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우리 260여 KTX승무원들은 철도공사의 대량 정리해고에 맞서 지도부 무기한 단식에 돌입한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철도는 새마을호라는 특급열차를 만들고 새로운 서비스를 도입하면서 여승무원이라는 존재를 만들었다. 고객을 상대로 한 ‘서비스’는 남성이 아닌 여성이 해야 한다는 전근대적인 사고로 새마을호여승무원들을 채용했지만 그래도 그때 당시 이들은 정규직이었다. 하지만 매달 보건휴가를 지급해야하고 임신을 하면 출산휴가를 줘야하며 나이가 들어 아줌마가 되면 보기 싫다는 이유로 새마을호여승무원들은 해고가 용이한 비정규직으로 전환될 수밖에 없었다.
2004년 세계 다섯 번째 고속철도인 KTX의 개통을 맞아 철도청은 새마을호여승무원에 이어 KTX 여승무원도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으로 채용했다. 게다가 철도청과 정부는 KTX 여승무원을 철도노동자의 외주위탁이라는 구조조정의 첫 대상으로 삼았다. 철도공사는 직접고용 정규직인 항공사 여승무원에 견주며 KTX 여승무원이라는 새로운 직업에 대한 비전을 제시했으나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우리들은 입사한지 불과 몇 달 만에 꿈과 자부심을 완전히 짓밟혔고 이제는 생존권마저 박탈당했다.
우리는 철도공사와 정부의 구조조정에 희생양이 되어 이중의 착취를 당하며 살아왔다. 공사의 외주화 정책은 차별과 억압의 근본적인 이유이다. KTX 여승무원을 내맡기려는 철도공사 자회사인 KTX 관광레저는 철도유통과 똑같이 중간착취로 이윤을 남기는 하청업체에 불과하며 철도공사가 노동자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도구일 뿐이다.
우리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하청 노동자라는 이유로 마구 자행되는 차별과 착취에 더 이상 침묵할 수 없었고 KTX 승무원으로서 철도의 안전과 발전을 위해 일하고 싶었다. 감사원을 비롯한 정부기관이 직접고용을 권고하고 수많은 여성사회단체들이 직접고용을 요구했으며 국회 여성의원들도 우리의 투쟁을 지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철도공사 이철 사장만이 외주화를 고집하며 공권력에 의존해 우리의 정당한 투쟁을 폭력으로 진압했고 급기야 260여명의 승무원들을 대량 정리 해고하기에까지 이르렀다.
노동자들에게 생명과도 같은 일자리를 빼앗고 오로지 비용절감과 이윤확보를 위한 외주화와 구조조정에 눈이 먼 철도공사는 더 이상 ‘국민의 철도’가 아니다.
우리는 철도공사의 대량 정리해고에 맞서 다시 투쟁 결의를 다지고 이 자리에 섰다. 지도부의 죽음을 각오한 단식투쟁을 결의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생명을 걸고 이 정당한 요구를 다시 한번 사회에 알려내고자 한다.
우리는 5월 24일을 기점으로 「정리해고 철회, 직접고용」에 대한 철도공사의 책임 있는 답변을 요구하며 지도부 단식에 돌입한다. 우리는 철도공사가 KTX 여승무원들을 비롯한 모든 철도노동자와 함께 발전하며 철도 공공성을 지키고자 하는 우리의 정당한 요구에 귀를 열고 진심으로 대화에 나서기를 희망한다.
철도공사와 정부가 우리의 요구를 또다시 외면한다면 KTX 여승무원과 철도노동자는 모두 함께 분연히 떨쳐 일어나 더 강고한 투쟁을 전개할 것이다. 또한 노동자의 목숨을 끊는 것과 같은 대량 정리해고를 저지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이제 탄압, 착취와 차별로 고통 받은 우리 KTX 승무원 앞에 철도공사가 답을 제시할 차례임을 온 국민 앞에 알리는 바이다.
