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현장에서 미래를』39(1998/12) 시련 속에 자신을 깨우쳐 가며 채 만 수(부소장) 경제위기
1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규모와 강도로 폭발한 경제위기는 지난 1년여 동안, 주지하듯이, 우리 사회의 경제·사회·정치구조와 이데올로기에 막대하고도 지속적인 변화를 강제해 왔다. 이 변화 가운데에서도 핵심적인 것은 기생적 금리생활자를 포함한 소수의 독점자본가 계급과 수백만의 실업자를 포함하는 빈곤한 노동자 계급으로의 계급분화의 심화인데, 이들 변화의 일부는 한편에서 자본주의적 경제위기 자체에 수반하는 경제적 과정으로서 강제되어 왔고, 다른 일부는 이 경제위기에 대한 자본의 목적의식적 대응, 특히 김대중정권의 신자유주의적 대응에 의해서 강제되어 왔다. 경제위기란 본래 과잉생산 공황, 즉 자본의 전반적 과잉생산의 폭발이기 때문에 각 부문에서 수많은 약체자본들은 어쩔 수 없이 대대적인 파산과 흡수합병을 강제당한다. 상대적으로 생산력이 높아서 경쟁에 유리한 위치에 있는 자본과 대량의 화폐자본을 동원하는 능력이 높은 자본만이 살아남게 되는데, 이들 자본은 대개 살아남을 뿐만 아니라 간접적으로는 파산해 가는 경쟁 자본들이 차지하고 있던 시장까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듦으로써, 그리고 직접적으로는 파산해 가거나 파산의 위협에 시달리는 경쟁 자본을 인수·합병함으로써 새롭게 독점화하고 기존의 독점을 강화하게 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선 생산력이 상대적으로 높아서이든, 기타의 이유로 자금동원 능력이 높아서이든 살아남게 되고 나아가 약체자본들을 인수하게 되는 자본도 또한 시장의 포화와 상품과잉으로 공장의 조업률을 대폭 낮추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또한 자본의 대대적인 파산과 지불불능 사태는 이제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는 듯이 보이던 신용연계를 파열시키고, 그 때문에 화폐(자본)는 인간노동의 화신, 가치 그 자체로서의 자신의 절대적 위력을 주장하게 된다. 그리고 그 때문에 '화폐 취급 자본'으로서의 은행 등 금융기관은 한편에서는 그 자신 엄청나게 쌓여 가는 '부실채권'에 눌려 존립의 위기에 처하고 또 실제로도 적지 않은 금융기관이 파산해 가면서도, 다른 한편에선 이들 금융기관은 대량의 지불준비금을 필요로 하는 다른 자본의 생명줄을 쥐락펴락하는 전제군주로 등장한다. 이러한 과정이 지난 1년여 동안의 경제위기 속에서 전형적인 형태로 전개되었다. 그리하여 이 경제위기 과정 속에서 특히 5대 재벌을 중심으로 독점자본은 그들의 지배력을 대폭 강화시켰고, 대량의 현금을 장악하고 있던 기생적 금리생활자들은 폭등하는 이자율과 환율 덕택에 그 재산과 사회적 노동생산물에 대한 그들의 무상 청구권을 대폭 증대시켰다. 한편, 근대적인 자본이란 곧 자본임노동 관계이기 때문에 이 경제위기 과정은 동시에 자본임노동 관계의 파괴와 축소 과정, 즉 대량해고·대량실업이 발생하는 과정이자 노동(자 계급)에 대한 자본의 지배력이 대폭 강화되는 과정이었다. 실업으로 몰린 수백만의 노동자들에게 극한의 빈곤과 절망이 엄습하고 있는 것은 물론, 아직 취업되어 있는 노동자들도 당연히 장시간·저임금 노동을 강요당해서 예컨대 "올 3/4분기 중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은 월 평균 182.4시간으로 지난해(177.8시간)에 비해 늘어났고, (1인당 월 평균) 임금은 20만원이 줄었다."1) 그런데 이러한 '부익부 빈익빈', 독점강화, 노동자계급의 빈곤화 등의 과정이 경제위기에 따른 자연적 과정으로서만 진행된 것이 아니다. 경제위기에 대한 독점자본의 목적의식적 대응, 특히 그들 독점자본의 공동의 기구로서의 국가, 즉 김대중정권의 신자유주의적 대응에 의해서, 그들의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격에 의해서 더욱 격화된 형태로 전개되었다. 