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태 연
민주노총 기획부국장
1. 노사정위원회 경과
1) 제1기 노사정위원회
(1) 제1기 노사정위원회의 출발
97년 11월, 김영삼정권의 IMF구제금융 신청을 전후하여 경제파탄과 대량해고라는 상황에 직면한 민주노총은 노·사·정 사회협약에 대해 매우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97년 3월, 정리해고 법제화가 이루어진 이후 고용대책 차원에서 노사정으로 구성되는 고용안정위원회 구성을 이미 제안한 바 있고, 경제파탄이 본격적으로 가시화된 97. 11. 13, 전국단위노조대표자 결의대회에서 노사정 동수로 구성되는 고용안정위원회 구성을 요구했으며(1,000인 선언), 동년 12월 10일 중앙위원회에서 '재벌개혁·고용안정에 대한 제도개선과 노·사·정 사회적 협약을 공세적으로 제기한다'는 방침을 결정했다. 이어 98년 1월 7일 속리산에서 열린 중앙위원회에서 '민주노총 주관하에 노사정 중앙교섭과 총력투쟁을 병행한다'는 98년 투쟁방침을 최종 확정했다.
IMF관리체제 하에서 민주노총이 노사정 사회협약을 주요한 전슬로 채택한 근거는 다음과 같았다.
"국가부도상태에서 제기되는 대량해고·고용불안 문제로만 수세적으로만 접근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이 기회에 한국자본주의의 구조적 문제인 재벌체제를 해체하고, 노동자의 입장에서 한국자본주의를 근본적으로 개혁할 수 있는 실질적 계기로 삼아 경제민주화를 쟁취할 수 있도록 공세적으로 접근하여야 한다. 현재의 국가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동자의 사회적 참여없이 불가능하다는 자신감과 조합원의 총력투쟁 결의를 배경으로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97.12.10, 중앙위원회)." "이번 경제위기와 그에 따른 노동자의 피해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기 위해서는 노동자의 참여를 제도화해야 한다. 노ㆍ사ㆍ정 3자 동수 기구를 상설화해 경제정책과 노동정책 전반에 관해 매 시기별로 요구되는 중앙협정을 체결한다(98.1.7, 중앙위, 98년 사업방침)."
또한 투쟁에 근거한 교섭이라는 노사정 사회협약의 기본원칙을 설정했다. "사회적 협약은 밀실합의·내용 없는 들러리합의, 또는 투쟁 없는 참가가 되어서는 안된다. 이를 위해 대중투쟁을 기본으로 재벌해체, 고용안정 요구를 적극적으로 제기해나가야 할 것이다(98.1.7 중앙위원회, 98년 투쟁방침)." 그러나 사회적 협약의 기초가 되는 투쟁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매우 조심스러운 판단을 함께 하고 있었다. "97년 1월에는 전국민적 지지 하에 총파업을 전개할 수 있었지만, 98년 1월은 주변 여건이 크게 달라져 자칫 잘못 대응하면 노동운동의 몰락마저 자초할 수 있는 고립무원의 상태라는 점을 감안하며 신중한 대응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98.1.7 중앙위원회, 98년 투쟁방침)." 투쟁에 대한 이러한 조심스러운 판단은 이후 제1기 노사정위원회 진행과정에서 교섭을 뒷받침하기 위한 강고한 투쟁을 준비하는 데 걸림돌이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2) 제1기 노사정위원회의 경과
이렇게 시작된 제1기 노사정위원회는 98년 1월 15일 발족되어 2월 6일, 정리해고제 개악과 근로자파견법 제정을 주요 골자로 한 노사정 잠정합의가 이루어지기까지 가동되었다.
민주노총이 애초에 노사정위원회에 대해 부여했던 적극적 의미보다는 정권이 의도하는 정리해고 법제화로 모든 중심이 이동되었다. 노동3권과 노동조합 정치활동에 관한 몇가지 조치들이 반대급부로 합의되었지만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에 대한 민주노총의 핵심적 요구사항은 대부분 2차 개혁과제로 유보되고 IMF합의사항에서 이미 기정사실화된 부분들이 합의사항에 열거되었다.
이런 상태에서 2월 6일 잠정합의가 이루어졌으나 2월 9일 대의원대회에서 잠정합의안이 부결되고 집행부가 사퇴하고 비대위가 구성되는 사태를 초래했다.
