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현장에서 미래를』39(1998/12) 시험대에 오른 지구화: 동아시아의 위기와 계급투쟁 데이비드 맥낼리(David McNally, 요크대(York University)교수)* "자신은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아는 경제학자라고, 스스로를 그렇게 알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 알리 아틀라스(Ali Atlas), 인도네시아
외무장관 지난 1년 동안 얼마나 많은 변화가 일어났는가! 작년 여름만 해도 경제학 석학들과 전세계 투자가들은 '아시아의 호랑이'에 대한 칭송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세계은행은 1993년 보고서 {아시아의 기적}을 통해 열광을 표현했다. 전세계의 지배그룹들 내에서, '아시아 모델'은 시장개방과 자유로운 자본이동이 인류의 구세주라는 증거로 칭송받았다. 이 지역의 파멸적 경제위기가 일어난지 1년이 되는 오늘, 세계은행은 새로운 보고서를 준비하고 있다. '아시아의 기적에 대한 재고'가 그 제목이 될 것이다. 여러 형태의 재고가 이루어지는 것은 별로 놀랄 일은 아니다. 매일 1만명의 한국노동자들은 해고통지서를 받고 있다 ―매달 30만명씩. 인도네시아의 경제는 거의 전면파탄 상태에 있고, 자카르타 주식시장에 상장된 282개 기업중 겨우 22개만이 아직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일본은 25년내 최악의 불경기에 빠져 있다. 말레이지아와 타일랜드는 금융쇼크 상태에 있다. 전체적으로 이 지역 주식시장의 대차대조표에서 6천억 달러 이상이 사라졌다. 각국의 예산과 공공정책이 점점 더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시를 받음에 따라, 동아시아의 세계시장으로의 지속적인 통합은 이제 새로운 형태의 종속의 길인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
다수의 좌파내에서도 경제분석을 지배하는 '지구화'에 관한 과대선전은
이제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 사실, 자본의 무분별한 구조조정 공세
― 인력감축과 생산의 '슬림화'(leaning), 외주, 많은 노동의 임시직화(casualization),
새로운 자본시장의 창출, 새로운 무역투자협정의 설치 ―는 투쟁과 저항의
지형을 재형성하였다. 그러나 아시아의 위기는 자본의 본질적인 동력과
모순을 변화시키기보다는, 이 모순이 얼마나 폭발적일 수 있는 지를
폭로하였을 뿐이다. 사실, 아시아 위기는 이 '지구화' 시대에 자본주의의
두가지 근본모순에 대해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해준다. 첫째, 위기는
오늘날 지구화하는 자본을 괴롭히는 과잉축적과 과잉생산이라는 심각한
문제점을 폭로한다. 그리고 둘째 가속적인 자본축적이 어떻게 자본의
명령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새로운 강력한 노동자계급을 발생시킬 수
있는가를 생생히 보여준다. 시험대에
오른 지구화 만약 어떤 지역이 지구화에 대한 시험적 사례가 된다면, 그것은 바로 동아시아와 신흥산업국들 ― 특히 한국,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지아와 타이완 ―이다. 세계 대부분의 지역을 보면 경제적 지구화에 대한 주장은 웃음거리인 것같다. 어쨌든, 전지구적으로 이동하는 자본에 관한 과대선전에도 불구하고, 국제자본은 계속적으로 생산과 교역을 산업적으로 개발된 국가에 집중하고 있다. 약간의 예외와 더불어, 겨우 아시아의 일부만이 자본의 전지구적 회로에 보다 체계적으로 통합되어 있다. 예를 들어, 1980년과 1991년 사이에 아시아(일본을 제외한)가 차지하는 세계교역의 비중은 9퍼센트에서 15퍼센트로 늘어난 반면, 선진국의 비중은 72퍼센트에서 63퍼센트로 약간 줄어들었다. 그러나 세계경제의 나머지 부분 ― 특히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카리브해의 '저개발국들' ―은 세계교역량의 28퍼센트에서 13퍼센트로의 파국적인 하락을 체험했다(국제연합, 세계경제개관, 1993년). 