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현장에서 미래를』39(1998/12)


이 자료는 최근 이창복 씨의 거취문제가 일으킨 파문에 대한 민주노총의 성명서이다. 이창복 씨는 11월 28일 국본 전체대표자회의에서 소명기회를 부여받았고, 그 결과 상임대표 사임, 공동대표 자격박탈이 공식적으로 확정되었다. 현재 이창복 씨는 민주개혁국민연합에 공동의장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창복 의장의 국본 이탈에 대한 민주노총의 입장


1998년 11월 27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1. 최근까지 55개 노동·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는 고용·실업대책과 재벌개혁 및 IMF대응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의 상임대표였던 이창복 의장이 민주노총, 국본과의 약속을 어기고 신의를 저버린 채, 아무런 상의도 없이 자신의 거취를 옮겨 (가칭)민주개혁국민연합 대표를 맡음으로써 전선운동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민주노총의 권위와 명예를 심각하게 실추시켰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11월 23일 국본 전체대표자회의에서는 이창복 상임대표 사표수리 및 공동대표직 박탈을 결정한 바 있으며, 본인의 소명 요청에 따라 11월 28일 국본 전체대표자회의가 개최될 예정이다. 이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위원장 이갑용)은 30년 재야 전선운동의 지도자로 활동하던 이창복 의장이 최근에 와서 우리에게 보여준 이중적 태도에 깊은 실망과 배신감을 느끼면서, 다음과 같이 우리의 입장을 밝힌다. 그리고 이창복 의장의 이중적 행동에 대한 민주노총의 비판은 어느 개인을 비난하고 폄하하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니며, 운동의 도덕성을 지키고 전체 민중운동, 민족민주운동의 혼란을 막기 위한 것임을 분명히 밝혀둔다.

2. 먼저 이창복 의장이 민주노총, 국본과의 합의정신을 깨고 (가칭)민주개혁국민연합 대표로 떠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자. 고용·실업대책 촉구, 민중생존권 쟁취, 재벌체제 개혁, IMF반대 등 4대 기조를 내걸고 지난 5월 출범한 '국본'은 상반기 사업을 평가하고 하반기 사업을 힘있게 추진하기 위해 8월 수련회를 통해 국본 조직을 강화하기로 결의했다. 그리고 9월 전체대표자회의에서 지도·집행력을 강화하기 위해 20인의 공동대표 가운데운영위원장 또는 상임대표를 선임하고, 집행실무력을 보강하기로 했다. 한편, 9월 18일 (가칭)민주개혁국민연대 준비위가 구성되고 이창복, 김상근 공동준비위원장 명의의 공문을 제 사회단체에 발송하였는데, 민주노총 지도부는 담당국장을 통해 사실 확인에 나섰다. 우리 민중이 경제위기의 최대의 희생자이고 IMF체제와 현정권의 신자유주의정책으로 더욱 고통이 가중되는 이 시기에 재야전선운동의 주도적 역할을 해온 이창복 의장이 특정한 정치지향을 갖는 '국민연대'에 참여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창복 의장은 민주노총 담당국장을 만난 자리에서 "국민연대의 성격에 문제가 많아 불참을 선언했으며, 제2의 건국추진위원회에도 참여하지 않는다"고 분명한 어조로 밝혔다. 또한 민주노총 위원장이 이창복 의장을 직접 방문, 오찬을 함께하는 자리에서도 하반기 민중연대투쟁과 전선운동의 확대, 강화에 힘을 모으자고 약속한 바 있다. 10월초 향린교회에서 개최된 국본 전체대표자회의에서는 국본 조직강화를 위해 상임대표를 두기로 하고, 이창복 의장이 추천되었다.

