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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의 민주적,계급적 발전과 노동해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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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18 13:5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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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인 |
[펌] 노동운동 위기론과 산별노조 건설운동의 반성 / 임영일 / [연대와실천]2005.7월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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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 위기론과 산별노조 건설운동의 반성
임영일 | 경남대 심리사회학부 교수, 연구소 소장 | limyil@kyungnam.ac.kr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연대와실천> 2005년 7월호 133호
1. 노동운동 위기론: 과거
1992년 당시에 그랬던 것과 유사하게, 2004년에 제기된 노동운동 위기론도 길게 여파를 끌며 어디론가 계속 진행되고 있다. 당시에도 그러했지만, 지금의 노동운동 위기론도 그저 일과성의 토론이나 논쟁으로 끝나지는 않을 듯하다.
1992년 당시의 노동운동 위기론은 구체적으로는 전노협의 위기를 그 배경으로 한 것이었다. 출범 이후 자본과 정권의 집중 탄압으로 심각한 조직위기를 겪고 있었던 전노협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민주노조 진영은 ‘대기업 연대회의’를 통해 대공장 노조들을 전노협으로 견인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하였다. 그러나 새 집행부가 전노협 가입을 공약했던 거제 대우조선에 대한 공권력 투입, 그 대책을 논의하던 ‘대기업 연대회의’ 지도부 전원 구속 등으로 이는 좌절되고 마침내는 박창수 열사의 옥중 사망사건이 벌어졌다. 구속·수배에 의한 지도부 공백과 극심한 탄압에 의한 조직 위축에 시달리던 전노협은 전력을 기울여 치열한 ‘박창수 장례 투쟁’을 끝으로 거의 빈사 상태에 처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제기된 노동운동 위기론은 어떤 내용의 것이었던가? 상식적으로라면 당연히 위기의 진원지로서의 자본과 권력의 노동 탄압, 전노협 조직의 고군분투에도 불구하고 그에 동참하지 못하고 있었던 다른 조직들(전교조를 제외한 사무직 업종조직, 재벌 대기업 조직 대부분)의 문제점이 집중적으로 거론되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위기론 논자들은 그보다는 전노협으로 대표되고 있었던 당시 민주노조운동의 운동 노선을 집중적으로 비판했다. 전노협의 비타협적 투쟁노선이 정권의 탄압을 초래하였고, 주변 조직들의 참여를 가로막았으며, 참여 조직의 이탈을 불러 왔고, 지도부와 대중간의 괴리를 불러왔으며, 나아가 국민경제의 발전을 가로막는 대립적 노사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위기론자들은 당연히 이런 저런 대안적 노동운동 노선을 제시하였다. 사회발전적 노동운동, 국민적 노동조합주의, 민주적 조합주의, 신조합주의, 사회민주주의 등등 논자들에 따라 그 이름은 다양했으나, 내용은 대동소이했다. 요컨대 노동운동이 변혁적, 급진적, 투쟁주의적 노선에서 벗어나 타협적이고 노사협조주의적인 노선으로 전환함으로써, 노사관계를 안정화하고 경기회복(당시 경기하강으로 노동운동 위기론 이전에 경제위기론이 먼저 제기되고 있었다)에 기여하며, 나아가 정치적 민주화(소위 문민정부의 시기였다)의 정치과정에도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들이었다.
반론도 없지 않았다. 당시 필자를 포함하여 여러 논자들이 이런 위기론 논자들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였던 바, 그 논지는 대략 이러했다. 첫째, 전노협의 비타협적 투쟁노선은 민주노조운동의 노선이기 이전에 노동운동의 시민권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자본과 권력의 탄압이 불러 온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점, 둘째, 이로 인해 초래된 대립적 노사관계가 국민경제를 어렵게 하고 있다는 것은 경제위기의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는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는 점, 셋째, 노동운동이 탄압에 의해 심각하게 위축된 것은 사실이나 이것이 운동의 위기를 말해주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대중들의 좌절과 분노의 축적 속에서 노동운동의 정당성과 대중적 성장의 기반은 강화되고 있다는 점, 그리고 타협이나 협조는 강요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노동운동이 계급적 대표성을 획득할 정도로 성장한 위에서라야 비로소 현실적인 선택의 하나가 될 수 있으리라는 점 등이 그것이다.
