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의 전열을 가다듬자
정 윤 광
민주노총 정치위원장
이 글은 개인적인 것이다. 민주노총 집행간부의 일원으로서, 전체의 투쟁과정에 참여하고 함께 책임을 지고 있는 입장에서 누구를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다. 함께 반성함으로써 앞으로의 올바른 투쟁에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민주노총의 총력투쟁 경과
민주노총은 지난 3월말 제2기 집행부가 들어선 이후, 총력투쟁을 앞세우고 정리해고제 근로자파견제 합의와 총파업철회를 둘러싼 혼란과 위기를 극복해갔다. 그리고 쇠파이프와 최루탄이 난무하며 3만여명이 서울거리를 휩쓴 노동절 집회를 기점으로 투쟁의 수위를 높여 갔다. 5월 20일 대의원대회에서 주요 투쟁과제를 정리해고제 근로자파견제 철폐 및 부당노동행위 근절, 고용안정과 생존권 보장, 고용·실업자대책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 IMF재협상 등 5대 요구로 정식화하고, 5월 27∼28일 10만여명이 참여한 총파업을 실행하였다. 투쟁을 통해서 대정부교섭을 끌어내어 6월 5일 현안 문제에 대해서 노정간의 합의를 하고,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6월 10일로 예정되었던 총파업은 철회하였다.
그러나 이후, 정부는 6월 5일 노정간의 합의사항을 전혀 지키지 않았다. 삼미특수강 등 부당노동행위 사업장문제도 처리되지 않았고, 고소·고발된 131명의 민주노총 간부, 조합원에 대해서 선처하겠다는 약속도 지키지 않고 오히려 계속 구속시키고 있다. 현대자동차 문제해결에도 전혀 성의를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6월 29일 10개 은행 퇴출을 발표 1만여명의 은행원을 하루 아침에 거리로 내몰았고, 7월 3일 제1차 공공부문 구조조정계획을 일방적으로 발표, 금융·공공부문 구조조정시 노사정위원회에서 성실히 협의하겠다던 약속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었다. 이로써 노사정위원회는 완전히 정부의 정리해고와 구조조정작업을 위한 들러리임이 입증되었다. 따라서 현안이 걸린 노조 중심으로 7월 14∼16일 집중 파업투쟁은 불가피하였다.
7월 10일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노사정위원회의 불참을 선언하였다. 이어 양대 노총은 7월 12일 여의도 고수부지에서 6만여명의 노동자를 결집, 합동집회로 분위기를 고조시켰으며, 7월 14일 금속의 파업을 시작으로 15∼16일 금속, 공공, 공익, 병원, 금융 등이 참여한 10만여명의 제2차 총파업이 감행되었다. 1차 총파업이 금속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해서 공익 일부와 전국의보노조가 참여한 파업이었음에 비해, 7월 14∼16일의 총파업은 금속과 공공부문을 양축으로 해서 민주노총의 다수 연맹, 다수 사업장이 참여한 힘있는 총파업이었다. 이 투쟁은 민주노총의 총파업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고 각 연맹의 투쟁력을 총결집하여 시기를 집중하고, 요구를 집약, 전체적인 공동요구를 결합시킨 집중투쟁으로 규정하였지만 7월 중순 총파업에 대해서 정부는 수십명(7월 말 현재 97명)의 간부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하는 등 강력 탄압으로 대응해 왔다. 7월 14∼16일 파업으로도 요구가 쟁취되지 않을 것을 예상, 민주노총은 7월 23일 총파업을 결정하고 준비해 갔다. 그러나 총파업을 하루를 앞둔 22일 노사정위위원장을 정부쪽의 대표로 한 노정간의 교섭이 시작되어, 7월 23일 8개항의 합의가 이루어지고 2개항에 대해서 협의를 계속하도록 함으로써 7월 23일 총파업은 다시 유보되었다. 7월 27일 나머지 2개항을 포함, 전체 합의가 이루어졌고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다시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게 되었다.