1994년 동아시아는 개발도상국에 대한 모든 투자이동의 절반 이상의 목적지가 되었다. 그러므로 아시아를 제외하면, 지구화 테제는 없다. 그리고 아시아는 유일한 성공사례이다. 그리고 현재 동아시아의 위기는 그것마저 위험에 몰아넣고 있다. 그 이상으로, 아시아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은 세계자본주의 경제 전체에 심각한 위협, {비즈니스 위크}(1998년 1월 26일자)지가 표현하듯이 1970년대이래 '전지구적 번영에 대한 최대의 위협'이 되고 있다. 그러나 경제지들의 경솔한 기술과는 반대로, 동아시아의 몰락은 근본적으로 부패, 족벌자본주의 또는 과잉규제 시장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자본주의적 과잉축적(그리고 그에 동반한 이윤압박)이라는 고전적 문제 때문이다. 최근 수년간 동남아시아로의 엄청난 자본유입은 생산능력의 막대한 증강에 기여했고, 대부분의 생산시설은 수익성 있게 활용될 수 없었다. 다른 말로, 생산력의 자본주의적 발전은 그 고유한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하지만 시장경쟁이 강화됨에 따라, 기업들은 훨씬 더 많은 신규설비 ― 새로운 공장, 광산, 대규모 농장, 새로운 인프라스트럭쳐와 서비스업 ―를 추가함으로써 대응했다. 전반적인 과잉설비의 시기에 새로운 설비를 추가하는 것은 비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다 ―체제 전체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그러나 개별자본가는 시장경쟁의 논리에 확고하게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그것은 유일하게 합리적인 경로이다. 어쨌든 목표는 시장점유율을 위한 쟁탈전에서 다른 누군가가 망하도록 하는 것이다. 생존자는 유연생산, 신기술, 노동규율, 상대적 저임금 및 신속한 시장접근을 적절히 결합할 수 있는 자들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새로운 설비는 전체적으로 과잉생산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위에서 말한 것들을 성취하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자본주의 기업을 건설하기 위해 추가된다. 많은 경우, 아시아는 최근의 수많은 자본축적 물결의 시험무대였다. 자동차, 철강, 전자, 컴퓨터칩, 광학섬유 공장들이 값싼 노동, 손쉬운 자금조달, 가혹한 노동규제를 가하는 친기업적 정부들이 높은 수익률을 보장할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엉망진창으로 세워졌다. 일단 호황이 한계에 이르면, 결과는 예상할 수 있다 ―엄청난 과잉설비와 심각한 수익성 문제. 세계 자동차공업의 예를 들어보자. 현재 자동차의 전세계적 과잉생산능력은 약 2,100~2,200대이다. 이것은 대략 세계시장 대비 36% 과잉설비이며, 80개의 효율적인 최첨단공장의 설비에 해당한다. 하지만, 그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 정말, 자본주의적 논리로 보면, 그런 현실 때문에 ―자동차 회사들은 아시아 전역에서 미친 듯이 새로운 공장을 세우고 있다. 사실, 위기가 발생하기 전에, 자동차업체들은 이미 과잉설비로 비틀거리고 있던 한국과 일본 외에 아시아의 자동차 제조능력을 두배로 늘릴 투자프로젝트를 계획했다. 이와 유사한 과잉축적문제 ― 수익성 있게 사용될 수 없는 생산력의 창출 ―는 컴퓨터칩, 반도체, 광섬유, 화학물, 철강 등의 산업을 괴롭히고 있다. 메모리칩(DRAM) 세계시장은 또다른 사례이다. 분석가들은 DRAM의 과잉공급이 1995년의 0%에 비해 올해에는 18%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한다. 결과는 가격의 폭락이었다(특히 전세계 DRAM시장의 40%를 차지하는 한국에 피해를 주었다). 64메가비트 DRAM의 가격은 1997년초 60달러에서 그 해말 20달러로 폭락했다. 올해 가격은 8달러까지 떨어졌다({월스트리트 저널}, 1998년 6월 4일자). 