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노동/『현장에서 미래를』38(1998/11) 스리랑카 노동자들의 상태와 노동자투쟁* 안톤 마커스(Anton Marcus, APWSL 공동의장 / 스리랑카
APWSL) 스리랑카에
대한 한국인 투자 한국기업은
스리랑카 제조업부문에서 최대의 투자자이다. 한국대사관에 따르면,
스리랑카에 100여개의 한국기업이 활동하고 있으며, 이들은 4억달러
이상의 생산품을 만들어 수출하고 있다. 약 5만명의 스리랑카인이 한국인
소유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이들은 또한 한국에 파견되어 "외국인
산업연수 계획"이나 본사의 기타 연수과정(500~1,000명의 스리랑카
노동자)에 참여하고 있다. 한국기업에
고용된 스리랑카 노동자들과 함께 일한 우리의 경험으로 볼 때, 노동자들이
별로 좋은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으며, 한국 고용주들이 자신들의 법적
책임을 다하지 않은 채 공장 문을 닫고 스리랑카에서 사라져 버리는
경우들도 있었다. 이번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들은 노동자들을 조직화하려는
활동 때문에 한국기업에서 해고당한 노동자들이다. 이번 방문의 목적은
이 노동자들이 한국 노동자들로부터 그들의 투쟁과 노동조건에 관한
생생한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서로의 경험을 교환하고,
미래의 연대활동을 위해 한국의 활동가들과 유대를 맺는 것도 주요한
목적이다. 스리랑카의
세계화 스리랑카에는 세개의 FTZ(Free Trade Zones: 자유무역지대)가 있으며, 카투나야케(콜롬보공황 부근), 비이야가마(콜롬보에서 24km 북쪽), 코갈라(해안도시 근처, 콜롬보에서 130km 남쪽)의 FTZ에 총 93,550명의 노동자들이 고용되어 있다.1) 카투나야케는 가장 오래된 FTZ으로, 20년전에 건설되었다. 그러나 1992년 스리랑카 전체가 자유무역지대로 선포됨에 따라, 많은 공장들, 특히 의류공장들이 스리랑카 전역에 위치하며 FTZ의 기업과 동등한 특권을 누리고 있다. 스리랑카에서 수출지향적 산업화는 1977년에 시작되었다. 스리랑카의 산업은 세계시장의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토대인 대단히 낮은 임금에 의존하고 있고, 풍부한 세금 혜택과 다른 많은 인센티브로 외국인 투자를 국내시장에 끌어들이고 있다. 스리랑카의 FTZ는 세계 대부분의 다른 나라들(개발도상국이나 신흥공업국)처럼 대개 여성들을 고용하고 있다(의류산업의 경우, 전체 노동자의 90%가 여성이다.) 이 글은 스리랑카의 FTZ 경험을 언급할 것이며, 이는 이러한 문제가 전지구적인 문제이며, 제기되고 있는 많은 문제들이 FTZ, 보세지역(EPZ)과 마퀼라도라 노동자들의 경우와 유사하다는 인식에 근거한 것이다. 오늘날 BOI(Board of Investment: 투자국)는 '일괄서비스'(one-stop-service)를 제공하며, 투자과정의 매 단계에서 투자자들에게 조언과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2) 산업수출은 1991년 850억 루피에서 96년에 1665억4300백만 루피로 증가했으며, 이는 총수출의 73.4%를 나타낸다. 이 수치 중에서 의류와 섬유수출은 전체 산업수출의 63%에 달했다.3) 의류산업은 스리랑카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산업들 중의 하나이다(특히 1992년의 200 의류공장계획[Garment Factory Program: GFP]의 실행과 함께). 1989년이래 이 수출산업의 생산액은 세배로 증가했으며, 현재 15억달러 이상을 생산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1996년에 섬유, 의복, 가죽 생산부문의 산업생산액은 1016억2700만 루피에 이르렀다.4) BOI의 언급에 따르면, 이 산업부문은 캘빈 클라인, 리즈 클레어본, 피에르 가르뎅 그리고 막스 앤 스펜서와 같은 유명 브랜드에 의류를 공급하고 있다. 