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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의 전략과 전술 세미나/연구팀 > 연구세미나 > 노동운동의 전략과 전술

4021
2005-07-20 22:24:57
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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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0일 세미나 정리입니다,
7월 20일 수요일
2005년 노동운동 위기 논쟁

세미나 총 4명 참가

박승옥의 “한국노동운동, 종말인가? 재생인가?” 발제
김형기의 “한국노동운동 혁신을 위한 10대 명제” 발제

다음주에는 노중기교수의 글과 임영일 교수의 글을 합니다. 노중기 교수의 글은 세미나 게시판에 올려져 있는 것이 자료집에 있는 걸 좀 더 다듬은 것이니까 그걸 읽어 주셔요. 임영일 교수의 글 역시 게시판에 올려져있는 것을 읽어 오세요.
그리고 다른 글은 개인적으로 읽으세요 ^^
다다음주는 휴가라서 세미나는 없습니다. 다음 주에 정리 항목을 정할건데 그 항목을 참조해서 휴가 기간에 정리글을 써오시기 바랍니다.
다 다 다음주는 1-2 자료집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노동운동 위기 논쟁에 대한 최근의 변화에 대해서는 한노정연에서 매주 발표하는 “동향과 초점”에 포함되어 있는 자료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박승옥 글에 대한 토론
1.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과 노동조건이 같아져야 한다”라고 주장을 하는데, 그것을 이루기 위한 방법은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 단지 선언만 하고 있다. 현실적이라고 보고 있는 것인가?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2. “노동운동이 상층관료와 대기업 노동자의 이기적 운동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주장은 자신의 “노동운동이 위기에 빠졌다” 라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과장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 그 주장의 근거로 크게 세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 노조 조직률, 둘째. 대기업 남성노동자의 중심성, 셋째. 임단협 위주의 전투적 투쟁.
---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여러 나라들도 노조 조직률이 10% 정도라고 알고 있는데, 우리나라만 조직률이 낮은 건 아니지 않는가?
--- 비정규직의 증가는 신자유주의의 본격적 도입 때문인데, 그것을 정규직 노동자의 전투적 투쟁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 아닌가?
--- ‘노동운동 위기’를 주장하는 대부분의 논자들이 ‘조직률 감소’를 말하는데, 선진자본주의 국가에서 조직률이 가장 낮은 나라는 프랑스로서 9%정도이다. 그 다음으로 낮은 곳이 한국이고 대부분은 20~30%의 조직률을 보이고 있다. 조직률에 관해서는 두가지 문제가 존재한다. 첫째. 양적으로 확대가 되지 않는 것. 둘째. 확대가 되지 않으므로 전체 노동자들을 대변하지 못하게 되는 것. 첫 번째 문제에 대해 인하대 윤진호 교수는 조직률이 법적 제도적 문제로 인해 증가되지 않고 있다고 설명하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즉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법과 제도의 변화로 노동자임을 인정받는다면 조직률이 획기적으로 높아질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 문제에 있어 과거 전노협은 100만명의 한국노총에 맞서 10만명의 조합원으로서 전체 노동자를 대변해왔다. 핵심은 조직률의 정체 그 자체가 아니라 왜 조직률이 정체되었느냐 이며, 조직률과 전체 노동자를 대변하는 것을 동일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3. 저자는 정규직이 비정규직의 임금을 빼앗기 때문에 비정규직의 임금이 적은 것처럼 말하는데 정말로 그런 것인가? 현대자동차를 예로 들어보면, 저자는 정규직의 임금이 오르면 하청 노동자들의 임금이 줄어드는 것처럼 말하는데, 그것이 노동조합이 문제가 있는 것인가 아니면 자본이 문제가 있는 것인가?
-- 자본과 정권에 의해 발생하는 현상을 노동운동의 특성에 의해 발생하는 현상으로 파악해서는 곤란할 것 같다.