아시아 경제위기의 근원적 원인은 과잉생산에 의해 야기된 이런 종류의 가격 및 이윤하락 압박이다. 그것은 바로 이 부문들에 대한 추가투자로 적절한 수익을 올리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느낀 일부 투자가들이 발을 뺀 결과이다. 그들은 아시아 지분을 줄임으로써 피해를 줄이기 시작했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바로 동아시아와 같이 투기자본의 엄청난 유입에 의해 심화된 광적 축적이 일상화된 그런 지역에서 플러그를 뺐다. 달리 말해, '시장의 힘'이 자본의 과잉축적이라는 현실적 문제에 대응했다. 아시아위기는 사회의 부적절한 시장화의 결과라기보다는, 자본주의적 시장에 고유한 모순으로 인한 것이다. 간단히 말해, 아시아위기는 자본주의적 지구화의 산물이며, 세계적 규모에서 자본주의적 모순의 심화·확대의 산물이다. 이 모든 것은 단기금융자본의 유입에 의해 더욱 악화되었다. 라틴아메리카 시장이 흔들거리고 일본의 주식과 부동산시장이 주저앉고 있던 반면, 국제은행들과 대부기관들은 동아시아에서 막대한 이윤을 거두어들이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공장이 세워지고 신기술이 줄줄이 도입되고, 고속도로, 공항, 통신시설, 호화호텔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그들은 호황 속에 끼어들기를 원했다. 금융자본이 이 지역에 쏟아져 들어오고 자금을 조달하기가 상대적으로 싸고 손쉬워지자, 제조업체들과 건설업체들은 신규 프로젝트를 계속 추진하였다. 동아시아의 경제적 상승은 투기호황의 모든 고전적 특징을 획득하게 되었다. 각각의 신규 거대프로젝트가 자아도취적 예상속에서 발표되자, 거품은 더욱 커져갔다. 불가피하게, 일부 투자가들은 그런 도취감과는 반대로 투자했다. 그들은 너무 많은 공장, 농기업, 광산, 호텔, 고속도로가 세계적 과잉설비의 상황 속에서 건설되고 있다고 인식했다. 처음에는 조용히 그들은 아시아의 새로운 프로젝트에서 빠져나왔다. 그들은 주식시장에서 현금을 빼냈고 아시아 화폐를 투매했다. 일단 시동이 걸리자 상황은 눈사태처럼 커져갔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지아, 필리핀, 한국, 태국에 대한 민간자본유입은 1990년과 1996년 사이에 거의 5배나 증가하여 매년 200억 달러에서 950억 달러로 급증하였지만, 이들 나라는 1997년 200억 달러에 해당하는 거액의 민간자본의 순유출(net outflow)을 경험했다. 지난 여름 태국의 바트화에 대한 공략을 시작으로 추락은 계속되었다. 갑자기 재계는 아시아의 부채 ― 전지구적 자본의 제공에 의해 창출된 바로 그 부채 ―가 괴로운 문제임을 알게 되었다. 작년 여름, 심지어 바트화의 폭락이 진행되고 있는 중에도, 세계은행, IMF와 수많은 외국은행들의 경제전문가들은 인도네시아 경제가 기본적으로 건전하다고 주장하였다. 인도네시아에서는 태국식의 문제를 예상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몇달후 자본이탈이 시작되고 세계시장은 인도네시아의 800억 달러 외채에 대해 판결을 내렸다. 자본이탈은 아주 심해서, 지구적 자본에 의해 강제된 평가절하는 이제 상황을 파국직전으로 몰아넣었고 국내총생산 대비 외채의 비율은 35%에서 140%로 치솟았다({이코노미스트}, 1998년 3월 7일자). 이제 모든 시선이 한국으로 향했다. 동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의 주요 산업열강인 한국은 현재, 특히 일본의 위기에 의해 나타난 엔화가치의 오랜 약세에 비추어 보아도, 아주 취약한 상태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자동차, 철강, 전자와 같은 산업에서 일본과 직접 경쟁하기 때문에, 엔화약세 현상이 가져오는 일본수출품의 가격하락에 대해 상당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한국은 수수께끼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수출의 활발한 성장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수출액은 가격인하 압박의 결과로 정체했다. 