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현장에서 미래를』38(1998/11)

건강권은 노동자·민중의 힘으로 쟁취해야

보건의료 구조조정 양상과 노동자·민중의 요구

강 동 진(평등사회를 위한 민중의료연합)

1. 들어가며

건강권은 보편적 권리이다. 이는 성, 나이, 인종, 학력, 경제적 능력이나 정치적 지위에 관계없이 권리가 보장됨을 의미한다. 하지만 사회 전반에 뿌리 박힌 불평등 구조는 민중의 건강권을 형식적으로 명문화되어 있는 법률조항으로 사문화시켜 버린다. 그러나 형식적인 권리조차도 어느 것 하나 노동자·민중의 투쟁과 저항 없이 쟁취된 것이 없다. 성과 인종의 차이, 사회적·경제적 지위의 격차에 관계없이 모든 인간의 생명은 고귀하며, 따라서 노동으로 살아가는 인류의 육체와 정신을 건강하게 유지하고 사회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언명이 확립되는 데에는 수많은 노동자·민중의 피땀이 희생되었다. 보편적 권리가 처음부터 보편적으로 주어지는 것은 아니며, 이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의 최선두에는 노동자·민중이 있었다. 보편적 권리의 실질적 보장을 위해서 보건의료와 건강의 문제가 무엇보다 노동자·민중의 시각에서, 그 힘으로 해결되어야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근대 이후 인류의 역사는, 진정한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노동자·민중의 주도권이 확보되어야 함을 웅변하고 있다.

위와 같은 역사적 교훈은 IMF 구제금융 이후 본격화되고 있는 우리 사회 각 부문의 '구조조정'에 대한 대응에서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할 원칙이자 기본 방향이다. '경쟁과 효율' '수익성'이라는 시장주의적 접근이 '시장 실패'의 주요한 영역이라 여겨지는 보건의료분야 구조조정의 원칙으로 섬겨지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는 노동자·민중의 힘에 기초한, 보건의료부문의 계획과 요구를 지녀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노동자·민중 생존권 쟁취 투쟁과 결합되어야 한다.

위와 같은 취지에서 이 글에서는 현재 나타나고 있는 보건의료부문에서 노동자·민중의 건강권과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는 대표적인 변화와 정부, 정당 등 제도권에서 향후 보건의료개혁(?)을 위해 내놓고 있는 내용을 소개·검토하고, 노동자·민중이 내걸어야 할 보건의료부문의 요구를 정리하려고 한다.

2. 현재 보건의료와 노동자·민중 건강관련 주요 변화 상황 검토

1) 공공보건의료(기관) 구조조정

충남지역에서 외지고 낙후된 지역의 기초 의료서비스를 담당하는 보건진료소 가운데 5%인 13곳이 올 겨울을 지나면서 폐쇄된다. 22일 충남도가 국회 행정자치위원회에 낸 자료에 따르면 모두 242곳의 보건진료소 가운데 13곳이 해당 기초자치단체 의회의 조례 개정으로 폐지된다. 폐지될 보건진료소는 천안시 3곳, 계룡출장소 2곳, 금산군 6곳, 부여군과 태안군 각각 1곳이며 1만6천여명의 주민들이 기초 의료서비스에서 제외되게 됐다. 이들 보건진료소가 폐쇄되는 것은 의료기관과 가까운 지역이거나(12곳), 설치기준이 미달되기(1곳) 때문이라고 충남도는 밝혔다.

