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기 노사정위원회, 어떻게 볼 것인가

-'사회적 합의'라는 얼굴을 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하위동반자 기구'-


박 성 인

사무처장



들어가며

7월 23일 새벽, 노정간에 8개항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면서 민주노총이 7.23 총파업투쟁을 유보한 이후, 7월 27일에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2기 노사정위원회 복귀를 선언했다. 그리고 노정간 합의에 강력히 반발하던 경총도 7월 26일 정부와 재계간 간담회를 거쳐, 7월 29일에 2기 노사정위원회 복귀를 결정했다. 이로써 6월 3일 출범한 지 두달여만에, 정부의 일방적인 공기업 구조조정과 민영화 방침에 항의하면서 양 노총이 7월 10일에 불참 선언을 한 지 보름여만에, 2기 노사정위원회는 다시 가동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7월 30일에 열린 6차 본회의에서, "김대중 정부는 당면한 경제위기 극복과 개혁작업에 있어 사회적 합의를 최대한 도출하겠다는 의지로 이 제도를 마련한 것"이라는 김원기 노사정위원장의 발언에도 불구하고, 2기 노사정위원회의 전망은 불투명하다.

7월 29일 기획예산위에서 일방적으로 발표한 공기업 2차 구조조정방침을 둘러 싼 노정간의 논란, 7.23 합의문의 기속력에 대한 노동부와 노사정위원회간의 갈등, 그리고 무엇보다도 "강제적 구조조정과 정리해고가 실제 힘관계에서 현실화되느냐의 여부"를 가름할 현대자동차, 한국통신, 삼미특수강, 퇴출은행 등에서의 노자간의 첨예한 대립 등을 볼 때, 2기 노사정위원회가 결코 순탄하게 진행하지는 못할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 글은 몇 개월간의 진통 끝에 다시 재가동하기 시작한 2기 노사정위원회가 이후 순탄하게 진행하기 위해서 어떠한 위상에서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지, 혹은 '사회적 합의'를 위해 노사정위원회에 참가한 각 주체가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하는지를 주장하기 위한 글이 아니다. 필자는 노사정위원회에 대한 어떠한 주관적인 원망(願望)이나 환상도, 혹은 엄연히 현실적인 실체로 존재하고 있는 2기 노사정위원회를 의도적으로 경시하고자 하는 생각도 갖고 있지 않다.

필자의 관심은 노동운동의 민주적·계급적 발전의 전망 속에서, '노사정위원회'가 어떠한 의미를 갖고 있는지, 또 노동운동의 민주적·계급적 발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하는 점이다. 물론 이러한 관심은 '경제위기'와 IMF체제라는 새로운 정세 속에서, '유일한' 위기극복책으로 우리 사회 전체에 대해 강요되고 있는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맞서, 고용안정과 생활안정이라는 생존권투쟁을 힘겹게 벌이고 있는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옹호하기 위한 것이고, 나아가 '자본의 위기'가 '노동의 위기'로 전가되고 있는 냉엄한 현실의 힘관계 속에서, 노동자계급이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대상'이 아닌, 우리 사회 구조의 근본적인 변혁의 주체로 나설 수 있게 되길 바라는 바램에 다름아니다.

2기 노사정위원회,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하위동반자 기구'

6월 3일, 민주노총이 불참한 채 2기 노사정위원회가 출범한 것은, 6월 6일 김대중 대통령의 방미를 앞두고, 외자유치를 위한 방미외교를 측면 지원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6월 5일 정부와 민주노총간의 합의와 6월 10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의 노사정위원회 참여 결정으로 2기 노사정위원회가 제모습을 갖추고 출범하게 된 것은, 4월 이후 노사정간의 복잡한 입장과 힘관계의 역동적인 대립의 결과였다.

그러나 힘겹게 출범한 2기 노사정위원회는 본격적인 논의도 이루어지지 못한 채, 정부의 일방적인 공기업 구조조정 추진과 대기업에서의 정리해고 강행, 그리고 이를 저지하기 위한 민주노총 산하 연맹들의 7월 총파업투쟁으로 공전을 거듭하다가, 7월 말에야 다시 재가동될 수 있었다.

