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발표/『현장에서 미래를』38(1998/11) 소련이란 무엇이었는가? 무라오카 이타루 カオスとロコス(카오스와 로고스)
편집인 1.
문제제기 1) 1991년 12월 소련이 붕괴되고 나서 '소련이란 무엇이었느냐'는 문제는 언론에서도 크게 주목받았던 주제이다. 상식적인 얘기로는, 일본의 중고교 교과서에서도 소련은 사회주의 국가로 되어 있다. 일본 교과서에서만이 아니라 소련 내에서도 그랬었고, 미국 사회에서도 소련은 사회주의로 되어 있다. 그때부터 이러저러한 논의가 전개되었다. 하나는, 소련은 국가자본주의라는 설이다. 비슷한 설에 개발독재였다는 설도 있었다. 또 하나는 소련은 국가사회주의라는 설이다. 다른 하나는 사회주의와는 전혀 상관없는 그 무엇이었다는 설이다. 이것은 일본공산당이 소련붕괴 후 내세운 새로운 견해이다. 일본공산당은 1977년부터 소련은 사회주의 생성기였다는 설을 펴왔는데, 그것은 소련은 사회주의지만 생긴지 얼마 안되었기 때문에 이러저러한 잘못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공산당은 소련 붕괴후에 소련이 사회주의와는 관계 없는 그 무엇이었다는 입장을 취하면서 사회주의 생성기라는 견해를 버렸다. 2) 사실 소련이 무엇이었냐는 문제는 새로운 것이라기보다는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던 문제였다. 1917년 10월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혁명의 성공이 있었다. 그러나 1924년 1월에 사회주의 혁명을 지도했던 레닌이 죽고, 그후 권력투쟁이 전개되어 스탈린이 트로츠키를 이기는 과정이 있었다. 트로츠키는 자기가 혁명을 지도하고 참가했던 소련에서 1924년에 추방되었고 트로츠키를 지지했던 사람들은 8천명이나 시베리아에서 학살당했다. 따라서 트로츠키 추종자들에게 있어서 소련이란 도대체 무엇이냐는 문제는 상당히 절실했던 문제였다. 혁명에 가담하고 승리했던 사람들이 왜 자기자신들에게 박해를 가하지 않으면 안되었던가? 거기에 답변한 것이 트로츠키가 1936년에 쓴 {배반당한 혁명}이라는 책이었다. 이 책에서 트로츠키는, '소련은 타락하긴 했으나 역시 노동자의 국가'라고 말하고 있다. 즉 소련이 외적의 침입을 당했을 때 자신과 자신의 추종자들은 소련을 위해 싸운다는 것이다. 트로츠키는 소련을 내부에서 혁신하는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소련의 자본주의로의 역전가능성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있었다. 이러한 트로츠키의 생각에 대해서 그의 주변에서 이러저러한 비판이 있었다. 비판자들의 생각은, 소련은 다시 살아날 수 없을 만큼 철저하게 '타락한 국가'라는 생각이었다. 그때 그들이 쓴 말이 '적색 제국주의', '국가자본주의'였고, 따라서 그들은 소련을 타도대상으로 설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국가자본주의설, 국가사회주의설을 말한 사람들은 새로나온 비판의 목소리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을 두지 않았던 사람들이었다. 최근에 와서 소련을 국가사회주의라며 스탈린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몇 년전에는 그런 말을 꺼내지도 않았었다. 악인이 죽고 나서야 욕을 하는 식이다. 비판을 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살아있을 때 해야 하는 것이다. 3)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설정해 두어야 할 전제가 있다. 그것은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대단히 근본적이고 큰 문제여서 여기서 대답하기는 쉽지 않다.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그것은 노자관계의 폐절, 생산의 자주관리, 가치법칙의 지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세계적 규모로 이루어져야 한다. 사회주의로의 역사적 발전에 대해서, 소련 공산당의 입장은 과도기를 거쳐서 사회주의, 공산주의로 나아간다는 것이다(A). 중국공산당의 입장은 사회주의를 과도기로 본다(B). 트로츠키즘은 과도기사회를 더욱 강조한다(C). 왜 과도기 사회를 강조하는가? 그것은 사회주의가 세계적 규모에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일국 내에서의 사회주의는 불가능하고, 세계혁명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A) 자본주의 → [혁명] → 과도기 → 사회주의 → 공산주의 (B) 자본주의 → [혁명] → 사회주의=과도기 → 공산주의 (C) 트로츠키즘 : (A). '과도기사회'를 더욱 강조. 이러한
점들을 전제로 하여 여러 설들을 검토하기로 한다. 2.