예를 들어 1996~97년에 한국의 수출은 37%나 늘었지만, 수출액은 겨우 5%만 늘어났다. 그러나 그런 미약한 증가는 한국기업들이 공장을 짓고 재정비하기 위해 빌린 부채를 갚는데 부족했다. 1996년말 30대재벌은 평균 400%의 자산대비 부채비율을 나타냈다. 위기가 타격을 가하고 수출과 소득이 줄어들자, 이 부채를 상환할 가능성은 희박해졌다. 현재 자동차재벌인 기아와, 조선, 기계 및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한라그룹을 포함한 재벌의 4분의 1이상이 파산했다. 한편, 동아시아의 위기는 진원지인 일본으로 파급되었다. 일본의 불경기는 1990년대 초 주식·부동산시장의 막대한 붕괴와 함께 시작되었다. 일본의 생산은 1997년 약 1% 감소한 이후에, 올해 1/4분기에 5.3%나 폭락했다. 기업의 이윤과 자본투자도 떨어지고 있고, 기업의 파산은 폭증하고 있으며, 소비지출도 극도로 위축되어 있다. 백화점의 매출도 매달 15%의 비율로 떨어지고 있다. 한편, 일본은행들이 보유한 악성부채는 1조 달러를 넘으며, 기업의 부채는 미국의 1.5배에 비해 자산의 4배에 이른다({비즈니스 위크}, 1998년 5월 18일). 지난 6년간 경제회복을 위해 정부지출에 1조 달러를 투입했음에도 이러한 것이다. 일본에 대한 재계의 견해는 너무나도 비관적이어서, RBC Dominion Securities의 수석경제분석가인 폴 섬머빌(Paul Summerville)은 일본의 불경기가 15년간 지속될 것이라고 예측했다(그가 1992년부터 예측했던 것처럼). 말할 필요도 없이, 이런 예측은 '아시아의 호랑이들'에게 나쁜 소식이다. 왜냐하면 이들에게 대일본수출과 일본의 지역투자는 결정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경제위기가 곧 끝날 것같지 않은 한가지 이유가 된다.1) 지역
전체에서 연이은 주식시장 붕괴, 공장폐쇄, 대량해고, 정부삭감 및 통화의
평가절하는 수백만명의 삶을 파괴하고 있다. 대규모 자본투자와 축적은
이윤을 위한 생산의 논리와 충돌하고 있다. 그 결과 동아시아는 "이전의
모든 시대에 불합리한 것으로 보였던 전염병 ―과잉생산의 전염병"2)에
걸려 있다. 이 전염병은 헤아릴 수 없는 곤란을 강제하고 있다 ―그리고
또 저항과 반란을 낳고 있다. 노동민중과
자연환경: 위기의 몇가지 차원 5백만명 이상의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이 작년 7월이래 해고당했다. 인도네시아의 실업자수는 1998년말까지 2천만명에 이를 것이며, 그때쯤이면 태국에서 3백만, 한국에서 약 2백만, 말레이지아에서 1백만이 실업상태에 있을 것이고 150만명의 이주노동자들이 추방에 직면할 것이다. 해고와 나란히 생활수준의 파괴가 이어진다. 작년 8월과 12월 사이에 한국의 평균수입은 절반으로 줄었다. 그러나 이것은 인도네시아에서 벌어진 일 앞에서는 무색하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연간 1인당 소득이 1,200달러에서 300달러로 떨어졌다. 인도네시아 최대의 산업도시인 수라바야에서는 최저일당이 1년전 2달러에서 30센트 이하로 떨어졌다. 이것은 IMF의 지시결과로, 식량과 연료의 보조금이 없어지고 물가가 치솟는 상황에서 이러한 것이다. 올 연말에 빈곤선 이하로 생활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두배로 늘어 5천8백만명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인도네시아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태국에서 쌀과 밀가루의 가격은 2월에 47%나 올라 가난한 사람들에게 재난이 닥쳤다. 단순히 무역과 투자수치의 변화 이상으로, 동아시아의 경제위기는 기본적으로 빈곤, 실업, 영양실조와 질병률의 급증을 의미한다. 인도네시아의 구제활동가들은 수많은 어머니들이 더 이상 3배나 오른 우유를 살 수 없어서 아기들에게 차를 먹이고 있다고 보고한다. 공장과 가게가 문을 닫자 젊은 여성들이 특히 심한 타격을 받았고 여학생들은 학교를 다니지 못하게 되었다. 