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현장에서 미래를』37(1998/10) 노동조합과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일상투쟁 비슈바스 사트가르(Vishwas Satgar) NALEDI연구소 상임연구원 남아프리카
진보적 조합주의의 간략한 역사 노동조합은 노동계급조직이며, 자본가에 대한 노동자들의 집단적 힘을 활성화시키는 데 중요하다. 노동자 권력의 기구로서, 노동조합은 19세기까지 거슬러 올가가며, 유럽과 식민지에서 초기 산업화에 의해 강요된 가혹한 조건과 투쟁하기 위해 결성되었다. 초기 공장제도의 확립과 관련된 폭력에 대항한 투쟁이 벌어졌다: 착취적인 아동노동과 강제노동, 장시간 노동과 기아임금. 남아프리카에서는 노동조합이 20세기 초반에 존재했지만, 진보적 조합주의가 뿌리를 내린 것은 겨우 1920년대였다. 하나의 전통으로서 진보적 조합주의는, 단지 숙련된 엘리트들의 직업을 보호하기만 했던 편협한 직능조합주의(craft unionism)와, 또한 1920년대초 백인 광산노동자들의 조직화와 그에 이은 '란트 반란'(Rand Rebellion)1)으로 반영된 '배타적 백인조합주의'로부터 자신을 해방시켰다. 진보적 노동조합주의는 일상투쟁을 보다 광범한 사회정치적 변혁과 연결시키는 방식으로 발전하였다. 달리 말하자면, 진보적 노동조합주의는 노동조합을 민족해방투쟁과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 내에 배치하였다. 1920년대 산업·상업노동조합(Industrial and Commercial Workers Union: ICU)은 내부적 식민상태에 직면했던 흑인 노동자들의 최초의 조직화된 표현이었다. ICU는 다양한 부문의 노동자들을 한데 모은 일반노동조합이었으며, 조합원은 약 10만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1927년 내부적 지도부간의 경쟁과 분열, 탄압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 ICU는 종말을 맞았다. 그런데 여성지도자가 없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것은 또한 남아프리카 진보적 조합주의의 다음번 두 물결에서도 증명되었던 문제점이다. ICU를 뒤이었던 것은 SACP가 주도한 진보적 조합주의의 두번째 물결이었다. 백인과 유색 노동자를 조직한 기존의 등록노동조합과 나란히 산업별 노동조합이 조직되었다. 이들 새로운 노동조합 중에는 비유럽계 노동조합 평의회(Council of Non-European Trade Unions: CNETU)가 있었는데, 이 조직은 1945년까지 119개 조합에 주로 수십만의 흑인계 조합원이 가입한 전국적 조합이었다. 그 이후에, 이 노동조합 결성의 물결에 두가지 주요한 계기가 있었다. 첫번째 것은 1946년 흑인 광산노동자 파업이었고 다른 것은 비인종주의에 입각한 노동조합들의 통일이었다. 1955년 이런 흐름은 남아프리카 노동조합회의(South African Congress of Trade Unions: SACTU)의 결성으로 이어졌으며, SACTU는 남아프리카 직종·노동평의회(SAT&LC)에서 이탈한 노동조합, CNETU계 노동조합과 2차대전 동안 결성된 새로운 흑인계 노동조합으로 이루어졌다. SACTU는 착취에 대항하여 투쟁했지만 또한 국민당 정부의 인종차별정책(apartheid)에 대해서도 투쟁했다. SACTU는 7년간의 지상활동 동안 인종격리, 노동조합 조직화에 대한 제한과 정치적 탄압에 대한 모든 시도에 반대했다. SACTU는 ANC가 주도한 회의동맹(Congress Alliance)에 참여하여, 1955년과 1966년 사이에 social amenities를 분리하는 모든 법률에 대항하였고 통행증 화형식에 참여하였으며 정치적 요구를 제기하기 위해 여러 차례에 걸쳐 대규모 노동자 출근거부투쟁(stay-away)에 앞장섰다. 1960년 비상사태의 선언과 ANC의 불법화로 SACTU에 대한 탄압도 강화되었다. 1963년에 이르자 SACTU는 합법적 조직형태를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고 대부분의 지도부는 지하로 들어가거나 망명길에 올랐다. SACTU는 기본적으로 ICU의 진보적 조합주의를 계승하였으며, 뿐만 아니라 일반조합(general unions)의 정치적 지향성을 위한 기초를 쌓았다. 