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대 대선과 계급/계층 균열*
양대 정당 후보 지지표와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 지지표 분석을
중심으로
1)
I. 서론
2002년 16대 대선은 이합집산의 인습과 진드기 같은 권력
추종자들의 배신 그리고 지역주의적 편향이 지속되는 가운데
노무현 후보의 승리로 끝났다. 노 후보의 승리는 여당후보임에도
과거와 달리 상대적 진보의 승리이자 세대 교체의 바람으로
인식되고 있다.
사회균열구조와 관련해 세대와 지역주의 및 진보의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 특히 이 글의 대상인 계급/계층 균열과 관련하여
지역주의와 진보의 의미는 더욱 중요하다. 한국에서 지역주의는
근본적인 균열에 속하지 않음에도 다른 근본적인 균열들을
아우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노무현 후보가 상대적 진보로
인식됨으로써 계급/계층 균열이 정당구도에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립셋과 로칸(Lipset and Rokkan 1967)이 정당구조변화를
분석하기 위해 제시한 네 가지 근본적인 균열구조는 ①
중앙정부-지방정부의 균열, ② 국가-교회의 균열, ③
지주계급-자본가계급의 균열, ④ 자본가계급-노동자계급의
균열이다. 그리고 거기에 각 나라의 특수성을 반영하는
인종적․종교적․언어적․지역적 균열이
작용한다. 즉, 일반적으로 앞의 네 가지 균열이 서로 중첩되거나
교차하면서 각각의 균열이 갖는 정치적 비중과 위계구조가
상이하게 형성됨에 따라 각기 다른 정당체제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반면 정당체제를 사회균열구조의 반영이라고 보는 수동적 관점과
달리 샤츠슈나이더(Schattschneider 1975)는 균열의 정치적
형성과 작위적 동원의 측면을 강조하였다. 그는 정당체제를
정당과 정치엘리트들이 여러 균열요소들 중에서 특정 균열을
선택적으로 동원하고 배제한 결과로 설명한다. 마찬가지로
유권자의 분포 역시 사회균열의 수동적 반영이 아니라, 정당과
정치엘리트들에 의한 특정 균열의 적극적인 동원과 배제의
결과로 이해한다. 다운스(Downs 1957) 또한 합리적 선택 이론의
관점에서 정당은 그들의 권력극대화를 위해 특정한 이데올로기
노선을 채택하고, 그 결과 특정한 사회집단으로부터 지지를 받게
된다고 보았다.
일반적으로 립셋과 로칸의 이론은 서유럽 정당체제에 잘
적용되지만, 사회균열의 역사가 짧은 미국이나 국가의 영향력이
압도적으로 강한 제3세계에는 샤츠슈나이더와 다운스의 이론이
더 적합하다고 알려져 있다.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적 발전이
일정하게 궤도에 올라선 신흥공업국인 한국에도 단기적으로는
후자의 이론이 더 적합하다. 그러나 한국에서도 덜 근본적인
것에서 보다 근본적인 것으로 균열구조의 현실화가 이루어진다고
볼 때(최장집 1993, 185), 장기적인 관점에서 립셋/로칸 이론의
적용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고 16대 대선에서 그 가능성이 더욱
가시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립셋과 로칸이 말한 네 번째 근본적인 균열인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의 균열을 여기서는 계급/계층 균열로 설명하며,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가장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균열구조로
간주한다. 특수한 균열들과 보다 덜 근본적인 균열들이 정치와
사회의 발전과정에서 일정하게 해소되면 더 근본적인 균열이
지배적인 구조로 등장하게 된다는 명제가 6월 지방선거와 16대
대선을 통해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2002년도의 두
선거를 통해 계급/계층 균열이 정당체제적으로 가시화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글의 목적은 16대 대선을 통해 계급/계층 균열이 어떻게
현상하였는가를 양대 정당 후보 지지표와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 지지표의 분석을 통해 규명하는 것이다. 민주노동당 후보의
지지표를 별도로 구분하는 것은 민주노동당이 노동자정당임을
자처하므로 그 후보에 대한 지지표를 계급/계층 균열에 의한
계급투표로 규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사용하는 계급/계층 구분은 응답자가 밝힌 교육수준과
직업을 중심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통일적인 개념구분도 아니며,
학계에서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것도 아니다.1) 1차 통계자료를 사용하지
않고 기존에 집계된 통계들을 사용한다는 한계로 위의 두 가지
사회경제적 특성을 통해 계급/계층 균열에 따른 투표행태를
유추하는 형식을 취했다. 또한 한국 사회 지역주의의 균열구조적
비중을 고려하여 지역별 투표행태와 계급/계층 균열의 관계도
분석하였다. 현재 가시적으로는 가장 지배적으로 드러나는
지역주의 균열의 추세가 계급/계층 균열의 전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글의 순서는 먼저 한국사회 균열구조의 형성과 16대 대선 정국의
정치사회적 특징을 살펴본 다음, 16대 대선의 투표행태를
계급/계층 균열에 따라 분석한 후 결론을 맺는 것으로 진행된다.
