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달의 참관기/『현장에서 미래를』39(1998/12) 민중대회: 진정한 민중연대를 생각하며 노 종 복(홀리데이인서울 노동조합 사무장) 만일 노동자가 자본의 의지 자본가의 명령을 최고의 경제법칙으로 공손히 받아들인다면 임금노동자는 노예가 받는 생활보장도 받지 못하면서 노예와 같은 모든 불행을 당하게 될 것이다. - 맑스
{임금·가격·이윤}에서 위 맑스의 인용문은 150여년 전의 글임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상황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 노예제에서 노예는 최소한의 생존권은 보장하면서 일을 시켰지만 현재 자본주의 노동자는 먹고사는 생존권마저 훼손당하고 오로지 생산 및 관리효율을 높여 경쟁력을 강화하고 이윤율을 높이기 위해 존재한다. 지난해의 경제위기가 IMF개입이래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로 약 160만명(정부통계, 실제는 400만 이상)에 이르는 노동자들의 실업 상태가 계속 확대되고 그나마 고용을 유지하는 노동자들조차도 실질소득이 30%까지 감소하는 극심한 내핍과 궁핍 상태 속에서 오직 살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반면
자본은 나라가 위태롭다며 '국가경쟁력 강화'를 내세워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노동강도를 한층 강화시켜 자본의 요구에 스스로 종속시키려는
시점에서 '98 민중대회'가 과연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지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솔직히 처음 98 민중대회 선전물로 나온 대자보를 보고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세상의 주인, 역사의 주인, 그러나 'IMF 고통'에 신음하는 우리, 강물저어 가자 민중의 바다로!> 그런데 주최는 [고용실업대책과 재벌개혁 및 IMF 대응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주관은 [98 민중위원회]로 되어있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구체적 내용(지난달 14일 발족한 [98 민중위원회]를 주축으로 민주노총의 단위노조 대표자급 1천명을 포함해 각계 인사 2천여명을 대회위원으로 조직하여 1인당 2만원의 대회기금으로 행사비 충당)을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역사의 주인, 세상의 주인이라는 노동자대회가 아니고, 주관 주체에도 민주노총을 찾아볼 수 없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한국노총 소속인 우리 노조에서는 쉽게 대자보를 홍보할 수 있는 이점이 있었음도 사실이다. 1970년 11월 13일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를 외치면서 전태일 열사는 목숨을 불사르며 천만 노동자의 투쟁을 선언하였다. 그후 18년이 지난 88년 11월 13일 "전태일 정신계승 및 노동악법 개정 전국노동자대회"라는 역사적인 행사가 거행되었다. 당시 지역과 업종을 불문한 전국 노동자 5만여명의 여의도 행진은 노동대중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고 87년 이후 발전된 민주노조운동의 역량을 전국적 조직의 건설로 나아가게 한 밑거름이 되었다. 하지만
이번엔 노동자대회가 민중대회로 바뀌면서 현장 조합원으로서, 혹시
노동자계급의 가장 기초적인 계급적 요구인 완전고용과 실질임금확보의
요구가 퇴색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갖고 대회를 참석할 수밖에 없었다.
전야제 11월 7일 보라매 공원에서 "정리해고 저지, 노동시간 단축, 산별노조 건설, 재벌해체 노동자 전야제"라는 기치로 전야제가 열렸다. 저녁 8시가 넘으면서 산별, 지역 문화패들의 노래와 율동 등 문화공연이 시작되어 중간에 전태일 문학상과 전태일 노동상 시상식 및 각 연맹의 투쟁사업장에 대한 모범조직상 수상이 있었고, 새벽 1시 30분 '솟대 세우기'라는 대동놀이로 막을 내렸다. 행사가 끝난 뒤 전야제에 참석한 민주관광 조합원 동지들과 미리 준비한 천막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개인적으로 대회에 참석했지만 이제부터는 조직적으로 참석할 수 있다는 것, 70년대 경공업중심의 제조업 노동운동에서 80년대 중공업과 사무직 중심으로, 90년도에서는 숙박 및 음식업, 여행사, 백화점, 유통 등 서비스업종으로 운동의 외곽이 확장되었다는 자부심과 함께 21세기에는 서비스직 노동자도 노동자계급의 중심에 우뚝 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온 몸으로 느껴졌다. 한편 전야제 시작전부터 뒤쪽 운동장에서 차량조명 하나로 인상적인 사전집회가 있었다. 구미, LG패션 노동자의 연설중에서 "사랑해요 LG"의 미소 뒤에는 악랄한 착취가 있으며, 요즘 봉제 공장에서는 미싱을 서서 작업할 뿐만 아니라 화장실도 뛰어다닌다는 노동자의 절규, 준비된 대통령이라며 기다려 달라고 했지만, 지금은 더이상 기다릴 게 없다며 DJ타도라는 과격한(?) 구호를 한 철거민 연설도 인상적이었다. 한편 현대자동차 해고노동자는 노동자대회가 민중대회로 개최된 것을 개량화로 비판하면서 DJ 소환에 민주노총이 앞장 설 수 있도록 추동해야 하며 울산 현대자동차 노조가 이번 싸움에 졌지만 전야제에 참석한 동지들에게 힘을 주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아무튼
노동자대회 전야제가 축제 분위기처럼 치뤄야되는 측면도 인정하나,
해고자와 실업자가 아우성치는 현장의 소리를 많이 듣지 못해 아쉬웠고,
오히려 조용한 분위기에서 치러진 사전 집회와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말씀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졌다. 본대회 8일
오전 여의도 둔치에서는 각 산업연맹별 사전 결의대회가 개최되었다.