위의 내용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진행되고 있는 공공의료기관 구조조정의 내용을 나타내주는 신문기사의 일부이다. 공공보건의료에 대한 구조조정은 정부의 조직개편 논의에서 출발되어 전면적이고 강력하게 촉발되고 있다. 올 하반기 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공공의료기관에 대한 구조조정은 정부 및 공공부문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동일한 배경과 방향을 갖고 추진되고 있다. 현재 구조조정의 압도적인 양상은 보건의료의 새로운 틀을 만들기보다는 기존의 이해관계에 따라 적당히 조정해 나가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문제는 공공의료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전제되지 못한 상태에서 무조건적인 인원감축, 기구축소, 직제개편으로 공공의료가 가지는 본래의 의미가 감소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공공의료기관 구조조정 대상은 보건진료소, 보건(지)소를 비롯하여 34개 지방공사의료원, 8개 국립대학병원, 보훈병원, 원자력병원, 산재관리의료원, 적십자기관, 국립의료원, 목포결핵병원, 보건단체(대한결핵협회, 대한건강관리협회, 대한가족계획협회) 등이 구조조정 대상에 포함된다. 공공병원 구조조정의 핵심은 예산감축에 있다. 이를 위해 인력감축, 임금삭감 등을 기본으로 하면서 현재 경영상태를 진단하여 민간위탁이나 민영화를 적극 검토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지방공사의료원의 경우 현재 6,489명의 인원을 19.5% 감축하라는 권고사항이 지난 10월 2차 공기업 경영혁신 방안에서 발표되었으며, 민간위탁, 임금삭감, 퇴직금 누진제 개악, 간호사 직급제 전환, 직제개편 등을 골자로 한 구조조정안이 추진되고 있다. 국립대학병원은 경영혁신단이 구성되어 근로자파견법 적용 직종 부분 민영화, 비정규직 도입, 예산절감 및 인력감축, 조직개편 등을 주 내용으로 하는 안이 마련 중이다. 보건소도 마찬가지로, 지난 6월 18일 행정자치부에서는 '지방조직개편 추진지침' 문서를 하달하여 주민 이용률이 낮고 민간 병·의원 등 보건의료기관이 중복되는 지역은 적극 정비하고, 지방공사의료원이 있는 시군의 보건소는 존폐 검토 또는 재정립 후 축소라는 방침을 마련한 바가 있다. 그러나 실제로 진행되는 내용은 전체의 몇 %라는 식의 무조건적인 감축 지시가 내려지고 있다.

그동안 공공보건의료기관은 민간의료기관이 수익성이 없다고 판단하여 시행하지 않고 있는 사업들(예를 들어 결핵관리사업,나환자관리사업 등)을 책임져왔다. 마찬가지로 민간의료기관이 기피해온 의료소외지역의 의료활동과 집단대상 보건사업 등을 수행해왔다. 특히 이러한 공공보건의료기관은 많은 저소득층 환자들이 이용해왔다. 이것이 공공의료기관의 재정이 취약해질 수밖에 없는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전체 의료기관 중 공공의료기관이 차지하는 비율이 16.7%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대안 마련이 되지 못한다면 공공의료에 크게 의존하는 저소득층은 어려워진 경제상황과 함께 더욱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수익성과 재정감축 등 시장메카니즘의 논리하에서 구조조정이 진행된다면 보건의료의 공공성을 크게 해칠 것이며 그간 사회안전망으로서 다소나마 역할을 했던 공공보건의료의 역할마저 심각하게 침해당할 것이다.

2) 의료보험 통합일원화

1987년 500인 이상 사업장부터 실시된 우리나라의 의료보험제도는 제도상의 근본적인 문제(조합주의 방식)로 전국민을 지역, 직종, 계층별로 분리·운영함으로써 끊임없이 통합의 당위성을 제기받아 왔다. 88년 농어촌 지역 의료보험 확대실시 직후 지역의보노조, 농어민 단체, 보건의료단체 등이 의료보험통합운동을 벌인 이후 94년 민주노총이 조직적으로 의료보험통합일원화 운동에 참여하면서 마침내 97년 11월 정기국회에서 국민의료보험법(공무원て교원 공단과 지역의보조합의 통합)을 제정케하였다. 그 뒤 98년 10월부터 국민의료보험관리공단이 설립되어 1차적인 통합을 이룬데 이어, 98년 1기 노사정위원회에서 직장의보까지 의료보험을 통합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올해 정기국회에서는 '국민건강보험법'을 제정하여 2000년 1월부터는 완전 통합을 이룬 의료보험제도가 실시되게 된다.

