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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번호 1453번 등록일 2003-03-20 00:00:00
글쓴이 이철의 글쓴곳  
발행호수 85   분야 9  
제  목 노동조합의 투쟁전술을 생각한다

노동조합의 투쟁전술을 생각한다
-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 위태롭지 않다-


이 철 의 / 교육위원장





1. 손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전쟁은 국가의 중대사이다. 그것은 국민의 생사가 달려 있는 것이며 국가의 존망이 결정되는 길이니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孫子曰, 兵者, 國之大事, 死生之地, 存亡之道, 不可不察也.

손자를 읽고 감명을 받은 어느 건방진 노조 활동가가 이렇게 말하였다.
“파업은 노동조합의 중대사이다. 그것은 노동자의 생사가 달려 있는 것이며 조합의 존망이 결정되는 것이니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 노동조합은 파업투쟁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최근에 “파업을 하지 않고 교섭력으로 현안을 해결하는 게 21세기의 노동운동”이라고 말한 얼빠진 작자도 있기는 하지만 어리석은 헛소리이다. 그 작자는 바로 얼마 전까지 자기 조합의 간부나 조합원들이 싸워온 자산을 우려먹고 있는 중이다. 그 노조에 그런 투쟁적인 흐름이 없다면 정부나 사측에서 그를 대접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파업, 그리고 준법투쟁에 대하여
IMF 구제금융 사태 뒤 이 나라에 수많은 파업투쟁이 벌어졌다. 한국 노동운동의 건강함을 말해주는 증거이다. 비록 신자유주의가 대세라고는 하지만 거기에 굴복하지 않는 치열한 투쟁정신이 없으면 노동운동의 존재이유가 과연 무엇이겠는가? 그러나 노동자들은 대부분 이기지 못하였다. 기업별 투쟁, 지도자들의 동요, 투쟁을 피하려는 운동내의 기회주의 같은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상황에 맞는 적합한 투쟁전술이 없거나 부족했던 것”도 중요한 패배원인이라고 생각한다.
파업투쟁에서 패배한다는 것은 비참한 일이다. 간부들은 감옥으로 간 뒤에 해고를 당한다. 조합원들의 운명은 정부나 회사의 처분에 맡겨지기 일쑤이다. 정리해고, 징계해고, 손해배상, 무노동 무임금은 물론 자신의 정신을 배반하고 회사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회사에서 배겨날 수가 없다. “정부와 자본의 본질을 폭로하였으니 이긴 투쟁”이니 “국민의 동의를 얻었으니 이긴 투쟁”이니 하는 소리를 하면 안된다. “비참하게 깨지는 것은 노동자들의 계급적 성장을 위해 필연적인 것”이라고 말하면 더더욱 안된다. 그런 이야기는 운동사를 정리하는 역사학자들이나 할 이야기이다. 파업투쟁을 기획하고 집행하며 승리하기 위해 분투하는 간부나 활동가들이라면 “어떻게 하면 이 투쟁을 승리할 수 있을까?”하고 골몰해야 한다. 패배한 경험을 곱씹고 되새겨서 “다음 투쟁에서는 결코 지지 않겠다”는 꿍심을 가져야 한다. 물론 운명적인 패배를 각오해야 할 때도 있다. 피할 수 없는 패배를 각오하고 장렬하게 맞붙어 깨져야 할 때가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우리를 치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분명히 보여 주겠다”는 결의와 준비를 가질 때에 비로소 그 패배가 전진의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 전술문제를 생각하기에 앞서 파업의 본질을 생각해야
수많은 파업투쟁을 지켜보며 안타까운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지하철 파업을 했는데 대부분의 지하철이 굴러 다닌다. 택시가 파업을 하면 개인택시나 한국노총의 택시들만 떼돈을 번다. 발전노조의 파업은 38일간이나 나라를 뒤흔들었지만 정작 가정의 전등하나도 끄지 못하였다. 수많은 생산현장의 파업에서 자본가들은 공장의 재고를 소모하며 위기를 기회로 바꾸고는 한다. 심지어 파업투쟁을 유도해서 골치아픈 노동조합을 싹쓸이하려는 자본가들도 있다. 그 모든 파업투쟁에서 노동조합의 주요 간부들은 생산에 결정적인 타격을 주는 전술을 쓰지 못한다. 그래서 언제나 생산의 심장부는 씽씽 잘도 돌아간다. 경찰이 경비를 서기도 하지만 생산의 심장부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조합 스스로 파업대오에서 배제하기도 한다. 혹은 비정규직이나 비조합원인 노동자들이 대신 생산을 맡아 하기도 한다. 한심한 일이다. 이래서야 어떻게 파업투쟁에서 승리할 수 있겠는가?
수많은 노조간부들이 파업을 위협수단으로 생각한다. 이정도하면 정부나 사장들이 얼지 않을까? 진짜 생산을 멈추면 국민들이 우리를 비난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필요이상으로 하는 심리가 여기에 있다.

