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현장에서 미래를』36(1998/09)

대학개혁, 이렇게 생각한다

강 내 희(중앙대 영문학/문화연구)

신자유주의 물결이 대학사회를 강타하고 있다. 시장, 생산성, 경쟁력 등을 제일로 내세우며 세계화하고 있는 자본의 논리가 사회 전반에 걸쳐 구조조정을 강요하는 가운데 그 여파가 대학에까지 밀어닥친 것이다. 대학에 신자유주의 공세가 나타난 것은 물론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김영삼정권의 교육개혁위원회가 1995년 교육개혁안을 발표하면서부터 대학정책은 이미 신자유주의를 채택했던 것이다. 이후 교육정책 당국자들은 대학교육을 수요자 중심으로 전환시킬 것과 그를 위해 특히 학부제나 복수전공제 등의 제도를 도입할 것 등을 대학들에 요구해왔다. 이런 요구는 김대중정권이 출범한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작년말 "신자유주의 십자군" IMF가 외환위기를 빌미로 국내에 진출한 이후 신자유주의 노선은 한층 더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현행 대학정책의 핵심은 시장논리를 대학사회에 도입하는 데 있다. 요즘 대학의 행정담당자들은 "교육에도 원가 계산이 필요하다", "수요가 없는 학과는 없앨 수밖에 없다"는 류의 발언을 거침없이 해댄다. 학생들이 외면하는 과목은 그래서 폐강되기 일쑤요, 경쟁력이 없는 학과들은 통폐합되기 일쑤다. 이런 현상은 물론 기초학문 분야일수록 심하고, 부질없는 학과간 경쟁이 일고 있다. 대학들 간의 경쟁도 극심해져 퇴출당하지 않으려고 대학마다 안간힘이다. 무사안일로 일관하던 대학 모습보다야 낫지 않으냐고 할지 모르지만, 이 결과 대학이 왜 존립해야 하는지, 대학교육의 가치란 무엇인지에 대한 반성적 사고는 늘 뒷전으로 밀리고 만다.

수년 전부터 대학개혁의 핵심사항 중 하나는 '학부제'다. 학부제는 그동안 국내 대학들이 운영해온 학과 중심의 분과학문체계를 극복한다는 명분으로 도입하려는 학문 및 교육의 재편성 방식이다. 이 제도는 학문과 교육을 국어국문학과, 영어영문학과, 독어독문학과 등으로 세분하는 대신 어문학부, 외국어학부, 혹은 서양어문학부 등으로 편성하여 그 속에 포괄되는 학문의 광역화와 통합화를 지향한다. 학부제는 국내 종합대학들이 일률적으로 따르고 있는 백화점식 학과 편성의 폐단을 극복하는 데 나름대로 기여하는 바가 있어서 개인적으로 이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해온 터다. 그러나 이 학부제 도입 과정에도 신자유주의 노선이 기조로 관철되고 있어서 문제가 많다. 학문분야의 세분화가 무조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닌데도 학부제 정책은 학문분야들 각자의 자율성이나 상관관계를 따지지 않고 무턱대고 통합할 것을, 그것도 대학들에 일률적으로 강요하는 것이다. 이미 학부제를 실시하고 있는 대학들에서 부작용이 나타나자 대학정책 당국은 이제 입학단위 광역화를 추진하고 있는데, 이 경우도 예를 들면 독문학과와 불문학과의 통합을 추진하는 식이어서 진정한 해결책은 아니다.