국민의료보험관리공단의 첫 보험료 고지서가 발송된 뒤 인상된 보험료에 대한 항의가 빗발치고 있는 가운데 실측 결과, 전체 가입자의 월평균 보험료는 통합 이전보다도 3백33원 내린 것으로 조사됐다. 30일 국민의보공단에 따르면 통합 이전 가입자 780만명의 월 평균 보험료는 26,399원이었으나 통합이후에는 26,066원으로 가입자의 부담액이 3백33원 줄었다. 이는 지역의보와 공무원·교원의보공단이 통합되면 보험료가 크게 오를 것이라는 예상과 완전히 상반된 결과여서 주목된다. 공단은 통합에 따라 전체 가입자의 62.5%인 488만 가구는 보험료가 내린 반면 37.5%인 292만 가구는 보험료가 올랐으나 농어촌, 오지, 저소득 가입자에 대한 인하폭이 커 전체 가입자의 월 평균 보험료가 줄어드는 효과를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국민의료보험관리공단의 설립으로 지역조합과 공무원·교원공단이 통합된 이후, 그 효과로 보험료 부담의 형평성을 달성하고 부담을 덜어주었음을 나타내주는 위의 자료는 의료보험통합의 정당성을 충분히 입증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직장의료보험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통합반대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통합일원화 자체로 노동자·농민 의료보장을 이루었다고 볼 수는 없으며, 보험급여를 확대하고 재정에서 국가부담을 더욱 확대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3) 산재현실의 은폐, 노동자건강 악화, 산업안전보건법의 개정

IMF구제금융 이후 통계상으로는 산업재해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 예로 근로복지공단 울산지사에 따르면 1998년 1월말 현재 산재로 치료받고 있는 울산지역 노동자는 1,800여명으로 지난해 같은 시기보다 400명 이상 줄어들었으며, 목포지사에서도 1월중 산재노동자가 지난해보다 60여명 줄어든 것으로 집계되었다고 보고되고 있다. 또한 신규발생 산재환자도 20%이상 줄어들었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산재가 감소하여서라기보다 발생한 산재를 신고하지 않아 생기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노동부의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인천지역 대기업의 경우 산재처리를 의료보험으로 처리하는 방법으로 산업재해를 숨겨왔음이 밝혀졌으며, 이는 기업 전반에 걸쳐서 나타나고 있다.

아울러 노동력 상실과 해고, 실업, 정리해고, 노동강도의 증가로 인한 스트레스 등으로 노동자의 과로사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보고 되고 있다. 올들어 8월말까지 과로사를 이유로 산업재해보상 보험금을 신청한 건수가 지난해에 비해 7%가 증가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규제개혁'이라는 미명하에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악하려고 하고 있다. 안전담당자 폐지, 보호구 제조·수입업자에 대한 인력·시설기준 삭제, 자체검사자 교육의무 삭제, 자체검사자 교육의무 불이행시 벌칙 삭제, 유해·위험방지계획서 제출의무 폐지 등의 개정안을 제출하고 있어 취약한 산업안전을 더욱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4) 보건의료개혁(?)을 향한 제도권의 움직임

보건복지부에서는 '21세기 보건의료발전종합계획'이란 명제하에 '21세기보건의료발전 기본방향과 세부실행계획을 제시함으로써 정책의 일관성과 예측성을 확보하고 자원의 효과적인 활용을 통해 국민보건 향상과 국가경쟁력 제고 도모'를 목적으로 2003년까지 5년간에 걸쳐 시행할 내용을 마련하고 있다. 그 산하에 '21세기 보건의료발전기획단'을 설치하고 98년 연말까지 최종확정될 계획이다.

