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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론 읽기(목요반) 세미나/연구팀 > 기초세미나 > 자본론 읽기(목요반)

4021
2005-10-04 17:58:20
윤지성
16장.hwp (30.0 KB), Download : 402
죄송합니다
열심히 공부하시고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인상에 남았는데,
자본론읽기 세미나에 참가하지 못할 것 같네요.자본론 등
기초세미나를 '무시하는' 현실정이지만, 꾸준히 해가시면서
반드시 좋은 성과가 있기를 바라네요.

해당되는 16장은 일단 정리해서 올립니다. 나름대로 해볼려해도
깔끔한 정리가 안되는 것은 이해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아래는
참고될 것 같아 생산적 노동에 대해 경제학대사전(박영사)에 나온
것 복사해 봤습니다.

큰 기온차에 감기 조심하시고,건투를 빕니다.



생산적 노동·비생산적 노동 生産的勞動·非生産的勞動
[영] productive labor and unproductive labor

1. 애덤 스미스의 생산적 노동론
‘무엇이 생산적 노동인가?’라는 질문은 고전학파 이전의 중상주의학자들에게도 논의되었었으나, 생산적 노동론은 스미스(A. Smith)에 와서야 비로소 자본주의적 생산양식과 부합할 수 있는 면모를 갖추게 되었고 자본주의의 발전에 있어 생산성과 자본축적이 담당하는 중요성을 인지하고 이들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국부(國富)가 증진되는 방도를 밝히게 되었다.

스미스는 생산적 노동의 정의에 있어서 두 가지 기준을 혼용하고 있었는데 그의 이러한 첫번째 기준은, 자본가가 시장에서 팔리는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 노동을 고용하면 노동과 원자재에 지급된 비용이 보전되고 나아가 이윤이 확보되나, 그렇지 않고 그의 소비를 위해 노동을 고용한다면 아무것도 돌아오지 않을 뿐더러 이윤도 생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자를 ‘생산적’으로, 후자를 ‘비생산적’으로 구분짓는다.

또한 스미스의 두 번째 기준으로는 구체적인 물질 모양을 띠고 시장에서 생산가능한 상품(durable vendible commodity)의 생산 여부가 생산적 노동의 기준이 된다는 점을 들고 있다. 즉 이는 상품이냐 서비스냐에 따라 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 노동을 결정하는 가장 도식적인 기준에 해당한다. 상품은 한번 생산되면 그것이 유통과정 속에서 다시 팔리는 과정을 거치면서 서비스의 흐름을 부수화하게 되나 서비스는 생산과 소비가 동시에 이루어지면서 그침으로써 상품생산만이 ‘생산적’이라는 것이다.


2. 마르크스의 생산적 노동론
그러나 생산적 노동에 대한 논의는 스미스에 의해 생산적 노동론이 경제학적 의미를 획득한 지 약 100여 년이 지나면서 비로소 마르크스에 이르러 정형화되었다. 마르크스(K. Marx)는 「요강」(要綱, Grundrisse), 「잉여가치학설사」, 「생산의 직접적 과정에 대한 제결과」, 「자본론」 등에서 전개한 생산적 노동론을 통하여 자본주의하에서 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 노동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를 분석하였다.

마르크스는 인간의 노동이란 본래 인간본연의 자유로운 실현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자본주의의 인간노동이 노동생산물로부터, 노동과정으로부터, 노동자 자신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상황이라고 본다. 물론 이를 분석하기 위해 사적 유물론과 잉여가치론이 나온 것이고 이 잉여가치론의 형성 속에 노동소외론이 들어 있어 그 소외된 노동의 개념이 생산적 노동의 개념으로 발전되었고 이로써 생산적 노동론이 형성되었다.

이렇듯 잉여가치론 속에서 소외된 노동의 본질을 해명하는 데 그 의의를 찾는 생산적 노동론은 이후 마르크스의 일련의 저작을 통해 발전되어 왔다. 그 가장 맹아적인 모습은 「요강」에서 찾아지고 있고 「잉여가치학설사」에서 제1권의 본문과 그 보론에서 가장 상세히 다루어진다.