검토되어야 할 쟁점들
지금부터는 투쟁과정에서 쟁점이 되었거나, 중요했던 부분에 관해서 검토해 보겠다. 그 내용으로는 투쟁의 시기설정과 성격, 주체의 문제, 두 차례의 파업유보, 투쟁의 목표 과제 요구의 문제, 투쟁과 교섭전술의 관계, 투쟁전술의 문제, 연대의 문제(국민운동본부 활동) 등을 다루려고 한다.
지금까지의 일련의 투쟁과정은 자본의 총공세를 저지키 위한 불가피한 것이었다. 이 투쟁에서 민주노총 중앙은 주도성을 가지고 투쟁의 전반을 책임져 나갔다. 자본의 공세가 밀물처럼 거세게 또한 지속적으로 밀려들어 왔기 때문에 이것에 대항하는 투쟁 역시 연속적인 투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일련의 투쟁을 통해서 민주노총 내부의 혼란과 무기력을 극복, 민주노총은 여전히 싸울 힘을 가지고 있고, 자본의 공세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맞서 싸운다는 태세를 확립한 것은 큰 의의가 아닐 수 없다. 이 투쟁을 통해서 자본의 총공세를 어느 정도 둔화시킬 수 있었다. 정리해고 구조조정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을 상당 정도 형성하였고, 일정한 후퇴를 실현할 수 있었다. 김대중이 정리해고를 최대한 하지 않고 구조조정하는 방안을 찾아보라고 한 것이나, 금융감독위원장이 이제는 기업의 퇴출이 아니라 회생을 위한 정책을 펴겠다고 한 것, 김우중이 사회보장정책이 되어 있지 않고 정리해고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없는 상태에서 지금 같은 경제위기 시기에 대량 정리해고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하는 것들이 이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저들의 구조조정 정리해고 공세가 멈추거나 수그러든 것은 아니다. 정부는 7월 29일 제2차 공기업 구조조정계획을 발표, 19개 공기업에서 2001년까지 현재 인원의 21.3%인 3만450명을 정리해고 하겠다고 발표하였다. 대기업들도 하반기에 상반기보다 더욱 가혹한 정리해고를 단행, 3만명에 이르는 인원을 감축할 계획이다.
1) 투쟁의 시기설정과 성격, 주체의 문제
투쟁은 두 시기에 걸쳐서 진행되었다. 5말 6초 총력투쟁과 7월 집중투쟁이 그것이다. 5말 6초 총력투쟁은 민주노총의 5대 요구안을 내걸고 민주노총이 주도하는 총력투쟁으로 설정되었다. 지금은 정리해고 근로자파견제가 법제화된 가운데, IMF관리하의 공황이라는 비상한 시기이다. 현장에서의 부당노동행위 정리해고 구조조정에 맞서는 투쟁은 직접적으로 정부의 정책변경과 제도개혁 또는 개악저지라는 전계급적 투쟁과 결합된다. 민주노총의 5대 요구를 내건 총력투쟁은 현장요구를 중심으로 한 투쟁과 무리없이 결합될 수 있었다. 모두가 중앙차원의 일전을 치루지 않으면 단위노조나 연맹의 요구도 쟁취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식, 민주노총의 총력투쟁으로 집중하였다. 그러나 원래 개별 사업장 또는 연맹차원에서 계획, 진행되던 투쟁을 짧은 기간에 전체 투쟁으로 모아내려함으로써, 전체의 요구와 개별적 요구의 결합, 전체의 요구에 대한 대중의 공유와 투쟁의지에서 상당히 취약하였고 유기적 통일도 이루지 못했다. 5말 6초 투쟁은 다시 5월 27∼28일 총파업과 6월 10일 총파업으로 나뉘었다. 5. 27∼28 총파업의 투쟁주체는 금속을 주력으로, 공익의 상당부분과 전국의보노조가 결합한 형태로 민주노총의 전체 투쟁으로 보기에는 취약함이 있었다. 물론 6. 10 총파업을 기점으로 민철, 공공, 병원 및 기타 부문이 가세함으로써 명실상부한 전체적 총파업으로 발전시킬 계획이었으나 실현되지 않았다.
