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기 노사정위원회와 국가의 노동정책



노 중 기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1. 문제제기

이른바 '국민정부'인 김대중정권의 노동정책은 언뜻보아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고 혼란스럽게 진행되고 있다. 핵심 정책인 노사정위원회의 성격은 정권 내부에서도 모호하며, 그 성격이 아직도 유동적인 것으로 보인다. 또 대통령이 2기 노사정위원회의 구성을 지시한 5월 이후 현재까지 정부의 정책방향은 좌충우돌 식으로 갈팡질팡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예컨대 노동부 관료의 노사정위원회-양 노총 합의사항 번복(7. 27), 불법파업에 대한 강경대응방침(7. 12 관계장관회의; 7. 21 민주노총 재파업방침에 대한 정부입장)과 물밑 교섭의 병행(7. 22 합의), 현장에서의 노동자 구속·수배 등 강경방침과 중앙교섭에서의 유연한 태도,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엄벌방침과 실질적인 묵인 등 여러 측면에서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 이와 같은 방식의 노동정책의 실행은 군사정권 시절의 일사불란한 노동정책은 물론 김영삼정권기의 노동정책과도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이렇게 혼란스런 노동정책의 흐름을 정리하고, 여기서 생기는 몇 가지 물음에 답하고자 한다. 우선, 정권과 자본 내부에는 과연 개혁파와 수구파의 정책 갈등이 존재하는가? 갈등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둘째, 김대중정부의 노동정책의 기본성격은 무엇인가? 그것은 과거 정권의 노동정책과 얼마나 다른가? 셋째, 2기 노사정위원회의 성격은 무엇인가? 여기서 국가와 자본의 전략적 목표는 무엇인가? 넷째, 향후 국가 노동정책의 전개방향은 어떻게 될 것인가? 등이다.

2. 개혁적 노동정책 : 무엇이 새로운가?

김대중정권의 노동정책은 몇 가지 점에서 이전 정권들과 구별할 수 있다. 예컨대 파업에 대한 공권력 투입의 상대적인 자제, 사회적 타협기구로서 노사정위원회의 구성, 노동행정의 중립성 강조, 정책실행에서의 치밀성 증가 등이 그것이다. 요컨대 억압적 배제전략의 잔재를 털어버리고 보다 세련되고 자유화된 노동정책을 실시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는가? 대답은 부정적이다. 특히 과거 노동정책의 기본골격이었던 '경제정책에 대한 노동정책의 종속성'은 변화가 없을 뿐만 아니라 IMF 경제위기-사회위기 상황에서 이러한 성격은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 수구적 관료로 채워져 있는 노동관련 정부부서의 정책실행도 전혀 변화되지 않았다. 노동정책을 경제정책의 부정적인 부산물로 파악하고 산업평화를 최고목표로 설정하는 구태가 전혀 변화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먼저 김정권 노동정책의 핵심제도인 노사정위원회의 권한이 매우 제한적이다. 그것은 노동조건과 노사관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IMF 경제정책이나 정치전략의 기본적 내용에 대해서는 전혀 개입치 못하고 있다. 금융산업과 공공부문 구조조정과정은 그 대표적 사례이다. 이 과정에서 노사정위원회는 허구적 타협기구임이 분명히 드러났다.

둘째, 중앙 노사정위원회에서의 교섭태도와 달리 삼미특수강을 비롯한 많은 불법해고 사업장에 대해 방관으로 일관하고 있다. 또 전국의 각 사업장에서 일어나는 단체협약 파괴, 일방적 임금삭감과 체불, 사용자의 노조 공격 등에 대해서도 방관하고 있다.

셋째, 노동조합의 기본권리인 파업을 원천적으로 불법화하고 있다. 정부는 정리해고에 항의하는 모든 파업을 합법적 절차 준수 여부와 무관하게 불법파업으로 몰아세우고 있다. 관련장관의 회의, 담화문, 정부보고서에서 나타난 불법파업 규정은 관제언론을 통해 대규모로 유포되었다. 실제로 현대자동차, 부산지하철 등 핵심 파업사업장에는 이미 공권력을 투입했거나 지도부를 수배·구속하고 있다. 또 최근에는 군사정권 시절과 같이 조직사건도 조작하고 있다.