민화협 관계로 일부 반대의 목소리도 있었으나, 민주노총을 비롯한 여러 단체 대표자들의 권유로 이창복 의장이 상임대표로 선임되었다. 이 자리에서도 이창복 의장은 "민화협은 시간이 갈수록 관 주도로 변하고 있으며, 조직(전국연합)이 반대하고 있어 현재 참여를 유보하고 있다" "민주개혁국민연대에는 참여하지 않는다"고 확인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국본 상임대표를 맡은 이창복 의장은 10월 14일 98민중대회위원회 발족을 위한 전체대표자회의 및 기자회견을 주재하고, 그후 98민중대회와 관련한 일정한 지침도 제시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10월 18일 이창복 의장은 전국연합 상집에서 10월말까지 수리를 요구하고 상임의장 사퇴 의사를 밝혔다. 그후 이창복 의장은 국본 공동집행위원장, 민주노총 담당국장을 2~3차례 만나 이 사실을 알리면서 이는 전선조직의 확대, 재편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것이며, "전선운동에 걸림돌이 된다면, 민화협과도 선을 긋겠다"고 밝히고, 민주개혁국민연대에 참여하지 말라는 요구에도 적극 동의하였다.

동시에 전국연합 상임의장을 사퇴하였기 때문에 국본 상임대표도 사퇴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논의해줄 것을 주문하였다. 그리하여 11월 2일 국본 공동대표자회의에서 이창복 의장의 전국연합 상임의장 사퇴가 보고되고 국본 상임대표 사퇴여부를 논의하였는데, 98민중대회를 며칠 앞두고 상임대표가 사퇴하는 것은 혼란을 주기 때문에 대회 이후 국본 전체대표자에서 재론하기로 결정하였다. 국본 집행책임자회의에서도 98민중대회의 이창복 의장 대회사 문제를 검토했으나, 공동대표자회의의 기 결정사항대로 대회 이후 전체대표자회의에서 논의하기로 하였다.

이에 따라 이창복 의장은 11월 8일 민중대회 본대회에서 대회사를 낭독하였으며, 각계 지도자들과 함께 전경련까지 행진하는 등 98민중대회에 적극 참여하였다. 그리고 11월 18일 오후 1시에는 이창복 의장이 노·농·빈 대표 오찬 간담회를 주선하여 이 자리에서 노·농·빈이 중심이 되어 전선운동을 확대, 강화하는데 원칙적으로 합의하고 11월 26일 집행책임자회의를 열어 구체적인 논의를 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같은 날 이창복 의장은 1시간 전에 만난 동지들에게 단 한마디 언급도 없이 오후 2시에 (가칭)민주개혁국민연합 주관의 각계 지도자 간담회에 참여하여 인사말을 하고, 이어 11월 20일 지역·부문 주요인사 설명회를 주재함으로써 '국민연합' 추진의 실질적 대표로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그후 이창복 의장은 11월 23일 국본 대표자회의에 불참한 채, 상임대표 사표를 일방적으로 통고하고 국본 사업기조와는 완전히 배치되는 민주개혁국민연합 창립준비위원회 사업을 위해 공공연하게 활동하고 있는 상황이다.

3. 이상의 경과에서 알 수 있듯이, 민주노총은 IMF체제하에서 고통받는 모든 민중이 단결하여 생존권을 사수하고 사회개혁을 쟁취하는 한편, DJ의 재야 및 시민·사회운동 포섭전략과 노동운동, 민중운동의 고립·약화를 저지하기 위해 민중연대투쟁을 강화하고, 그 성과를 모아 전선운동을 확대, 강화하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이창복 의장은 민주노총의 제안에 흔쾌히 동의하였으며, 민주노총은 전선운동의 확대, 발전을 깊이 고민하는 이창복 의장을 존중하여 할 수 있는 모든 지원과 협조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이창복 의장은 민주노총 등 국본 참여단체들의 간절한 바램과 희망을 외면한 채 한마디의 상의도 없이 특정한 정치지향을 갖는 민주개혁국민연합의 대표를 맡음으로써 전선운동의 확대, 발전에 막대한 지장을 끼치고 떠나 버린 것이다. 특히 11월 18일 오후 1시 이창복 의장이 주재한 노·농·빈 대표자 오찬간담회에 이어 오후 2시에 이것과 방향이 전혀 다른 민주개혁국민연합의 각계 지도자 간담회를 주재한 것은 그 이중성과 기만성으로 인하여 민주노총에게 엄청난 충격과 배신감을 안겨주었다. 민주노총이 이창복 의장을 비판하는 이유는 바로 이같이 앞뒤가 맞지 않는 처신에 있다. 즉 이창복 의장은 민주개혁국민연합과는 생각이 달라 참여하지 않기로 했으며 전선운동이 가장 중요하고 전선운동의 확대, 발전을 위해서는 민화협과도 선을 그을 용의가 있다고 공사석에서 누차 밝혀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하루아침에 뒤집었기 때문이다.