지금 교육관계자들은 우리 대학의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해 개혁이 필요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이런 취지가 정책으로 구체화될 때는 대개 일부 대학만을 집중 지원하는 형식이 된다. 대학원중심대학 정책이 그 대표적 예다. 지난 7월말에 서울대에서는 2년제 학부대학과 4년제 전문대학원으로 이루어진 '2+4'학제안이 구조조정안으로 제출된 적이 있었다. 서울대 내부에서도 찬반이 엇갈려 거의 백지화되었지만 서울대의 특권적 지위를 지키려는 속셈이 깔려 있다. 대학원중심대학이라는 개념은 소수대학만이 이 범주에 포함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선정되는 대학에 대한 정부의 집중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분명히 특정 대학에 특혜를 베푸는 정책 개념이다. 국제 경쟁력에서 뒤쳐진 국내 대학의 위상을 일부 대학들 수준에서라도 높이겠다는 취지이나 소수 대학에 편중 지원한다고 대학개혁이 달성될지는 의문이다. 국내 대학들은 지금껏 소수가 우위를 독점하는 위계적 구조를 이루어왔는데, 소수대학의 기득권을 계속 인정하겠다는 것이 개혁일 수는 없다. 더구나 대학원중심 대학정책을 발표한 서울대의 구조조정안을 보면 의대나 법대 등을 중심으로 하는 전문대학원 모델이어서 학문을 중심으로 하는 일반대학원을 고사시킬 우려까지 안고 있다.

지금 추진중인 대학개혁 정책은 대학사회의 핵심적인 병폐를 외면한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한국 대학들의 고질병 중 가장 심각한 것은 너무 많은 사학재단이 비리와 전횡을 저지른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드러난 대학개혁 정책에는 이를 정상화하기 위한 명시적인 목표가 나와 있지 않다. 80년대 이후 한국대학들은 엄청난 양적 팽창을 경험하여 대학생 인구가 무려 260만명에 이른다. 대학생 인구가 이처럼 팽창한 것은 높은 교육열 때문만이 아니라 한국 자본주의의 급속한 성장에 따라 고학력노동자를 과잉공급하고자 한 인구정책의 결과로 보는 것이 좀더 객관적인 판단일 것이다. 대학교육은 본격적인 산업화가 시작된 1970년대에 중등교육을 확대 실시한 이후, 1980년대부터 대중화되기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대학들이 난립하였고, 대학설립자 중에는 교육범죄자에 가까운 자들까지 가세하여 많은 대학들이 파행적인 운영을 자행했다. 이런 난맥상을 낳은 장본인은 그동안 대학정책을 주도해온 교육정책 당국이다. 이들이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며 산적한 문제들을 시정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것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대학의 왜곡된 상황을 정상화하지 않고 대학개혁은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교육부 중심의 대학개혁이 이처럼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은 현행 대학정책이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 노선이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대학정책은 대학을 자본의 관점에서 운영하고 통제하는 정책이다. 대학이 사회적으로 지녀야 할 기능도 여기서는 자본에 유리한 방향으로 설정된다. 교개위가 발표한 교육개혁안에는 대학교육의 질적 고양을 꾀한다는 목표가 설정되어 있기는 한데 이것은 구호일 뿐, 실질적 목표는 새로운 노동시장에 유용한 노동상품을 공급하자는 것이다. 복수전공제나 학부제를 도입하려는 것도 노동시장의 유연화에 적응할 수 있는 인재들을 키우는 것이 그 취지다. 개별 학생 입장에서야 이런 적응능력이 필요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문제는 대졸 취업희망자들 사이에 경쟁이 극심해져 대학교육이 노동시장에 종속되고 만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 대학정책은 노동시장의 유연화에 그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결국 대학교육의 발전은 늘 뒷전으로 밀리고 만다.