주요정책 방향으로는, 보건의료분야에서의 국가의 책임과 의무, 정부와 민간의 적절한 역할분담 등의 기본틀을 우선적으로 정립하고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의 대전환, 병·의원 등 보건의료기관에 경영개념의 도입, 규제중심 관리행정에서 경쟁력 확보가 가능한 지원행정으로의 전환, 보건의료산업의 21세기 첨단생명자원산업으로 육성 등을 제시하고 있다.

국민회의는 '보건의료선진화를 위한 정책기획단'을 설치하여 지난 10월 20일 '보건의료 효율화와 선진화를 위한 보건의료 개혁정책'안에 대해 공청회를 가진 바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첫째, 혼란한 보건의료서비스 시장에 질서를 부여하여 의료제공체계를 효율화하고 들째, 보건의료서비스의 포괄성과 질적 수준을 높이고 셋째, 보건의료정책과정에 민주적 참여기전을 도입하고 넷째, 국가보건의료정책과 활동목표를 설정하는 것 등을 목적으로 하여 보건의료보장체계의 개편, 보건의료체계의 개편, 보건의료재정의 개편, 보건의료사업의 개편이라는 일련의 개혁(?)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현단계에서는 보건의료체계의 개편에 집중하여 중점관리 질환의 선정, 수가차등화, 단골의사제도의 도입, 의약분업, 요양병원, 보건의료인력, 공공보건체계, 보건정보 등의 8개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개혁프로그램은 그 내용에 있어서 '경쟁과 시장'이라는 자본의 논리를 전제로 하고 있어서, 실제적으로 보건의료의 공공성을 얼마나 담보해 낼지는 차치하고서라도 추진과정에서 각종 이해당사자들의 반대와 정책수단을 운용 할 정부당국의 추진의지와 일관성, 국민의 이해와 동의구조, 개혁추진주체의 형성 등에 그 성패가 달려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개혁의 기획입안자는 있지만 개혁 추진동력이 극히 미약하다는 점에서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이다.

5) 노사정위원회

노사정위원회 산하에 사회보장위원회가 설치되어 보건의료, 복지, 노동자건강과 관련하여 ① 의료보험 통합일원화와 보험적용 확대 ② 사회안전망 확충 - 사회보험 적용확대, 사회보장 재원의 확대, 사회보험 통합 일원화, 사회보험 형평성 제고 ③ 세제개편 - 근소세 개편, 금융실명제, 금융소득종합과세 부활, 근로소득 분리과세 ④ 각종사회보험기금 운용 및 사회보험관리운용에 가입자 대표 참여강화 ⑤ 산재보험제도 개선 및 산재예방체계의 효율화 방안 ⑥ 생활보호제도의 확충 ⑦ 사회보장 행정체계 개편 ⑧ 공공의료서비스 등의 의제가 논의되고 있다. 의료보험통합일원화와 관련하여 정부의 재정부담 명시와 직장과 지역간의 재정분리를 쟁점으로 경총과 한국노총 대 정부와 민주노총간의 대립구도가 형성되어 있다.

6) SAL-2(세계은행구조조정차관협상안) 보건의료 부문내용

IBRD는 우리나라에 구조조정차관 2차 지원분을 논의하면서 구조조정 요구안을 제시하였는데 협의를 거쳐 지난 10월 초 타결된바 있다. 거기에는 보건의료 부문도 포함되어 있는데 그 주요내용은 △ 현행 행위별 수가제를 DRG와 총액예산제를 포함한 다른 종류의 진료비 지불제도로 바꿀 것 △ 의료보험 입원진료의 실질 본인 부담을 20% 이하로 낮추고, 총 부담액을 소득의 10% 이하로 할 것, 지정진료(특진) 제도를 없앨 것 △ 의료보호도 의료보험과 마찬가지로 입원진료의 실질 본인 부담을 20% 이하로 낮추고, 총 부담액을 소득의 10% 이하로 할 것 △ 중간 정도의 경제적 부담에 대한 의료저축제도(Medical Saving Account, MSA) 도입 등이다.