그것은 COSATU 내에서 초석이 되었다. 1960년대 정치조직과 대중조직을 파괴하는 국가의 탄압으로, 정치적 휴지와 진공상태가 창출되었다. 그러나 1973년 1월 진보적 노동조합주의는 부활을 경험했다. 1973년 1월 9일, 더번 교외에 있는 한 벽돌공장(Coronation Brick and Tile Works)의 노동자 2,000명이 축구장에 모여 임금인상을 요구하였다. 이 파업은 또다른 섬유공장(Frame Group Textile Mills)과 다른 부문들로 급속하게 파급되었다. 새로운 물결이 일어나고 노동자권력이 더번에서 행사되었다. 곧이어 이 투쟁은 이스트 런던과 요하네스버그로 확산되었다. 기본적으로, 1973년의 첫 3개월간 61,000명의 노동자들이 작업을 중단했다. 그 해말까지 수치는 90,000명으로 늘어났고 사용자들은 229,000 노동일의 손실을 입었다. 1973년 파업은 진보적 조합주의의 세번째 물결이 발전하는 시발점을 상징했다. 동시에 그것은 보다 가시적으로 진보적 조합주의의 세가지 경향을 강화하고 부활시켰다. 첫번째 경향은 1973년 남아프리카 노동조합연맹(Federation of South African Trade Unions: FOSATU)의 깃발 아래 등장하였다. 두번째 경향은 남아프리카 노동조합평의회(Council of Unions Of South Africa: CUSA)의 깃발 아래 독립적 산업별 노동조합을 흡수하였다. 이들 조합들은 조심스런 전략을 채택하였고, 현장문제에 집중하였으며 개별 사업장에서 조합조직을 건설·강화하려고 노력했다. 이들은 1983년까지 보다 광범한 정치적 저항운동에 참여하는 것에 지쳐있었다. 1973년의 부활로 등장했고 또 1976년 봉기의 영향을 받았던 세번째 진보적 조합주의 경향은 일반조합의 발전이었다. 이들은 지역에 기반을 두었으며 상이한 부문에서 조합원을 모집하였다. 1979년 현장에서 진보적 조합들의 압력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고 내부적 식민체제로 하여금 노사관계제도를 변화시킬 일련의 개혁을 도입하지 않을 수 없게 하였다. 이 개혁은 '비한 위원회'(Wiehahn Commission) 개혁이라고 알려지게 되었는데, 여기에는 세가지 중요한 발전이 포함되어 있었다. 첫째, 흑인노동자를 포함한 산업제도의 비인종화. 이것은 노동조합들 사이에서 등록문제와 공식적 단체교섭제도의 활용문제를 둘러싼 심각한 논쟁을 유발하였다. 둘째, 산업법원과 부당노동행위 개념을 정립시켰다. 마지막으로, 노동시장정책을 결정할 3자포럼을 제공할 의도로 국가인력위원회(National Manpower Commission)가 구성되었다. 80년대 초반 내국 식민체제에 대한 저항이 증가했다. 유색인종과 원주민을 인종적으로 규정된 헌정질서, 즉 삼원제의회(tri-cameral parliament: 三阮制)내로 유색인종과 원주민을 끌어들이려는 정권측의 개혁의제에 의해 그러한 저항이 더욱 강화되었다. 삼원제체제에 반대하는 민주주의 통일전선(United Democratic Front)의 출현, 그리고 대부분의 도시에서 시민, 청년, 여성조직들의 급속한 확장은 체제에 반대하는 대중동원의 정점을 보여주었으며 '인민전쟁'의 전망을 드높였다. 이 시기 동안 진보적 조합주의 경향들 간에 단결과 하나의 연맹의 필요성에 대한 집중적인 논의가 이루어졌다. 그와 동시에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도 강화되었으며, 여러 조합원들이 구금되고 심지어 구금 중에 살해당했다. 마침내 1985년 11월 남아프리카 노동조합회의(Congress of South African Trade Unions: COSATU)가 4년간의 논의를 거쳐 출범하였다. COSATU는 FOSATU, 그리고 주로 CUSA 출신인 NUM 및 일반노동조합으로부터 33개 노동조합을 결집시켰다. COSATU는 경제의 20개 부문을 포괄하였으며 50만명의 조합원을 확보하였다. 창립대회에서 이 새로운 '거인'은 체제에 대한 확고한 정치적 입장을 취했으며, 계엄상태의 해제, 민간구역에서 군의 철수, 정치범의 석방, 개인과 조직들에 대한 제한의 폐지 및 투자금지를 포함한 다양한 국제적 압력 등을 주장하였다. 수년간
COSATU 조합들을 강화시킨 근본원칙은 비인종주의, 노동자통제, 조합비
납입의무, 1산업 1조합1국가 1연맹, 그리고 마지막으로 노동자 국제연대에
대한 확고한 결의였다. 정치적 수준에서 COSATU는 파업과 피켓의 권리,
전국적 최저임금의 필요성 뿐만 아니라 성해방을 진전시킬 정책도 옹호하였다.