2) 제2기 노사정위원회
(1) 5. 27 총파업투쟁과 노사정위원회 참여 결정
98년 2월 6일, 제1기 노사정위원회 잠정합의와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의 부결결정 이후 1기 노사정위원회는 종결되었다. 정부는 잠정합의를 기정사실화하면서 2월 14일 국회에서 정리해고제 2년유예조항 삭제, M&A에 의한 정리해고제 등 근기법개악과 근로자파견제 제정을 단행했다. 노사정위원회에서 약속했던 부당노동행위 척결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들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2, 3월을 보낸 노동자들은 4월초부터 명동성당농성을 중심으로 부당노동행위척결투쟁을 전개하기 시작했고, 민주택시연맹의 완전월급제 쟁취투쟁, 기아자동차 3자매각반대투쟁 등 각 조직들의 사안별 투쟁이 전개되었다. 민주노총은 제2기 집행부가 출범한 후 4. 16 전국동시다발집회, 노동절투쟁 등으로 고용안정쟁취 투쟁의 전열을 정비하면서 5∼6월 총력투쟁을 준비해들어갔다.
한편 6. 4지자제 후 금융·공공부문에 대한 본격적인 구조조정 추진을 준비하고 있던 김대중정권은 6월 10일 방미를 앞두고 외자유치의 여건조성을 내세워 제2기 노사정위원회 출범을 추진했다. 민주노총의 참여없는 노사정위원회로는 모양이 갖추어지지 않기 때문에 여론공세를 통해 민주노총의 노사정위원회 참여를 압박해 들어 왔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정리해고제 철폐 등 노사정위원회 참여를 위한 4대 선결과제를 제시하고 대정부 직접협상을 요구하면서 5.27총파업투쟁에 돌입했다. 김대중정권은 6월 3일 일단 2기 노사정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민주노총에 대해서는 강온양면 전술로 대응해 왔다.
6. 10 전면총파업을 준비하던 민주노총 내에서는 투쟁동력이 부족하다는 판단이 대세를 이루면서 6. 5 노정합의가 이루어졌고, 민주노총 중앙위원회와 대의원대회에서 노정합의 수용과 사실상 노사정위원회의 참여가 결정되었다.
(2) 노사정위원회 불참선언
이로 인해 6월 19일, 민주노총이 참여한 가운데 제2기 노사정위원회가 실질적으로 출범했다. 사실 김대중정권으로서는 구조조정과 관련하여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시급히 합의를 도출해내야 할 사항이 거의 없기 때문에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한 그 자체로써 김대중정권은 제2기 노사정위원회의 목적을 달성하고 있는 셈이었다. 이후 과정에서도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원회에서 뛰쳐나가 투쟁으로 나가지 않도록 하면 목적이 달성되는 것이었다. 노사정위원회에서 어떤 결론이 나지 않아도 강제적 구조조정에 의한 정리해고 단행은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견상 2기 노사정위원회의 의제가 노동자들의 요구사항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잃을 것이 없어 보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민주노총은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요구를 관철시키지도 못하고, 투쟁의 기회도 상실하면서 결과적으로 또 한번 구조조정에 의한 정리해고를 추인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판단 하에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노동자들은 당면한 고용안정문제를 관철하기는 어렵지만, 공공부문 구조조정 문제, 민간부문 구조조정과정에서의 고용안정문제, 사회개혁 등에 대해 자본과 정권 측에 공세를 가하기 위한 공간으로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 i)노사정위원회에 대해서 민주노총은 일정을 주도하고, ii)노사정위원회에서의 논의가 사회적 쟁점이 될 수 있도록 긴장관계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대응방침을 결정했다.
노사정위원회 대응과 함께 하반기 투쟁방침을 결정했다. 5. 27 총파업에 대한 평가를 통해 각 조직의 현안을 조합한 수준의 요구로는 민주노총 차원의 대정부 총파업투쟁을 하기에 무리라는 결론을 도출했다. 이런 인식 하에서 임원, 지도위원, 산별연맹·지역본부대표자 수련회(6. 23), 중앙위원회(7. 8), 7. 12 임원·5개연맹위원장 간담회, 산별연맹대표자회의(7. 13) 등을 통해 "각 조직의 현안문제를 해결하고 강제적 구조조정을 저지하기 위해 중앙이 각 연맹의 투쟁을 7월 중순으로 집중시켜 내고, 만약 극심한 탄압이 자행되거나 구조조정을 강행한다면 민주노총 차원의 저지선으로 대응한다. 이런 성과를 토대로 하반기 전면적 사회개혁투쟁을 준비한다"는 하반기 투쟁방향을 결정했다.
그러나 제2기 노사정위원회에서 6. 5 노정합의 사항이 전혀 지키지지 않는 가운데 일방적 구조조정과 정리해고가 단행되었다. 부당노동행위 척결 약속이 이행되기는커녕 현장에서는 임금체불, 임금삭감, 단협개악, 노조탄압이 더욱 기승을 부리고, 노동절과 5. 27 총파업 관련 탄압문제도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반면 55개 퇴출기업 발표(6. 18), 5개 퇴출은행 발표(6. 29),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신고(6. 30), 11개 공기업민영화계획안 발표(7. 3) 등 일방적 구조조정이 강행되었다.