이 논쟁은 결코 논쟁을 통해 정리되지는 않았다. 논쟁의 이면에서 실제로 현실의 노동운동이 어떤 궤적을 그리며 변화했는가가 더 중요했다. 예컨대 전노협은 이후 민주노조 진영의 대표체로서의 위상은 더 이상 유지하지 못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조 진영의 총단결 조직으로서의 민주노총 건설의 초석으로 그 마지막 역할을 다했다. 전노협이 창립 당시에 내 걸었던 두 가지 핵심 목표, 즉 산별노조 건설과 노동운동의 정치세력화의 두 목표는 민주노총으로 그대로 이어져 내려 왔다. 위기론 논자들이 문제 삼았던 전노협의 비타협적 대중투쟁의 기풍 역시 전과는 다른 모습으로이긴 하나 적어도 우리 노동운동 내부의 여전히 강력한 기조의 하나로 살아 있다.
그렇다면, 1992년 당시의 논쟁은 대체 무슨 의미를 지닌 것이었던가. 노동운동을 둘러싼 모든 논쟁은 직간접적으로 노동운동 내의 어떤 경향을 반영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아마도 당시의 위기론 논자들은 전노협을 제외한 나머지 대중조직들(한국노총을 포함하여) 내의 일정한 경향들을 나름대로 대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일부 논자들은 논쟁 과정에서 전노협 출범 당시 이미 논란이 되었던 단일노총론(노총민주화론)을 변용된 형태로 다시 제기하기도 했고, 혹은 사무전문직, 서비스직 노동자들의 양적 증가 등을 근거로 생산직 중심의 전노협의 대표성을 애써 부정하기도 하였다. 전노협의 일부 조직이나 활동가들은 민주노총이 과연 전노협을 해소하고 받아들여도 될 조직인지, 못내 못미더워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의 논쟁은 노동운동 내의 이러한 복잡한 기류들과 직접 관련된 것은 아니었다. 당시의 위기론 논자들 중 대다수는 이후 김영삼 정부,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이런 저런 주요 정부 기구나 위원회들에 참여해오고 있었다. 결국 이 논쟁은 정치적 민주화의 진전과 더불어 노동운동의 계급적 진출과 그로 인해 빚어진 격심한 계급투쟁을 진정시키고, 이를 합리적으로 제도화할 필요성을 절감한 자유주의적 인텔리 지식층이 제기한 논쟁이었고, 국가-자본과 보수 언론들이 이를 활용하여 노동운동에 대한 탄압을 합리화하고자 했던 이데올로기 공세의 성격을 지닌 것이었다.
2. 노동운동 위기론: 현재
지금의 노동운동 위기론은 여러 가지 점에서 1992년 무렵의 그것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생각된다. 우선, 1992의 위기론 당시와는 달리 지난해부터 시작된 노동운동 위기론에는 다수의 현장 노조간부나 활동가들이 ‘위기’의 상황진단에 동의하면서 논의과정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위기’와 관련된 핵심적 논점도 전과는 달리 추상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이라기보다는 매우 구체적이며 현실적인 것들이다. 논점은 크게 세 가지가 아닌가 한다.
첫째, 민주노총의 대기업 사업장 일부 노조간부들이 연루된 채용비리 문제, 그리고 한국노총 상급조직의 간부들이 연루된 부패비리 문제 등 노동운동 지도부의 ‘도덕성 문제’. 둘째, 소위 ‘사회적 교섭(합의?)’와 관련하여 민주노총의 대의원대회가 격심한 내부 갈등을 노정하면서 무산되고, 이 과정에서 일부 폭력 사태까지 벌어짐으로써, 대중조직으로서의 민주노총의 조직적 권위가 크게 실추되고 조직민주주의가 크게 침해된 사실. 셋째, 한국 노동운동의 최대 현안이 되어 있는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하여 민주노총 산하 대기업노조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포괄하는 사업을 전개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들을 조직적으로 배제하고 차별하고 있다는 비판. 첫째와 셋째의 문제는 서로 결합되어 대기업 이기주의의 문제, 혹은 소위 ‘왕자병’ 문제로 이어지기도 했다.
