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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자본주의와 정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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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25 14:33: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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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인 |
 [이백만] ‘박정희 모델’에서 ‘노무현 패러다임’으로, <국정브리핑>2005.10.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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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모델’에서 ‘노무현 패러다임’으로
"시대가 바뀌었다"…한국은 지금 리모델링 중 (1)
이백만(국정홍보처 차장)
<국정브리핑>2005.10.25.
“시대가 바뀌었다.”
천정배 법무부장관의 말입니다. 정치사회적으로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수사 지휘권 행사’ 에 대한 천 장관의 역사 인식일 것입니다.
저는 정부중앙청사(광화문청사)에 출근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천장관의 이 말과 38년 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쓴 청사준공 기념휘호가 오버랩될 때는 착잡한 심정마저 들었습니다.
중앙청사는 조국근대화의 상징…“앞만 보고 달린 경주마”
광화문 앞에 우뚝 서있는 정부중앙청사는 ‘조국 근대화’의 산실이자 상징입니다.
저는 이곳으로 매일 출근합니다. 박 전 대통령의 휘호를 보면, ‘역사의 중압감’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의 후손들이 오늘에 사는 우리 세대가 그들을 위해 무엇을 했고 조국을 위해 어떠한 일을 했느냐고 물을 때 우리는 서슴지 않고 조국 근대화의 신앙을 가지고 일하고 또 일했다고 떳떳하게 대답할 수 있게 합시다. 1967년 1월 17일 대통령 박정희”
키워드는 ‘조국 근대화’입니다. 조국 근대화는 경제성장을 의미합니다. 당시 박 대통령에게 있어 절대빈곤을 해결하기 위한 조국 근대화는 신앙이었습니다. 그는 조국 근대화라는 지상목표를 실천하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마치 경마장의 경주마처럼…. 민주주의 창달, 국민의 인권 신장, 언론의 자유 허용, 노동자· 농민의 권익보호, 지역균형발전 등 경제성장에 걸림돌이 될 만한 가치들은 철저히 배제되었습니다. 소위 ‘경제성장 지상주의’를 추구한 것이지요. 이 방침을 어기는 사람들은 ‘용공 혐의’를 뒤집어쓰기 일쑤였지요. 반공을 앞세운 국가보안법도 조국근대화의 중요한 도구였다는 얘기입니다.
‘박정희 모델’은 불균형 성장전략…‘한강의 기적’ 달성
후진국 경제개발론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균형성장론(넉시, 로덴스타인 로단 등)이고, 다른 하나는 불균형성장론(허쉬먼, 킨들버거 등)입니다. 박 전 대통령은 불균형성장론을 선택했습니다. 정확히는 ‘정부주도의 불균형 성장정책’이지요.
조용범 고려대 명예교수(경제학)는 “한국정부가 1962년 이후 수립·집행한 경제개발계획은 외형적 경제성장과 공업화를 기조로 하고…(중략)…전략부문과 애로부문의 집중개발투자를 전략으로 한 불균형성장형이다”고 지적했습니다(후진국경제론,박영사).
박 전 대통령의 전략은 적중했습니다. 목표 달성은 대성공이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한강의 기적’ ‘압축 성장’ ‘개발 독재’ 등으로 평가합니다. 경제학자들은 박 전 대통령의 독특한 성장전략을 ‘박정희 모델’로 부르고 있습니다.
38년 전의 최첨단빌딩이 지금은 구닥다리…“리모델링 절실!”
1967년 중앙청사가 준공될 때에만 해도 이 건물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크고, 시설이 가장 좋은 최첨단빌딩이었습니다. 박정희 모델이 그랬던 것처럼….
지금은 어떤가요.
한마디로 구닥다리 건물입니다. 민간 기업이 이 건물의 주인이라면 진즉 리모델링하여 업무효율이 높은 최신식으로 바꾸어 놓았을 것입니다.
올 여름 무척 더웠습니다. 사무실은 찜통이었습니다. 동쪽으로 향한 사무실은 더 지독한 찜통이었습니다. 작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마 내년 여름도 그럴 것입니다. 에너지효율이 말이 아닙니다. 냉방시설이 낡아서 그러겠지요. 같은 양의 전기를 공급했을 경우의 냉방효율이 다른 건물에 비해 절반도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사무실 구조나 시스템도 아주 옛날식입니다.
간간이 개보수가 이루어졌지만, 전반적인 시스템은 60~70년대식입니다. 어지간한 벤처기업 사무실보다도 못합니다. 최근에 새로 지은 중앙청사 별관(외교부 청사)과는 천양지차입니다. 중앙청사가 아날로그라면, 별관은 디지털입니다.
