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정치운동/『현장에서 미래를』39(1998/12) 유럽 진보운동의 전개과정과 전망* - 노동자정치운동을 중심으로 - 김 세 균(소장/서울대 교수) 1.
예비적 고찰 자본 지배가 전사회적으로 관철되는 자본주의사회에서 사회발전을 주도하는 일차적인 힘은 '자본운동'이며, 독점자본주의 발전단계에서는 '독점자본의 운동'이다. 이때 '국가운동'은 자본운동에 대해 일정한 상대적 자율성을 지니지만, 크게 보면 자본운동의 일환을 이루면서 자본운동을 관철시키는 정치적 계기로서 기능한다. 그리고 자본지배 내지 독점자본 지배를 전사회적으로 관철시키는 사회적·정치적 세력들이 자본주의 사회의 '권력블록'(power bloc) 내지 '지배블록'을 형성하는데, 민주적 자본주의사회의 정치적 수준에서는 대체로 개혁적이거나 보수적인 자유부르주아세력이 부르주아적(내지 독점부르주아적) 지배블록의 중심을 이룬다. 자본주의사회가 지닌 적대적 계급구조는 항상적으로 많든 적든 자본지배에 대한 노동자들의 저항을, 그리고 지배블록에 대해 저항하는 '피지배대중의 운동' 내지 '노동자·민중운동'을 불러일으킨다. 이로 인해 자본주의사회의 구체적인 발전양상은 노자간의 계급갈등이 중심이 되는 지배블록 대 노동자·민중간의 대립과 타협 등에 의해 결정된다. '노동운동'은 그러한 피지배대중 운동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그리고 자본지배에 저항하는 노동자·민중운동은 진보운동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이룬다. 다른 한편, 계급문제와 처음부터 뒤얽혀 있지만 계급문제로 남김없이 환원할 수 없는 다른 사회적 문제들은 계급운동과는 구분되는 이런저런 사회운동들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사회운동은 그것이 자본지배에 저항하는 운동의 한 계기를 형성하는 한, 그리고 이를 통해 피지배대중의 계급운동과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한 진보운동의 일환을 형성하게 된다. 그런데
노동자·민중운동은 크게 보면 대중의 사회경제적 이익의 옹호를 일차적인
과제로 삼는 '대중운동'과 정치적 과제의 해결을 일차적인 과제로 삼는
'정치운동'으로 나타난다. 역사적으로 노동자운동은 대중운동 수준에서는
자연발생적인 대중봉기나 대중파업으로 표출되었고, 조직 운동으로서는
가장 일반적으로 노동조합운동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그러나 비상한
국면에서는 정치의 직접적인 전유를 지향하는 '평의회운동'이 나타나기도
했다. 그리고 '정치운동'은 '정당운동'이 중심이 되면서 그외 다양한
정치조직 내지 정치단체들의 운동으로 나타났다. 유럽정치는
'부르주아정치'와 (진보정치의 중핵을 이루는) '노동자(·민중)정치'의
고전적 실험장이라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 강의는 노동자정치운동이
중심이 된 그간의 유럽의 진보운동의 궤적을 파악하는 것을 통해 유럽
진보운동의 앞으로의 방향을 타진하는 동시에 그 교훈을 발굴하는 데에
목적을 둔다. 2. 유럽 진보운동의 전개과정 - 노동자정치운동의 전개과정을 중심으로 - 유럽 진보운동의 중심을 이룬 그간의 노동운동의 전개과정이 지닌 일반적인 특징은 무엇인가? 그 과정은, 간략하게 말한다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의 노동운동의 전개과정이 보여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1) 지배블록, 특히 자유부르주아세력의 헤게모니로부터 노동운동의 조직적·사상적 자립성을 확보하고, 이에 기초하여 노동운동이 자신을 자본지배에 대항하는 '대항권력'으로, 그리고 이를 통해 노동자계급이 성립되어 있는 기존의 지배블록을 대체하는 새로운 역사적 블록을 만들어나가는 데에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헤게모니적 계급으로 자신을 상승시켜 나가려는 경향과, (2) 노동운동이 지배블록, 특히 자유부르주아지의 헤게모니 아래에 재포섭되고, 이로 인해 자신을 다시 자본종속적인 운동으로 전락시키는 경향간의 긴장과 갈등에 의해 특징지워져 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러한 갈등과 대립이 행해지는 가운데에서도 크게 보면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의 노동운동에서는 (1)의 경향이 주된 흐름으로 나타났다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노동운동에서는 (2)의 경향이 주된 경향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로 말미암아 현 시기 유럽의 '주류적' 노동자정당 운동과 노조운동은 크게 보면 (신자유주의적인) 자유부르주아지의 헤게모니에 포섭되어 있는 상태에 놓여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무엇보다 대중투쟁의 새로운 고양에 힘입어 그러한 상태를 극복하기 위한 움직임이 '비제도적 좌파세력'들을 중심으로 점차 활성화되고 있다. 노동운동의
