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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의 민주적,계급적 발전과 노동해방 |
주간동향과 초점 > 동향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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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29 20:50: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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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인 |
[노동해방실천연대] 열사를 ‘부정’하는 노동운동은 가라!, <해방>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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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사를 ‘부정’하는 노동운동은 가라!
<해방>4호, 노동해방실천연대
9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죽음을 불사하는 항거가 계속되었다. 고 류기혁 열사가 노조에 대한 탄압에 맞서 자결한지 1주일도 안 지나서 고 김동윤 열사가 박탈된 생존권 때문에 분신하셨다. 그 사이 경찰청 계약직 노동자들은 고공농성을 강제해산하는 경찰 특공대에 저항하다가 20m 탑에서 투신했다. 노동자가 살기위해서는 죽어야만 하는 자본주의 세상, 가히 미쳐버린 세상이 아닐 수 없다.
열사가 아니다???
그런데 열사의 죽음 앞에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졌다. 바로 현대차 정규직 노조 측에서 故 류기혁 열사가 근태불량으로 해고당한 것이라느니, 유서가 없다느니 하면서 열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누가 말했는지 몰랐다면, 마치 故 류기혁 열사에 대해서 어떻게든 흠집을 내려고 하는 현대차 자본의 주장인가 착각이 들 정도이다. 현대차 정규직 노조를 제외한 전국의 모든 시민사회단체, 노동운동진영 모두가 열사의 자결이 노조탄압 때문이라고 성명서를 발표하고, 열사라 칭하며 열사의 정신을 계승하자고 하고 있건만, 정작 현대차 정규직 노조는 죽음에 대해서 애도는 표할지언정 끝끝내 열사라는 명칭을 부정하였다. 결국 민주노총 중앙위에서는 타협책으로 열사는 빠지고 이름만 들어간 대책위로 결론을 내렸다. 단위 노조를 지도해야할 상급단체가 단위 노조에 휘둘려서 원칙을 져버리고 열사를 두 번 죽이는데 공범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얼마 전 임단투가 마무리되면서, 이제 현대차 정규직 노조가 열사를 부정한 실체는 만천하에 드러났다. 동시에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은 또다시 실질적으로 유보되고 말았다.
그러나 현대차 정규직 노조는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간에 지금 현대차 자본이 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할 것이다. 그 역할이란 바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의 김을 빼고, 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불신의 골을 깊게 패게 하여 한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계급들을 분리시키는 역할이다.
정규직 정서 운운은 비겁하다!
하긴 비정규직 열사를 부정하는 짓거리는 작년에도 터졌었다. 현대중공업 노조가 고 박일수 열사 투쟁에 대해 책임을 방기하다가 결국 금속연맹에서 제명당했다. 이렇게 열사를 부정하고 비정규직 투쟁을 외면할 때마다 정규직 노조가, 집행부가, 활동가가, 현장조직이 들먹이는 변명이란 바로 ‘정규직 조합원 대중의 정서’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활동가가 조합원 대중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너무나도 비겁한 태도이다. 게다가 그 이면에는 대중을 우매하다고 보는 잘못된 시각까지도 깔려 있다. 물론 대중은 자본의 이데올로기에 포섭되어 비정규직의 존재가 정규직의 고용 안전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활동가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 노동계급 전체의 보편적 이해인 비정규직 철폐를 잘 이해할 수도 있다. 결국 대중이 문제라기보다는 활동가의 자세와 관점이 문제 해결의 관건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합원 대중의 정규직 정서를 들먹이면서 비정규직 정규직화 투쟁을 방기하는 활동가는, 대중을 후진적이라고 섣불리 재단했기 때문에도 잘못된 것이요, 무엇보다 노력하고 실천하지 않은 자기 자신을 반성하기 보다는 도리어 조합원 대중을 탓하기 때문에 더더욱 잘못된 것이다. 회피하려는 자는 변명을 찾고, 투쟁하려는 자는 방법을 찾는다. 정규직 정서를 말하는 활동가는 오히려 창피한 줄을 알아야 한다.
부정할 것은 자본이 강요하는 질서일 뿐
고 류기혁 열사를 부정하는 노동운동은 결국엔 자본이 강요하는 질서에 굴복하고 순응하고 만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노동운동을 껍데기로 만들고 노동해방을 향한 노정에서 운동을 후퇴하게 만들 뿐이다.
열사를 부정하는 노동운동은 가라! 오히려 부정할 것은 자본이 강요하는 질서일 뿐이다. 그리고 故 류기혁 열사의 정신을 계승하는 노동운동은 바로 현대판 노예제도인 비정규직 자체를 철폐해 나가는 것이다. 자본이 갈라놓은 두 부류의 노동자를 하나의 노동자로 만드는 것은 자본이 강요하는 질서를 부정하는 첫걸음이자, 우리들 모두의 몫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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