투표행태 분석은 교육수준과 직업 및 지역별 투표들을 계급/계층
균열과 관련짓되, 양대 정당 후보 지지표와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 지지표로 나누어 이루어진다.
그리고 결론에서는 한국 사회 계급/계층 균열구조를 정당체제
형성의 측면에서 전망한다.
II. 한국사회 균열구조의 형성과 16대 대선 정국의 특징
1. 한국사회 균열구조의 역사적 전개와 정치적 특징
최장집 교수에 따르면, 제2공화국이래 한국사회 균열구조는
민주주의에서 경제적 정의로, 경제적 정의에서 통일 문제로 점차
보다 덜 근본적인 균열에서 가장 근본적인 균열로 이어져 왔다고
한다. 그러나 이 테제는 계급균열을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완결성을 갖지 못한다. 그에 따르면 한국 사회에서 통일문제는
가장 억압적이고, 정당성을 창출해내는 분단조건 하에서의
정치체제, 특히 권위주의체제의 기저를 이루는 문제로서 가장
근본적인 균열이라고 한다(최장집 1993, 185).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로서의 한국사회에서의 가장 근본적인
균열은 다른 자본주의 국가에서와 마찬가지로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의 균열이다. 한국에서의 통일 문제는 한국의
특수성에 기인하는 것으로서 일반성을 갖지 않는 특수한 균열인
것이다. 따라서 최장집 교수의 균열구조 현실화 테제는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간의 계급균열에까지 확대 적용되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 따라 한국사회 균열구조의 역사적 전개과정을
도표로 나타내면 <표 1>과 같다.2)
<표 1> 균열구조의 역사적 전개와 정치적 특징
지배적 균열 |
등장 시기 |
정당구도 반영 여부 |
선거의 역할 |
권위주의 ↔ 민주주의 |
제1(2)공화국 |
반영 |
경쟁적통치수단(야당 허용) |
발전주의 ↔ 사회경제적 정의
(독재 ↔ 민주) |
제3공화국 |
미반영(발전주의로 동원, 억제)
독재 대 민주 구도는 반영 |
제4, 5공화국 |
미반영(발전주의로 동원, 억제) |
비경쟁적 통치수단(야당 불허) |
보수적 통일 ↔ 민중적 통일 |
제6공화국 |
반영 |
경쟁의 장 |
자본 ↔ 노동 |
가시적 반영은 2002년 이후 |
*보수적?패권적 지역주의 ↔ 개혁적?민중적 지역주의 |
제6공화국에서 본격화
* 동원된 균열 |
서유럽에서와는 달리 제3세계로 출발한 한국의 균열구조는
최근의 계급/계층 균열이 가시화되기 전까지는 보편성보다
특수성을 많이 띠어 왔다. 제1공화국의 균열은 권위주의적
이승만 정권과 그에 도전하는 부르주아적 민주주의 세력에 의해
대표되었다(제2공화국은 부르주아적 민주주의 세력의 승리).
그러나 지속되는 탄압 속에서도 선거에서 야당의 경쟁은
허용되었고 그에 따라 일정하게나마 여야의 구도가 실질적으로
존재하였다.
반면 독재와 민주의 구도 위에 경제발전과 사회경제적 정의의
균열이 중첩된 제3, 4, 5공화국에서 집권세력에 의한 균열의
동원과 배제는 더욱 심화되었다.3) 제3공화국에서는
민주세력의 도전이 존재했으나, 제4, 5공화국에서 가서는
선거무대조차 봉쇄된 발전주의에 의한 동원과 억압이 최고조에
달했다. 그에 따라 민중적 통일 논의와 계급의 화두는
반공이념에 의해 철저히 배척되었다. 사회적 균열이 제도권
정당구도에 전혀 반영될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특수성의 측면에서 가장 근본적인 균열인 ‘통일’과 자본주의
사회의 보편성 측면에서 가장 근본적인 균열인 ‘계급’이
균열로서 정치무대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제6공화국에 와서
였다. 특히 통일문제는 1980년의 광주항쟁과 1987년의 6월 항쟁
그리고 그에 뒤이은 정치적 개방과 절차적 민주주의 도입을
계기로 하여 적극적으로 표출되기 시작했다. 곧 통일문제가
1988년 중반부터 정치적 언술 체계의 전면에 부상하면서
한국정치의 가장 격렬한 논쟁적 이슈가 된 것이다.
그러나 계급문제는 이러한 거대한 민주화 운동에도 불구하고
통일문제와 동시에 가시화되지는 못했다. 그것은 한국의 민주화
과정이 운동에 의한 민주화와 협약에 의한 민주화가 결합된
과정이었기 때문이다(최장집 2002, 104). 4․19 시절과
마찬가지로 학생운동에 의해 촉발되어
노동자․시민운동으로 확대되어 간 민주화 운동은
재야운동세력과 집권세력내 온건파와의 협상에 의해 타협적으로
제도화되는 과정을 밟은 것이다.
