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현장에서 미래를』37(1998/10)

사람을 귀중하게 받드는 것

김 진 균

자문위원/지식인연대 대표

1.

아마도 60년대와 70년대를 가임기(可姙期)로 거친 우리나라 여성치고 낙태수술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오히려 드물 것이다. 심지어 서울에 있는 산부인과병원에서 살아서 출생하는 아이보다도 낙태해서 떼어 내는 숫자가 더 많다고 하는 해가 많았다. 산부인과병원 쓰레기장에는 낙태해서 떼어낸 생물체의 살아 꿈틀거리는 모양을 보고 간호원이 구토를 하고, 그러한 일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현장에서 일하기가 너무 괴로워 일자리를 떠나는 사건이 보도되기도 하였다.

일제시대에는 조선인이 일본제국주의 지배자에 의하여 무고하게 많이 희생되었다. 제국주의적 질서에 반대하거나 적극 동조하지 않은 사람은 무참히 고문당하고 죽었다. 일제의 전쟁터로, 공장으로 끌러가서 죽도록 일하고 일본군대에 끌러가서 일본군대의 성노리개로 위안부노릇을 하다가 고향의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한많은 인생을 마친 여성도 많았다. 1945년 2차대전이 끝나고 난 뒤 일본 한반도 대만 필리핀 인도네시아로 연결되는 바 미군의 진주와 미국의 지배권에 들어 간 나라들에서 반공의 기치로 양민이 수없이 학살되는 참극이 벌어지고, 남한에서는 제주도 4·3사태가 발생하여 무고한 양민이 학살되고, 빨갱이 사냥이 전개되었고, 6·25 한국전쟁이 발생함으로써 전쟁터에서 사상한 사람도 많이 나왔지만 그 전선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사이에 보도연맹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집합되어 집단적으로 학살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또한 전선이 물러갈 때는 남한의 반동분자들이 집단적으로 처단되거나 희생되는 사건이 전개되었다. 60년대 군부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박정희정권은 지배의 기반을 국민에 대한 전체주의적 지배로 몰고가면서 일제시대에 잔인하게 조선인을 고문하던 일제의 고문기술자들의 기술을 전수시켜 악랄하게 인간을 말살하고자 한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그 고문의 문제는 제법 민주화가 이행되고 있다는 지금에 있어서도 특정 혐의의 사건에서는 고문의 의혹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금 폭력이 세계적으로 문제시될 만큼 만연되고 있다고 한다. 살인 강도의 건수나 강간 상해의 성폭력 사건이나 안전사고의 기록에 있어서나 인명을 해치는 폭력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고 한다. 80년대 노동현장에서 구사대(救社隊)가 노동운동을 하는 노동자를 폭력으로 기습하는 사건이 빈번하였다. 철거민을 철거시키는 부대도 폭력을 앞세운다.

2.

지금 여기서 이렇게 인명을 경시한 여러 가지 사건의 형태를 말하는 것은 인명존중 그리고 인간을 귀중하게 하는 사상이 우리에게 왜 확립되지 못하고 있는가를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어떤 형태의 공동체를 오랫동안 유지해 온 사회에서는 그 공동체의 인적 토대를 유지하고 재생산하기 위하여 인명을 존중하고 귀중하게 하는 중심가치를 살려 왔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도 역사가 반만년이라고 일컬어지는 만큼 그만한 인명존중의 사상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왜 이렇게 인간을 폭력적으로 내몰아내는 이 지경으로 내몰리고 있는가?