94년 전지협 전국지하철노동조합협의회의 약칭이다. 서울지하철 노조, 부산지하철 노조, 철도전국기관차협의회(전기협)가 94년 3월 16일 설립했다. 전기협은 철도노조가 한국노총에 소속되어 있어 참관형태로 참여했다. 94년 공동파업투쟁을 수행했고 전국민주철도지하철노동조합연맹(민철노련)으로 발전했다가 민주노총 공공연맹으로 통합 해산했다.
공동파업 투쟁때 전지협 주요 지도부는 “철도와 지하철이 공동파업을 하면 교통대란이 일어난다. 따라서 승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낙관하였다. 그러나 이런 낙관은 도로부문과 항공부문을 과소평가한 것이었다. 당시 철도의 교통 분담율은 16퍼센트 정도였다. 파업투쟁은 치열하게 진행되었고 수도권과 고속도로를 중심으로 교통혼잡은 극에 달했다. 그러나 정부를 굴복시킬 만큼 결정적인 타격은 아니었다. 지하철과 철도가 완전히 멈춰 서지도 교통대란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당시 지도부가 좀더 적극적인 사고를 가졌다면 철도와 지하철의 파업위력를 키우는 것에 대하여 그리고 파괴력을 키우기 위한 보조적인 전술을 고민했을 것이다.


3. 모든 투쟁은 새로운 전술을 필요로 한다
“정석을 배우되 곧 잊어 버려라.” 바둑에서 잘 쓰는 격언이다. 바둑실력을 높이려면 정석을 배워야 한다. 그럼 정석이란 무엇인가? 정석은 바둑의 최고수들이 만든 것이다. 실전에서 부딪치고 혹은 연구하면서 그 상황에서 최선의 길을 찾은 것이 바로 정석이다. 바둑의 역사가 곧 정석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똑같은 정석을 구사해도 상황에 맞지 않으면 그것은 정석이 아니다.
노동조합의 투쟁전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 어떤 투쟁도 각자 다른 조건과 환경속에서 조직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투쟁에 앞서 정세를 따지고 주개관적인 조건을 따진다. 그러면 그 전술도 조건에 따라 골라잡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 운동은 어떠한가? 수많은 투쟁들은 과거의 투쟁전술을 그대로 따라간다. 남이 썼던 전술을 그대로 끌어다 쓰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투쟁전술을 별로 고민하지도 않는 것 같다. 엄포용으로 투쟁전술을 미리 공표하기가 일쑤이다. 이러고도 싸움을 이기려고 한다면 그것은 과욕이다. 적을 너무 우습게 여기는 것이다. 우리는 왕왕 정부와 사장의 강공에 휘말리거나 의표를 찔려 허둥지둥하면서 상대방을 혼란에 빠뜨릴 전술도, 전술을 효과적으로 집행할 책임자도 없으면 그 승패는 뻔한 것이 아니겠는가?