이러한 저작들에서 마르크스는 스미스의 제1규정, 자본을 생산하는 노동의 기준을 생산적 노동의 역사적 관점으로, 스미스의 제2규정, 물질적 상품을 생산하는 노동의 기준을 생산적 노동의 일반적 규정으로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는 자신의 가치 이상을 생산하는 노동력이 ‘생산적’이라고 보고 자본가계급, 즉 자본의 존재는 노동의 상대적 생산성에 의존한다고 밝힌다. 이어서 마르크스는 이러한 생산적 노동에 대한 개념의 역사적 형태규정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때에 특기할 만한 부분은 ‘생산적 노동의 제2의 부차적 규정’이라는 것에서 물질적 생산과 비물질적 생산(서비스생산)의 영역 내에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포섭 여부에 관해 언급한 부분이다. 여기서 마르크스는 자본이 물질적 생산부분만을 정복하고 비물질적 생산부분은 정복하지 않는다는 것을 타당하다고 설정하고 자본이 서비스를 포섭한 상태를 극히 예외적인 경우로 보아 마르크스로서는 본연적 규정과 역사적 규정의 괴리를 해결한 것으로 보인다. 바로 이러한 해결책은 오늘날과 마르크스 당대의 영국경제가 뚜렷한 차이가 있음을 보여 주는 것으로서, 당시의 영국은 서비스부문의 활동이 미약하여 주로 사적 생산부문에 머물렀고 물질적 생산부문이 전적으로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 속하였던 관계로 마르크스로서는 다행히도 이 두 규정 사이의 괴리가 쉽게 해결될 수 있었으며 또한 「잉여가치학설사」에서는 마르크스가 생산부문만을 상정하고 유통부문을 생각하지 않았음으로 인해 이 문제는 별 모순 없이 수용될 수 있다. 여하튼 이 부문의 해석이 오늘날의 생산적 노동론의 적용상 가장 커다란 논쟁을 낳는 부분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3. 현대의 생산적 노동론
마르크스의 사후 생산적 노동론에 대해서 일찍이 가장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킨 사람들은 길만(J.M. Gilman)과 「독점자본」을 저술한 바랜(P. Baran)과 스위지(P. Sweezy)였다. 거기에서 그들은 비생산적 노동에 초점을 맞추어 잉여생산물이 이들 부분으로 처분되는 데서 당대의 독점자본주의의 의의 및 특성과 아울러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의 관철 여부에 대해 해명하려 하였던 것이다. 바로 그들의 논의는 생산적 노동의 기준을 둘러싼 해석에도 나름대로 의의를 지니고 있으나 생산적 노동론 또는 비생산적 노동론을 현대경제분석을 위해 보다 직접적이고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된 의의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이들 이후 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 노동에 대한 여러 주장들을 그들이 중시한 기준을 통하여 정리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1) 사회적 유용성의 기준: 바랜은 스위지와 함께 독점자본하에서 유효수요의 형성에 일차적 관심을 가졌으며, 결국 이들 비생산적 활동이 자본축적 및 사회투쟁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따라서 이들에 의하면 생산적 노동이란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그것을 지연하는, 즉 자본주의체제의 수호와 방비에 소용되는 부분들로 구성된다고 정의하여 유용성 내지 필요성의 기준을 중시하게 되었다. 여기서의 유용성이나 필요성이란 지향하는 체제―즉 사회주의―를 위한 것이란 단서를 간과할 수는 없겠다.

길만 또한 생산양식에 보편적인 노동과 자본주의에 고유한 노동을 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 노동의 기준으로 삼은 논자라고 본다. 그는 이러한 인식 아래 비생산적 노동이란 판매와 판매촉진을 위하거나 다른 말로 잉여가치의 실현에 종사하는 자본주의 내의 노동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정의는 많은 비난에 직면하게 되는데 그 첫째가 마르크스의 생산적 노동론에 대한 대단히 자의적인 해석이란 것이다. 비록 독점자본주의하의 특색을 바탕으로 재해석을 내릴 수 있는 개연성을 완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라지만, 이들은 마르크스의 본래기준을 파기한 것과 같다고 반박당한다.

특히 고프(I. Gough)는 그들의 의의와 결정적 한계를 지적하고 있는데, 그는 마르크스 이후의 자본주의가 정부지출의 증대, 상업·배분노동자의 상당한 증대, 사치재의 범람현상 등으로 새로운 국면에 진입함을 인정하면서도 그들이 보인 기준의 파격적 수정―본래의 마르크스의 생산적 노동론에 대한 의의와는 현격한 차이 초래―이 담긴 견해임을 인정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만일 이들의 기준이 인정된다면 마르크스의 생산적 노동은 해당 노동자의 불행이지만 바랜과 스위지의 생산적 노동은 해당 노동자의 행복이 되는 역전된 모습을 가져오게 됨이 해명되어야 하는 어려운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만델(E. Mandel) 역시 사회적 유동노동으로의 정의를 단호히 배격한다. 그가 예로 든 의사와 총알생산에서 전자는 유용하나 비생산적 노동인 경우로, 후자는 유해하나 생산적 노동인 경우로 정확히 설명해 주고 있다.

또한 마르크스의 생산적 노동은 분명히 윤리적인 개념이 아니므로 이러한 다분히 규범적 기준이 인정되기는 어렵다. 루빈(I.I. Rubin) 또한 이러한 윤리적 기준 내의 필요 여부로 인해 구분짓는 오류의 발생을 지적하면서 ‘생산적’이란 용어의 부적절성을 내세워 ‘생산적 노동’을 ‘생산노동’(production labor)으로 정정할 것을 조심스럽게 주장하기까지 한다.

