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현장에서 미래를』38(1998/11)

전태일 동지 28주기를 맞으며

정 인 숙(전태일기념사업회 상임이사)

몸집만 거대해지고 이름만큼 그다지 새롭지도 않은 신자유주의라는 자본논리는 민족과 국경을 뛰어넘어 이윤만 남는다면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집어삼키고 돌아다니며, 세계 민중들의 삶을 짓밟으며 지금도 머물곳을 찾아 이나라 저나라를 기웃거리고 있다.

남한 사회도 예외는 아니어서 IMF라는 이름으로 세계독점자본들의 조정과 통제속에 그들의 이윤추구 시장으로 전락하였다. 우리들이 그동안 투쟁을 통해 쌓아왔던 모든 성과와 노력은 무력화 되고 있고, 산업현장은 경찰병력에 의해 짓밟혔다. 거리에는 노숙자들이 넘쳐나고 구조조정 등으로 일할 권리를 박탈당한 실업자들 또한 살길이 막막하기만 하다. 단순히 생존하기 위해 자행되는 반인륜적인 범죄와 가족동반 자살은 인간에 대한 본질적 물음을 던지며 우리를 가슴 아프게 한다.

특히 이러한 경제적 모순에 의한 생존의 위협은 기본적인 사회안전망의 혜택이 조금도 없는 영세사업장과 비정규 임시직 노동자에게는 이중삼중의 고통을 주고 있다. 전태일기념관 주변에는 예전에 평화시장에 있던 옷을 만드는 제품공장들이 옮겨와 밀집되어 있다. 올해 8월 영세사업장 고용보험 적용을 위해 섬유 영세사업장 근로조건 실태조사를 한 적이 있다. 조사결과 놀랍게도 IMF가 터지기 전부터 노동시간과 임금이라는 개념이 없이 일감만 있으면 24시간이라도 일을 하고 월급의 형태보다는 임시직과 계약직(객공이라함)의 불안정한 근로형태로 일을 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물론 무등록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은 그동안 돈이 될만한 것이나 적금은 다 해약해서 생활비로 쓰고 있어서 앞으로 생활을 어떻게 할 것인지 막막하다는 이야기만 했다.

이것이 평화시장 노동자였던 전태일 동지가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며 온몸을 불사른지 삼십년에 가까운 세월이 지난 지금 노동자들의 모습이다. 어쩌면 더욱 열악해진 노동현장... 노동자·민중의 고통은 더할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때에 전태일 동지 28주기를 맞는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매년 11월이면 특히 내 자신 소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되돌아 보고 반성하게 되는데 올해는 특히 더하다.

노동운동의 위기라고 말하는 이 시대 노동운동을 하고 있는 우리가 동지의 정신을 통해 알아야 할것은 무엇일까?

첫째로, 진심에서 우러나와 민중들의 고통과 함께 하는 일체감일 것이다.

전체와 나를 동일시하며, 그 고통 또한 동일시하여 함께 한 점, 일기에도 나타나듯이 '전체의 일부인 나' '나의 일부인 전체' 그래서 모든 민중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고, 나의 고통이 곧 모든 민중들의 고통이다. 그것은 전태일 동지가 속한 계급이 그러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입신양명이나 개인적 수준에서 운동을 한 것이 아니라 전체로 승화시켜 그러한 고통을 노동해방, 인간해방을 위한 최후의 노력으로 이어냈다는 것이다. 거창한 구호 몇마디와 말로서가 아닌 민중의 고통에 대하여 정말 가슴으로 진저리 칠만큼 아파해 본적이 있는지, 이것은 동지들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힘든 일상에 지치고, 활동에 지쳐 자칫 형식적인 말 몇마디로 동료의 어려움을 그저 지나치지는 않았는지, 나 자신도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완벽하게 그렇게 생활하지 못했다. 그래서 11월에는 죄책감마저 들게 되는지 모르겠다.