그 결과는 계급균열의 억제를 위한 지역균열의 동원으로
현상하였다. 한국의 지역정당체제는 기존정당의 틀 속에서
지역을 수직적으로 분획함으로써 국지화된 갈등축을 따라 대중을
동원한 결과인 것이다. 이러한 정당체제는 샤츠슈나이더가 말한
대로 일반대중의 이익보다는 엘리트의 이해관계에 크게 유리한
‘편향성의 동원(mobilization of bias)’을 제도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최장집 2002, 107). 결국 수 차례의 계급정당 시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제도권 정당구도에 가시적으로 반영되기 시작한
것은 2002년 지방선거에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2. 16대 대선 정국의 정치사회적 특징과 의미
16대 대선의 전초전은 6․13 지방선거와 8․8
재보선이었다. 그 전초전에서 한나라당은 기선을 제압했으며,
특히 재보선의 결과 ‘과반수+2석’의 절대다수당이 되었다.
그것은 권력층의 품위유지비 조달로 드러난 구조조정의 실상과
‘홍3’ 비리의 결과였다. 그러나 한나라당도 안주할 수 있는
상황은 결코 아니었다. 국민 전체로 볼 때, 양 선거 모두
정치혐오증의 승리였던 것이다.
6․13 지방선거의 투표참가율도 대단히 저조했지만(48.0%),
8․8 재보선의 투표참가율은 더욱 낮아 29.6%에
머물렀다(<그림 1> 참조). 한나라당의 유효투표 지지율이
과반수를 훨씬 넘었지만, 그것을 국민 전체에서의 지지율로
환산하면 20%를 조금 넘는 수준에 불과했다. 제도권 내의 좌우,
어디를 보아도 유권자들이 눈을 둘 데가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젊은층으로 갈수록 투표참가율은 더욱 낮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16대 대선에서도 투표참가율은 간신히 70%를 넘어 역대 대선에서
가장 낮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유럽의 상황이라면 히틀러나
무쏠리니와 같은 파시즘 정권이 등장하기에 더없이 좋은
조건이었다. 민노당과 사회당뿐만 아니라 양대 정당들까지
새로운 정치를 주장한 것은 바로 이러한 배경 때문이었다.
그러나 국민들의 관심은 이제 기성정당이 아니다. 이러한 점에서
이회창 후보의 전술은 노무현 후보의 전술에 비해 더 구태의연한
것이었다. 현대의 정치혐오증은 곧 정당혐오증과도 연결된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정당혐오증은 정당 자체에 대한 혐오증이
아니라, 부정부패와 권위주의 정치에 책임 있는 기성 정당에
대한 혐오증이다.
한국의 기성정당에 대한 혐오증은 또한 서유럽에서와 같이
사회적 소수 이슈에 대한 경시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 심화되는
계층간 격차와 갈등에 대한 정치적 무관심과 무능력에 대한
혐오증이다. <그림 2>에서 보는 바와 같이 소득불평등
지수인 지니계수는 1990년대 초반 하향세를 보이다가 중후반으로
들면서 다시 악화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지니계수가 1.0에
가까울수록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됨을 뜻하며, 0.4
이상이면 매우 심각한 상황임을 의미한다. 1990년대 한국의
경제발전과 구조조정의 결과는 빈부격차의 심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주관적 계층의식도 점차 하층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림
3>을 보면, 1993년 중간층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비율이
61.3%였으나, 1999년에는 54.9%만 자신을 중간층이라고
인식하였다. 반면, 1999년 자신이 하층에 속한다고 의식하는
사람은 1993년에 비해 약 7%나 많은 44%에 달했다. 이러한
주관적 계층의식은 투표율과 매우 높은 상관성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2001년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자신의 소속계층을 상층으로 분류한 응답자의
투표율이 하층이라고 응답한 사람들보다 8.5%나 높게 나타난
것이다.4)
따라서 정치․정당 혐오증과 새로운 정치의 갈망에 대한
한국적 상징화는 개발독재의 권위주의 정치 아래에서 표출되지
못했던 근본적이고 심화되는 정치적 균열을 대변하는 새로운
정당이거나 개인적 인기가 높은 새로운 인물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선전과 노무현 후보의 승리라는 16대
대선의 결과는 이러한 배경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III. 16대 대선과 계급/계층 균열의 성격
: 사회경제적 특성과 지역에 따른 투표행태
분석
1. 양대 정당 후보 지지표와 계급/계층 균열
1) 교육수준별 투표행태와 계급/계층 균열
전통적으로 저학력․저소득층의 다수는 집권여당을
지지했던 현상5)이
우리나라 유권자들의 투표행태였다(성경륭 1992, 46; 이갑윤
1998, 90~92 참조). 이러한 경향은 그 정도가 약화될 뿐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다. <표 2>에서 보는 바와 같이,
공화당-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으로 이어지는 구집권당의 후신인
한나라당이 1997년 대선에서 초등이하 학력층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2002년 대선(예상수치)에서는 중졸이하 학력층에서
민주당보다 약 7%나 많은 득표율을 보였다.
