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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29 21:24:37

박성인

[펌] '왼쪽으로부터의 대안', 전진 정책위원회

‘왼쪽으로부터의 대안’

2005.06.15.
전진그룹 정책위원회,장석원 상임정책위원

2005년 들어 유럽 각국의 선거가 연이어 화제 거리다.

이탈리아의 베를루스꼬니 총리가 이끄는 연립여당은, 납치된 기자의 석방과 보호를 위해 파견된 정부요원이 미군의 총격으로 사망한 사건으로 반전여론이 높아진 가운데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다. 독일 사민당SPD은 40년간 지배해온 베스트팔렌 주정부가 기민련CDU에 넘어가자 충격에 휩싸였다. 궁지에 몰린 슈뢰더 총리는 조기총선 카드를 던졌다.

영국의 블레어 총리는 ‘이길 수 있을 때 이겨놓고 보자’는 계산으로 조기총선을 단행했다. 그 결과 노동당 총리로는 최초로 3연임에 성공했지만 의석수는 대폭 감소했다. 가장 최근에는 유럽헌법을 놓고 프랑스에서 국민투표가 있었다. 사회당, 공산당, 트로츠키주의정당이 전후 처음으로 공동전선을 형성하고 부결 캠페인을 진행했다. 애초 통과가 낙관되던 유럽헌법은 부결됐다. 프랑스 민중들은 신자유주의가 통합유럽의 정신이 될 수 없음을 확인했다.

여기까지는 국내 언론에도 보도된 내용이다. 그러나 영국과 독일의 경우 중요한 내용이 빠졌다. 이번 선거를 통해 독일사민당과 영국노동당의 오랜 “독점”이 흔들리는 조짐이 나타난 것이다. 이들 사민주의 집권정당의 왼편에서 새로운 정치대안이 등장했다.

영국의 리스팩트연합

노동당을 뛰어넘기 위한 좌파의 시도 중 최초의 성공사례는 스코틀랜드사회당SSP이다. 난립한 채 서로 노선경쟁을 하던 여러 좌익그룹들이 사회주의적이고 독립된 스코틀랜드의 건설을 목표로 통합한 것이 1998년이었다.

이듬해 SSP는 기존의 좌익그룹들이 기껏해야 노동당에 대한 평론가역할에 만족했던 것과 달리, 노동당과 구분되는 명확한 사회주의대안과 조직적 단결에 기초해 실제로 스코틀랜드 자치의회에 진출했다. SSP는 잉글랜드나 웨일즈 같은 영국의 다른 지역뿐만 아니라 유럽의 좌파에게 새로운 정당모델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SSP도 중앙정치무대에서만큼은 노동당을 넘어서지 못했다.

SSP를 모방해 잉글랜드의 여러 좌익조직들이 사회주의연합SA을 결성하고 블레어에 도전했지만 당선은 고사하고 의미 있는 수의 득표에도 이르지 못했다. 이들에겐 노동당이라는 존재도 넘기 힘든 벽이었지만 그 전에 소선거구제라는 현실의 벽부터 넘어서지 못했다.
사회주의연합의 가장 큰 한계는 대중성의 결여였다. 노동조합의 지지를 노동당이 독점하고 있는 것이야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주로 트로츠키주의자들과 옛 영국공산당원들로 구성된 사회주의연합은 국민들에게 결코 “대안적”이거나 “새로운” 세력으로 비쳐지지 않았던 것이다.

사회주의연합의 실험이 한계에 봉착했을 때 새로운 돌파구를 연 것은 대중운동의 고양이었다. 2001년부터 시작된 반전운동이 확산되면서 새로운 조건들이 마련됐다. 2003년 이라크 침공에 반대한 죠지 갤러웨이 하원의원이 노동당에서 제명되면서부터는 운동의 대중적인 지도자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노동조합 기존의 사회단체들이 결합했고, 영국 이슬람공동체처럼 예전에는 진보운동과 연관이 없던 사회세력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성과에 기반 해 2004년 리스팩트RESPECT라는 새로운 정치연합체가 결성됐다. 이 이름은 환경, 노동조합, 사회주의 같은 단어들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든 것이다.

리스팩트는 창립 후 여러 지방선거에서 당선자를 내거나 유의미한 득표율을 올리면서 그 가능성을 확인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도전은 2004년 런던시장에 출마한 후보가 13.46%의 득표로 3등을 한 것이었다.