부르주아지 헤게모니로의 재포섭은 대체로 '당면과제 해결의 절실성,
'국가참여를 통한 개혁'과 '개혁의 누적을 통한 변혁' 등을 내세운 노동자정당
및 노조 지도부의 역할에 의해 매개되었다 ― 노조지도부는 노동자정당
내부에서도 대체로 우파세력의 가장 완고한 보루로 기능해왔다 ―. 이는
이들 노동자정당 및 노조 지도부를 이미 성립되어 있는 지배블록의 일원으로,
보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지배블록 내부의 좌파'로 편입시키는 과정을
동반하는 것이었다. 다른 한편, 노동자대중은 일반적으로 일상 시에는
정당과 노조 지도부의 노선을 수용함으로써 노동자정당과 노조의 우파지도부의
대중적 기반이 되면서도, 계급모순이 첨예화되는 특정한 국면에서는
조직의 틀을 넘어서는 전투적인 대중투쟁을 전개함으로써 노동운동에
잠재적으로 변혁성을 각인시켜 왔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전투적 대중투쟁이
지닌 그러한 변혁적 잠재력은 노동자계급을 새로운 헤게모니계급으로
상승시키기 위한 치열한 '이론적 노력'과 '변혁지향적인 정치운동'과
굳건하게 결합하지 못할 경우 우파지도부의 노선에 의해 다시 포섭되는
과정을 밟았다. 우리는 유럽의 노동운동을 '2차대전 이전의 노동운동'과 '2차대전 이후의 노동운동'으로 대별할 수 있다. 그리고 제2차대전 이전의 노동운동은 (1) '노동운동의 성립으로부터 제1인터내셔널이 해산되기까지의 (또는 1981년의 파리꼬뮌 봉기가 패배하기까지)의 노동운동'과 (2) 산업프롤레타리아층에 기반한 노조운동과 노동자정치운동의 본격적인 대두를 토대로 전개된 '제2인터내서널 시기의 노동운동' 및 (3) '제3인터내서널 시기의 노동운동'으로 구분될 수 있고, (1)은 다시 사상적·정치적으로 독자적인 운동으로의 발전을 위한 움직임이 나타난 '초기노동운동'이라는 제1국면과 '제1인터내셔널 시기의 노동운동'이라는 제2국면으로 구분될 수 있다. 그리고 '제2차대전 이후의 노동운동'은 크게 보면 (1) 사민주의의 헤게모니와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 하의 노동운동'과 (2) '신자유주의 헤게모니 하의 노동운동'으로 구분될 수 있고, (2)는 다시 '1990년대 중반 이후의 좌파정권의 수립 이전국면'과 '이후 국면'으로 나눌 수 있다. 2-1
제2차세계대전 이전의 노동운동 2-1-1
노동운동의 성립에서 제1인터내셔널 해산까지의 노동운동 제1국면: 초기노동운동 - 사상적·정치적으로 독자적인 운동으로의 발전을 위한 움직임 - 1789년의 프랑스 대혁명으로 대표되는 시민혁명이 신흥부르주아 주도하에 이루어진 '민중혁명'의 형태를 띠고 전개된 데에서 드러나듯, 근대 자본주의사회의 성립기 및 초기에 노동자층을 비롯한 기층민중은 봉건제의 타도 및 이후의 민주화를 위한 투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이러한 운동은 대체로 자유부르주아지의 정치적·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 하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런데 노동자들 자신의 계급적 요구에 기초한 운동은 초기 자본주의 시기에는 당시의 자본축적의 지배적 형태였던 '절대적 잉여가치의 착취'에 저항하는 노동자투쟁 및 산업혁명의 전개와 더불어 자신의 지위를 위협받게 된 구(舊)숙련노동자층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그런데 구숙련노동자층은 자본주의의 발전과 더불어 몰락하는 노동자층에 속했기 때문에, 이들 중심의 노동운동은 노동운동의 미래를 담보할 능력을 지닌 운동으로 발전할 수 없었다. 이와는 달리 노동자대중운동은 산업혁명을 통해 양산되기 시작한 산업프롤레타리아층의 출현과 더불어 새로운 모습을 띠고 발전하기 시작했다. 유럽
초기 노동운동의 전개과정은 크게 보면 '사상적·정치적으로 독자적인
운동으로의 (모순에 찬) 발전과정'에 의해 특징지워지는데, 이 과정은
한편으로는 노동운동 이념의 형성과정에 의해,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자
대중운동과 정치운동의 발전과정에 의해 특징지워지는 것이었다. (가) 노동운동 이념의 형성과정: 과거에 농민들과 수공업자였던 초기노동자층은 자본주의적 착취와 지배에 포섭되면서 자신이 처한 사회적 처지를 개선하고, 현존하는 착취적 질서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사회를 갈구하는 열망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열망은 초기에는 과거 농민층의 유토피아였던 '공상적 평등주의' 이념과 뒤섞여 있는 것이었다. 