4. 그러면, 이창복 의장이 참여한 민주개혁국민연합은 어떤 단체인가? 우선 이 단체의 중심주체들은 대부분 87년 이후의 DJ에 대한 '비판적 지지 인사'들이다. 지난 대선 때에는 정권교체를 위해 뛰었고 지금은 김대중 정부의 개혁을 지지, 엄호함으로써 민주개혁의 과업을 완수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결성 취지문에서 "시민·사회운동과 대중운동은 모든 이해관계와 차이를 버리고 현재 진행되는 개혁 대 수구의 대결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민주개혁전선으로 총결집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직제안문에서는 "수구세력이 개혁에 완강히 저항, 이로 말미암아 절박한 사회개혁과 구조조정은 효과적으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그런데 과연 지금의 정세가 민중적 입장에서 볼 때, 개혁 대 수구의 대립으로만 설명될 수 있단 말인가? 이는 참으로 주관적인 정세인식이고 작금의 현실을 대단히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IMF와 김대중 정권의 무비판적인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으로 인해 400만이 넘는 실업자들이 거리에 넘쳐나고 있으며 노동자. 민중의 삶 은 시장논리 일변도의 반민중적인 정책으로 파탄에 직면하고 있다. 또한 민주적 개혁이라는 것은 변죽만 울린 채, 지지부진한 상태이고 IMF와 김대중 중 정권을 비판하고 저항하였다는 이유로 오히려 노동자, 민중에 대한 탄압은 더욱 강화되어 구속수배 노동자가 김영삼 정권때보다도 더욱 많이 양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김대중 정권의 개혁은 사실상 민족의 경제주권을 포기하고 한국경제를 초국적 자본에 편입시키는 종속적 신자유주의 개혁으로 귀결되고 노동자·민중을 정리해고와 무권리로 내모는 반민중적인 방향으로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그 결과 김대중 정권이 민주주의를 확대하고 민중의 생존권과 민주적 권리를 신장하는 방향으로 개혁을 추진하기를 바라던 양심적인 지식인과 시민·사회단체들도 이미 김대중정권의 잘못된 개혁에 실망하고 적극적인 비판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지금의 정세는 IMF와 김대중정권의 반민중적인 신자유주의 정책 대 민중의 진정한 사회개혁 요구가 주요하게 대립하고 있으며 이와 연동하여 수구기득권 세력과 신자유주의적인 개혁세력간에 갈등하고 있는 국면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개혁 대 수구라는 일면만을 강조하고 그런 방향으로 전체운동을 재편하려할 때, 결과적으로 민중적 사회개혁을 강제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노동운동과 민중운동은 반민중적 개혁의 희생물이 되어 자기 정체성을 잃고 신자유주의적인 김대중 정권의 개혁을 지지, 엄호하는 2중대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연합'이 우리 사회 개혁의 최대장애물은 수구기득권세력이기 때문에 개혁세력의 총결집을 통해 김대중정권의 개혁만 성공시키면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는 것은 터무니없는 기대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사실, '국민연합'이 표방하는 "권위주의적 잔재의 청산과 법치민주주의 구현, 그리고 민주적 시민공동체의 실현 추구"는 국민회의의 정강정책을 보는 듯 하며, '합리적 개혁세력의 결집체', '현실적이고 과학적인 개혁노선 정립'이란 말속에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 민중운동세력을 비합리적 집단, 비현실적, 비과학적 노선으로 매도하고, 고립·약화시키려는 불순한 목적이 함축되어 있다. 