넷째, 노동측의 핵심적 요구인 실업방지, 산업별교섭체제의 도입, 경영참가 등에 대해서는 내용없는 구두약속(口頭約束)으로 일관하고 있다. 대통령은 선거공약이었던 경영참가에 대해서도 집권이후 "경영권개입은 절대 안된다"며 약속을 뒤집었다. 실업방지 약속에 대해서도 IMF-정리해고로 나타난 실업은 '원칙적으로' 필요하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다섯째, 민주노조운동의 시민권도 여전히 제약하고 있다. 행정적인 신고서 반려조치로 민주노총의 완전한 합법화를 행정적으로 봉쇄하고 있다. 그리고 5·1 노동절 집회나 5월 총파업에 대한 공안·치안기관의 대응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노동쟁의나 집회를 예의 감시·통제하는 것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결국 전체적으로 평가하자면 김대중정권의 노동정책에서 변화의 폭은 크지 않다. 대체로 김영삼정권의 노동배제전략의 연장선상에서 이를 보다 세련되고 강력하게 실행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개혁성은 과장된 것이거나 잘못 인식된 것이다. 단지 내용적으로 동일한 정책이 개혁의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에는 IMF경제위기 상황과 정권초반기라는 상황적 이유가 작용하고 있다.

1987년 이후 모든 정권은 집권초반기 유화적 노동정책을 실시했으나 집권안정기 이후 급격히 배제전략으로 전환하였다. 유화정책은 이른바 '민주화-개혁정권'의 정당성기반을 강화하고, 집권 초반기의 불리한 정치환경과 정치적 불안정성을 탈피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따라서 집권 직전 1기 노사정위원회의 노조활동 자유화(정치활동, 공무원·교원 단결권 인정)도 확대 해석될 수 없다. 그것은 억압적 군부정권의 잔재를 가진 1987년 노동정치체제의 해체, 노조활동 자유화정책의 '마지막 수순'에 불과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김영삼정권기의 개혁과 민주노총의 1997년 겨울총파업에 의해 기정 사실화된 것이었다. 이 때 개혁의 성격은 '지배블럭의 내적 합리성 제고를 위한 친자본적 개혁'(손호철, 1995: 276)으로 김영삼정권의 개혁과 동일하였다.

더 나아가 현재의 노동개혁은 노동계급의 이익을 대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것에 반하는 것이다. 개혁적 요소는 이미 집권전에 막을 내렸으며, 집권 후 정책은 명백한 반노동자정책으로 선회하였다. 노동배제전략이 직접적인 억압을 수반치 않은 것은 집권세력의 정치적 기반이 취약한 것과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보수대연합이나 내각제개헌으로 정계개편이 이루어진다면 상황은 크게 역전될 가능성이 크다.

또 노사정위원회의 참신성도 과장된 것이다. 김영삼정권 초기의 '노·경총 임금합의', 1996년 '노사관계개혁위원회'와 노사정위원회는 근본적으로 동일한 모델이다. 그것은 관제언론, 허구적인 합의제도, 타협적인 운동세력 등을 동원하여 노동운동지도부와 대중을 분리하고 전체 노동자계급의 이익을 배제하자는 전략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현정권의 노동정책을 개혁으로 볼 수 없는 보다 근본적 이유는 노자 간의 계급 역학관계가 변화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IMF라는 외부적 강제로 현재의 역학관계는 김영삼정권 후반기보다 노동측의 역량이 구조적으로 더 취약해진 상황이다. 국가·자본이 노동에 양보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굳이 찾자면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의 부정적 결과를 정치적으로 방어하기 위한 전술적 처방의 의미가 있을 뿐이다. 즉 중간계층을 포함한 전체 민중부문의 광범한 정치적 저항이 노조운동으로 집중될 가능성을 사전에 제약하고, 최대한도까지 통제해 보자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신노동정책은 과거의 헤게모니적 배제전략과 전혀 다르지 않다.

3. 노사정위원회의 본질 : 조합주의적 타협체제?