우리나라는 옛날에 인간을, 민중을 사회의 기초로서 존중하고자 하는 사상을 발전시켰다. 조선조에 들어 와서 '民本'을 내세웠다. 사람을, 민중을 나라의 기본으로 한다는 것이다. 이 사람들이 恒産, 즉 일정한 生業을 항상 늘 가지게 하는 데서 국가사회의 기초가 안정되기 때문에 조선조 후기에 와서도 실학자 다산 정약용은 이들이 恒産에 몰두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개혁을 주창했던 것이다. 물론 조선조 경제의 토대로서는 이 恒産이 농업이었다. 따라서 농업에 종사하게 되는 농민이 바로 나라의 기본을 이루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의 생활공동체는 자연부락으로서의 마을로 구성되었고 생업을 위한 공동협력을 위하여 두레와 같은 협동메카니즘도 발전시켰다. 이 농민들은 조선조 5백여년을 지나는 사이에 그 누구나 성씨를 갖게되어 그 가족­친족­종족체제가 사회구성의 기반이 되었는데, 사람들은 성씨를 갖음으로서 자기를 그 성씨와 동일시하게 되어 온 세상에 萬百姓으로 가득하게 되었고 마을은 거의 동족촌으로 구성케 되었다. 그 동족촌은 가부장제의 강화와 여성의 정절윤리로서 통합과 그 통합을 위한 내부 성억압구조로 구조화되기 시작하였다. 동시에 성씨문화는 동족촌의 사회적 威光을 받드는 토대였으며 여기에 조상숭배의 온갖 儀式이 동족의 사회적 위광을 위한 통합적 기능을 잘 발휘하였던 것이다. 조상숭배를 위한 의식은 가난한 백성들에게도 '낭비소비양식'을 강요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사회구성에 있어서 人倫은 부모와 조상을 섬기는 것으로 특수화하기 시작하였고, 효도가 강화되었다. 인(仁)은 너무 협소하게 가족-친족-종족의 범위내의 윤리로 특수화되고 그 보편적 의미가 상실되기 시작하였다. 성씨문화는 나중에 양반과 常人이라는 신분구조의 기표문화로 변환하게 되었다. 따라서 조선조 후기에 오면 인간을 기본으로 삼고자 했던 정치이데올로기는 오히려 신분사회의 경직된 형체를 강화시키는 기능으로 발휘되기 시작하였다. 신분구조적 착취의 대상으로서 농민과 민중을 상정하기에 이르렀고 동족촌은 그러한 신분사회의 경직된 터전으로 변하게 되었던 것이다. 동족촌의 동일한 성씨안에서도 신분의 분화가 적어도 세가지 차원, 즉 지주와 소작인, 적자와 서자, 그리고 양반과 상인으로 분화되었다. 이 사회적 구조가 너무나 강화되어 있어서 19세기말에 '인간은 곧 하늘이다'고 한 人乃天사상을 내걸고 전국적으로 전개된 동학농민전쟁도 그 구조를 전환시키는데 실패하고 더구나 지배불럭은 외세를 끌어들여와서 그 동학민중의 도전적 세력을 파괴시키려함으로써 나중에는 오히려 조선조가 외세에 의하여 멸망하기에 이르기 조차하였다.

3.

여기서 구태어 일제의 지배가 얼마나 인간을 말살하였는가를 설명할 필요조자 없을 것이다. 단지 우리는 적어도 1960년대에 들어와서는 전통적인 신분구조와 그 신분구조를 구성해 주었던 여러 요소들, 그것의 문화적, 언어적, 성씨-동족촌적, 조상숭배적, 성적인 요소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회의 중층적 구성에 있어서 최후의 결정적 요소라고 할 수 있는 경제적 요인까지 거의 기능을 상실하거나 붕괴된 상태로 변해져 있는 정세에 와 있었다는 점을 간단히 지적해 두고자 한다. 일본제국주의는 한민족을 지배함에 있어서 처음에는 지주의 지위를 상당히 존속시켜 존중함으로써 지배의 유효성을 기도하였고 피지배층 민중을 수탈할대로 수탈하였다. 그러나 후기에 이르면 지주 양반층도 결국 일제의 착취과정에서 몰락의 길로 들어 설 수밖에 없었고 농업의 상대적 위축으로 그 경제적 기반마저 유지시키기 어려웠다. 조선조의 양반신분구조의 재생산메카니즘으로 발전해 왔던 지식체제가 성균관의 해체와 관료등극의 길로서의 科擧制度의 폐절에 의하여 곧장 붕괴되고 전통적 지식 자체가 사회적 존중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소위 근대 과학학문체계 앞에서 모두가 붕괴되었다. 일본제국주의가 강요하는 지식과 그것에 의한 자격이 사회적 지위를 새롭게 규정하기에 이르렀다. 근대적 숙련과 지식, 그러한 지식의 습득을 위한 規律을 시간표에 따라 이수했다는 인정을 표시하는 자격증이 제국주의의 권력과 권위에 의하여 뒷받침되고 이에 따라 사회적 지위가 결정되기 시작하였다. 광범한 범위로 남아 있던 농업과 농민은, 그리고 그것에 기반하고 있던 양반은 몰락의 길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혈통과 家系를 성씨로서 상징화시키고 있던 전통적 양반은 자기들의 정체성을 호명(呼名)하던 성과 이름마저 일제의 강제에 의하여 일본의 성씨표현으로 바꾸게 한 '創氏改名'의 오욕적 굴욕을 당함으로써 최후의 사회적 위광의 거점마저 깡그리 훼손당하게 되었다. 일제시대에 이미 제국주의의 힘을 모든 피지배 사람들이 인식케 되었다. 일제말기 일제에 의하여 강제로 동원된 挺身隊의 차출은 친일적 세력을 제외하고는 전통적인 어떤 사회적 지위로써도 모면할 수가 없었다. 오로지 제국주의 힘에 연관되고 있는 권력의 적나라한 모습만 보게 되었다.

