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현장은/『현장에서 미래를』36(1998/09) IMF와 외국인 노동자 정 귀 순 부산외국인노동자 인권을 위한 모임
대표 1960년대 이후 노동력 수출국이었던 한국이 노동력 수입국으로 바뀌기 시작한지도 10여년에 이른다. 상대적으로 입국이 쉽고 풍부한 취업기회를 가진 한국은 가난한 아시아지역의 젊은이들에게는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의 나라로 알려졌고, 이에 따라 외국인노동자들은 매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지난 해 연말에는 25만 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한국의 IMF 사태 이후 이들의 코리안 드림은 무너지고 있다. 한때 1,800대까지 치솟았던 환율로 본국에 송금한 월급이 그 전에 비해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고, 영세업체들의 잇단 부도와 폐업으로 인하여 외국인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 이제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공단을 헤매도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한국은 그들에게 더 이상 꿈의 나라가 아니다. 오늘도
미련을 남긴 채 한국을 떠나는 외국인노동자들과 아직도 꿈을 쫓아 한국을
찾는 이들이 공항에서 교차하고 있다. 그러면 IMF 이후 달라진 외국인노동자들의
현실과 남는 문제점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1.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들의 지위 지난 해 연말로 25만명에 이르던 외국인노동자들 중 지난해 12월 28일부터 올 4월말까지 주어졌던 불법체류 외국인노동자들에 대한 벌금면제기간에 약 5만4천명 정도의 외국인노동자들은 한국을 떠났고, 현재 약 19만명 정도의 외국인노동자들이 남아있다. 그러나 현재 한국에 체류중인 외국인노동자들 중 법적으로 '노동자'로서의 신분을 부여받고 있는 외국인노동자는 단 한 명도 없다. 법적으로 이들에게는 '연수생'의 자격만이 부여된다. 따라서 이들에게 '노동자'로서의 권리는 부여되지 않으며, 근로기준법도 일부 조항만이 적용될 뿐이다. 이미 1980년대 말부터 생산직 인력난에 시달리던 중소사업장들에서는 불법체류 상태의 외국인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있었고, 건설업과 석탄협회, 연 근해 어선선주협회에서는 합법적인 외국인노동자의 수입을 정부에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있었다. 국내노동자들의 임금상승과 3D업종에의 취업기피로 인한 인력난에 시달리던 이들의 강력한 요구에 정부는 원칙적으로 단순기능직 외국인의 국내취업은 허용하지 않으면서, 산업체 인력난의 해소에 기여할 수 있도록 '근로자'가 아닌 '연수생'을 도입하는 방침을 결정한 것이었다. 그 결과 정부는 현재와 같은 '외국인산업기술연수생'제도를 1993년 12월 28일 '외국인산업기술연수 사증발급 등에 관한 업무처리 지침'(법무부훈령 제294호)을 개정 발표하면서 외국인산업기술연수생 도입 업종과 규모를 대규모로 확대하는 결정을 했다. 그러나 당시 한국노동조합총연맹과 전국노동조합협의회에서는 사용자단체의 해외인력 수입허용요구에 대해, 이것이 내국인노동자의 취업기회를 박탈하고 노동조건개선에 걸림돌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계속 반대입장을 밝히기는 했지만, 반대운동은 조직화되지 못하고 전반적인 무관심 속에 진행되었다. 그 결과
외국인노동자들은 한국의 고용시장에 있어서 최하위를 점하며, 가장
열악한 근로조건과 가장 불안정한 고용조건에서 일하게 되었다. 따라서
IMF 이후 외국인노동자들이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것임은 충분히 예상된
것이며 또 당연한 결과라고 하겠다. 2.
IMF 이후 외국인노동자의 상황 IMF이후
국내노동자들의 실업문제와 고용불안이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로 등장해
있지만, 그동안의 가장 일차적인 피해대상은 바로 외국인노동자들이다.