-- 노동귀족론을 이와 연관시켜 바라보면 될 것 같은데, 이러한 논의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몇가지 논리의 과정을 거쳐야 할 것 같다. 첫째. 현재의 민주노총을 대기업 정규직 남성노동자들이 주도하고 있다는 주장은 옳다. 그러나 과거에는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과거에는 그러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다른 노동자들에게 순순환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문제는 현재는 그러한 순환이 중단되었다는데 있다. 두 번째. 저자는 현재의 정규직 노동자들이 과실을 누리고 있다고 본다. 고임금을 받고 있고, 기업복지 혜택을 받으며, 고용이 안정되어 있기 때문에 과실을 누리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점검해야 할 것은 위의 3가지가 진실이야는 것이다. 물론 비정규직과 비교해본다면 상대적으로 위의 3가지는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판단의 기준은 비정규직과 비교가 아니라 절대적 수준이 되어야 할 것이다. 먼저 전사회적 임금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를테면 CEO나 혹은 기자같은 언론 종사자들의 임금의 경우 대단히 높음에도 문제제기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볼수 있다. 그 다음으로 사회복지 체제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어야 할 것이다. 주택이냐 교육 그리고 의료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보장되어 있는 서구와 달리 그러한 복지체제가 전무한 한국에서 임금의 의미는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 그 다음으로 노동시간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어야 할 것이다. 초과노동으로 인한 임금을 고임금이라고 비판한다면 그 비판은 초과노동으로 향해야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세 번째 저자는 정규직의 고용 안정 즉 고용의 경직성이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먼저 인건비 자체의 비중을 살펴봐야 할 것 같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인건비는 총 비용의 10%도 되지 않는다.  
이러한 확인 절차들을 거쳐서 고민해야 할 부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선동이 먹혀들어가고 있다는데 있을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계급적 조직적 단결을 이룩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관리자 역할을 하거나 ,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고용의 안전판으로 생각하고, 기업 복지의 혜택에서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또한 양 계층 사이에는 문화적 차이가 존재한다. 이러한 분리에 의해, 정규직 노동자들이 원인이 아니라 할지라도, 차별을 현실적으로 느끼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입장에서는 그러한 이데올로기에 동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현시기의 원인이 노둥운동에게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정리해고제와 비정규직 확산을 막아내지 못한 민주노총에게 있을 것이다. 물론 그것은 인과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의 공세를 돌파하지 못한 역량의 한계의 문제일 것이다.
따라서 위기 논쟁을 통해 우리가 생각할 것은 “어떻게 실마리를 찾아나갈 것인가?”에 있을 것이다.
-- 그러한 실마리를 찾는데 있어 정규직고 비정규직의 차이를 없애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는 것 같은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를 없애는 것은 정부가 주장하는 “정규직 임금 동결과 비정규직 임금 상승”의 방법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래서 네덜란드 모델이나 그런걸 예기하는 것 같은데. 그런 방법은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측면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를 없애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는 없을 것 같다.
--  그것은 누가 어떤 방식으로 쟁취할 것인가의 문제일 것 같다.
-- 네덜란드 모델 같은 사회적 합의 모델의 핵심은 “정규직 임금 동결을 통한 일자리 창출” 일 것 같다. 다만 한국의 상황에서는 서구와 달리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이 크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그것이 “정규직 임금 동결을 통한 비정규직 처우 개선“으로 나오는 것이다. 서구의 사회적 합의 모델 자체가  최근 들어 파탄나고 있다는 것은 최근 서구 노동자들의 투쟁을 통해 확인할수 있을 것이다.
-- 우리의 대안은 노동시간 단축, 비정규직 노동3권 보장, 비정규직 철폐 등을 제시할 수 있을 것 같다. 비정규직의 노동 3권 보장은 철폐라는 목표를 위한 과정으로 사고할수 있을 것이다. 또한 무엇보다 노동자들의 단결을 통한 주체의 형성이 필요할 것이다.
--  그러한 주체의 문제 때문에 최근 산별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논의가 벌어지고 있다.
-- ‘노동운동의 남성성’의 문제에 주목해서 최근 ‘빈곤의 여성화’를 제기하는 흐름이 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노동운동 내에서 활발한 쟁점화가 되지는 못하는 것 같다.