창립대회에서 COSATU는 여성 노동자 동일임금, 완전한 모성권과 육아시설,
현장에서 성적학대 반대와 같은 친여성적 정책을 지지하였다. 노동조합과
민주화 민족민주혁명(NDR)에서 노동조합은 남아프리카에서 민주주의를 가져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인종주의 체제에 대한 투쟁은 광범하고 철저한 남아프리카 민주화를 위한 잠재적 동력을 제공하였다. 특히 COSATU는 80년대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에 대한 대중적 압력을 가했으며, 90년대초 민주주의로의 이행을 이끌기 위해 ANC·SACP와 함께 삼자동맹을 결성하였다. CODESA 협상이 교착상태에 처한 동안, 협상의 진전을 보장할 노동자 대중권력이 행사되었다. 이는 1994년 4월의 협상타결(breakthrough)의 실현, 그리고 ANC가 이끄는 동맹의 선거승리를 보장하였다. 우리가 1994년 4월의 성과를 하나의 운동으로 평가했던 것처럼, 이 성과는 민족민주혁명을 심화하고 더욱 진전시키기 위한 중요한 교두보를 우리에게 제공했다. 다음과 같은 사실은 명백하다: ?ANC가 이끄는 동맹이 앞으로 더욱 변혁되고 공고화되어야 할 국가권력에 접근하게 되었다. ?정치질서의 새로운 민주주의적 틀은 과거의 인종배제적·억압적 내국 식민체제와의 역사적 단절을 상징하는 헌법으로 작성·구체화되었다. ?우리는 남아프리카 국가를 세계에서 진정으로 자주적인 주권국가로 재규정해야 할 입장에 있다. 그와 동시에, 우리가 검토한 바와 같이, 정책전선에서 '재건발전강령'(Reconstruction and Development Program: RDP)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아주 많다는 것은 분명하다. 통치를 위한 강령적 기초로서 RDP는 COSATU에 의해 발전되었으며, 보다 폭넓은 삼자동맹에 의해 공유되었다. 그러나 통치의 상황 속에서 RDP는 공격을 받았다. 이런 공격의 첫번째 징조는 RDP부의 폐쇄, 그리고 그에 이어 독점·초국적자본의 이해를 증진시키는 거시경제정책(흔히 GEAR로 알려진)의 강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COSATU와 조직된 노동계급이 보다 광범하게 GEAR와 정부의 정책의제에 맞서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실제로 정책결정에서 노동계급의 역할은 8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8년 정부는 노동조합의 역할을 축소시키기 위하여 1956년의 LRA(노사관계법)를 개정하려고 시도하였다. 이에 COSATU는 격렬한 저항을 하였고 독점자본과 국가는 퇴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90년대초 부가가치세(VAT) 부과에 대해 COSATU는 투쟁을 벌였다. 이 투쟁은 노동법개정의 저지와 함께 인종주의 체제로 하여금 전국적 수준에서 경제정책에 대해 협상을 강요하였다. 이로 인해 '국가경제회의'(National Economic Forum: NEF)와 그 이후에 '국가경제발전·노동평의회'(National Economic Development and Labour Council: NEDLAC)가 구성되었다. NEDLAC은 세개의 전국적 노동연맹 ― COSATU, NACTU, FEDUSA ―이 공식정책 개발에 참여할 때 실천적 단결을 도모할 수 있게 하였다. NADLAC 내에 발전된 유형의 노동조합적 실천은 또한 노동조합들이 예를 들어 임금을 제한하는 소득정책에 사로잡힌 '엘리트 거래'를 막을 수 있게 하였다. 그 대신에 특히 노동시장개혁을 둘러싼 대중동원을 보장하고 NEDLAC의 과정을 알리려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또한 COSATU는 국유자산의 구조조정과 같이 NEDLAC을 뛰어넘는 전국적 수준에서 정책문제를 다루었다. COSATU는 광산업 대표회담과 같은 특정 부문회의에서 그리고 지방정부 차원에서 정책결정의 민주화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후자의 정책결정 과정은 비록 노동조합이 완전한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활용한 것은 아니었지만, 지역발전의 목표를 설정하려는 참여적 발전계획의 결과였다. 간단히
말해서, 남아프리카에서 국가와 공공정책결정의 점증하는 민주화는 노동계급의
중요한 진보이다. 이러한 것들은 사회에서 노동계급 헤게모니의 확대를
보증하는 투쟁이다. 노동자들에 의한 민주주의의 심화는 기본적으로