2) 상품생산의 기준: 이 기준은 역으로 서비스노동의 비생산적 노동성을 강조하는 관점이기도 하다. 물론 이 견해는 마르크스가 말한 수익이 아닌 자본과의 교환 여부 등을 무시한다는 것이 결코 아니라,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키는 영역이 물질적 상품의 생산영역과 일치한다는 입장이다.

만델은 마르크스의 경우 생산적 노동정의에 있어 일관성의 결여를 나타내는데, 즉 「잉여가치학설사」에서는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노동과, 자본과 교환되는 노동 사이의 영역을 넘나들며 생산적 노동에 대한 정의를 내렸던 마르크스가 「자본론」 Ⅱ권의 유통을 다루는 부분에서는 생산적 노동을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으로 정의하고 자본과 교환되는 노동 모두가 생산적 노동은 아니라고 주장한 데에 유념하면서, 따라서 마르크스의 최종적인 견해가 잉여가치를 직접 생산하는 상품의 생산노동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고 본다.

또한 만델은 생산적 노동이란 구체노동과 추상노동을 결합시키는 상품생산노동이므로 가치생산의 영역으로부터 ‘비물질적 영역’을 논리적으로 배제시킨다고 말한다. 노동이 없으면 생산이 있을 수 없고 물질적 대상으로의 전환이나 점유 없이는 구체적인 노동도 없다고 주장하는 만델은 「자본론」 Ⅱ권에서 수송산업을 다루는 데서 뒷받침된다고 한다.

풀란차스(N. Poulantzas) 역시 만델과 유사한 입장에 있다고 보겠으나, 이들에 대해서 반대하는 자들의 논리도 역시 다양하다.

우선, 메이킨스(P. Meiksins)에 의하면, 서비스노동자들이란 사용가치로 즉각 소비되고 따라서 자본과 교환되지 못하여 오히려 수익이나 소득과 교환된다는 주장은 생산자의 입장이 아닌 소비자의 입장에서 본 것으로 자본가가 임노동을 고용하여 다른 이들을 위한 서비스를 행사케 함으로써 자본을 축적한다면 이는 생산적 노동이 아닐 수 없고, 따라서 만델이나 풀란차스는 소비자와 그가 소비하는 서비스와의 관계를 자본가와 그가 고용하는 서비스노동자 사이의 관계와 혼동하였다고 주장한다.

둘째로 「잉여가치학설사」와 「자본론」 Ⅱ, Ⅲ권의 차원이 서로 다르다는 반박으로서, 전자에선 직접 생산의 과정만을 다루었고 후자에선 자본의 유통과정차원을 다루었으므로 단순비교는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또한 고프에 의하면 마르크스의 저술 순서대로 추적해 볼 때 「자본론」 Ⅱ, Ⅲ권에서 생산적 노동의 영역은 더욱 협소해지며 비생산적 노동의 영역은 더욱 확장되었다.

셋째로 「잉여가치학설사」에서 동일한 노동도 그것이 자본주의적 관계에 포섭되었느냐, 아니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마르크스의 언급과 구체적인 예시는 바로 서비스노동도 가치의 생산에 기여하며 그 관계 속에서 소외된 노동의 본질에 맞닥뜨려진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교사, 무용가, 배우 등과 같은 적지 않은 예를 통해 본 바대로 마르크스는 그 노동이 담겨지는 특정활동의 형태에 관계없이 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 노동 여부가 가름되는 것이다.

3)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의 귀속여부: 사실 이 기준에선 좀더 다양한 부류들의 주장을 내포한다.

먼저 고프는 신리카도주의자들(neo-Ricardians)의 견해를 요약하면서 사용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을 유용적 노동(useful labor)이라 하고, 이 유용노동은 생산적 노동의 필요조건이며 또한 생산적 노동이기 위해선 잉여가치를 생산하기 위해 자본과 교환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그는 스미스가 취한 물질적 상품이라는 제2규정의 오류성을 지적하여 노동에 체현되어 있는 사회적 관계를 중시한다. 특히 고프의 견해는 상업노동자를 생산적 노동으로 이해하는 경향에서 그 특징을 극명하게 드러내는데, 유통에 종사하는 노동도 부불(不拂) 노동을 행하는 임금노동이라는 사실에서 이윤의 원천이 될 수 있고 마르크스와는 달리 이 이윤을 잉여가치의 형태로 보고 있다. 물론 이때 이 잉여가치는 상인자본이 직접 얻는다는 것이 아니고 생산과정에서 잉여가치의 일부분을 우회적으로 얻는다는 것을 뜻한다. 고프의 신리카도주의적인 견해는 산업자본가와 상업자본가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오류를 낳고 생산영역의 결정적 위치와 추상과정의 이해부족 등의 비난을 받기도 한다.