새로운 사회에 대한 철학적, 이론적 구상은 초기에는 현실비판적이었던 '계몽적 인텔리층'의 작업으로부터 나오기 시작했는데( 자본주의로의 이행기의 Thomas More, Thomaso Campanella, Morelly, Jean Mesliere 등, 프랑스대혁명 이후의 G. Babeuf, 바베프주의자들, 그리고 산업혁명 이후 영국의 '런던통신협회'와 같은 민주주의단체들의 이론가인 J. Thelwall와 Thomas Spence, William Godwin, P. B. Shelley와 같은 Godwin주의자들, Robert Owen, 프랑스의 Saint Simon, P. Leroux, Bazard와 같은 생시몽주의자들, F. M. Fourier, F. Tristna, V. Considerant과 같은 푸리에주의자들, Etienne Cabet, Theodore Dezamy, August Blanqui, P. J. Proudon 및 독일의 Wilhelm Weitling, 미국의 G. Evans, T. Skimore 등), 사회주의이념은 이들의 구상이 노동대중의 열망과 맞물리는 과정에서 구체화되기 시작하였고, 현실적인 힘을 얻기 시작했다. 특히
마르크스주의의 출현과 발전과정은 독자적인 노동운동 이념 형성의 완전히
새로운 단계를 표시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이후의 노동운동은 주요하게는
'노동자 대중운동과 마르크스주의의 융합의 역사'로 특징지워진다. (나) 대중운동과 정치운동의 발전: 초기 노동운동은 크게 보면 '1848~49년 혁명이전 시기의 노동운동'과 '1848~49년 혁명 이후부터 제1인터내셔널의 창립시기까지의 노동운동'으로 구분될 수 있다. 초기 사회주의사상에 나타난 농민적 사상은 노동운동과 결합되는 과정에서 노동자적 사회주의사상으로 변모해갔다. 그런데 노동운동은 사회주의사상과 더불어 급진민주주의적·공화주의적 이념과 결부된 정치투쟁을 조직했는데, 이로 인해 노동자정치운동을 지도한 사람들 중에는 소부르주아유형의 사회주의자 혹은 사회주의적 요소를 지닌 자유주의자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시기의 중요한 투쟁으로는 프랑스의 경우 1830년 7월 혁명 과정에서의 노동자투쟁 ― 이 혁명과정에서 노동자계급은 가장 전투적인 투쟁을 전개했지만, 이들의 운동은 대체로 부르주아 주도의 민주개혁운동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 (최초의 대규모적·독자적인 계급적 '경제'투쟁으로서 의의를 지닌) 1831년 리용에서의 노동자봉기, 1832년 6월 파리노동자들의 무장봉기, (공화주의적 목표를 내건 본격적인 정치투쟁으로서 엥겔스가 고대 로마에서의 노예전쟁, 1848년 6월 파리노동자 봉기와 더불어 유럽사에서 피억압대중이 전개한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평가한) 1834년 리용에서의 두번째 노동자봉기 등이 있다. 그리고 영국에서는 (세계 역사상 최초의 대규모적인 그리고 독자적인 노동자정치운동으로 평가되는) 1830~40년대의 차아티스트운동 등이 있었다. 다른 한편 이 시기에는 프랑스의 '인민동지회', '인권 및 민권협회' 블랑키가 조직한 '가족협회', 독일의 '독일인민연맹', '공산주의자동맹'의 전신인 '의인동맹'과 같은 이런저런 노동자정치단체들의 운동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차아티스트운동의 약화와 더불어 영국 노동운동의 지도노선은 이후 급속하게 개량화되기 시작한다. 영국 노동운동의 지도노선은 유럽에서 가장 일찍 개량화되기 시작했던 것이다.1) 이런 조건 속에서 영국 노동자대중의 투쟁은 이후에도 전투적 투쟁을 행하지만, 대체로 이 투쟁은 (정치를 개량주의세력에게 맡기거나 의존하는) 전투적 조합주의 투쟁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다. 1848년 2월 프랑스혁명은 산업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층의 연합에 의해 성취된 혁명으로 프랑스 및 유럽각지에서 부르주아민주주의혁명을 크게 진척시키는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혁명의 성과가 부르주아에게 독점되는 사태가 진행되는 것에 대항하여 파리노동자들은 6월에 봉기에 나섰는데, 1848년 6월의 파리노동자 봉기는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의 폐절', '노동할 권리' 등과 같은 계급적 구호를 내건 최초의 본격적인 정치투쟁이었다는 점에서 역사적 중요성을 지닌다. 1848~49년의
혁명에서 노동자계급이 패배를 경험한 이후 자유부르주아세력은 이전에는
자신의 적대자였던 구세력들과 연합하여 노동자·민중에 대항하는 지배블록을
형성했다. 그리고 지배의 반동화는 프랑스에서 보나파르트 3세의 독재체제의
수립에 의해 그 절정을 이루었다. 그러나 1850년대 중반 이후에 이르러
노동운동은 다시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으며, 노동자들간의 국제연대운동도
활발하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를 배경으로 1863년 7월 '런던노동자협회'가