이미 말했듯이, 6월 5일 노정간의 합의 이후 민주노총은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였으나 합의사항은 전혀 지켜지지 않았고, 산업현장에서는 정리해고 등 자본의 공세가 여전히 전개되고 있었다. 그리고 금융산업과 공기업의 구조조정 정리해고가 진행됨으로써 이에 대한 저항이 계속되었다. 그외 병원, 공익, 사무, 건설, 택시 등 각 연맹의 투쟁도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진행중인 각 사업장, 연맹의 투쟁은 개별적인 것이었고, 투쟁의 목표, 시기 또한 개별적이었다. 개별적인 요구가 성취되면 개별적으로 투쟁이 종결되어 전체 목표에 입각하여 전체 투쟁을 배치하기 어려웠다. 중앙과 연맹의 수차례에 걸친 논의 끝에 7월 투쟁은 민주노총 차원에서 투쟁중인 연맹 사업장을 대상으로 시기와 전술을 최대한 집중하고, 개별적 요구에 기반하여 전체 요구를 결합시키는 집중투쟁으로 배치하기로 하였다. 그후 일정한 준비기간을 거쳐 9월에 민주노총의 요구와 전술을 가지고 총력투쟁을 배치하기로 결정하였다. 다만 7월 집중투쟁 중에도 탄압으로 민주노총이 위기에 빠지거나 투쟁이 고양되어 발전할 경우 민주노총 차원의 총력투쟁을 배치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 두었다.
그러나 7월 투쟁에서 자본의 공세를 저지하지 못하고, 쟁점을 유지, 역량을 보존하지 못한다면 9월 총력투쟁은 사상누각이 될 것이므로 7월 하순에 가능한 역량을 모두 결집시켜 총력투쟁을 배치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력하게 대두하여, 7월 집중투쟁과 9월 총력투쟁의 개념을 지양하고 하반기 연속투쟁으로 정리하였다. 7월 14∼16일 투쟁은 중앙이 직접 계획·실행하는 투쟁이 아니라 개별적 투쟁들을 민주노총 차원에서 지도·집중하는 투쟁으로 정리했음에도 불구하고, 5. 27∼28일 투쟁보다도 금속외에 공공부문이 또 하나의 투쟁축을 형성하고 금융, 택시 등 많은 부문에서 참여하여 민주노총 차원의 힘있는 투쟁으로 실현되었다.
2) 두 차례의 파업유보
민주노총은 6월 10일과 7월 23일 두 차례로 예정되었던 총파업을 유보하였다. 두 차례 다 파업유보와 동시에 노사정위원회에의 참여를 결정하였다. 먼저 6월 10일 총파업 유보에는 예상되는 동력이 취약하다는 것이 유력한 근거로 제시되었다. 또 하나는 6월 5일 협약에서 현안 문제 특히 투쟁의 주력인 금속의 현안문제가 미흡하나마 해결되거나 해결의 가능성이 열린 것으로 판단한 결과이기도 하다. 중앙에서 공식적으로는 노사정위원회의 위상을 전술적 활용대상으로 규정하긴 하였지만, 민주노총 내부에 상당한 견해차이도 존재하였고, 실제로는 문제해결에 대한 일정한 기대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하여튼 이후 노사정위는 단순한 들러리로 전락하였고, 약속되었던 문제해결은 전혀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계속 현장은 이후에도 계속 거센 자본의 공세에 맞서 싸워야 했다. 7월 집중투쟁시의 투쟁동력을 보면 근본적으로 현장동력이 부족하였던 것으로도 보이지 않는다.
7월 23일 투쟁은 공공부문에서 7. 14∼16 투쟁보다 투쟁동력이 떨어졌다. 그러나 서울지하철이 가세함으로써 보완되는 측면이 있었다.