여러 설에 대한 검토 1)
국가자본주의설 '국가자본주의설'의 치명적 오류는, 소련경제에서 생산의 동기가 무엇인지를 말할 수 없다는 점이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에서는 자본주의의 동기는 이윤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만약 소련을 국가자본주의로 규정한다면 그 동기를 이윤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설을 주장하는 어느 사람도 소련경제의 동기를 이윤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하나, 그들은 소련에 임노동관계가 있다는 것을 실증할 수 없다. 즉 임금노동의 존재와, 자본관계가 성립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예를 들면 자기 아들의 가정교사를 고용하는 경우 그 어머니를 자본가로 볼 수 있는가? 또한 국가자본주의설은 10월 혁명의 역사적 의의를 상실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오랜동안 소련은 사회주의라고 적대시 혹은 타도대상이 되거나 찬양받아 왔다. 그것은 10월 혁명이 역사의 커다란 전환점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소련의 역사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 지를 생각해야 한다. 사회주의를 지향하고 사회주의라는 말을 듣던 나라가 왜 붕괴하였는가? 이점들을 고려하지 않고 무엇을 배운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2)
국가사회주의설 다음으로
'국가사회주의설'의 잘못에 대해 말하겠다. 국가사회주의 주장자들은
소련이 사회주의가 아니라는 점을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늘 상식적인
얘기만 되풀이한다. 따라서 그들은 사회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그 내용을
심화시키지 못한다. 그들은 늘 '상식' 및 '통설'과 타협하고, 언제나
대세(大勢)에 굴복함으로써, '사회주의 붕괴'설에도 결국은 굴복하고
말았다. 3)
사회주의 생성기 일본공산당에서는
1977년 이래 '사회주의 생성기'라는 말을 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1994년
제20차 대회에서 이 설을 깨끗이 포기했다. 사회주의라고 여겼던 것을
어느 순간 사회주의가 아니라고 간주해버린 것이다. 3.
소련경제의 특징과 본질 1)
소련경제의 기본 구조 생산이란
것은 생산의 주체인 노동자와 생산의 객체인 생산수단이 결합해서 실현된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생산수단이 어떠한 상태에 있는지가 중요하다. 일본이나
미국, 한국에서 생산수단은 자본가가 사적으로 소유하고 있다. 소련에서는
10월 혁명이 있고나서 생산수단을 국가가 소유하게 되었다. 기업에 대해서
생산펀드는 무상으로 분배되었다. 무엇을 얼마만큼 생산할 것인가는
계획당국이 지령하고 기업은 그 목표를 실현할 의무가 있다. 소련의
생산물 가격은, 시장경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고스플랜'이라는
국가계획위원회가 결정한다. 더구나 군수품 가격의 경우 각료회의의
전권사항으로 되어있다. 노동자의 생활을 기초적으로 지탱하는 교통비,
식료, 의료, 교육 등은 아주 저렴하게 설정되어 있다. 예를 들면 모스크바의
지하철은 5카페이카라는 아주 싼 값으로 어디든 갈 수 있었다. 소련의
지하철엔 승차권이 없었다. 들어갈 때 5카페이카 동전을 집어넣으면
어디를 가든지 나올 때는 그냥 나온다. 물론 지방여행은 그와 다르다.