노동자 국제조직의 창설을 발의한 것을 계기로 유럽의 많은 노동단체들이
참여하여 '국제노동자협회'(the Intrnational Workingman's Association)
― 제1인터내셔널 ―가 1864년 9월에 런던에서 창립되었다. 제2국면: 제1인터내셔널 시기의 노동운동 - 마르크스주의
헤게모니의 확산 - 제1인터내셔널은 "노동자계급의 해방은 노동자계급 자신에 의해 쟁취되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선언함과 더불어 노동자계급의 독자적인 정치세력화와 노동자계급에 의한 정치권력 획득 및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단결의 필요성, 운동과 이론과의 결합의 중요성 등을 규약에 담은 제노동세력들 간의 광범위한 국제적인 연대조직체로 출범했다. 마르크스는 조직 전체를 지도하는 총평의회에서 지도적 역할을 수행했는데, 내부적으로 본 제1인터내셔널의 역사는 이 조직에 포괄된 제반 노동운동 조류들 ― 프루동주의, 자유주의적 노동조합주의와 개량주의 및 바쿠닌파의 무정부주의 ―에 대한 총평의회의 투쟁의 역사이기도 했다. 그런데 제1인터내셔널에서의 내부대립은 주로 마르크스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 사이에 일어났다. 이러한 사정은 이후 제2인터내셔널이 무정부주의세력을 배제하고 마르크스주의세력과 개량주의세력을 중심으로 조직되는 역사적 배경을 이루기도 한다. 다른 한편, 제1인터내셔널에서의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활동은 마르크스주의가 유럽 사회주의운동에서 이데올로기적 주도권을 장악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해 주었다. 이에 힘입어 1869년 8월 아이젠나하(Eisenanch)대회를 통해 마르크스주의적 강령을 지닌 최초의 대중정당인 '독일사회민주노동당'이 창립될 수 있었다. ― 이 당은 이후 라살레가 창당한 '독일총노동자단체'와 더불어 1875년 '사회주의 노동당'으로 통합되었으며, 1890년에 '독일사회민주당'(SPD)으로 당명이 개칭되었다. 제1인터내셔널은
대외적으로는 1870년 3월의 노동자봉기에 의해 생겨난, 역사상 최초의
노동자국가라 할 수 있는 '파리꼬뮌'이 붕괴된 후 부르주아지의 반(反)인터내셔널
캠페인이 가중됨에 따라 1873년부터는 사실상 대외적 활동을 중단하게
된다. 그리고 내부적으로는 총평의회의 노선에 대한 바쿠닌파의 공격이
치열해짐에 따라 더 이상 일관된 조직활동을 수행할 수 없게 되는데,
이를 배경으로 1876년 필라델피아회의의 결정에 따라 정식으로 해체하기에
이른다. 2-1-2
제2인터내셔널 시기의 노동운동: 마르크스주의 헤게모니의 확립 및 노동자정당운동의
우경화·개량주의화 경향의 대두 제1인터내셔널이 해산된 이후에는 산업프롤레타리아운동이 본격적으로 대두된다. 그리고 이를 배경으로 한편으로는 노동자들의 노조로의 결집 및 대중파업이 대규모적으로 나타나며,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자정당 건설운동이 각국에서 본격화되고 정당을 통한 정치투쟁이 활성화된다. 이와 더불어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연대 움직임 역시 증대하는데, 8시간 쟁취를 위한 투쟁이 전유럽에서 힘차게 전개되고 1889년 7월 파리에서 국제노동자대회가 개최된 것을 계기로 유럽의 거의 모든 노동자정당과 노동조합을 포괄하는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연합체로 발전한 제2인터내셔널이 발족하였다. 제2인터내셔널이 창립된 시기에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노동자정당으로 성장하여 유럽전체의 사회주의운동을 주도한 정당은 독일의 사회민주당이었다. 1891년 독일 사민당은 에어푸르트강령(Erfurter Programm)을 채택했는데, 이 강령은 노동자정치운동과 마르크스주의의 융합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제2인터내셔널은 마르크스주의 주도하에서 마르크스주의적 조류와 개량주의조류( 및 상디칼리즘적 조류) 등이 연합한 조직체의 성격을 지닌 것이었다. 다른 한편 흔히들 '카우츠키주의'로 불리우기도 하는 제2인터내셔널 마르크스주의는 '혁명적 수사주의와 결부된 실천적 대기주의'의 성격과 더불어 정치적 민주주의 등을 절대시하는 경향을 지니고 있었다. 이로 인해 ('개혁의 누적을 통한 변혁'이라는) 실천적 개량주의와 의회주의를 공공연하게 주창한 '수정주의'가 대두하자 이 조류에 대해 이론적·실천적으로 무능력을 표시했다. 다른 한편 이들 정당들은 애초에는 대체로 '비제도적 투쟁정당'의 성격을 지니고 출범했었다. 이로 인해 사회주의운동의 합법화와 보통선거권의 확대가 있은 이후에 이루어진 '의회 진출'은 애초에는 사회변혁을 위한 전략이 아니라 전술의 차원에서 행해졌다. 그러나 의회진출에서 성공을 거둠과 더불어 이들 정당은 위에서 언급한 성격과 결부되면서 점차 의회진출과 선거를 통한 집권을 사회변력을 위한 거의 유일무이한 전략으로 격상시키기 시작했는데, 이는 사민주의정당의 개량주의화와 우경화를 촉진시키는 것이었다 이 과정은 동시에 노동자정당운동과 대중투쟁의 괴리를 촉진시켰다. 제2인터내셔널