사회주의의 실현을 강요하고 있다. 달리 표현하자면, 민주주의적 공간이
남아프리카에서 확대됨에 따라, 노동계급의 이해, 사상과 대안이 의제에
오르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완전하게 실현되기 위해서는 변혁투쟁과
논쟁을 통해 더욱 강화·주장되어야 한다. '제국주의적
지구화'의 위협 제국주의론은, 즉 맑스주의 이론 내의 강력한 개념적 도구로서 자본주의의 전지구적인 작동에 대한 강력한 비판을 제공하고 있다. 제국주의론은, 자본주의가 어떻게 확장하여 제3세계 나라들의 발전을 ― 사회주의가 대안으로서 실현되지 못하게 할 정도로 ―통제하는가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이러한 예는 민족해방투쟁을 벌였던 베트남, 앙골라, 모잠비크 등인데, 이들 나라에서 국가권력이 혁명세력에 의해 장악될 때면 언제나 공격을 받았다. 달리 말해서, 제3세계에서 탈식민 상황 또는 인민혁명의 진행은 항상 제국주의와의 지속적인 투쟁을 의미했다.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독일과 같은 세계의 핵심국들은 침략을 통해, 독자적인 민족적, 궁극적으로 사회주의적 발전을 이루려는 시도를 방해하려고 애썼다. 이는 70년대와 80년대, 서방과 소련간의 냉전기간 동안 아주 명백히 드러났다. 그와 동시에 70년대 초반 자본주의는 위기에 돌입했다. 2차대전 후의 호황은 활력을 잃었고, 사회민주주의(혹은 복지자본주의)의 황금시대는 종말을 고하고 있었다. 이러한 생산의 위기에 대응하여, 자본주의는 구조조정을 시작하고 보다 수익성있는 시장을 찾기 시작했다. 시장통합은 '새로운 전지구적 통신기술'과 흔히 초국적기업(TNC)이라고 알려진 전지구적 기업들의 강화된 활동에 의해 더욱 촉진되었다. 이 두가지 요인은 모두 금융시장의 통합, 무역증가 및 생산의 탈중심화를 가능하게 하였다. 90년대 이르러, 자본주의 내의 이러한 지구화 경향은 소련의 붕괴와 일당제 중앙계획 사회주의에 대한 불신으로 더욱 강화되었다. 서구의 이데올로그들은 민주주의를 재포장하고 '시장경제' 자본주의를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유일한 경제적 해법으로 칭송하기 위해 이런 역사적 상황을 이용하였다. 민주주의는 더욱더, 소수의 자본가 정당들이 선거에서 표를 놓고 경쟁하는 편협한 대의제 민주주의로 제한되었다. 참여민주주의나 직접민주주의와 같은 민주주의의 다른 차원은 더욱더 무시되었다. 이러한 '시장 민주주의'라는 야합에 이어 경제내에서 국가의 후퇴를 가져오는 일련의 경제정책이 등장했다. 그러한 정책에는 국유자산의 사유화, 정부지출의 축소, 기업에 대한 세금감면, 높은 이자율, 환율통제, 무역과 산업의 자유화, 노동시장의 탈규제 등이 포함된다. 때때로 이런 경제정책들은 신자유주의적 의제라고도 한다. 그러나 남아프리카와 같은 제3세계 나라의 경우 이런 경제정책은 경제적 자주성의 상실, 보다 정확하게 북반구의 정부와 TNC에 의한 경제적 식민화에 해당한다. 결국 '제국주의적 지구화'라는 새로운 용어로 귀결되는 것이다. 이런 정책을 취하는 대부분의 나라들은 탈산업화되며, 직업은 줄어들고 비공식부문은 팽창한다. 그리고 노동시장은 탈규제화되어, 교섭이 탈중심화되고 노동조합이 노동자들 사이에서 경쟁을 증가시키도록 자극받으며, 실업은 노동조합을 위축시킬 만큼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고, 아동노동이 이용되고, 고용관행에서 노동의 비정규직화와 외부하청이 촉진되는 지경에 이른다. 간단히 말해, 노동조합은 공격을 받고 정리당한다. 이런
상황에서, 보다 창조적인 비국가주의적 형태의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친사회주의적 정당과 운동(COSATU와 SACP같은)은 결코 후퇴하지 않으며
또 후퇴해서도 안된다. 보다 광범한 친사회주의적인 전지구적 운동의
일부인 우리는 제국주의적 지구화에 대한 비판을 견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해야 한다. 행동으로 그 약점을 돌파하고 사회주의적 대안을 제시하며,
사회주의적 변혁에 유리한 전지구적 세력균형을 가져오는 데 기여해야
한다. 그와 동시에, 각각의 특정한 조직세력은 제국주의적 지구화가
승리하지 못하도록 막을 일정한 책임이 있다. 이 내용에 대해 아래에서
구체적으로 다룰 것이다. 일상투쟁을 통한 사회주의 건설 ―