2)
소련경제의 폐해·난점 소련 붕괴후 모스크바에 갔었는데 그때는 3월이어서 아주 추웠다. 그런데 방안은 엄청 더웠다. 스팀이 건물 전체를 데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온도를 자기방 창문을 열고 조절하고 있었다. 그런 낭비가 아무렇지도 않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 증기는 돈을 내지 않고 배급되는 것이다. 수년전까지 소련 가정은 가스, 전기, 수도의 계량기가 없었다. 이런 상황으로 소련 노동자의 생활이 영위되고 있었다. 이런데서 나오는 낭비의 일반화가 소련경제의 큰 폐해이다. 또한 계획에 의한 생산인데, 그 계획은 수도 없이 바뀌고 있다. 거기서 '자마라디브아에'(동결)이라는 말이 생겼다. 그것은 생산펀드를 비축해둔다는 뜻인데, 계획이 수시로 변경되기 때문에 각 기업에는 자재를 비축('동결')시키기 위해 톨카치라는 별도의 부서가 생겨났다. 그것은 생산수단을 비축하지 않으면 새로 생긴 계획에 대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산펀드는 당국에서 배분되는 것이고, 톨카치하는 사람들은 음성적으로 비축하고 있었다. 그것이 블랙경제(闇經濟)이다. 그것은 야쿠자나 마피아같은 사람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 소련에서 나타났던 계획경제의 부산물 같은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생산성을 설정하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도 문제이다. 노동생산성의 수준과 그 변동을 구체적, 통계적으로 측정할 방법이 확립되어 있지 못하다. 다음해의 계획 자체가 금년도의 산출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이를 테면, 올해 많이 만들면 내년에도 많이 만들어야 되니까, 계획실행자들은 성과를 조금 만들어낸다고 보고하게 되고 따라서 의도적으로 금년도 생산량을 적게 보고하는 폐해가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달성 수준에 기초한 계획화' 방법에 대해, 소련의 전문가들도 지진이나 가뭄보다도 더 큰 피해를 소련경제에 주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계획의 정정, 변경 등 정책실패에 대한 결과에 대해 계획당국자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 경제에서의 '주의주의'(Voluntaryism 여기서 적절한
번역은 '독단' 혹은 '전횡')가 발생하고, '울라브닐로프카'(악평등주의)와
'열광적 생산'으로 번역되는 '슈토르모프시티나'라는 말이 항상화되었다.
3)
소련 생산력의 증가 위와
같은 갖가지 잘못을 드러내고 있었지만, 소련경제력은 엄청나게 증가했다.
어떤 경제학자는 1928년과 비교했을 때 1954년의 소비에트 노동자 실질소비는
두배로 증가했다고 말한다. 소위 '생산력 증진주의'라는 말이 있는데,
1919년의 볼셰비키당 강령은 "국가 생산력의 최대가능한 증대"를
목표로 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유고슬라비아의 다뇨보비치는 1965년,
"생산력을 발전시키는 것이 사회주의의 목표는 아니다"고
지적한 바 있다. 4)
관료제 지령경제 지금까지 말한 것이 소련이 계획경제라고 하는 것의 속내용이고 그 특징이다. 이러한 경제를 자본주의경제라고는 절대로 말할 수 없다. 그러면 뭐라고 해야 가장 적절할까? 그것은 '관료제 지령경제'라고 해야 할 것이다. 스탈린은 제15회 당대회에서 "우리들의 계획은 바로 지령계획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짜골로프라는 1960년대 소련의 학자는 {사회주의경제학}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계획이란 당에 의한 명령이다." 이제
논점을 바꿔서 이하에서는 소련경제에서 어떤 논쟁이 있었는지를 살펴보겠다.
4. 소련에서의 경제논쟁들과 그 교훈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이런 논쟁이 왜 거듭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짚고 넘어가자. 물론 자본주의에서도 뉴딜이라든가 IMF에 대해 여러가지로 논쟁을 거듭하고 있다. 소련에서의 논쟁들은 원리적인 경제구조에 대한 것이었다. 이것도 사실은 10월 혁명에 의해서 인류의 새로운 역사를 열었다는 것을 반영한다. 다시 말하면 자본주의가 아닌 새로운 경제구조를 어떻게 규정하고 어떻게 운영해가느냐의 문제였다. 논쟁의
핵심은 결국, '혁명에 승리하고 나서 어떻게 경제를 운영할 것인가?'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마르크스나 엥겔스도 어떠한 해법을 주지않았다.