리드비터(D. Leadbeater)는 마르크스의 생산적 노동론이 논리적 일관성을 결여하였다는 헌트(E.K. Hunt)의 견해를 반박하는 한편, 생산적 노동이란 어떤 물리적으로 결정된 효과와 잉여가치 속에서 상품에 기여하는 노동으로 보고 따라서 정신노동 및 육체노동, 사회 재생산 등이 모두 포함되는 한편, 상품으로서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모든 노동자를 생산적 노동으로 간주한다. 반면에 비생산적 노동은 생산적 노동이 아닌 모든 임노동인데 거기에는 수익으로부터 고용된 노동과 진정한 유통비용에 지출되는 노동, 자본의 착취적 감독기능에 지출된 노동 등도 포함한다.

또한 정확히 견해를 같이하는 것은 아니지만 파인(B. Fine)과 해리스(L. Harris)는 잉여가치의 직접적 생산에 초점을 두는 한편, 신리카도주의자들은 착취되는 노동 모두를 생산적 노동이라는 견해를 반박하며 간접적인 잉여가치의 생산은 배제시킨 채 생산적 영역의 상대적 엄밀성을 강조하는 관점을 내보이기도 한다. 이들은 분배문제에 관심을 지닌 앞서의 신리카도주의자들과는 달리 생산을 강조하는 입장을 견지하는 관계로 산업자본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들로부터 더욱 극단적인 형태를 띠는 일군의 견해가 ‘서비스가치생산설’이다. 여기에선 서비스노동 자체도 잉여가치를 생산, 생산적 노동이 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오코너(J. O’Connor), 버투드(A. Berthoud), 래시(S.M. Lash) 등에 의해 제기되는 이 입장은 오늘날 노동자계급과 중간계급, 그리고 자본가계급의 구분을 둘러싼 논쟁이 중요한 의의를 지니게 되는 시점에서 많은 관심을 갖게 한다.

래시는 만델이나 고프 모두 생산의 과정을 중시하는 경향으로 인해 생산영역 내의 모든 노동자를 프롤레타리아계급으로 삼는 오류를 낳았다고 반박하면서 생산과정이 아닌 재생산과정에 우위성을 부여함으로써 유통종사노동자들까지 생산적 노동자의 범주 안으로 끌어들였다. 그런데 래시는 생산적 노동자의 요소로서 ‘종속적 지위’에 있을 것을 부가한다. 이로써 생산과정에 있는 감독이나 기술직에 해당하는 노동자들이 비생산적 노동자로 분류되는 계기를 맞는다. 래시가 고프를 만델과 같이 생산적 영역의 중시자로 취급한 것은 오류지만 서비스부문에 대해 보다 심도 있는 분석의 계기를 준 것이다.

더군다나 구베르노(J. Gouverneur)는 ‘간접적 사회노동’(indirectly social labor)을 기준으로 하면서 시장과 임노동이라는 두 개의 축으로 분류하는 견해는 매우 극단적이어서 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 노동의 구분 자체를 무용시하는 프랑스의 학계를 대변하고 있다.

이들 관점은 ‘서비스가치생산설’이라 하여 비난 받고도 있으나 마르크스가 세운 규정 중 역사적 규정에 그 근거를 두고 서비스부문에도 자본주의적 관점에서의 접근을 가해 종래까지 ‘서비스부문=비생산 부문’으로 도식화됐던 사고를 벗게 해 주는 여지를 남긴다.

분명 이들의 입장이 시장에서 돈으로 지불되는 재화 및 서비스생산이면 모두 ‘생산적’이라고 보는 부르주아경제학과는 일정한 구분점을 가지고 있는 만큼 자본제적 생산방식에 흡수된 부문이 잉여가치를 낳는 전 과정의 이해를 위해 이론적 탐구와 통계적 분류의 발전이 요망되는 곳이기도 하다.

[문헌] Marx, K., “Theorien u¨ber der Mehrtwert,” in The Development of Economic Thought(ed. ean trans. by Spiegel, H.W.), New York, 1952; Baran, P.A., The Political Economy of Growth, New York: Monthly Review, 1957; Marx, K., Theories of Surplus Value I, Moscow: Progress Publishers, 1963; Gough, I., “Marx’s Theory of Productive and Unproductive Labour,” New Left Review, no. 76, Nov.∼Dec. 1972; Marx, K., Capital Ⅰ, Ⅱ, Ⅲ, Penguin Books, 1978; Fine, B. and Harris, L., Reading Capital, Macmillan, 1979; Wolff, E., Growth Accumulation and Unproductive Activity, Lond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7.

(이태수)



   1권-5편-17장18장

신재성
2005/10/05

   [발제문]15장8절

안재훈
2005/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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