운동은 독일사민당의 의회분파가 제1차대전의 발발과 더불어 전쟁 찬성의
입장을 취하게 된 것을 계기로 붕괴했다. 이와 더불어 유럽의 사민주의정당들은
제1차대전 이후에는 사민주의정당의 주류를 이룬 개량주의세력의 확고한
헤게모니 하에 놓이게 된다. 2-1-3
제3인터네셔널 시기의 노동운동: 노동자대중투쟁의 고양과 노동자정치세력의
'공산주의분파'와 '사민주의분파'로의 분화 제1차대전이 종결된 이후의 시기는 역사상 노동자대중의 체제에 대한 불만이 가장 고조되고, 노동자계급의 급진화가 가장 광범하게 이루어진 시기이다. 그런데 사민주의세력은 제1차대전 이후 혁명 저지에 앞장섬으로써 예를 들어 제1차대전 직후의 독일 혁명과정을 좌절시켰으며, 이를 통해 이들 사민주의세력은 자본주의체제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수행했다. 이와 더불어 사민주의세력은 제1차대전 이후 '의회주의적 길'을 통한 변혁의 입장을 보다 명백히 천명함으로써 더욱 우경화되어 갔다. 제1차대전이
종결된 이후 러시아혁명을 성공시킨 레닌은 유럽 및 세계혁명과정을
촉진시키기 위해 1919년 1월 개량주의에 반대하는 혁명적 사회주의세력을
집결시켜 제3인터내셔널을 창건했다. 이와 더불어 노동자정치운동의
'공산당분파'와 '사민주의분파'는 조직적·사상적으로 결별하게 된다.
제3인터내셔널 운동은 레닌이 사망한 이후 스탈린 지도하에 놓이게 되었는데,
스탈린 지도하에서 제3인터내셔널은 혁명적 노동자세력들 간의 민주적인
국제적 연대체라기보다는 소련 공산당의 의지를 대외적으로 관철시키는
기구의 성격을 더 많이 지니게 된다. 그리고 스탈린 지도 하에서 제3인터내서널은
초기에는 사민주의를 주적으로 간주하는 '사회파시즘론' 및 '계급 대
계급전술'이라는 극좌적 전술에 집착하다가 파시즘의 위협이 고조되는
정세 속에서 1935년 7~8월에 열린 제7차대회를 계기로 전면적인 '반파시즘인민전선전술'로
노선을 변경시켰다. 제2차대전 시 공산주의세력은 '반파시즘 인민전선운동'
내지 '반파시즘 민족해방운동'을 주도함으로써 전후에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
크게 약진하였으며, 동유럽에서는 소련군의 진주라는 유리한 조건 속에서
반파쇼반독점 인민민주주의혁명을 성취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서유럽이
미국의 헤게모니 하에 놓이게 되고, 냉전체제가 수립되면서 서유럽에서의
공산당 운동은 크게 위축되었는데, 이를 배경으로 사민주의세력이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서 노동자정치운동 내부에서 확고한 헤게모니를 장악할
수 있었다. 2-2
제2차대전 이후의 노동운동 2-2-1
사민주의 헤게모니 하의 노동운동 : 노동운동의 케인주의적 복지국가체제로의
통합 전후에 이르러 사민주의운동은 독일의 사민당 및 영국의 노동당 등으로 대표되는 사민주의 우파세력에 의해 주도되고 있었다. 그런데 독일사민당은 1959년의 이른바 '고데스베르크 대전환'을 통해 '생산관계의 사회화' 프로그램을 최종적으로 폐기하고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수용하는 속에서의 분배정의 구현을 추구하고, 케인즈주의 및 기민당의 '사회적 시장경제론'을 당노선으로 채택하기에 이른다. 이와는 달리 스웨덴 사민당 주류세력에 의해 대표되는 전후의 사민주의 좌파세력은 '생산관계의 사회화프로그램'을 견지했지만, 그것을 '의회주의적 길'과 '개량의 누적'을 통해 성취하려 하고 '자본에 대항하는 혁명'(Revolution against Capital)이 아니라 '자본과 함께 하는 혁명'(Revolution with Capital), 즉 '계급타협'에 기초한 개혁과 변혁을 추구한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 사민주의 좌파세력은 한번도 변혁을 진지하게 추구한 적이 없다는 점에서 실제적인 운동내용에서는 사민주의 우파세력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전후에는 부르주아정치세력들 역시 케인즈주의를 받아들이고 체제개혁에 찬성함으로써 사민주의세력과 그 노선 상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이를 바탕으로 부르주아정치세력과 사민주의세력은 전후에 이르러 (유례없는 고도성장의 지속과 포디즘적 생산체제의 확산에 힘입으면서) 완전고용의 달성, 상대적 고임금체계의 유지, 보편적 사회복지의 실시 및 코포라티즘적 계급타협체제의 유지 등에 의해 특징지워진 '케인즈주의적 사회복지국가체제'를 수립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케인즈주의적 사회복지국가체제가 정착한 이 시기를 자본주의 역사상 노동자계급의 체제로의 통합이 가장 광범하게 이루어진 시기로 규정할 수 있다.2) 그리고 이 시기에는 사민주의정당과 노조의 지도부는 '케인즈주의적 지배블록'의 한 지주가 되었다. 그런데 사민주의 좌파세력 중심의 '당내 좌파세력'은 '케인즈주의적 지배블록'을 보다 탄력적인 것으로 만드는 데에 기여하는 하위적 역할을 수행했다. 전후에