<표 2> 교육수준별 득표율 비교(%)
교육수준 |
1997 대선 |
2002 대선 |
김대중 |
이회창 |
이인제 |
권영길 |
노무현 |
이회창 |
권영길 |
무응답 |
초등이하 |
43.7 |
44.4 |
10.3 |
0.8 |
30.9 |
37.5 |
1.4 |
28.1 |
중졸 |
51.7 |
37.3 |
10.2 |
0.8 |
고졸 |
41.4 |
32.0 |
22.8 |
3.5 |
43.1 |
37.0 |
1.3 |
16.4 |
대재이상 |
37.2 |
39.2 |
16.3 |
6.4 |
48.2 |
32.9 |
4.5 |
12.7 |
* 출처: 1997 대선 - 한국선거연구회(1997), 2002 대선 -
동아일보사(2002.11.25), 정영태 2003, 14에서 발췌.
1997년 대선에서는 한나라당 지지표의 분열을 가져온 이인제
효과를 고려해야 하겠지만, 전반적으로 김대중 후보는 중간
학력층에서 높은 지지율을 획득했다. 반면 2002년 대선에서는
이러한 민주당 지지층의 성격이 고학력층으로 이동해 가는 것을
보여준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여전히 중졸이하 학력층에서
가장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대재이상에서 가장 낮은 지지율을
보인다.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이와 정반대로 중졸 이하
학력층에서 30.9%의 지지에 머문 반면, 대재 이상 학력층에서
가장 높은 48.2%의 지지율을 보인 것이다.6)
이것은 물론 민주당의 성격 변화라기보다 노무현 후보 개인의
효과라고 할 수 있다. 신세대의 압도적인 지지와, 구 정치에서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정치경력을 가진 노후보가 정치혐오증의
해소라는 상징조작에 성공한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언급하는 정치혐오증 해소는 사회경제적 격차
해결이라는 계급/계층 균열에 따른 정책적 설득이 아니라,
구습과 무관한 ‘새로운 인물’에 의한 ‘새로운 정치’라는
인물적 상징조작에 의한 것이었다.
2) 직업별 투표행태와 계급/계층 균열
직업별 지지분포 역시 1997년과 2002년 선거에서는 뚜렷한 경향
변화가 나타난다. <표 3>에서 보듯이, 1997년 김대중
후보는 자본가, 화이트칼라, 자영업, 농/임/수산업의 직업군과
학생층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당시 민주당의 중소기업
육성 전략과 구 중간층 이미지 및 민주화 운동의 상징성이
작용한 결과라고 보인다. 반면 블루칼라 계층과 신 중간계급 및
주부와 무직/기타에서는 이회창 후보의 지지가 두드러졌다.
집권당 지지층에 대한 호소와 ‘3김 청산’ 전략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표 3> 직업별 득표율 비교(%)
직 업 |
1997 대선 |
2002 대선 |
김대중 |
이회창 |
이인제 |
권영길 |
노무현 |
이회창 |
권영길 |
무응답 |
자본가 |
61.1 |
27.8 |
5.6 |
5.6 |
54.0 |
28.7 |
5.7 |
10.4 |
신중간계급 |
38.5 |
41.3 |
14.7 |
4.2 |
화이트칼라 |
45.8 |
34.2 |
15.0 |
4.2 |
블루칼라 |
22.5 |
37.5 |
35.0 |
5.0 |
45.3 |
30.4 |
3.9 |
17.5 |
자영업 |
50.0 |
27.1 |
2.3 |
2.3 |
41.3 |
40.2 |
2.5 |
13.7 |
농/임/수산업 |
50.8 |
27.1 |
18.6 |
3.4 |
39.4 |
31.8 |
0.9 |
27.8 |
주부 |
33.0 |
48.4 |
16.7 |
1.9 |
33.2 |
39.7 |
1.2 |
23.8 |
학생 |
42.7 |
29.1 |
15.5 |
10.7 |
63.6 |
24.5 |
2.1 |
8.8 |
무직/기타 |
30.5 |
49.5 |
14.3 |
5.7 |
37.4 |
38.8 |
3.8 |
16.6 |
* 출처: 1997 대선 - 한국선거연구회(1997), 2002 대선 -
동아일보사(2002.11.25), 정영태 2003, 14에서 발췌.
2002년 대선에서는 이러한 경향이 대부분 역전되었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전통적인 구보수당 지지층인 주부와 무직/기타
층에서 승세를 유지했을 뿐이다. 반면 노무현 후보는
교육수준별로 본 투표행태와도 관련되듯이, 자본가를 포함하여
화이트칼라, 신 중간계급의 직업군과 학생층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노무현 후보는 곧 고학력․신 중간계급의
지지를 기반으로 당선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블루칼라층에서도 민주당에 대한 지지도가 높아졌다.
그러나 이것은 다음 단락에서 논의하게 될 계급/계층 균열과
지역별 투표행태 분석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정치적으로
가시화된 계급/계층 균열이 노무현 후보의 상대적 진보성에 따른
사표방지 심리와 지역주의 균열구조의 인습에 의해 침식당한
것으로 설명될 수 있다.
3) 지역별 투표행태와 계급/계층 균열
지역별 투표행태는 과거와 달리 양 방향으로 나타났다. 지역별
투표집중도가 높아짐과 동시에 역설적이게도 지역대결구도는
약화되었다는 것이다.
우선 지역별 투표집중도를 보면, 2002년 대선에서는 1997년
대선에 비해 높아졌음을 알 수 있다(<그림 4> 참조).