애초에 경제위기가 폭발했을 때 그것이 외환위기의 형태로 폭발한 것을 기화로, 자본은 그들이 장악하고 있는 대중매체들을 동원하여 '국민' 즉 노동자 대중의 '과(잉)소비'가 그 위기의 원인이라는 식의 공세를 대대적으로 펼쳤고, {한겨레} 신문과 같은 무원칙한 소부르주아 언론 역시 노동자계급에 대한 자본의 이러한 공세에 적극 합류했다.2) 이러한 공세는 물론 경제위기를 계기로 노동자들을 대대적으로 해고하고, 그들의 임금을 대폭적으로 삭감함으로써 이윤율을 회복시키려는 독점자본의 탐욕의 소산이며, 실제로 독점자본은 그러한 탐욕을 강력하게 실현시켜 왔다. 그런데 이러한 '과소비 경제위기 원인론'은 아무런 이론적 논증도 없이 대중의 무지에 기대어 노동자계급에게 경제위기의 책임을 정서적으로 묻는 것이기 때문에 이윽고 강력한 이론적 반박에 부딪칠 뿐 아니라 그러한 공세가 강화될수록, 물론 단기적이지만, 대중의 소비를 그 경제적 소비능력 이하로 위축시켜서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는 모순에 처하게 된다. 이러한 문제를 보완하는 것이,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한국경제나 동아시아 경제에 '구조적 결함'이 있다는, 말하자면 '구조결함 원인론'인데, 이는 노동자계급에 대한 보다 세련된 이론적 형태를 갖춘, 보다 더 기만적인 공세이다. 이 '구조결함 원인론'은 그것이 보다 세련된 만큼 여러 형태로 나타나는데, 그 압권은 역시 '경제위기 재벌책임론'이다. 이 '구조결함 원인론' 및 '경제위기 재벌책임론'은 일견 이론적으로 세련된 모습을 갖추고 있어서, 자본측의 보수적 이데올로그들이나 보수언론은 물론 여러 '진보적' 경제·사회학자들 사이에도 광범위하게 그 지지자들을 확보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른바 '재벌개혁' 혹은 '재벌해체'를 주장하는 노동운동권 내의 단체·이데올로그들도 기본적으로 같은 범주로 분류할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의 주장이 이렇게 광범위하게 지지를 받는 이유는 그것이 이론적으로 타당하기 때문이 아니라 사실은 이 역시 대중의 본능적 반독점 정서에 호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일단 '구조결함 원인론'이 설득력을 획득하게 되면 경제위기에 대한 대응으로서의 이른바 '구조조정'은 그 당연한 논리적 귀결로 된다. 그런데 그 '구조조정'은, 그것이 어떠한 형태를 취하든지간에, 우리가 경험을 통해서 아는 바와 같이, 금융자본·독점자본에 대한 세제(稅制)·금융상의 막대한 특혜·지원과, 특히 노동자의 대량해고를 그 핵심내용으로 하고 있다. 말하자면, '재벌지배 경제체제'로서의 '구조결함 원인론'이 실천적으로는 재벌 즉, 한국적 독점자본의 해체로서가 아니라 이른바 '구조조정'을 통한 금융자본 및 독점자본의 합리화로서 귀결되고, 그 때문에 국민 대중의 부담 위에서 은행이나 재벌 등에 대해서는 수십조 원의 막대한 세금 감면과 금융지원이 이루어지는 반면, 특히 노동자계급에게는 대량해고·대량실업 등의 재앙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김대중정권에
의해서 강행되고 있는 이른바 금융구조조정이 그 전형을 보여 주었고,
정부와 5대 재벌 그리고 채권금융단이 12월 7일에 발표한 이른바 '5대
그룹 구조조정 추진사항 합의' 또한 그러한 것이다. 이 '5대 재벌 구조조정
합의'는 그 내용의 성격과 경과에서, 그리고 그에 대한 각계의 반응에서
경제위기에 대한 지난 1년간의 자본(국가)의 신자유주의적 대응과 그에
대한 우리 사회의 반응을 새삼 압축적·상징적으로 볼 수 있다. 경쟁력