중국 항일 전쟁에서 모택동은 전략적으로는 지구전을, 전술로는 유격전을 채택하였다. 일본과 국민당보다 압도적으로 열세인 군사력을 감안한 것이었다. 그러나 중국 홍군내의 모험주의자들은 때로는 봉기전술을, 때로는 보루를 높이쌓은 진지전을 주장하였다. 봉기는 광동에서 무참히 실패하였고 노동운동은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진지전 또한 비행기까지 동원한 무기의 우세와 병력의 우세를 자랑하는 국민당에 밀려 패배하였다. 결국 홍군은 2만 5천리의 대장정을 떠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말이 좋아 대장정이지 실은 도망을 간 것이다. 이같은 실패를 경험한 뒤 모택동의 이른바 신전술이 채택되었던 것이다.
똑같은 정세하에서는 전략이나 전술의 우열이 승패를 결정한다. 임진왜란때 연전연승하던 이순신의 병력과 장비를 그대로 물려받은 원균은 단 한번의 패배로 조선 수군을 궤멸상태로 빠뜨렸다. 유리한 시기와 유리한 지형을 이용해서 전투를 벌이던 이순신과 달리 일본 수군의 뒤를 계속 쫓아다니다 적진 한복판에서 기습을 당했던 것이다.

87년 이후 우리 노동조합 운동의 투쟁전술을 잘 살펴보면 도식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생산직의 경우 공장점거 전술을 네트워크 공공부문(철도, 지하철, 한국통신, 사회보험 등)의 경우 거점농성을 주요 투쟁전술로 채택하는 것이다. 대체인력에 대하여 어떤 대응도 없고, 전선이 교착되어 있어도 공세적인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한다. 노동조합의 파업은 대체로 정부와 사측에 비해 압도적인 열세에서 출발한다. 이는 우리나라 민주노조 운동의 조직율이 5퍼센트를 밑돌고 있으므로 숙명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면 속전속결의 과감한 투쟁전술을 채택해야 하는데 대개는 “질긴 놈이 승리한다. 끝까지 투쟁하자.”는 정신으로 일관한다. 나는 그런 구호에서 불굴의 정신을 높이 살 수는 있지만 투쟁전술 면에서는 빵점이라고 생각한다. 오죽하면 사장이 교섭 한차례도 나오지 않겠는가? 그것은 시간이 사장의 편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만약 노조의 파업이 사장의 생사를 판가름하는 정도로 위력이 있다면 그 사장은 “뒤는 어떻게 되던 일단 들어주고 후일을 기약하는”태도를 보일 것이다.

2000년 철도노조 직선제 쟁취투쟁 때 민주파는 철도노조를 점거하였다. 철도노조를 무력화시키고 투쟁의 거점과 상징을 만드는 중요한 전술이었다. 그러나 초기에 유력했던 이 전술을 지도부가 두달 가까이 고집하여 투쟁이 교착되었다. 언제 있을지 모르는 침탈에 대비하여 초긴장 상태에 있던 농성자들은 점점 지쳐갔다. 결국 농성장에 극소수만 남았을 때 침탈이 없었는데도 철수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까지 몰리게 되었다. 사고를 바꿔서 초기에 점거했다 적당한 시기에 내주고 가끔 기습하여 어용 세력의 피를 말리는 작전을 쓰는 것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다.


4. 전술의 기본관점은 적을 기만하는 것이다
병법이라는 것은 상대방을 속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능력이 있으면서도 없는 것처럼 보이고, 쓸 생각을 갖고 있으면서도 쓰지 않는 것처럼 보이고, 먼 곳에 있으면서도 가깝게 있는 것처럼 보이고 … 적에게 이로움을 보여주어 적을 유인하고 혼란스럽게 만들어 적에게 승리하는 것이다 … 이렇게 상황에 따라 즉응하는 것이 전쟁을 아는 사람의 승리이니 미리 어떻게 하는 것이라고 말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 ꡔ손자병법ꡕ計편