현재 BOI법 17조의 적용을 받는 의류공장들(77개업 업체 : 원래의 EPZ지역의 모든 사업체를 포함하는)은 대략 64,138명을 고용하고 있다.5) 200 GFP 하에서 운영을 시작한 공장들 가운데 154개가 가동 중에 있으며, 6개 사업장은 1996년에 주로 경영난으로 문을 닫거나 합병되었다. 이들 154개 공장은 76,821명을 고용하고 있으며, 1996년에 수출로 446억5900만 루피의 매출을 올렸고, 이는 95년보다 43억 루피나 증가한 액수이다. 이 수치는 간접고용이나 BOI법의 보호를 받는 공장만이 아닌 모든 의류공장들을 고려하면, 훨씬 더 높을 것이다(BOI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의류공장들은 내국인 수입법의 적용을 받는다). 의류공장들이
200 GFP와 같은 투자계획을 통해 각 지방으로 탈중심화함에 따라, 외국인투자를
통한 세계화는 촌락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는 촌락공동체의
사회구조를 파괴하였고, 주변의 토지와 수로에 방출되는 오염물질로
환경을 파괴해 왔다. 자유무역지대로의
출입통제 스리랑카
투자국(BOI)은 현재 자유무역지대의 행정을 책임지는 부서이다. BOI는
노동자와 투자가 모두에게 유리하고 조화로운 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지만, 실제로는 후자 쪽에 관심이 집중되어진다. FTZ
출입은 오직 회사직원, 노동자, BOI관리, 그밖에 출입을 허가받은 사람들로
엄격히 제한되고 있다. 노동자들의 불만사항을 조사하려는 노동부 관료나,
보건·안전문제를 조사하려는 공장 감독관이 업무수행을 위한 출입을
거부당한 사례가 많다. 노동조합의
금지 스리랑카는 노동조합운동의 오랜 역사와, 거의 50년에 걸친 노동자들의 조직적 행동으로 쟁취한 아주 높은 수준의 노동법규를 갖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이 노동법 중 많은 조항이 FTZ과 그 지역 밖의 BOI 공장들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스리랑카에서 노동조합은 합법적이지만, 이들 지역에서는 활동을 방해받고 있다. 노동조합은 자유무역지대에 출입할 수 없다. "과거의 광역콜롬보 경제위원회(지금의 BOI)는 외국인들의 투자를 유도하는 노동환경을 조성하면서 지대내 기업들에서 노동조합의 결성을 장려하지 않았다 … 투자가들이 노동조합을 인정하고 교섭하기를 거부하는 것같다."6) 스리랑카가 조직의 권리와 결사의 자유에 관한 ILO협약 서명국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것이다. 정부는 외국인 투자가들에게 FTZ 내에서는 노동조합이 결성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보장해 왔다.7) 이러한
상황에서 일부 노동자들은 이미 불안정해진 직장을 잃을까 봐 노동조합의
조직을 꺼려한다. 노동자들을 복종시키고 불안정한 고용상태에 묶어두기
위한 모든 종류의 압력들이 이들에게 가해지고 있다. 차별대우 자기
자신의 나라에서 FTZ 노동자들은 차별대우를 받고 있다. FTZ 밖의 동료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할 권리와 조직의 자유를 갖고 있는 반면,
이 지역내 노동자들은 그렇지 못하다. 노동자
평의회 정부와
BOI의 합의로, 노동자평의회(Workers Council)가 공장 내에서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노동자평의회는 노동자들이 직접 선출한 대표를
두고 있다. 이 평의회가 노동조합의 대안은 아니지만, 노동운동내 일부
활동가들은 공장평의회를 개별 공장수준에서 노동자들을 조직화하고
나아가 공장 내에 노동조합을 결성할 수 있는 방법으로 여기고 있다.