더 나아가 '국민연합'은 "정치국면에서의 개입력을 높여나가" "대안적 정치세력의 형성에 기여"라고 함으로써 그 조직의 숨은 의도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이미 '국민연합' 안에는 제도정치권 진입을 노리는 정치지망생들이 중심을 형성하고 있으며, 내년 내각제를 둘러싼 정계개편시 개혁신당 형태의 국민회의 전국정당화 과정에 민주대연합의 한 축으로 참여하려 한다는 것이 광범하게 알려져 있다. 그렇게 된다면 '국민연합'은 형식적인 사회운동체로 남고, 주요인사들은 여권으로 흡수되는 것으로 귀결되며, 김대중정권의 신자유주의적인 개혁을 뒷받침하는 외곽부대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국민연합'의 성격과 기조, 그리고 그 조직의 정치적 전망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지난 30년 온갖 고난과 풍상을 견디며 일관되게 전선운동을 지켜온 이창복 의장이 이같은 조직의 대표를 맡은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이창복 의장의 이런 해동은 '국민연합'의 그릇된 노선을 정당화시키고, 나아가 민중연대와 전선운동을 교란시키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창복 의장이 갑자기 태도를 돌변하여 '국민연합'으로 가버린 것은 결과적으로 IMF와 김대중 정권의 잘못된 개혁에 대한 민중진영의 비판을 가로막는데 기여할 뿐이다. 또한 이창복 의장을 비롯한 '국민연합' 관계자들은 민주노총 산하조직과 시민·사회운동의 주요간부를 상대로 조직사업을 전개함으로써 민주노총과 국본 내부의 갈등 요소를 제공하고 있다. 이같은 작업은 '국민연합'의 창립을 앞두고 더욱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는 이창복 의장과 '국민연합'이 민주노총 가맹 및 산하조직의 간부들을 대상으로 조직사업을 진행하고 내부의 분열을 야기한다면,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5. 이러한 일련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김대중정권에게도 강력한 비판의 목소리를 전달하지 않을 수 없다. 김대중 정권은 제2의 건국추진위를 구성하거나 그와 유사한 민간운동단체들을 육성하는 식으로는 결코 개혁을 성공시킬 수 없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김대중 정권이 비판적인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을 모두 체제내화하거나 체제순응적으로 만든다면 이전의 정권이 권력 유지를 위해 관변단체를 보호, 육성했던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진보와 보수정치세력이 양립하고 비판적 사회운동세력이 존재할 때, 민중의 이해와 상치되는 잘못된 개혁을 바로잡을 수 있으며 시대의 흐름에 반하는 수구세력도 보다 확실히 청산할 수 있는 것이다. 김대중 정권이 더 이상 수구세력을 탓하거나 아니면 연립정권의 한계를 탓할 시기는 이미 지났다. 민주노총은 김대중 정권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잘한 것은 잘했다고 말하고 잘못한 것은 비판, 투쟁하여 바꾸는 것이 민주노총의 입장이다. 김대중 정권은 단지 5년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2000년 이후의 한국 사회가 보다 민주화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정부는 무엇을 하고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종합적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민주노총의 비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IMF와 김대중정권하에서 실업자가 400만이 넘어서고 노동자·민중들이 생존의 위협을 느끼고 있는 터에 이의 시정을 요구하고 정부를 비판하는 것도 허용하지 않는다면 이는 과거의 독재정권과 하등 다를 바 없다.

