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현장에서 미래를』38(1998/11)

민중연대 투쟁전선의 강화를 통한

반자본전선을 구축하자

오 세 철(정치연대 대표 / 연세대 교수)

Ⅰ

10월 14일 [고용·실업대책과 재벌개혁 및 IMF대응 범국민운동본부](이하 국본)는 '98민중대회 위원회 발족에 즈음한 기자회견을 열고 '민중 10대 요구'를 발표하였다. 다음은 기자회견문의 일부 발췌내용과 10대 요구이다.

"우리는 경제파탄의 주범인 재벌총수, 비리 정치인 및 관료 등 우리 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수구 기득권세력과의 일전을 벌이는 동시에 김대중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사이비개혁과도 강력히 투쟁할 것임을 천명합니다. 이에 우리는 김대중정부에게 각계 민중의 절박한 요구를 담은 아래와 같은 <민중 10대 요구>를 제시하며, 그 실현을 위해 10월·11월 각 부문별 투쟁 배치, 범국민서명운동 및 캠페인, 각계 시국선언 등을 거쳐 11월 8일 여의도 한강둔치에서 노동자, 농민, 빈민, 청년, 학생, 여성, 교민, 교수, 변호사, 종교인, 보건의료인, 문화예술인 등 10만명이 참여하는 <생존권 사수! 재벌해체! IMF반대! '98민중대회>를 개최합니다."

"우리는 이번 98민중대회를 계기로 그간의 부문별 투쟁의 한계를 극복하고 IMF체제하에서 고통받는 전체 민중의 요구를 대변하는 강력한 대정부, 대자본, 대IMF 투쟁전선을 구축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각계 민주세력을 광범위하게 망라함으로써 반개혁적 수구 기득권세력을 고립, 약화시키고, 또 김대중정부의 그릇된 개혁방향을 바로 잡아 민중생존권보장, 재벌체제 해체 등 올바른 사회개혁을 반드시 실현하고 부당한 IMF협약을 철폐하여 경제주권을 회복할 것입니다."

<민중 10대 요구>

- 경제파탄 재벌총수·정치인·관료 처벌하고 부정축재재산 환수하라!

- 부당한 IMF협약 철폐하고 외채탕감 실현하여 경제주권 회복하라!

- 정리해고 중단하고 주 40시간 실시하여 고용안정 보장하라!

- 고용세 도입, 군비축소로 실업기금 확보하여 모든 실업자에게 실업수당 지급하라!

- 농가부채 해결하고 농축산물 가격보장, 식량자급 실현하라!

-철거민·무주택자 주거권, 노점상 합법화를 실현하고 장애인 생존권을 보장하라!

- 노동법 개정으로 교원노조 법제화를 이행하고 교육개혁을 실현하라!

- 정치개혁! 언론개혁! 민주화실현!

- 공기업의 무분별한 민영화와 해외매각 중단하라!

-국가보안법 철폐, 양심수 전원석방, 민족민주열사 특별법 제정하라!