국가운영시스템도 하루빨리 리모델링되어야…국가경쟁력 업그레이드 위해
근무환경을 불평하는 게 아닙니다. 박정희 모델의 상징인 중앙청사에서 일하면서, 국가운영시스템이 하루빨리 리모델링되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항상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박정희 모델은 조국 근대화라는 역사적 과업을 수행하고, 이미 수명을 다했습니다. 중앙청사에 출근할 때마다 그것을 느끼게 됩니다. ‘중앙청사’가 제구실을 하려면 리모델링(근본적인 개보수)을 하여야 하듯, ‘대한민국’도 근대화 수준을 넘어 1인당 국민소득 2만~3만 달러의 선진화 단계로 업그레이드되려면 혁신적인 리모델링을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Since 1945'의 주류 부상, 냉전해체, 디지털세상…“세상이 180도 변했다”
‘정말로’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이것은 엄연한 현실입니다. 결코 수사(修辭)가 아닙니다.
냉전체제는 오래전에 해체됐고, 경제체제는 완전개방으로 가고 있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디지털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한국은 경제대국(세계 11위)으로 성장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의 절대 다수가 광복(해방)이후 세대입니다. 소위 ‘Since 1945'가 한국의 주류가 된 것이지요. 대통령과 국무총리를 비롯한 주요 국가지도자의 대다수가 광복이후에 출생한 ‘Since 1945'입니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유일하게 출생 당시의 국적이 대한민국인 대통령입니다. 의미가 큽니다.
국정운영의 대내외 환경이 박정희 모델이 나왔을 때와는 180도 달라졌습니다.
박정희 모델, IMF사태로 참담한 종말…“지속 불가능한 성장”
박정희 모델은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이 시작된 1962년 발진했습니다. 43년 전이지요.
정부중앙청사도 준공된 지 38년이 지났습니다. 강산이 4번이나 바뀐 세월입니다.
박 전 대통령은 1979년 ‘10·26사태’로 생물학적 수명을 다했습니다. 반면, 박정희 모델은 1997년 IMF사태로 종말을 고했습니다. 성수대교가 무너지듯, 참담한 모습으로 역사적 수명을 마쳤습니다. 김형기 경북대 교수(경제학)는 “1987년 노동자투쟁과 시민항쟁 이후 쇠퇴하기 시작하던 박정희 모델은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최종적으로 붕괴됐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박정희 모델은 출범 때부터 비극적 종말의 가능성이 내재되어 있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기본전략이 ‘불균형 성장’이었기 때문입니다. 선성장 후분배, 재벌그룹의 전략적 지원·육성, 특정지역(경부축) 집중개발, 노동자 농민 권익 박탈(소외계층 양산) 등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소위 ‘차별의 정책’입니다. 경제성장 과정에서 정책적으로 차별당한 사람들로서는 차별을 참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의도적 차별은 한(恨)이 됩니다.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참지 못하는 게 인간입니다. 소외계층과 소외지역의 정치사회적 불만표출은 시간문제였다는 지적입니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문학평론)도 “박정희식 개발은 지속 불가능한 성장 모델”이라고 지적했습니다(창작과 비평 2005년 여름호).
혹자는 경제학자도 아닌 분의 말씀이라고 폄하할지도 모르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불균형 성장론의 내재적 결함을 정확히 지적하지 않았나 여깁니다.
국민의 정부, ‘경제 쓰나미(IMF사태)’극복, 햇볕정책, 사회안전망구축
박정희 모델이 종착역에 도달했던 1997년, 경제적으로는 IMF사태가 터졌고, 정치적으로는 역사상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졌습니다. 박정희 모델을 받쳐주던 정치시스템도 함께 무너진 것이지요.
국민의 정부는 국가운영의 새 모델을 만들 시간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IMF사태는 ‘경제 쓰나미(지진해일)’와 같은 국가적 재앙이었습니다. 국민의 정부는 폐허가 된 국가경제를 복원시키는데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 했습니다. 국민의 정부는 IMF사태극복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훌륭하게 수행했고, 햇볕정책추진으로 남북관계개선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습니다. 사회안전망구축 등 특정부문에서의 혁신적 조치도 적지 않은 성과를 냈습니다. 그러나 국정 운영 전반에 걸친 중장기 종합처방을 제시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노무현 패러다임’…균형발전이 핵심…“이제는 체격보다는 체력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가 발을 벗고 나섰습니다. 참여정부 개혁의 핵심은 ‘균형발전’입니다. 저는 이것을 ‘노무현 패러다임’으로 부르고 싶습니다. 패러다임은 모델보다 넓은 개념입니다. 모델은 통상적으로 하나의 목표를 지향하지만, 패러다임은 여러 가지 목표를 동시 지향합니다.
박정희 모델과 노무현 패러다임의 본질적 차이점은 전자는 ‘불균형’‘성장’이고, 후자는 ‘균형’ ‘발전’이라는 사실입니다. 박정희 모델에서는 ‘오로지 경제성장’ 하나가 목표였습니다만, 노무현 패러다임에서는 경제는 물론이고 정치, 외교, 사회, 문화, 복지 등 국정전반의 업그레이드를 목표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성장과 발전은 비슷한 개념인 것 같지만, 지향하는 가치가 아주 다릅니다.