필자는 그동안 이 문제를 둘러싸고 진행되었던 모든 토론의 과정에 최대한 참여를 자제하려고 노력했고, 극히 불가피한 경우에 한하여 간단한 생각을 피력하는 것에 국한해왔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노조 비리 문제의 경우, 그 큰 가닥은 1987년 이후 민주노조운동의 성장 과정에서 ‘아직 청산되지 못한’ 과거의 문제, 즉 과거 수십 년 동안 정권과 자본에 종속된 비자주적인 어용 노동운동의 시절에 형성된 뿌리 깊은 문제 중에서 일부가 민주노조운동의 역사 속에 편입되지 못했거나 뒤늦게 편입한 조직을 중심으로 산발적으로 드러난 것이라 보았다. 현대차 채용비리 문제가 있는데, 지금까지의 추이를 보면 이 역시 노동조합의 조직적 개입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개인 비리의 문제, 혹은 기업의 비리가 노조에 대한 영향력 행사를 위해 포섭하려 했던 일부 노조 간부들로 이어진 문제라고 보인다. 그러나 민주노조운동의 역사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문제는 곧바로 노동운동의 도덕성 상실의 문제로만 되며, 이들(대중)을 납득시킬 방법은 없는데, 이를 부정하면 변명이 되고, 이를 긍정하면 도리 없이 구차하게 ‘도덕재무장 운동’을 약속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진실에 대한 믿음만 있다면, 시간이 약이 된다.
두 번째 문제의 경우, 양비론으로 보았다. 노사정 대화 복귀를 굳이 대의원대회 안건으로 상정하여 통과시키려 한 집행부나, 이를 필사적으로 저지하려 한 반대파 모두가 필자가 보기에는 ‘사회적 합의주의(social corporatism)의 망령’에 사로잡혀 있기는 매일반이었다. 사회적 합의주의는 민주노총이 노사정 대화에 참여하기를 결의한다면 성사되고, 이를 저지하면 해체되는 그런 것이 아니다. 구조와 제도, 사회정치적 조건과 상대방의 전략적 의도,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결합될 때 형성 가능한 하나의 새로운 노동체제이다. 그러나 양쪽이 너무나 절박하게 움직였고, 그런 상태에서 양자 모두 ‘허상’을 놓고 싸우고 있다고 설득할 방법은 없었다. 양비론은 현상을 보는 올바른 시각은 아니다. 그러나 현상 자체가 양비론적일 경우가 많고, 그럴 경우 양비론은 절충이 아닌 과학이나, 그것이 당사자들을 설득할 수는 없다. 이런 경우 역시 시간이 약일 수밖에 없다. 필자가 다른 글에서 이 문제는 이제 “다 잊어버리자”고 말한 이유이다. 실제로 요즈음 상황을 보면 그때 왜 그리 싸웠는지 다들 잊어버린 듯도 하다.