1945년 2차대전이 끝나고 한반도가 일제로부터 해방되었을 때 사회적 정의의 기준은 민족의 차원에서는 오로지 민족주의 윤리만이 가장 지고의 자리를 가질 수 있었고 해방된 민족국가의 건설도 그 민족주의와 민주주의의 발전된 결합해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었는데도 불구하고 한반도에 진주한 미국과 소련의 점령군은 냉전대결의 세계적 체제의 최전방을 한반도에 설치하기 시작함으로써 당위적 통일된 민족국가의 건설마저 좌절되었다. 남한에는 미국이 설정하는 냉전체제에 의하여 오직 '반공'만이 깃발로 내세위지고 그 미국의 힘을 배경으로 하여 반공적 정치질서와 미국경제의 변방적 편입으로서의 경제질서만이 강요되었다. 그 앞에는 독립운동했던 민족주의마저 설자리를 쁹기 어려웠다. 민족 자주적으로 통일된 민족국가를 건설하려는 세력은 그 물질적, 지적, 도덕적 자원을 일구어 낼 수 가 없었다. 극단적으로 6·25 전쟁은 이러한 남한의 정세를 최악으로 몰고 갔다. 이 시기에는 오직 군사적인 힘과 자본주의의 경쟁윈리가 야생적으로 ― 늑대의 싸움장 같은 들판 ― 상승하여 자행되는 그러한 형국이었다. 따라서 여기서는 전통적인 어떠한 사회적 요소도 지배적인 아무런 사회적 효과를 낼 수 있는 그러한 정세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대한민국 헌법에 나와있듯이 共和國으로서의 어떠한 민주주의 가치도 중심에 설 수 없었다. 정권은 선거에 의하여 만들어지는데 거기에는 폭력과 부정한 돈만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었다. 이미 한반도 남한은 중앙의 정치체제와 국가통제망에 의하여 통치의 보편적인 대상으로 편입되고 있었다. 군사적인 성격의 힘들이 각축을 다투던 정치의 장르에서 천하를 평정하고자 하는 세력이 아무런 '민주'의 힘에 견제되지도 않은 채 정권을 강탈하였다. 1961년 군사쿠데타는 군사적인 권력이 가장 조직된 정치적인 힘임을 과시하였다. 군사주의는 모든 대상에게 명령만 받고 수행케만 하는 질서이다. 그렇기 때문에 군사주의는 反지성적인 것이다. 늑대의 소굴과 같은 경제의 장르에 들어서는 군사주의는 그 야수같이 싸우는 늑대들을 정렬하게 하는 것이었다. 이미 관료적 자본주의로 표현된 바 있는 자본의 집적과 집적을 이제 바야흐로 정열된 자본의 부대로 만드는 일이 착수되었다. 경제개발계획은 이 자본의 피비릿내나는 경쟁을 정열하는 대열로 정비하여 앞으로 가게 하는 것이었다. 노동자는 말만 듣고 손발만 움직여 주는 존재이기만 하면 족한 것이었다. 발전의 가치가 경쟁의 메카니즘으로 추진되었다. 학교제도는 모두 경쟁의 윈리로 강화되었다. 사회적 진출도 시험제도라는 경쟁의 끊임없는 사슬을 거쳐야 했다. 학교교육의 기본 가치를 어떻게 설정하든지 간에 이 세상에서 출세하고 성공하자면 대학 ― 그것도 명문대학으로 진학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학생 당사자와 교사 뿐만아니라 그 학생의 양육과 교육의 무한한 재정적인 책임을 부여받고 있는 부모(사실 재정적인 책임만이 아니라 자식에 대한 사회적 인간적 모든 책임을 떠안고 있는 부모이다)에게 가혹하게 주문되고 있었다. 경제는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질서가 선명하게 구조화되기 시작하였다. 드디어 한국에는 독점자본이 자본과 경제적 지배력과 가족의 형태가 융합한 거대한 형체 '재벌'이라는 괴물로 등장한 것이다. 이 재벌은 경제에만 한정되지 않고 정치적 권력이 자기들을 육성하든 성장기를 지나 오히려 정치적 권력을 조성해 내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 문화영역을, 언론영역을, 대학영역을, 스포츠영역을 그들의 헤게모니 아래에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80년대까지 표면적으로 군사주의질서가 앞서든 형상은 거대자본의 형체가 지배하는 질서로 변모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하고자 하는 점은 바로 1945년 이후 한국의 정세는 전통적인 질서요소가 거의 영향력을 상실하고 자본과 군사주의적 힘에 노출된 사회로 내몰린 상태에서 그 논리대로 적나라하게 진전되었다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전통적인 요소나 신분구조가 그 자본주의 발전을 전혀 장애하지 못할 정도로 이미 붕괴되어 자본의 운동이 군사주의적 규정력과 융합하여 거리낌없이 작동하였다는 것이다. 오히려 전통적 요소들은 자본의 운동에 효과적으로 동원되는 한에 있어서 기능적이었다. 예컨대 노동자를 동원하고 기업조직을 통제하는데 혈연과 지연과 같은 연고관계가 유효하게 작동했었다. 적어도 87년 노동자대투쟁이 일어나서 노동현장에 노동자들이 노동자의 객관적 조건에 의하여 노동조합을 만들어 사용자에 맞서게 됨으로써, 그리고 노동조합을 노동자의 사회적 조건에서만 기반으로 하여 조직하고 운영해야 하는 단계에서 전통적인 연고관계를 차츰 청산할 수 있게 되었다. 오히려 군사정권에 의하여 반공이데올로기와 그와 연관된 법제적 통제를 감행할 시기에는 그 전통적 연고관계가 노동자 계급의식의 각성과 성장을 억압하는데 중요하고도 유효한 요인으로 동원되었다. 자본의 운동이 줄기차게 작동하는 한국의 계획된 자본주의 발전과정에 냉전체제와 분단체제의 구조화에 따른 반공이데올로기의 억압체제와 전통적 연고관계의 연줄망에 의한 노동통제는, 우리 사회를 오직 노동자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사회체제로 성장하게끔 하고 국가가 총자본으로서의 기능을 유효하게 할 여유마저 갖지 않게 하였다. 오직 통제와 지배만을 추구하였다.