태국에서 위기는 수천의 농촌가구들이 방콕의 매춘가에 딸을 팔아야 할 압력을 느끼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몇몇 전문가들은 방콕에 1백만명의 젊은 여성들이 섹스산업에 종사하고, 이들 대부분은 태국정부가 대개 부정하는 AIDS위기에 노출된 상태라고 한다. 자연환경의 황폐화는 고통을 더욱 증폭시킨다. 광란의 산업화와 웅대한 거대프로젝트들은 이미 엄청난 환경파괴를 가했다. 마닐라의 아시아 개발은행은 아시아대륙을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고 환경적으로 가장 후퇴한" 지역이라고 기술한다. 아시아의 강들은 서구의 강보다 20배 이상의 납을 함유하고 있다. 인명의 피해도 엄청나다. 세계보건기구(WHO)에 의하면, 아시아의 대기오염 결과로 매년 150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는다. 또 50만명은 처리되지 않은 물과 열악한 위생상태로 목숨을 잃는다. 경제위기는 필사적으로 살아남으려는 기업들이 비용을 삭감하고 안전과 공해방지비용을 줄임에 따라 지속적인 환경악화로 이어질 것이다. 최근 인도네시아의 상황은 앞으로 닥칠 상황에 대한 무시무시한 경고이다. 순수한 규모에서 상업적 벌목은 세계 열대우림의 10%를 보유한 인도네시아에서 다른 모든 산업을 능가한다. 약 6천만명이 이 우림지역에서 일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이들중 3분의 1이상은 수천년간 유지가능했던 화전경작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중 수백만명은 이미 상업적 벌목, 광업 등에 의해 쫓겨나고 있다. 인도네시아 토지면적의 3분의 1 ― 대략 6천4백㏊ ―은 벌목과 식목작업의 일부로 정기적으로 숲을 불태우는 벌목회사들이 차지하고 있다. 토지와 삼림의 민영화·파괴는 주민의 대대적 강제퇴거를 야기했다. 예를 들어, 70년대에 칼리만탄 전역에서 250만명 이상의 원주민이 추방당했다. 1980년대 중반까지 1천만명의 주민이 자바를 떠나 다른 섬에 '재정착'했다. 작년 여름 수마트라와 칼리만탄의 저지 열대우림에서 2백만㏊가 불탔다. 그 결과는 처참한 것이었다: 지구온난화, 기상변동, 커피와 코코아경작 및 어업에 대한 악영향.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태국남부, 브루네이, 말레이지아와 필리핀남부의 7천만명이 피해를 입었고, 수천명이 호흡기질환, 천식 및 피부와 눈의 염증으로 치료를 받아야 했다.3) 마찬가지로 처참한 것은 거대광업 프로젝트의 영향이었는데, 뉴올리온즈에 본사를 둔 프리포트 맥모란(Freeport McMoRan)사가 운영하는 구리·금광보다 더 파괴적인 것은 없다. 원주민의 유괴, 고문, 살해로 기소당한 이 회사는 서파푸아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풍부한 광산을 운영하고 있다. 이 기업은 푼쿡 자야산에서 막대한 양의 원광석을 채굴하는데, 광물찌꺼기들이 아즈콰강을 오염시켜 물고기와 숲을 파괴했다. 현재 이 회사는 광산의 산출량을 두배로 늘릴 계획을 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일은 빚에 쪼들린 정부들이 IMF와 전세계 투자가들에게 줄 돈을 모르기 위해 천연자원을 매각함에 따라 더 자주 일어날 것이다.4) 자연환경에
대한 파괴의 심화는 동아시아 전역에서 시장권력(market imperatives)이
강화된 직접적 결과이다. 금융자본과 맞물려 이루어지는 산업적 과잉축적은
노동민중과 환경에 대한 고전자본주의적 공격, 즉 맑스가 표현했듯이
"모든 부의 원천 ― 토지와 노동자 ―에 대한 동시적 공격"으로
이어졌다.5) 저항과
반란: 아시아의 새로운 노동자운동 그러나 그 어떤 공격도 저항을 받지 않고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난 15~20년간 유명한 '아시아 기적'의 지역은 지역 전체에서 고용된 노동자의 엄청난 증가와 노동자계급의 자기조직화·투쟁의 주요한 진보를 경험했다. 경제적 남반구, 즉 이른바 '개발도상세계' 전역에서 산업노동자의 숫자는 1980년 2억8천5백만명에서 1994년 4억명 이상으로 증가했으며, 이런 증가의 대부분은 아시아에 집중되었다. 더욱이, 이 기간동안 엄청난 숫자의 동아시아 여성이 유급노동력에 편입되었다. 