11시 30분부터 전국교사대회가 열렸고, 민주택시연맹은 12시부터 총파업
출정식을 개최했다. 공공연맹, 공익노련, 민철노련 등 공공부문 3조직
또한 여의도 성모병원 옆 둔치에서 통합을 위한 조합원 결의대회를 열었다.
건설노련과 전일노협은 마포대교쪽 둔치에서, 민주화학연맹과 민주섬유연맹은
금성무대 뒤쪽에서, 금속산업연맹은 63빌딩쪽 둔치에서 각각 사전 결의대회를
열고 본대회에 참가했다. '생존권 사수, 재벌해체, IMF 반대 98 민중대회'라는 기치 아래, 각계에서 참여한 4만여명의 기립 속에서 지도부와 깃발 입장이 시작되었다. 범국민운동본부의 이창복 상임대표는 '민중연대로 새 희망을'이라는 제목의 대회사를 통해 "세상을 움직이며 역사를 일으켜온 사람들이 민중이며 땀흘려 일하는 민중이야말로 이땅의 진정한 주인임을 역사의 이름으로 선언"하고 민중의 어려움은 "IMF를 앞세워 전세계 민중을 쥐어짜고 있는 국제투기자본의 신자유주의 전략 때문"이라면서 "IMF지배전략에 맞서 단호히 싸워나가야 하고" "무능으로 IMF를 불러들인 자들을 규탄하자"고 외쳤다. 우리에게 신자유주의는 자본의 온갖 잔소리와 미사여구를 배제하면 사회적 관계의 총체를 최대한 시장경제적 관계에 종속시킴으로써 자본운동의 자유를 극대화하려는 것으로 탈규제화, 자유화, 민영화, 유연화, 개방화 등을 추진하면서 노동을 공격하는 내용에 지나지 않는다. 그 핵심은 자본의 이윤을 위한 노동의 유연화, 즉 정리해고와 변형근로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그토록 어려움에 봉착하면서까지 새벽에 이 법을 통과시켰을까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서, 우리들의 민중대회라면 민중들의 최소한의 생존권 보장까지도 위협하는 '악법'을 "철폐"하자고 당당하게 외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김대중정권에 대한 정치적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노태우정권에서 김영삼정권으로 대체되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정권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이데올로기가 무엇이건 자본 편향적인 경제정책 기조가 달라진 건 아무 것도 없다. 게다가 '경제위기와 IMF관리체제'라는 조건 속에서 국내외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면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총체적 개혁'의 제반 정책이 분명히 반노동자적 신자유주의 공세임에도 불구하고 수구 보수세력의 부활을 막기 위해 개혁을 지지해야 한다는 생각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일 것이다. 김대중정권에 강력히 촉구한 내용은 10대 요구사항에 함축되어 있다. - 경제파탄 재벌총수 정치인 관료처벌! 부정축재 환수! - IMF 협약 철폐! 외채탕감 실현! - 정리해고 중단! 주 40시간제로 고용안정! - 모든 실업자에 실업수당을! - 농가부채 해결! 농축산물가격 보장! - 철거민·무주택자에게 주거권! 노점상 합법화! 장애인에게 생존권을! - 노동법 개정하여 교원노조 법제화! - 무분별한 민영화·해외매각 중지! - 정치 언론 개혁하여 민주화 실현! - 국가보안법
철폐! 양심수 전원 석방! 민족민주열사 명예회복! 노동부문 기조연설에서 민주노총 이갑용 위원장도 "지금 우리 사회는 IMF를 앞세운 초국적 자본의 공세로 국민 경제가 하루아침에 파탄나고, 거리는 정리해고로 일자리를 잃는 실업자로 넘쳐나고 있다"면서 "이같은 고통은 썩을 대로 썩은 이 나라 부패정치인과 정치 관료집단, 그리고 독점재벌과 초국적 투기자본들 때문"이라고 말했다. 초국적자본들의 주장은 경제위기를 틈타 더욱 더 교묘하게 노동자 민중에게 고통을 전가하고 대규모로 압박해 올 것이다. 때문에 우리들의 요구도 확고하게 세우고 힘을 키워야 한다. 굳이 세계노동운동사를 보지 않아도 짧은 우리들의 경험으로 충분이 알 수 있는 것은, 지금껏 정부자본과 싸우지 않고서 쟁취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다. 솔직히 지금 시기에 이렇게 수세적인 이유는 경제적 어려움도 있지만 우리들의 힘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부터 새롭게 시작해서 내부의 힘을 모으고 이를 통일시켜서 우리가 주체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설 때만이 민중연대가 더욱 큰 힘을 발휘할 것이다. 