 금융부문에서는 지난 5월까지 부실 종합금융회사, 투자신탁회사 등이 폐쇄 조치되었으며, 지난 6월에는 대동, 동남, 동화, 경기, 충청 등 5개 은행이 퇴출되었다. 그리고 경영개선조치를 받은 은행들은 외환은행처럼 외국은행과의 합병,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처럼 국내은행끼리의 합병을 시도하고 있다. 지난번 구제조치를 받은 제일은행과 서울은행은 금년말쯤에는 외국자본에 매각될 예정이다. 생명보험회사들도 4∼5개 정도 8월말쯤에는 퇴출될 예정에 있다.
금융기관도 퇴출되는 사상 유례없는 구조조정 열풍에 기업도 예외가 될 수 없다. 특히 재벌그룹들에게는 상호지급보증금지, 결합재무재표 작성 의무화, 부채비율 축소와 자기자본확충 등 재무구조의 개선, 기업경영의 투명성 제고 등을 주요 구조조정기준으로 제시되었다. 이에 따라 현대, 삼성, 대우, LG, SK 등 5대 재벌의 20개 기업을 포함하여 총 55개 기업이 1차로 퇴출되는 정리대상기업이 되었다.
공기업도 대폭 정리될 예정이다. 지난 7월까지 발표된 1, 2차 공기업 민영화 계획에 따르면 24개 모회사 가운데 11개 모기업이 처분되고 41개 자회사가 매각·통폐합될 예정이다. 또한 한국통신, 한국전력 등 12개 공기업의 28개 주요사업들이 민간에 위탁될 예정이다.
구조조정의 본질
이른바 IMF개혁의 골자는 한마디로 민간·공기업과 금융기관의 구조조정, 즉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재편에 있다. 지금까지 이윤은 고사하고 적자만 내며 부채만 짊어진 산업자본과 부실경영으로 부실채권만 잔뜩 쌓아올린 금융자본들이 남한경제로부터 그야말로 퇴출되는 것이다. 이런 자본의 퇴출은 불가피하게 그런 자본들이 고용한 노동의 퇴출을 동반하게 마련이다. 이것이 자본조정에 비유되는 고용조정, 그리고 시장경제원리를 인용하여 노동시장의 유연성이란 말로 표현되는 것이다. 그러나 자본조정이란 있는 자가 있는 돈을 잃는 것에 불과한 것이라면, 고용조정이란 없는 자가 돈을 버는 기회까지도 잃는 참담한 구조조정인 것이다. 자본조정이 원래 아무런 가치도 생산하지 않는 생산수단이 없어지는 것이라면, 고용조정은 새로이 가치를 창출하는 노동이 없어져 경제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구조조정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자본과 노동의 구조조정이 선진국에서 보는 것처럼 자본주의 일반에 너무나 당연한 현상이기 때문에, 또는 남한이 선진경제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마땅히 거쳐야 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국민들은 누구나 정리해고(고용조정)를 당해도 당연한 것으로 수용해야 된다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 국가를 사랑한다면 누구나 동참하거나 인내해야한다는 민족·국가 이데올로기가 팽배해 있다는 데 있다. 그리고 노동자·민중 사이에는 자본과 노동은 물론 정부도 다같이 구조조정을 겪는 같은 처지인 만큼 노사정위원회에서 머리를 맞대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노사협조주의와 사회적 합의는 불가피하다는 개량이데올로기가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이와 궤를 같이하여 언론의 애국을 부추키는 태극기 달기운동,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의지의 한국인 시리즈, 고통분담과 절제·근면을 호소하는 공익광고 등은 30여년전 박정희 군사독재 때 노동자·민중을 수탈했던 경제재건과 새마을운동 등의 선전과 판이 박히게 닮았다.
지금의 구조조정과 사회변화가 30여년 전과 다른 게 있다면 IMF 경제프로그램이 요구하는 대외 전면개방이다. 이 대외 전면개방은 국내 자본의 재편에 해외자본의 참여와 결합을 의미한다. 해외자본은 종래에는 주식, 채권, 금융 등의 투자에 일정한 제한이 있었지만 이제 자본시장은 거의 제한없이 외국자본에게 자유롭게 개방되었다. 더구나 기업에 대한 '적대적'인 인수·합병까지도 허용된만큼 남한의 어떤 기업도 얼마든지 외국자본의 수중으로 그 소유와 경영이 넘어갈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국내외 자본간의 차별이 없어지는 세계화가 되면서부터는 금리, 환율 등도 국제적인 차원에서 결정될 수밖에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제 WTO로 국내외 상품과 서비스시장의 통합에 이어 국내외 자본·금융시장의 통합이 이루어진 것이다.
대외개방으로 상품시장과 자본시장이 통합되면 상품과 자본을 생산하는 노동을 공급하고 수요하는 시장도 물론 통합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선진국의 넘치는 실업자와 심각한 실업사태에 남한의 노동력이 선진국으로 이동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노동시장만은 '국내'시장으로 한정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물론 선진국에서도 노동력이 딸리는 특수한 [헤드]분야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래서 대외개방은 자본에게는 더욱 넓은 시장에서 더불어 사는 통합의 기회를 주지만 노동에게는 더욱 좁은 국적시장으로 분리시키면서 세계적으로는 노동자 서로간 저임금 경합의 기회를 확대시킬 뿐이다.
지금까지 본대로 남한사회의 IMF관리 구조조정은 이른바 개혁과 개방이란 미명하에 자본에 유리한 구조조정인데 비해 노동은 불리한 구조조정을 당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태생적, 내재적 모순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다. 남한의 재벌로 대표되는 독점자본이 그 축적과 재생산의 위기를 여전히 노동의 구조조정, 노동자들의 희생으로 모면하려는 것이라면 그것은 자본주의가 지금까지 연명해 온 본질적 측면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그리고 IMF관리체제하 구조조정은 90년대초 공황에서 시작된 남한 독점재벌과 사회 다른 부문의 자본들이 그 축적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남한사회 모든 노동에 대한 전면적 구조조정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이다.
정작 문제는 그런 희생을 당하는 노동측은 어떻게 해야하느냐는 점이다. 노동자들은 지금처럼 자본가들이 권력을 앞세운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고, 총파업도 취소하거나 보류하면서까지, 자본가들이 또다시 노동자들을 기만하는 각종 이데올로기로 위기를 넘기려는 것을 방관만 할 것인가? 자본가가 이 위기를 넘기는데 있어 노동자에게 대량실업, 임금삭감, 노동조건 악화 등 피해가 없다면 그까짓것 그냥 지나갈 수도 있다. 그런데 지금 남한을 위시한 전세계 자본주의의 작동은 그렇지 않다는 걸 노동자들은 알고 있지 않은가! 이제 노동자를 위시한 전 민중은 먼저 권력의 해체와 자본의 해체 등 자본주의 모순을 해소하는 구조조정 문제를 내걸고 전면 투쟁에 돌입하는 것만이 현 난국을 돌파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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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노/정/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