4.  ‘투쟁 만능주의’ 혹은 ‘전투적 조합주의’ 혹은 ‘총파업의 남발’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두가지를 봐야 할 것 같다. 첫 번째로 “효과가 없다” 라는 비판이 있고, 두 번째로 “국민적으로 고립된다” 라는 비판이 있다. 결과적으로 이로 인해 노동운동이 약화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을 어떻게 봐야 할까?
-- “전투적” 이라는 것은 있을 수 밖에 없다. 그것은 정권과 자본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사회적 합의나 대화를 통해서 해결될 수 없었기에 ‘전투적’이 된 것이다. 즉 사회적 합의의 부재로 인해 ‘전투적’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투적’이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가 부재하다고 비판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
-- 총파업의 효과가 없었다라는 비판은 역사적으로 볼 때 완전히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또한 국민과의 고립 역시 파업으로 갈 수밖에 없는 법적 제도적 조건들, 그리고 파업 이후의 언론의 태도 등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 공권력이 남발되고 직권중재가 남발되는 현재의 상황에서, 또한 최근 평택처럼 경찰이 대항폭력을 유도하고, 이러한 폭력을 매도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불가피하게 야기되는 저항을 ‘전투적’으로 매도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파업” 자체가 아니라  “파업”에 대한 사회적 여론몰이에 대해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 전투적 조합주의라는 용어 자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싶다. 공권력의 투입에 대한 자연적인 노동자들의 대응이었던 것을 노동자들이 스스로 전투를 시작하는 것처럼 매도하고 있는 것 같다.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적 대항 행위를 마치 특정한 이념이나 노선이 있는 것처럼 전투적 조합주의라고 부를수는 없지 않을까?
--전투적 조합주의론에 대한 비판에는 임단협 중심의 노동운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라는 비판도 함축한다. 이러한 비판을 중심으로 하는 세력은 민주노총 내로 보자면 ‘사회개혁 노선’일 것이다. 이 것에 대한 논쟁이 현재의 노동운동 논쟁에 있어 핵심적인 것중의 하나이다. 임단협이 아니라 사회적 차원의 정책이나 조세 등의 영역을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임단협 투쟁으로 전국적 차원의 거시적 문제를 접근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몇가지 전제를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첫째. 임단협 투쟁은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노동운동의 원천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임단협 투쟁을 폄하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임단협 즉 노동자들의 경제투쟁은 착취 결과에 대한 개선과 개량의 시도이다. 예컨대 임금 인상은 물가인상으로 인해  효과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물가인상으로 인한 손해를 임금 인상을 통해 보전하는 것이다. 또한 임단협이 가지는 특성을 고려해야 할 것 같다. 가장 계급의식이 없는 노동자들조차도 임단협에는 관심을 가진다. 둘째. 임단협을 둘러싼 정세나 정서, 힘관계가 변화하고 있음은 사실이다. 즉 옛날처럼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80년대에는 워낙 열악했기에 현장에서 깃발만 세우면 조합원들이 뒤따랏고 사회적으로도 용인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현재는 조건들이 변화되었고, 현재는 임단협 하나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전국적이고 복잡한 대응을 필요로 하고 있다. 국민과의 고립은 현실이지만, 그 현실 때문에 임단협을 포기할 것이 아니라 임단협의 재구성을 통한 국민과의 고립 탈피를 시도해야 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에게 임단협을 통해 예전의 성과주의가 아니라 의식의 전진을 이룰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임단협과 ‘사회적 의제’를 양자택일의 문제로 바라보아서는 안된다. 지금의 주된 흐름처럼 정책적 대안의 문제로 접근해서는 안된다. 이들은 대중운동으로서 사고하지 못하는 것이다. 임단협을 통해 노동자들을 그러한 사회적 문제의 해결주체로 형성시켜야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이는 기존의 임단협을 고수하자는 것이 아니라, 임단협이 가지는 ‘대중과의 호흡’에 주목하고, 이러한 ‘대중과의 호흡’을 통해 대중을 전체 계급의 문제에 접근시켜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교수들의 정책 대안이 아니라 현장의 노동자들이 주체로 설 때, 이것이 운동이 될 때 조금이라도 사회를 변혁시킬수 있지 않을까?
-- 임단협 중심의 투쟁과 사회적 문제를 병행한다고 했는데 예를 들어 어떤 것을 생각할수 있을까?
-- 아파트 분양가 공개 같은 문제가 있을 때, 일반 조합원들은 집값 상승을 임금 인상을 통해서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것이다. 그냥 ‘건축비 공개하라’ 라는 슬로건으로 상층 차원에서 운동을 한다면 실제 조합원들은 별다른 공감을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조합원들에게 자신들의 임금인상과 분양가의 문제와의 관계를 인식시켜 주고, 전국적 차원의 주택 문제에 대해 해결 방안을 모색한다면 조합원들도 쉽게 공감할수 있을 것이다.
-- 일차적으로는 그러한 폭로로부터 시작할수 있을 것 같다.

