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현장에서 미래를』39(1998/12) 1998년을 되돌아보며
남 구 현(연구위원) 한해를 회고하면서 올해 많은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었던 영화 '타이타닉'을 생각해 본다. 당시 세계 최대 호화여객선이라 자랑하던 거대한 배가 빙산에 충돌하여 침몰하였고, 승객의 대다수가 물에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이다. 타이타닉호의 선주가 빠른 시간안에 대서양을 항해함으로써 신문지면을 장식하여 떼돈을 벌 요량으로 위험스러운 항해를 강요한 것이 사고의 원인중 하나였다. 배가 침몰하는 과정에 구명정을 타고 생명을 구한 승객은 2,000여명의 전체 승객 가운데 3분의 1에 불과하였고, 나머지 1,400명에 이르는 승객은 차가운 바닷물에 빠져 죽는다.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장면은 구명정에 탈 수 있었던 승객은 1등칸의 승객들이었으며, 3등칸의 승객들은 심지어 선실에서 나오지도 못하게 문을 걸어 잠갔다는 것이다. 또한 20여척의 구명정에는 칠팔십명까지 탈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규정에 따라(?) 정원대로만 타게 함으로써, 대다수가 생명을 구하지 못하고 죽을 수밖에 없었다. 1,400명이 빠져 죽는 아비규환 속에 주변에 있던 20여척 중 구조에 나선 배는 한 척 밖에 없었고, 겨우 6명만을 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침몰하는 타이타닉호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하게 소개한 이유는 실제 상황에 기초한 이 영화의 내용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사회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의 상황을 한번 되돌아 보자. 작년도에 대기업들의 연쇄부도, 외환위기, IMF 구제금융으로 이어진 경제위기는, 무엇보다도 지난 수십년간 팽창 위주의 자본주의적 발전과정에서 돈벌이에 눈이먼 재벌을 위시한 국내자본가들의 맹목적인 축적과 함께 쌓여온 모순이 지구적 차원에서의 축적조건의 변화 속에 위기적으로 폭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자본의 위기는 그러나 노동의 위기로 뒤집어져, 모순의 결과는 노동자·민중에게 전가되고 있을 뿐이다. 4백만에서 6백만에 달하는 실업자, 임금삭감 및 체불로 생존권을 위협당하는 노동자, 늘어나는 노숙자와 노점상, 건설회사 부도로 아파트 중도금 뜯기는 사람, 파산난 사람 보증섰다 같이 파산하는 사람 등등의 현상은 이제 익숙해져 보도거리조차 못된다. 이 아수라장 속에서 재벌은 더욱 더 몸집을 불려가고, 상층 20%는 작년 말이래 오히려 이득을 보았다고 한다. 강남의 교회들은 (부유층의 소득증대로) 헌금이 늘었다든지, '오렌지'족 대신 '이대로'족이 생겼다든지 하는 흉칙한 이야기들이 돌아다니고 있다. 1등칸에서 3등칸까지 구분되듯이, 위기의 여파는 자본가계급, 중간계급, 노동자계급의 3층 구조에 따라 다르게 미치는 것이다. 우리의 현실은 그러나 노동자와 자본가가 임금-고용을 매개로 착취관계속에 놓여져 있고, 무한한 축적이라는 자본의 내적 동인이 관철되는 외적 형식으로서 기업간의 경쟁이 민족국가 내에서 또 지구적으로 존재하며, 무한축적/무한경쟁이라는 자본의 운동은 필연적으로 위기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는 등의 이유에서 타이타닉의 경우와는 다르다. 타이타닉호의 사례에서는 1등칸에서 3등칸 고객이 부의 정도에 따라 차별을 당하지만 선주고객 관계에서는 같은 고객으로서 서로간 착취관계에 의해 매개되고 있지 않으며, 갑자기 등장한 빙산과의 충돌이라는 다분히 '자연적'인 요소가 침몰의 직접적인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는 면에서 우리의 비유는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지금의 경제위기는 모두가 배를 떠나야 하는 침몰 상태라기보다는 오히려 침몰 직전에 감량을 해야하는 상태로 볼 수 있을 것이다(소위 감량 경영, 구조조정, 군살빼기 등). 