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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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21 16:28:10

인천일보노동조합

http://www.incheonnojo.net

인천일보 투쟁 르포

지난 6일 시민공동대책위원회 기자회견 후 김형태 노조위원장 권한대행, 이종만 기자의 삭발식 장면. /박영권기자 (블로그)pyk

-"거친 풍랑 피할 수 없으면 부딪혀라" 개혁의지 활활-

#. 프롤로그

항구를 건너온 바람이 찼다. 겨울이 온 것인가? 올해에는 가을을 맞을 새도 없이 불청객 같은 겨울을 맞았다. 불과 20여일 전, 숲과 나무의 초록빛이 완연했었다. 계절은 자비심이라곤 없었다. 그러나 동료들과 함께 회사 농성장에서 맞는 밤은 그 어느 밤보다 훈훈했다.

회사 1층 로비에 직원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업무국 직원들이 먼저 모였다. 연이어 어딘가에서 솜처럼 흩어져 있던 편집국 외근기자들과 내근기자들이 모여들었다. 지난 밤, 농성장에서 소주 몇 잔을 기울이며 밤을 꼬박 새운 동료들의 눈동자엔 희망의 빛이 엿보이고 있었다.

회사를 지켜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에 찬 믿음이 동료들 사이에서 흘렀다. 처음 경영진의 폐업기도가 현실화됐을 때 감돌았던 섬돌 같은 불안감은 보이지 않았다.

지난 밤, "주주총회 장소에 용역깡패들이 올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폐업을 막아야 한다"는 투쟁 지도부의 말에 동료들의 눈빛은 한결같이 불 타 올랐다.
주주총회가 시간을 토막 내며 다가오고 있었다. 더 이상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이제 가야할 시간이었다. 아니, 다시 모여야 할 시간이었다.

지난 삼 년 반은 살점을 도려내고 뼈를 깎는 세월이었다. 동료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아픔을 겪었고 서로 등을 돌려야 했다. 그러나 개혁언론으로 새롭게 일어서기 위해선 폐허더미에 장미꽃을 피우는 심정으로 이를 감내해야 했다.

이후 몇 번의 고비가 있었지만 회사는 빠르게 안정을 찾아갔다. 시민사회에서도 인천일보의 개혁 의지와 노력에 신뢰를 보내기 시작했다. 업무국 직원들이나 편집국 기자들도 언론개혁을 이뤄내자며 굳은 의지를 다져가고 있었다.

그러나 회사 경영진과 간부들의 생각은 달랐다. 그들은 눈앞에 이익을 좇는데 급급했다.

#. 폐업에 맞서다

'인천일보 발전을 위한 노사협의'라는 문건을 회사 측으로부터 전달받은 때는 10월 11일이었다. 문건은 그 동안의 개혁 성과와 편집권 독립, 노사화합의 정신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것은 굴복과 개혁 언론의 목을 내밀라는 것을 의미했다. 동료들은 간담회를 열고 사측의 협의 '문건'은 언론개혁을 퇴보시키는 것이라는데 결론을 내리고 사측에 이 같은 뜻을 전달했다.

그러자 경영진들과 편집국 간부들이 썰물처럼 회사를 떠났다. 회사는 경영공백 상태에 빠졌고 편집국도 혼란에 빠졌다. 인천일보를 이끄는 양축인 업무국과 편집국 책임자들이 모두 자리를 떠난 것이었다. 급여도 지급되지 않았다. 그러나 직원들과 기자들은 동요하지 않았다.

인천일보 기자협회는 긴급회의를 열고 신문을 정상적으로 발행하고 제작하는데 노력을 다 할 것이라는 결의를 했다. 업무국 직원들도 회사 업무에 충실하기로 결의를 다졌다.

인천일보 구성원들의 이 같은 회사 살리기 노력과는 반대로 회사를 뛰쳐나간 경영진은 회사를 폐업시키려는 음모를 착착 진행하고 있었다. 경영진은 비밀리에 이사회를 열어 이사들을 속이고 사표를 받아내고 폐업모의를 위한 주주총회를 소집했다. 이미 회사 바깥에는 '인천일보는 망한다'는 등 온갖 괴소문과 흑색선전이 떠돌기 시작했다.