노동조합 운동은 대중운동이다. 따라서 전쟁처럼 소수의 지휘관들만 알고 조합원들은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실상은 어떤가? 정부와 사측의 탄압속에서 중요한 전술은 모두 극비에 붙여지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서도 유력한 전술을 찾아보기 힘들다면 그것은 지도부의 책임이다. 모택동은 신전술의 개념을 간부들은 물론 홍군들에게 최대한 자세히 익히도록 하였다. 그러나 작전의 시기, 장소, 이동 병력의 규모 등을 보안사항으로 했던 것이다. 노동조합의 투쟁전술도 바로 이와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2000년 철도노조 민주화 투쟁당시 철도청의 대규모 탄압이 예고되어 있었다. 이같은 사태를 맞이하여 민주파 지도부에서는 논쟁이 벌어졌다. 철도청장의 비리를 담은 스티커를 언제 열차에 붙이느냐 하는 것이었다. 적극론자들은 “국회의원 총선거 전에, 기습적으로 부착하자”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소극적인 간부들은 “그것은 철도청이 더욱 탄압할 것이니 미리 공개하여 경고를 하고 전면적인 부착시기는 본격적으로 탄압할 때 하자”고 주장했다. 결국 두 번째 안이 채택되었고 총선거 뒤에도 살아남은 청장은 더욱 미친 듯이 탄압을 가하게 되었다. 철도청은 그 스티커를 공개하였을 때 경악하였다. 그리고 “더 이상의 탄압은 없다”며 회유하였다. 총선거 뒤 청장의 진퇴가 의문시되던 시점이었다. 그러나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한 철도청은 스티커 부착에 대비하였고 미리 공개되었기 때문에 전술 입안자가 바라던 “철도청 관료들의 심리적 공황상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한국 노조운동에서 모든 파업투쟁은 불리한 조건에서 출발한다. 단위노조의 파업투쟁에 정부와 자본, 제도 언론이 합작하여 총력대응하는 탓이다. 따라서 단위노조의 투쟁이라도 비상한 각오는 물론 유력한 투쟁전술을 골라 구사해야 승리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대중파업을 기본전술로 하되 유력한 보조전술의 구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다. 그러려면 사측의 강점과 약점을 평소에 파악하여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부와 총자본, 언론의 입체적인 탄압에도 최대한 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손자가 말하였다. “그러므로 명확한 계산에 의해 비교하고 그 세세한 정황을 살펴야 하는데, 그 비교요소들을 말하자면 통치자는 적과 우리측에서 어느편이 더 바른 정치를 하는가. 장수는 어느 편이 더 유능한가. 하늘의 변화와 땅의 조건에 대하여 어느 편이 더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가. 병력은 어느 편이 더욱 강한가. 장교와 병사들은 어느 편이 더 잘 훈련되어 있는가이다. 나는 이렇게 해서 승패의 가능성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노동조합 지도부들은 상황에 밀려서 전술을 선택한다. 투쟁전술은 교육되지 않는다. 교육은커녕 수립되지도 않은 채 무조건 파업에 들어가고 본다. 상대방은 대체인력의 투입, 파업가담자에 대한 대응책과 실무적인 준비, 지도부와 조합원의 이간책 등 온갖 방법을 다 세워놓고 준비하는데 이래서야 승패가 뻔하지 않겠는가?
일례로 거점농성의 경우 경찰은 정보수집을 한 뒤 진입작전을 세워 도상연습까지 마치고 작전을 개시한다. 그런데 농성 지도부가 침탈 뒤에 가야 할 곳도 정해놓지 않는다든지(2002년 철도노조 건국대 파업대오) 진입 일보전까지 투쟁방향을 놓고 논쟁을 벌이고 있다.(2002년 발전노조 서울대 파업대오) 투쟁을 주도하고 상황을 장악해도 시원찮은데 이런 식으로 질질 끌려다니면 결국 조합원에게 지도력을 의심받고 파업대오가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몽고의 징기스칸이 유렵대륙을 휩쓸 때 몽고군은 병력을 세 갈래로 나눠서 운용했다고 한다. 두 방향의 병력은 기만하기 위해 예측하지 않은 방향으로 갑자기 진출한다. 그래서 상대방을 혼란에 빠뜨려 놓고 주력부대가 의표를 찔러 공격목표로 진출하거나 나눠졌던 병력이 갑자기 합쳐서 적을 공격하는 식이었다. 이 같은 몽고군의 전술은 경무장 기병들의 압도적인 기동력으로 가능했다고 한다.
2002년 발전노조의 파업투쟁 때 발전 조합원들은 번개집회나 깜짝집회, 혹은 지하철역의 기습집회나 선전전으로 경찰을 혼란에 빠뜨렸다. 비록 주력전술로 채택되지 않아 아쉬움은 있었지만 유력한 투쟁전술이었다고 판단한다. 신속한 이동과 집결, 그리고 분산이 전술을 구사하는데 요점이었다. 경찰은 이 같은 전술을 몇차례 경험하였지만 거의 기만당하였다. 경찰의 정보망이나 압도적인 병력의 우세를 감안하면 우스운 일이지만 경찰의 의사소통 체계나 출동시간을 고려할 때 당연한 일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지도부의 이견 속에서 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지 못해 상황의 주도권을 정부와 사측에 넘겨준 데 대하여 아쉬움이 남는다.