길게 발췌문을 인용한 것은 민중연대 투쟁전선의 올바른 강화방안을 제시하기 위한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10월 7일 범국본 대표자회의에서의 논의와 결정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국본활동에 대한 평가부분에서 투쟁기조의 올바른 확립문제가 제기되었다. 정치연대는 간략한 평가문을 통하여 국본이 김대중정권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공격, 민중생존권 압살에 맞선 실질적인 민중연대투쟁본부로서의 역할을 다해야함을 강조하였고 반자본, 반김대중정권의 기조를 분명히 할 것을 요구하였다. 발족 당시 '공동투쟁본부'와 '대책위' 의견 사이에서 '국민운동본부'로 합의하고 출발한 국본은 5월 동안에는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동대중의 투쟁과 결합하여 김대중정권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일차적 피해자인 노동대중의 생활상의 권익을 옹호·사수하고, 그 투쟁의 정당성을 알리고 이에 결합하기 위한 노력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6월초 민주노총의 노사정위원회 합의결정으로 국본의 현실 투쟁에 대한 결합공간이 좁아졌다. 이는 여러사업들이 전체 투쟁전선에 큰 영향을 발휘하지 못하는 원인의 하나로 작용하였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원인은 국본사업의 흐름이 투쟁하는 대중, 그 투쟁이 동의하고 주목하는 대중과 더욱 가깝게 결합하지 못하고 언론이나 여론의 반응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흐른 데에 있다. 자본과 권력에 대한 분명한 투쟁기조를 세우는데 의견이 모아진 것은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아직도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원회나 실업극복운동본부 등 김대중정권의 관리기구에 참여하고 있는 등 투쟁전선의 교란요인이 잠복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대표자회의의 두번째 결정사항은 전체 대표자회의를 최고의사결정기구화했다는 점이다. 60여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국본이 전대로 대표자회의를 열지도 못하고 많아야 20개 단체만이 참여하는 모습은 '이름걸기운동'의 관성이 남아있기 때문이며 국본에의 참가여부를 분명히 확인하자는 요구가 결의된 것은 한 단계 진전된 결정이었다. 그러나 공동대표중에서 상임대표가 필요하다는 논리와 이창복 전국연합의장을 추대하려는 흐름은 국본의 기조가 흔들리고 있음을 단적으로 증명한 보기였다. 정치연대는 이창복의장이 김대중정권의 관리기구, 보기를 들어 민화협, 제2의 건국 범국민추진위에 이름이 들어간 것(본인의 허락을 안받았다하더라도)이 국본의 위상을 훼손시킨다는 점을 지적하고 반대하였고 공개적인 의견표시를 공식적으로 요구하였다. 이 문제는 주요한 쟁점으로 남아있다. 어쨌든 이러한 과정을 밟은 국본이 98민중대회 위원회를 발족하는 기자회견문을 발표하였는데 기자회견 전에 열린 대표자 회의에서 기조문제가 재론되었다. '수구기득권세력'과 김대중정권을 분리시키는 표현이 그대로 남아 있으며 그들을 차단시키면 김대중정권이 올바른 개혁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깔려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8개월 동안 김대중정권이 보여준 반노동자적, 반민중적인 자본가정권의 본질을 정확하게 공격하지 못하고 수구와 개혁이라는 그릇된 전선을 설치하려는 탈계급적 인식이 잔존하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내주었다. 또한 민중대회 명칭에 재벌체제해체를 재벌해체로 수정하고 IMF재협상을 IMF반대로 수정한 진일보한 면모를 보였으나 역시 재벌해체가 갖는 실질적 의미 ― 즉 사회적 소유와 통제 ―가 사장된 채 IMF가 바라는 자본합리화의 재벌해체가 될 수 있다는 오류를 남겨놓았다. 정치연대는 '재벌해체'를 '반민중적 구조조정 반대'로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고 요구한 바 있다. 물론 <민중 10대 요구> 가운데 국가보안법 철폐와 양심수 전원석방이 포함된 것은 의의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Ⅱ