이데올로기 앞에서 말한 대로 지금 '재벌지배 경제체제'로서의 '구조결함 원인론'은 재벌 즉, 한국적 독점자본의 해체로서가 아니라 그들 독점자본의 합리화로서 귀결되고 있다. 그 때문에 은행 등 금융기관이나 재벌 등에 대해선 막대한 세금감면, 금융지원이 이루어지는 반면에 노동자계급은 대량해고·대량실업을 포함한 빈곤화가 강요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규정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말할 나위 없이 김대중정권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인데, 그 기초에는 '경쟁력' 이데올로기가 강고하게 자리잡고 있다. 실제로
지금 이른바 '재벌해체'까지를 표방하고 있는 '구조조정'이 추구하고
있는 목표는, 재벌 즉 독점자본의 해체 그 자체가 아니라, 하나같이
경쟁력 혹은 효율의 증진이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서 경실련 이데올로그들이나
기타 자본측의 이데올로그들을 인용할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다. 주관적으로도
객관적으로도 가장 진보적인 입장에서 '재벌해체'를 주장하는 장상환
교수로부터 몇 마디를 인용해보자.3) "…문어발식
확장을 하지 않고 한 분야에 계속 투자하여 규모를 키워갔다면 지금쯤
훨씬 안정된 기반 위에서 국제경쟁을 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재벌해체는
재벌그룹은 해체하되, 그 속의 개별기업은 더욱 육성하는 것이다. 그룹
속의 개별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이를 저해하는 재벌체제를
해체하는 것이다. 재벌그룹 속에 들어 있는 개별기업들을 재벌가의 지배로부터
분리 독립시켜 개별기업 단위로 전문 대기업을 육성하는 것이 재벌해체의
본 뜻이다."4) "재벌의 본질은 소유집중을 바탕으로 총수가 경영을 독점하는 것으로 … 비효율을 낳게 된다. … 재벌해체는 … 독립전문경영의 대기업으로 전환하는 것"5) 이 인용문들을 통해서, 장 교수와 같이 '진보적이고 민중적인' 입장에서 '재벌해체'(?)를 주장하는 경우에도 그 '본 뜻'은 경쟁력 있는 전문 대기업을 육성하는 것임이 명백해졌다. 그런데 이렇게 '재벌해체' 등 '구조조정'의 '본 뜻'이 경쟁력 혹은 효율의 증대에 있을 때, 예컨대 재벌해체는 '구조조정', 즉 경쟁력 및 효율을 증대시키기 위한 조치의 (단지 논리형식상) 선택 가능한 하나의 수단으로 전락하여 경쟁력 이데올로기 그 자체에 강력하게 종속되게 된다. 게다가 당장 현실적으로 경쟁력 및 효율의 증대를 위해서 '구조조정'을 단행할 권능을 가진 자들은 '재벌해체'를 주장하는 소부르주아 이데올로그들이 아니라 재벌 자신들 및 그들의 공동이성(共同理性)·공동집행기구로서의 국가(김대중 정권)이기 때문에, 그들의 주장은 경쟁력·효율 이데올로기만을 강화시킬 뿐 재벌의 '해체'로는 귀결되지 않는다. 귀결로 되는 것은 경쟁력 강화를 위한 독점자본의 합리화로서의 재벌의 '개혁'이고,6) 그에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노동자들의 대량해고·대량실업이다. '재벌개혁'은 이렇게 대량해고를 필연적으로 수반하고, 그 때문에 12월 7일 '5대 그룹 구조조정 추진사항 합의'가 발표되자, (오히려 보수신문인) {동아일보}(98. 12. 8)는 "5대그룹 구조조정… '퇴출공포' 떠는 직원들", "'앞날 어떻게 되나' 불안… 한숨… 동요…"라는 제목의 기사를, "불안감으로 고개를 푹 숙인" 한 삼성자동차 직원의 사진과 함께, 사회면의 머릿기사로 내걸고 있다. 실제로 이번 합의가 실천에 옮겨진다면, 5대 재벌과 그 하청기업에서 십만여 명의 새로운 해고자가 나올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명색이 '진보적'이라는, 그러나 '경쟁력'이라는 황금의 신에게 영혼을 팔아버린 소부르주아 {한겨레}(98. 12. 