이갑용 위원장은 "5대 재벌은 경제파탄의 책임을 지기는커녕 구조조정이라는 미명하에 빚더미를 국민에게 떠넘기고 정리해고로 노동자들을 거리로 내쫓고 있으며" 이는 "김대중 정권이 수구세력 청산을 포기한 채 재벌과 손을 잡고 우리 민중들을 IMF 탈출의 희생양으로 삼아 노사정합의를 휴지조각으로 만들고 단위 사업장에서 맺은 고용안정 협약마저 유린해가며 정리해고를 반대하는 노동자를 여전히 탄압하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또 "노사정위원회를 정리해고 관철과 IMF식 구조조정을 위한 탄압기구로 이용하는 것이 정부가 추진하는 신노사문화라면 이는 철저한 기만책"이라고 규탄했다. 우리는 1990년도 총액임금제와 1993년의 노·경총 임금합의를 통해서 자본측의 의도가 임금을 억제하고 노동운동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철저하게 노동자를 기만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또 우리는, 1기 노사정위원회에서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의 법제화를 인정하는 바람에 민주노총의 경우 대의원대회에서 합의안이 부결되고 지도부가 불신임당하는 과정을 보았다. 그리고 2기 노사정위원회 출범후에는 정부의 구조조정이 급속히 진행되면서 공공부문과 금융산업 그리고 기업의 구조조정이 가속화되고, 현대자동차에서는 조합원들의 강력한 투쟁이 있었지만(비록 최소이긴 하지만) 정리해고가 수용되었고, 만도기계에서는 9월 3일 경찰병력이 투입됨으로써 노동조합이 박살났다. 이것은 노동자계급이 중심을 잃었을 때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 지를 보여준 중요한 경험이다. 이렇듯 노사정위원회의 본질이 노동측을 자본측 하위동반자로 재편하려는 총자본의 고도의 노동통제 도구임을 다시 한번 보고도 민주노총은 노사정위원회에서 탈퇴하지 않고 무엇을 기대하는지 궁금하다. 농민부문 기조연설에서 전국농민회총연맹 이수금 씨는 올해는 수해 등의 여러가지 재해로 산출량이 줄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가장 심각한 농촌문제가 농가부채"라고 했다. "소득은 줄고 생산비는 상승하고, 농축산물은 전면 수입되고 있으며, 과거 정부의 잘못된 농정으로 농민들은 이제 농업을 포기해야 되는 상황에까지 와있어, 정부의 특단의 조치가 반드시 있어야 농업을 살릴 수 있다."고 말하면서 "농가부채 해결, 농축산물 가격 보장, 의료보험 통합, 식량자급 실현"을 촉구했다. 빈민부문
기조연설에서 전국빈민운동연합 준비위원장 양연수 씨는 "그동안
우리는 경제건설이라는 미명 아래 오늘은 부족하더라도 내일은 잘 되겠지
하는 기대와 희망으로, 주면 주는대로 시키면 시키는 대로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약속과는 달리 빈부의 격차는 갈수록 심화되었다. 사람이 돈을
벌고 물건을 풍요롭게 한다는 것은 인간답게 살자는 것인데 지금의 상황은
갈수록 태산"이라며 "철거민들이 보금자리를 쫓겨나 6개월째
비닐을 쳐놓고 노숙을 하면서 가수용시설을 해달라는데도 눈 하나 깜짝
안하는 걸 보면 김대중대통령 취임사에서 남발한 '소외된 자들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는 약속은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라가
이 지경이 된 것이 부패한 정부관료와 탐욕의 화신 때문이지 노점상과
철거민 때문이냐?"고 반문했다. 또한 "관료들이 군림하고
재벌 위주의 정책을 펴는 것을 더이상 놓아두고 볼 수 없어 생산의 주역이요,
절대 다수인 노동자를 중심으로 농민, 도시빈민, 대중이 이 나라를 이끌어가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며 "준비하는 자만이, 투쟁하는 자만이
내일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말로 끝을 맺었다. 공식대회를