오늘날, 여성은 이 지역내 전체 임금노동자의 42%를 이루며, 의류, 전기·전자와 같은 주요 산업에서는 압도적 다수를 이룬다. 이외에도, 1980년대 후반 노동조합 조직이 폭넓게 발전했다. 예를 들어, 1987~89년에 조직노동자의 숫자는 방글라데시에서 27%, 필리핀에서 38%, 그리고 한국에서 100%가 증가했다. 1986~89년에 걸쳐 타이완에서 이 숫자는 50% 이상 증가했다.6) 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단지 숫자가 아니다. 동아시아 전역의 노동자계급은 때때로 서구노동운동을 부끄럽게 만든 여러 형태의 전투성과 자기조직화를 발전시켰다. 빈번히, 젊은 여성들이 투쟁의 전면에 나섰다. 그리고 많은 경우에 이 운동에서 국가의 관용과 규제를 받는 낡은 노동조합을 거부하는 새롭고 독립적인 노동조합과 노동연맹들이 등장했다. 타이완에서 독립적 노동조합들의 새로운 연맹이 1988년에 등장했고, 1995년 한국에서도 또다른 연맹이 등장했다. 한편, 방글라데시의 전국의류노동조합과 비합법조직인 인도네시아 노동투쟁센터(PPBI)와 같은 노동조합들이 이들 나라에서 주요한 전투의 최선봉에 섰다. 명백히 인도네시아는 결정적인 사례이다. 독재자 수하르토(최소한 50만명의 좌파를 학살한 유혈 쿠데타로 1965년 집권한)를 무너뜨린 학생주도의 봉기를 초래한 정치적 반대세력의 성장을 보면 그렇다. 수하르토를 무너뜨린 가두시위에서 불법화된 민중민주당(PRD)과 그들의 학생동맹자 인도네시아 민주주의학생연대(SMID)가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의미심장하게, 지지층이 젊은 급진적 민주주의자들로 이루어진 PRD는 1975년 수하르토가 침략한(미국의 지원으로) 동티모르의 독립을 옹호한다. 그리고 반수하르토 봉기기간 동안 PRD는 "'우리 중국인 형제자매'에 대한 공격이 단지 우리의 투쟁을 약화하고 수하르토에게 이로운" 전술이라고 주장함으로서 유명해졌다(PRD 선언, 1998년 5월 14일자). 이와 같이 급진적으로 민주주의적인 전망은 진정한 용기를 가진 운동을 촉발하였다. 학생들은 수하르토의 퇴임직전 기간동안 곤봉을 휘두르는 경찰과, 최루탄과 총탄을 쏘아대는(그리고 수많은 학생들을 죽인) 군인들에 맞서 단식농성, 시위와 정부청사 점거 등을 포함한 항의투쟁을 여러 달 동안 매일 수행하였다. 그러나 논평가들이 인도네시아의 상황에서 놓치고 있는 것은 이와 같은 청년·대학생에 기반한 반대세력과 더불어, 최근 작지만 투쟁적인 노동자운동의 출현이다. 예를 들어, 1995년 7월, PRD와 연계를 가진 노동자투쟁센터(PPBI)는 보고르에서 13,000명이 참가한 의류노동자 파업을 전개했다. 작년 7월, PPBI는 수라바야에서 2만명이 참여한 파업·지역 항의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작년 10월 경제위기에 이어 IMF의 지시에 따라 해고가 자행된다는 소문에, PPBI는 반둥의 국영 항공기회사에서 16,000명이 참가한 노동자파업을 조직하였다. 이런 투쟁은 작은 성과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경찰과 군대의 탄압상황 속에서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의 전투적 결의는 대단한 것이었다. 그리고 수하르토를 무너뜨린 대중운동 이후에, 노동자 조직들은 더욱더 확신과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반수하르토 투쟁과정에서, 노동자들과 도시빈민들은 많은 경우 거리에서 학생들의 대열에 합류하였다. 예를 들어, 5월 3일 동자카르타 탕게랑에서 온 300명의 노동자들이 체제에 저항하여 시위하라는 학생들의 초대에 응했다. 그리고 수하르토의 퇴진 이후 투옥중이던 노동조합 지도자 묵타르 팍파한(Muchtar Pakpahan)을 석방한 결정도 노동자들의 항의를 잠재우지는 못했다. 자카르타 가루다항공의 노동자들이 파업행동에 돌입했고, 수라바야의 마스피온사의 5만명도 파업에 들어갔다. 사실, 마스피온의 노동자 1만명 이상이 6월 8일 수라바야에서 집회를 갖고 경찰과 충돌했을 때 그들은 수하르토 퇴진이래 최대의 시위를 조직하였던 것이다. 그와 동시에 자카르타의 운송노동자들도 공공운송국(PPD)에서 파업에 들어가 73개 버스노선을 마비시켰다. 파업의 절정기에 9천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PPD 청사 밖에서 시위했다. 