5. 지금부터라도 투쟁전술을 연구해야 한다
파업투쟁 평가서들을 보면 대부분 “지도부의 투쟁의지가 문제였다”거나 “연대투쟁이 만들어지지 않아서 패배했다”는 식이다. 뿐만 아니라 “일시적으로는 패배하였지만 이긴 투쟁”이라고도 한다. 이러면 곤란하다. 이런 식이면 투쟁전술의 발전은 없다. 따지고 보면 승산이 적어서 투쟁에 나서지 않는다는 역설도 가능하지 않은가? 또한 유력한 전술이 없거나 형편없는 전술을 구사하기 때문에 조합원들로부터 지도력을 의심받는 것이 아닌가? 항상 원론적인 이야기만 되풀이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특히 창조적이고 풍부한 투쟁전술을 고민하기는커녕 작년의 투쟁계획을 그대로 베끼는 간부가 있다면 반성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짠 투쟁전술에 조합원들의 생사가 걸려 있다고 생각하면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운동도 투쟁전술에 대하여 연구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단위노조에 투쟁전술을 연구하는 사람이 몇 명쯤은 있어야 풍부한 전술이 나오지 않겠는가? “질긴 놈이 승리한다. 끝까지 투쟁하자.” 이런 구호를 외칠 때 조합원들의 가슴은 답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다른 방법이 없나 보군, 지금까지 버틴 것도 끔찍한데 도대체 얼마나 더 버티라는 거야?” 이렇게 생각할 것만 같다.
전투에서 패배하는 군대는 보통 심리적으로 먼저 와해된다고 한다. 지휘관부터 심리적으로 공황상태에 빠진 뒤 순식간에 대오가 무너진다는 것이다. 온갖 불리한 조건속에서 투쟁하는 우리 노동조합 운동도 여기에 착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을 기만하고, 상대방을 기습하고, 상대방의 의표를 찔러서 대통령이나 사장을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뜨린다면 투쟁에서 이길 수 있지 않겠는가? 그때 투쟁전술을 입안한 당사자는 최고의 행복을 맛볼 것이다. 전술 입안자만이 느낄 수 있는 쾌감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바로 그러하기에 조조는 패배하여 쫓기면서도 상대방이 예측하지 못한 점을 발견하고 웃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 싸워도 위태롭지 않으며, 적을 모르고 나를 알면 승부가 반반이며, 적도 모르고 나도 모르면 싸울 때마다 위태롭게 된다. 故曰, 知被知己, 百戰不殆. 不知被而知己, 一勝一負. 不知被不知己,每戰必殆.
- ꡔ손자ꡕ 謀攻編


기동전, 타격전
기동전, 타격전의 요체가 다음에 녹아 있다


1. 팽덕회가 말하는 유격대의 전술적 원칙

첫째, 유격대는 어떠한 경우에도 패하는 전투를 하지 말아야 한다. 승리할 수 있다는 강한 확신이 서지 않으면 절대로 교전하지 말아야 한다.