김형기 발제에 대한 토론
1. 명제 10가지 모두 명제 자체는 다 옳은 말인데, 그 명제를 설명하는 부분들은 문제가 있는 것 같다.
-- 문장 하나 하나는 맞는 말이지만, 그러한 문장들을 논거로 해서 제시되는 결론은 논거랑 별다른 논리적 연관 없이 그저 자신의 입장을 제시하는 것 같다.

2.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통합 주장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 친일파 청산의 문제랑 연관해서 생각할수 있을 것 같다. 과거의 오류에 대한 ‘밝힘’과 ‘평가’ 없이 무조건적인 통합은 바람직하지 않을 것 같다.
--  하지만 현재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모습이 엇비슷하게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저자가 말하는 ‘대통합’도 긍정적으로 고려할수 있지 않을까?
--  현재의 조직적 입장을 살펴봐야 할 것 같은데 민주노총의 공식적 입장은 조직대 조직의 통합이 아니라 한국노총의 민주화이다. 다만 최근에 들어서 노사정위원회의 김금수씨나 민주노동당의 주류 분파, 노동연구원 등등의 공통적 프로젝트가 등장하고 있다. 이것은 민주노총의 체제순화와 한국노총의 개혁으로 압축할수 있다. 민주노총의 계급성을 완전히 거세하기 위해서는 이수호 집행부의 장악력이 완벽해져야 한다. 동시에 한국노총의 개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항만노조나 비리 임원과 같은 어용세력에 대한 정부의 탄압 뿐만 아니라 한국노총 스스로의 내부 개혁이 수반되어야 한다. 이 두가지를 동시에 달성할수 있는 방법이 양 노총의 통합인 것이다. 민주노총의 민주성과 자주성은 상층부의 지도부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이념적 노선에 의해 가능했던 것이 아니라, 현장 조합원에 의해 가능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할 때 양 노총의 통합은 그러한 현장 조합원의 추동력을 더욱 약화시키고 상층과 분리시키게 될 위험성이 크다.

3.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의 결합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봐야 할까?
-- 노동자는 노동자이면서도 시민인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노동자가 시민사회의 영역에 개입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시민사회 영역에 대한 개입이 과연 ‘시민운동’의 영역이냐라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노동자적 관점으로 시민사회의 영역에 개입해야 하는 것이지 노동자들이 노동자적 관점을 버려야만, 그리고 중산층이 주도하는 시민운동에 동의해야만, 시민사회의 영역에 개입하는 것이 아니다.
-- 예전에는 경실련이나 참여연대에서도 노동 분과가 존재했었다. 이들은 시민운동의 관점을 가지고 노동운동에 개입하려고 했었던 것이다.
  

^^;; (2005-07-20 22:26:45)

작성자 이름이 잘 못 올라갔네요.. 수정이 안되네... 죄송해요.. T.T


   산별 노조 주창자들의 구체적 산업 영역에 대한 글

김경근
2005/07/21

   임영일씨 영남 연구소 기관지 7월호 글입니다.

김경근
2005/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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