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마당/『현장에서 미래를』39(1998/12) 남아공 노동자 계급운동에 대한 '인식의 대전환'을 요구하며 김 영 수(연구위원) 한국에서 남아공 노동자 계급운동에 관한 관심이 심화된 것은 한국의 '노사정위원회 참여문제 및 민주노조운동의 혁신'과 관련한 실천적 문제의식에서 시작되었다. 많은 연구자들과 활동가들이 한국의 '노사정위원회'에 대해 다양한 평가를 내리고 있는 데, 일반적으로 두가지 수준으로 정리될 수 있다. 그 차이는 주요 쟁점인 김대중 정권에 대한 인식의 차별성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는데, 하나는 김대중 정권이 기존 정권들에 비해 성격상 차이가 있다는 전제하에 노사정위원회를 민주적인 제도개혁의 차원에서 평가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김대중정권이 기존 정권과의 차별성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노사정위원회를 신코포라티즘의 강화를 통한 새로운 노동통제방식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김대중 정권의 성격과 '노사정위원회'를 통한 신코포라티즘적인 사회적 합의주의가 주요 논쟁으로 자리매김되면서, 많은 연구자들과 활동가들은 그러한 논의에 대한 논리적 근거들을 남아공 노동자 계급운동의 현실에서 찾고자 하였고, 한국 노동운동의 지도자들도 남아공의 노동운동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관심을 사회화시키는 과정에서 김유선(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과 박성인(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사무처장)간에 '사회적 코포라티즘'을 둘러싼 논쟁이 민주노총의 신문 {노동과 세계}를 통해 전개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남아공 노동자 계급운동의 '계급투쟁의 현실과 미래를 바라보는 인식의 차별성' 및 한국 노동자 계급운동의 '계급투쟁의 현실과 미래를 바라보는 인식의 차별성'이 드러났고, 남아공 노동운동의 경험과 본질을 왜곡시킨 상태에서 한국의 노동운동에 직접적으로 이식하려는 경향성, 즉 인식대상에 대한 '기계주의적 인식, 과잉 결정주의적 인식, 새로운 식민주의적 도구주의 인식'에 경도된 상태에서 남아공의 노동자 계급운동을 분석하고 있는 글이 제출되었다. 그 대표적인 글이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윤효원 교육위원이 {노동사회}(1998년 11월 호)에 본인의 글을 비판한 [COSATU의 '사회적 조합주의'에 대한 왜곡된 해석을 비판한다](이하 [비판])이다. 윤효원은
본인의 두가지 글을 비판적으로 평가해주었다. 그 비판적 평가에 대한
시시비비를 떠나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지만, 윤효원의 '각색능력의
뛰어남과 인식의 대전환'을 재론하지 않을 수 없어서 다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본인은 윤효원의 논쟁적 글에 대해 직접적으로 대응하는 수준에서
이 글을 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본인은 단지 이 비판을 통해 윤효원에게
남아공의 노동운동을 보다 과학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는
차원으로 이 글을 쓰고 있을 뿐이다. 1.
'왜 남아공 노동자 계급운동인가'에 대한 인식?