그러니까 전거가 없는 새로운 현실에 대해 소련에서는 도전할 수밖에
없었고 도전했던 것이다. 레닌이나 그 주변의 혁명가들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더듬는 식으로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곤란한 문제는
우리가 만약에 혁명에 승리하면 그 다음날 바로 봉착할 그러한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소련의 경험에서부터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 그들의
모색은 우리가 배워야할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소련체제가
붕괴했다고 해서 팽개쳐질 문제가 아니다. 논쟁을 몇가지 항목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겠다. 1)
노동조합 논쟁 혁명이
일어나고 3년째였던 1920년에는 노동조합논쟁이 주로 이루어졌다. 이때는
'노동자 반대파'라는 것이 트로츠키나 레닌에 반대하고 있었다. 그들은
노동자의 자주성을 강조하고 있었다. 이때 트로츠키는 '노동조합의 군대화'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이 슬로건은 나중에 트로츠키가 비판받는 문제가
된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트로츠키는 노동자의 민주주의를 포기했던
것은 전혀 아니었다. 당시 러시아에서는 사람고기를 먹는 일이 만연할
정도로 경제가 엉망이었다. 이러한 어려운 판국에서는 우선 소련의 경제를
궤도에 올려놓아야 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사실 1920년의
이런 논쟁이 있기 전, 1919년 트로츠키는 토막나 있던 철도망을 일단
수습하는데 성공했다. 오늘날, 생산의 노동자 관리에서 무엇이 문제인지를
알 수 있다. 2)
투자효율논쟁 그 다음에
오는 것이 1920년대부터 1950년까지 30여년간 단속적(斷續的)으로 계속된
투자효율논쟁이다. 이것은 앞서 말한 '동결'의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와 관계되어 있다. 30년 동안이나 오고간 테마였다. 3)
가치가격논쟁 그 다음이
가치가격논쟁이다. 이 문제는 1943년에 [경제학의 교육에 관한 약간의
문제]라는 무기명 논문에 의해 제기되었다. 그 논문이 문제삼은 것은
가치법칙을 이용할 수 있느냐 없느냐였다. 앞에서 나는 가치법칙의 지양에
대해 언급했다. 마르크스는 화폐나 가치법칙은 없어진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소련에서는 혁명 후에 사실상 화폐를 없애버렸던
것이다. 일부 경제학자는 이제 공산주의가 가까이 왔다고 기뻐했었다.
그러나 그렇게 화폐를 없애버린다고 해서 공산주의가 오는 것은 아니다.
곧바로 경제가 운영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전시공산주의
시기의 그러한 정책을 폐기하고 1921년부터 NEP경제정책으로 나아가게
된 것이다. NEP시기 사회상황에서는 시장이나 상품의 매매가 허용되었다.
그래서 가치법칙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의 문제가 모호해지게 되어버렸다.
어떤 사람은 가치법칙을 아주 많이 이용하자고 말했고 다른 사람은 소련에서의
가치법칙은 변형된 가치법칙이라고 설명했다. 그 논쟁이 애매하게 결착하면서
가치법칙은 이용해도 좋다는 결론이 나게 되었다. 4)
이윤논쟁, 그리고 가격개정 및 관리의 문제
다음
논쟁이 1962년에 리베르만이 제기하여 전개되는 이윤논쟁이다. 자본주의와
달리 사회주의는 이윤이 생산의 동기가 아니었지만, 앞에서 지적했듯이,
계획경제 즉 지령경제에서 많은 폐해가 생겼다. 그것을 타개하기 위해
'이윤 동기'에 관한 생각을 이용하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결국은 가격을
어떻게 정하느냐가 가장 큰 문제로 제기되었다. 노동자의 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해 가격은 싸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은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에서 소위
'가격의 합리적 결정'과는 어긋나는 생각이었다. 이로 인해 계획경제를
하는 사람들은 적정한 가격을 정하자는 쪽으로 움직이게 된다. 그러나
행정을 하는 사람들은 노동자를 순치시키기 위해서 가격은 무조건 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두 견해가 논쟁을 벌인 것이다.
5)
정보공개의 문제 지금까지
이러저러한 논쟁을 설명했지만, 이것을 돌아보면 중요한 점 하나가 발견된다.