노동자정치운동의 공산주의분파의 운동은 최초에는 소련에 종속적인
운동을 전개하다가 이후 변화된 정세에 적응하고 소련에 대한 자주성을
추구하면서 '유로코뮤니즘'운동으로 전환되었다. 유로코뮤니즘은 의회에서의
활동과 대중투쟁의 결합을 추구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지만, 우파세력은
'의회에서의 활동'을 보다 중시하는 반면 좌파세력은 대중투쟁을 보다
중시한다. 그간 유로코뮤니즘을 주도한 세력은 우파세력이었는데, '유로코뮤니즘
우파노선'은 (의회주의적 실천만을 특화시키고 있는 사민주의의 그것과
일정하게 구분되고, 그 운동의 기원 및 추구하는 목표의 내용 등에서
사민주의와 차이를 지니지만) 그 실제적 측면에서는 '사민주의 좌파노선'과
크게 구분되지 않는다. 그러나 기존의 유로코뮤니즘 운동은 1980년대말에
유로코뮤니즘 운동을 주도한 '이탈리아공산당'이 '좌익민주당'으로 전신함으로써
일단락되었다. 2-2-1
신자유주의 헤게모니 하의 노동운동 제1국면:
신자유주의에의 굴복과 '신자유주의적 기업국가'의 등장 고도성장기에 지속된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는 1970년대 중반 이후 유럽자본주의를 그 전도를 예측하기 어려운 '장기적인 구조적 과잉축적의 위기'에 빠져들게 만드는데, 이를 계기로 케인즈주의적 사회복지국가에 대한 신자유주의자들의 공세가 치열해지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1979년 영국에서 대처정권이 들어섰다. 이를 계기로 유럽 전역은 신자유주의의 헤게모니 하에 놓이게 됐는데 ― '탁월한 부르주아적 그람쉬'로서의 대처 ―, 이 과정에서 계급타협적인 사민주의세력 및 노조지도부는, 80년대의 스웨덴 사민당 등을 제외한다면, 어느 나라에서나 신자유주의공세에 많든 적든 굴복하게 된다. 이를 통해 사민주의세력 (및 대중노조 지도부)는 여전히 지배블록의 일원으로 남아있게 되지만, 지배블록의 성격은 '케인즈주의적 지배블록'에서 '신자유주의적 지배블록'으로 변화하게 되고 국가의 성격은 '케인즈주의적 사회복지국가'에서 '신자유주의적 기업국가'로 변모했다. 그런데
장기적인 구조적 과잉축적의 위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행해진 사회질서의
신자유주의적 개편 ― 유연적 생산체제의 성립, 탈규제화, 자유화, 민영화,
개방화 등 ―은 대량실업을 유발하고, 임금노동자층을 핵심노동자층과
주변노동자층, 정규직 노동자층과 미정규직 노동자층으로 분열시키는
동시에 임금의 전반적인 하락과 임금지급의 차별화 등을 초래했다. 이러한
과정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다수 대중의 불만을 누적시키는 과정이기도
했다. 제2국면:
노동자대중투쟁의 재활성화와 '좌파정권'의 등장 199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노동자대중은 신자유주의의 공세에 계속 밀리는 형세에 있었다. 그러나 1995년 겨울에 일어난 프랑스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총파업투쟁을 계기로 각국에서 신자유주의 공세에 대항하는 밑으로부터의 노동자투쟁이 다시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이를 배경으로 1996년 영국에서 토니 블레어(Tony Blaire)정권이, 프랑스에서 조스팽(Jospin)내각이 수립된 데에 이어 올해 가을에 독일에서 슈뢰더(Schroeder)를 총리로 하는 사민당녹색당연립정권이 수립됨으로써 현시기 유럽은 명실상부하게 '좌파정권의 시대'로 진입하게 되었다. 이들 좌파정권의 노선은 크게 보면 신자유주의와 구래의 사민주의노선이 조화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한계 내에서 영국노동당의 노선을 '케인즈주의'로 대변된 '구노동당주의'로부터 '케인즈주의적 요소를 가미한 신자유주의'의 성격을 지닌 '신노동당주의'(New Labourism)로 변경시킨 토니 블레어노선이 가장 우파적인 입장을 대변한다면 조스팽노선은 가장 좌파적인 성향을 내보이고 있다. 이들
좌파정권은 대체로 '개혁적 자본주의의 첨병'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보다 합리적이고 대중통합적인 체제로 만드는 데에 기여하고
있으며, 노동자계급의 새로운 대안적인 헤게모니세력으로의 성장·발전을