이러한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권고안'의 성격을 지니는 것이므로 강제성은 떨어진다. 우선 그 성격만 살펴보면 정부지출과 국가보조금의 축소, 민영화, 본인 일부 부담의 도입과 본인부담의 증가 등이 세계은행이 요구하는 구조조정 프로그램의 일반적 성격이다. 물론 전반적으로는 현재의 한국 보건의료가 가진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에 도움이 될 요구안이라고도 볼 수 있으나, 국가의 책임에 대한 적극적인 강조가 없고 의료저축제도 등으로 미루어 전반적인 경제 자유화 정책과 노동의 유연화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조건을 확보하는 차원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장기적으로는 보건의료분야에서도 국가부담의 축소와 민영화, 경쟁과 효율 등으로 표현되는 정책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이상 보건의료와 관련하여 몇가지 대표적 사안 및 제도권 세력의 움직임과 동향에 대해 살펴보았다. 얼핏 보면 전면적이고, 총체적으로 한국사회 보건의료의 틀을 바꾸기 위한 긍정적 노력을 하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경쟁과 효율'이라는 '시장주의적 접근'을 기본 논리로 삼고 있어 현재의 보건의료체계의 틀을 보다 자본주의적으로 '합리화'하거나, 더욱 더 보건의료를 시장이 지배하는 기제로 재편하는 움직임이 대세임을 짐작할 수 있다. 시장기제의 우세속에 극히 일부분에서(노숙자, 노인 등 취약계층) 사회안전망의 도입과 같은 조치가 취해질 것으로 보인다.

3. 보건의료에서 노동자·민중의 요구

1) 기본방향

① 공공의료의 역할 및 비중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경제위기 상황에서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공익 목적의 공공의료는 더욱 더 강화되어야 한다. 따라서 공공의료기관의 무분별한 축소 및 폐지는 불가하며, 직원 감축과 재정 자립을 목표로 하는 현재의 '공공의료기관 구조조정'은 적절하지 못하다.

지방공사의료원, 국립대병원 등을 정부 지원하에 공적인 고유 기능을 강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편해야 하며, 특히 공공의료기관이 지역보건 사업에 참여하고 보건사업과 진료부분 모두에서 연계·발전을 할 수 있도록 역할을 다시 설정하여야 한다.

따라서 공공의료기관의 기능을 다시 설정하고 이에 따른 발전 방향을 정하기 위한 기구를 구성해야 하며, 현재 '수익성'을 기준으로 자행되고 있는 공공의료기관의 구조조정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② 비효율과 낭비의 근원인 민간의료 체계의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민간의료가 80% 이상을 점하고 있으며, 90년대 들어 의료의 고급화·전문화가 진행되고, 의료기관 간의 경쟁이 격화되면서 무분별한 병원 증축 및 불필요한 의료기기의 구입 남발로 인하여 IMF 정세속에서 병원 스스로 경영의 어려움을 낳는 결과를 야기하고 있다. 더구나 이러한 의료서비스는 대다수 국민이 쉽게 접근하기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비용으로, 실제로 국민의 건강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하기보다는 병원의 이윤을 증대시키기 위한 도구로 활용되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김영삼정부 이후 현재의 정부에 이르기까지 효율을 앞세워 민간의료보험 도입, 지방공사의료원 민간위탁과 민영화 등 공공의료기관을 축소하려는 움직임마저 일고 있다.