서구 선진 자본주의 국가는 1990년대 초·중반 이후, 1980년대 초반부터 도입하기 시작했던 신자유주의 정책의 위기현상에 직면하게 되었고, 서구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노동자계급은 '노동자들을 희생양으로 복지국가정책의 위기를 돌파하려는 자본가 계급'에게 저항하기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노동자 계급은 1980년대 중반 이후 새롭게 성장하기 시작한 제3세계 자본주의 국가의 노동자 계급운동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서구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노동자 계급은 제3세계 자본주의 국가, 특히 한국·남아공·브라질 노동자 계급의 "전투적 투쟁성, 조직화 역량, 연대성, 반(反)정부적이고 반(反)체제적인 이념성"1)등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며, 자신들의 노동자 계급운동의 역사성을 복원시켜 나가고 있는 것이다. 1995년 이후 폭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유럽 노동자 계급의 전투적 연대투쟁이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제3세계 자본주의 국가의 노동자계급이 1980년대 중반 이전에 서구 노동자 계급운동으로부터 '그들의 경험과 교훈'을 배웠다면 그 이후에는 정반대의 현상이 발생하곤 하였다. 또한 제3세계 자본주의 국가의 노동자 계급은 노동자 계급운동의 상호 발전을 도모하기 위하여 각국의 '특수성에서 기인하는 일반성'들을 상호 교류하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한 상호 교류의 중심에 서 있는 국가들이 바로 한국·남아공·브라질이다. 이들 국가의 노동자 계급운동 주체들은 각 국가 노동자 계급운동의 특수성과 일반성을 상호 교류하면서,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전지구적 착취구조에 대한 국제적 연대구조의 구축 및 21세기를 맞이하는 세계 노동자 계급운동의 구체적인 전략과 과제들을 상호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남아공의 노동자 계급은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노동자 계급운동의 역사적인 한계점들을 뛰어 넘으려고 노력하면서 자본가 계급에 대한 선도적인 계급투쟁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역사적으로 남아공의 백인국가는 아파테이트 정책과 총체적인 탄압정책으로 흑인 노동자 계급의 계급형성을 억제해 왔다. 그러나 남아공의 흑인 노동자 계급은 1985년 백인국가의 총칼에 대항하면서 COSATU를 창설하고, COSATU를 중심으로 한 흑인 노동자 계급은 '2단계 혁명론'에 입각하여 아파테이트 백인국가의 몰락을 재촉하고 있다. 흑인 노동자 계급은 백인국가와의 투쟁에서 서구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노동자 계급이 관심을 보였던 노동자 계급운동의 "전투적 투쟁성, 조직화 역량, 연대성, 반(反)정부적이고 반(反)체제적인 이념성" 등을 실질적으로 체현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21세기를 맞이하는 남아공 노동자 계급운동의 전략적 과제를 '사회주의 체제'의 건설로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300여년 동안 지속되어 왔던 아파테이트 체제하에서 전개되었던 이러한 투쟁의 성과로 등장한 정권이 바로 ANC정권이다. 비록 ANC정권은 '국민당·잉카타자유당·공산당 등의 정당과 COSATU·NACTU 등의 노동조합조직의 공동참여에 기반하는 국민통일정권'이지만, ANC정권의 실질적인 토대는 ANC·공산당·COSATU간에 형성되어 있는 '3자동맹'이고, '3자동맹' 내부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조직주체는 바로 COSATU이다. 그래서 ANC는 공산당과 COSATU의 전략·전술적 과제, 즉 'NDR의 성공적 수행과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이라는 전략적 과제들을 반영하고 있으며, '반(反)자본주의 체제, 반(反)사회주의 체제'2)를 지향하는 정권으로서의 성격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또한 이를 반증하고 있는 대표적인 제도적 장치는 Nedlac3)이다. 그런데 윤효원은 [비판]에서 Nedlac을 '사회적 코포라티즘'이라고 규정하면서 본인의 글을 비판하고 있는데, 이는 제도화 자체라는 현상만을 '스폰지'적인 학문적 분석의 태도로 인식하면서, 보다 과학적인 분석능력으로 Nedlac을 바라보지 못하는 결과이다. 윤효원은 Nedlac의 구체적인 기능과 역할, Nedlac에서의 남아공 노동자 계급의 헤게모니, 그리고 남아공에서 Nedlac의 정치·사회적 영향력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Nedlac은 분명히 남아공의 사회적 합의기구이다. 