1997년 대선에서는 이회창 후보가 경상도에서 53~72%를
획득했고, 김대중 후보가 전라도에서 92~97%를 획득하였다.
반면 2002년 대선에서는 노무현 후보가 전라도에서 1997년
김대중 후보와 비슷한 92~95%를 획득하였으나, 이회창 후보가
경상도에서 1997년 당시보다 6~10%나 많은 67~78%를 획득하였다.
지역대결구도는 여전히 이번 대선에서도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영태 교수의 분석대로, 투표율을 감안한 득표율과
출신지역별 득표율을 볼 때 지역대결구도는 약화되었으며, 만약
온존 내지 강화되었다면 그것은 호남지역 유권자가 아니라
영남지역 유권자들의 탓이라 할 수 있다(정영태 2003, 13). 그의
연구에 따르면, 1997년 대선에서 영남출신 유권자들은 약 60%가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를 지지하고 12%가 민주당의 김대중
후보를 지지했으나, 2002년 대선에서는 (투표일 직전 조사) 53%
내외가 이회창, 22~31% 정도가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였다(정영태 2003, 13).
또한 2002년 대선에서 호남지역 유권자들이 노무현을 지지한
비율은 기권자를 포함한 전체 유권자 가운데 68~74%로 지난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을 지지한 비율 78~84%에 비해 10% 가량
줄어들었다. 그러나 영남지역 유권자들이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을 지지한 비율은 기권자를 포함한 전체 유권자 가운데
48~55%로 나타나 지난 1997년 대선에서 지지한 비율
42~48%보다 4~6%가 늘어났다(정영태 2003, 12~15 참조).
충청도민의 투표행태도 지역주의성을 탈피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인제가 독자 출마하고 김종필이 김대중을 지지하는 상황7)이었던 15대 대선에서
이회창, 이인제가 30% 안팎의 비슷한 지지율을 보인 가운데,
김대중 후보는 충북과 충남에서 각각 37.4%와 48.3%를 얻었다.
그런데 이번 대선에서는 이인제가 이회창을 지지하고 김종필이
중립을 선언한 가운데에서도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이 50%를
넘어선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노무현 후보가 부산 출신이라는
점과 행정 수도 이전 공약의 위력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점을 감안하더라도 지역주의성 투표 경향이 약화된 것은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지역주의 경향의 이러한 전반적인 하락 추세가 호남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고 가정할 때, 호남의 노무현 몰표 현상은
계급/계층 균열과 관련된다. 16대 총선 분석을 통해 강원택
교수는 영남과 호남간의 이념 평균의 차이는 일정하게 존재하나
그것은 호남 유권자들이 김대중과 민주당을 지지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상대적 진보성에 불과하다고 했다(강원택 2002,
119~121). 그러나 지역주의성 투표의 하락에도 불구하고 95%
가량의 노무현 지지율이 유지된 것은 호남지역의 유권자들에게
나타났던 그 상대적 진보성이 이제는 계급/계층 균열에서의
노동자계급과 하층의 진보성으로 전화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가 지역주의성 투표의 결과로
나타난 상대적 진보성이 아니라, 노 후보의 상대적 진보성에
대한 지지의 결과로 현상한 지역주의성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2002년 지방선거에서 호남지역 유권자들의 민주노동당 지지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던 것으로 증명될 수 있다(다음 단락의 지역별
권영길 후보 지지표 분석을 참조).
2.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 지지표와 계급/계층 균열
1) 교육수준별 투표행태와 계급/계층 균열
교육수준별 권영길 후보 지지표 분포는 노무현 후보 지지표
분포와 유사하다. 1997년 대선에서 권영길 후보 지지율은
초등이하와 중졸에서 동일한 0.8%였으며, 2002년 대선에서도 두
계층에서는 동일한 1.4%를 보였다(<그림 5> 참조). 반면
고졸이상으로 가면, 1997년 대선과 2002년 대선은 상이하게
나타났다.
1997년 대선에서는 고졸에서 대재이상으로 갈수록 권영길 후보에
대한 지지율은 높아져 각각 3.5%와 6.4%를 차지하였다. 따라서
초기 민주노동당의 생성과 성장은 고학력층의 의식적 노력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서유럽에서 노동운동의 독자적
정치조직화에 사회주의 지식인들이 직접적이거나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던 것과 달리,8) 노동운동의 발전도
자본주의 발전과 마찬가지로 단기간 동안 압축적으로 이루어진
한국에서는 지식인들의 의식적 활동이 노동자정당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도 2002년 대선에서는 역전되는 경향을
보인다. 대재이상과 고졸에서 2002년도 민주노동당 지지율이
1997년도에 비해 현저하게 줄어드는 대신, 저학력층의 지지율이
일정하게 상승하였다. 창당 초기의 고학력․지식인층에
편중된 경향을 탈피해 가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은
그 비율의 절대적 왜소함에도 불구하고(전국 평균 득표율 1997년
1.2%, 2002년 3.9%), 전반적으로 계급/계층의 균열을 대변하기
시작했다는 평가의 근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물론 전체적으로
아직은 고학력층의 지지율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사실은 점진적인
경향성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이 여전히
고학력․지식인층 중심의 정당임을 의미한다.