김대중정권의 노동정책에서 핵심 제도는 '노사정위원회'이다. 현재 정권은 노사정위원회가 1960∼1970년대 서구 사회민주주의체제에서 나타난 노사정 간의 '사회적 합의기구'와 같은 것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그리고 일부 연구자들도 서구의 신조합주의론의 맥락에서 노사정위원회를 본다. 그러나 우리의 노사정위원회는 조합주의적 타협기구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서구사회에서 사회적 합의기구 혹은 사회적 조합주의(societal corporatism)는 노동과 자본의 대립된 이해관계를 국가가 중재하여 직접 해결하는 제도적 장치였다. 그 핵심은 임금인상 억제와 물가안정-고용보장이라는 노자 간의 상반된 요구를 교환하고, 국가가 이를 정치·행정적으로 보장하고 뒷받침하는 것이다. 이 때 자본과 노동은 각자의 조직 내부(단위기업과 단위노조들)에서 각기 고용을 보장하고, 임금인상을 억제하는 조직적 통제의 책임을 부여받게 된다. 또 국가·자본은 인플레를 억제할 의무를 진다. 그러므로 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기본조건은 자본, 노동 양자 모두 중앙집권화되고 강한 권한을 부여받은 조직체제를 갖추는 것이다. 노동의 경우 그것은 중앙집중화된 산업별노동조합이다. 또 높은 조직률, 이념적 통일성과 노동정당의 강력한 후원도 필수적인 요소라 할 수 있다. 보다 거시적인 차원에서 신조합주의는 노자 계급역관계에서 노동의 협력이 절실히 필요할 만큼, 노동의 권력자원이 큰 것을 반영하고 있다.

이에 반해 한국사회의 구조적 조건은 노동운동 역량의 취약성, 기업별노조체제에서의 낮은 조직률, 조직의 분산성과 내부 분열, 노동정당의 부재 등 조합주의체제를 위한 토대적 기반이 전무(全無)하다.(주1)

① 기업별노조체제 : 기업단위 노조조직이 교섭권, 단체행동권을 갖고 있어 중앙조직의 노사정합의가 항상 거부될 가능성을 갖고 있다. 또 중앙교섭에 필요한 노동측의 요구가 단일하게 결집되기 힘들고 의사소통과정이 복잡하여 내부의 통일성을 유지하기 힘들다. 이와 같은 조건의 구조적 한계는 이미 1기 노사정위원회의 잠정합의안 추인 부결로 나타났다.

② 낮은 조직률 : 15%를 밑도는 조직률로는 교섭안이나 합의결과가 전체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반영할 수 없다. 따라서 서구와 같은 계급타협의 의미가 약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낮은 조직률로 노동측의 권력자원은 매우 취약하여 합의의 구조적 기반이 약하다.

③ 노조운동 내부의 균열 : 노사협조주의세력이 존재하므로 노동측의 단결력-교섭력이 결정적으로 취약하다. 이는 사용자, 정부가 이 균열을 이용해서 유리한 결과를 얻을 가능성이 크고 그만큼 합의의 여지가 작아진다.

④ 노동정당의 부재 : 노동운동의 정치세력화의 수준이 매우 낮다. 노동정당이 부재할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의 정치의식도 여전히 낮은 편이다. 관제언론, 물적 자원 등 막강한 이데올로기 자원을 갖춘 국가-자본을 상대로 유리한 결과를 얻어내고 강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므로 자율적이고 책임있는 교섭이 불가하다.

⑤ 국가-자본의 전략적 태도 : 앞 절에서 본 바와 같이 현 상황을 주도하고 있는 김대중정권과 재벌 등 지배블럭은 노동측과 실질적 타협을 이루어낼 의사를 전혀 갖고 있지 않다. 뿐만 아니라 노동운동역량의 취약성으로 사회 내의 여러 부문에서 반노조주의(反勞組主義)가 여전히 강력하게 작용하는 상황이다.

⑥ 교섭의 내용 : 내용적으로도 서구의 조합주의는 거시 경제정책(성장률, 고용조정, 물가, 이자율, 환율 등) 결정에 대한 노동측의 의사결정 참가를 내용적으로 보장한다. 반면에 우리의 경우 국가-자본은 IMF재협상과 같은 거시 경제정책에 대한 참가를 강력하게 거부하고 있다. 최근의 금융·공공부문 구조조정에서 보듯 IMF재교섭을 포함한 실업방지, 물가, 이자율 등 경제정책 기조와 관련된 사항에 대해 정부는 교섭할 의사가 전혀 없다. 결국 교섭의 의제는 '비결정'에 의한 '결정' 상태로 매우 제한되어 있고, 노동측의 참가는 포괄적 권한이 없는 '소방수'(fireman), '청소부' 정책참여에 불과하게 되었다.