5월 말, 민주노총의 제1차 총파업투쟁 이후, 6월 5일의 노정간 합의를 통해 6월 10일 제2차 총파업투쟁을 철회시켜 냈고, 다시 7월 중순 금속노동자들과 공공부문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한 시기집중 파업투쟁 이후, 7월 23일의 노정간 합의를 통해 7월 23일의 민주노총 총파업투쟁을 유보시켜 내는 등, 두 차례에 걸친 사산(死産)의 위기를 극복(?)하고, 2기 노사정위원회가 다시 소생하여 활동을 재개할 수 있는데에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2기 노사정위원회의 구성과 유지 자체가 갖는 효과에 대한 김대중 정부의 판단이 주요한 요인이었다.

이 점에 대한 김대중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은 "외환위기로 촉발된 경제위기는 사회의 근본적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노사정 대타협을 통해 개혁에 대한 국민적 합의와 추진력을 강화할 것이다. 2기 노사정위에서 IMF 위기극복과 사회협약의 한국적 모델을 창출"(주1)하겠다는 것이다. 경제위기를 '총체적 개혁'의 계기로 삼아, IMF 위기 극복을 위한 한국적 모델로 2기 노사정위원회를 만들어 가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노사정위원회에 대한 김대중 정부의 위와같은 주장은 노사정위원회의 성격을 과대하게 규정하거나, 혹은 사실을 은폐·왜곡하고 있다. '사회의 근본적인 개혁'이니, '국민적 합의'니 하는 말들은 겉치레말에 불과하다고 하더라도, 경제위기의 '유일한' 극복책이자 모델로 추진하고 있는 것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정책과 '자본 개방' 정책이다.

철저한 '시장경제 체제'의 도입을 핵심으로 하는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정책은 '재벌개혁'과 '공기업 구조조정'과 '민영화', 그리고 '정리해고' 실시에 따른 '노동시장 유연화'를 통해 단기에 경제위기를 극복하여 99년 하반기에는 다시 성장시대로 진입한다는 구도이다.

그런데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자본개방을 통한 위기극복책은 필연적으로 '정리해고'에 따른 노자간의 대립과 대량의 실업 발생으로 인한 사회불안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이미 정부의 공식적인 통계에 의거하더라도, 실업자의 수는 체제의 존립자체를 위기에 빠뜨릴 수 있는 마지노선이라고 이야기되는 180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2기 노사정위원회는 바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전면적인 추진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생겨날 수밖에 없는 노자간의 대립과 대량실업으로 인한 사회불안을 '노사정위원회'에서의 '사회적 합의'라는 틀을 중심으로 관리하고 통제함으로써, 경제위기가 체제위기로 발전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제도적인 장치인 것이다.

따라서 2기 노사정위원회는 철저히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통한 위기극복이라는 정책 목표에 종속되어 있고, 또 그러한 목표 달성을 보장할 수 있을 때에만 존립할 수 있는 제도이다. 즉 경제위기를 계기로 자본의 시장경쟁논리에 의해 우리 사회를 전면적으로 재편해 나가려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정책이 목표라면, 2기 노사정위원회는 그러한 목표를 위한 하나의 수단, '사회적 합의'라는 얼굴을 갖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하위 동반자 기구'인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라는 위기극복책에서는,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은,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사회 일부의, 또 일시적으로만 가능한, '사회적 대타협'을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한국적 모델인양 이야기하는 것은 '신자유주의적 위기극복책' 자체가 논란거리가 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2기 노사정위원회 구성과 유지가 갖는 '정치적' 목표와 효과

1기 노사정위원회에서, 단기적인 외환위기를 노사정간의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성공적으로 극복해 냈다고 평가한 김대중 정권은, 4월 들어 대통령과 노사정간의 연쇄 오찬 회동을 통해 2기 노사정위원회 구성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1기 노사정위에 참가한 대가로 노동자들은 고통분담만 강요당했다. 재벌개혁을 포함한 합의사항이 지켜지지 않는 한 2기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할 수 없다"는 노동계의 불만과 저항에 대해, 김대중 정권은 한편으로는 "2기 노사정위원회에서 노동계가 더 이상 잃을 것은 없다. 오히려 1기 노사정위원회에서 합의한 내용 중 노동계가 얻을 수 있는 것이 더 많다"는 '유혹'과 함께, "경제계에는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자제와 기업 구조조정의 가속화를, 노동계에는 파업자제와 2기 노사정위에 서둘러 참여해 줄 것"을 '설득'하였다.