우리가 '국민연합'의 기조와 노선에 대해 비판하는 것도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김대중식 개혁이 갖는 반민중적인 내용에 대해 침묵하면서 수구세력과의 싸움만이 제일 중요하다는 '국민연합'의 주장은 사실상 고통받는 민중의 현실을 외면하고 김대중 정권을 일방적으로 지지하자는 것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이창복 의장과 '국민연합'이 진정 민중의 이익을 옹호하고 나라의 민주주의와 조국의 장래를 걱정한다면, 현재 진행되는 김대중 정권에 대한 의 그릇된 개혁 방향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야 할 것이다. 또한 김대중 정부도 노동운동과 시민·사회운동의 자율성을 보장하여 국가와 시장이 갖는 부정적인 측면을 비판하고 교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민주노총의 이같은 촉구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 노동운동, 민중운동을 탄압하고, 다른 한편으로 민주화운동세력을 체제내화하는 포섭공작을 계속한다면, 민주노총은 김대중 정권에 맞서 이 나라 민주주의의 장래를 위해 강력히 투쟁해 나갈 것이다.

민주노총은 분명히 밝힌다. 이창복 의장은 그간 민주노총과 민중운동진영에 끼친 부정적 결과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 또한 민주노총은 이창복 의장 파동과 관련하여 이창복 의장이 상임대표로 있는 민주개혁국민연합과는 모든 관계를 단절하고 그들의 진로를 지켜볼 것이다. 과연 그들이 민중과 함께 이 나라 민주주의와 조국의 평화통일을 위해 헌신하는지 아니면 과거 재야운동가들이 그러했둣이 정치권 진입을 위한 또 다른 정치집단으로 전락하는지 지켜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민주노총은 최근 이창복 의장의 국본 이탈로 인해 빚어 진 일시적 혼란을 단호하고도 결연한 자세로 수습하면서 산하 모든 조합원동지들에게 보다 새로운 자세와 각오로 당면한 노동자투쟁과 민중연대, 전선운동의 확대발전, 그리고 민주진보진영의 독자적인 정치세력화사업에 매진해 나아갈 것을 부탁드린다. 민주노총은 IMF를 앞세운 초국적 자본의 공세로 민중생존권이 유린되고 김대중정권의 민중운동 탄압이 계속되는 냉혹한 정세를 직시하고, 보다 강력한 민중연대와 각계각층의 광범한 민주세력과 단결하여 힘차게 전진해 나갈 것을 천명하는 바이다.

올해는 세계 인권선언 제정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한국의 인권상황에 대해 끊임없이 추적하여 '인권하루소식'이라는 일일 팩스정보를 통해 진보진영에 보편적 인권에 대한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 주고 있는 [인권운동사랑방]의 자료를 빌어 인권선언의 내용을 실었다.

세계인권선언 제정 50주년 특집

1998년 11월 18일

인권하루소식

세계인권선언의 탄생

1948년 12월 10일, 유엔 총회장은 '경이로운 성취'라는 의장의 연설로 술렁였다. '모든 민족과 모든 국가가 성취해야 할 공동의 기준'으로 '세계인권선언'이 채택된 날이었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국가들의 조직체인 국제기구가 인권이 무엇인가를 적어 넣은 보편적인 문서를 만든 것이다. 이 선언의 등장으로 자국민을 대우하는 문제가 그 국가만의 관할사항이라고 말할 근거는 설자리를 잃게 되었고 인권의 국제적 보장은 필연적 추세가 되었다.

이 선언은 6년여에 걸쳐 6개 대륙과 모든 바다에서 벌어진 전쟁에서 잉태되었다. 약5천만 명에 이르는 인간의 생명을 앗아간 2차 대전의 참상과 나치가 저지른 만행은 국내에서 자국민의 인권을 억압하는 국가는 인류 모두의 인권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을 깨우쳐준 것이다.

이 교훈에 기초하여 1945년 창설된 유엔은 "모든 사람을 위한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에 대한 보편적인 존중과 준수(제55조)"라는 목적과 그 성취를 위한 행동 서약(제56조)을 헌장에 담았다. 유엔은 이 약속을 지키려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1946년 1월에 열린 제1차 유엔총회는 기본적인 인권에 관한 문서를 기초하기로 했고, 그 인권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정하기 위하여 유엔인권위원회를 설치했다. 1947년, 유엔인권위원회는 지역적 안배를 고려하여 8개국으로 구성된 '기초위원회'에 초고작업을 맡겼다.