둘째, 기습이야말로 잘 지도받은 유격대의 주요한 공격전술이다. 기동성없는 전투는 피해야 한다. 유격대에게는 보조병력도 후방도, 적의 것을 제외하고는 병참선과 통신망도 없다. 장기적인 진지전에서는 모든 면에서 적이 유리하며, 일반적으로 유격전의 성공 가능성은 전투의 지속시간에 정비례하여 감소한다.

셋째, 교전을 도발하거나 받아들이기 전에 공격과 후퇴, 특히 후퇴의 계획을 신중하고 상세하게 세워야 한다. 특수한 상황에 대한 완전한 지식없이 시도된 공격은 틀림없이 유격대를 적의 책략에 노출시킬 것이다. 우월한 기동력이 바로 유격대의 최대 강점이니만큼 기동작전의 실패는 유격대에게 파멸을 의미한다.

넷째, 유격전의 전개에서 최대 관심은 지주 및 호신들의 최초이자 최후이며 가장 완강한 저항선, 즉 민단에 쏟아져야 한다. 민단은 군사적으로도 파괴되어야 하지만 가능한 경우에는 정치적인 설득을 통하여 대중의 편에 서도록 해야 한다. 한 지역의 민단을 무장해제 시키지 않으면 그 지역에서 대중을 동원하는 일이 불가능해진다.

다섯째, 적군 부대와의 일반적인 교전이라면 유격대가 수에서 적을 능가해야 한다. 그러나 적의 정규부대가 휴식중이거나 경비를 소홀히 하고 있을 때에는 훨씬 더 적은 인원으로도 적 진영의 편성에서 치명적인 지점에 대해 신속하고 과감한 측면기습을 가할 수 있다. 과거 홍군은 수백의 병력으로 수천의 적 병력에 대해 기습전을 감행했던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류의 공격에서는 돌발성, 속도, 용기, 흔들림 없는 결단, 결함없는 작전계획, 적 진영에서 가장 노출이 심하면서도 치명적인 공격의 지점이 필승의 조건이다. 따라서 경험이 풍부한 유격대만이 이런 류의 공격으로 승리를 거둘 수 있다.

여섯째, 실전에 임하는 유격대의 전열은 최대의 탄력성을 유지해야 한다. 일단 적의 병력이나 전투 준비태세 혹은 전투에 대한 그들의 계산이 잘못된 것으로 판단되면 즉각 교전을 중단하고 공격을 시작할 때와 마찬가지로 신속하게 후퇴해야 한다. 지휘관이 전투 중에 쓰러진다 해도 그를 충분히 대신할 수 있고 신뢰할만한 간부가 각 조마다 육성되어 있어야 한다. 유격전에서는 하사관의 기지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일곱째, 교란, 유인, 견제, 복병, 양동, 도발 등 여러 가지 전술을 체득해야 한다. 한문으로는 이들 전술을 성동격서책(聲東擊西策: 서쪽을 공격하면서 동쪽을 공격하는 체 하는 기만술책)이라 부른다.

여덟째, 유격대는 가장 약하면서도 치명적인 지점을 집중 공격할 뿐이지 절대로 적 주력부대와의 대결은 피해야 한다.

아홉째, 적이 유격대와의 주력이 있는 곳을 알지 못하도록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유격대는 적이 진군하고 있을 때 절대로 한곳에 집결해 있지 말아야 하며 공격 직전에는 하루 낮, 하루 밤 동안에도 2번 내지, 3번씩 빈번하게 장소를 이동해야 한다. 이동에 있어서의 은밀성은 유격대의 성공에 절대로 필수적이다. 적의 진격을 막기 위한 실질적인 집결계획은 물론이고 공격후의 분산계획도 중요하니만큼 이 두 가지 계획 모두가 완벽해야 한다.