그것은 정보의 공개가 없었던 것이다. 정보를 공개한다는 것은 관료에게는
용납할 수 없는 한계선이었다. 그것은 자기들의 무능력과 잘못, 그리고
부정을 폭로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트로츠키가 1936년에 쓴 저서에도
정보공개를 강조하였다. 관료는 경제정보를 공개하라는 요구이다. 이것은
사회주의에서 아주 핵심적인 과제가 된다. 6)
사회주의경제 계산 논쟁 한가지만 더 소개한다면, 미제스와 하이예크의 사회주의 경제 비판이다. 하이예크의 선생인 미제스는 1920년에, 사회주의는 경제학적 원리로 보아 성립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당시 오스트리아에서는 사회주의혁명 비슷한 것이 일어났었다. 1917년 사회주의 혁명은 전세계를 향해 확산되었다. 당시 자본가계급이나 사회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사회주의가 불가능하다는 논지를 펴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었다. 미제스의 논지는, 맑스는 사회주의 하에서는 화폐도 가치도 없어진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A라는 상품과 B라는 상품을 어떻게 교환할 것인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따라서 사회주의는 실현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미제스의 위와 같은 주장을 1935년에 하이예크가 다시 주장했다. 1933년에 히틀러가 독일에서 정권을 장악했고 자본주의 경제는 1929년에 파탄에 빠져들었다. 1928년부터 시작되는 스탈린의 5개년 계획은 성공적으로 나가고 있었다. 비엔나에서는 세계경제계획회의를 열고 있었다. 그런 시기에 바로 하이예크의 논문이 나왔다. 하이예크의 이론이 나왔을 때 사회주의 경제학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참으로 유감스럽다. 아무도 여기에 대답을 하지 못했고 그후에 겨우 랑게가 여기에 대답했다. 그리고 나서 랑게의 대답이 옳은 것이다라고 되어버렸다. 랑게는 계획을 거듭하다보면 시장과 같은 것이 된다고 했다. 그것이 옳은 답변으로 모두들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나도 그중의 하나지만, 여기에 대해 자본주의 경제학자들은 누구도 언급하고 있지 않다. 나 자신도 최근에 이 문제를 알게된데 불과하다. 새삼스럽게 공부를 해보니 여기서 많이 배울 부분이 있다. 그런데 미제스와 같은 주장을 러시아에서 부르츠크스가 이미 말하고 있었다. 그는 러시아의 나이먹은 농업경제학자였는데, 1920년 레닌의 소련경제를 보면서 이러한 서술을 했던 것이다. 이 부르츠크스에 대해 레닌이 취한 태도는 국외추방이었다. 이때 트로츠키는 이것을 아주 인도적인 조처라고 했다. 왜냐하면 죽이지 않았으니까. 스탈린이었으면 죽였을텐데. 나중에 부르츠크스는 트로츠키를 조소했다. '너도 똑같다'고 비웃었다. 다시 말하면 국외추방이라는 것은 이론으로 서로 싸운 것이 아니라 폭력으로 응한 것이다. 이 사람들의 얘기를 이론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으면 대응했을 것이다.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추방한 것이다. 여기서 이론적 대응의 중요성을 지적하고 싶다. 또하나 말할 것은 이 당시 정보공개가 사회주의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가를 언급한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그 당시 정보공개가 '유리로 만든 벽'이라고 비유했다. 그는 '유리벽이 사회주의 경제가 자본주의에 가르침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주장한 사회주의는 정보가 완전히 공개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특허제도 같은 것은 필요 없다고 했다. 그리고 정보가 공개되면 노동자의 자주관리가 가능해진다. 그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사회주의는 가능하다'는 논지를 편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스탈린의 소련에서는 그런 얘기를 못하게 폭력으로 제동을 걸었다. 왜냐하면 정보공개는 바로 관료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하나,
사회주의는 가능하다는 논지를 편 폴라니라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경제인류학'이라는 학문의 창시자라는 말을 듣고 있다. 이 사람을 사회주의
경제학자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 폴라니는 미제스의 논문에 대해
같은 잡지에서 반론하고 있다. 미제스는 폴라니에 대해 반비판하고 폴라니도
반비판했다. 폴라니는 사회주의는 가능하다고 했는데 이것도 오랫동안
잊혀지고 있다. 이런 것을 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5.