그러면 민중연대투쟁전선의 강화가 98년 하반기 정세에서만 주장되는 노동자계급의 요구였는가를 심각하게 되물어야 한다.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전투적 노동운동의 반자본투쟁과 반권력투쟁은 무자비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전체운동에서 노동자계급의 중심성을 세우는데 공헌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운동은 반군부독재투쟁의 틀 속에서 민중주의적 기조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 당시 이미 세계자본주의의 재편전략이 자본의 세계화의 기치아래 진행되고 있었고 기층 민중의 계급적 분해가 가속화되면서 농민과 빈민의 계급적 본질이 강화되고 있었다. 1970년 후반에서 시작된 세계자본주의의 신자유주의의 전략은 80년대를 관통하면서 보편적 자본의 질서로 공고화되었다. 보수권력의 계급적 본질에 대한 논의는 노태우정권과 김영삼정권의 지나친 차별성을 강조하는 경향에서부터 쟁점이 되었고 김영삼정권의 부르주아개혁을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여론의 등을 업고 반자본전선을 흐트려뜨리는 위력을 발휘하기도 하였다. 민중연대 투쟁전선의 강화가 끊임없이 강조되어도 지나침이 없는 정세변화 속에서 민중연대 투쟁전선을 교란하는 요인은 무엇이었던가. 첫번째는 사상이론의 불철저함과 각종 기회주의의 발호였다. 신자유주의의 본질이 현존사회주의의 몰락으로 은폐되면서, 자본주의와 자본에 맞서는 계급적 원칙과 이에 기반한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투쟁은 몰락한 국가사회주의모형으로 폄하되고 친자본주의적이거나 자본종속적 사상이론과 그들의 아류인 포스트 담론들이 마치 현실적인 사회변혁의 사상이론적 기반이라는 듯이 사상적 혼란의 틈을 비집고 들어와 모든 사회변혁운동을 교란시키기 시작하였다. 이론진영에서 맑스주의의 올바른 이해와 정당한 복원은 교조주의로 매도되면서 서구 맑스주의의 유파들과 그와는 절연된 포스트 모더니즘 유파들이 손을 잡고 이론진영의 신세대로 자처하게 되었고, 이는 경이롭게도 80년대 제3세대 진보학자군으로 지칭되었던 세력에 의해 주도되었다. 젊을 때의 설익은 변혁이론의 세례가 80년대 극악한 군부독재시대의 정서와 맞물려 있다가 모형으로서의 국가사회주의의 몰락과 선거를 통한 민주정부의 출범을 경험하게되자 새로운(그들에게만 새롭다) 서구 담론의 세례에 빠져들게 되고 이론적 전승자로서의 강박증에 걸리게 되었다고 본다. 이들의 지적 호기심과 정치적 야심, 그리고 운동적 경험은 실천운동과 어떤 형태로든지 관계를 맺고자 하면서 계급적 관점과 실천을 무력화시키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특히 김영삼정권 이후 지금까지 노동운동을 포함한 민중운동진영 내에 존재하는 탈계급적이고 시민운동적인 노선과 실천이 여기에 속한다. 그것이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이건 '사회적 조합주의'노선이건 몰계급적이고 계급타협적이며 노사협조적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개량주의는 바로 노동자계급운동 내부에 부르주아사상이 침투한 결과를 의미한다.

어찌되었든, 격화되는 계급투쟁의 객관적 진실을 호도하고 현실주의적 노동운동의 실리를 내걸며 결국에는 반자본의 전선을 약화시켜 무너뜨리는 자본종속적 사상이론과 실천에 대해 우리는 결연한 태도로 그 본질을 폭로하고 투쟁하는 대중의 심판을 받게 해야 한다. 더구나 김대중정권 이후 IMF관리체제에 진입하면서 이러한 경향은 수그러들지 않고 더욱 노골적으로 계급타협의 노선을 유포하면서 생존권사수를 내걸고 온몸으로 투쟁하는 노동자계급과 민중을 달래고 위협하고 있다. 노동운동에 부르주아적 쓴 약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적 달콤한 약이 필요없는 것이다(이러한 경향에 대한 구체적 비판은 김세균 교수글, {현장에서 미래를} 1998년 10월호를 볼 것).

이러한 경향은 노동운동, 민중운동내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공개적으로 부르주아 시민운동영역을 설정하고 민중운동을 적극적으로 대체하려는 사상이론으로 노출되어 있다. 물론 개량주의적 민중운동 노선과 때를 같이 하는 부분도 존재하지만 민중운동을 부르주아 시민운동에 종속시키려는 세력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신자유주의를 노골적으로 지지하는 친자본적 시민운동세력보다는 훨씬 세련된 자본합리화를 통하여 노사협조주의를 정착시키고, 종국에는 자본의 질서를 공고히 하는 친자본적 시민운동세력이 대중매체의 각광을 받고 있다. 이들 세력을 뒷받침하는 사상노선은 신자유주의의 후유증을 감소시키는 사회복지적 이론과 실천에 있으며 유럽식 사민주의나 영미식 케인즈주의로의 부분적 복귀를 통하여 계급투쟁을 희석시키는 부르주아적 사상노선이다. 노동자계급운동의 투쟁의 성과로 쟁취한 복지(물론 계급타협의 산물이기도 하지만)를 삭감하고 무한경쟁을 통한 자본증식의 논리로 생존할 수밖에 없는 세계자본주의체제 아래에서 자본증식의 구조조정이라는 자본합리화를 도와주는 이들의 실천(소액주주운동, 경영참가 등)이 결국 생존권투쟁과는 거리가 먼 환상일 수밖에 없음은 명약관화하다.