8) 신문은 "5대재벌 계열사 264개서 130개 안팎으로"니, "문어발·차입경영 고질병 해소 밑거름"이니, "전자포기 대우 계열사 70% 줄어"니 하는, 기본적으로 독점자본의 관심사, '재벌 구조조정'을 높게 평가하는 가사들만을 여러 면에 머릿기사로 내세웠을 뿐, 이로서 발생할 노동자들의 대량실업에 관해서는 "또 한번 불어닥칠 '실업고통' 비주력업종 12~17만명 … 고용조정 불가피"하다며, 한 쪽 구석에 2단 기사로 처리하고 있을 뿐이다. "재벌개혁, 이제 시작이다"라는 제목의 이날치 사설은 더욱 가관이다. 거기에는 이번 조치에 대한 기본적으로 긍정적인 평가와 경쟁력·채산성 이데올로기와 더불어 '재벌개혁'을, 따라서 노동자 대량해고를 보다 더 철저히 추진하라는 다그침만 있을 뿐, '재벌개혁'을 통해서 대량으로 '퇴출될' 노동자들의 생존·생계문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다. '각계 반응'을 모니터한 난도 "구조조정 제도화에 총력 기울일 때"라는 큰 제목 하에 내외 자본가단체, 독점자본의 정치부대로서의 제도정당들, 그리고 독점자본 합리화 이데올로그 집단인 경실련의 '반응'만을 싣고 있을 뿐, 이 '재벌개혁'이 초래할 대량해고에 반발하는 노동자나 민주노총 등의 '반응'은 싣지 않고 있다. 이것이 아마 경제위기 1년간의 이 사회의 '진보적 이데올로그들'의 일반적 의식상태, 관심사의 현주소라고나 해야 할까? 그들이 물론 '실업문제'에 호들갑을 떨지 않는 바는 아니나, 그들의 더 깊고 강력한 충동은 '경쟁력'을 위해서 '구조조정'을 통해서 대량실업을 더욱 누적시키도록 신자유주의 김대중정권에 촉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실업문제에 이르면 그들은 위선적이고 박애주의적인 '실업극복범국민운동' 등을 통해서 그들의 '도덕적 위신'을 높이고, '실업자 재취업교육'을 통해서 돈벌이를 하는 것이다. 특히, 한겨레신문사 등이 이곳저곳에서 자금을 받으면서 시행하고 있는 '실업자 재취업교육'은, 원리적으로 말하면, 노동자계급 일반의 경제적 처지를 더욱 악화시키고 그들을 정치적·이데올로기적으로 무력화시키는 데에 기여하는 것이다. 지금 대대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실업은 결코 해고되고 있는 노동자들의 기능부족이나 기능부재 때문이 아니다. 경제위기로, 그리고 근본적으로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로는 결국 담아낼 수 없는 고도의 생산력 발전의 결과로 '잉여노동력'이 되어 내던져지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재취업교육'은 마치 그들의 실업이 기능부족이나 기능부재 때문이라는 전제 위에 서는 것으로서, 그들 사회의 희생물들 자신에게 알게 모르게 기능부족이나 기능부재, 곧 실업의 책임을 묻는 것이고, 기능교육이랍시고 그들을 학대하는 것이다. 더구나 지금 실업은 어떤 특정 산업이나 업종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그 때문에 실업자들에게 새로운 기능을 습득하게 하는 재취업교육은 그들을 다기능공으로 만들어 각 기능별 예비군의 풀(pool)을 증대시켜 일자리를 향한 노동자들의 경쟁을 격화시키고 그만큼 임금 일반을 저하시키는 데에 기여할 뿐이다. 만일 '재취업교육기관'이 교육수료자들의 취업률을 실적으로 내세운다면 그것은 바로 그들이 얼마나 노동자 임금 일반을 저하시키는 데에 기여했는가의 실적이 될지언정 진정한 '취업'의 실적으로는 될 수 없을 터이다. 왜냐하면, 전반적으로 노동력과잉이 발생하는 조건에서 '재취업교육'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아닌 바에야 그 수료자의 취업은 기존 취업자, 곧 상대적으로 고임의 노동자를 배제하고 그 자리를 채운 것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실업자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재취업을 위한 기능교육이 아니라
자신들의 실업배경을 근본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과학적인 정치교육이다.
