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대한민국! 우리의 가슴에 너를 지운다.
지난 4월 20일 부산고등법원의 판결을 받으며 태광의 해고자들은 말을 잊었다. 가정이 무너지고 생존권을 박탈당하면서 싸워온 4년여의 공든 탑이 자본을 대변하는 재판관의 한마디에 일거에 무너졌다. 자본과 재판부가 철저하게 짜고 치고 고스톱이 아니라면 이런 결과는 나올 수 없었다.
도대체 대한민국이 누구의 나라이고 법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기가 막혀 할말을 잊었다. 법에 대한 판단의 기준은 자본의 더 많은 착취를 정당화시키기 위한 것이란 말인가.
법을 만들었으면 법 문구 그대로 해석하고 판결하는 것이 법의 일반적인 원칙이 아니던가. 그것이 법치국가가 아닌가.
제멋대로 자본의 편의대로 해석하고 정치적 입김에 따라 법을 확대해석한다면 법을 뭣 때문에 만들며 사람들에게 지킬 것을 강요한단 말인가.
더 이상 노동자들이 최소한의 인간의 가치로 살아갈 수 없는 나라 대한민국, 더러운 자본의 나라 대한민국에 한숨과 울분만이 쌓인다.
정부와 정치권은 자본가 놈들의 편의를 위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착취를 더욱 확대하는 비정규 보호(?)법안, 그리고 해고를 더욱 쉽게 하는 법을 만들겠다고 한다.
그러나 보라! 법이 만들어지기 전에 없는 법을 동원하여 판결을 내려 노동자들을 죽음의 벼랑 끝으로 내모는데 새로운 법이 무엇 때문에 필요하단 말인가. 법 만들기 전에 향후 만들 것을 예상하여 판결을 내리고 그것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새로운 법을 만드는 것인가.
노동자들을 길거리로 내몰고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계열사를 끝없이 늘리는 것이 긴박한 경영상의 위기의 이유로 합당하단 말인가. 교섭위원마저 정리해고 하고 사측 안을 그대로 수용한다고 해도 정리해고를 자행한 것이 노조와의 성실한 협의였단 말인가. 정리해고를 자행한 이후에 노동조합에 대한 희망을 잃고 대대적으로 희망퇴직 한 것이 해고회피를 위한 노력이었던가. 전현직 민주적인 노조활동가들 전부를 해고시키고 파업에 참여한 조합원들만 100%해고시킨 것이 올바른 선정기준에 합당하단 말인가?
적자를 예상하여 정리해고를 했는데 시간이 지나 적자예상이 거짓임이 드러났는데도 그때는 그 거짓이 근거가 있었노라고, 말도 안되는 정리해고에 대하여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린 부산고등법원 판사들, 당신들이 판사가 맞기는 맞나? 그 판결로 인해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내몰리고 부당한 판결을 받고 죽어가야 하는지 당신들이 생각이나 해보았는가.
2003년 수많은 노동자들이 손배 가압류로 인하여 불타죽고 떨어져죽고 목매어 죽어갔다.
그런데 부산고법에서는 해고노동자들에 대한 손배 본안소송에서 지난 2004년 문제가 됐던 울산지법이 판결한 1억9천만 원에 3400만원을 더 보태어 손해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리고, 가집행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파업은 조합원 총회에서 결정되었고, 위원장의 결단으로 시작되었다. 설사 잘못되어 배상을 받더라도 노동조합이나 당시의 책임적인 위치에 있던 사람들에게 청구하는 것이 원칙이 아닌가? 그런데 노동조합에 대한 소송을 취하하고 위원장 및 임원들, 그리고 상집부장들에 대한 소송은 모조리 취하시킨 상황에서, 파업 당시 하달 받은 지침을 따른 사실밖에 없는 대의원 및 조합원들에게 손배배상 판결을 내리는 것이 과연 형평성에 맞는 판결이라는 말인가.
도대체 또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을 죽여야만 직성이 풀린단 말인가.
판사가 법으로써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죽음의 벼랑 끝으로 내모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이번 태광에 대한 해고무효소송과 손배 본안소송을 판결한 부산고법의 판사들, 자본의 앵무새노릇을 한 당신들은 자본의 법을 말할 인간백정의 자격증은 있을지 몰라도 적어도 그 더러운 입으로 법이 만인에게 평등하다는 말을 할 자격은 없다.
영원히 더러운 자본가 놈들의 충견노릇으로 천년만년 살아가라.
돈이 없고, 권력이 없으면 한순간도 편히 살 수 없는 대한민국에 대해 환멸을 느낀다.
돈 없으면 교육도 제대로 못 받고 아파도 병원에도 못가는 세상, 아니 최소한의 기본인 법적인 판결마저 차별받는 세상, 그 더러운 세상에 분노의 치를 떤다.
평범하게 살고픈 우리들의 소박한 꿈마저 이룰 수 없는 나라, 우리의 자식들의 발전을 위해 희망을 말할 수 없는 절망의 나라 대한민국. 우리들 가슴속에 너를 지운다.
2005년 4월 28일
태광산업 대한화섬 정리해고저지투쟁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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