방해하는 질곡으로 기능하고 있다. 3. 진보운동의 새로운 대안적 움직임들 사민당이 우파 헤게모니 하에 있는 조건 속에서 사민당 중심의 기존의 좌파운동 및 사민당우파와 공생관계를 유지한 당 내부의 구좌파세력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신좌파운동'이 그간 당의 내부와 외부에서 다양하게 나타났다. 이러한 운동은 예를 들어 영국에서 토니 벤(Tony Benn), 켄 리빙스톤(Ken Livingstone) 등이 중심이 된 당내 민주화 운동, 페비언협회에 대항하는 '사회주의자협회'(Socialist Society)의 결성, '헌장88운동'의 전개, 1996년 Arthur Scagill이 중심이 된 '사회주의노동당'(Socialist Labour Party)의 결성 등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러한 제반 운동들은, '기존정당 혁신론'이 대세를 이룬 과거와는 달리, 오늘날에는 대체로 '새로운 대안적인 좌파정당의 건설을 통한 기존 사민당의 대체'를 지향하는 경향성을 보이고 있다. 이 운동은 오늘날 유럽 전역에서 대체로 '(좌파정당) 재창설(Refoundation)운동'의 형태로 전개되고 있는데, 이 '재창설운동'은 유로코뮤니즘의 좌파와 신좌파적 성향의 제그룹들, 만델경향의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연합하여 사민주의정당 왼쪽에서 대중정치와 의회정치의 유기적 결합을 추구하는 새로운 변혁정당을 건설하고 있는 흐름을 가리키는 것이다. 스페인의 '좌파연합', 이탈리아의 '공산주의재건당', 덴마크의 '사회주의 민중당', 노르웨이의 '좌파 사회주의당' 스웨덴의 '좌파당', 네덜란드의 '녹색 좌파', 핀란드의 '좌파연합' 등이 이 흐름의 정당들에 속한다. 이러한
'재구성운동'은 오늘날 노동자대중투쟁이 다시 활성화되면서 새로운
추동력을 획득하고 있다. 그러나 기존의 사민당 및 제도 좌파세력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움직임은 매우 다양한 형태의 '비제도적 좌파운동'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좌파정당의 재창설운동 등이 기존의 제도좌파정당을
대체하고 노동자계급을 대안적인 헤게모니세력으로 등장시키는 데에
기여하려면, 이론전선의 재정비, 정파적·그룹적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연합의 달성 및 노동자대중투쟁과의 재결합 등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서는
넘어야 할 과제들이 수없이 남아 있다. 4.
유럽 진보운동의 전개과정으로부터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것인가 노동운동을
중심으로 전개된 유럽 진보운동의 그간의 과정으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교훈으로 배울 수 있는가를 현시기 한국 진보운동의 문제점과 관련시켜
파악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는 이를 질문형태로 제기해 보려고 한다.
1. 제2차대전 이후 유럽사회의 지배블록은 애초에 부르주아세력과 사민주의세력들이 주축을 이루는 '케인즈주의적 지배블록'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가 오늘날에는 부르주아세력과 사민주의세력이 주축을 이루는 '신자유주의적 지배블록'으로 변모했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권력블록은 어떤 성격을 지니고 있고 어떤 세력들을 주축으로 하여 구성되어 있는가?: 김영삼정권의
성립과 김대중정권의 등장 및 기존의 '민주 대 반민주' 대립구도의 해소와
더불어 한국의 지배블록은 수구보수세력과 개혁적 자유부르주아세력들이
중심이 되는 신자유주의적 지배블록의 성격을 기본적으로 지니게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유럽에서 현시기 사민주의세력이 신자유주의적 지배블록의
일원이듯이, 이른바 개혁적 자유부르주아세력이 우리 사회에서는 오늘날
신자유주의적 지배블록의 일원임을 우리는 명백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수구보수세력과 개혁적 자유부르주아세력 간의 갈등이 만들어내는
'틈새'를 활용하는 것은 진보운동의 발전과 관련하여 중요성을 지니지만,
이 틈새의 활용을 지배블록 대 노동자·민중간의 대립보다 중요시할
경우 진보운동은 개혁적 자유부르주아세력의 헤게모니 하에 놓이지 않을
수 없다. 2. 유럽 노동운동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전투적 조합주의운동은 왜 극복되어야 하는가?: 이 노선은
한편으로는 정치를 개량주의세력에게 맡김으로써 노동자정당과 노조
지도부의 우경화를 초래하는 효과를 산출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최종적으로
노동운동을 이익집단 수준의 운동 내지 경제적 조합주의 수준의 운동으로