2) 직업별 투표행태와 계급/계층 균열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에 대한 직업별 지지표 분포는 일견
교육수준별 분포와 반대되는 경향으로 보인다. <그림 6>을
보면 2002년도 대선에서의 득표율은 1997년도에 비해 자본가,
신중간계급, 화이트칼라와 자영업에서 일정하게 상승한 반면,
블루칼라와 농/임/수산업 등의 직종에서 하락하였다.
그러나 2002년도 자료가 자본가와 화이트칼라 및 신 중간계급의
지지율이 통합되어 계산되었을 뿐 아니라 자본가도
중소기업가까지 포함된 그룹으로 분류되어 있어 정확한 추측이
어렵게 되어 있다.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가 2002년 투표일
직후 사흘 동안 1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중․대자본가, 4급 이상 고급공무원, 영관급 이상 군인,
이사급 전문경영인을 포함하는 자본가/상류계층 그룹에서 권영길
후보를 지지한 비율은 거의 0%에 가깝게 집계되었다.9) 반면, 전문직과 중농 및
중간 경영인과 중간공무원들로 구성되는 신
중간계급/중산층에서는 5.3%가 권영길 후보에게 표를 던진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계급/계층 균열과 관련해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
지지율의 변화가 갖는 의미는 전반적으로 1997년 당시
학생․지식인과 중간층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었던 현상을
벗어나 2002년도에는 신 중간계급에 강조점이 두어진 가운데에도
노동자층과 신 중간계급에 상대적으로 골고루 분포하는 현상으로
변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역설적으로 민주노동당
지지층이 아직도 신 중간계급 중심적인 현상을 보임과 동시에,
산업노동자를 중심으로 하는 핵심노동자층에 편중되어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다음 단락의 지역별 지지도 분포를
참조).
3) 지역별 투표행태와 계급/계층 균열
계급/계층 균열과 관련된 지역별 투표행태는 두 가지 경향으로
나타났다. 호남지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바와 같이
지역주의가 계급투표를 현저히 침식하는 현상과, 민노당
지지율이 노동자 밀집지역에 집중된 현상이다.
우선 민주노동당 계급투표에 대한 지역주의투표의 침식 현상을
보면, 민주노동당 내부의 평가에서도 ‘호남인들의 변심에 대한
섭섭함’이 거론될 정도로 심각하게 거론되고 있다.10) <표 4>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6월 지방선거와 비교해 볼 때 민노당 이탈표는
호남지역에서 극심하게 나타난 것이 사실이다.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14.8%를 얻었던 광주의 경우, 이번 대선에서
0.9%를 얻는데 그쳐 대부분의 민노당 지지자들이 노무현
후보에게 투표한 것으로 분석된다. 전남과 전북의 경우도 6월
지방선거에서 각각 12.8%와 15.0%였던 민노당 지지율이 2002년
대선에서는 1.4%, 1.1%로 하락했다.
<표 4> 권영길과 민주노동당 득표율 추이(%)(1997년 대선,
2002년 6월 지방선거, 2002년 대선)
지역구분 |
15대 대선(1997.12) |
지방선거(비례대표)(2002년 6월) |
16대 대선(2002.12) |
전국 |
1.2 |
8.1 |
3.9 |
서울 |
1.1 |
6.1 |
3.3 |
부산 |
1.2 |
10.7 |
3.1 |
대구 |
1.2 |
5.2 |
3.3 |
인천 |
1.6 |
6.3 |
5.0 |
광주 |
0.2 |
14.9 |
1.0 |
대전 |
1.2 |
7.5 |
4.4 |
울산 |
6.1 |
28.7 |
11.5 |
경기 |
1.4 |
5.8 |
4.4 |
강원 |
1.0 |
8.6 |
5.1 |
충북 |
1.3 |
7.3 |
5.8 |
충남 |
1.0 |
4.5 |
5.5 |
전북 |
0.4 |
12.8 |
1.4 |
전남 |
0.2 |
15.0 |
1.1 |
경북 |
1.4 |
4.5 |
4.4 |
경남 |
1.7 |
9.0 |
5.0 |
제주 |
1.4 |
10.6 |
3.2 |
* 자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여기에는 물론 정몽준의 노무현 후보 지지철회 영향이 적지 않게
작용했음이 사실이다. 민노당은 선거운동 직전까지 전국적인
여론조사에서 최고 6%까지 지지를 얻었고, 마지막 TV토론이 끝난
후 12월 17일 실시한 자체 여론조사에서 7%까지 지지율이
상승했었던 것이다(ꡔ말ꡕ 2003. 01, p61). 이
지지표 중에서도 특히 호남표의 상당수가 민주당의 재집권에
위협을 느낀 결과 노무현에 대한 비판적 지지로 선회했다고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지방선거와의 단순비교나 절대수치를 통한 단순비교는
다른 한 측면을 설명할 수 없다. 1997년 대선과 비교한 2002년
6월 지방선거에서의 민노당 득표율 상승비를 보면(<표 4>
참조), 전국평균이 1.2%에서 8.1%로 약 6.75배 증가한 반면,
광주에서는 0.2%에서 14.9%, 전남은 0.2%에서 15.0%로,
전북에서는 0.4%에서 12.8%로 대부분 32배에서 75배로
신장되었다. 또한 1997년 대선과 비교한 이번 대선에서의 민노당
지지율 변화를 보면(<그림 7> 참조), 전국이 1.2%에서
3.9%로 3.25배 증가한 반면, 광주에서는 0.2%에서 1.0%로 5배,
전남이 0.2%에서 1.1%로 5.5배, 전북이 0.4%에서 1.4%로 3.5배로
각각 증가함으로써 전국 평균과 큰 차이가 없거나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역시 지역성이 강한 영남 지역에서의 민노당 지지율도 2002년