셋째, 비정규직의 문제, 나아가 대기업 이기주의의 문제. 그간 이 문제에 대하여 가장 용감하게 정면으로 발언해온 현대차의 하부영씨는 민주노동당 기관지 최근호(2005년 7월호)의 글에서 이 문제를 “자본의 불순한 의도 - 자본과 정권, 보수 언론이 합작하여 무차별적으로 퍼붓는 이데올로기 공세에 편승하여 노동계 내부에서조차 본질을 외면한 왜곡된 비판”을 가하고 있는 것으로 규정하고 “결코 수용할 수 없다”고 공언했다. 그는 이 문제의 본질은 “초국적자본-독점재벌-중소영세자본으로 연결되는 이윤의 먹이사슬 구조에 노동자들 몫이 과도하게 착취”당한 데에 있다고 지적하면서, 그 근거로 1996년 이후 계속되고 있는 노동소득분배율의 악화 현상을 지적하고 있다. 물론, 그 역시 대공장 노동운동의 반성이 필요 없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는 대공장 노동운동이 98년 외환위기 이후 “사회체제의 변화에 걸맞게 공장 담벼락을 넘어서 ‘산별노조’로 크게 뭉치지 못하고 각개약진으로 혼자 살아남으려다가 1,400만 노동자 모두 위기에” 빠트린 꼴이 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필자는 이런 인식에 전반적으로 공감하며, 대공장 노조 활동가들이 이런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산별노조 건설운동에 동참하는 것이 이 문제 극복의 가장 빠른 지름길임에도 동의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보다는 더 복잡하다. 예컨대 현대차의 경우와 달리 산별노조 건설 과정에 함께 했던 노조들 중에서도 규모가 큰 노조들은 ‘대공장 이기주의’로부터 자유로울까? 산별노조로 전환한 보건의료노조나 금속노조, 금융노조 등은 그동안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화하고 그들과 함께 하기 위한 사업을 얼마나 힘 있게 추진했을까? 2004년 보건의료노조 산별교섭과 관련하여 ‘10장 2조’ 문제를 계기로 결국 보건의료노조를 탈퇴한 서울대병원(지부), 충북대병원, 울산대병원 등은 과연 ‘대기업 이기주의’의 사례들인가, 아닌가? 좀 더 나아가 보자. ‘이기주의’의 문제는 과연 대공장에 국한된 것일까. 중소기업 노동자들, 미조직 노동자들, 이들은 이기주의가 아닌 노동자 연대의 대의에 따라서 움직이고 행동하고 있는 것인가. 만일 그렇다면 우리 노동운동이 나아갈 길은 너무나 간단하다. 운동의 중심을 이기주의적이지 않은 노동자 집단에 맞추면 된다.
요컨대 이기주의냐 아니냐가 노동운동의 평가기준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필자는 회의한다. 더 나아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기주의냐 아니냐를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고 운동을 판단한다는 것이 과연 어느 정도나 타당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나는 회의한다. 도덕성과 마찬가지로 이기심의 문제 역시 운동의 판단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기주의보다 이타주의가 옳고 바람직하다는 것을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니다. 문제는 현실의 운동은 그러한 소부르주아적인 정서나 윤리의 기준 하에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냉혹한 계급적 현실과 계급적 힘관계의 작용에 의해 움직인다는 점에 있다. 이를 몰각하고 도덕성이나 이기심 운운을 기준으로 노동운동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것 자체가 이미 한 판 지고 들어가는 것이다. 그람시의 표현에 의하자면 “저(부르주아)들의 헤게모니의 장 속에서 노는 놀음”이 되어버리는 셈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도덕심도 이타심도 우리는 상관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랬다간 대중의 정서, 보수 여론의 올가미에 그대로 걸려들 수밖에 없는 일이다. 이 경우에도 역시 시간이 약이고 침묵은 금일 수밖에 없었다. 단, 현실의 냉혹한 과학적 운동이 우리의 인식 속에 있다는 자신감을 전제로.
3. 산별노조 건설운동의 반성
노동운동 위기론을 주제로 한 최근의 한 토론회 석상에서 필자는 발제도 토론도 맡지 않았지만 사회자의 요청에 따라 몇 가지 소감을 토로한 적이 있다. 대체로 이렇게 말한 것으로 기억한다.
최근의 상황을 보건대, 지난 10여 년 동안의 산별노조 건설운동은 사실상 ‘실패’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다. 돌이켜 보면, 산별노조 건설의 경로와 관련해서 우리는 정도가 아니라 편법을 취했다. 기업별노조를 해산하고 산별노조로 넘어간 것이 아니라 기업별노조 단위로 조직변경결의를 통해 이들을 산별로 통합하는 방식을 취했다. 원칙론을 버리고 현실론을 취한 것이다. 복수노조 문제와 관련하여 이탈자가 발생할 경우 대처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우려가 그 뒤에 있었는데, 최근의 상황은 오히려 기업별노조(지부 혹은 지회) 단위로 집단 탈퇴 결의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산별노조로 전환한 조직들도 실제로 내부 조직 편제와 활동체계를 산별노조 시스템으로 전환하지 못했다. 무늬만 산별이지 내용은 여전히 기업별노조 연합체였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기업별노조의 가장 큰 한계를 ‘내 조합원 챙기기’에서 찾았지만, 산별로 전환한 이후 자기 조합원을 넘어서서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 대중을 조직하고 대표하는 활동을 제대로 전개했던 노조들이 거의 없었다. ‘현장공동화’의 우려 때문에 기업단위 노조 조직들을 명칭만 바꾸었을 뿐 그대로 유지했다. 일부 노조는 기업 단위의 교섭권과 파업권을 여전히 인정하고 있었다.