신자유주의 대학정책은 기만적이다. 대학의 발전을 도모한다고 하면서 실제로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세력들을 척결할 노력은 전혀 하지 않고 있다. 오늘 대학의 많은 문제들은 독점세력이 대학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고 있다. 개혁을 가로막는 독점세력은 크게 보아 교육부과 사학재단, 그리고 이들을 보호하고 있는 정치인, 나아가서 보수적 교수집단이다. 이들의 연대는 그 뿌리와 장악력이 실로 길고 넓다. 1980년이래 수많은 대학들이 생겨 지금은 4년제 대학만 해도 180여개를 헤아린다. 이들 대학의 설립과정을 살펴본다면 비리세력의 연대가 얼마나 강고한지 짐작할 수 있다. 지금 전국에는 기본적인 시설물이 전혀 갖추어져 있지 않은 대학들도 많다. 이들 중에는 공문서를 위조하여 건물을 완공했노라 보고한 사례까지 있는데, 이런 대학의 인허가 과정에 부정과 비리가 개입되지 않았겠는가? 이런 대학에서 어떻게 공정한 교수 임용을 기대하겠는가? 부정한 방식으로 임용된 교수들이 연구와 교육을 제대로 할 리도 없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에는 무엇보다 대학의 사회적 공공성을 외면하고, 국가가 대학재정을 맡지 않은 탓이 크다. 재원 부족을 이유로 국가는 사학재단에 대학교육의 대부분을 일임했지만, 수많은 사학재단이 육영사업을 한답시고 비리를 저지른다. 교육부는 재정지원을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이를 방치하고, 일부 정치인은 관료와 사학재단의 검은 연계를 비호한다. 대학을 둘러싼 부정의 연결고리가 형성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어떻게 그토록 오래 지속된 것일까? 그것은 한국 대학교육이 지난 수십년 동안 급성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노동정책과 교육정책의 인구정책상 연계가 작용한다. 노동착취를 통한 경제발전 전략을 채택한 한국은 육체노동과 지식노동 간의 차별적 임금구조를 구축하였다. 이 결과 대학진학을 통한 신분상승이라는 한국판 신화가 만들어졌다. 이 신화의 효력은 인구정책상 대학의 팽창이 가능했던 1990년대 중반까지 지속되었다. 지금은 물론 정황이 크게 바뀌었다. 팽창만 하던 대학들에 성장의 한계가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이미 곪을대로 곪은 대학사회의 병폐는 사회 전체의 골수에까지 퍼지고 있는 중이다.

대학을 지금처럼 방치할 수는 없다. 개혁은 그래서 필수적이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노선으로는 대학발전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대학개혁을 올바로 진행하려면 대학의 발전에 장애가 되거나 기득권 유지를 위해 그 발전을 방해하는 세력들 및 악폐들과 악법들을 청산하고, 발전의 자양분이 되는 요소들과 제도들을 적극 도입해야 한다. 따라서 대학의 민주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대학의 민주화는 위에서 언급한 독점세력의 대학장악력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즉 반독점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대학내 약소자들의 권력 강화가 필요하다. 교육부와 재단에 비해서는 교수와 학생과 직원의 힘이, 교수에 비해서는 학생의 힘이, 원로교수의 힘에 비해서는 소장교수의 힘이 미약하다. 이처럼 상대적으로 미약한 쪽의 힘을 강화하게 되면 지금까지 대학을 독점해온 세력의 권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길이 나온다. 물론 여기에는 여러 방식이 있을 것이고, 대학별로 사정이 다를 것이기 때문에 각기 다른 접근법이 필요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다른 한편에서는 대학의 사회적 기능을 전환시킬 필요가 있다. 대학은 지금까지 고학력노동자의 양산과 과잉공급을 그 사회적 기능으로 설정해왔다. 이제는 대학의 사회적 기능을 고능력자를 양산하고, 한국사회의 지식생산을 쇄신하고 변혁하는 기능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이 기능전환은 대학이 사회발전의 질곡이 아니라 자양분이 되기 위해 필요한 요건이다. 나아가서 대학은 지배세력의 도구가 아니라 대중과 민중의 인간해방을 위한 거점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대학은 오늘날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지식생산 기관이다. 이 사회적 제도를 민주적인 제도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지식의 역할을 민주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식생산은 오늘날 삶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며, 사회적 생산성에 핵심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지식생산의 비민주성, 반민중성으로 말미암아 지식생산이 인권과 평등을 신장하는 데 기여하지 못하고, 지식생산의 반환경성 때문에 자연의 파괴가 자행되어 결국 지식이 인간의 발전이 아니라 인간의 지배에 이바지하게 되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 지식의 사회적 기능을 바꿔야 한다.

