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사업장 고용·노조승계 투쟁 사례
- 금속연맹 동해노동조합 투쟁을 중심으로 -
전 용 석
노동자정치조직 건설을 위한 구로추진위
1. 동해노조 투쟁의 계기 및 배경
IMF 상황을 빌미로한 기업의 일방적 구조조정과 정부의 외자유치 정책으로 기업의 인수 합병, 양도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그런데 고용에 대한 아무런 대책없이 진행되는 인수합병, 양도의 과정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정리해고 당하고 있고, 이 과정에서 자본의 대대적인 노조분쇄 책동이 거세지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사측은 고용·노조승계를 거부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수를 자산매각 방식으로 위장하는 등 불법 부당 노동행위를 서슴치 않고 있다.
주식회사 [동해]의 문제는 최근 자본의 고용안정 파괴와 노조탄압의 양상이 종합적으로 압축되어 있는 사례 중 하나다. 동해는 서울 구로 3공단에 있는 200명 규모의 중소사업장이다. 주로 현대자동차에 전자부품을 납품하는 사업체로서, 전자사업부와 전장사업부를 두고 있다. 동해노조(위원장 이희영)는 지난 89년 한국노총 산하의 노조로 출발하였지만 98년 2월 민주노총에 가입되어 있다. 지난 3월 중순 일본의 다국적 기업인 한국오므론전장(주)에 양도되는 과정에서 노조원 9명을 제외한 다수가 상여금 100% 삭감과 재취업 동의서 재출에 동의하여 재입사했다. 동해의 채 철 사장은 IMF 이후 자동차생산이 위축되자 부도위기를 유포하면서 임금, 상여금을 체불하는 한편, 비밀리에 오므론전장과 협상을 진행하여 3월 20일 자산매매 계약방식으로 양도하고 말았다. 이미 설비를 철수하고 생산을 중단한 전자사업부(카 스테레오 제작)를 동해에 남겨두고 공장부지와 건물, 기계설비, 영업 등 모두를 한국오므론 전장에 양도한 채 철 사장은 한국오므론전장의 공동대표로 들어앉아 있다. 채 철 사장은 명목 뿐인 동해를 한국오므론전장과 분리하고, 노동자에게 '고용이냐? 노조냐?' 양자택일 할 것을 협박하면서, 사직서 재출을 통한 재입사와 상여금 삭감에 항의하는 9명의 조합간부와 조합원을 정리해고했다. 현재, 노조위원장과 조합간부 6명이 사측에 맞서 110여일 동안 회사 앞에 천막을 치고 철야 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2. 사측의 대응과 이에 맞선 노조의 투쟁
동해노조는 지금까지 이렇다 할 투쟁의 경험이 없고 다수가 나이어린 여성조합원으로 구성되 있는 등 상당히 어려운 조건에서 투쟁하고 있다. 사측은 지난 년말부터 경제위기 상황을 빌미로 임금, 상여금을 체불하기 시작하면서 교섭을 진행하여 노조승계, 고용승계를 보장한다고 하여 노조를 안심시키다가 오므론전장과 계약이 완료되자마자 하루아침에 이를 번복하고 9명을 정리해고 했다. 사측은 가족을 협박하여 강제 사직서를 재출케 하여 이 과정에서 3명이 투쟁에서 이탈하고 말았다. 경비를 증원하여 감시를 강화하는 한편 현장의 사원들에게 "노조 때문에 회사가 부도날 수 있고, 그러면 퇴직금도 못받을 것이다", "외국인 투자자를 불안케 하여 투자유치를 방해하는 부당한 반노동자적 행위(?)를 중단하라"는 등 노조와 현장 노동자들을 지속적으로 이간질하고 있다. 동해노조는 연맹과 서울본부, 지역 단위사업장의 노조위원장, 단체대표로 [동해 대책위]를 구성하고 노동부 항의 방문과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 여부 판결을 요청하는 한편, 지역의 노조, 단체와 함께 매주 1회 회사 앞에서 집회를 개최해 왔다.
동해노조의 투쟁은 구로지역에서 IMF 이후 첫 정리해고, 노조탄압의 사례로서 지역의 단결과 연대를 강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지역의 노조와 단체는 '고용안정 쟁취와 IMF 대응을 위한 남부지역 공대위'를 결성하여 동해노조를 포함한 투쟁사업장(태광하이텍, 천지산업, 갑을전자, 남부지역 금속노조 산하 영일, 광진 분회 등)과 공동투쟁을 조직하고 캠페인과 토론회 개최, 부당노동행위 고발센터운영 등의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동해노조와 공대위를 중심으로 하는 끈질긴 투쟁의 과정에서 지난 6월 24일 서울지방노동위는 사업의 양도 인수과정에서 부당해고한 동해노동조합 간부와 조합원 9명에 대해 원직복직은 물론 밀린 임금을 지급하라는 판정을 내렸다.
