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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엥겔스원전읽기(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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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12 22:17: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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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희 |
엥겔스,권위에_대해_선집4권.hwp (15.0 KB), Download : 264 |
[권위에 대하여-엥겔스] 발제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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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집 4권에 실린 "권위에 대하여", 엥겔스, 발제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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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에 관하여
엥겔스, 1872.10-1873.3, 출전 『1874년도 공화력』
발제: 2005/01/11, 강혜원
1872년, 이탈리아의 노동자계급에 대한 무정부주의의 영향에 맞서 ‘권위’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했던 글. 이 글은 맑스의 ‘정치 문제에 대한 무관심’과 함께 사회주의자들에게 무정부주의에 대한 투쟁을 위한 이론적 토대의 역할을 하였다.
Q. (무정부주의자들이) 정치 활동의 영역에서 이러저러한 활동을 “권위적”이라고 비판할 때, 그 ‘권위’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다른 사람의 의지를 우리의 의지에 강요하는 것, 그리고 이러한 권위는 다른 한편으로 종속을 전제하고 있다는 것”(275) 하지만 자치주의자들이 주장하듯이, 모든 종속이 부재하고 자유의지에 의해 살 수 있는, 따라서 권위가 부재하는 그런 상태는 과연 존재하는가?
A. 현대 산업사회는 과거의 개인들의 독립적인 행동들을 점차 집단적이고 사회적인 협업의 생산관계 속으로 포섭해 간다. 생산과정에 도입되는 기계의 발달과 그것의 적용 영역의 확장은 생산과 유통에 있어서 인간의 노동력(노동활동)의 기계(생산의 구조)로의 종속을 심화/확장시킨다. 예를 들어, 철도의 운행과 배의 조종은 그것의 작동을 위한 절대적인 권위를 필요로 한다. 소규모 공장을 점차 포섭해 가는 대공장 내부의 생산 과정 역시 모든 것이 일사 분란하게 움직여야 한다. 그것의 현실적 모습은 다음과 같다. “남자건, 여자건. 아이들이건 간에, 이 노동자들 모두는 개인의 자치를 조롱하는 증기의 권위에 의해서 결정된 시간에 맞추어 작업을 시작하고 끝마쳐야 한다.” (물질적 조건의) 진정한 전제주의. 따라서 현실적인 의미에서 권위(구조적 강제)의 존재는 필연적이다.
Q: 이러한 주장에 대해 자치주의자들은 다음과 같이 반문한다. “그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가 대표자들에게 부여하는 권위가 아니라 위임이다.” 즉 자치주의자들은 물질적 조건이 필연적으로 야기하는 구조적 권위를 문제 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 조직 내부에서 구성원들의 의지를 대리하는 것으로서의 대표자에의 ‘위임’과 이후 이 ‘위임된 권력’의 남용이라는 맥락에서 권위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A: “이들은 사물의 이름을 바꾸면 사물 자체도 바뀐다고 믿고 있다.” 엥겔스는 모든 사회주의자들의 정치적 목표를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정치적 국가, 그리고 그것과 더불어 정치적 권위는 다가올 사회 혁명의 결과로 사라질 것이라는 점에, 즉 공공기능은 그 정치적 기능을 상실하고 진정한 사회의 이해관계를 돌보는 단순한 행정적인 기능으로 변모하리라는 점에 의견을 일치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를 위해서는 “혁명”이 필요하고, 이 혁명은 존재하는 가장 권위적인 것이다. “그것은 인구의 일부가 존재할 수 있는 가장 권위적인 수단인 소총, 총검, 대포로 또 다른 일부에게 자신들의 의지를 강요하는 행위이다.” 즉, “승리한 당파는, 싸운 것을 헛되지 않게 하려면, 자신들의 무기가 반동배에게 불러일으키는 공포를 통해 이 지배를 지속시켜야 한다.” 따라서 “권위적인 정치적 국가가 생겨나게 되는 사회적 조건들을 무너뜨리기에 앞서 그러한 국가의 폐지”만을 주장하는 반권위주의자들의 주장은, 지배계급의 정치적 지배도구로서의 국가의 물질적 토대를 혁명적으로 폐지하고자 하는, 가장 권위적인 “혁명”적 실천을 권위적이라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즉 그들은 위임의 목적인 ‘권위적’인 혁명에 있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다.] “권위와 자치는 서로 다른 사회 발전 양상에 따라 그 범위가 서로 다른 상대적인 것들이다.” 따라서 “권위의 원리를 절대적으로 나쁜 원리인 것처럼 말하고 자치의 원리를 절대적으로 좋은 원리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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