선언은 이행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목표로 삼아야 할 지침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법적 구속력을 가진 조약을 만들어서 회원국의 서명을 받아내는 일에 비해 선언을 만드는 것이 훨씬 쉬워 보이는 일이었다. 그러나, 논의의 시작부터 문서의 형태를 둘러싼 대립이 생겼다. 인권의 일반적 원칙 또는 기준을 담은 선언이냐 아니면 구체적인 권리와 제한범위를 명시한 조약이냐가 문제였다.

기초위원회는 두가지 형태의 문서를 다 준비하기로 결정했다. 1947년 말 유엔인권위원회는 기초위원회가 준비하고 있는 문서에 '국제인권장전'이란 이름을 붙이기로 하고 선언을 위한 작업집단, 조약을 위한 작업집단 및 그 이행 조치에 관한 작업집단을 각각 만들었다(UN, The International Bill of Human Rights, 1988).

1948년 5월에 모인 인권위원회는 '선언기초위원회'가 제출한 초고를 수정하고 각국 정부의 의견을 수렴했다. 이때 '조약화'의 문제나 '이행'의 문제를 고려하기에는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선언만이 유엔총회에 제출되어 투표에 부쳐졌고, 결과는 찬성 48, 반대 0, 기권 8이었다.

기권표는 세계인권선언의 의의를 인정하는 속에서도 불충분하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사적 소유권을 인권으로 명기(제17조)한 점이나 사회권 보장에 대한 권리가 충분치 않다는 점 등이 구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의 기권표를 낳았다. 이는 선언의 기초 과정에서 가장 달아올랐던 논쟁, 즉 보편적인 인권이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한정되느냐, 아니면 경제적·사회적 권리도 포함하여야 하느냐는 논쟁의 일면을 보여준다. 후자를 지지한 것은 구 사회주의 국가였다. 결과적으로 사회보장의 권리, 노동에 관한 권리, 정기적인 유급휴가를 포함한 휴식과 여가의 권리, 충분한 생활수준을 누릴 권리가 선언에 포함되었다.

긴 산고 끝에 탄생한 세계인권선언은 뒤에 만들어진 유엔의 인권관계 조약들의 뿌리가 되었고, 우리가 추구해야할 인권과 기본적 자유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는 가장 권위 있는 문서로 인정받고 있다. 이런 까닭에 인류는 선언이 채택된 12월 10일을 '인권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인권을 실질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강제력 있는 조치의 마련은 먼길을 재촉하고 있다.

세계인권선언의 정신: 전문(前文)

인류 가족 모든 구성원의 타고난 존엄성과 평등하고도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전세계의 자유와 정의와 평화의 기초이며, 인권에 대한 무시와 경멸이 인류의 양심을 짓밟는 야만적 행위로 귀착되었으며, 인류가 언론의 자유와 신념의 자유를 누리고 공포와 궁핍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은 보통 사람의 지고한 열망으로 천명되었고, 인간이 폭정과 억압에 대항하는 마지막 수단으로서 반란에 호소하도록 강요받지 않으려면, 인권이 법에 의한 통치에 의해서 보호되어야 함이 필수적이며, 나라 사이의 우호관계의 발전을 촉진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며, 유엔의 여러 국민들은 그 헌장에서 기본적 인권과,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 남녀의 동등한 권리에 대한 신념을 재확인하였으며, 더 폭넓은 자유 속에서 사회적 진보와 생활수준의 개선을 촉진할 것을 다짐하였고, 회원국은 유엔과 협력하여 인권과 기본적 자유에 대한 보편적 존중과 준수의 신장을 성취할 것을 서약하였으며, 이러한 권리와 자유에 대한 공통의 이해가 이 서약의 이행을 위해 가장 중요하기에, 그리하여 이제 유엔총회는 모든 개인과 사회의 각 기관은 이 선언을 항상 마음속에 간직한 채, 교육과 학업을 통하여 이러한 권리와 자유에 대한 존중을 신장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점진적인 국내적 및 국제적 조치를 통하여 회원국 국민과 회원국 관할권 아래에 있는 영토의 국민들 양자 모두에게 권리와 자유의 보편적이고 효과적인 인정과 준수를 보장하기 위해 힘쓰도록, 모든 국민들과 나라들이 성취해야 할 공통의 기준으로서 본 세계인권선언을 선포한다.