7월 23일 총파업철회는 투쟁과 교섭의 기조문제와 크게 관련되어 있다. 7. 14∼16일 총파업 이후 정부가 대대적인 탄압으로 나오는 국면에서 연속하여 더욱 강력한 투쟁을 배치하는 전술은 기본적으로 올바르다. 그러나 7. 23 총파업투쟁은 무리한 측면이 있었다. 7. 14∼16 총파업이 대량 탄압을 불러오리라는 것은 이미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설혹 정부가 탄압이 아닌 유화전술로 나오고 교섭에 응해 온다고 하더라도 보다 강력한 총파업을 바로 다음에 배치하였을 때 교섭력도 높아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노총은 7. 14∼16일 집중투쟁의 가닥을 잡을 7월 초에 7월 23일 투쟁을 동시에 배치하고, 철저히 준비를 해나갔어야 했었다. 그랬다면 보다 많은 참여, 보다 힘있는 투쟁이 가능했을 것이다. 보다 체계적이고 계획적인 총파업으로 위력을 발휘하려면 아무리 비상시기라고 하더라도 준비기간이 2주 이상은 걸리기 때문이다. 7. 23. 총파업은 7월 8일 중앙위원회에서 통과된 7월 집중투쟁계획의 단서조항에, 상황에 따라서 7월중 총력투쟁을 할 수 있다고 규정, 위임되었다고 보더라도, 대의원대회나 현장간부토론회 등 조합원의 동의와 동력을 끌어내는 절차가 부실하였다. 그리고 긴급하게 7. 23 총파업을 결정하였음에도 거기에 대응할 전술배치가 부족하였다.
또 하나 제기되는 문제가 있다. 현 시기 총파업은 대중규모에서 10여만이라는 위력적인 규모가 되어야 하는가? 결의가 선 간부들의 투쟁, 그러한 조건에 놓인 대중의 결연한 투쟁의지가 바탕이 된 위에서 위력적인 가두시위 등 다양한 투쟁방안들이 검토되어야 하지 않는가? 짧은 기간 후의 파업결정과 충분한 준비가 되지 않은 조건속에서 7. 23. 파업을 앞두고 교섭과 투쟁을 적절히 조절하지 못하였고, 결국 파업동력이 흩어진 상태에서 교섭이 타겨되지 않은 채로 7월 23일 아침 파업철회 결정이 내려졌다.
3) 투쟁의 목표, 과제, 요구
지금의 투쟁은 총자본에 대한 총노동의 대결 형태를 띄고 있어서 투쟁 그 자체는 고도로 정치적인 성격을 갖는 것이다. 현장에서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임금삭감과 단협개악, 부당노동행위에 맞서는 개별적인 경제투쟁은 바로 정부의 구조조정정책과 구조조정 및 정리해고 파견제를 전면 실행하기 위한 법제도의 개악을 저지하고자 하는 전국적 투쟁과 직접적·동시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것이다. 이 싸움은 또한 IMF를 앞세워 자동차, 전자, 전력, 통신, 기계 등 한국의 핵심 공기업과 전략산업분야를 집어삼키고, 자본시장 전면개방, 고금리와 유연노동으로 노동자와 민중을 초과착취함으로써 한국경제에 대한 지배를 강화하고 종속을 구조화하려는 초국적 자본에 대한 싸움이오, IMF의 지침을 충실히 따라서 한국경제구조의 재편 합리화를 계획·집행함으로써 노동자와 민중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노동운동을 무력화시키고자 하는 김대중정권에 대한 싸움이오, 정권과 관료가 더불어서 위기를 초래한 주범이면서도 초국적 자본과 정권의 동반자로서 위기를 이용하여 자기합리화와 독점을 강화하면서 노동자에 대한 직접적 착취를 가중시켜 더욱 강력한 공룡으로 스스로를 키워가려는 독점재벌과의 싸움인 것이다. 5대 재벌그룹은 이 공황기의 전쟁터에서 사상 유례없는 고금리를 지불하고서도 금년 상반기만 하더라도 SK그룹의 3,000억원 흑자를 비롯하여 모든 그룹이, 그리고 거의 전 기업이 흑자를 기록하였다(매일경제, 7. 18일자). 정리해고, 구조조정 반대의 현안 문제해결을 위한 투쟁을 부당한 정책의 저지와 법제도 및 사회구조개혁을 위한 투쟁과 직접적으로 결합시키고, 근본적인 투쟁의 대상 즉 김대중정권과 IMF를 앞세운 초국적 자본과의 싸움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 투쟁을 통해서 노동자적 대안을 제출하고 노동자 스스로를 주체로 세워 가야 할 것이다.