3. (주)오트론의 고용·노조 승계 거부 사례
전국의 단위사업장에서 자행되는 임금체불과 삭감, 노동조건의 악화, 정리해고 등의 불법 부당노동행위로 인하여 노동자의 삶은 벼랑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구로지역에서도 IMF를 빌미로한 '노동자 죽이기'는 예외없이 진행되고 있는데, 이중에서도 인수 합병시 사측의 고용, 노조승계 거부로 인한 문제는 그 심각성이 한층 더해가고 있다.
동해를 필두로 최근 퇴출기업으로 선정된 한화그룹 계열사인 (주)오트론의 문제를 예로 들수 있다. 사측은, 오트론이 그룹내 계열사인 한화정보통신과 사장에서 영업에 이르기까지 이미 통합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생산을 위한 기계설비까지 이전되어 있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자산분리 매각이라는 억지를 부리며 위장폐업을 획책하고 있다. 동해의 경우와 같이 조합원을 포함한 전사원에게 사직서와 재입사 원서를 강제로 재출케 하고 이를 거부하는 11명의 여성 노동자를 지난 6월, 징계 및 정리해고 했다. 11명은 현재 [오트론 대책위](위원장 이점숙)를 결성하여 고용승계와 민주노조를 결성하기 위한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사측은 노-노 갈등을 야기하는 한편, 관리직 사원을 동원하여 조합원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머리채를 잡아끌고 뺨을 때리는 등의 폭행으로 작업현장에서 끌어내 두평 남짓의 교육실에 감금하고 감시와 협박을 일삼았다. 오트론은 통신장비를 생산하는 업체로서 최근 PCS 제작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오트론노조(위원장 신성균)는 한국노총 산하로 10년에 걸쳐 노조활동을 해오고 있다. 그런데 최근 사측이 상여금 삭감에 항의하여 회사 밖에서 선전물을 배포하던 조합원을 징계하고, 이를 빌미로 부당한 해고를 하는데도 방관하고 있는가 하면, 노조를 기습적으로 자진해산하는 과정에서 조합원을 폭행하기까지 하여 물의를 빚고 있다. 오트론노조는 노조와 고용승계 투쟁을 전개해야함에도 스스로 노조를 해산하여 결과적으로 사측의 위장폐업에 동조하고 있으며, 자산 매각이라는 방식으로 자행되는 정리해고를 방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오트론 대책위]는 '고용안정 쟁취와 IMF 대응을 위한 남부지역 공대위'와 함께 회사 앞 집회와 선전전 등을 전개하며 농성투쟁하고 있다.
4. 중소사업장 노조의 올바른 대응을 위하여
삼미특수강의 투쟁사례에서 나타났듯이 국가기관의 복직판정에도 불구하고 고용승계는 이행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동해 또한 지방노동위원회에서 복직판결이 났지만 법적인 강제력이 없어 사측은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노동부의 형식적인 입건조치와 소액의 벌금이 고작인 상황에서, 사측은 중노위로 소송을 이월하여 사건을 장기화함으로써 노조가 제풀에 지쳐 스스로 포기하게 하는 전술로 일관하고 있다. 또한 인수·합병시 고용승계가 법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고 대법원 판례 정도가 있을 뿐 이어서 법적인 대응에 어려움을 초래하고 있다. 삼미특수강의 경우에도 인수·합병의 과정에서 노조가 완전히 배제되었기 때문에 노조는 이를 전혀 감지하지 못하다가 막상 알게되어 투쟁이 전개될 시점에는 노조가 일방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긴장을 늦추지 않고 초기에 강력한 투쟁으로 사측의 기도를 무력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경제위기 상황을 암묵적으로 인정하여 사측의 임금체불과 삭감 등을 부분적으로 수용해 들어가는 순간 결국 훨씬 더 고통스러운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는 사실을 여러 사례가 입증하고 있다.
또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인수·합병시 발생하는 고용문제에서 대개의 경우 노-노 갈등이 초래된다는 점이다. 어용노조와 관리직 사원은 기본이고 현장의 동료, 조합원까지 사측의 고용을 빌미로한 이간질에 쉽게 흔들리는 경우를 보이고 있다. 평소에 사측의 이데올로기 공세를 깨기 위한 노조의 교육, 선전이 체계적이고 항상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절실한 문제인지 깨닫게 하고 있다.
게다가 대개의 경우 투쟁이 장기화되고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투쟁에 돌입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쉽게 지치지 않기 위한 투쟁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개발해야 한다. 또한 '고용이냐? 노조냐?' 등의 사측의 공세에 내부 결속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에 원칙과 실리에 대한 판단을 명확히 하면서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문제로서, 고용안정 쟁취투쟁에서 대공장 중심의 관점만이 아니라 중소사업장 관점에서의 대응전술이 시급히 개발되어야 한다.
|
한/노/정/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