6. 5 노정합의의 하나인 '구조조정의 충분한 사전협의'는 완전히 휴지조각이 된 것은 물론이고 공공부문 구조조정의 경우는 정부측이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구조조정의 사전협의라는 형식을 갖추기 위해 공공부문 구조조정 특위를 소집했으나 요식행위에 그치고 결국 7월 3일 공공부문 구조조정안을 발표했다.
강제적 구조조정과 임금체불, 단협개악, 부당노동행위 등 임단투의 현안에 직면한 해당 연맹들(공공, 공익, 금속, 금융, 병원 등)은 7월 중순 연맹별 총력투쟁을 준비해 들어갔고, 민주노총은 산별연맹대표자회의(7. 13), 중앙집행위원회(7. 14) 등을 통해 연맹의 투쟁을 중앙이 시기집중 방식으로 전국적 전선을 치고, 정부가 요구를 전혀 수용하지 않고, 전면적 탄압을 자행할 경우 민주노총 차원의 총파업에 돌입한다는 결정을 했다.
이와 함께 7월 10일, 한국노총과의 공동기자회견을 통해 노사정위원회 선결과제 4가지를 발표하고 불참선언을 했다.
(3) 7월 투쟁과 참여 결정
7. 14∼16 기간에 공공, 공익, 금속, 금융을 중심으로 5. 27 총파업과 비슷한 규모의 투쟁을 전개했다. 이에 대해 김대중정권은 민주노총 사무총장을 비롯한 100여명의 간부, 조합원들을 구속, 수배, 연행하고 조직사건을 터트리는 등 강경탄압 기조를 분명히 했다. 민주노총은 7. 23 총파업투쟁을 위해 7. 15 중앙집행위원회에서 7. 23총파업의 선결과제 (6. 5 노정합의 이행, 청문회 개최,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때까지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중단, 탄압중단 등) 4가지를 투쟁요구로 확정했다. 선결과제 이외의 당면요구에 대해서는 교섭국면으로 들어가서 해결한다고 결정했다. 이러한 요구의 수정과 함께 사실상 7. 25 이후 투쟁이 불가능하므로 7. 23∼24 총파업투쟁을 노숙투쟁 등 강력한 투쟁배치로 대정부 교섭력을 높인다는 전술기조를 수립했다.
총파업투쟁 돌입에 임박한 22일 오후 8시, 교섭테이블이 마련되어 1차 정부안이 제시되었고, 산별대표자회의(7. 22 23시)에서는 하기휴가 등으로 7. 25 이후 투쟁이 불가능하다는 역량판단 하에 삼미특수강, 현대자동차, 한국통신, 퇴출은행 등 주요 현안문제에 대한 해결을 전제로 교섭타결을 이끌어 내야 한다고 결정했다.
23일 오전 8시까지 진행된 최종 교섭결과 청문회 개최, 퇴출기업(은행) 고용보장, 삼미특수강 문제, 이후 진행될 공공부문 구조조정 사전협의 등에 대해서는 일정 성과가 있었지만,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의 중지(한통, 현대자동차 등) 요구는 해결되지 못했다.
그러나 공공연맹의 23일 파업을 위력적으로 전개하는 것이 어렵고, 금속, 공익 등 주요 파업대오도 25일부터는 파업이 불가능하다는 역량판단을 토대로 총파업을 유보하고 정부 최종안 중 미타결 2개항에 대한 교섭을 계속한다고 결정했다. 이어 7월 27일 미타결 2개항에 대한 교섭을 마무리하고 노사정위원회 참여를 결정했다.
2. 노사정위원회의 성격과 대응방향
1) 노사정위원회의 성격
노사정위원회의 성격과 대응방향을 논의하려면 노사정위원회에 대한 평가가 전제되어야 한다. 노사정위원회의 성격에 대해 노동계와 관련 있는 학계를 중심으로 제출된 견해는 민중주의적 개혁, 민주적 조합주의라는 긍정적 평가에서부터 신자유주의적 조합주의, 노동의 고립·배제전략 등 부정적 평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정작 민주노총 내에서는 공식적인 논의가 매우 부족하다.