이번의 일련의 투쟁에서 민주노총은 현장의 정리해고, 임금삭감, 부당노동행위, 단협개악, 구조조정이라는 개별적인 요구를 사회구조적 개혁과 정부정책의 변경을 목표로 한 5대요구로 통일하고 개별적 투쟁을 전체 투쟁으로 전화해내려고 노력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관계를 설득력 있게 체계화하여 제시하는 데는 미흡하였다. 그리고 전체적인 투쟁을 노동에 대한 공세의 핵심, 총자본의 중심인 정권과 IMF에 대한 반대로 명확히 방향짓지 못하였다. 오히려 투쟁의 진행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일관성을 잃고 동요하는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5. 27∼28일 총파업 이후 131명 고소·고발 등 정권의 탄압에 직면, 노정교섭을 풀어내기 위해서 김대중의 미국방문 지지 성명을 낸 것이나, 7. 14∼16일 총파업후 90여명 체포영장 발부 등 정권의 강경정책에 경제파탄 청문회개최와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등의 선결과제를 주장, 수구세력에 화살을 겨누고 투쟁의 주대상인 김대중정권을 우회해 가는 기자회견을 한 것 등이 그렇다. 이러한 한발 후퇴는 한판 투쟁으로 승리를 쟁취하기 어려운 현실적 투쟁역량을 감안, 역량을 보존하며 일정한 성과를 얻으려는 전술이다. 그러나 자본과 노동간의 전면전의 상황에서 그러한 후퇴는 또다른 후퇴를 요구하게 된다. 물러서지 않고 당당히 맞서다고 교섭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또 반드시 교섭이 더 어려워지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허물어지지 않고 강력한 투쟁의 태세를 유지하느냐 아니냐이다. 교섭으로도 실질적인 성과는 실현되기 쉽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발 후퇴는 오히려 강고한 투쟁의 전열을 흐트러뜨리기 쉽다.
4) 투쟁전술
지금은 방어적이고 수세적 시기이다. 아무리 잘싸워도 지금 가진 것조차 모두 지켜내기 버겁다. 구조조정도, 정리해고도, 전면적으로 막아낼 수는 없다. 단협개선과 임금인상이 아니라 단협개악과 해지를 저지하고, 임금삭감을 저지해 낸다면 잘 싸웠다고 스스로 위로해야 할 형편이다. 그러나 수세적 상황속에서도 특정 국면에서 상대의 취약점을 파악하여 공세적 전술을 구사, 저들에게 타격을 가하고 상황을 유리하게 이끌어 갈 수 있다.
투쟁전술은 총파업을 기본으로 하여 집회, 시위, 농성 등이 다양하게 구사되었다. 그러나 상황을 진전시키기 위한 적극적 전술구사, 상황에 조응하는 전술변화는 별로 없었다. 시위는 노동절 때 거리점거농성 등으로 위력적인 가두시위의 모습을 보인 후, 평화시위로 그 기조가 바뀌었고, 이후 변화가 없었다. 7. 23. 총파업시에 노숙투쟁이 계획되었으나 실현되지 않았다.