그렇지만 Nedlac은 사회적 합의기구가 어떻게 구성되고 운영되어야 하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즉 노동자 계급의 헤게모니가 구체적으로 관철되는 주·객관적 조건을 구비한 상태에서 운영되는 '사회적 합의기구'의 새로운 전형을 Nedlac이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Nedlac은 서구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존재해 왔던 '본질적으로 체제강화적인 합의기구, 체제의 강화를 지향하는 체제개혁적인 합의기구'의 전철을 극복해 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러한 기구의 형식적 존재 자체만을 인식하면서 Nedlac을 '사회적 코포라티즘'4)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남아공 노동자 계급운동에 대해 일천한 인식의 수준을 드러내는 것에 불과하고, 노동자 계급의 헤게모니하에서 운영되고 있는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합의주의'를 이야기하고 있는 본인의 글을 오독한 것에 불과하다. 한국
노동자 계급운동이 남아공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이유도 바로 남아공
노동자 계급의 '노동자 계급의 헤게모니 강화역량 및 구조, 백인정권의
노동통제정책에 대한 전투적 투쟁, 50% 이상에 달하는 조직적 주체역량,
정치적 변혁운동 세력과의 지속적인 동맹관계, 반(反)체제적인 노동자
계급운동의 이념적 지향성' 등을 남아공 계급투쟁의 현실에서 보다 과학적으로
인식하고, 그것을 토대로 한국 노동자 계급운동의 발전적인 혁신방안들을
구축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특히 한국 노사정위원회와 관련시켜서
본다면, 남아공의 사회적 합의기구인 Nedlac의 구체적인 운영구조 및
기능, 그리고 Nedlac내에서의 노동자 계급의 헤게모니의 정도를 파악하고자
했던 것이 아닌가? 2.
'남아공의 현실은 어떠한가'에 대한 인식?
어떠한 국가이든지 그 국가의 노동자 계급운동의 현실은 분명히 과거의 역사와 미래의 과제를 반영하는 치열한 계급투쟁의 장이다. 과거의 계급투쟁과 단절되는 현실의 계급투쟁은 존재하지도 않고, 미래의 전략적 과제와 단절되는 현실의 계급투쟁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남아공의 노동자계급의 현실적 계급투쟁은 과거의 치열했던 전투적 계급투쟁을 구체적으로 반영하고 있으며, 미래의 전략적 과제와 긴밀하게 연계된 상태에서 현실의 계급투쟁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남아공 노동자계급의 전투적인 계급투쟁의 역사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면, 윤효원처럼 남아공 노동자 계급운동을 '과거와 단절되는 현실만으로, 미래의 과제와 단절되는 현실만으로' 인식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을 것이다. 윤효원은 녓템버위원회의 보고서에 '구조변혁적 노동조합주의'라는 말이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근거를 내세우면서 본인의 '남아공의 구조변혁적 노동조합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녓템버위원회의 보고서에는 '구조변혁적 노동조합주의'라는 단어가 공식적으로 사용되지 않고 있다는 윤효원의 지적은 분명히 옳다. 그렇지만 윤효원에게 다시 묻고 싶다. '녓템버위원회'의 보고서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단어나 어구, 그리고 개념어들은 사용될 수 없다는 말인가? 연구자들이 분석대상을 설정하고, 그 분석대상에서 도출되는 보다 과학적인 개념을 쓸 수 없고, 서구 국가에서 사용되었던 단어나 개념만을 사용해야 한다는 말인가? 새로운 개념으로 다시 새로운 분석대상을 설정할 수 없다는 말인가? 윤효원이 만약 연구자라면, 혹시라도 연구자로서 과학적인 분석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혹은 분석대상을 과학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을 도출할 수 없는 것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윤효원이 '사회적 노동조합주의'라는 개념을 주장하고 싶다면, 사전적 정의 혹은 녓템버위원회의 보고서에 쓰여 있다는 단순한 논리적 근거를 제출할 것이 아니라, 남아공 노동자계급의 '계급투쟁의 역사, 계급투쟁의 현실, 계급투쟁의 미래'를 제대로 인식한 상태에서 그 개념의 논리적 근거를 보다 과학적으로 제출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남아공 노동자 계급운동의 '이념'은 COSATU의 특별위원회인 녓템버위원회의 보고서 내용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1997년 9월의 제6차 전국총회 결의사항과 1998년 6월의 COSATU 중앙위원회의 결의사항 등 남아공 노동자계급의 계급투쟁의 역사와 현실, 그리고 그것에 기반하는 미래의 전략적 지향점을 총체적으로 반영하는 수준에서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COSATU 중앙위원회는 1998년 하반기 활동의 주안점을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에 필요한 구체적인 사업의 전개'에 두었다. 3년에 한번씩 개최되는 COSATU 전국총회가 COSATU의 최종적인 의결기구이고, COSATU 중앙위원회는 노동조합의 지도력과 집행력을 담보하면서 계급투쟁을 주도해 나가는 실질적인 주체이다. 