우리는 친자본적 사상이론의 생산과 유통에 관계하는 세력들이 큰 세력권을 형성하고 있다고 본다. 이른바 '신세대'(?)이론가, 노동운동가, 현장활동가, 그리고 이를 엄호하는 자본과 보수권력 그리고 몰계급적 대중들이 하나의 체계로 묶여 있다. 바로 이들이 민중연대 투쟁전선을 교란시키고 계급적 민중연대를 분절시키고 있음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이들과의 사상투쟁 뿐만 아니라 밑으로부터의 대중투쟁을 통한 계급의식화가 변증적으로 결합되었을 때만이 비로소 민중연대 투쟁전선을 강화시킬 수 있는 첫번째 조건이 갖추어진다고 볼 수 있다.

Ⅲ

민중연대 투쟁전선을 교란시키는 두번째 요인은 조직노선과 연관된 문제이다. 이념적 전선의 명확한 규정이 자본과 권력에 대한 투쟁으로 내려졌을 때 사회변혁운동의 조직노선은 그 이념을 가장 효과적으로 실천하고 실현시킬 수 있는 형태로 짜여져야 한다. 지금까지 운동에서 전선강화를 위한 전선조직과 정치투쟁을 위한 정치조직의 변증적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바로 이념전선의 교란에 의한 것일 뿐만 아니라 조직노선에 대한 명확한 인식부족 때문이기도 하다. 먼저 전선운동부터 살펴보기로 하겠다.

이른바 통일전선논리는 반자본에 대한 계급적 관점이 희석되어 있는한 전선조직을 만들어낼 수 없다. 민족모순에만 경도되어 있는 한계, 정치노선과 얽혀 있는 관계구조의 봉건성, 명망가 등 상층중심의 헤게모니 싸움, 대중조직의 계급의식의 취약, 정파 중심의 음모적 사업작풍 등이 혼재되어 있는 우리 운동의 주체적 조건은 91년 강경대투쟁을 투항으로 마무리함으로써 그 임무를 포기하였다. 전투적 노동운동의 방어적 홀로서기와 빈민·농민운동의 자기이해에 기반한 고립된 투쟁은 계급적 민중연대투쟁의 고리를 끊어놓았으며 민족주의진영의 일변도적 통일투쟁, 그리고 대중투쟁의 방기는 전선운동을 분열시켰고 [전국연합]은 이름만 남게 되었다. 더구나 앞에서 설명한 개량주의의 발호는 민중연대를 계급적으로 통일시키는데 실패한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김영삼정권 이후 전선운동을 책임질 어떤 조직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나마 96년말 97년초 노동자계급의 총파업투쟁은 민중연대 투쟁전선을 새롭게 구축할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그러나 그 당시 결성되었던 총파업범대위는 민주노총의 파업유보, 계급타협주의를 주도한 일부 종교인과 시민운동세력, 친 DJ정치세력과의 제휴 등의 요인 때문에 한시적 기구로 좌초되었으며 전선은 무너졌다. IMF관리체제로의 편입과 김대중정권의 신자유주의적 지배전략은 필연적으로 반노동자적 노동악법을 관철시킬 수밖에 없었고, 이제 본격적으로 민중연대를 강제하고 있다. 국내외적 모든 정세가 오히려 전선을 강화시키고 있다. 그야말로 노동자계급과 민중은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 있으며 역사적으로 오랜만에 전선을 온몸으로 체험하고 있다. 지금의 국본으로는 이 전선을 감당하기 어렵다. 새롭게 민중연대 투쟁전선을 구축해야 한다. 그것은 물론 형식적인 조직 그리기로 되지 않는다. 서두에서 말한 바대로 반자본 반보수권력의 투쟁 기조를 분명히 하고 계급적 관점으로 단결하는 길밖에 없다. 민중연대투쟁조직의 성격을 강화시켜 나가면서 노동자·민중 대연합을 건설해야 한다. 기층 대중은 병렬적 결합이 아닌 노동자계급적 원칙으로 결합하고 모든 부분에 존재하는 민주진보세력 역시 이들과 함께 계급적 원칙으로 단결해야 한다. 투쟁요구도 노동자·민중적인가 친자본적인가를 엄밀하게 극분하여 투쟁의 기조를 흐트려뜨리지 않게 하고, 관료적이고 음모적인 운동방식도 대중적이고 공개적인 민주적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풍을 쇄신해야 한다.