제1기 노사정위원회에 대한 민주노총의 공식적인 평가는 98년 2월 9일 대의원대회의 합의한 부결결정 외에는 아직 공식적인 평가가 없는 실정이다. 2월 9일 대의원대회의 부결결정은 1기 노사정위원회에 대한 평가를 함축하고 있지만, 노사정위원회에 대한 총체적인 평가가 아니기 때문에 노사정위원회에 대한 조직내의 견해는 여전히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다. 2기 노사정위원회 역시 현재진행형으로 아직 공식적인 중간평가는 없는 실정이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노사정위원회 과정을 통해 민주노총 내에서 초기의 노사정위원회에 대한 인식은 사실상 변화가 초래되었다. 즉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상당 정도의 사회개혁과 고용보장책의 마련이 가능할 것이라는 시각은 환상이라는 점이 현실로 드러났다. 노사정 동수로 구성되는 고용안정위원회로 출발하여 노사정 3자의 실질적 참여기구의 제도화(98. 1 .7 중앙위, 98 투쟁방침)라는 발전방향을 갖기까지한 노사정위원회의 상은 IMF상황 하에서 현실적으로 나타낸 모습과는 매우 상이한 것이었다.
1, 2기 노사정위원회에서 드러난 현상적인 결과들, 즉 재벌개혁을 중심으로 하는 제도개혁은 그 내용이 매우 추상적인 것이고 그나마 노사정위원회에서의 합의보다는 이미 IMF합의에 의해 기정사실화되어 있던 부분에 불과하고, 노동정책상의 전향적 조치들(단결권 강화, 부당노동행위 척결, 산별체제 전환, 경영참가보장 등)은 대부분 추상적인 선언 수준에 머무르는 것이므로 그 시행 여부가 매우 불투명한 것이다. 반면에 구조조정과 이와 관련된 고용유연화(정리해고 법제화, 근로자파견제)에 대해서는 노동자들의 동의여부와 관계 없이 관철한다는 목표하에 노사정위원회는 노동자들의 저항을 최대한 약화시키는 통로로 활용되었다.
결국 노사정위원회는 개혁의 통로이기보다는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정책을 관철시키기 위한 도구임이 자명하다.
2) 노사정위원회 대응방향
1, 2기 노사정위원회를 거치면서 민주노총 내에는 적어도 공개적으로는 노사정위원회를 개혁을 위한 유력한 기구로 주장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럼에도 민주노총의 주요의결기구에서 노사정위원회 재참가 결정을 두 번이나 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노사정위원회의 불참이 고립을 자초하여 고용안정쟁취투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 투쟁의 결과를 구체적인 성과로 가시화시킬 수 있는 교섭수단이 필요하다는 점 등이 노사정위원회 참여 결정의 근거로 되어 왔다.
정권과 자본이 노사정위원회를 신자유주의 고용유연화정책의 관철 도구로 활용하고 있음이 분명함에도 이런 점들 때문에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원회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 어려운 조건에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노사정위원회의 전술적 참여라는 민주노총 방침이 유의미하기 위해서는 투쟁력에 근거한 교섭이라는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그동안의 투쟁과정에서 투쟁력에 근거한 교섭이라는 원칙은 언제나 강조되었다. 그러나 5. 27 총파업이나 이번 7월 투쟁 과정에서 결코 만족스럽지 못한 합의사항에도 불구하고 투쟁유보 및 노사정위원회 참여를 결정한 배경에는 투쟁동력의 부족이 자리잡고 있었다.
위력적인 총파업을 조직하지 못한 데는 여러 측면의 원인이 있다. 중앙 지도부가 각 조직에 대해 계획적으로 투쟁을 조직하지 못한 문제도 있고, 각 연맹이 단위노조에 대한 지도력이 매우 취약하여 단사를 총파업투쟁으로 조직하지 못한 문제도 있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의 이면에는 노사정위원회 국면에서 정권과 자본의 매우 효과적인 분할책이 도사리고 있다. 기업별노조체계 하에서 정권과 자본은 구조조정의 진도와 강도를 조정하여 연맹간, 단사간의 연대를 가로막고 있다. 탄압과 미봉책으로 연대를 파탄시키고 있다.
5∼6월 총력투쟁과 7월 투쟁이 민주노총의 명실상부한 총파업, 즉 각 조직의 현안문제를 조합한 투쟁이 아닌 공동요구를 중심으로 한 투쟁이 되지 못한 것은 바로 이러한 사실의 다른 표현이다. 하반기에 조합원 교육선전을 통해 사회개혁의 공동요구를 만들어 명실상부한 총파업투쟁을 한다고 하지만 각 조직이 기업별노조체제 하의 정권자본의 분할책을 간파하고 새로운 연대의 기풍을 만들지 못하면 요원한 과제이다.
민주노총이 7. 23 합의로 노사정위원회의 재참가를 결정했지만 또 다시 불참선언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은 필연적으로 올 수밖에 없다. 그 상황을 민주노총은 대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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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노/정/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