세계인권선언(이하 선언)은 내용상 다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선언의 정신을 설명하는 전문(前文)

△다른 조항들의 대전제인 1·2조

△시민·정치적 권리(자유권)를 다룬 3-21조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사회권)를 다룬 22-27조

△모든 권리의 향유에 관한 일반규정을 정리한 28-30조다.

선언이 사회권에 대해 일정하게 배려를 하고 있는 것(30개 조항 중 6개 조항)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전체 30개 조항 중 19개 조항에 걸쳐 시민·정치적 권리를 다룬 것에 비하면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관한 조항은 지나치게 빈약하다. 선언이 기본적으로 서유럽 자본주의국가형의 인권체계를 그대로 계승했기 때문이다.

선언의 전문은 매우 긴 하나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내용에 따라 △인권의 개념과 가치 △인권의 목표 △인권 실현의 방법 △인권의 국제적 보장 △회원국의 의무 등 5개의 문단으로 나누어 읽을 수 있다.

먼저, 전문은 인권이 모든 인간의 '타고난 존엄성'에 기반한다는 인권의 원천을 밝히고 있다. 여기에 깔린 철학적 바탕은 자연법 사상이다. 실체법보다 우위에 있는 자연의·불변의·궁극적인 법을 얘기한 자연법 사상은 17세기 사회계약론과 18세기 절대주의에 대한 투쟁의 토대가 되었다. 자연권 이론은 권력보다 더 우위에 있는 권위에 호소하여 인권 보장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였다. 그러나, 자연권 이론은 '자연법으로 고려할 규범과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누가 어떻게 결정하느냐'는 비판을 받았고, 19·20세기 동안 실증주의의 공격 속에 위축되었다.

자연법 사상의 부활은 역설적으로 2차대전의 참상을 통해 이뤄졌다. 개인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하는 실증주의 체계에서 파생된 공포와 나치즘에 대한 극도의 혐오가 자연권의 부활을 가져온 것이었다. 이렇게 부활한 자연권 사상은 전문에 등장하는 '타고난 존엄성'과 '양도할 수 없는 권리'라는 문구를 통해 선언에 투영된다.

인간의 타고난 존엄성과 그 존엄성에서 기원하는 자유와 평등에 대한 권리는 '양도할 수 없고, 시효로 소멸되지 않는, 법령으로 움직일 수 없는, 불가침의, 절대적인'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은 국가 권력을 비롯한 모든 권력에 우선하는 것이며, 국가권력은 조절은 할 수 있을지 모르나 인권을 폐기할 수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못박은 것이 전문의 첫 문장이다.

전문은 또한 이러한 인권의 원칙을 무시한 2차대전의 참화를 환기시키고 있다. 인류의 평화를 위협한 것은 전체주의였으며, 그것은 곧 자국민의 인권을 무시하는 속에서 등장한 '야만적 행위'였다. 따라서 인권의 가치를 존중하는 것이 곧 '전세계의 자유와 정의와 평화의 기초'라는 답을 내린 것이다.

하지만 이런 내용은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표현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는 선언의 채택과정을 살펴볼 때 불가피한 결과이기도 하다.

1948년 9월에서 12월까지 열린 제3차 유엔총회는 선언의 초안을 아주 면밀히 검토했다. 모든 단어와 모든 문장이 샅샅이 검토되었고, 무려 1천4백 회의 투표에 부쳐졌다. 다소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세계인권선언이 12월 10일에 반대 없이 채택된 것은 이러한 고된 타협의 결과였다. 선언에는 매우 다양하고 심하게 갈등하는 정치·철학·종교 체계와 문화적 전통을 넘어 하나를 이룬 승리의 나팔소리가 묻어있다. 이런 까닭에 선언 전문은 '모든 국민들과 나라들이 성취해야 할 공통의 기준'으로 세계인권선언을 선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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