그런데 1998년 6월 COSATU 중앙위원회는 1997년 9월 전국총회의 결의내용을 실질적으로 집행하기 위한 제반 구체적인 사항들을 결의하였다. 이 중앙위원회에서 결의한 주요 내용은 '민주주의적 과제와 사회주의로의 이행과제'를 구체적으로 노동현장에서 어떻게 실현시켜 나갈 것인가를 결정했던 아주 중요한 것들이었다.5) 한 위원회의 보고서 내용만으로 남아공 전체 노동자계급의 현실과 미래를 총체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처럼 분석하는 태도, 즉 '과잉 결정주의적이고 도구주의적인 인식론'으로는 결코 남아공 노동자 계급운동의 현실과 미래를 과학적으로 분석할 수 없을 것이다. 한 발 양보해서 '과잉 결정주의적이고 도구주의적'인 인식론을 부분적으로 인정한다 하더라도, 녓템버위원회의 보고내용은 사회주의를 과연 선언적으로 주장하고 있는가? 분명히 녓템버위원회의 보고서는 계급현실에서 요구되는 현실적인 민주주의적 과제와 미래의 사회주의 사회 건설과제를 동시에 담고 있다. 특히 이 보고서의 정치적 동맹파트에서 남아공의 '민주주의적 과제와 사회주의적 과제'를 동시에 달성해 나가기 위한 남아공 노동자 계급의 계급투쟁의 과제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보고서를 완벽하게 번역하여 출간6)한다면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COSATU의 구체적인 투쟁과제'들이 규명될 것이고, 특히 보고서의 '정치적 동맹파트'를 제대로 인식하고 완벽하게 번역한다면, 윤효원에게 '인식의 대전환'을 요구하는 본인의 논리적 근거가 제출될 것이다. 그렇지만 녓템버위원회의 보고서가 남아공 노동자 계급운동의 현실에 기반하는 미래의 전략적 과제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을지라도, 이 위원회의 보고서만을 중심으로 남아공 노동자 계급운동의 현실과 미래를 인식한다면, 그것은 단순하면서도 기계론적인 분석의 오류를 범하게 될 것이다. 남아공 노동자 계급운동의 실질적인 담지체는 바로 노동자 계급운동의 계급주체와 실질적인 계급투쟁이다. 남아공 노동자 계급이 현실적 조건들을 지양하기 위한 제반 계급투쟁을 보다 올바르게 인식해야만 한다. 이러한 인식의 태도는 김대중 정권의 성격을 간접적으로 규정하는 데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분명히 윤효원은 [비판]에서 "김대중 정권과 ANC정권과의 차별성을 인정하면서, 김대중 정권과 한국의 군부 파시즘정권과의 차별성"7)을 강조하였다. 본인은 윤효원이 정권간의 차별성을 어떠한 준거8)들로부터 도출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지만, 두가지 점에서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첫째로는 남아공의 노동자 계급운동을 제대로 인식하고자 한다면, 최소한 ANC정권의 실질적인 토대와 지향성을 인지한 상태에서 자신의 논리적 근거들을 제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효원은 연구자로서 "ANC 대의원대회"에서 공식적으로 선포된 ANC정권의 성격, 즉 "반(反)자본주의적이고 동시에 반(反)사회주의적"인 성격의 구체적인 동학과 ANC정권의 실질적인 토대라 할 수 있는 COSATU·남아공 공산당·ANC간의 동맹관계에 대해 다시 고민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연구자로서의 분석능력과 인식능력을 제고시켜 나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둘째로는 기존 군부 파시즘 정권과 김대중 정권과의 차별성을 거론하고자 한다면, 김대중 정권하에서의 '한국 노사정위원회 및 노동자 계급운동'을 구체적으로 평가하는 과정에서 독자적으로 재론되어야만 할 것이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연구자로서 남아공 노동자 계급운동의 제반 현실을 무원칙적으로 왜곡시킨 상태에서 한국 노동자 계급운동에 이식시키려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들을 분명하게 제기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김대중 정권에 대한 인식의 차별성, 즉 개별적인 정치의식의 정도와 정치적 견해를 무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수준에서 전체 노동자 계급의 수준을 재단하고, 정파주의적인 분열을 가속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다. 