지방선거에서 상승했다가 대선에서 다시 하락하였으나, 양
대선만을 비교해 볼 때는 일정하게 상승하였다. 그러나 그
상승비율은 울산까지 포함하더라도 2배 내지 3배에 그쳐 전국
평균 상승률에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6월 지방선거와 관련해 보면, 전라도민의 경우 오히려 다른
도민에 비해 민노당에 대한 지지율이 월등히 높았다(광주를
제외하고는 전남, 광주, 전북 순으로 가장 높다). 따라서 전라도
지역은 다음 총선에서도 민노당 지지가 높게 나올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11)
한편, <그림 8>에서 보는 바와 같이 2002년 대선에서도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 밀집지역에서 민노당에 대한
지지율이 매우 높게 나타났다. 민노당 권영길 후보는
현대자동차가 위치한 울산 북구에서 22.2% 득표를 거둔 것을
비롯해, 현대중공업이 위치한 울산 동구(15.2%), 쌍용자동차가
있는 평택(8.1%), 기아자동차가 있는 화성(6.5%), 만도기계가
있는 원주(6.1%), 대우조선이 있는 거제(9.3%), 과기노조가 있는
대전 대적구(5.5%) 등에서 전국평균 득표율보다 월등히 높은
득표율을 거둔 것이다. 이는 민주노동당의 지지도가 정규
산업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핵심노동자층에 집중되어 있음을
증명하는 현상이다.
IV. 결론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균열인 계급/계층 균열이
한국에서는 권위주의 정권의 동원과 배제에 의해 정치와 사회의
전면에 부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다른 특수한
균열들이 일정하게 해소됨에 따라 한반도의 특수적 근본 균열인
통일 문제가 등장한 후 2002년도 양 선거를 계기로 자본주의
사회의 일반적 근본균열인 계급/계층 균열도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16대 대선을 앞둔 정국의 정치사회적 특징은 신중간계급의
정치혐오증 외에도 계급/계층의 빈부차 심화와 그 정치사회적
영향으로 인한 전반적인 정치혐오증의 확산이었다. 특히 빈부차
심화가 주관적 계급의식에 직접 반영되어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지속되는 정치적 무능력이 특히 하층민들의 정치혐오증으로
연결되었다. 이러한 정치혐오증과 새로운 정치의 갈망은
권위주의 정치 아래에서 표출되지 못했던 근본적인 정치적
균열을 대변하는 새로운 정당이나 새롭고 신선한 대중적 인물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다.
계급/계층 균열과 관련된 2002년 대선의
교육수준별․직업별 투표행태는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저학력층과 주부들의 지지를 여전히 석권하고 있는 반면,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중간학력층의 지지를 많이 받았던 1997년 김대중
후보와도 달리 고학력층과 신중간계급의 집중적인 지지를
받았다. 지역주의 투표행태는 지역별 투표집중도가 높아짐과
동시에 지역대결구도는 약화되는 양 방향으로 나타났다.
지역주의 균열에 따른 투표행태는 약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인물본위인 대선에서는 여전히 계급/계층 균열에 따른
투표행태를 심각하게 침식하고 있다.
한편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의 지지표 분포는
고학력․지식인층에 편중된 경향이 있으나 점차 탈피해
가는 모습을 보였다. 직업별로도 신중간계급에 치중된 경향이
약화되고 핵심노동자층 전반에 골고루 분산되어 가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12)
민노당의 핵심노동자 중심 경향은 지지율이 제조업노동자 밀집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에서도 증명된다. 지역별 지지율
분포와 관련해서는 호남지역이 대선에서는 민노당 지지율이
적었지만, 정당명부제 하에서는 여전히 민노당에 대한 가장 높은
계급 균열성 투표가 나올 가능성이 높은 지역으로 나타났다.
역사적으로 형성된 호남주민의 개혁적․민중적 성격이
계급문제와 결합해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2002년 대선은 노동자정당으로서의 민주노동당이 6월 지방선거에
이어 제3당으로 입지를 굳힘으로써, 계급/계층 균열구조의
정당구도 반영을 위한 ‘정초선거’(founding election:
O’Donell & Schmitter 1986)의 가능성을 연 선거였다.13) 물론 지역주의 균열이
지속적으로 강하게 작용하고 ‘세대 교체’와 ‘새로운 정치’를
강조하는 비계급적 진보이고자 하는 노무현 정권이 포퓰리즘적
조합주의 정치를 선택할 경우, 보혁구도나 계급균열의 등장은
어려워 질 수 있다. 그러나 지역주의나 포퓰리즘적 조합주의
정치가 일시적 현상으로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해소된다고 볼
때, 장기적으로는 가장 근본적인 균열구조인 계급/계층 균열이
보혁구도의 형태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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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1.23).
http://www.nec.go.kr/tgm_index.html(검색일:
2003.01.23).
