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부터 새로운 기획시리즈로 '과학과 삶'이 연재됩니다.
지금 우리는 스스로 인식하던 아니던 첨단과학의 영향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처럼 과학이 우리의 삶과 점점 긴밀하게 연결되는 것과 동시에 매우 전문화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전문화된 과학과 무지한 다수 인간이라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기획연재 '과학과 삶'에서는 과학을 소재로 과학 그 자체를 이해하는 것과 더불어 인간생활에 어떻게 활용되어야 하는가를 철학적으로 접근하고자 기획되었습니다.
이 란은 관심있는 몇 분이 공동으로 참여하기로 하였으며, 우선 첫번째로 연구소 회원이신 최형록씨가 당분간 작성해 주시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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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칼럼버스의 산타 마리아 호에 냉장고가 있었더라면 선원들이 괴혈병(신선한 야채의 섭취 부족으로 발생)으로 죽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레닌이 전세계에서 일어나는 소식을 전해 주는 BBC 뉴스를 볼 수 있었더라면, 대동여지도를 제작하느라고 조선 8도를 걸어다닌 김정호에게 자동차가 있었더라면, 근대 과학의 발전에 있어서 사고 실험(Thought experiment)으로 관성의 법칙을 세운 갈릴레이가 컴퓨터 시뮬레이션(Computer simulation)을 할 수 있었더라면, 그리고 시름 속에 일성호가로 애끓던 이순신에게 이동 전화가 있었더라면? 만약 당신들에게 이런 것들이 사라져 버린다면? 오늘날 우리는 생활 필수품의 소비를 통해서 어렵지 않게 기술 그리고 과학의 성과와 비중을 느낀다. 그러한 소비의 편리함과 느긋함은 과학기술혁명에 근거하는 현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노동과정) 앞에서 사라진다. 노동운동의 성장에 대해서 자본가계급이 사무 자동화, 공장 자동화로 대응함으로써 노동자는 노동소외의 심화로, 자신의 정체성(Identity)에 대한 혼란으로, 그리고 실업으로 생존권이 위협당함으로써 심신의 고통을 받게 되었다. 미국의 진보적 영화감독인 올리버 스톤(O. Stone)의 영화 [J. F. K]는 대통령 아이젠하워의 퇴임 연설로 시작한다. 그는 미국 사회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 군산(軍産)복합체임을 지적한다. 즉 베트남전에 더 이상 개입하지 않으려는 케네디의 정책이 자신들의 이윤 창출과 권력 확대에 장애물이 된다고 판단한 군산복합체의 Power elite들이 케네디 암살의 배후 세력임을 스톤은 보여준다. 이 군산복합체야말로 과학기술을 반(反)인간적으로 이용하는 주범이다. 메피스토펠레스([파우스트]의 악마)는 '인간이 어떤 동물보다 더 동물적으로 사는데 이성을 써먹고 있다'고 말한다. 이성적 노동의 소산인 과학기술은 자본주의적 사회구성체를 극복할 때 비로소 인간해방을 위해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과학기술에 대한 문제의식은 상호 관련된 세 영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번째 문제 영역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노동과정)에 있어서 과학기술 혁명의 의미이다. 두번째는 과학 지식의 생성과 관련된 것으로서 인식론적, 인지 과학적 문제 영역이다. 세번째는 과학의 윤리적 측면, 특히 생명의 존엄성과 관련된 문제 영역이다. 본란에서는 이상과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현대 과학이 삶에 대해서 제기하는 도전적 문제점들의 성격을 짚어 보고 불완전하나마 제시되는 해결 방안들을 소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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