대학의 사회적 기능을 전환시킴과 아울러 대학의 조직을 변환시켜야 한다. 대학개혁이 대학의 구조조정 혹은 구조개혁을 지향해야 한다면 대학조직의 개혁이 핵심이다. 이와 관련하여 대학에는 3가지 주요 실천이 있다는 점, 그리고 그에 따른 3가지 유형의 조직이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대학의 주요 실천은 학문(연구), 교육, 행정(여기서 '행정'은 인사, 교무, 사무 등의 행정이 아니라, 학과행정을 지칭한다. 학과행정을 대학의 주요 실천에 꼽는 것은 그것이 학문과 교육에 대해 다른 어떤 행정보다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이며, 각 실천은 고유한 조직형태를 가진다. 이제 등장하는 문제는 학문과 교육과 행정의 세 조직단위를 어떻게 관계지을 것인가라는 것이다. 한국의 대학사를 돌이켜보면 주로 교육정책이 중심이었지 학문정책이 대학정책을 주도한 적은 없었다. 교육정책도 주로 입시정책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을 뿐 '대학교육'정책의 차원으로까지 사고된 적은 없었고, 학문정책은 아예 부재한 상태였다. 냉정하게 말해 대학정책은 행정정책이었을 뿐이다. 학문과 교육을 학과라고 하는 행정 단위에서 통합해온 지금까지의 관행이 학부제, 복수학과제를 도입하려는 지금도 존속하고 있다. 여기에는 학문과 교육과 행정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 그렇기 때문에 3자의 관계 설정이 중요하다는 사실에 대한 무지나 외면이 작용한다. 학문과 교육과 행정은 서로 다르다. 물론 다르다고 해서 서로 연관이 없다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다르기 때문에 상호 관계를 제대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 대학의 구조개혁을 위해서는 3자의 관계를 올바로 파악해야 한다. 이 관계설정의 형태에 따라 각 대학은 상이한 모습을 하게 될 것이며, 그 관계 형태의 차이들이 개별 대학의 특성으로 나타날 수 있다.

학문과 교육과 행정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대학의 핵심은 학문과 교육에 있기 때문에 행정은 대학에서 부차적인 활동이라는 점을 일단 인정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행정은 학문과 교육을 보조하는 역할이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학문과 교육도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는 하지만 동일한 것은 아니다. 학자와 교육자는 분리될 수 있으며, 어떤 학문분야를 연구하는 것과 교육하는 것 사이에는 일정한 구분이 가능하다. 한 대학에서 어떤 전공분야를 학문으로 운영하는 것과 교육으로 운영하는 것은 그래서 서로 다른 문제다. 지금까지 대학들은 학과라는 행정 틀을 통하여 학문과 교육을 통합하여 운영해왔다. 이런 방식에서 탈피하여, 학문과 교육을 구분하여 사고할 단계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대학에 따라 어떤 곳에서는 학문과 교육을 동시에, 다른 곳에서는 교육만 운영할 수도 있다. 또 다른 배합도 가능하다. 한 대학에서 어떤 분야는 연구와 교육과 행정(학과)을 동시에, 어떤 분야는 교육(교양과정)만, 어떤 분야는 연구(연구소)만 하는 식의 복잡한 배합도 가능하다(대학들을 "연구중심 대학"과 "교육중심 대학"으로 양분시키는 것은 또다른 일률적 조치다).