* 이 글은 서울대학교 한국정치연구소가 주최한 <16대 대선의
선거과정과 의의>(2003.1.28.) 심포지움에서 발표한 글을
수정한 것이다.
1) 학계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계급구분의 대표적인 것으로는
라이트의 다차원적 ‘착취’ 개념에 입각한 분류들이 있다. 예를
들면, 자본가계급에는 자본을 소유한 대자본가와 소자본가가
포함되고, 기업체의 중역․임원, 조장․반장 등
생산감독직, 계장급 사무직․판매직․서비스직은
모순적 계급위치인 중간계급으로 분류되며, 노동자계급에는
숙련공과 공장근로자 및 단순
사무직․판매직․서비스직이 포함된다(정영태 1993,
140; Wright 1985).
2) 특히 계급과 관련해 균열구조를 중심으로 한국정당체제를
분석한 글로는 성경륭의 “한국의 사회계급과
정당구조”(1992)와 한국산업사회연구회가 펴낸 ꡔ계급과
한국사회ꡕ(1994)를 참조했고, 대개는 최장집의
ꡔ한국민주주의의 이론ꡕ을 참조. 성경륭은
민주-반민주의 균열구조를 중심으로 계급균열이 억제되고
지역균열이 분출하는 것을 논하였고, 최장집은
권위주의-민주주의, 경제적 정의-발전, 민중주의적
통일-보수주의적 통일을 중심으로 논의하였다. 최장집의
논의에서 지역주의는 제4의 균열이라고 할 수는 있으나,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변수는 아니며 다른 여러 가지 갈등적
요소들의 누적적 효과에 불과하다. 곧 “궁극적으로, 지역주의는
비합리적인 집단적 감정이나 이데올로기의 영향이면서 동시에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균열들의 전도된 응축이나 또는 그것의
체현”인 것이다.
3) 특히 계급균열과 관련된 배제의 논의는 정진민 1998,
pp.187~188 참조.
4)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2001. ꡔ한국인의 삶의
질 조사 자료집ꡕ
5) 이러한 의미에서 구집권여당이 역설적으로 ‘가장 민중적’
정당이었다고도 한다.
6) MBC와 코리아리서치가 유권자 7만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출구조사에서도 이와 유사한 결과가 나왔다. 이 조사에서 나타난
유권자의 학력별 노후보와 이후보에 대한 지지분포는
대졸이상에서 50.1% 대 40.2%, 고졸 이상에서 47.9% 대 43.6%,
중졸이하에서 34.5% 대 56.3%였다. KBS와 미디어리서치가
5만명의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출구조사에서도 같은 경향을
보였다. <한겨레>, 2002.12.20.
7) 이를 두고 김용호 교수는 1997년 김대중 후보 승리의
요인으로 효과적 미디어 선거운동방식 외에, 호남과 충청간의
지역연합 전략의 성공과 집권세력의 분열을 꼽았다(김용호 2001,
pp.427~452).
8) 김수진 교수에 의하면, 유럽에서 사회주의 지식인들은
적극적인 조직활동이나 이념적 동원을 통해 노동운동의
정치세력화를 직접 촉발시켰다기보다 노동자들에 의한 자발적
생성과 촉발이 있은 후 그들이 독자적 정치운동을 지속하기 위한
이념적 기초를 제공했다(김수진 2001, 77~78).
9)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 2002. 16대선 지지율 조사자료
(2002년 12월 20~22일 조사).
10) ꡔ노동일보ꡕ, 2002.12.22; “이번 대선에서
지난 지방선거의 정당명부 득표수보다 384,228표를 적게 받았다.
그런데 그 유실분 중 70%에 이르는 263,595표가 호남지역에서
그리고 36%에 이르는 137,287표가 부산, 울산, 경남에서
발생했다. 주요 득표변주 중 지역주의 변수와 투표율 변수가
강하게 작용하면서 생긴 손실분이다” (신장식 2003, 52).
11) 이러한 의미에서 민노당이 이번 대선의 결과를 지방선거와의
단순 비교를 통해 피상적으로 평가하여 ‘변심’을 섭섭해한다면
중대한 전략적 실수를 범하는 것이 된다.
12) 그러나 이 점은 핵심노동자층의 해체 현상이라는
신자유주의적 경향을 볼 때 비핵심노동자들에 대한 장기적인
정책 수립이 요구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13) 최장집 교수는 1987년 대선을 지역당적 성격의 투표행태와
정당체제를 형성한 ‘정초선거’라고 하지만(최장집 2002, 114),
1992년 이후 지속적인 변동을 볼 때, 새로운 정치체제로의
이행을 종결짓는 선거를 의미하는 ‘정초선거’는 아직 아니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