맺음말 이제 결론에 들어가겠다. 우리는 어떤 과제를 가지고 있는가. 첫째는, 노동의 의욕을 어떻게 창조하는가의 문제이다. 이것은 인간은 왜 사는가에 대한 철학적 탐구가 필요한, 결정적으로 중요한 문제이다. 둘째, 경제라는 것은 대단히 복잡한 체계이다. 일본의 논객인 슈자와라고 하는 사람이 주창하는 것은 '복잡다단한 체계인 경제'를 평탄하게 운영하기 위해서는 애매한 것이 때로는 필요하다는 것이다. 계획경제는 엄밀하고 정확한 것을 요구해왔고, 애매하거나 부정확해서는 안된다는 사고가 배어 있다. 그러나 사실 이 '애매함'이라는 것이 극히 중요하다. 셋째, 생산물의 가치가 아니라 생산물을 평가하는 기준이 필요하다. 여기서 가치와 평가의 차이점은 많이 얘기를 해야한다. 소련에서도 칸트로비치라는 사람이 이러한 주장을 하고 있다. 칸트로비치는 레닌상도 받았고 서방측의 노벨상도 탄 경제학자이다. 그는 수리경제학을 만든 사람이기도 하다. 넷째, 생산펀드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느냐, 그 활용의 효율적 지표와 기준을 만들 필요가 있다. 다섯째, 기초적 생산단위, 자본주의에서는 그것이 기업인데, 여하튼 '기초적 생산단위'와 전체적 계획을 어떻게 연관지우냐를 확실히 하지 않으면 안된다. 여섯째, 노동자의 생활재료를 어떻게 분배하느냐, 옷이라든가 의료, 사회복지 등을 어떻게 분배하느냐 하는 새로운 시스템을 창조하는 문제가 있다. (이타루는 '생활카드제'를 주장한다. 이에 대해서는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하여 이번 발표회에서는 논의에서 제외되었다. - 편집자주) 이러한
여섯가지 문제가 혁명의 성공 후에 바로 제기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데 대한 생각들을 어느 정도 해두는 것이 혁명에 승리했을 때를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혁명에 승리한
후에라도 소련이 붕괴된 과정과 똑같은 문제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나는 인류는 그렇게 멍청하지 않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나는 소련 붕괴에서 무엇을 배워야하는가를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소련이 붕괴되고 나서 사회주의에 대한 인기는 완전히 땅에 떨어졌지만,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사람이 전혀 없어진 것은 아니다. 그 중 한사람이 모스크바 경제대학의 부즈가린이라는 교수이다. 그는 지금 44살이다. 그는 페레스트로이카 시대에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으로 가장 연소자였던 사람이다. 그는 1991년 봄에 이태리에서 열린 제4인터내셔널의 러시아대표로 참석했다. 그것은 8월 쿠데타 조금 전의 일이다. 그는, 소련이 붕괴된 후에도 그래도 사회주의를 위해서 싸우고 있다. 나는 우연한 기회에 부즈가린을 알게 되었는데, 그는 20세기에 일어났던 사회주의의 이러저러한 일을 '20세기의 덫'으로 표현했다. 그 의미는, 인류는 사회주의를 잡아당겨서 앞으로 나가야하는데 손을 대기만 하고 나아가지 못했다는 것, 여러 곤란이 있었다는 것이다. 나도 이러한 인식에 찬성한다. 마지막으로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본인도 역사를 제대로 공부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결국 사회주의를 한다는 사람들이 다시 말하면 맑스주의자들이 얼마나 공부를 안했던가를 생각하며 반성하고 있다. 우리들은 많은 문제를 모르고 있다. 예를 들면 시민사회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우리가 정답을 갖고 있다고는 할 수 없다. 인간은 유한(有限)하고 개인의 인식이라는 것은 조금씩밖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말할 것도 없이 인간은 다양한 존재이다. 그런데다가 개인은 한계가 있다. 따라서 조직을 만들고 토론을 한다는 것은 극히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서로 신뢰하고 서로 존중하는 것이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지만 그런 것을 해나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