현재의 '저효율, 저보장' 의료제도를 더욱 더 고착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 뻔한 시장경제 논리의 도입은 있어서는 안 되며, 아울러 비효율과 낭비적 구조를 낳을 수밖에 없는 현재의 민간중심, 이윤추구 중심의 의료체계를 변화시켜야 한다. 공공의료기관의 확대·강화, 민간의료기관의 공공성을 증대시키기 위한 진료비 지불제도의 개편, 그리고 IMF 경제위기로 인해 부도위기에 처해 있는 병원들에 대해서 그 기능의 전환 및 공공 소유로의 전환 등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③ 정부와 국가의 책임강화를 위해 보건의료 부문 재정지출을 확대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전체 사회복지 예산이 중앙 정부의 세출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단 한 차례도 10%를 넘지 못하였으며, 98년만 해도 세출 예산의 9.7%만이 배정되어 있을 뿐이다. 더구나 이중 보건의료 예산은 1% 정도의 수준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의료에 대한 정부와 국가의 책임축소를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우리나라의 조세부담율은 일본의 16.1%보다 높은 19.6%에 달한다. IMF 이후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그리고, 사회 전부문에 불어닥치고 있는 '구조조정'에 소요되는 예산만 해도 17조원이나 되며, 이는 고스란히 국민이 떠안게 되어 있다. 국민의 혈세가 국민을 위해 쓰여지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효율과 이윤 창출을 위하여 그들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④ 노동자·민중의 보건의료에 대한 참여와 통제가 확대되어야 한다

공공의료기관의 비효율성의 근원은 수십 년간 쌓여온 관료적 폐해와 정부 보건정책의 부재 등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결과 의료서비스 질의 저하, 공공의료 역할 및 비중의 하락 등을 낳았으며, 이는 공공의료기관을 국민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다.

그런데 최근 IMF로 인한 소득수준의 저하로 진료비가 싼 보건소로 환자가 몰리고 있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공공의료기관의 이미지가 '싸다'는 것 때문이지만, 동시에 국민들에게 가깝게 다가가고 있는 점도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한다면 공공의료기관의 역할과 비중은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처럼 '관료적 국가기구'에 의한 강제적 힘으로는 진정한 개혁이 불가능하다. '노동자·민중의 민주적 참여와 통제, 감시' 아래에서 이루어질 때에만 비효율적인 공공의료기관 구조를 민중의 이익에 부합하는 공공의료기관으로 개혁할 수 있다.

2) 노동자·민중의 요구

① 의료의 공공성 강화 - 공공의료개혁 !

-. 보건(지)소, 지방공사의료원, 국공립 병원 등에서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는 인력감축, 조직통폐합, 민간위탁, 민영화 방침은 철회되어야 한다.

-. 산만하고 일관성 없이 흩어져 있는 공공의료기관을 단일한 국가공공보건의료체계로 편입시키고 공공보건의료부문의 전달체계를 확립하여야 한다.

-. 공공보건의료 부문의 구조조정은 보건복지부, 보건의료분야 전문가, 노동자·시민의 참여하에 이루어져야 한다.

-. 국가보건의료체계의 목표에 부합하도록 공공의료기관의 기능을 전환해야 한다.

② 노동자·민중의 건강보장과 사회안전망 구축

-. 의료비에서 일정액 이하의 본인부담금은 면제하고 본인부담금 상한선을 설정해야 한다.

-. 현재 60%에 이르고 있는 의료비 본인부담금 비율을 지속적으로 낮추어야 한다.

-. 실업대책기금에서 일부를 '질병구제기금'으로 확보해야 한다.

-. 의료보험재정에 대한 국고지원을 50%까지 확대하고 의료서비스에 대한 보험적용을 확대해야 한다.

③ 정부와 국가의 책임 확대 - 보건예산 확대

보건의료부문에 대한 국가 예산을 확대하고, 보건의료의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개혁을 추진하는 사회적 기구를 구성해야 한다.