본인은 인식대상을 설정하고 인식의 내용을 주체적인 의지로 표출시키는 과정에서 '새로운 식민주의적 도구주의'에 경도되는 것을 경계해야만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외국의 음식을 예로 들면, 즉 '어떤 외국음식을 놓고서 음식을 만드는 사람, 음식에 들어가는 재료,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 음식의 맛 등을 총체적으로 규명하지 않은 채, 자기 입맛에 맞는 음식만을 최고라고 칭찬하면서 그 음식만을 그 나라의 최고음식이라고 소개하는 경향성'을 비판적으로 경계하고자 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본인은 윤효원이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를 정파주의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을 해소할 수 없다. 윤효원은 [비판]에서 "녓템버위원회의 보고서가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것이지, 사회주의는 선언 이상의 내용을 담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NDR은 사회주의운동으로 성장·전화시킨다는 선언이 아니라 NDR을 진전시키는 구체적인 방법과 NDR과 사회주의와의 관계, 또는 사회주의 사회의 구체적인 모습은 무엇인가라는 것이었다."고 주장하였다. 본인은 윤효원에게 민주주의와 남아공의 NDR을 사회주의와 연계시키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남아공의 노동자계급이 남아공의 '민주주의적인 정책과제들을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이라는 전략적 과제'와 통일적으로 연계시켜 제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를 기계적으로 분리하여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 즉 1980년대 중반 이후 2단계 혁명노선을 지속적으로 추구해 왔던 남아공 변혁운동 진영의 'NDR과 사회주의 혁명운동'을 기계적으로 분리하여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아직까지도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것이 민주주의를 방기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학문적으로 분석하는 과정에서 분석대상에 대한 '추상수준'의 기본적인 범주조차 혼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만약 그렇다면, 윤효원은 '경험주의적이고 기계주의적인 인식론'을 수정해야만 할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비판]의 글 마지막 부분에서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다. 윤효원이 본인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함축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길게 인용해 본다. "우리는 우리 자신들의 실천과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상상력이라는 망원경과 분석력이라는 현미경'을 통해 그들의 경험으로부터 우리의 운동의 발전과 혁신을 위한 많은 것들을 뽑아내고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노동운동의 역사는 실현 가능한 대안과 구체적인 실천프로그램을 제시하지 않고 혁명적인 공문구를 남발한 세력들이 성공한 사례는 없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9) 연구자로서
혹은 활동가로서의 "상상력과 분석력"은 분명히 우리 자신들의
실천과 경험에서 도출되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외국 노동자계급의 실천과 경험을 우리 자신의 실천과 경험 혹은 우리
자신의 입맛대로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국가의 특수성을 보다 과학적으로
인식한 상태에서 노동자 계급운동의 일반성을 도출해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단지 우리 것보다 나은 외국의 사례만을 선택해서, 그
사례의 단순한 편린들을 각색하고 미화시켜 소개하는 연출가적인 학문의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윤효원은 "실현가능한 대안과 구체적인
실천프로그램을 제시하지 않고 혁명적인 공문구만을 남발"하는
것을 비판하고 있는데, 이러한 인식의 태도 역시 현실의 문제에만 집착하는
경향성에서 도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노동자 계급운동은 계급투쟁의
역사, 계급투쟁의 현실, 그리고 계급투쟁의 미래를 총체적으로 반영·지향하면서
성장하기도 하고 퇴행하기도 한다. 계급투쟁의 미래를 강조하는 것이
계급투쟁의 현실을 방기한 채 노동자 계급운동을 퇴행시킨다는 말인가?