그리고 김대중 정권은 2기 노사정위원회 구성을 위해, 이러한 '유혹'과 '설득'만이 아니라, 민주노총의 5월 1일 노동절투쟁과 5월말의 제1차 총파업투쟁에 대한 대응에서 보듯이, '불법파업 주동자에 대한 사법처리 방침' 등의 강경 대응을 하는 한편, 노정 협상을 통해 민주노총을 다시 2기 노사정위원회의 틀로 끌어들였다. 그리고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자마자 동시에, 노사정위원회의 틀 밖에서 공기업 구조조정과 민영화방침을 일방적으로 추진하였다.

그런데 우리는 2기 노사정위원회의 구성과 유지, 위상과 역할을 둘러 싸서 노사정간에 논란과 갈등과 대립을 끊임없이 반복하면서도, 노사정위원회의 구성과 유지 그 자체가 갖는 '정치적 목표와 효과', '이데올로기적 목표와 효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먼저 주목되는 점은 2기 노사정위원회의 출범과 유지 자체가 갖는 이데올로기적 효과이다. 그것이 어떠한 내용과 수준이든 유지되는 한, 노사정 각 주체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고통 분담'을 할 수밖에 없고, 정부는 이러한 고통분담을 둘러 싼 대립과 갈등의 공정한 관리자이자 중개자로서 등장함으로써, 그 계급적 성격이 흐려지거나 은폐된다는 점이다. 국가가 갖는 계급적 성격이 은폐되어지는만큼,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위기극복책의 정당성은 더욱 강화된다.

두 번째는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정부는 '총체적 개혁'을 수행해 나가는 '개혁의 주체'로 부각되고, 노동조합과 노동자의 요구는 개혁되어야 할, 또는 스스로 개혁해야 할 '대상'이 된다. 그리고 개혁의 정치적 성과는 온전히 정부 자신의 정치적 성과로 된다. 노동조합과 노동자가 생존권이나 노동기본권을 위해 '사회적합의'에 반대하고,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라는 개혁프로그램에 저항했을 때에는, 노동조합과 노동자는 곧바로 집단이기주의자로 매도되고, '개혁'을 저지하는 수구세력으로 치부된다.

세 번째, '노사정위원회'에서 정부나 자본측의 부분적인 양보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한다면, 그 합의는 적어도 현 상황에서는 다음과 같은 정치적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노동자들의 조직적인 저항을 최소화함으로써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위기극복책의 대중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조직노동자 요구의 일부와 노동조합 상층의 요구를 부분적으로 보장하는 대신에, 미조직노동자, 실업자, 나아가 민중 전체의 이해와 분리시켜, 조직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전체노동자계급의 선진적인 부분이 우리 사회의 대안적인 사회세력, 정치세력으로의 발전을 차단해 내는 것이 2기 노사정위원회에서의 '사회적 합의'를 통해 얻어내려는 김대중 정권의 정치적인 목표인 것이다.

2기 노사정위원회에 대한 민주노총의 대응에 대해

1기 노사정위원회에서의 '잠정합의'로 내부적인 혼란과 동요를 겪은 민주노총은, 2기 지도부가 들어선 이후에 초기부터 '대중투쟁에 기초한 대정부 직접협상 전술'을 기조로 노사정위원회 구성에 대응해 왔다. 그리고 이러한 협상전술은 5월 말 제1차 총파업 뒤에 6월 5일의 노정간 합의로, 7월 중순 시기집중파업투쟁 이후에는 7월 23일 노정간 합의로 현실화됐고, 그 결과로 2기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거나 복귀를 결정했다.

민주노총이 투쟁을 통해 노정합의라는 대정부직접 협상을 이끌어 내면서 동시에, 2기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거나 복귀하기로 한 것은, 한편으로는 노사정위원회에서 합의사항이 이행되지 않을 때는 언제든지 탈퇴하여 투쟁해 나갈 수 있다는 판단과 다른 한편으로는 "현안문제가 걸려 있는 사업장과 부당노동행위 사업장 문제를 우선 해결"해야 했고, "현재의 동력으로는 총파업을 끌고 나가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처럼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원회에 참여냐 불참 혹은 탈퇴냐를 결정하는 판단의 준거는 '현안문제에 대한 해결의 필요성'과 '투쟁동력에 대한 전술적 판단'의 문제였고, 또 그런 전술적인 수준에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오히려 문제는 '전술적 판단의 준거'를 어디에 둘 것인가이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운동진영은 '경제위기'와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정책이 강요하는 생존권의 위협으로부터 노동자계급 저체의 고용안정과 생활안정을 힘겹게 방어해 나가야 한다는, 피할 수 없는 과제를 떠안고 있다. 뿐만 아니라 '경제위기'를 계기로 전면화되고 있는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위기극복책에 맞서, "우리 사회의 철저한 민주변혁을 통한 위기극복을 추구하는, 새로운 대안적 위기극복책 = 대안적인 사회발전전략을 통해 사회발전의 진정한 주체로 설 것"을 요구받고 있다. 그리고 이 두가지 과제를 서로 분리시키지 않고 노동자계급의 단일한 계급적 요구로, 또 단일한 노동자계급의 투쟁으로 결합시켜 나갈 때, 각 각의 과제는 현실성을 가질 수 있다.