리스팩트는 이번 총선에 26명의 후보를 출마시켰다. 지방선거에서는 가능성을 보았다고 하지만 소선거구제와 사표심리라는 악조건 속에서 신생정당의 후보가 당선되기란 결코 쉽지 않다. 2차대전 이후 한번도 노동당 왼쪽의 정치세력이 의회에 진출한 적이 없다는 사실은 이를 증명한다. 그래서 대다수 언론과 학자들이 리스팩트도 지금까지의 실험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그러나 개표 결과 죠지 갤러웨이가 노동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된 것을 비롯, 파키스탄 출신의 샐마 야쿱이 27.5%의 득표로 2위, 압둘 밀란이 20.7%로 2위, 04년 런던시장후보였던 린지 저먼이 19.5%로 2위를 기록했다. 노동당 바깥의 좌파가 드디어 원내에 진출한 것이다.

리스팩트의 과제와 전망

지난 5월 21일 리스팩트의 총선 후 첫 전국평의회가 개최됐다. 이날의 안건은 선거평가와 기관지 발간문제였지만 참가자들의 주된 관심사는 조직전망이었다. 리스팩트를 주도하고 있는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은 리스팩트를 단체와 조직들의 연합체가 아니라 당원들로 구성되는 정당으로 전환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 경우 SWP는 여러 세력중 하나에서 다수파로 전환하게 된다. 주1)

반면 우선 보다 더 많은 좌익그룹들과 단체의 참여를 유도하자는 주장도 존재한다. 실제로 적지 않은 좌파그룹들이 여성에 대한 이슬람공동체의 차별적 시각에 반대하며 리스팩트에 참여를 거부하고 있다. 여기에는 SWP의 “독주”에 대한 불만과 불신도 큰 몫을 하고 있다.

리스팩트가 어떤 조직형식을 취할 것이냐는 중요한 문제지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갤러웨이의 당선을 역사적 전환의 시발점으로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이다. 갤러웨이를 의회로 진출시킨 힘은 대중적인 반전운동에서 나왔다. 이제는 리스팩트가 노동당의 정치적 대안임을 대중에게 증명해야 한다. 예를 들어 블레어의 민영화정책에 불만을 가진 노동조합들과 어떻게 연대하느냐에 따라 리스팩트의 운명은 크게 바뀔 것이다.

추락하는 독일사민당

사민당과 관련된 수치는 모두 추락하고 있다. 연이은 지방선거 패배로 현재 독일연방 16개주에서 사민당이 집권하고 있는 곳은 4곳에 불과하다. 5년 전에 비해 7곳이 줄었다. 5년 동안 당원도 꾸준히 감소했다. 어림잡아 15만명 이상이 당을 떠났다. 지지율도 급강하 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 의하면 야당연합은 50%가 넘는 지지를 받고 있는 반면 사민당은 25%선까지 떨어졌다.

이런 결과가 빚어진 이유는 두말 할 나위 없이 슈뢰더 총리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있다. 슈뢰더의 “신중도”노선의 후속편인 “의제2010”은 거창한 이름을 달았지만 복지축소, 긴축, 시장개방 외에는 내용이 없다. 총리의 주장처럼 실업이 줄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나 전후 최대 기록을 매일 갱신하고 있다.

이처럼 집권 적-녹 연정의 신자유주의 행진이 계속되자 노동조합 내부에서 사민당과의 관계에 대해 회의하는 시각이 급속히 확산됐다. 사민당 좌파 활동가들 중에서도 당 바깥에서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논의가 시작됐다. 이런 흐름들이 2004년 “사회복지와 일자리를 위한 선거대안WASG”이라는 다소 긴 이름아래 조직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독일의 선거연합

독일 언론이나 사민당은 선거대안의 출현에 무게를 싣지 않았다. 과거에도 100년이 넘는 사민당의 아성에 도전한 실험들이 있었지만 모두 무위로 끝난 전례가 있고, 무엇보다 사민당-독일노총DGB의 굳건한 동맹이 존재하는 한 새로운 실험은 한계가 명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로운 조직이 활동가를 중심으로 꾸준히 회원을 늘리고주2) 선거대안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발언이 노동운동 지도자들 사이에서 흘러나오자 언론도, 사민당도 새로운 흐름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선거대안이 처음으로 뛰어든 선거는 앞서 이야기한 베스트팔렌 지방선거였다. 선거대안은 18만2천표를 얻어 2.2%를 기록했다. 독일 비례대표 선거규정의 5% 진입장벽을 넘지는 못했지만 새로운 정당이 대중들에게 별로 알려져 있지 않고 대중적인 정치인이 없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결코 무의미한 득표는 아니었다. 특히 한 표가 아쉬운 사민당으로서는 경악할 만한 손실이었다.