‘성장’하면 경제 하나만 떠오르지만, ‘발전’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두를 포괄합니다. 정치발전이나 사회발전이라는 말은 있지만, ‘정치성장’ 이나 ‘사회성장’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사람에게 비유할 경우 성장이 체격이라면, 발전은 체력입니다. 음식을 잘 먹기만 하면 체격은 좋아질 수 있지만, 잘 먹는다고 체력이 반드시 강해지지는 않습니다. 허우대(체격)는 좋은데, 체력이 약한 젊은이들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부 중동 산유국의 경우 1인당 국민소득이 선진국보다도 훨씬 많지만 이들 국가를 선진국으로 평가하지 않듯이 말입니다. 경제성장은 선진화의 필요조건이 필요충분조건은 아닙니다. 정치, 사회, 문화 등이 골고루 발전해야 ‘선진한국’이 가능합니다. 정치발전 없이는 경제의 재도약도 어렵습니다. 다른 선진 외국의 예를 보면, 그냥 알 수 있습니다.
박정희 모델로는 재도약 불가…“흘러간 물이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
노무현 패러다임의 주요 내용은 △성장과 분배의 병행추진 △지역균형개발 △남북공존(국가보안법 개폐추진) △권력분산 △특권층의 성역철폐 등입니다. 양성평등, 장애인차별금지, 학력제한철폐 등도 ‘균형의 범주’에 속하는 정책들입니다. 국정운영의 개방·투명·공개 원칙도 마찬가지입니다.
참여정부는 특히 신행정수도건설을 야심차게 추진하다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포기하고 말았지만, 대신 행복도시(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을 시작했습니다. 이는 국토공간 대혁신의 골간입니다.
균형발전은 박정희 모델에서 배제했던 민주주의, 인권보호, 지역균형 등 경제 이외의 중요한 가치들도 함께 업그레이드시키면서 경제성장을 구가하는 전략입니다. 경제성장 하나의 목표만 추구할 때보다 경제성장률이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박정희 모델이 압축성장을 통해 ‘국가경제의 체격’을 단시일에 키웠다면, 노무현 패러다임은 균형발전을 통해 ‘국가전체의 체력’을 강화하는 전략입니다.
정부중앙청사의 저효율 시스템에서 보듯, 박정희 모델로는 자체에 내재된 구조적 결함 때문에 국가경쟁력을 재도약시키기가 불가능합니다. 박정희 모델은 처음부터 그렇게 설계되어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박정희 모델의 향수에 젖어 있는 일부 보수주의자들은 박정희 모델을 그대로 두고도, 국가발전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것은 그들의 희망사항에 불과합니다. 흘러간 물이 물레방아를 돌릴 수는 없습니다.
사방에 ‘공사 중’ 팻말…일부는 리모델링, 일부는 재개발·재건축
국가 리모델링 공사가 사방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정부혁신을 비롯하여 정치, 경제, 외교, 선거, 언론, 노사, 교육, 부동산정책 …. 혁신과 개혁의 불길이 뻗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에 이르기까지 내용도 다양합니다. 국정 전 분야에 걸쳐 ‘공사 중’ 팻말이 붙어 있습니다.
말이 좋아 리모델링이지 일부 분야에서는 기존건물을 완전히 폐기처분하고 재건축하거나 재개발하는 식의 공사도 많습니다. 리모델링은 신사적으로 이루어집니다만, 재건축과 재개발은 절차가 아주 복잡합니다. 기득권층(이해관계자)의 반발이 거세고 저항도 만만치 않지요. 이들의 조직적인 반발로 재건축·재개발 공사가 무기한 연기되거나 백지화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리모델링이나 재건축(재개발)을 하지 않아도, 그럭저럭 잘 살 수 있는데…”라며 혀를 차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공사 중’ 팻말이 붙은 곳은 일시적으로 소란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국가경쟁력을 한 단계 높이기 위한 사회적 비용입니다.
로마 번영의 비결은? 국가지도자들의 시대정신!
박정희 모델은 퇴역했습니다. 대신 노무현 패러다임이 발진했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박정희 모델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왜 일까요?
박정희 모델을 찬성했던 사람이든 반대했던 사람이든, 또 지지했던 사람이든 저항했던 사람이든, 혜택을 본 사람이든 고초를 당한 사람이든, 모두 ‘같은 배’안에 살면서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합니다. 지금의 한국이 요구하는 시대정신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합니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에서 시종일관 시대정신을 강조합니다. “로마 번영의 비결은 국가지도자들이 시대정신을 잘 파악했다는데 있었다. 그들은 시대정신을 따랐고, 재빨리 제도화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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