전선운동과 정치운동을 이분법적으로 사고하는 조직노선 역시 민중연대 투쟁전선을 교란시키는 요인이었다. 전선조직은 정치조직과 연관을 맺으면서도 그 스스로 정치운동의 구심이 되기 어렵다. 아무리 계급적 원칙으로 결합된 연대체라고 하더라도 다양한 노선의 대중들과 결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전선운동과 민중연대 투쟁전선을 구축하지 않는 어떤 정치조직(혹은 합법정당)도 정치적 구심이 될 수 없다. 바로 민중연대 투쟁전선과 결합된 계급적 정치조직의 부재는 지금까지의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단발적인 투쟁, 유보하는 투쟁, 투항하는 투쟁으로 만든 원인 중의 하나였다. 이러한 정치조직의 건설은 바로 이 역사적 시점에 선 우리들의 역사적 책무이자 노동자계급의 자기임무이다. 노동자계급이 스스로의 정치조직을 만드는 것은 너무난 당연한 일이다. 여러 관점을 갖는 노동자는 여러개의 정치조직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의 원칙을 가지고 투쟁하는 노동자는 오직 하나의 정치조직의 구성원이 된다. 노동과 진보를 말한다 하더라도 친자본적인 정치조직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겉으로는 신자유주의에 반대한다고 하면서도 신자유주의의 틀안에 있는 유럽의 제3의 길(제3의 길이 없음에도 불구하고)의 정당을 만든다고 하는 세력도 있다. 물론 정치사상의 자유가 있다. 자신의 자유를 말하기 전에 모든 노동자·민중에게 정치사상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대중조직이 정치조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노동자들도 있다. 이들은 좌파가 소수이기 때문에 다수파인 개량주의와 동거하면서 때를 기다려야 한다는 현실주의자들이다. 그러나 사상투쟁은 모든 투쟁의 전면에 서는 것이며 그 동력은 투쟁하는 대중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좌파의 정치적 현실주의가 역사적으로 계급투쟁을 얼마나 희석시키고 약화시켰는가를 기억해야 한다. 섯부른 당 물신성이 대중을 지도할 수 있다는 착각이나, 무차별적 대중이 힘의 근거라고 보는 대중조직 물신성 모두 우리의 정치운동이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따라서 민중 대연합의 건설과 노동자계급의 정치조직의 건설은 분리되어 있으면서도 분리되어 있지 않은 우리의 조직적 과제이다.

Ⅳ

민중연대 투쟁전선을 교란시키는 세번째의 문제는 투쟁노선과 연관되어 있다. 대중투쟁을 중심에 놓지 않을 경우 투쟁전선이 무너지고 합법주의에 빠지는 것을 우리는 충분히 경험하였다. 강경대 투쟁이 지자체선거와 맞물려 보수정치세력과 민중당이 전선으로부터 이탈한 예, 96∼97총파업투쟁이 보수정치세력의 협상으로 마무리된 예, 97대선투쟁이 선거주의로 빠진 예, 98총파업투쟁이 노사정위원회에의 참여로 마무리된 예 등이 대표적인 보기들이다.