끝내고 본대회를 마치고 자본의 총산인 전경련 회관 앞, 4차선 도로를 점거하면서 진행하는 집회 때문인지 박석운 집행위원장은 '민중의 힘의 위력'이라며 조금 흥분된 듯 보였다. 전경련 앞 집회 말미에는 그동안 한국노총 집회에서나 흔히 볼 수 있었던 전경련 건물에 계란 던지는 모습을 보고 지방에서 올라온 어떤 동지는 "계란이나 던지려고 서울까지 올라온 줄 아냐?"며 고함을 치기도 했다. 정리해고 집회후 전해투 동지들과 집회 참석자들이 전경들의 대오를 뚫고 영등포역 앞으로 행진했다. 영등포역으로의 가두행진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참석한 모두는 조금씩 흥분해 있었고 짧은 시간의 가두행진이었지만 이것이 정말 민중의 힘이라 느끼며 해방된 기분을 만끽했다. 특히 집회동안 전해투 동지들의 모습에서 살아있는 노동운동의 미래가 보였다. 그런데도 노동운동 내에서는 왜 해고자들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못하는가? 꼭 우리 모두가 해고를 당해야만 저들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인가? 한가지 분명한 것은 해고자는 남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특히 노동운동을 한다는 사람이라면 더욱더 각인해야 할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원직복직을 기본으로 하는 전해투 동지들의 요구를 더욱 귀담아 들어야 할 것 같다. 초겨울
어둠이 깔리는 영등포역 앞 차도를 메우고 전경들과 대치하면서 동지들과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봉고차 위 연단에서 끝마무리하는 전해투
동지의 모습에서 98민중대회가 희망으로 남았다. 살아 숨쉬는 마무리
집회 때문인지 한동안 자리를 뜰 수가 없었고, 동지들이 모두 흩어진
후 버스를 타고 여의도 전경련 회관 앞을 지나올 때 길옆 큰돌에 스프레이로
쓰여진 '노동해방'이란 문구가 가슴을 더욱 두근거리게 하였다. 글을
맺으며 IMF 1년만에, 건국 50년만의 최악의 조건에서 개최되는 대회이어서 "노동자도 사람이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70년대 절규가 또다시 터져 나올 줄 알았던 민중대회는, 민주노총이 주최가 아니어서 그런지 진실된 현장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민중의 '연대'와 정부에 대해 '촉구'만을 외치는 대회라는 느낌도 있었다. 물론 각계에서 많은 사람이 참석하여 연대투쟁을 결의하고, 공감대도 형성했지만 지금 현장의 고용안정과 생존권 사수의 목소리를 너무 모른척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다른 문제는 절대로 해결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은 기본적으로 잉여가치의 생산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운동방식에 이미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 사이의 계급투쟁의 불가피성은 내재해 있어서, 자본주의적 생산이 지속되는 한 이 투쟁은 약화되고 변화될 수는 있어도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민주노총 산하에서 가장 전투적이고 중심적인 현대자동차 노조가 정리해고를 결국은 수용한 것과, 만도기계 회사측이 고용안정 협약서를 휴지조각으로 만들고 노동조합에 임금삭감, 희망퇴직, 정리해고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했던 판국에 우리 같이 중소기업의 단위 노동조합은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정말 암담하고 답답할 뿐이다. 우리는, 어쩌면 10년은 뒤로 밀려난 듯 이 열악해진 지금의 노동현장을 똑바로 보자. 시키는대로 하지 않으면 잘려야 된다는 것 때문에 군소리 한마디 못하고, 자본측의 구조조정으로 정리해고가 일상화되어 실업자가 많아지면서 노동자들의 경쟁이 심해져 노동강도에 대해서는 말도 못하는 상황이다. 게다가 현장에서는 노조와 합의사항인 탄력적 근로(특히 호텔에서는 일이 많을 때 많이 시키고 일이 없으면 일찍 보내는)로 개인별 스케줄이 노예와 비슷하게 변하고 있다. 자연퇴직자 자리에는 '세계적 추세'라며 싼 임금으로 용역이나 임시직으로 보충해도 노조에서는 대응도 못할 뿐 아니라 고용을 미끼(산학실습생은 자기 스스로 "산학실습비만 받고 일만 배우게 해달라"고, 혹은 "자리가 날때까지 일 배우겠다"고 하는 실정이다.)