2007년 문제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을 막론하고 거의 모든 주요 노조들이 산별노조로의 조직전환을 천명하고 있지만, 산별노조의 조직체계를 어떻게 짜고 이를 어떻게 운영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총노동 차원에서의 명확하고 정교한 프로그램이 없다. 지금까지의 오류가 조직 전체적으로 확산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런 준비를 지금 하고 있는가.
어느 단위보다도 이 문제에 대해 많은 논의를 해왔고 실천 작업도 해왔다고 생각되는 우리 연구소의 입장에서 누구보다도 먼저 반성적으로 검토해야 할 점들이 많은 듯하다.
보건의료노조의 조직 분규로부터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쟁점으로 불거져 있다. 그 하나는 2004년의 산별 중앙교섭과 관련된 소위 ‘10장 2조’의 문제이다. 이는 산별 중앙교섭에 의한 협약이 (최저)기준협약이냐 통일협약이냐의 문제이기도 하고, 더 나아가면 산별노조 체제에서 본조와 지부와의 권한(교섭권과 파업권) 관계 문제이기도 하다. 다른 하나는 보건의료노조의 탈퇴 조직(들)이 공공연맹 등에 가입하는 문제와 관련한 산별노조 구획 구분 문제이며, 이 문제는 금속노조 산하 INI스틸 문제와도 겹쳐서 더 불거지고 있다.
산별 중앙협약이 통일협약이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필자는 동의하지 않는다. 과거 스웨덴 노총(LO)이 전국 중앙교섭을 통해 연대임금제를 실시했던 사례를 제외하고는 산별협약이 통일협약으로 산하 모든 조직에 강제되었던 사례는 없고, 스웨덴의 경우에도 결국 이 교섭은 해체되었다. 기업별로 임금체계가 모두 다르고 임금 수준의 격차도 매우 큰 상태에 있는 한국의 경우에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사용자의 경우 산별 중앙교섭과 중앙협약 한번으로 모든 교섭을 끝내고자 하는 욕구가 강할 것이다(소위 ‘교섭비용 절감’ 문제). 그러나 그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어느 조직을 막론하고 조직 내부의 갈등이 증폭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필자가 제안했던 방식은 임금 수준과 관련해서는 당분간은 최저기준 협약으로 나아가고 노사공동으로 임금체계 통일을 위한 작업(임금체계 교섭)을 별도로 진행시키자는 것이었다. 그 대신에 임금 수준의 경우 산업별 최저임금제 도입을 위해 노력하고, 이 경우 산업별 최저임금 수준을 법정 최저임금과는 무관하게, 즉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기준에 의해 교섭해 나가자는 것이었다.
2004년의 경우, 보건의료노조도 금속노조도 산별 최저임금 교섭을 도입했으나 그 수준과 기준에 있어 산별노조의 원칙을 지키지 못했다. 여기에는 산별 최저임금의 기준을 해당 산업 ‘평균 임금의 50%’라는 매우 기계적인 기준으로 제시했던 총연맹의 지침도 일조했을 것이다. 금속도 보건의료노조도 이 교섭 과정에서 해당 산업분야 전체(미조직, 비정규직 포함) 노동자의 임금 분포와 정규직 중심의 현재 조합원의 임금실태를 정밀하게 조사하고 비교하는 작업이 없었다. 준비가 부족했던 것이고, 따라서 교섭은 했으되 실제로는 두 노조 모두 이 문제를 비껴나갔다. 법정 임금보다 약간 높은 수준으로 합의하여 체면은 세웠으나, 실제 그 최저 임금을 적용받을 노동자들은 거의 없는 상태에서 누구도 실제로 관심을 두지 않는 형식상의 협약이 되어버린 것이다.