상황은 급류처럼 급박했다.
동료들은 사원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시민사회에 도움을 요청했다. 지역사회를 대표하는 인천일보가 존폐 위기에 놓이자 시민편집위원회의 요청을 받은 시민사회에서 도움을 주기 시작했다.

시민사회 단체들은 '인천일보 정상화를 위한 시민공동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폐업음모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사원대책위를 중심으로 동료들은 회사 주주들을 만나 현사태의 본질을 설명했다.

시민공대위 인사들도 주주와 이사들을 만나 인천일보를 살려야한다고 호소했다. 우리에게는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주주총회는 코앞에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주총회를 이틀 앞둔 11월 6일 오전, 인천시청 현관 앞에서는 인천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 인천일보 정상화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언론을 사유화 하고 기자들을 앵벌이로 내모는 자본의 언론장악 음모에 시민사회가 맞서 싸우겠다는 결의를 밝혔다. 동료들은 천군만마를 얻은 듯했다.

이날 노조위원장 권한대행을 맡고 있는 김형태 사원과 사회부 이종만 기자가 삭발을 했다. 겨울을 재촉하는 찬비가 어깨 위로 흩뿌려졌다. 삭발을 하는 동료들의 머리카락이 뭉텅뭉텅 잘려나가자 누군가의 볼에 뜨거운 눈물 한줄기가 흘러내렸다.

11월 8일 주주총회 당일, 바람은 거칠었다. 기온이 갑자기 아래로 곤두박질쳐 몹시 쌀쌀한 날씨였다. 하지만 거센 바람과 차가운 날씨는 회사를 지키겠다는 동료들의 의지를 꺾진 못했다. 그 어떤 시련도 이겨내 온 그들이었다. 동료들은 회사를 지켜낼 수만 있다면 이깟 찬바람 속에서 몇 달도 버텨낼 수 있다는 의지로 뭉쳐있었다.

결국 인천일보 130여명 직원들은 경영진의 폐업음모를 막아냈다. 주주들이 사태를 촉발시킨 경영진의 폐업요구를 거부하고 사실상 그들에게 이번 사태의 책임을 물은 것이었다.

그러나 승리에 도취되기엔 아직 일렀다. 경영진의 폐업시도는 집요했고 또 다른 위기가 날을 세우며 다가오고 있었다. 회사를 버리고 떠난 이들은 "회사가 곧 망한다"며 사회 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후배 기자들을 회유했다.

회유는 끊이지 않았고 흡혈판을 살갗에 붙인 거머리처럼 집요하게 이어졌다. 그것은 협박에 가까웠다. 그러나 후배들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되레 어떤 감언이설로 현혹하려 들어도 그들은 더욱 강고해졌다.

#. 계속되는 폐업 음모, 가압류 위기 직원들의 희생으로 막아내다

경영진 측의 경영파업으로 직원들은 전혀 급여를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임금체불 두 달째였다. 오로지 임금에 생활을 기댈 수밖에 없는 임금노동자에게 체불은 생계에 심각한 위협이었다.

그러나 동료들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설령 퇴근길 골목 허름한 술집에서 소주로 속을 달랠지언정 그 어느 누구도 힘든 기색을 드러내지 않았다. 동료들은 이구동성으로 "급여를 못 받는 한이 있어도 신문제작 만큼은 중단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질 좋은 신문을 만들겠다는 것은 시민들과 맺은 약속이었다. 마지막 한 사람까지 쓰러져 죽는 일이 있더라도 신문을 찍어 내는 것은 혈액형 같은 우리의 의무였다.