이와 같은 행동들은, 빈곤과 실업, IMF의 지시에 대항하는 투쟁에서 노동자 조직들이 전면에 나섬에 따라, 더욱 계급적 성격을 띌 것이라는 희망을 낳고 있다. 아마도 한국보다 그런 전망이 더 큰 곳은 없을 것이다. 1980년대 후반에 시작된 거대한 노동자계급의 격변이 한국을 휩쓸었다. 1986~1990년에 조합원은 파업의 물결 속에서 1백만명에서 2백만명으로 증가했다. 전투적 노동자계급의 전통적 무기 ― 농성파업 ―는 더욱 일반적으로 되었다. 마산과 창원같은 공업도시에서 파업 여성노동자에 대한 기업측의 공격이 연대파업의 분출과 30개의 새로운 독립적 노동조합들의 합류로 이어졌던 1987~88년은 사실상의 노동자반란이 일어났던 시기이다. 연대투쟁은 아주 인상적이었고 또 전투성은 아주 광범한 것이어서, 투쟁적 노동자들은 그당시의 마산창원을 '해방구'라고 묘사하였다. 그리고 1995년 11월 50만명 이상의 조합원을 가진 (비합법적) 민주노총(KCTU)의 결성 이후에도 사상최대의 대중파업이 이어졌다. 1차전이라고 할 수 있는 1996년 12월에 시작되어 1997년 1월로 이어진 1개월간의 대중파업에, 대량해고를 가능하게 할 노동법 개악에 항의하여 63만명의 노동자들이 참가하였다. 겨우 10년만에 한국 노동자계급은 세계에서 가장 전투적인 노동조합운동 중의 하나를 건설했다. 이 운동은 현재 경제위기의 결과로 심각한 시련에 부딪히고 있다. 최대의 시련은 570억 달러의 구제금융의 조건으로 IMF가 한국정부에게 대량해고를 시행할 것을 요구하면서 다가왔다. 대량해고의 문제가 1년전에 총파업을 촉발했던 점을 고려하여, 국가는 합의에 도달하기 위하여 노사정위원회를 소집하였다. 민주노총의 대표자들도 보다 온건한 한국노총(FKTU)의 지도자들과 함께 초청받았다. 98년 2월 6일, 많은 노동조합 활동가들에게 실망스럽게도, 민주노총 지도자들은 몇가지 양보와 맞바꿔 대량해고와 IMF 구제금융의 모든 기본조건을 수용하는 합의안에 서명하였다. 며칠후 수백명의 분노한 민주노총 대의원들은 반란을 일으켜, 합의안을 부결시키고 거래에 서명한 지도자들을 제거하였다. 그리고 전국적인 총파업의 일정을 확정하였다. 그러나 다시 며칠 후 전투적 활동가들이 충분한 지지를 받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자 파업호소는 번복되었다. 한국의 전투적 노동자들은 이제 딜레마에 직면하고 있다. 경제위기의 규모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IMF가 국가의 정책을 지시한다는 이미지 때문에 민족적 자존심이 심하게 상처받았다. 수십만명이 금이나 달러를 국고에 기부하라는 정부의 호소에 응답했다. 이런 애국주의적 고조 속에서, 민주노총 활동가들은 국가와 지배계급에 대항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바로 이것이 투쟁적 노동자운동이 직면한 과제이다: 국제자본(그리고 IMF와 같은 그들의 대리인)과 한국의 지배계급을 대상으로 하는 정치적 행동프로그램을 발전시키는 것. 한국정부에 의해 조장된 전통적 애국주의에 대해, 노동자계급은 성격상 노동자계급적인 반제국주의투쟁, 즉 경제의 사회화와 산업의 노동자통제를 요구하는 반제국주의투쟁으로 대항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노동운동과 함께 독립적인 노동자계급정치의 발전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 목표로 향하는 쉬운 길은 없다. 정리해고와 경제붕괴가
노동자들의 사기를 꺾고, 맞서 싸울 자신감을 억누르기 때문에 대중적
저항을 예상하기는 쉽지 않다. 투쟁의 정치적 지평을 넓히려고 노력하는
것 ― IMF와 지배계급에 대한 계급적, 정치적 반대를 형성하는 것 ―은
그런 상황하에서 쉽지 않은 임무이다. 그러나 10년간의 투쟁은 수만명의
헌신적 노동조합 활동가를 가진 전투적 노동자운동을 창출하였다. 그리고
정리해고, 경제위기, 그리고 수천명의 민주노총 투사들의 대중행동에
대한 지속적 선동의 상황속에, 노동자계급의 전망을 건설하기 위한 진정한
희망이 있다. 사실, 초기의 비틀거림 이후에, 노동조합들은 맞서 싸울
역량을 회복하고 있다. 5월 27~28일 약 12만명의 민주노총 노동자들은
정리해고에 대한 파업행동에 참가하였다. 그리고 현재 계속적인 대중