고급
노동력의 저가판매 BOI는
다음과 같은 자랑으로 더 많은 투자가들을 유치하려고 무던히 애쓰고
있다: "스리랑카는 아시아의 어느 곳보다 더 풍요로운 투자환경을
제공한다. 세계은행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스리랑카의 인력지표는
세계 42개 저소득 국가중에서 가장 우수하다. 평균수명이 가장 길고,
문맹률이 가장 낮으며(11%), 영·유아사망율도 가장 낮다 … 이런 임금수준에서
언제라도 이용할 수 있는 최고의 노동력이다. 이러한 좋은 여건은, 과거에
경제성장에 있어 약간의 대가를 치르긴 했지만, 독립이후 정부가 끊임없이
복지에 광범위한 투자를 한 결과이다."8) 무시되는
노동자들의 권리 이들 공장 내에서 노동자들이 제기하는 주요한 문제들은 다음과 같다. ?낮은 임금 ?생산목표(법에는 있지도 않은)와 급한 주문을 달성하기 위한 장시간 노동과 야간작업, 심지어 일요일과 공휴일 작업을 해야 하며, 시간외 수당은 거의 주지 않거나 일부만 준다. 예를 들어 어떤 특정지역에 있는 한 공장에서는 노동자들이 여러달째 임금을 지급 받지 못했으며, 어떤 곳에서는 노동자들이 급한 주문을 처리하기 위해 3일 동안 밤낮없이 먹을 쌀만 받고서 노동을 강요당했다.9) ?노동자들이 주말이나 야간에 시간외 근무를 거부할 경우, 벌금을 물거나 처벌받는 것이 보통이다. ?생산목표는 비현실적으로 높게 책정되며, 경영진은 목표를 달성하도록 압력을 가한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져 있는 연차 휴가를 사용한다거나, 일요일에 작업을 거부할 경우, 자주 연월차 수당의 삭감을 통해 벌금을 문다. ?산업보건·안전제도는
열악하거나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노동자들의 열악한 생활환경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 특히 FTZ 여성노동자에 대한 연구서와 논문들이 발표되어 왔다. 이 연구들은 그 지역 주변의 생활환경이 매우 열악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노동자들은 끔찍한 환경 속에서 살아야 한다. "먼 시골에서 온 여성노동자들은 FTZ 근처의 기숙사에서 살고 있다 … 기숙의 방은 대개 작으며(10자x12자t), 10∼12명의 여성들이 함께 사용한다. 어떤 것은 닭장과 비슷하다. 환기시설이 없거나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경우도 있으며, 많은 곳은 상수도가 없다. 노동자들은 이 비좁고 답답한 방에서 먹고 자면서 살아야 한다."10) 이 지역 내에는 위생시설, 의료기관, 도로, 교통, 전기, 안전시설이 턱없이 모자란다. 학교와 여가시설은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특히 여성들은 현장 안팎에서 성적 학대에 끊임없이 직면하고 있다. 공장 안팎에서의 폭력도 흔히 일어난다. 최근에, 카투야나케 FTZ의 독일계 기업인 Sky Sport Lanka의 사장은 각기 다른 두번의 사건에서 두명의 노동자를 폭행했으며, 경찰은 많은 목격자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들에 개입하지 않았다. 아마도 외국인 투자자가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50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그 회사에서 쫓겨난 상태에 있다(1997년 10월 현재). 이 노동자들은 아직 현장으로 복귀하지 못하고 있으며, 복직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또한 최근 카투나야케 FTZ의 한 여성노동자는 어느날 밤 자신의 남자친구와 함께 나갔다가 그와 그의 친구 13명에게 윤간을 당했다. FTZ노동자들의 사회적 이미지는 낮으며 사회적, 문화적, 종교적인 주변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구혼광고에는 자주 "여공 사절" 또는 "FTZ 신청자 사절"이라는 문구가 실리곤 한다. 사용자들은 기혼여성의 고용을 기피하며 임신한 여성들을 해고하려고 애쓴다. 종교적 성격의 문제도 자주 발생하는데, FTZ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노동자는 불교신자로 장시간 노동으로 예불하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또한 카투나야케 FTZ는 카톨릭 지역에 위치한 반면, 이 지역에 일하러 오는 노동자들은 거의 다 불교신자이기 때문에 언제나 긴장감이 감돈다. 특히 여성들은 이 지역에 들어온 이상 일시적으로 자신들의 생활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또한 고향으로 돌아가서도 문화적 갈등과 편견에 직면하며 고향에서의 생활에 또다시 적응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일할 자유가 있다. 그러나 일할 때 우리는 자유가 없다."