'노동자계급의 생존권과 기본권의 철저한 수호에 바탕하지 않는 대안적 위기극복책'은 필연적으로 위기극복의 주체인 노동자계급운동과 분리되어 몰계급적이고 소부르조아적인 운동으로 변질되어 신자유주의적 위기극복책에 실질적으로 포섭되어 갈 것다. 거꾸로 대안적인 사회발전전략, 즉 '정치적·조직적 발전 전망을 결여한 생존권 사수투쟁'은 끊임없이 노동자계급역량을 소진시켜 나가면서 결국 체념과 무기력 속에서 신자유주의적 위기극복책으로 투항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일차적인 문제는 '노사정위원회' 참여냐 불참이냐가 아니라 - 물론 그 자체에 대한 판단도 중요하지만 -, 현 시기 김대중 정권에 의해 '총체적 개혁'의 이름으로 추진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대해, 그것이 강요하는 노동자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시키기 위한 방어적인 저항을 하면서, 노동운동진영이 어떠한 정치·사회적 전망과 대응 방향을 가져 나갈 것인가이다. 즉 단기적으로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노동자계급에게 강요하는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어적 수준의 저항이 불가피하지만, 현 시기 '경제위기'가 구조적이고 또한 중장기적으로 지속될 것이라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노동운동진영이 이러한 방어적 수준의 생존권 투쟁을 중장기적인 정치적·사회적·조직적인 전망과 계획과 어떻게 결합시켜 나갈 것인지가 관건이 될 것이다.

2기 노사정위원회에 대한 노동운동진영의 대응 전술 역시 단기적으로는 노자간 구체적인 힘관계에 따라 판단할 문제이지만, 그 대응의 방향은 이러한 전망과 계획 속에서 이루어질 때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이러한 준거에 근거하여 판단했을 때, 아무리 협상을 재개를 위한 전술적인 고려라 하더라도, "정부가 성의있는 협상태도를 보이면 오는 6일 예정인 김대중 대통령의 방미외교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최대한 협조할 의사가 있다"고 발표한 5월 31일의 성명서나, 7월 27일, 2기 노사정위원회에 복귀하면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총체적 개혁과 공정한 고통분담을 위해 노사정위 복귀를 선언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는, 노동자계급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고 있는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정책 기조를 인정한 것으로, 현시기 생존권투쟁의 정치적 방향을 훼손시키는 오류였다.

또 한가지 '2기 노사정위원회'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태도와 관련하여 검토해야 할 점이 바로 '2기 노사정위원회의 위상'에 대한 민주노총의 요구이다. 민주노총은 그간 노사정위원회 참여의 4대 전제조건 등을 통해, 현재 대통령 자문기구로 되어 있는 2기 노사정위원회를 격상시켜, '실질적인 사회적 협약이 보장되는 독립기구'로 할 것을 주장해 왔고, 또 그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해 왔다.

물론 노정간 합의나 노사정위원회의 합의조차 구속력을 갖고 있지 못한 현실에서, 노사정위원회가 '실질적인 교섭 기구'로서 합의 결과에 대한 구속력을 갖도록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합의 결과에 대한 구속력을 갖도록 요구하는 것과 노사정위원회의 위상을 격상시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앞에서 노사정위원회의 구성과 유지 그 자체가 갖는 이데올로기적, 정치적 효과에 준거해서 판단한다면, 합의 결과에 대한 이행의 문제는 현실의 힘관계의 문제이고, 노사정위원회의 위상 문제는 노동운동의 정치적·조직적 전망과 관련한 문제이다.