2006년 5월 24일
서울, 부산 KTX 열차승무지부
[기자회견문] 지도부 단식을 시작으로 총력투쟁을 선포하며
“정리해고 철회! 직접고용 쟁취!” 요구가 수용될 때까지 결코 투쟁을 멈추지 않겠다.
철도공사가 일방적으로 정한 19일 이적시한이 지났다. 무려 260명이 넘는 젊은 여성노동자들이 하루아침에 일터를 잃게 되었는데도, 이와 같은 잔인한 사형선고를 내린 장본인 철도공사는 아직 공식적 입장발표나 보도자료도 내지 않았다. 그저 “19일까지 이적에 불응한 여승무원들과의 법적인 고용관계는 모두 끝났다”고 철도공사가 말했다는 언론보도를 통해 우리들이 끝내 ‘정리해고’된 것임을 확인하고 있을 뿐이다.
그간 우리 KTX승무원들은 대화조차 거부했던 철도공사를 상대로, 말로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눈물을 닦아주겠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아무런 책임과 권한도 없다고 변명하는 정부를 상대로 끈질기게 투쟁해왔다. 철도공사 사장을 직접 보고 말하고 싶다는 소박한 요구가 경찰의 군홧발에 무참히 짓밟히면서도, 여성총리에 대한 부푼 기대와 바램이 공권력의 무자비한 연행에 유린당하면서도, 열린우리당과 서울시장 후보들을 찾아가 농성하고 외쳐도 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냉혹함에 치를 떨면서도, 최후의 보루라고 믿었던 국가인권위원회의 무사 안일함에 배반당하면서도 결코 단 한번도 투쟁의지를 꺾거나 포기한 적이 없다.
온갖 방법을 다 썼고,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정부와 철도공사는 아직 태도를 바꿀 기색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런 탓인지 일각에선 우리들이 무모하게 “계란으로 바위 친 격”이라거나 “퇴로없는 투쟁”을 한 탓이라고 말한다. 허울뿐일지라도 “KTX관광레저 정규직”이라는 철도공사의 제안을 수용하는 편이 나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힘있는 사람과 세력들이 우리의 주장을 모르쇠하거나 배척한다 해도, 우리의 힘이 “바위에 부딪혀 깨져 버리는 계란”과 같이 미약한 것이라 하더라도 “직접고용 정규직화”를 염원하는 우리의 투쟁을 결단코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시 한번 분명히 선언한다.
우리가 절대 투쟁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지난 2년 동안 뼈저리게 느낀 불의와 차별의 현실이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를 시정하려한 우리의 요구가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고 인권차별을 철폐하고자 하는 시대적 정당성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지난 82일간의 투쟁 과정에서 이 땅 수백만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이 우리의 투쟁 승리를 희망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절대로 투쟁을 멈추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오늘 우리는 투쟁지도부 2명의 단식을 시작으로 총력투쟁을 선포한다. 이제 우리는 거짓과 기만으로 우리들을 농락했던 권력에 더 이상 의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들의 자주적 투쟁과 이 땅의 진정 양심적이고 개혁적인 세력들의 힘을 모아서 당당하고 굳세게 우리의 요구를 관철해 나갈 것이다. 2명을 10명으로 10명을 100명으로 1000명으로, 아니 수천만명의 힘으로 확산시켜 반드시 투쟁 승리를 쟁취할 것이다.
우리 사회의 미래를 희망으로 가꾸어갈 꿈을 간직했던 260여명의 KTX승무원들을 길거리로 내몰고도 단 한마디 변명조차 하지 않는 철도공사에 다시 요구한다. “일방적 정리해고 조치를 즉각 철회하라.” 그리고 지금 당장 적극적이고 성실한 대화에 나서라. 만약 철도공사가 오는 5월 26일(금) 12시까지 우리들의 대화요구에 분명하게 답하지 않을 경우, 우리는 죽기를 각오하고 투쟁의 강도를 더욱 높여갈 것이다. 철도공사의 태도변화와 성실한 교섭 성사를 강력하게 촉구한다.
2006년 5월 24일 / 전국철도노동조합 서울·부산 KTX열차승무지부 260여 승무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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