노동자들은, 또는 자본의 운동에 여러 형태로 동원되고 폐절되는 민중은 빈익빈의 한편으로 내몰리었다. 경쟁의 원리를 제어하거나 보완해줄 어떤 사회적 기제도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마련될 수 없었다. 산재와 직업병에 무방비 상태에 있었다. 통제의 대상이 되는 어떤 공간에서도 그것이 노동현장이든 자동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이든, 병사들의 국방 현장이든 안전사고는 무수히 발생하였다. 그리고 노동자는 세계적으로 악명높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인생을 걸어야 했다. 앞에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양육과 교육 ― 이것은 노동력의 재생산인데 ―이 공교육에서가 아니라 경쟁의 그 끊임없는 순환 속에서 부모와 가족에게 책임을 떠맡겨 사교육비가 공교육비보다 더많이 소요케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본의 운동에 철저히 동원되었던 노동력의 재생산비용 뿐만 아니라 그 폐절의 위기에 대처하는 자원까지 가족이 떠맡아야 하는 체제로 굳어 가게 하였다. 가족은 그 터전이 전통적 형태와 기능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직계가족을 근간으로 하고 핵가족으로 협소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이 가족원의 부양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었다. 남달리 한국의 가족이 일제와 해방이후 6·25전쟁이라는 격량기를 거치면서 협소한 가족마저 해체되지 않으려는 생존전략을 감당해온 역사를 보면, 부모가 자식을 무한대로 보육해야한다는 관념이 경쟁에서 살아 남아야 하는 자본주의시대에도 그대로 전승됨으로써 간교한 자본주의에 대하여 성장과 경쟁의 사회적 메카니즘에만 골똘한 국가는 가족외에 사회의 안정을 도모할 어떠한 사회적 장치도 구상할 수조차 없었다. 이미 가족은 그 형태와 기능이 자본주의화, 개인주의화, 도시화 과정에서 전통적 뿌리가 뽑히거나 핵가족조차 해체되는 경향에 들어서고 있다.