나는 여기서 이제는 우리사회가 대학교육을 학문정책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싶다. 학문발전의 관점이 없는 경우 학문발전을 위한 조건의 확보라는 목표가 실종되고 만다. 우리사회의 질곡으로 작용하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문제도 학문발전의 관점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고 있는 것과 연관이 있다. 학문발전에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기본 조건이다. 학문발전을 이루려면 학문 패러다임을 개혁하는 일이 포함되며, 이는 기존에 보지 못했던 문제들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문제로 제출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기존의 것과 다른 문제를 문제로 볼 수 있으려면 기존의 논의틀을 벗어날 수 있는 자유가 있어야 한다. 민족통일 문제를 새롭게 탐구하기 위해 반공이데올로기를 벗어나야 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과학분야에서 필요한 실험 정신도 마찬가지다. 학문 발전을 위한 문제제기의 능력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에 기반을 두는 것이다.

우리사회에서는 학문과 교육을 실천하는 '방식'에 대한 탐구가 별로 없다. 한국의 대학들은 아직까지 '교과과정 혁신'을 대학개혁의 목표로 삼은 적이 없다. 1980년대 민주화 투쟁의 성과물로 일부 대학에서 정치경제학비판이나 여타 비판적 학문을 전공한 교수들을 임용한 드문 사례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사회변혁 운동의 효과가 지속되던 1, 2년 동안의 일이었을 뿐, 대학정책 차원에서 비판적 학문을 대학에 도입한 시도는 없다. 이로 말미암아 한국대학의 교과과정들은 대부분 반민중적이고 반민족적이며, 반과학적인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는 경우가 허다하고, 대부분이 19세기적 과학과 학문의 문제설정에 머물고 있는 수준이다. 학부제니 복수전공제니 하지만 이 경우에도 학문의 운영 방식은 여전히 분과학문 중심이어서 학문간 소통이나 통합적 연구는 요원할 뿐이다. 이런 현상은 대학정책에 학문발전의 관점이 부재했던 점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대학원 교육의 부실화가 구조적으로 방치되고 있는 것 역시 학문에 대한 엄밀한 태도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대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대학들은 무수히 많지만 대학원을 제대로 운영하는 대학들은 매우 드물다. 학부 수준의 교육도 제대로 감당하기 어려운 능력이면서도 대학원 운영을 고집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정원을 확보하여 수입을 늘이려는 의도 때문이다. 이런 대학의 교수들일수록 과도한 학부 수업에다 대학원 수업을 추가해야 하기 때문에 교육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파행적인 대학원 운영 속에서 학생들에 대한 교육 서비스가 엉망일 것은 뻔하다. 하지만 이런 허술한 방식으로라도 학위를 취득하고 나면 학위를 소유했노라고 연구와 교육 현장에 남기를 원하게 된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일이 얼마나 많을지 상상해 보라.

학부제를 도입하고 대학원중심 대학을 육성한다고 해서 대학발전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대학은 학문의 발전을 이루려는 노력 없이는 제대로 발전할 수 없다. 학문의 발전을 이루려면 교육과 학문은 서로 다르다는 인식 위에서 양자의 관계를 올바로 설정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대학사회의 개혁은 이런 근본적인 인식 위에서 진행되어야 올바른 방향을 찾을 수 있다. 지금의 대학 모습을 분명히 바꿔내야 하고 그렇게 하려면 개혁은 필수적이나 현재 진행중인 신자유주의적 노선의 개혁은 해결책이 아니다. 대학개혁은 대학의 사회적 기능을 전환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반자본, 반독점의 관점, 대중과 민중, 그리고 민족을 위한 대학의 민주화라는 입장, 대학의 공공성 강화라는 원칙이 필요한 것은 그 때문이다. 아울러 대학의 기능 전환을 위해 대학의 구조 개혁이 일어나야 한다. 지금까지 행정개혁과 교육개혁 수준에 머문 대학개혁을 학문개혁의 차원으로까지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할 때 학문과 교육과 행정의 3자 관계가 제대로 설정되고, 대학마다 독특한 나름의 특장(特長)을 살릴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한국의 대학들은 스스로 사회적으로 중요한 지식생산 기관임을 인식하고, 학문전략의 관점에서 개혁을 강화해야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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