변혁적 조합주의전략을 통한 대응 노동조합이 제국주의적 지구화, 특히 '자유시장적' 구조조정 의제에 대항하고 노동계급의 민족민주혁명 지도를 보증하기 위해서는, 변혁적 조합주의의 전략과 실천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변혁적 조합주의의 그러한 전략과 실천은 남아프리카에서 몇몇 사람들을 더 자본가계급에 포함하거나(신자유주의) 복지자본주의(사회민주주의)를 통해 자본주의에 보다 인간적인 얼굴을 붙여줌으로써 자본주의를 개혁하는 선택을 뛰어넘어 진보적 노동조합운동의 형태를 취할 것이다. 본질적으로, 변혁적 조합주의의 정치는 현재 진행중인 민족민주혁명 내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문제이다. 변혁적 조합주의는 자본주의 개혁의 두가지 길 사이의 중도를 찾는 것이 아니라, 일상투쟁을 통해 건설되어야 할 대안으로서의 사회주의를 제시하려고 시도한다. 이것은 변혁적 조합주의가 권력이 노동계급과 빈민의 편으로 넘어올 정도의 남아프리카의 민주화를 주요 과제 또는 목적으로, 노동계급을 남아프리카의 사회주의 이행의 최전선에 배치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경제내에서 소유관계와 계층적 경영통제를 변화시켜 착취와 성적 억압에 의해 지배되지 않는 사회주의적 경제관계를 건설하기 위한 변혁적 실천과 투쟁을 의미한다. 따라서, 변혁적 조합주의는 혁명적 조합주의이다. 혁명적 조합주의로서의, 변혁적 조합주의의 전략과 실천은 다음과 같은 두가지 유형의 조합주의가 갖는 쌍둥이 위험을 피하기 위해 노력한다. ① 방어적조합주의 : 이 유형은 때로 '노동자중심주의'(workerism)라고도 불린다. 이 유형은 임금인상, 품질향상, 비용삭감 및 훈련을 통하여, 예를 들어 고용관계의 근저에 깔려있는 권력관계를 변혁하기를 원하지 않으면서도, 제국주의적 지구화와 '자유시장적' 구조조정 의제에 반대하는 편협한 조합주의이다. 그러한 조합주의는 자본이 국가를 지배하고 궁극적으로 사회변혁을 주도하도록 허용한다. 이 유형은 현장의 투쟁을 사회의 발전방향을 알려주는 보다 광범한 노동계급투쟁과 연결시키지 않는다. 결국, 이들은 심지어 아래로부터도 노동자들에게 생존가능한 변혁적 대안을 제공하지 못한다. ② 코포라티즘적조합주의
: '자유시장적' 구조조정 논리와 타협함으로써 제국주의적 지구화에
동참한다. 때때로 이 경향은 '전략적 조합주의' 또는 '사회적 조합주의'라고도
지칭된다. 기본적으로, 이 경향은 전지구적으로 경쟁력있는 사회민주주의
또는 복지자본주의의 건설을 위해 노동자들과 자본가들을 사회적 동반자관계
속에 묶어둠으로써 자본주의를 개혁하려고 시도한다. 이런 종류의 조합주의
내에서 국가는 '중립적인' 것으로 이해되며, 수출주도 부문이나 남아프리카에서
활동하는 초국적기업들에서 노동자들이 직업을 얻도록 돕는 훈련정책과
복지 안전망을 제공함으로써 '자유시장적' 구조조정의 가혹한 결과를
완충하는 역할을 부여받는다. 코포라티즘적조합주의는 '엘리트주의적'이며,
'상층'의 거래문제를 다룰 뿐이다. 또한 가장 중요하게, 이 유형은 노동계급을
전지구적 경쟁에 참여시킴으로써 그들을 서로 분열시키며, 결국 자본의
논리의 지배를 유지시킨다. 정치적·이데올로기적
대안으로서 사회주의를 제기함에 있어, 변혁적 조합주의는 먼저 자신의
오랜 역사에 접근한다. 이 역사는 프랑스혁명기의 파리코뮌, 러시아혁명기의
노동자·농민 소비에트, 1919년 이탈리아 투린의 노동자 평의회운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때로 이 전통은 '평의회 공산주의'(council communism)라고도
하며, 이들 사회 내에서 아래로부터의 권력변화에 관한 것이었다. 남아프리카에서,
SACP에 의해 제기된 변혁적 조합주의에 대한 접근은 이 전통에 다가가지만,
또한 노동자권력의 제도적 형태와 표현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
자신의 축적된 지식과 경험을 이용하여 아래로부터 계획하고 주장하는
대안이 기본적으로 더욱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함으로써, 그 전통을 뛰어넘으려고
노력한다. 그와 동시에, 이와 같은 계획된 대안을 밀고나가는 것은 모든
영역 ― 의회, 정부, NEDLAC, 현장, 지역사회 등 ―에서 노동계급 헤게모니