정치부대의
재편 경제위기와 더불어 김대중정권의 등장 또한 지난 1년간 우리 사회를 움직여온 두 축의 하나이다. 하지만 김대중정권의 등장이 이른바 '헌정사상 초유의 정권교체'라고 상찬되는 만큼의 정치적 변화를 수반하고 있지는 않다. 직업적 관료군은 그렇다 치더라도, 예컨대 '국민의 정부'의 대통령 비서실장조차 과거 군사정권시대에 군사정권의 핵심부에 있던 인물이 기용된 것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주요하고 핵심적인 정치적 위치에조차 과거 정권에 봉사하던 인물들이 적잖이 포진하고 있으면서 과거와의 동질성을 보장하고 있다. 경제·사회정책에서도, 경제위기 때문에 그 확대를 강제당한 실업보험 등을 제외하고는 과거정권과 본질적으로 다른 바가 없다. 최근에 개별 재벌들을 압박하여 이른바 '재벌개혁'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 또한 과거 정권시대부터의 과제였을 뿐만 아니라 경제위기에 의해서 추진력이 붙은 것일 뿐, 그리고 독점자본의 공동이성으로서의 국가가 독점자본 일반의 이익을 위해서 개별자본의 근시안적인 충동에 부분적 제약을 가하는 것일 뿐, 어떤 진보적 내용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독점자본 위주의 반노동자적 정책은 신자유주의 정책의 강화로 오히려 김대중정권에 이르러서 더욱 강화되고 있다. 김대중정권에 와서 그나마 긍정적으로 진전된 것은 남북문제 정도인데, 명백히 독점자본 중심의 자의적인 국가보안법 운용이라는 한계를 갖는 것이지만, 금강산 관광의 실현 등은 높게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물론 정파적인 이해관계의 대립에서 돌출된 것이기는 하지만, '판문점 총격요청' 사건 등과 같은 이른바 '북풍사건들'이 드러난 것 또한 이 사회의 지배집단, 지배계급이 얼마나 부도덕하고 파렴치한가를 폭로하는 것으로서, 그리고 과거의 많은 '간첩단 사건'이 사실은 정치적 필요에 의한 조작이라는 주장에 더욱 설득력을 주는 자료로서, 어쩌면 김대중정권으로의 정권교체에 의해서만 가능했던 일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민정부'를 자처한 김영삼정권이 그랬던 것처럼 '국민의 정부'를 자처하는 김대중정권 역시 정치적 개혁과 인권, 사정 등을 시끄럽게 외치지만, 김대중정권에 와서 예컨대 노동법 등이 보다 더 개악되었을 뿐, 국가보안법과 같은 구래의 파쇼악법은 온존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들 파쇼악법에 의한 구속자 수가 역대 어느 군사정권보다도 적지 않아서, 국가보안법에 의한 구속자 수는 김영삼정권 초기의 4.6배에 이르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사실 김대중정권으로의 교체는, 말 그대로, 독점자본가 계급 내부에서의 '수평적 정권교체'로서, 아무리 화려한 구호로 치장하더라도 그 자체가 어떤 의미 있는 정치적 변화를 가져올 근거는 없다. 의미 있는 정치적 변화는 오히려 이제까지 제도정치권 밖에 머물던 이른바 '재야세력', 즉 소부르주아 정치세력에서 발생하고 있다. 이들은 과거 박정희·전두환 등의 군사파쇼에 대항하여 민주주의 운동을 벌이던 세력으로서 정치와 사회의 운동을 계급적·과학적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소부르주아적 안목 때문에, 군사파쇼에 의해 소외되고 그 때문에 대립적이던 '김대중 선생'이 집권하자 이를 민주주의의 (상대적) 성취로 보고 이제 대거 조직적으로 제도정치권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소부르주아 민주주의자들 내부의 이러한 동요와 제도정치권 쪽으로의 이동은 물론 '문민정부'라던 김영삼정부 시대에도 있었다. 