로 노동조건 하락과 단체협약 파기가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98민중대회가 노조파괴, 정리해고, 임금삭감, 현장통제강화, 노동강도강화에 대한 문제를 전면적으로 제기했다면, 산만하고 형식적으로 진행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조직적으로도 많은 노동자들이 참석하여 자신들의 대회로 파악하고 노동자 죽이는 경제 살리기에 공세적으로 대응하는 대회가 되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았다. 마지막으로, 이상하게 생각된 것은 97년도에 처음으로 있었던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공동집회에서는 "87년 총파업은 '인간선언' 97년 총파업은 '정치선언'이다"라고 했었는데 98민중대회에서는 노동자 정치세력화 얘기는 한마디도 없었다는 점이다. 적어도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부분들의 연대사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선거일 중심으로 현장과 결합하는 정치적 내용이 아니라, 20%의 소수가 살기 위해 80%의 노동자가 고통받는 경제 정책을 반대하고 우리 사회의 굵직굵직한 문제로부터 고통받는 사람들이 스스로 법적, 제도적, 정치적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기 위해 행동하고 실천할 수 있는 정치적 권력의 필요성과 자본과 임노동관계라는 경제적 계급질서를 근본적으로 재편하려는 지향점을 갖는다. 국민승리 21도 이러한 내용성을 채워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정당, 노동대중의 궁극적 권익과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려는 정당, "노동자 중심의 진보정당!"에 대한 언급은, 그러나 그날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왜였을까? '민중연대'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우리는 다시 한번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특히 본대회 한총련 의장의 학생기조 연설 때는 민주택시노련에서 "완전월급제 쟁취 총파업"을 앞두고 조합원 일부가 투쟁을 결의한 글귀와 손도장을 찍은 플랭카드를 들고 연단으로 올라갔다가 쫓겨 내려간 모습은 현재의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다. 민중대회라면 민주택시연맹의 총파업(11월 11일) 총력투쟁을 결단한 배경을 이해하면서 연대의 지지를 보냈어야 했다. "노동운동의 방향 설정이 요구되는 요즈음 지난 10여년의 관성과 경향성을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발걸음이 이제 시작되어야 한다. 노동운동의 계급적·정치적 진전에 의해 더욱 강고하게 단결해 나가는 우리의 모습은 미래 사회의 주인으로 우리 자신이 다가서는 과정이며, 억압받는 모든 피착취 대중과 연대하는 과정이며, 자본의 위기는 보이지만 노동의 희망은 쉽게 잡히지 않는 현실은 이러한 노력에 의해서만 극복될 것이다."라는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창립 3주년 심포지움 발제문 내용이 다시 떠오른다. 98 민중대회 이후 나의 또다른 고민은 현재의 상황에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차이점은 무엇이냐는 것이다. 왜 상급단체를 변경하려 하느냐는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고민이 하나 더 생겼다. 지금의 상황은, 우리에게 자본과 정권의 임금노예로 될 것인가, 노조를 사수하고 생존권을 지킬 것인가의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우리들의 대답은 분명하다. 우리는, 인간다운 삶을 위한 노동자의 계급투쟁은 생존권의 확보를 핵심으로 하는 당면과제 해결을 위한 투쟁이어야 한다는 것에 다시 한번 방점을 찍어야 한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이번 민중대회 이후, 인간해방과 노동해방에 동지들과 함께 해야겠다고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