또는 지배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변혁적 조합주의를 통한 사회주의의 진전에 관한 두번째 중대한 측면은 남아프리카에서 하회주의의 건설에 관한 출발점이다. 그것은 칼 맑스가 결코 사회주의의 청사진을 남기지 않았음을 인정한다. 때때로 사람들은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와 반대되는 모든 것이라고 믿는 오류를 범한다. 이것은 사실이 아니며, 사회주의의 추상적 모델일 뿐이다. 맑스와 엥겔스는 모두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자본주의가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생산수단의 소유를 개인의 손에 둔다는 점을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본주의를 역사발전에서 원시사회와 노예제, 봉건제 사회를 뛰어넘는 진보적체제로 보았다. 생산력 또는 기술의 발전수준은 맑스와 엥겔스에 의해 자본주의 내에서 기본적으로 진보적인 것은 분명히 환영받았다. 따라서 변혁적 조합주의는 자본주의적 이윤보다는 사회적 필요를 충족시키도록 경제를 조직하려고 노력한다는 의미에서 자본주의가 이룩한 진보를 혁명화하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변혁적 논쟁과정에서, 노동조합적 실천은 방어적임과 동시에 행동적일 것이다 ― 직업의 방어와 직업의 질은, 노동자들이 착취적 고용관계를 뛰어넘는 대안을 위한 투쟁과 함께 중요한 투쟁이 될 것이다. 변혁적
조합주의의 핵심에는 행동과 투쟁에 대한 결의가 있다. 경제의 민주화,
궁극적으로 사회주의적 발전을 위한 노동자 역량의 구축에 의하여 자본을
타도하려는 결의가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남아프리카에서 변혁적 조합주의의
실현이 다음과 같은 전략적 요소 또는 지주(支柱)를 실천할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에 달려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1) 아래로부터 참여적 계획을 통한 노동자적 계획의 진전 {자본}3권에서 칼 맑스는 경제자원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 중요한 시사를 하고 있다. 그의 개념은 바로 이것이었다: "자연과의 교환을 합리적으로 조절하고 자연을 자연의 맹목적인 힘 대신에 자신들의 공동통제 아래에 두는 생산자들의 연합" 본질적으로, 맑스는 시장이 사회의 필요를 합리적으로 충족시키기 위하여 사회의 자원을 조직할 수 없다고 믿었다. 소련에서 중앙계획의 시도는 비록 그것이 시장에 대한 대안으로 시도되었지만 역시 실패했다. 그것은 경제에 비효율을 도입하였고, 사회의 진정한 필요와 조화를 이룰 수 없을 정도로 권위주의적이었다. 다른 한편, 집중화된 계획의 실패가 다른 형태의 계획의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변혁적 조합주의에 있어 광범한 참여를 통한 아래로부터의 계획은 필수적이고 민주적이다. 기업과 산업의 노동분업 내에서 다양한 노동자들의 정보, 지식, 기술을 접목·결합시키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와 관련하여 직장(현장위원 shopsteward)은 참여적 계획에서 중요하고 결정적 관건을 쥐고 있다. 이들은 기업내에서 그리고 심지어 한 산업에서 자본이 추동하는 '자유시장적' 구조조정에 대한 대안과 해법을 계획하도록 노동자들을 한데 모으는 선봉대가 되어야 한다. 이것을 실천적으로 진전시킨다는 것은 노동자들이 단체협약 협상에서 현장포럼과 심지어 산업별대표회의와 NEDLAC에서 회의와 공동의사결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도적 채널을 통하여 그들의 계획을 제시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참여적 계획은 또한 노동자들이 임금문제 외에도, 노동자들과 지역사회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투자, 기술정책 및 신상품과 같은 '비임금' 문제도 계획할 수 있게 한다 ― 자원은 생산이 시장의 수요에 맞추는 것과는 반대로 사회적 필요에 조응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말이 노동자들의 계획은 잉여를 산출할 수 없다거나 수익성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차이점은 생산이 소득수준, 고용, 환경 및 민중의 보건의료에 대해 미치는 결과까지 고려하는 '수익성의 사회적 관점'일 것이다. '변혁적 구조조정'을 위한 노동자계획을 개발하는 데 중심적인 것은 다음과 같은 몇가지 질문에 답할 필요성일 것이다: ?기업 또는 산업 내에 어떤 자원이 있는가? ?노동자들과 그들의 공동체는 어떤 필요와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가? ?이러한
것들은 기업 또는 산업의 작동방식을 변혁하는 데에 있어 무엇을 의미하는가?