그러나 당시의 그것들이 개별적이고 소수의 현상이었음에 비해서 김대중정권에 와서의 그것은 대량적·집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른바 '민화협'의 결성으로 완고파인 '범민련' 및 일부의 '한총련' 세력을 제외하고는 남북통일운동도 사실상 김대중정권의 영향하에 포섭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른바 '민주개혁국민연합'은 소부르주아 정치분자들을 광범위하게 끌어들여 '수구를 견제하고 개혁을 뒷받침'하는, 김대중정권의 정치적 친위세력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밖에도 김대중정권의 정치적 친위세력은 각계각층에 분산된 소그룹으로, 조직되지 않은 형태로 광범위하게 존재하는데, 이들 중 상당 부분은 지금 한창 논란의 대상으로 되어 있는 이른바 '제2건국 운동'으로 취합될 전망이다. 이들은 김대중정권이, 한국 정치사에서 군사파쇼의 원조이자 '유신본당'을 자처하는 김종필의 자민련과의 명실상부한 연합정권에 불과하다는 점을 비판하는 대신에 바로 그 때문에 편리하게도 '수구를 견제하고 개혁을 뒷받침'하겠다고 자임하는 것인데, 그러한 한에서 그들은 다분히 '김대중교'의 교도들이라고도 할 수 있을는지 모른다. 그들의 구호는 "수구냐, 개혁이냐"이지만, 그들의 현실적인 전선은 김종필 등의 '수구'와의 사이에 그어지고 있지 않다. 예컨대 그들은 이미, 국가보안법이나 노동악법 같은 '수구적' 파쇼악법을 개폐하는 데에는 거의 관심조차 없다. 관심은 오로지 김대중정권을 뒷받침하는 데에 있다. 따라서 그들의 현실적 전선은 많은 경우 김대중정권의 반노동자적 신자유주의 정책을 비판하는 노동자 계급운동과의 사이에서 그어지고 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노동자·민중운동 내부에 끊임없이 몰계급적인 '수구냐 개혁이야' 하는 사고방식을 강화하고, 끊임없이 국가주의적 경쟁력 이데올로기를 확대 주입하는 데에도 몰두하고 있다. 그들은 현실적으로 김대중정권의 신자유주의적이고 국가주의적인 제반 사회·경제정책을 뒷받침하는 정치적 전위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계급
내부에 그들의 조직적 이데올로기적 기반이 없다면 그들은 물론 노동자계급에
대해서 내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노동자계급 내부, 노동운동 내부에, 비조직 노동자나 한국노총적 운동
내부에 뿐만 아니라 민주노조운동 내부에도 그들은 알게 모르게 다양한
조직적 개별적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교두보를 확보하고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예컨대, 김대중정권의 '노사정위원회'는 결국은 노동법
개악을 확대하고 경제위기 및 김대중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의한
노동자들의 생존권 파괴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저항을 무력화시키는 기구일
뿐이라는 것이 명백하다.7) 그런데도 갖은 요설과 궤변, 그리고 협박이 난무하는 논쟁과
우여곡절 끝에 민주노총이 거기에 참가하고 잔류하게 되는 것도 사실은
노동자계급 내부에 그들이 확보하고 있는 조직적 개별적 이데올로기적
교두보를 통해서 행사하는 막강한 영향력의 결과이다. 그럼에도
전진이다 이미 90년대 초에 역사는 자신이 얼마나 잔인한가를 증명해 보였다. 쏘련 및 동유럽 사회주의의 붕괴를 통해서, 스탈린주의적인 쏘비에트 생산력 드라이브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라는 사회구성체는 그 내부에서 발전할 수 있는 생산력이 충분히 부화하기까지는 결코 새로운 사회구성체로 이행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해 보인 것이다. 사회적 생산력이 극히 낮았던 러시아나 동유럽 지역에서의, 제국주의 세계체제의 약한 고리 파열로서의 사회혁명, 이것이야말로 그 사회주의 체제를 파괴하려던 제국주의의 봉쇄·공작 등과 더불어 20세기 사회주의를 붕괴하게 만든 근본조건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아니 자본주의 세계시장에서는 그간의 자본주의적 발전이 성취한 생산력이 얼마나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와 모순·충돌하는 지를 역시 잔인한 형태로 보여주고 있다. 