이 말은 영미합작 벤처기업인 IGS Lanka(카투나야케 FTZ에 위치한 여러
상표의 기성복 생산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30대 초반의 한 여성노동자가
했던 말이다. 최근 한 세미나에서 스리랑카 여성노동자에게 주요한 문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스리랑카
내 한국인 소유 공장에서는 다음
두가지 사례연구는 노동자들에게 한국계 공장의 내부상황에 대해 잘
알 수 있게 해준다. FTZ내 한국인 소유가 아닌 공장에서도 이와 유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 또한 지적되어야 한다. ?Topa Sporting Goods Topa Sporting Goods (Pvt) Limited Company는 한국인 소유 기업으로서, 슬레진저를 브랜드로 하여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Topa Sporting Goods는 자신에게 고용된 스리랑카 노동자들에게 퇴직수당을 지불하지 않았다. 회사측은 또한 노동쟁의 기간동안 회사를 폐쇄한 후, 여러 건의 소송이 법정에서 계류되어 있는 와중에 투자국(BOI)의 도움으로 땅과 건물을 팔아 버렸다. 이 소송으로 지불해야 될 퇴직수당을 완전히 지불하지 않았으며, 이사진들은 법률적 책임을 다하지 않은 채 한국으로 돌아갔다. 더욱이 우리는 회사 경영진이 고의적으로 노조파괴를 시도했다고 믿고 있다. 한국인 기술자가 스리랑카 노동자 한명을 폭행하자, Topa Sporting Goods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1993년 11월 노동조합이 결성되었음을 알리는 공문을 받은 날 회사측은 즉각 공장을 폐쇄시켰다. 이는 회사측에 의해 자행된 일련의 폐쇄조치중 첫번째 것이었고, 그 후 노동자들이 합법적인 방법을 통해 자신들의 불만을 제기할 때마다 이러한 조치는 그들의 기본적인 대응이었다. 결국에 회사측은 법률적 의무를 다하지 않은 채 스리랑카로부터 철수해 버렸다. 노동자들은 경영진의 어떤 요구사항에도 복종하겠다는 내용의 각서에 서명할 것을 강요받았다. 노동자들이 서명을 거부하자 전원이 쫓겨났으며 공장은 폐쇄되었다. 노동조합의 간부인 노동자 18명은 아무런 조사없이 해고당했다 노동자들은 또 스리랑카 노동법에 위배되고 아무런 법적 기초도 없는 조건을 열거한 각서에 서명할 것을 강요받는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전예고 없는 야간작업 참여, 2년간 출산자제,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남녀교제 금지, 홍수나 교통장애로 작업할 수 없게 된 경우 사직강요, 모든 여성의 경우 견습공으로 일년간 수습. 회사측은 영업방해를 이유로, 우리 노동조합을 상대로 스리랑카의 전 총리에게 고소했다. 그 당시의 총리는 노동조합과 관련없는 상태에서 해고된 18명을 제외한 모든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로 돌아갈 것을 강요했다. 경영진은 노동위원회의 결정대로 18명의 노동자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는 데에 동의했다. 노동자들이 1994년 2월 다시 출근했을 때, 경영진은 10명의 복직을 더 거부하고 이들 노동자에게 다시 보상금을 지급하는 데에 동의했다. 일자리로 돌아온 이들은 1994년 11월 다시 노동조합 간부진을 새로 선출하고, 경영진에게 이 사실을 통보했다. 1994년 12월 16일 경영진은 이 공문을 받은 날로, 다시 공장을 폐쇄했다. 이유는 공장에 충분한 주문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 회사는
그 이후 노동비용이 더 낮은 오스트레일리아의 멜버른에 공장을 설립하였다.
?Ace Bridge Lanka Ace Bridge Lanka Pvt Ltd는 카투나야케 FTZ에 있는 스웨터를 제조하는 한국인 소유공장이다. 이 공장에서 문제는 1996년 7월 시작되었다. 당시 경영진이 일부 수당을 삭감하고 노동자평의회의 결성을 불허함에 따라 파업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노동부에서 노동자들이 삭감당한 수당을 회복시키고 노동자평의회 결성을 허용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해결될 수 있었다. 파업 이후에 신임 공장장이 임명되었는데, 그는 지역의 깡패들과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는 이 깡패들을 동원하여 노동자들을 협박하였다. 1997년 6월 경영진은 생산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5명의 노동자를 해고했다. 이러한 문제와 관련된 청문회가 노동부에서 열리고 있는 동안, 노동자평의회 의장은 노동자들이 기계를 파괴하도록 교사했는 혐의로 정직을 당했다. 노동자들은 1997년 7월 17일부터 파업에 돌입했다. 노동위원회는 5명의 노동자를 복직시키고 노동자평의회 의장의 정직을 철회하라고 명령했다. 노동자들이 작업에 복귀했지만, 협박과 임금체불은 계속되었다. 매달 노동자평의회와 노동위원회는 단지 임금지급을 위해 끊임없이 개입해야만 했다. 2월에 다시 임금지급이 늦어졌지만, 경영진은 급여지급 일자를 밝히기를 기피했다. 대다수의 노동자들은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기숙사비와 식대를 지불하지 못했다. 노동자들은 2월 11일 출근했지만, 임금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작업을 하지 않았다. 12일 아침, 외국인 기술자 한명이 공장에 들어와 작업을 재개하려 했고,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설명하며 그를 가로막았다. 