자본주의의 틀안에 갇혀 있는 조합운동은 요구로서의 투쟁이 최종적 협상으로 마무리되지만, 최근의 총파업과 같은 정치투쟁은 최종적인 타협이 이루어지더라도 투쟁 자체가 목표가 된다. 특히 총파업투쟁이 총가두투쟁이 되었던 경험은 소중한 것이다. 개량주의가 합법주의와 손을 잡는 것은 부르주아의 법체제 내에서의 운동성격을 지니기 때문이다. 서명이나 법청원 및 캠페인 등의 운동방식은 시민운동에서 선호하는 방식이며 근본변혁으로 나아가는 대중투쟁의 성격을 지니지 못하고 있다. 물론 지배이데올로기의 막강한 영향력 아래 놓여있는 대중에게 다가가는 다양한 운동방식을 창안해내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자본과 보수권력의 지배를 재생산해내는 근본 구조의 혁파와 법제도의 철폐는 밑으로부터의 대중투쟁의 힘에 의해서만 달성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얼마나 대중투쟁을 지속적으로 일구어낼 수 있는 주관적 조건이 존재하고 또한 만들어낼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끊임없는 자본의 위기가 극점을 향해 달리고 있다는 객관적 정세가 주어진 상태에서 투쟁주체를 올바른 투쟁노선으로 끌어올리는 길이 남아 있을 뿐이다. 투쟁은 생존으로부터 시작되며 생존을 위협하는 모든 기구와 장치들이 온존해 있는 한 이들은 끊임없는 투쟁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투쟁의 대상을 은폐시키고 오히려 그러한 반노동자적, 반민중적 법제도와 기구를 자본합리화의 방편으로 삼게 하려는 비투쟁적 사회적 조합주의는 민중연대 투쟁전선을 교란시키는 독이 될 수 있다.

Ⅴ

이제 다시 98민중대회로 돌아오자. 이번의 민중대회를 일회적인 행사로 끝내지 않게 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한다. 진정으로 민중연대 투쟁전선을 강화하여 계급적 민중운동으로 도약할 수 있는 사상이론적 원칙과 조직화 양식 그리고 투쟁기조가 확립되어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나는 역사적으로 민중연대 투쟁전선을 교란시켰던 근본적 요인들을 사상이론적 노선, 조직노선 그리고 투쟁노선을 중심으로 살펴보면서 짧게는 50년의 사회변혁운동이 걸어왔던 투쟁의 역사가 소시민적 민주화투쟁, 민중주의적 민중투쟁을 넘어서서 반자본투쟁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세계사적 인식의 시대에 돌입해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자본의 운동법칙에 철저하게, 그리고 세련된 형태로 종속되면서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투쟁을 약화시키는 각종의 개량주의와 합법주의가 현란한(본질은 반민중적인) 언술을 구사하면서 우리 운동 안팎에서 발호하고 있음을 비판하였다. 이를 마치 적전분열인 것처럼 호도했던 시대도 있었고 원칙 없는 대동단결론을 펼쳤던 시대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분명해졌다. 아직도 분명하지 않다고 말하지 말자. 건강한 방향으로 변화되고 투쟁하는 대중에게 그것은 한낱 위선과 기회주의로 비추어질 뿐이다. 자본이냐 노동자계급이냐, 보수냐 진정한 진보냐 하는 선택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바로 그 고귀한 선택을 해야 할 역사적 요청을 받고 있다. 이제 시작이다. 98민중대회를 지난날의 잘못에 대한 반성과 희망의 미래를 향한 결단의 마당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전세계 노동자계급, 그리고 민중과 함께 만들어야 한다. 노동자계급의 세계적 연대는 자본의 세계화와 맞서는 세계적 투쟁전선이며 이에 함께 하는 우리의 민중연대 투쟁전선은 남한을 지배하는 자본과 김대중정권에 맞서는 투쟁전선이다. 이 전선은 세기말적 전선인 동시에 21세기의 희망의 전선이다. 자본의 위기를 노동의 희망으로 바꾸어내는 유일한 투쟁전선이다. 우리는 98민중대회의 성과를 이어받아 강고한 민중연대 투쟁전선을 담당할 민중대연합 건설을, 그리고 이 투쟁전선과 함께 노동자계급의 희망의 정치를 펼쳐갈 노동자계급의 정치조직의 건설을 힘차게 진행시켜야 한다. 물론 이들은 계속해서 격화될 계급투쟁의 실천 속에 단련될 진정한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벗이 될 것이다.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