이러한 전술문제는 투쟁의 목표, 요구와도 관련해서 검토되어야 한다. 현재 노동운동이 정부와 정면 대결하여 요구를 쟁취, 승리할만한 역량을 가지고 있는 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김대중정부도 약점이 있고, 우리의 요구가 상당한 정도 설득력을 가진 상황에서 정권이 우리를 전면탄압하여 확고한 반대세력으로 만들어버리는 데는 큰 부담이 있는 것이다. 우리가 정권에 공격의 방향을 돌려야 하는 이유는 김대중정부가 더 수구세력이기 때문이 아니다. 정권이 상황의 주도성을 쥐고 있고, 정리해고제 근로자파견제 법제화,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정책실시, 노동탄압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정권에 반대하고 정권을 공격대상으로 한다는 말은 김대중정권의 퇴진을 목표로 한다는 말이 아니다. 김대중정권의 잘못된 정책, 제도, 세력 그 자체에 타격을 가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것을 약화시키고, 제도와 정책을 바꾸려는 것이다. 대상을 정확히 겨누고, 올바른 무기를 사용하였을 때 우리는 상대에게 타격을 가하고 목표를 쟁취할 수 있다. 이러한 투쟁과정에서 노동자의 대안과 전망 그리고 정책을 제시하고 노동자 스스로를 대안세력으로 세워가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위기의 시기는 계급적 정치적 의식이 급속히 각성된다.
5) 투쟁과 교섭전술
민주노총은 투쟁과 교섭을 병행하는 전술을 취하였다. 이것은 교섭력을 높이기 위해 투쟁을 배치하는 교섭우위의 전술과도 구별되고, 투쟁을 통한 쟁취라는 투쟁우위의 전술과도 구별된다. 이는 민주노총의 현재의 다소 취약한 역량을 반영한 것으로서 불가피하다. 문제는 5. 27∼28일 이나 7. 14∼16일 총파업투쟁 이후 정부의 강경정책이 구사되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노총이 강력한 투쟁의 자세를 견지하지 못하고, 한발 물러서면서 교섭을 시작한 것이다. 이럼으로써 전술적 공세는 수세로 뒤바뀌게 되었다. 5. 27∼28 총파업 이후 6월 10로 배치된 총파업준비에 박차를 가하였다면 보다 유리한 상황에서 훨씬 당당하게 교섭할 수 있지 않았을가? 그리하여 상황을 호전시킬 수 있지 않았을가? 7월 20일 4개 선결과제를 제시하는 기자회견 후에 이루어진 7월 22일의 교섭과 7. 23. 파업유보는 상황이 좀 다르나, 한발 후퇴함으로써 교섭을 끌어 낸 점에 있어서는 비슷한 전술전환이었다.
민주노총은 교섭형태로서 대정부 직접교섭을 추구하였고 이를 실현해 내었다. 그러나 정부를 대표하는 노사정위원장과의 직접교섭과 노정합의에 얼마나 정부가 힘을 싣고 있는지는 의문이었다. 또 소위 여권내 개혁파의 주도로 그러한 합의가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청와대, 정부, 공안기관, 2개 당으로 구성된 정권의 복잡한 권력구조 속에서, 그리고 재벌, 정치권, 보수언론 등 총자본의 권력구조 속에서, 그 합의가 어느 정도 실현될 것인지 의문이다. 실제로 6. 5. 노정합의는 거의 실효성이 없었다. 이제 7. 27일 2차 노정합의는 어느 정도 실현될 것인가?
총파업유보와 노사정위원회 참여는 전혀 논리적 연관이 없다. 그리고 실천에서도 이것을 분리 대응하는 게 원칙적으로 올바르다.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한다고 해서 반드시 총파업을 유보할 필요도 없고, 여러 가지 조건상 총파업을 유보한다고 해서 노사정위원회에 들어가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이 문제를 분리 정립해내지 못하였다. 현실적으로 정부는 노정협약과정에서 총파업 유보를 요구하였고, 노정협약의 세부사항과 이행절차를 노사정위에 위임함으로써 민주노총은 그나마 협약의 이행과 현안문제 해결을 모색하기 위해서 노사정위원회에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총파업을 유보 또는 철회하지 않는다면 노정협약은 성립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노사정위에서는 실제로 협약을 맺었던 것조차 이행되지 않았고, 노사정위원회내에서 실현할 수 있는 내용도 거의 없었다. 이 문제는 다시 한번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그리고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한 정리해고와 구조조정에 대한 노동자의 불만을 희석하고 투쟁을 무력화하는데 노사정위원회를 이용하려는 정부의 기도를 철저히 분쇄하고, 쟁점을 부각하여 선전하기 위해 전술적으로 활용한다는 명확한 자세를 견지할 필요가 있다.