둘째로, 전태일 동지의 정신에서 중요한 것은 알면 아는만큼 그 모두를 최선을 다해 실천했다는 것이다.

동지는 미싱사 일을 하며 재단사가 되면 시다들의 힘겨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다고 생각하여 어려운 형편에도 미싱사 월급을 포기하고 재단보조를 시작했다. 이렇게 노력해서 재단사가 되었지만 막상 되고 보니 자신이 할수 있는 일의 한계를 보았다. 그래서 근로기준법을 혼자 공부하며, 노동부에 청원도 하고, 방송국, 신문사도 찾아다니며 고발하기도 한다. 어렵게 경향신문 특보에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실태가 나갔지만 그뿐. 자본과 정권은 꿈쩍도 안하고 그냥 무시할 뿐이었다. 동지는 이를 통해 더 큰 세상의 구조를 보게 된다.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가난하기만 하며, 가난한 사람과 부자인 사람, 권력을 가진 사람들과 못가진 사람의 격차는 세상의 어떤 법칙처럼 박혀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문제였다. 이를 바꿔야 한다고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동지는 투쟁을 결심한다. 조직을 만들고, 어설프지만, 평화시장 노동자들과 집회를 한다. 하지만 평화시장 노동자들이 맞서서 바꾸기에는 저들의 힘이 너무 컸다. 그래서 동지는 결심한다. 더 큰 결의를 다지고, 영원히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에 머물기 위해서, 자신을 버리면 더 많은 것을 얻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근로기준법 화형식.

이렇게 동지는 우리에게 못다 굴린 덩이를 남긴 채 노동해방, 인간해방의 불꽃으로 타올랐다. 알고 있는 만큼 모두 실천했던 정신은 아마도 전태일 열사 정신의 정수일 것이다. 이것은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논리로 화려하게 꾸며져 있지는 않지만, 전태일 사상이라고까지 말하고 싶다.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내 생애 못다 굴린 덩이를 덩이를

목적지까지 굴리려하네

이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또다시 추방당한다 하더라도

굴리는데, 굴리는데, 도울 수만 있다면 이룰 수만 있다면...

동지가 우리에게 믿고 맡긴 굴려야할 덩이를 끝까지 좀더 힘차게 그리고, 민중들과 함께 굴려야 할 것이다.

전태일 열사 28주기를 맞으며 11월 7일에서 13일까지 추모 및 기념주간을 선포하였다. 11월 7일 노동자 전야제에서의 제8회 전태일문학상 시상과 제7회 전태일노동상 시상, 11월 8일 28주기 추모제가 마석 모란공원 열사묘소에서 있을 예정이다. 그리고 13일에는 열사의 묘소 참배와 전태일문학상수상집 출판기념회가 개최된다. 그리고 추도식과 더불어, 마석 모란공원에 처음 자리를 마련한 이래 민주화 과정에서 산화하신 60여명의 열사와 희생자들의 묘소 참배 안내를 할 예정이다. 또한 각 단위 조직에 열사정신계승에 대한 프랭카드 걸기, 조합원 '전태일 평전 읽기'를 조직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행사보다 더욱 중요하게 28주기에 추모 및 기념주간이 갖는 의미는 전태일 열사 정신으로 되돌아 가자는 것이다. 정리해고와 퇴출, 영세하청 노동자들의 이중고 등 어느때 보다 침체되고 어려움에 처한 노동운동을 1970년 20년 가까운 세월동안 꺼져 있던 한국노동운동에 새로운 불씨를 만들었던 열사의 노력과 의지를 통해 새롭게 일으키자. 좌절과 절망에도 끝까지 굽히지 않았던 열사의 마음가짐과 생각조차 나눌 동료도 없던 그때의 심정은 어떠했을까를 생각해보자.

그래도 우리는 이야기하고, 논쟁할 동지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때의 상황보다 우리가 처한 현실은 훨씬 나은 것이다.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되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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