파업에 계획되고 있다. 그리고 대중적 파업에 뒤이어, 기아자동차 노동자들은
임금삭감에 대한 3주간의 파업후에 경영진에게 양보를 강요하였다. 현재의
투쟁들이 가져올 단기적 결과가 무엇이든 간에, 전투적 노동자계급 지도부는
경제위기와 IMF긴축에 대한 투쟁의 열기 속에서 단련되고 있다. 아시아의
새로운 저항모델? 동아시아 전역의 노동자계급과 빈민들은 이제 자신들이 국제자본과의 맹렬한 전투에 맞서 있음을 알게 되었다. 엄청난 중요성을 지닌 경제적·정치적 투쟁 ― 식량폭동, 민주주의를 위한 학생시위, 정리해고에 맞선 노동자파업 ―이 확산되고 있다. 이 투쟁들은 결코 쉬운 투쟁이 아니다. 그러나 몰락하는 '아시아의 기적'이라는 혹독한 시련 속에서 저항세력들이 형성되고 있다. 앞으로 몇 년 사이 그들이 지구화하는 자본의 파괴력에 맞서 주요한 전투에 나설지 여부가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이미 동아시아 노동자들의 엄청난 전투성과 자기조직화는 존경받아 마땅하다.
보고르(Bogor) 의류공장과 쿠알라룸푸르 전자공장의 여성노동자들, IMF의
지시에 따른 해고에 맞선 반둥 항공기노동자들의 파업, 그리고 수만명의
수라바야 노동자들의 대중시위, 수주에 걸친 한국의 기아노동자들의
파업 등은 인원감축, 긴축, 민영화, 실업과 빈곤에 대한 노동자계급적
저항의 징표들이다. 동아시아는 국제적 계급투쟁의 초점이 되었다. 이들
투쟁으로부터 새로운 '아시아 모델'이 등장할 것이다 ―자본주의적 지구화에
대한 노동자계급 저항의 모델. 우리는 이 투쟁들로부터 배울 것이 많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의 투쟁에 연대와 지지를 보내야 한다. 번역 : 원영수/정세분석실 연구원 ----------<미 주> * 필자 데이비드 맥낼리는 캐나다 토론토의 요크대(York University)에서 정치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시장에 맞서: 정치경제학, 시장사회주의와 맑스주의적 비판}(Against the Market: Political Economy, Market Socialism and the Marxist Critique: 1993)의 저자이다. 이 글은 {monthly Review} 98년 9월 50권 4호에 실린 "Globalization on trial: crisis and class struggle in east asia"를 번역한 것이다. 1) 중국 경제발전의 독특한 동학을 탐구하는 것은 이 논문의 영역 밖이다.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극적으로 감소하고 있다는 최근의 보도, 그리고 수만개의 국영기업이 폐쇄됨에 따른 백만명 이상 공무원들의 해고는 이 지역 전체와 세계경제 전체에 반향을 불러일으킬 커다란 문제가 닥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2) 칼 맑스 & 프리드리히 엥겔스, {공산당선언}, p. 73. 3) Dianne Feeley, "Who Set the Fires?" Against the Current 72(January-February, 1998), p.17; and Curtis Runyan, "Indonesia's Discontent", World Watch, May-June 1998, pp. 12-23. 4) 프리포트 맥모란에 관한 정보는 Runyan의 글에서 나온 것이다. 5) Karl Marx, Capital, v. 1, trans. Ben Fowkes (Harmondsworth: Penguin Books, 1976), p.638. 6) 이 단락에 나온 대부분의 자료와, 이어 나오는 한국 노동운동에 관한 많은 자료는 Kim Moody, Workers in a Lean World(London: Verso, 1997) p.202에서 인용한 것이다. 킴 무디의 중요한 책 이외에 유용한 자료는 Jeremy Seabrook, In the Cities of the South(London: Verso, 1993)과 Stephen Frenkel, ed., Organized Workers in the Asia-Pacific Region(Ithaca: ILR Press. 1993)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