⑦ 정책실행 : 김대중정권 지도부의 '의도'와 무관하게 노동행정·경제정책의 실행은 보수적인 관료행정에 의해 장악, 실행되고 있다. 개혁은 정권지도부의 책상머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 노동부관료의 에피소드는 노사정위원회의 정부 내 위상을 보여주는 지표이다.

요컨대 현재의 노사정위원회는 서구의 계급타협과는 무관하다.(주2) 그것은 조합주의의 형식적 틀만 유사할 뿐, 내용적으로는 신자유주의적 노동배제전략이다. 그 핵심적 요소는 대처·레이건주의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노동시장(고용)의 유연화, 노동조합에 대한 직접적 공격, 임금저하 등이다. 서구의 조합주의 정치에서 합의결과는 실업과 인플레 방지, 노동조합의 경영참가와 산업민주주의 확대, 경제민주주의제도 도입, 노조조직의 강화 등이었다. 그러나 이 주제들에 대해서 현재 정권과 자본은 강하게 반대하거나 추상적인 약속만 남발하고 있다.

4. 2기 노사정위원회

2기 노사정위원회는 대통령 지시로 갑자기 시작되었다. 직접적인 이유는 6월 초 대통령의 방미에 앞서 모양새를 갖추기 위한 사전정지작업이었다. 정리해고를 관철시키고자 한 1기와 달리 2기 노사정위원회에는 뚜렷한 쟁점이 없다. 민주노총의 참가가 문제로 되었을 때 정권과 자본이 '2기에서 노동측은 얻을 것밖에 없다'고 강변한 것도 이런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그렇다면 왜 정권과 자본은 2기 노사정위원회를 구성했는가? 정권과 자본의 의도는 무엇인가?

이것은 비교적 쉬운 문제이다. 민주노총이 분명히 했듯이 그것은 정리해고과정에서 노동측의 저항을 '사회적 합의'로 제압하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리해고 관철과 '산업평화의 실현'이라는 구체적 목표는 다를지 모르지만 노사정위원회의 본질은 하등 변화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하나 강조해 둘 것은 노사정위원회는 일차적으로 정치적인 성격을 갖는다는 점이다. 최근 2기 노사정위원회에서는 고용조정과정의 절차와 그것에 대한 노동의 참여,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대안적 정책의 마련, 합리적인 구조조정 등과 연관된 경제적 합리성의 문제가 쟁점이 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경제적 합리성의 문제가 아니며, 본질적으로 계급투쟁의 성격을 갖고 있다. 예컨대 현대자동차 사용자가 요구하는 것은 단순한 감원이 아니다. 그것은 10년간 노조가 구축해온 권력기반을 허물고 핵심 활동가를 이 기회에 제거하자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정권이나 지배블럭 내부의 수구파와 개혁파를 분별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노동측의 참가 여부를 논의할 경우 이 문제는 참여의 중요한 지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7월 23일 민주노총의 총파업이 예정되었을 때 정권은 강경대응의 방침을 여러 차례 밝혔고 전반적인 상황은 그렇게 진행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정권은 다시 노사정위원회의 틀을 유지하기 위해 상당한 양보(7월 22일 10개항 잠정합의)의 전술을 채택하였다. 이 과정에서 개혁파와 수구파의 갈등이 개입되어 있었고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개혁파가 다시 주도권을 쥐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리고 그 개혁파의 입지를 넓히기 위해 민주노총이 참여할 필요가 있다는 논리로 발전한다.

그러나 현재 구도에서 개혁파를 논의하는 것은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개혁-수구의 분류는 전체 국면이 개혁적인 것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있을 때 의미가 있다. 반면에 현재 구도에서는 경제정책과 노동정책의 기본방향이 신자유주의적인 퇴보로 설정된 상황에서 노동측을 유인하거나 제압하는 전술적인 대응 차이에 불과하다. 따라서 개혁적 세력이 존재할 공간 자체가 없으며, 있다 하더라도 유의미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구도가 아니다. 7월 22일의 대화공간을 열어 준 것은 개혁파가 아니라 울산지역을 중심으로 한 현장에서의 투쟁열기라고 보아야 한다.