4. '98민중대회'를 맞이하며 - 보건의료운동의 과제

보건의료운동 진영은 현재 보건의료산업노조가 '의료개혁·고용안정 투쟁본부'로 전환하여 공공의료기관 구조조정과 의료개혁과 관련한 하반기 투쟁을 벌이고 있고, 보건의료단체가 중심이 되어 '공공의료기관의 올바른 개혁과 국민건강 보장을 위한 범국민대책회의(준)'활동을 준비중이다. 그리고 인의협, 건치, 건약 등 보건의료단체도 그간의 직능 중심의 활동을 넘어 총체적인 의료개혁의 대안을 마련하고 의료개혁투쟁에 나설 채비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보건의료에서 노동자·민중을 투쟁의 주체로 세우는 일이다. 서두에서 언급했다시피 노동자·민중의 건강권은 그 누가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세우고 지켜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자·민중을 투쟁의 주체로 세워내기 위한 계획을 짜고, 그 쟁점을 형성하는 투쟁을 전개하는 것은 현재 보건의료운동진영의 몫이다. 이에 98민중대회를 맞이하는 보건의료인의 의지를 담은 선언문을 마지막으로 싣는다.

건강사회를 여망하는 보건의료인 선언

- '98민중대회에 즈음하여

IMF구제금융과 김대중정부 출범 이후 우리 사회의 참담한 모습을 바라보면서 건강한 사회를 염원하고 실천하는 우리 보건의료인들은 심각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날로 늘어나는 실업자와 노숙자의 문제는 당사자와 가족의 고통 뿐 아니라, 이제 전사회의 고통이 되고 있다. 정부나 언론은 "실업을 이기자, 경제 위기를 이기자"라고 외치고 있지만 그것은 현재의 악화된 상황을 더욱 더 절망하게 하고 있을 뿐이다.

지난 8개월간 빈부의 차이는 더욱 벌어지고 있고,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그리고 앞으로 더욱 늘어만 갈 엄청난 해고 뿐 아니라 임금삭감, 체불임금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가계생활의 기반을 흔들고 있다. 또한 정부의 실업대책의 일환인 공공근로사업 마저도 그 사업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오히려 주인없이 눈먼 돈이 되어 국민의 조세 부담만 늘고 있다.

생계 뿐 아니라 건강의 문제도 심화되고 있다. 경제적 빈곤으로 인해 위협받는 건강을 지켜줄 정부의 정책이 없다. 오히려 산업현장에서는 산업재해를 사업주가 숨기거나, 노동자가 실업의 두려움으로 산업재해의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 빈번하며, 산재의료원의 강제 치료종결이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있다. 그리고 현재 실시되고 있는 공공의료기관의 구조조정이 국민건강보장과 증진에 기초하고 있지 않음은 관계당국도 인정하고 있다. 또한 우리 보건의료운동의 10년의 성과라 할 수 있는 의보통합이 현재 시비에 오르는 것은 의료보험 재정에 대한 국고보조 확대에 정부당국의 소극적 태도를 보이는 것이 그 빌미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김대중정부는 왜 노동자와 농민, 빈민 그리고 수많은 사회단체가 '98민중대회'를 개최하는 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될 것이다. 소위 '국민의 정부'라고 자임하는 김대중정부가 추진하는 '개혁'이 올바로 가고 있지 않다는 것이 우리의 견해이다. 개혁의 대상인 재벌과 정치인·관료가 여전히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이 없으며 여전히, 아니 오히려 민중은 더 고통에 허덕이는 현재의 모습이 넓게 공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건강사회를 염원하고 실천하는 보건의료인들은 98민중대회 개최의 배경과 의의에 공감하며, 김대중정부가 추진하는 개혁이 민중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 아닌 민중의 생존과 건강을 지키는 것이 되어야함을 다음과 같은 요구와 함께 엄숙하고, 단호하게 요구한다.

- 의료보험 통합을 조속히 실시하고 국고지원을 확대하라!

- 공공의료기능 및 기관의 축소·폐지를 중단하고 국가·사회 책임을 강화하라!

- 산업안전보건분야 규제완화는 부당하다. 노동현장의 건강을 보장할 산업안전보건제도의 총체적 개혁을 단행하라!

- 보건의료를 포함한 사회복지예산 확충으로 민중의 생존과 건강을 보장하라!

1998. 11.

건강사회를 위한 보건의료단체 대표자회의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기독청년의료인회, 노동과건강연구회,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참된의료실현을 위한 청년한의사회, 평등사회를 위한 민중의료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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