그러자 이 기술자는 남성노동자 한명을 폭행했고, 그 기술자와 폭행당한 노동자 간에 싸움이 벌어졌다. 다른 노동자들은 이들을 뜯어말리려 했다. 그 노동자는 경찰에 그를 고발했다. 다음날 그 노동자는 병원에 입원했다. 다른 노동자들은 13일 출근했지만, 투자국(BOI)이 붙인 공고문에는 특별한 통고가 있을 때까지 공장을 폐쇄한다고 쓰여있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계속 출근했다. 지역 경찰은 2월 14일부터 외국인 기술자를 폭행한 혐의로 집에 있던 노동자들을 체포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곧 보석으로 석방되었다. 한편 다른 남녀 노동자들 역시 폭행혐의로 체포되었지만, 역시 보석으로 풀려났다. 다른 노동자들에 대한 폭행혐의는 경영진의 사주를 받은 3명의 노동자에 의해 날조된 것이었다. 입원중인 노동자도 체포되었다. 경찰은 외국인 기술자에 대한 고소에 대해 수사조차 하지 않았다. 경영진은
노동자평의회 대의원 전원을 포함해서 체포되었던 45명의 노동자들을
아무런 조사없이 해고하겠다는 통지문을 보냈다. 다른 노동자들은 1998년
3월 3일 출근하라는 편지를 받았다. 그들이 작업장에 도착했을 때, 다음과
같은 내용의 각서에 서명하라는 강요를 받았다. ?해고된 노동자들을 지지하는 파업을 하지 않는다. ?공장이 폐쇄된 기간(2월 13일∼3월 3일)에 대해서는 임금을 지급받는다. ?임금은
경영진이 편한 시기에 받기로 한다. 노동자들은 불법적인 조건을 내건 이 문서에 서명하기를 거부했다. 그러자
경영진은 서명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떠날 것을 요구했다. 185명의
노동자들 중 120명이 떠났다. 그러자 경영진은 다시 노동자들에게 3월
9일에 일자리로 돌아오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일자리는 공석으로 두겠다고 하였는데, 이 편지는 3월 9일에 도착했다.
노동부는 간담회를 제안했지만, 경영진은 참석을 거부했다. 경영진은
새로운 사람들을 고용하여 생산을 시작했다. 현재 120명의 노동자가
해고된 상태이다. 감사의
말 우리는
이 기회에 ASWSL Korea가 노동자교류프로그램을 후원하고 조직해 준
것에 대해 감사하고 싶다. 우리에게 이번 행사는 무척 가치있는 경험이
될 것이다. 이번의 만남은 미래의 연대사업을 위한 유대를 강화하고,
한국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과 투쟁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스리랑카
노동자들의 상황과 투쟁에 대한 한국 노동자들의 이해를 증진시키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미 주> * 이 글은 'APWSL 스리랑카 교류프로그램'으로 한국에 온 스리랑카 활동가가 9월에 있었던 한국위원회와의 간담회에서 발표했던 글이다. 1) Wamsapura D.J. "National Tripartite Seminar on the Effects of Globalization on Industrial Relations - Employment Relations in the Free Trade Zones" 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 May 1998, Paper from Conference Proceedings, Colombo. 2)Board of Investment and United Nations Industrial Development Organization(1995) Think Sri Lanka First 3) Central Bank of Sri Lanka(1996) Central Bank of Sri Lanka Annual Report - 1996, J&S Services PVT. LTD, Colombo. 4) Central Bank of Sri Lanka(1996) Central Bank of Sri Lanka Annual Report - 1996, J&S Services PVT. LTD, Colombo. 5) Information collected from Information Department of Investment, August 1996. 6) Wamsapura D.J. "National Tripartite Seminar on the Effects of Globalization on Industrial Relations - Employment Relations in the Free Trade Zones" 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 May 1998, Paper from Conference Proceedings, p7 7) We of the Zone Asian Monitor Resource Center(AMRC), p 144 8) Board of Investment(BOI)(1996) Investment Policy and Incentives cited S.Heward Garment Workers and the 200 Garment Factory Program, 1997 Research Report 9) S.Heward Garment Workers and the 200 Garment Factory Program, 1997 Research Report 10) We of the Zone Asian Monitor Resource Center(AMRC), p 141~14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