대부분의 외국인노동자들이 취업해 있는 곳은 자본이 영세하고 기술보다는
노동력 집약산업인 하청업체들이 대부분으로 IMF의 여파를 가장 먼저
겪는 업체들이다. 대기업보다 먼저 부도와 폐업으로 이어졌고, 임금체불과
실직, 조기계약파기 등이 국내노동자들에 비해 아무런 법적 제재를 받지
않고 훨씬 손쉽고 수월하게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들에게 실업은 그날부터
잠잘 곳도 식사도 중단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까닭에 극도의 생활난으로
직결되었다. 그러나 누구하나 이들의 문제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거나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권문제에 대해 언급하는 사람은 없다.1)
그러면 참고로 IMF의 여파가 시작되는 지난 12월부터 98년 2월까지 부산경남지역에서 실시했던 [외국인노동자의 생활실태조사]2)결과는 IMF 이후 달라진 외국인노동자의 상태를 간단히 살펴보자. ◆ 노동시간 IMF 이전의 평균 12∼15시간에서 비해 크게 줄어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약 10시간 정도였고, 야간작업은 조사시점 현재 전혀 하지 않는다고 답한 비중도 44.6%나 되었다. ◆ 직장생활의 문제점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느낀 가장 큰 문제점에 대한 답변은 "장시간 노동"이 30.4%, "욕설이나 모욕적인 언사" 21.0%을 들었다. 이 결과를 볼 때 IMF 이후 노동시간이 줄기는 했으나 그동안 장시간 노동하의 열악한 노사관계와 비인격적인 대우가 이들이 느끼고 있는 가장 큰 문제였음은 동일하다. ◆ 직장생활의 문제해결방법 또 외국인노동자들은 직장생활에서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법으로는 주로 "사장에게 얘기한다"(59.2%)든지, "다른 곳으로 직장을 옮기는 것"(22.4%)으로 해결하고 있다. 외국인노동자들이 취업해 있는 사업장이 영세한 까닭에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도 거의 없지만, 이들이 "노조의 도움을 통해 문제해결을 하는 경우"는 겨우 3.9% 정도였다. ◆ 생활상태의 개선책 아울러
생활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으로 든 것은 "산재 및
보상 보험 혜택"을 받는 것 49.3%와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는
것 32.8%로 작업장내의 산재사고에 대한 제도적인 장치와 한국에서의
각종 질병에 대한 의료지원이 이들의 현재 생활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안임을 알 수 있다. 실태조사
결과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노동시간과 임금이 크게 줄고, 그 외 외국인노동자들이
느끼는 점들과 개선되어야 할 점들은 이전과 동일했다. 3.
'실업난 속의 구인난' - 정부의 외국인노동자 고용정책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인권문제가 외국인노동자대책협의회 등의 외국인노동자 상담단체들과 언론에서 적극적으로 제기되면서 97년 초 노동부에서는 외국인노동자에 대해 노동자로서의 지위를 인정하는 '고용허가제'를 추진하였지만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경제단체의 강한 반발에 밀려 결국 기존의 산업연수생제도를 약간 수정한 '취업연수제'3)로 개정되었다. 그러나 올 4월부터 실시될 예정이었던 이 제도는 IMF 이후 사실상 무용지물이 되어있는 상태이다. 현재
정부의 외국인노동자정책은 한마디로 '외국인노동자의 내국인노동자로의
대체고용'으로 표현할 수 있다. 국내노동자들의 실업문제 해결을 위해
중소기업청에서는 지난 5월부터 외국인노동자들을 내보내고 내국인으로
대체 고용하면 최대 2억원까지 운전자금을 지원한다는 정책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지원방안에도 불구하고 대체고용을 실시하고 있는 업체는
거의 없을 뿐 아니라, 정부의 이런 정책은 탁상정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것은 외국인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업체 대부분이 낮은
임금수준이나 산재위험이 높은 작업환경 등으로 국내노동자들로서는
실업률이 아무리 높다 하더라도 취업하기 어려운 환경이어서 이들 업체에서는
외국인노동자가 출국한 이후 오히려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는 형편이다.
4.
외국인노동자와 국내노동자 사실 외국인노동자들의 존재는 때로는 노동조합을 위협하고 기존 국내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후퇴시키는 산업예비군으로의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현재 국내에서 이들이 취업해 있는 대부분의 업체가 영세한 업체로 그 대부분이 노동조합이 조직되지 않은 경우이며, 또 간혹 노조가 있는 업체의 경우에도 노조의 조직력의 위축이나 단결의 약화 목적보다 국내노동자들이 일하기를 기피하는 부서에서 일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까지 구체적인 고용시장에서는 국내노동자들과 이주노동자들 사이에 고용문제를 둘러싸고 충돌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현실과 달리 국내노동자들의 의식은 외국인노동자들에 대해 상당한 거부감이 존재하고 있다. 1996년 2월 경기도 '시화 일꾼의 집'에서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한국노동자의 의식을 알아보기 위한 설문조사의 결과에서 외국인노동자에 대해 응답자의 50%가 넘는 숫자가 "고용불안을 가중시키며 근로조건을 저하"시킨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60%가 노동현장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노동자들에 대해 거부감을 나타낸 것으로 파악되었다. 또 광주 인력은행에서 1997년 7월 11일∼19일까지 광주지역 구직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서문에서 역시 52,6%가 3D업종의 외국인노동자 취업에 반대한다는 결과가 나왔으며, 기술기능직 구직자의 경우 65%가 반대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어 기본적으로 외국인노동자의 국내 취업에 매우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외국인노동자 상담소의 폭행사례 상담 가운데 70% 정도가 같은 사업장내의 한국인 노동자에게 폭행을 당한 사례이다. 뿐만 아니라 올 4월 한 파키스탄인이 일자리를 구하러 새벽에 부산역에 도착했는데, 그 때 부산역 광장에서 술에 취한 한국인 7명에게 집단구타를 당한 사건이 있었다. 한국인들이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한 외국인노동자에게 가한 폭력은 다소 과장하여 말한다면 국내노동자들의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테러'로도 볼 수 있다. 자신들의 처지를 비관한 분풀이로도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로 외국인노동자들 때문에 자신들의 처지가 더 나빠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런
사건들은 IMF 이후 더 늘어나고 있으며, 시간이 갈수록 외국인노동자와
국내노동자간의 관계는 더 나빠질 것으로 예측된다. 5.