2) 노동자 자주관리 자본주의
기업들은 하향식 경영통제를 통해 계층적으로 조직되어 있다. 이런 종류의
통제체제 내에서 권력은 경영자들이 일방적으로 기업의 계획, 신기술정책,
투자, 마케팅, 인력개발정책 등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한다. 노동자들이
단체협약을 통하여 경영특권을 침해하는 정도가 그들의 성공이자 한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민주화와 산업민주주의가 획득된다면, 노동자들은
노동자통제를 협의, 협상, 공동의사결정, 이사회 참여를 뛰어넘어 진전시켜야
한다. 노동자들은 노동자 자주경영을 쟁취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진정으로 민주적인 경제적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노동자통제와
사회주의적 경영이라는 궁극적인 형태이다. 하나의 권력 또는 권능으로서의
자주경영은 현재 노동자계획을 제기하는 과정에서 단체교섭 협약에서
작업장포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채널을 통해서 쟁취할 수 있다. 3) 노동자·공동체 소유 노동자·공동체 소유는 남아프리카 경제의 소유패턴을 변혁하는 데 필수적이다. 현재, 남아프리카 경제의 소유권은 소수의 대재벌과 초국적기업들의 손에 있다. 그렇지만, 국가소유가 사회주의적 질서라고 정의되었던 소련의 경우와는 달리, 남아프리카에서 생산수단의 소유는 사회화되는 방식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이것은 사회적 소유와 소유의 통제가 단지 국가로 체현되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노동자들과 공동체의 손으로 넘어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남아프리카가 사회주의적 방향으로 발전하도록 소유패턴을 창조적으로 사회화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도전을 다루어야 한다. ?비록 남아프리카가 식량자급자족을 성취했지만, 그것은 백인 농업독점자본에 의해 소유·통제되는 생산양식 내에서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들중 상당수는 토지를 생산적으로 활용하지 못했으며, 단지 이전 정권들이 준 보조금과 특혜로 유지되었을 뿐이다. 현재, 이들은 이들 농장의 노동자들이 통제권과 소유권을 갖도록 하는 대안적 경제기업으로 변화되지 않는 한 국가자원의 고갈이라는 결과만을 가져오고 있다. 그와 동시에, 남아프리카는 소련과 같은 농민층(peasantry)이 없다. 이것은 토지개혁이 소유권을 개인들 뿐만 아니라 협동조합과 국영농장에게도 부여하는 형태로 가속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자연금과 절약기금투자는 요하네스버그 증권거래소 주가의 약 60%를 차지한다. 그러나 이것은 통제되지 않고 있으며, 바로 이로 인해 아래로부터 경영과 통제권을 주장할 작업장포럼을 활용하거나 통제권을 부여하기 위하여 회사법 또는 연금 및 기금법의 개혁 문제가 제기된다. 그와 동시에, 고용분담계획들이 구조조정의 상황 속에서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비록 이것들이 소유권을 변화시키기 위해 중요하지만, 그 자체로는 적합하지 않다. 그것들은 기업의사결정에서 변화를 수반해야 한다 ― 자주경영권을 획득할 노동자통제를 주장해야 한다. ?관세 자유화와 거시경제의 '자유시장적' 구조조정을 통해, 기회만이 아니라 심각한 위협이 노동자들과 공동체에 제기된다. 그러한 기회의 예는 노동자·공동체의 기업매입 또는 인수이다. 이것은 노동조합 투자부문(stokvel)의 활동과 공동체의 대안적 저축계획, 그리고 협동조합의 예비적 발전과 연결되어야 한다. 현재, 협동조합은 남아프리카 GDP에서 230억 란트를 차지하고 있으며, 241개의 아주 성공적인 협동조합이 존재하고 있다. 대부분의 협동조합은 주로 마케팅 협동조합이거나 농업생산 협동조합이며 1981년 협동조합법의 통제를 받고 있다. 이 법률은 현재 개혁의 과정을 겪고 있으며 협동조합이 경제의 모든 부문에서 설립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이런 발전은 노동자들과 공동체에 사회주의적 기업을 발전시킬 진지한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국가는 남아프리카에서 소유관계의 사회화에 있어 핵심적 역할을 한다.