4.

1945년 이후 그리고 1961년을 지나는 정세는 일제가 물러간 자리에 미국의 자본주의에 의하여 추동되는 자본주의와 냉전·분단에 의하여 강화되는 군사주의에 의하여 규정되고 있었다. 오직 계급관계만이 한국사회구성의 주된 골격을 형성하였고, 거기에 어떠한 전통적 요소도 주도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을 정도로 청산되어 있었다. 단지 그 경쟁에 의한 계급관계의 적대적 대열은 군사주의적 규제에 의하여 억압되고 있었을 뿐이었다. 적나라한 경쟁이 자본의 이윤증식에 추동되어 시장은 무자비한 경쟁의 출혈을 강요하고 있었다. 그 출혈적 관계를 보완하고 보충하고 안정화시키는 어떤 사회적 장치도 발전시키지 않았다. 그러한 기능을 위한 어떠한 제도적 장치가 설정되었더라도 그 제도가 참되게 그 문제를 대응하는 것으로 제대로 기능을 발휘할 수 있게 구축된 것은 아니었다. 이 사회보장이나 사회안전을 위한 장치의 허약성과 비진지성이, 97년말 한국에 IMF규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금융위기에 의한 사회적 위기가 발생함으로써 드러나게 되었다. 허약성과 비진지성 뿐만 아니라 전혀 아예 준비를 구상해 보지도 않은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드디어 대량해고와 대량실업, 대량미취업의 수렁에 빠지고 있고 그리하여 인간에 대한, 사회적 구성원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이 그 어느것 하나 건실한 것이 없고 오직 각자 처지대로 존망을 결정지우라는 듯이 막판같은 형세에 몰리고 있는 것이다.