6) 연대의 문제
국민운동본부를 중심으로 한 민주노총의 연대활동은 이 시기, 어느 때보다 취약하였다. 연대활동은 같은 과제로 싸우는 세력들이 보다 큰 힘을 결집함으로써 목표를 쟁취하자 하는 것이다. 연대활동이 취약한 것은 민주노총을 제외한 제 세력들의 투쟁이 김대중정권 등장 이후 약해진 데에도 원인이 있고, 민주노총의 투쟁이 현재의 위기상황에서 생존을 위협당하는 전민중의 과제를 떠안고, 제 세력을 규합, 통일 단결된 힘으로 이를 돌파하려는 계획과 일관성, 능동적 태세가 부족한 데에도 그 원인이 있다. 하여튼 민주노총은 국민운동본부를 중심으로 한 민중연대에도, 실업자의 요구와 동력을 함께 모아 싸워 나가는 데에서도 성공적이지 못하였다.
이제 어떻게 싸울 것인가?
7월 25일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는 이후(하반기) 투쟁계획 수립을 위한 절차와 일정을 결정하였다. 7월까지의 투쟁을 평가하고 이후의 투쟁계획을 수립, 실행하는 것이다. 내용은 결정하지 않았지만 9월 10일경 단위노조대표자 수련회를 거쳐서 9∼10월경 총력투쟁을 추진할 것을 시사하고 있다.
총력투쟁을 할 것인가? 그러기 위해서는 몇가지 전제가 있다. 먼저 투쟁의 방향, 목표가 확고해야 하고 중간에 동요하거나 변경이 없어야 한다. 몇차례 파업과 유보를 거듭하면서 투쟁동력은 많이 손상되었고 조합원의 신뢰도 약화되었다. 다시 한번 타격을 입는다면 그 상처는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신뢰는 먼저 정확한 목표를 잡고 일관성을 견지하는데서 나온다. 다음으로 투쟁의 목표, 전술방법에 대한 전체 조합원의 참여와 공유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 집행부 구성 후 급하게 투쟁을 추진, 계속 싸우다 보니 충분히 조합원들이 참여하여 토론할 기회가 부족하였다. 그리고 투쟁의 양과 규모에 너무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 파업 참여자수, 집회 참여자수 등에 연연하지 말고 강인한 태세로 싸우고, 능동적인 전술을 구사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지막으로 간부들의 결의가 확고해야 한다. 대규모 조합원이 참여하는 대중투쟁전술이 중요하나, 대중투쟁도 간부들의 확고한 결의가 있을 때 강력한 힘으로 되는 것이다.
지금 울산에서는 노자간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현대재벌은 희망퇴직 등의 미명하에 이미 1만명을 해고하였음에도, 7월 29일 1,569명을 다시 강제해고하였다. 여기에는 다수의 집행간부와 대의원, 현장의 열성 활동가들이 거의 포함되어 있다. 현대는 그룹내의 노동운동을 판쓸이하려는 것이다. 태광산업은 구사대 천명을 동원하여 회의를 마치고 나오던 대의원을 침탈하였다. 울산은 전쟁터가 되었다. 지금 공장에서, 거리에서, 시내 전역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울산은 민주노총 투쟁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다. 만일 강력한 기지 울산이 패배로 끝난다면 다른 사업장 노조도 차례로 패배의 운명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9∼10월 민주노총 총력투쟁도 힘들어 지거나 위력을 잃을 것이다. 금속만 아니라 민주노총도 역량을 집중해서 울산을 방어해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은 IMF관리 공황속에서 자본의 총공세로 노동과의 전면전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만일 이 싸움에서 자본의 공세를 막아 내지 못한다면 노동자계급은 "또다시 50년에 걸친 노예의 길로 전락할 수도 있는 절대절명의 시기"(고영주, 1998. 7. 6. 토론회)에 우리는 놓여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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