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마당/『현장에서 미래를』37(1998/10)

'고용 없는 성장'의 기회주의와 경제공황

채 만 수

부소장

* 대학생신문 87호(98년 9월29~10월5일)에 실렸던 글이다.

아래 예문은, 기회주의는 사물을 어떻게 '새롭게' 인식하는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70년대 오일쇼크에서 시작된 장기불황의 국면을 거치면서 이 체제내화된(길들여진) 노동운동에 대한 자본의 공세는 자본이 개발한 계급투쟁의 새로운 무기를 통해 새로운 방식으로 구조화되기에 이른다. 이제 자본은 더 이상 더 많은 노동력의 동원이 곧 더 큰 가치생산으로 이어지지 않는 새로운 생산방식을 계발해간 것이다. 우리가 그동안 '신경영정략'이라고 이름지었던 온갖 것들-- 일본적 생산방식, 린 생산방식, 팀작업, JIT, 신노동문화, 신인사제도, 경영혁신 등등 --이 이 시기에 자본이 개발한 새로운 계급투쟁의 물질적 기초라면, 소위 '신자유주의'는 바로 그것의 이데올로기적 기초라 할 수 있다. 이제 자본은 불황이나 경제위기의 국면에서는 물론이고 호황의 국면에서도 노동에 대한 '자본의 양보'가 아니라 자본에 대한 '노동의 양보'를 강제할 수 있는 공세적 무기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은 이제 '고용을 수반하지 않는 성장'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이를 받아들일 것을 노동에게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소위 '세계화'로 일컬어지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변화가 배경이 되고 있었다."(원문대로 표기)

영남노동운동연구소의 부소장 임영일 교수가 자신들의 '노동정책연구 전문지' {연대와 실천} 98년 8월 호에 싣고 있는 "공황기의 한국 노동운동의 과제"라는, 아주 단호한 어조의 '교시적인' 글의 일절이다. 이러한 인식에 기초하여 그는, 한국의 노동운동은 "고전적인 교과서적인 인식에 기초"한, "그저 그 충정은 이해할 수 있지만" 시대착오적인 투쟁을 그만둘 것, "산별교섭체제에 기반한 사회적 노사관계로의 전환"을 전제로 "사민주의 혹은 수정 자본주의의 계급타협의 틀", "케인즈주의적 노선"을 추구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목표는 그들이 집요하게 주장해 온 이른바 '(노사)동반자적 관계'이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그 근거가 되는 위의 인식이 사실은 가치법칙에 대한, 따라서 경제학·사회과학에 대한 철저한 무지(無知)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터무니없는 것이다.

그의 논리는, "이제 자본은 더 이상 더 많은 노동력의 동원이 곧 더 큰 가치생산으로 이어지지 않는 새로운 생산방식"을 개발해 왔고, 그리하여 "자본은 이제 '고용을 수반하지 않는 성장'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발견하여 이를 받아들일 것을 노동에게 강요하고" 있기 때문에 '새롭게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 이상 더 많은 노동력의 동원이 곧 더 큰 가치생산으로 이어지지 않는 생산방식"이란 말은 이제 "더 이상 노동(만)이 가치의 원천이 아니다"는 뜻이다. 이러한 주장은, 자본에 의한 잉여가치의 착취를 은폐하려는 목적에서 부르조아 경제학자들이 진작부터 해온 더러운 작업, 즉 노동가치설의 전면적 폐기를 뒤늦게 새로운 발견인 양 내세우는 것인데, 노동가치설의 그러한 폐기와 더불어 경제과학·사회과학 역시 폐기된다는 사실을 그는 알지 못한다.

자본이 '발견'한 것은, "더 이상 더 많은 노동력의 동원이 곧 더 큰 가치생산으로 이어지지 않는 생산방식"도, "이제 '고용을 수반하지 않는 성장'이 가능하다는 사실"도 아니다. '발견'한 것은 단지 "고용을 수반하지 않는 생산방식"일 뿐이다. 그런데 오직 인간 노동만이 가치를 형성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생산방식은 그만큼, 즉 '고용을 수반하지 않는 정도'에 비례하여 상품을 무가치하게 생산한다. 그리고 그렇게 무가치하게 생산할수록 그들의 생산은 당연히 '잉여가치·이윤생산'이라는 자신들의 생산양식과 모순·충돌한다. 임 교수 역시 "이미 … 1929년의 미국 대공황의 수치를 넘어 서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말하는 지금의 대공황은, 바로 그러한 "고용을 수반하지 않는 생산방식"이 얼마나 격렬하게 자본주의적 생산과 충돌하고, 따라서 "고용을 수반하지 않는 자본의 성장"이 얼마나 불가능한가를 보여주는 가치법칙의 관철에 다름 아니다.

지금 생산기술은, 갈수록 격렬해지는 경쟁에 강제당해서, 가히 "고용을 수반하지 않는 생산방식"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고, 그 결과가 다시 원인이 되면서 이 과정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그런데 사회적 생산물이 자본가들에 의해 배타적으로 소유되는 자본주의적 생산에서는 그 생산이 무인화되면 될수록 더욱더 대량의 노동자군의 밥줄이 끊기게 된다. 이는 당연히 '생산과 소비간의 모순', 과잉생산을 심화시켜 공황을 격화시킬 뿐 아니라 필연적으로 빈곤과 기아, 장시간·저임금·위험·비위생적 노동을 강요당하는 범노동자계급의 조직적 저항을 불러온다. 그리하여 "상품은 그 생산에 필요한 노동량에 비례하여 교환된다"는, 따라서 "'고용을 수반하지 않고, 노동력이 동원되지 않고' 생산되는 생산물은 무상으로 분배되어야 한다"는 가치법칙은 머지않아, 임 교수 등의 절절한 소망을 배신하여, 노동자계급의 '고전적이고 교과서적인 인식에 기초한' 혁명적인 투쟁을 매개로 자신을 관철시키게 된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이 어찌 법칙이겠는가!

설익은 인텔리들의 무지에 기초한 기회주의에 노동자계급이 끝내 농락당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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