우선 기업은 왜 실업자만 양산하는 해고에만 힘쓰고 있는가? 국가기구이든 사적기구이든 사람을 고용하고 있는 곳에서는 왜 해고의 방식만 위기의 탈출구로 삼으려고 하고 있는가? 고용되고 있는 사람을 차마 해고시키지 않는 어떤 진지한 노력도 왜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가? 사람이 노동력으로만 보이고 그 노동력은 상품으로 시장의 논리에 따라 값이 매겨지고, 노동력상품은 단지 생산요소 중의 하나이고 생산수단 중의 하나이어서 그 요소도 다른 요소와 마찬가지로 자본의 필요에 따라 채택되거나 폐기되는, 그러한 인식이 만연하고 그러한 인식이 자본운동의 법칙성으로 유일하게 사회를 규정하는 것으로 전제되어 있다는 사실이 이번에 완벽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그러한 것이라고 수긍해 버리고 말면 그만일 것인가? 실업대란은 자연의 지진이나 태풍과 같이 자본주의의 자연적 재해임으로 부득이한 재해인가? 여기서 97∼98년 사이에 발생한 실업자 수를 따지지는 않겠다. 이미 숫자는 정부의 공시적 통계로부터 '국민승리 21'과 같은 운동단체에 이르기까지 165만명에서 약500만명으로 그 숫자의 규모가 어떻든 간에 어마어마하다는 사실을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사태에 직면하여 우리나라의 사회적 안전망이 너무나 허약하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우선 고용보험이 사회보장제도로서의 구실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도록 되어 있고(고용보험은 고용 5인이만, 임시직, 시간제 노동자에 대해서도 98년 10월부터 적용할 예정이나 일용직은 제외되어 있다), 실업급여의 수준과 기간이 너무 짧아 실질적으로 실업급여가 사회안전망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고용보험에서 정부의 비용부담이 전무하다. 정부든 노동단체든 이제 고용안정센타를 건립하여 상담, 직업알선, 직업훈련, 재취업알선 등을 서비스하고자 하고 있다. 해고와 실업자에 대해 위와 같은 대응이 응당 있어야 했는데 이것이 지금 부실한 초기 형태를 취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왜 이렇게 노동력을 인간으로 재생산하는데 이다지도 사회적 안전망을 미리 제 구실하도록 하지 못하였을까?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노동자가 계급으로서의 정체성을 찾기 시작하여 온갖 희생을 치루면서 전국적 차원으로 민주노동운동이 조직화되어 한국 민중민주화운동의 주축으로 성장하고 있는 과정에, 자본은 노동력을 물리적 수단만이 아닌 헤게모니 전략으로 통제하려는 과정에서 노동현장에 인력을 생략하는 기술체계를 과감하게 도입하여 노동자들을 퇴출시키고 있었다. 그 퇴출과정에서 노동운동인자들을 해고시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지만, 그 퇴출노동자들을 아주 적은 양의 퇴직금으로 해결하려는 방법을 추구하였다. 유연화­신자유주의, 이것이 함축하고 있는 바 노동력 생략전략은 곧 노동자를 불안정고용 형태로, 더 나아가서는 노동현장에서 완전히 퇴출시키는 것을 결과하는 것이었다. 웬만한 대공장 생산현장에서 극소전자 기술체계가 보편적으로 도입되어 일반적으로 노동력을 전반적으로 퇴출시키는 정세에서는, 그 퇴출된 노동자는 생산방식이 기술적으로 덜 '유연화'된 곳으로 밀려나가야 되고 결국은 거리의 행상과 같은 처지로 내몰리고 마는 것이다.

자본은 이전에는 군사주의통제방식과 결합하여 노동자을 통제하였고 90년대에 와서는 본격적으로 '세계화'를 부르짖는 국가권력에 의하여 지지된 바 '첨단극소전자기술'과 결합하여 노동자를 퇴출과 불안정고용 형태로 몰아가면서 지배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그속에 하나의 함정이 있었다. 한국의 독점자본이, 그리고 그것이 擬人化된 '財閥'이 그야말로 '세계화'된 초국적자본과 제휴하는데 있어서 제휴방식에 대한 철저한 성찰이 없었다는 점과, 군사주의적 자본연합과 문민정부적 '세계화'주의와의 제휴방식에 커다란 차이가 있다는 점을 철저히 성찰하지 못하고 자본진영이 스스로 재편되어야 할 운명을 맞이 하였다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 자본 자체 진영도 '유연화'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대자본들 끼리의 무자비한 경쟁은 결국 그들이 발을 딛고 있던 한국의 '국민경제'조차 위기로 들어서게 한 것이고, 철저히 야수의 싸움과 같은 경쟁의 들판에 나둥거리게 된 것이다.