정리를 하면 2기 노사정위원회의 근본적 동인은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이 야기할 정치적 부담에 있다. 사회적 합의라는 조직적·이데올로기적 정책수단 속에는 노동계급에 대한 분할지배와 이데올로기적 공격이 포함되어 있다. 그것은 주어진 경제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행정조직과 언론을 동원하여 노동측을 고립·배제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그리고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서 정리해고 문제를 여론과 절차의 환상을 통해서 돌파하는 헤게모니적 통제수단이다. 또 이 과정에서 민주노조운동 내부의 약점과 균열을 최대한 확장하는 지배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그것은 대규모 실업과 노동조건의 악화가 야기할 계급적 연대의 확장을 막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 노동계급을 산업별, 부문별, 기업별로 고립시키고, 나아가 기업별체제의 현장-중앙지도부의 조직적 취약성을 최대한 공격하자는 것이다. 중앙교섭이라는 성격상 노사정위원회는 그 자체가 노동계급 내부에 혼란과 갈등을 야기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민주노총 상층간부에 대한 밀착관리와 현장요구의 방관, 차별적인 사업장별 대응전술(예컨대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대기업과 중소기업, 민간부문과 공공부문 등), 전략적 목표에 대한 완강한 고수 등이다.

5. 김대중정권의 노동정책의 한계와 전망

지난 10년 간의 전투적 노동운동은 전체 사회의 민주화와 노동정치체제의 반민주성 간의 모순으로부터 근원하였다. 그 결과는 노조의 조직적 발전과 대사업장에서의 지속적인 실질임금 상승이었다. 반면에 고용유연화·작업장 합리화는 단위노조의 강력한 저항으로 상당 정도 제약되어 있었다. 이와 같은 노동정치의 구도는 최근 노동조합의 활동이 자유화됨으로써 상당히 불식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자유화된 노사관계가 법개정만으로 정착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대중정권기 노동정책 또한 일정한 구조적, 상황적 한계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김정권의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 고용정책과 노사관계정책은 모순적인 관계에 놓여있다. 그것은 신자유주의적인 노동정책을 조합주의적인 형식으로 관철하려는 최근의 정책혼선에서도 나타난다. IMF의 요구에 순응하는 경제정책 하에서 노동정책의 선택폭은 매우 제한적이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초유의 대규모 실업, 임금삭감과 근로조건 악화, 단체협약 개악 등 노조활동에 대한 전면적 공격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다. 반대로 노조활동이 자유화된 상황에서 노동측은 국가의 노동배제전략에 대해 대규모 저항을 야기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노사정위원회와 민주노총의 대응에 따라, 그리고 정권의 대응능력에 따라 강도와 시점은 가변적일 수 있으나 노동저항 자체를 회피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노동측의 저항은 정권의 이른바 민주정권의 정당성기반과 노동배제전략 사이의 모순을 심화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제반 이데올로기공세로 노동을 배제하던 과거 방식의 노동배제전략이 중간계급의 몰락으로 효력이 크게 약화된 상황이므로 노자 대립의 강도는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또 반대로 IMF정국으로 은폐되어 있는 지배블럭 내부의 정치적 불안정성은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거나 앞당길 것으로 보인다. 하반기 이후 정치적 환경의 변화가 정권의 취약한 권력기반이 안정화되거나 반대로 더 약화될 경우, 정권은 개혁의 외피를 벗어던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미주>

1) 과거 노경총 임금합의나 노사관계개혁위원회가 노동배제를 위한 절차적 장치로 귀결된 것은 우연한 일이거나 의도적 기만성 때문만은 아니다. (신광영, 1998; 김수진, 1998; 노중기, 1995)

2) 민중주의(populism)적 동원이라면 그 때 조합주의의 성격은 남미와 유사한 '국가조합주의'(state corporatism)체제에 해당된다. 여기서는 그것이 포섭적 형식이든(멕시코), 배제적 형식이든(브라질, 아르헨티나) 모두 노동계급을 사회경제적으로 배제하는 체제이다. 그러므로 노사정위원회는 근본적으로 배제기구임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때에도 동원되는 노조는 산별노조의 집중성과 통일성을 갖추어야 하므로 우리 상황과는 크게 다르다.(노중기, 1993)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