남은 과제 70년대 한국의 광부와 간호사들이 일을 하러 갔던 독일에서 외국인노동자의 고용은 1955년 외국인노동자의 채용에 관한 제1차 독일-이탈리아 협정을 맺으면서부터 시작되어 연방노동부의 알선 하에 수백만 명의 외국인노동자들이 채용되었다. 상당한 수준에 이른 것으로 판단되는 독일인과 외국인노동자들간의 협력과 상호존중은 주로 독일의 노동조합들이 외국인노동자들에게 초기부터 조합원의 완전한 권리를 부여하는 정책을 시행한 것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1954년 독일노동조합총연합(DGB)의 지도부는 모든 외국인노동자에 대해 평등한 대우를 할 것을 결정을 하였다. 이러한 노동조합의 결정은 외국인노동자들이 노동자위원회 선거에 참여하고 노조집행부원으로 활동을 할 수 있었다. 현재 전체 외국인노동자중 33.8%가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있으며, 특별히 여성노동자의 경우 조합가입률이 53%에 이른다.4) 따라서
1960년대 가족의 생계나 동생들의 학비를 위해 독일로 일하러 갔던 한국인들
중 상당수는 독일에 뿌리를 내렸다. 그러나 독일 역시 통독 이후 급증하는
실업난으로 인해 외국인들에 대한 사회보장의 축소와 보수적인 사회분위기는
상당히 확대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충분한 준비 없이 이루어졌던 한국의 외국인노동자의 고용은 그동안 숱한 문제를 낳았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리는 외국인산업연수생 송출사업을 둘러싼 비리는 결국 외국인노동자와 국내 중소기업주가 그 피해자일 수밖에 없었고, 치외법권지대에서 이루어진 인권유린은 고스란히 사회적 부담으로 안아야 했다. 그동안 급속하게 늘어나던 외국인노동자의 숫자와 고용은 IMF 이후 감소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외국인노동자의 고용은 취업의 범위와 규모에 있어서 다소 조정되겠으나 불가피한 상황이라 판단된다. 따라서 계속 임시방편으로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정책을 수립할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외국인노동자의 고용에 대한 정책수립은 현 시점이 오히려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합리적인 노동시장 구조를 창출에 있어 독일의 경우에서 보듯이 노동조합의 적극적인 개입 없이는 어렵다. 노동시장의
최하위를 점하고 있는 외국인노동자 문제를 값싸고 관리하기 수월한
노동력으로 취급하는 자본의 논리에 맡겨두는 한 외국인노동자는 한국사회에서
영원히 이방인이자 고통받는 집단으로 남게 될 것이다. -------------- <미 주> 1) 전국의 외국인노동자 상담단체들의 집계에 의하면 98년 3월 말 1,222건의 상담이 계류 중이며, 약 11억원에 이르는 금액이 체불되어 있었다. 2) 지난 12월부터 올해 2월초에 걸쳐 부산·경남지역에서 취업중인 외국인 노동자 77명을 대상으로 [외국인노동자 생활실태조사]실시 3) '2+1제도'라고도 불리는 취업연수제는 현재와 같이 2년의 연수기간 이후 일정한 심사를 거쳐 통과한 사람에 한해 1년간의 취업비자를 발급하고 이 1년 동안은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이 역시 단기 로테이션정책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4) 위르겐 에클(독일노총 국제부), [독일에서의 외국인 노동], {외국인노동자 정책과 보호대책}, 노동정책연구소, 199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