국유농장과 준국유농장을 통한 국가의 소유범위와 토대를 확대하는 것
외에도, 특정한 부문에서 사적 자본의 지배를 제거하기 위해 특정 기업의
국유화도 고려해야 한다. 또한 노동자·지역사회 기업들은 공공민간
동업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재정의하는 국가와의 공동투자도 고려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국가는 소유의 과잉집중을 막는 조절역할을 해야하며,
이것은 경쟁정책, 반독점법률, 완전 국가소유 등과 같은 일련의 정책을
통해 촉진될 수 있다. 4) 국제주의 국제주의는
공산주의의 핵심적 원리이다. 자본에 대항한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에서
전세계 노동자들의 단결은 여러 세대의 혁명가, 활동가와 지식인들의
영감을 자극하였다. 최근 국제주의를 경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특히 공산주의 제3인터내셔널 및 소비에트 연방과의 관련 때문이다.
점점, 국제주의가 연대의 원리와 대체되고 있다. 그러나 국제주의의
원칙과 연대의 원칙이 똑같은 것이 아니다. 연대는 주로 방어적 투쟁
내에서 국경을 초월한 노동자와 노동자, 조합과 조합의 지원에 해당한다.
국제주의는 연대를 포함하지만, 또한 장악할 노동자권력을 지지하거나
제국주의적 지구화에 대항하는 민족국가를 방어한다. 변혁적 조합주의는
국제주의의 원칙을 견지하며, 사회주의적 성과를 진전시키고 방어할
전지구적 전략동맹을 발전시킬 필요성을 인정한다. 5) 변혁적 동맹 변혁적 동맹은 민족민주혁명에서 노동계급 헤게모니를 진전시키는 데 필수적이다. 이것은 두가지 수준에서 작동한다. 하나는 정당과 운동의 관계라는 수준이며, 이는 COSATU, SACP와 ANC의 삼각동맹으로 가장 잘 대표된다. 이것은 세력들의 우애적 자치를 유지하고 전략·전술에 대한 협의를 허용하는 관계이다. 노동자들에게 삼각동맹의 정치적 의의는 동맹이 국가권력에 접근하고 위로부터 변혁을 도모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변혁적 동맹의 다른 수준은 사회운동과 사회운동의 관계에서 작동한다. 예를 들어, COSATU는 아래로부터의 변혁을 추동하기 위하여, SEWU(자영업자를 위한 비공식부문 조직), 실업노동자 조직, 또는 심지어 흑인경영인 포럼과도 동맹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궁극적으로, 이런 동맹은 노동자적 계획이 변혁을 주도하도록 할 전망을 보장한다. 기본적으로
오늘날 남아프리카에서 노동조합이 변혁적 조합주의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노동조합 조직과 계급의식의 경계를 확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남아프리카의 노동자들이 변혁적 조합주의의 주요전략적 지주 또는 요소의
의식적 적용을 통하여 '즉자적 계급'을 뛰어넘어 발전할 수 있도록 한다
― 변혁적 조합주의는 노동자들이 '즉자대자적 계급'(卽自對自的 階級:
class-in- and -for-itself)이 될 수 있도록 한다. 변혁적 조합주의는
사회주의를 전진시키는 일상투쟁이라는 가혹한 단련을 통해 노동자들이
남아프리카 역사의 새로운 장 ― 사회주의혁명을 진전시키는 투쟁 ―에서
전면에 나서게 한다. ---------- <미 주> 1) 란트반란: 1922년 생디칼리즘계 백인노동자들과 흑인 공화주의
급진파가 사용자와 정부를 상대로 일으킨 반란으로, 정치적으로 흑인민족주의가
나타나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 흑인들의 투쟁은 온건한 로비와 수동적
저항에서 농촌반란, 파업, 대중동원 등 격렬한 형태를 띄게 되었다 ―
역자 번역 : 원영수(정세분석실 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