필자는 민주노총이 2기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민주노조운동의 정치적·조직적 자주성을 수호하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라고 판단한다. 그러나 현실의 힘관계에서 '현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사정위원회에 전술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면, 노사정위원회의 위상 격상 요구와 관련해서는 참여 문제와는 별도로 노동운동의 정치적·조직적 전망에 대한 충분한 논의와 검토 속에서 입장을 재정리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미 지난 7월 23일 노정합의에서 "노사정위가 실질적인 사회협약기구로 운영되고 역할할 수 있도록 특별법을 만든다"고 합의가 이루어졌다. 이 합의는 지켜지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한다. 시급히 먼저 논의되고 정리될 점은 노사정위원회의 위상 문제가 아니라,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위기극복책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대안적인 위기극복책이고, 그에 따른 현시기 투쟁의 정치적·조직적 전망과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다.

'자본의 위기'를 '노동의 희망'으로

IMF관리체제와 김대중 정권하에서, 원하던 원하지 않던 노동운동진영의 정치적·조직적 발전 전망과 관련하여, '피할 수 없는 화두의 하나'가 되어 버린 '노사정위원회'와 '사회적 합의'! 이것은 먹자니 먹을 것이 없고, 버리자니 아까운 '계륵'이 아니다. '노사정위원회'는 IMF(국제통화기금), 세계은행, 거대은행들과 초국적 자본에 의해 강제되고 있는 새로운 전지구적 경제질서의 한 표현에 불과하고, 국내외 독점자본의 총집행자인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정책의 하위 동반자적 기구에 불과하다.

'노사정위원회'와 '사회적 합의'라는 구도 속에서 김대중 정권은 위기극복의 주체가 되고, 노동조합과 노동자계급은 개혁되어야 할 대상으로 전도된다. 그리고 이러한 정치적 구도 속에서 국내외 독점자본의 중장기적인 이해는 관철된다.

뿐만아니라 이 구도 속에서 노동자계급은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고용노동자와 실업노동자, 그리고 노동조합의 상층지도부와 하부대중이 분할·통제되어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은 심각하게 위협받는다. 노사정위원회를 통한 사회적 합의전략 자체가 조직노동자의 일부, 노동조합의 상층지도부 일부를 포섭하여, 이를 통해 광범위한 하부 대중과 미조직, 실업노동자들의 저항을 통제해 나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고, 또 그러한 통제가 가능할 때만 유지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총자본진영의 공세에 대해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계급의 선진부분은 정책참여를 통한 실리의 획득이라는 유혹과 하부대중의 대중적인 저항 및 압력 사이에서 고민하고 동요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고민과 동요가 어떻게 귀결될 지 아직 예측할 수는 없지만,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동운동이 협소한 조합주의적 이해에 머무느냐, 아니면 미조직노동자와 실업자를 포함한 전체노동자계급의 이해를 철저히 수호하면서 계급적 노동운동으로 발전해 나가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힘겨운 생존권 수호투쟁을 하고 있는 민주노총이 하루아침에 동요를 극복하여 계급적 노동운동으로 발전해 나갈 것을 요구하는 것이 무리일 수도 있다. 대중조직은 자신의 투쟁경험을 통해, 현실을 인식하고, 또 그만큼 진전해 나가기 때문이다.

현시기 한국 경제의 위기는 '자본의 축적위기'라는 점에서 분명 '자본의 위기'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자본의 위기'는 동시에 자본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노동의 위기'로 나타난다. 노동자계급은 대량의 정리해고에 따른 고용불안, 임금의 체불과 삭감, 물가 및 세금 인상에 따른 생활의 불안 등 생존의 위기에 직면한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이 직면하고 있는 위기와 위기의식은 모순적이다. 노동자계급은 한편으로는 자본의 공세에 대해 자신의 생존권과 기본적 권리를 방어하기 위한 힘겨운 투쟁을 전개해 나갈 수밖에 없지만, 동시에 생존의 위기를 강요하는 '자본의 이윤 논리·시장논리'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는 주춤하고 동요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계급이 직면하고 있는 이러한 상황은 한편으로는 노동자계급의 생존권과 기본권을 옹호하면서, 동시에 '자본의 이윤논리·시장논리'를 현실적으로 극복해 나갈 수 있는, 새로운 정치적 대안과 계급적 주체형성을 요구하고 있다.

만약 지금의 정세 속에서 '노사정위원회'와 '사회적 합의'라는 유혹을 뛰어 넘어 새로운 정치적 대안과 계급적 주체형성을 이루어 낼 수 있다면, 노동자계급은 '자본의 위기'를 '노동의 희망'으로 바꿔나갈 수 있는 무기를 얻게 되는 셈이다.

<미주>

1) 김원기 노사정위원회 위원장, 1998. 06. 03., '2기 노사정위원회 출범식'에서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