11월 9일, 종이를 대는 거래처와 퇴직 간부 등이 각각 밀린 대금과 퇴직금을 요구하며 회사 통장을 압류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당장 압류를 풀어야할 돈은 4억3천여만 원이었다. 보름치 신문종이를 확보해 놓고 있었지만 가압류가 계속될 경우 신문발행이 중단될 위기에 놓인 것이었다. 동료들은 가압류를 풀기 위해 거래처를 방문하는 등 사방팔방 뛰어다녔다.
"인천일보는 곧 정상화 된다. 믿어 달라. 시민들이 우리를 지지하고 있다."

사원대책위와 동료들의 눈물어린 노력과 호소, 시민사회의 지지 덕분으로 가압류는 일주일 만에 풀렸다. 가압류를 풀기 위해 동료 스무명이 연대보증을 섰다. 힘든 결정이었을 것이다. 만일 회사가 문을 닫게 된다면 회사가 갚아야할 빚을 보증을 선 동료들이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흔쾌히 연대보증서에 도장을 찍었다. 연대보증서에 이름을 쓰고 도장을 눌러 찍는 동료들은 어떤 망설임도 주저함도 없었다. 진정 그들은 목숨을 걸 만큼 회사를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희생으로 가압류가 풀린 15일 오후, 윤전실. 전날까지만 해도 윤전실 한켠에 쌓여 있던 신문용지가 하루가 다르게 줄어들고 있었고 회사 통장이 가압류를 당해 돈이 있어도 맘대로 신문용지를 사올 수 없어 윤전기를 돌릴 수 없다는 불안감이 팽배했었다.

윤전실 동료들은 윤전기와 신문용지를 목숨보다 소중히 여겨왔었다. 매일 윤전기를 닦고 기름칠 하던 그들이었기에 신문제작 중단은 목숨을 내놓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차라리 피를 토하고 쓰러져 죽을지언정 스스로 윤전기를 멈출 수는 없는 일이었다.

윤전실 한 동료는 "월급은 회사가 정상화되면 언제든 받을 수 있기에 잠깐의 고통은 감내할 수 있지만 우리 신문의 주인인 독자들에게 신뢰를 저버리는 신문발행 중단은 있을 수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단호히 말했다.

#. 에필로그 -마침내 언론 개혁 길로 나서다

경영파업 사태가 벌어진 지 두 달째를 맞고 있다. 지난달 18일 경영진을 비롯한 업무국·편집국 간부들의 집단 사표에 의한 경영파업 사태, 퇴사자들의 동료 후배기자 흔들기, 11월 8일 임시 주주총회에서의 폐업결의 모의, 거래 은행의 회사 통장 출금 정지, 회사 통장 가압류 등이 숨 고를 새도 없이 해일처럼 몰려왔었다.

그러나 결국 이를 이겨냈다. 오히려 위기를 개혁 언론으로 거듭나기 위한 자양분으로 삼고 지난날의 잘못을 진정으로 반성하고 시민사회에 도움을 청했다. 시민사회는 단백질 같은 우리의 우군이었다.

동료들은 복잡하게 얽인 실타래를 한 올 한 올 풀어나가는데 전력을 기울였다. 전혀 흔들림도 없었다. 언론 개혁을 후퇴시키려는 집단의 끊임없는 회사 파괴 시도가 이어졌지만 그 때마다 동료들은 벼린 쇠처럼 단단해져 갔다.

회사 농성장과 사원대책위, 시민공동대책위, 편집국 사무실에는 밤늦은 시간까지 불이 꺼지지 않고 있다. 회사에서 바라본 내항의 밤바다는 기름처럼 고요했다. 항구의 바다는 인천일보 18년의 역사를 지금껏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거대한 크레인들이 움직임을 멈추고 부두에 정박한 선박들이 불을 끄고 있는 어두운 밤이지만 저 어둠의 그늘 속 어딘가에 살아있는 것들의 뭉클한 삶이 가슴 벅차게 요동치고 있을 것이다.

멀리 내항의 바다에 아침 노을이 눈이 시리도록 번져왔다. 그래,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인천일보 특별취재팀
종이신문정보 : 20061120일자 1판 6면 게재 인터넷출고시간 : 2006-11-19 오후 10: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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