전락시키는 효과를 산출한다. 3. 유럽에서 사민주의정당은 대중투쟁과의 결합을 우선시하는 '비제도적 투쟁정당'으로 출발했지만 '의회주의정당'으로 변모했는데, 이러한 변화는 사민주의정당의 우경화·개량화를 가져온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앞으로 한국에서 건설될 새로운 진보정당은 '기본적으로' 비제도적 투쟁정당이어야 하는가, 아니면 의회주의정당이어야 하는가?: 진보정당은 대중투쟁과의 결합과 의회진출을 동시적으로 추구해야 하지만, 두 요소 중 어느 것을 중시하느냐에 따라 '비제도적 투쟁정당'의 역할을 수행하거나, 아니면 '의회주의 정당'으로 활동하게 된다. 그리고 의회주의정당은 필연적으로 개량주의화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한국에서 진보정당의 논의가 처음부터 '의회주의정당'의 건설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는데, 이는 실로 우려할 만한 사태 전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4. 유럽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노조간부 중심의 노동자정당 건설운동은 과연 바람직한가?: 노조의
일차적인 임무는 노동자대중의 사회경제적 권익을 신장시키는 데에 있지만,
정당은 기본적으로 사회변혁의 달성이라는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과제의
성취를 자신의 일상적인 의무로 삼는다. 그런데 정당이 노조간부 중심이
되면 정당의 활동을 노조의 일상적인 사회경제적 과제 해결에 종속시킬
가능성을 증대시키는데, 이는 정당을 개량주의정당으로 전락시킬 가능성을
높인다. 노동자정당은 노조간부가 아니라, (노조간부도 포함되지만 노조간부와는
상대적으로 구분되는) 노동운동 내부의 '선진노동자들'이 중심이 되는
조직이 되어야 한다. 5. 민주노총 제1기 지도부가 제창한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론'은 현 시기 한국 노동운동의 총노선이 될 수 있는가?: '국민'이라는
표현은 자본가들도 포함시키는 개념이기 때문에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론'이라는
용어는 다수대중을 권력블록에 대항하는 새로운 역사적 블록으로 결집시키고
이를 통해 노동자계급을 대안적인 헤게모니계급으로 상승시키는 과정을
표현함에 부적절하다. 더욱이 민주노총 제1기의 지도부가 제창한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론'은 보수언론으로부터의 지지나 양해, 시민운동과의
연대 등을 추구한 우경적 운동노선의 성격을 지닌 것이었다. 노동자계급의
새로운 대안적 헤게모니계급으로의 상승을 표현하려면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이 아니라, 오히려 '일하는 다수대중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
또는 '민중승리에 앞장서는 노동운동' 등이 적절하다고 하겠다. 6. 국민승리21을 중심으로 한 진보정당 건설운동이 과연 한국 노동자정치운동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다고 보는가?: 이 문제는
앞으로 한국에서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 문제와 관련하여 핵심적인 문제로
떠오를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 옳게 답하려면, 무엇보다 (국민승리21이
민주노총 제1기의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의 정치방침에 입각하여
결성된 조직인 만큼) 민주노총 제1기의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에
대해, 그리고 15대 대선 시에 행한 국민승리21의 운동에 대해 대중적이고
공개적인 평가가 있어야 할 것이다. 국민승리21이 그간의 활동 상에서
범한 과오를 공개적으로 반성하지 않는 한 국민승리21 중심의 진보정당
건설은 중대한 문제를 일으킬 것임에 틀림없다. 7. 새로운 진보정당의 조직형태는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정당의
조직형태는 정당이 기본적으로 투쟁정당의 성격을 지니는가, 아니면
의회주의정당의 성격을 지니는가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투쟁과의 결합을 우선적 과제로 삼을 경우 투쟁이 일어나는 현장에서의
활동을 위한 현장분회가 조직의 가장 중요한 기본단위가 되어야 할 것이다.
------------<미 주> * 이 글은 98년 11월 24일 민주노총 정치위원회 주관 '제2기 노동자 정치학교'에서 강의한 것을 수정·보완한 것임 1) 이와 관련하여 영국의 노동당 및 노조운동의 이데올로기적 센터 역할을 수행한 '페비언협회'는 오늘날에도 영국 노동당의 주류인 우파세력의 이론적 센터로서 기능하고 있다. '제3의 길'을 제창하고 있는 토니 블레어의 '신노동당주의'노선의 이론적 대부인 안소니 기든스 역시 페비언협회의 회원이다. 2) 1968년 프랑스 노동자들의 총파업투쟁은 전후 최대의 대규모적이고 변혁적 성격을 지닌 투쟁으로 발전했지만, 케인즈주의적 사회복지국가체제의 더한층의 완벽화와 노동자계급의 체제로의 재통합을 가져오는 데에 기여하는 가운데 종결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