지방선거 후 새로운 흐름은 급물살을 탔다. 독일사민당 좌파의 지도자이며 슈뢰더 총리의 정책에 비판적이었던 전 당수 오스카 라퐁텐이 다가오는 총선에서 선거대안과 민사당PDS이주3) 연합한다면 자기도 동참하겠다는 발표를 하고 탈당했다. 선거패배로 초상집 분위기인 사민당으로서는 연이어 스트레이트를 맞은 셈이다. 그리고 6월 10일 선거연합이 실제로 이루어졌다. 라퐁텐은 이 연합의 리더, 즉 총리후보를 맡았다.

선거연합은 모든 선거구에 단일후보를 세우고 나아가 자기 조직원이 상대당의 후보로도 출마할 수 있게 했다. 민사당은 구동독지역에서 강세인 반면 서독에서는 인기가 거의 없고, 선거대안은 주로 서독지역의 활동가들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런 방식의 연합은 총선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전망된다.

언론은 연합이 최대 18%까지 득표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는 사민당의 재집권도 날아가지만 보수적인 기민련도 절대다수의석을 확보하지 못할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기성 독일 정치의 좌우양당 모두 선거연합의 출현에 긴장하고 있다.

“선거대안”의 미래

베스트팔렌선거 직전 선거대안 내부에서는 조직의 노선을 둘러싸고 논란이 있었다. 선거대안이 시급하게 사회주의 지향을 분명히 하는 정당으로 발전할 것을 주장하는 흐름이 있는 반면 노동조합 출신들은 선거대안이 우선 슈뢰더 총리가 후퇴시킨 사회복지를 복원하고 신자유주의경제정책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정당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논쟁은 사회복지에 무게중심을 두는 내용으로 정리됐고 사회주의 지향의 활동가들도 이에 만족했다.

그러나 민사당과의 선거연합이 조직통합으로까지 발전할 경우 이 논쟁은 다시 재현될 수 있다. 선거대안이 민사당이 제안한 “통일좌파/민사당”이라는 새 연합의 명칭을 거부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선거대안은 자신들이 사민당의 왼쪽에 새로운 좌파정당을 덧붙이는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의 지지를 확대해 우경화한 사민당을 “대체”하겠다는 목표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는 다시 말해 다가오는 총선 전까지 독일의 양대 노조, 금속과 공공 내부에서 얼마만큼 지지를 확보할 것인가가 새로운 흐름의 운명을 결정할 것임을 의미한다.

또 다른 문제는 새 흐름이 어떤 내용을 가진 정당으로 발전할 것이냐는 점이다. 득표율, 의원수, 노동운동의 지원 같은 것에 매몰된다면 결국 새 정당은 또 다른 사민당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새 정당이 사민당의 사민주의를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주의의 대안을 제시하도록 더 많은 사회주의자의 개입이 필요하다.

후주
1) 사회주의노동자당은 국제사회주의경향IST으로 알려진 트로츠키주의 조류의 사령부격인 정당이다. 리스팩트의 전국서기를 맡고 있는 존 리즈, 런던시장 후보였던 린지 저먼 등이 모두 SWP 소속이다. “다함께”가 IS경향의 한국자매조직이다.
2) WASG는 2005년 5월 현재 회원수는 5,607명이라고 발표했다.
3) 민주사회당은 옛 동독의 스탈린주의 집권당이었던 통일사회당SED의 후신이다. 그러나 내용적으로는 새롭게 혁신된 사회주의를 주장하고 있다. 옛 동독지역에서는 20%가까운 지지를 받고 있지만 서독지역에서는 거의 표를 얻지 못하고 있다. 2002년 총선에서는 전국득표 5%에 미달해 비례대표 배분을 받지 못했다.

	A new Asian invasion[Financial Times] 2005.6.23	박종성	2005/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