그렇다고 해도 우리의 타이타닉은 지금의 경제위기를 어떠한 관점에서 보아야 하고 해법은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에 대해 충분한 시사점을 주고 있다. 과연 감량을 한다고 인간을 바다에 던지는 것이 옳은 일일까. 악덕 선주가 사람들을 마구 바다에 내버리는 상태에서 바다에 빠지는 사람들에게 널빤지라도 붙잡고 있게 나누어주자는 식의 해법(예컨대 사회적 안전망의 확충)은 물론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하더라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선원들이 총칼을 휘두르고 있는 위기 상황에서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풀고, '교섭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시도이다. 타이타닉의 주인공이 잠겨 있는 3등칸의 문을 부시고 나올 때, 관객들은 박수로 화답했고, 어느 누구도 이를 '폭력적인' 행위로 비난하지 않았다. 교섭구조를 만들기 위해 3등칸의 문을 부수지 못하게 하고 많은 승객들이 수장되도록 하는 어리석은 자가 있다면? 타이타닉에서 우리가 교훈을 얻어 낼 수 있다면, 수많은 승객을 살리기 위해서는 주인공이 사랑하는 애인만을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것이 아니라, 총칼로 막는 선원들을 제압하고, 구명정에 모두가 탈 수 있도록 관계를 역전시켜 냈어야 했다는 것이 아닐까? 올해의 투쟁을 통해 노동자·민중은 정리해고 반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비리 재벌의 재산환수를 통한 실업기금 마련과 재벌해체, IMF 재협상 등 구호적 차원에서 구체적이고 확실한 대안을 제시하면서, 투쟁을 전개하였고, 하반기에는 노동자 민중의 연대전선을 확대하는 성과를 이루어 내었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노동자·민중의 희생위에 진행되는 지금의 소위 구조조정을 막아 내지는 못하였다. 민주노조운동 진영은 지난 2월 노사정위에서의 '잠정합의'와 1기 지도부의 사퇴 및 비대위 구성, 비대위의 '총파업 철회' 등 논란 속에 지난 수년간의 투쟁이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 상태로 2기 지도부를 출범시켰으며, 2기 지도부는 전면화되는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공세에 맞서, 98년 5월 메이데이투쟁을 시작으로, 5월말의 총파업투쟁, 6월 퇴출은행과 퇴출기업 노동자들의 고용승계 및 생계대책 요구투쟁, 7월 공공부문 구조조정에 맞선 공공부문노동자들의 투쟁, 7∼9월 현대자동차 노동자들과 만도기계 노동자들의 정리해고 저지투쟁, 그리고 11월 8일 민중대회에 이르기까지 투쟁을 전개해 왔으나, 정리해고제는 계속 관철되어 실업자를 양산해 낸 것이다. 올 1년을 거치면서 우리는 현 정부의 경제위기 관리방식이 가지는 계급적인 성격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으며, 내년에도 이러한 경향은 관철될 것이다. 실업극복 국민운동, 제2건국운동, 민주개혁국민연합 등의 운동을 통해 사이비 온정주의, 애국주의로 모순을 은폐하며, 국민들을 정치적으로 동원해 내려는 책략도 지속될 것이다. 이 과정에 중간계급의 상당한 부분 역시 과거의 역사에서와 마찬가지로 지배세력에게 포섭되어 떨어져 나갈 것이다. 이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의 내부를 조직화하고 힘을 결집하는 것이다. 지난 투쟁의 과정에서 우리는 산별, 지역별, 정파별로 제출되는 다양한 입장들이 수렴되고 집행되는 과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함으로써 노동자계급 내부의 단결이 심각히 손상되는 것을 보았다. 모든 과정은 투명하고 민주적인 토론을 통해 결정되고, 집행되고, 기록되어야만 '밀실정치'와 '야합'에 의해 좌우되는 관행이 사라질 것이다. 평가 역시 공개적이고 대중적인 토론에 의해 진행되어야, 자의적인 소견문 수준의 평가나 뒷소문이 운동의 방향을 비끄러 트리지 못할 것이다. 우리 내부의 민주주의는 더욱 민주화되어야 한다. 자고로 자기를 혁명하지 못하는 자는 아무 것도 바꾸어 내지 못하는 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