오히려 '계급현실'에만 집착했던 노동자 계급운동이 역으로 '계급투쟁의
현실'을 방기했고, 노동자 계급운동을 퇴행시켰던 역사적 사례들이 무수히
존재한다. '노동자계급의 계급투쟁의 현실에 기반하는 계급투쟁의 미래'를
혁명적 공문구만으로 간주하는 태도는 자본주의 국가의 노동자계급의
계급투쟁의 과거를 반영하고 있는 '계급투쟁의 현실과 미래'를 기계주의적이고
도구주의적으로 각각 분리시켜 인식하는 것에 불과하다. 3.
'인식의 대전환'을 위해? 남아공 노동자계급은 '아파테이트 체제하에서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던 2단계 혁명론에 걸맞는 투쟁, 즉 이 혁명론을 완수하기 위해 변혁적인 정치운동 세력과의 지속적인 연대관계의 구축·계급투쟁의 현실적 과제와 체제지양적 과제의 통일·사회 제반 영역에서의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 강화' 등의 계급투쟁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그런데 '기계주의, 과잉 결정주의, 새로운 식민주의적 도구주의'의 인식으로는 이러한 계급투쟁의 현실을 올바르게 분석할 수 없을 것이다. 남아공 노동자계급은 아직까지도 자신들의 권력을 보다 완전하게 쟁취하기 위한 계급투쟁의 과정에 서 있다. 그들의 계급투쟁 '과정의 산물'이 노동자 권력의 수립이라는 성과를 가져올 수도 있고, 혹은 어떠한 성과조차 얻을 수 없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계급투쟁이 '결과' 혹은 '현실'만으로 평가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결과' 혹은 '현실'에만 집착하는 노동자 계급운동은 '승리하는 패배투쟁', 즉 전체 노동자계급이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일부 혹은 일부 노동자들의 이해를 대변하고자 하는 정치활동가들의 기회주의적 승리만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남아공 노동자계급은 노동자계급의 최종적인 승리를 위해 '패배하는 승리투쟁', 즉 노동자 계급의 '퇴행과 성장'의 연속이라는 '누적 나선형적' 발전을 지향하는 계급투쟁을 전개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계급투쟁의 현실은 계급투쟁의 과거와 미래에 조응하는 수준에서 존재할 것이고, 계급투쟁의 미래는 그러한 현실의 동력을 토대로 새로운 계급투쟁의 현실을 창조할 것이다. 한국의
노동자 계급도 민주노조운동의 혁신이라는 과제 및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전략에 대한 대응과제 등을 짊어진 채, 결코 쉽지 않은 계급투쟁의 과정을
겪고 있다. 이러한 과정은 계급투쟁의 현실적 과제에 '민주노총이 건설되기
이전의 민주노조운동의 투쟁의 역사를 반영해야만 하고, 21세기를 맞이하는
한국 민주노조운동의 새로운 전략적 투쟁과제를 반영'해야만 하는 계급투쟁의
총체적인 과제들이다. 계급투쟁의 현실에서 발생되는 제반 문제들을
현실의 시급한 문제에만 집착하여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노동자계급의
과거와 미래를 총체적으로 반영하는 상태에서 인식해야만 할 것이다.