사회적 생산수단은 더욱더 소수의 독점자본에 집중되어 가고 있고, 수익성 있는 투자처를 찾을 수 없는 엄청난 규모의 과잉화폐자본은 국경과 대륙을 넘나들면서 파괴적인 투기행위를 벌이고 있다. 그 여파로 국내에서만도 수백만 명의 노동자·민중이, 그리고 세계적으로는 수억의 사람들이, 기아와 빈곤을 강요당하고,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동사(凍死)할 위험 앞에 노출되어 있다. 그런데 이 모든 참극이 결코 사회적 생산력이 낮아서가 아니라 너무 높아서, 아니 사회적 생산관계가 그 생산력을 담아낼 수 없이 낙후되어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이다. 지난해에 경제위기가 폭발한 이래 지금 우리 눈앞에서는 바로 이러한 일들이 아주 대대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사실은
이미 70년대에 폐기되었어야 하나 세계의 흐름을 우물 속에서 바라보던
일부 인텔리들에게 남아 있던, 공황이 무언지 기초조차 모르면서 내지르던
다음과 같은 헛소리도 이제 철저히 설자리를 잃고 말았다. "자본주의 경제는 경기순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팽창·수축을 반복하고 그 과정에서 축적의 위기를 맞는다. 그러나 이러한 축적의 위기는 오늘날 국가의 적극적인 정책적 개입에 의해 고전적 의미에서의 공황(Crisis)의 전면적 전개가 저지되면서 불황의 상대적 장기화로 표출되어 왔다."8) 오늘날
국가의 적극적 정책적 개입은 결코 공황의 전면적 전개를 저지하는 것이
아니라, 김대중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명확히 하고 있는 것처럼,
계급의 양극화, 계급대립을 더욱 격화시키고 있다. 독점자본은 더욱더
경쟁력을 증대시키기 위해서 더욱더 정력적으로 과학기술혁명을 진전시킬
것이고, 그럴수록 더욱더 산 노동력을 배제해 갈 것이다. 90년대에 들어와
서유럽이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고율 실업은 이미 자본주의 경제에 구조화되고
있다. 그리하여 자동화 생산력과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모순은 더욱
심화되고, 경제위기는, 물론 이따금 사소한 동요는 수반하겠지만, 기본적으로
더욱 격화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고통스럽지만 자본주의적
생산이, 그리고 역사가 나아가는 길이다. 이제 우리의 관심은 노동자 계급의 움직임에 모아져야 한다. 제2차 대전 이후 반세기 여에 자본주의의 물질적·사회적 생산은 놀라운 발전을 달성했으나 노동자계급의 정치적·의식적·조직적 발전은, 여러 이유들로 인해서 지체되어 왔다. 오늘날에도 물론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고도로 발달한 대중매체를 통한 노동자 대중의 이데올로기적 세뇌, 독점자본에 의한 노동자계급 상층부의 매수·포섭, 노동자계급 내부의 사민주의적 책동, 노동자계급의 자주적 정치운동에 대한 파쇼적 억압 등등 노동자계급의 전진을 가로막는 많은 장치들이 작동하고 있다. 그리하여 역사는 물질적 객관적 모순의 극도의 격화와 주체적 역량의 상대적 지진(遲進)이라는 불균등한 발전을 당분간은 피치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 공황의 폭발이 위에 예문으로 든 것과 같은 일종의 '국가독점자본주의
영구번영론' 같은 헛소리를 일거에 일소했듯이, 앞으로 더욱 격화되고
거듭될 수밖에 없을 공황은 노동자계급의 전진을 가로막는 제반의 장치·요소들을
빠른 속도로 일소해 갈 것이다. 국내에서도 물론 '재벌해체'니 '재벌개혁'이니
하는, 독점자본 합리화 주장이 득세하고 있지만, 사민주의 쉬뢰더 정권하의