실로 한국의 20세기 후반 자본주의 발전은 순전히 계급관계만의 장으로 진행되어 왔고 그 정세의 마당에 군사주의적 지배가 계급 갈등과 투쟁을 억압만 해왔기 때문에, 이 계급관계에 대하여 그 파국적 경향을 인간존중의 어떤 중심적 가치로 억제하거나, 도덕적 지적 구상으로 억지할 수 없게 해 온 것이다. 80년대의 민주화운동과 노동자대투쟁은 일단 군사주의적 지배를 전면에서 배제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그 배제과정에서 정치적 기본권과 노동3권에 대한 인식을 각성하게 되었다. 군사주의적 지배양식이 표면에서 퇴거됨으로써 한국사회구성은 더욱 뚜렷하게 계급구조가 전면으로 나오고, 학계에서도 '계급정치'의 개념화가 시도 되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그 계급정치의 맥락에서도 권력관계에서 자본주의 모순에 대하여 인간의 존엄성, 인간에 대한 가치를 중심적 가치체계에 어떻게 세워야 하는가 하는 진지한 질문이 나와야 할 즈음에 왔다. 자본을 둘려싼 정치적 외피였던 군사주의를 제거하는데 80년대의 민중민주화운동이 피흘리는 운동을 한 것이고, 90년대에 이르러서는 자본주의의 계급적 구조화문제에 정면으로 맞서야 하는 국면으로 바뀌었다. 군사주의 지배가 일단 배제되었다고 하여 인간의 가치에 대한 배려가 바로 정면으로 부각되거나 추구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는 인간을 노동력상품으로 전화시키고 갈아치울 수 있는 생산수단이나 생산요소로 전환시켜 비인간화시키는 법칙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에 대한 배려는 인간 자체와 인간공동체의 물질적·지적구성에 대한 인지적 인식과 판단에 이어 바로 도덕적 인식과 판단이 따라야만 가능할 것이다. 이 도덕적 인식과 판단을 단순하게 계급의 권력관계로 환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배불럭은 피지배계급의 원망과 소망을 그들의 가치판단으로 끌어올리고 또한 그것을 보편적 가치의 형태로서 제시할 수 있는 헤게모니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 한편 피지배세력이 언제나 도덕적으로 우월한 판단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피지배 민중세력이 그 도덕적 인식의 실마리를 실천적 운동에서 제기하지 않으면, 다시 말하자면 모순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다면 어떠한 인식과 판단도 시작되기 어렵다고 본다. 이제 실업자가 대량으로 발생하고 따라서 실업자문제를 사회적으로 대처해야하는 상황에서 더욱 치열하게 인간에 대한 배려, 인간을 사회의 중심가치차원에서 가장 핵심적 위치에 놓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주노동운동이 10여년간 추구해온 운동의 목표는 임금문제와 노동조건의 개선, 그리고 자주노동조합의 합법성, 사회정책의 개선 등이었다. 그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 대한 가치를 자본주의 계급사회에서 어떻게 중심가치에 올려놓고 거기에 연유해서 위와 같은 목표가 추구되어야 하는지에 대하여 명쾌하게 정식화시킨 경우가 드물다고 본다. 옛날에는 그것을 인륜(人倫)이라고 표현하였고 근대 서구에서는 인간의 기본권이라고 개념화하였다. 이 기본권 이념이 온 세계의 보편적 가치로서 통용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기본권의 이념과 제도적 정책적 구현이 만만치 않을 뿐만 아니라 그것조차 자본주의 계급구조에 의하여 특정 계급의 이익으로 왜곡되어 왔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한국에서 이제 이 인간의 가치를 중심가치체계에 명백하게 올려놓는 일이 '실업자문제'를 어떻게 풀어가고 그 풀어가는 사회적 기제를 어떻게 설정해 가느냐 하는데서 명백하게 실험되리라고 생각된다. 국내에서도 실업자연맹 또는 실업자연대를 조직하는 움직임이 있고 실업자를 노동조합원으로 가입케 하는 운동도 전개하고 있다. 실업자가 세계적으로 대량생산되고 있으므로 각국에 따라 실업자운동이 각양각색으로 전개되고 있다. 자본주의체제에서는 생계­소득­임금소득­고용이라는 메카니즘으로 노동력을 재생산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체제에서는 '고용'이 자본가나 노동자나 계급관계를 맺는 고리이고, 고용의 바로 옆에 해고에 의한 산업예비군인 실업자를 존재케 함으로써 노동자계급을 지배하는 수단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노동력을 생략시키는 첨단극소전자기술이 생산현장에 도입된다면 그만큼 노동자의 노동시간은 줄이되 임금삭감 없이 해야 한다는 노동시간 단축방법이 실업자대책으로 주장되는 것도 당연하다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와 실업자가 동시에 고용을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를 주장하는 것은 합당하다 할 것이고 그 주장을 위한 사회적 운동도 만만치 않은 것이기도 하다. 동시에 실업자가 바로 정상적인 인간의 상태임도 또한 바르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말하자면 정상인의 변두리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가지고 일할 권리와 동시에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가지고 생존할 권리를 가진 '주체'로서 범주화되어야 한다고 본다. 기본권을 우리는 정치적 기본권이라고 한다. 항시적으로 존재하는 실업자에게도 기본권이 확충되어 누리게 되게 하려면 실업자와 비실업자가 실업자의 인간적 권리를 정치적으로 표현해 내고 조직적인 운동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시사해 주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에 대한 가치를 더욱 치열하게 인식하는 집단적 노력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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