산별노조 조직구획의 문제는 사실은 본질과는 좀 다른 쟁점이다. 문제의 본질은 산별노조가 조합원들의 개별 직가입을 기본으로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과도기적으로, 혹은 현실론에 따른 절충으로, 기업별 단위노조의 집단 결의에 의한 가입의 방식을 취했던 점, 그리고 기업 단위에는 노조 조직을 두어 운영하지 않는 것이 원칙임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관행 혹은 막연한 ‘현장공동화의 우려’로 인해 그것을 유지하고 있었고 조직에 따라서는 기업 단위의 독립 지부를 허용하고 교섭권과 파업권까지 허용해 왔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보건의료노조의 경우 산별전환 과정에서 이미 이 문제가 쟁점이 되었으나 기업 지부 체제를 도입하는 것으로 합의되었고, 결국 실제 지부 역할을 해야 했던 지역 본부는 사실상 형해화되어 있었던 것이 이 문제의 실제 배경이 아닌가 한다. 금속노조의 경우 지역지부(Local) 중심의 조직체계를 꾸리고는 있으나, 기업 단위에 노조 지회를 설치하고 있음으로 인해 지부가 아직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음을 본다.
필자를 포함한 우리 연구소의 입장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책임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산별노조의 사업장 단위 현장 조직은 산별전환과 더불어 지역지부(Local) 소속의 현장위원 체제로 전환되어야 하고, 이들이 지역 차원에서 조직, 교육, 선전, 정치활동 등 노동조합의 주요 일상 활동의 주체이자 조직민주주의의 최 하부 기간 단위가 되도록 했어야 했다. 그러나 기업별노조에서 산별노조로 전환해야 한다는 우리의 특수성으로 인해 이 문제는 심도 있게 거론되지 못했다. 2007년 문제를 앞두고 산별전환을 서두르고 있는 모든 조직들을 포함해서, 기존에 이미 산별 전환의 첫 단계를 경과한 노조들 역시 이제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고민하고, 전 조직에 걸쳐서는 아니라 해도 여건이 닿은 주요 지역 조직들을 중심으로 지부중심의 현장조직 재편의 사업을 시범적으로 진행시켜야 할 단계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산별노조의 지역지부 중심 활동체계 건설 문제가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되는 산별 구획의 논란은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산업이나 업종의 경계선이 산별노조 조직화의 획일적 경계선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다른 나라 산별노조들이 잘 보여주고 있었다. 지역지부(Local) 중심의 활동체계가 만들어지면, 각 로칼의 활동 범위와 영역이 자연스럽게 이 구획의 문제를 결정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독일 금속노조 함부르크 지부에는 지역의 백화점 판매원들이 대거 가입해있다. 미국 UCLA 대학의 조교 노조원 1,500명은 미국 자동차노조(UAW) 지부(Local 253) 소속이다. 산업이나 업종과 상관없이 실제로 노조 조직화와 투쟁의 과정에서 어느 조직이 이와 적극적으로 결합하여 연대하고 지원했는가에 따라 자연스럽게 조직화가 이루어져 간 것이다.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예컨대 보건의료노조의 한 지역지부(지금 이런 조직은 없다)가 제조업 노조 조직이 존재하지 않는 인근 지역에서 소규모 봉제공장 노동자들의 조직화를 돕고 투쟁을 지원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자연스럽게 이들을 지부 조합원으로 받아들이는, 이런 시스템이 존재하는가, 혹은 그래서는 안 되는가의 문제이다. 마산창원지역의 경우 과거 전노협 시절 하나의 지역 조직(마창노련) 소속으로 함께 사업하고 함께 투쟁했던 사업장 두 개(커피 공장, 병유리 공장)가 민주노총 출범 시 산별구획의 문제 때문에 따로 분리되어 금속이 아닌 화학으로 재편된 일이 있다. 금속 사업장이 대부분인 지역적 특성 때문에 이 노조들은 지역에서는 고립적인 활동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게 되었는데, 만일 최근 논의되고 있는 대로 금속노조와 화섬노조가 앞으로 통합하게 되면, 이런 조직들이 다시 하나의 조직(제조산별 등)으로 다시 규합되는 일도 벌어질 수 있을 터이다. 고용상태는 물론이고 필요하다면 산업과 지역의 분할을 넘어서서 노동자들이 하나의 조직으로 통합되는 것이 산별노조의 조직원칙이 아닌가.