독일에서도 노·사·정 3자간에 시대착오적이고 국가주의적인 '고용·훈련·경쟁력을
위한 연대'가 새롭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직접적·간접적으로 경제위기에 의해서 규정되는 바의, 그 위기에
대한 대응이지만, 그것들은 위기를 완화하거나 극복하게 하기는커녕
그것을 더욱 격화시킬 수밖에 없기 때문에 머지않아 덧없이 사라질 수밖에
없는 망상에 불과하다. 12월 7일에 김대중 정권과 재벌이 이른바 '5대 재벌 구조조정 합의'를 발표했을 때, 소부르주아 {한겨레}나 경실련, 참여연대 등이 그 긍정성을 평가하면서 그 불철저성을 비판하고 더욱더 강도 높은 '개혁'을 요구했던 것과는 반대로, 민주노총과 해당 기업의 노동자들은, 그리고 심지어 한국노총까지 그 '구조조정'이 필연적으로 가져올 대량해고에 항거하고 나섰다. 이 점이야말로 경쟁력 이데올로기에 포로가 되어 '재벌개혁' 등을 외치는 물신주의의 소부르주아 이데올로그와 노동자의 차이이며, 한국의 노동자 계급이 고통스러운 경험을 통해서 그들의 이데올로기적 영향으로부터 독립해 가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노동자계급이
부르주아지의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영향을 극복하고 자신의 조직된
정치부대를 가지는 날, 그 날이 바로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날이다.
신자유주의와 경제위기는 노동자들로 하여금 그 길을 가도록 강제하는
객관적 물질적 조건이다. 우리 모두 절망에 굴하지 않고 시련 속에 자신을 깨우쳐 가며, 마침내
올 해방세상 주춧돌이 될 바위처럼 살자꾸나!
------------<미 주> 1) "노동네트워크 주간뉴스", 제12호, 98. 11. 28. 2) 여러 기회에 지적했지만, 예컨대 진보적이라는 {한겨레} 신문의 이봉수 경제부장은 이렇게 쓰고 있다. "요즘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일도 크게 보면 자만심에서 비롯한 자업자득이다. 집 사치, 옷 사치, 차 사치, 외식 사치, 해외여행 사치 등 분수를 모르는 짓거리들이 이어졌다" 운운. ({한겨레}, 97. 11. 26) 3) '재벌개혁' 혹은 '재벌해체'를 주장하는 논자들의 개략적 주장 및 그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는, 채만수, [재벌해체! 감미로우나 빗나간 외침 --천박하고 반노동자적인 재벌해체론을 비판한다], {당대비평} 1998년 여름호, pp. 50~69 참조. 4) 장상환, [한국경제의 진단과 전망 및 재벌 경제지배의 문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정책토론회 자료집 {한국 경제의 진단과 재벌개혁 방향}, 1997. 4, p. 54. 5) 장상환, [김대중 정권의 경제적 과제와 전망], 학술단체협의회 98 정책토론회 자료집 {김대중정권의 과제와 전망}, 1998. 2, pp. 38~39. 6) 이른바 '5대 그룹 구조조정 합의'를 이끌어낸 12월 7일의 청와대 정재계 간담회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이렇게 발언하고 있다. "오직 목표는 하나, 경쟁력 있는 기업을 만드는 일이다." ({동아일보} 98, 12. 8) 7) '노사정위원회'가 노동자 계급에게 있어서 현실적·실천적으로 얼마나 해악적인 기구인가는, "상황에는 항시 서로 모순되는 측면이 있기 마련"이니까 '노사정위원회'를 "쉽게 버려서는 안 된다"고 역설하는,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원보 소장의 글, [숨을 골라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자]({노동사회} 98. 10, pp. 4~9)에 잘 그려져 있다. 8) 정건화, [이데올로기 비판 / 89년 경제위기설], {동향과 전망} 89년 7월 (제5호), pp. 184~18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