현실의 시급한 문제에만 집착할 경우, 한국 노동자 계급운동 내부에는
'기회주의·이기주의·분파주의'만이 난무할 것이다. 노동자계급의 계급적
통일성을 계급투쟁의 역량으로 지향해 나가고 있는 남아공 노동자 계급운동은
우리들에게 계급투쟁의 현실에 대한 인식의 대전환, 즉 정파주의적인
인식을 당파주의적인 인식으로, 개별·고립주의적인 인식을 계급통일적인
인식으로 대전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미 주> 1) Kim Moody, Workers in a Laen World, London : Verso, 1997년을 참조. 2) COSATU와 남아공 공산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ANC정권은 GEAR전략을 채택하였는데, 이 전략은 두 가지 차원으로 평가될 수 있다. 첫째로는 백인자본 및 외국자본의 철수로 발생할 수 있는 남아공 경제구조의 즉각적인 붕괴현상을 방지하고, 남아공의 생산력을 강화시키는 차원의 경제전략이다. 비록 신자유주의 경제전략이지만, 백인 경제구조에 대한 ANC 정치권력의 개입구조를 강화시킬 수 있다. 둘째로는 ANC정권의 친(親)자본주의적인 성격을 드러내는 전략이기 때문에, ANC정권 및 GEAR전략과의 직접적인 투쟁으로 반(反)자본주의적인 투쟁전선과 정치역량을 강화시켜 낼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COSATU와 남아공 공산당은 1999년 총선에서도 ANC와 정치적 동맹관계를 유지하기로 결정하였는데, 이는 'COSATU와 남아공 공산당은 GEAR전략, 즉 300여년 동안 지속되고 있는 인종차별주의적인 경제권력에 대해 지속적으로 투쟁을 전개하면서 흑인 노동자·민중들의 현실적인 생활상의 문제점들을 해결해 나감과 동시에 경제적 하부구조에 대한 흑인 노동자 계급의 헤게모니를 강화시켜 내고, NDR의 투쟁주체로 상정한 ANC 정권(3자동맹의 주체들이 공유)과의 지속적인 동맹관계를 토대로 사회주의 혁명의 토대를 강화시켜 나아가고자'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3) 보다 구체적인 Nedlac의 내용에 대해서는 졸고, [남아공 노동운동의 사회적 합의주의 -구조변혁적 투쟁전술로서의 국가경제개발과 노동위원회-],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현장에서 미래를}, 1998년 10월호를 참조. 4) 이러한 인식에 기초해서 본다면, 한국의 노사정위원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주장하고 있는 연구자들과 활동가들은 자신들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조합주의자라는 불명예(?)를 뒤집어써야만 한다. 즉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가 관철되고 있는 남아공의 Nedlac과는 본질적으로 차별성을 내포하고 있지만, 한국의 노사정위원회는 '국가 코포라티즘'의 성격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5) 보다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졸고, [남아공의 구조변혁적 노동조합주의],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현장에서 미래를}, 1998년 8월 호를 참조. 6) 녓템버위원회의 보고서 내용이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완벽하게 번역해서 소개될 수 있다는 사실에 먼저 반가움을 표시하고자 한다. 그렇지만 가능하다면 1997년 9월 COSATU의 제6차 전국총회에 보고된 이 보고서의 내용뿐만이 아니라 '전국총회의 결의내용 전체, 1998년 6월 COSATU 중앙위원회 결의내용 전체'까지 완벽하게 번역해서 소개되어야만이, 녓템버위원회의 보고서에 대한 객관적 인식을 보다 강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본인도 남아공 변혁운동과 노동운동에 대한 편역서를 마무리하고 있다. 본인의 편역서가 출간되면, 남아공 노동자 계급운동에 대한 보다 객관적이고 총체적인 인식에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 7) 윤효원, [COSATU의 '사회적 조합주의'에 대한 왜곡된 해석을 비판한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노동사회}, 1998년 11월 호, 74쪽. 8) 본인의 글은 정권의 성격에 대한 문제를 논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권의 성격을 규정할 수 있는 준거들을 제시하지 않겠다. 또한 윤효원에게도 그러한 준거들을 제시하기를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9) 윤효원, 앞의 글, 73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