4. 원칙에 따른 산별노조 건설을 위해
과거 일본의 기업별노조들이 산별노조 건설에 실패한 이유는 어디에 있었을까. 많은 사람들이 일본의 경우에도 기업별 대기업 노조들의 이기주의 문제를 지적해왔다. 그러나 필자가 아는 한, 그것이 본질은 아니었던 듯하다. 일본의 산별노조 운동은 우리의 경우와는 달리 기업별노조들을 산별노조로 전환시키는데 중점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기업별노조 체제를 그대로 둔 채, 상급조직으로서의 산별연맹에 노조의 권한인 교섭권과 파업권을 집중시키는 방식이 주가 되었다. 우리로 치면 과거 산별연맹 중심으로 요구안을 통일시키고 시기집중 투쟁을 배치하는 방식과 유사했던 셈이다. 춘투(春鬪)라고 하는 것이 바로 이 과정에서 형성된 투쟁 방식이었는데, 1980년대 불황기를 틈탄 사용자 공세로 상급노조들의 양보교섭이 반복되고, 나아가 토요다 등에서 본격화된 일본적 유연생산체제의 확산으로 대기업 노조들에서의 노사협조적 생산체제(소위 일본식 생산방식)가 강화되는 속에서 급속히 무력화되었다. 설상가상으로 기업 단위 복수노조 체제 하에서 사용자들이 구사한 차별교섭의 전략에 의해 대부분의 대기업노조들이 주저앉았던 것이 결정적인 타격이 되어 일본의 노동조합은 돌이키기 힘든 쇠퇴 기조 속으로 빠져 들었다.
우리의 경우 산별노조 건설운동의 핵심에 조직재편이 있어, 제대로 진행되기만 하면 일본의 전철을 밟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실천을 돌이켜 보면, 산별노조로 조직재편을 함에 있어서 기업별노조의 유산을 극복하는 작업을 제대로 해온 것은 아니라는 반성을 할 수밖에 없다. 최근의 여러 사태들은 그로부터 불거진 것들이 아닌가 한다. 급할수록 둘러가라 했던가, 2007년이 바로 코앞이지만 그럴수록 원칙에 입각한 실천을 추구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한 가지 에피소드. 경제위기 직후 울산 현대정공이 현대차에 합병되어 노조도 합병되고, 나아가 기아차도 현대차에 인수되던 시절, 현대-기아를 통합하여 하나의 노조로 만들어 보려는 시도가 있었다. 물론 향후 산별노조로의 전환을 염두에 둔 것이기도 했다. 당시 이 작업을 추진했었던 당사자들이 만든 현대-기아 통합노조의 규약(안)을 보면, 통합 노조의 조직체계를 공장 혹은 부서별 지부체계로 ‘쪼개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이 안을 만들었던 당사자의 설명에 의하면, 쪼개진 각각의 지부는 향후 건설될 금속산별노조 산하의 지부로 편성되어 각각 인근의 다른 중소사업장들과 결합한 지역지부들로 재편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요컨대 산별노조 체제가 되면 현대차는 진짜 몇 개로 쪼개져 각각 금속산별노조 울산 1지부, 2지부, 3지부 등으로 분할 편성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고 한다. ‘현대차 지부’가 아니라. 거대 완성차 노조가 한 단위로 남아 있으면 결국 산별체제 하에서도 독립적 기업별노조의 양태를 그대로 유지할 것이라 우려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이 안은 실현되지 못했다. 그러나 ‘대기업 이기주의’와는 전혀 다른 이런 고민을 하는 노조간부와 활동가들이 우리 대기업노조들 내에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야 말로 우리 노동운동의 희망이 아닐까 한다. 내친 김에 한마디만 더하면, 차제에 대공장 내부의 다종다양한 활동가 현장조직들이 하나로 통합하여 현장위원 체제로 전환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정파는 말 그대로라면 정치활동의 단위여야 하고, 그러자면 그 조직과 활동의 위치는 기업별노조 내부가 아니라 지역과 전국의 대중적 정치활동의 공간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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