열번째, 유격대에게는 우월한 기동성외에도 현지의 대중과 밀착되어 있기 때문에 우월한 정보수집 능력이라는 장점도 가지고 있느니 만큼 이 장점을 최대로 활용해야 한다. 물론 이상적으로는 농민들 전부를 유격대의 정보 수집원으로 활용하여 적이 한 발자욱을 움직일 때마다 유격대가 그것을 알도록 하는 것이다. 적에 대한 정보통로를 보호하는데 크게 신경을 써야 하며 보조 정보망이 항상 여러 개씩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 ꡔ중국의 붉은별ꡕ 제8부 ‘홍군과 함께’, [유격전의 전술]에서 인용

각 항목마다 동지가 느낀 점은 무엇인가?


2. 홍군이 정강산에서 채택한 구호
― 흔히 16자 전법이라고 일컫는다.

적이 전진하면 우리는 퇴각한다. (敵進我退)
적이 멈춰서 진을 치면 우리는 그들을 교란시킨다. (敵止我擾)
적이 전투를 피하려 하면 우리는 공격한다. (敵避我擊)
적이 퇴각하면 우리는 추격한다. (敵退我進)

“4자씩의 한자로 만들어진 이 구호들은 처음에 실전경험이 있는 많은 군인들의 반대를 받았어요. 이들은 그 같은 형태의 전술에 찬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많은 체험 속에서 이 전술이 옳다는 점이 입증되었지요.
홍군이 이러한 전술에서 벗어나면 대체로 실패했어요. 우리는 병력수가 적어서 적군보다 10배에서 20배까지 열세에 놓여 있었습니다. 우리는 자원과 전투물자도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기동전과 게릴라전을 교묘하게 배합시켜야만 우리보다 엄청나게 풍부하고 우세한 기지에서 싸우는 국민당과의 투쟁에 승리할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홍군의 가장 중요한 한가지 전술은 과거나 현재나, 공격시에는 주력을 집중시키고 공격이 끝나면 병력을 신속하게 갈라서 분리시키는 능력에 있습니다. 이는 곧 진지전을 회피하고 이동 중에 있는 적을 궤멸시키는데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전술을 바탕으로 홍군은 기동성과 신속하고 강력한 ‘속공’을 발전시켰어요.


3. 발전노조 지하철역 기습집회 및 선전전 운용 사례
○ 반짝 선전전 기획

발전노조 파업시 실제로 운용했던 사례이며 아래는 당시에 썼던 지침서이다.

3-1. 반짝 집회의 의의
- 대오의 사기를 높이고, 실천적인 파업투쟁을 만들어 간다.
- 시민들에게 우리의 정당성을 선전한다.
- 선전전을 기획, 준비, 실행하는 과정에서 조합원들을 단련시킨다.

3-2. 조별배치
지 역
지 부
1차 집결지
신도림
서인천 1팀(1조-12조)
신길(1호선), 영등포역(2호선), 신도림역(2호선)
삼성역
서인천 2팀(13조-24조)
선릉역, 삼성역, 역삼역, 교대역(2호선)
서울역
서인천 3팀(25조-35조)
시청역, 서울역, 용산역
부평역
인천 1팀(2조-8조)
부평역(지하상가)
주안역
인천 2팀(9조-14조)
주안역 지하상가


3-3. 진행순서
- 18:20 1차 집결지에서 조장들과 미팅을 한 후, 조장과 경계조가 먼저 출발한다.
- 18:30 경계조원들은 경계를 삼엄히 하며 거점 지역으로 이동을 시작한다.
- 18:40 본 장소에서 사전회의-조장의 역할과 경계조의 역할구분
- 19:00 집회―소리통 혹은 선동/간단한 결의발언(각 조별)/선전물 나눠주기
- 19:30 이동하면서 선전전 진행

3-4. 역할구분
- 경계조는 각 지하도 입구에서 병력이 이동(닭장차, 전경, 사복 등) 하는지에 대하여 감시한다. 사고 발생시 바로 조장에게 연락하여 대오를 피신시키도록 한다. 병력 이동은 지상에서 이동을 하므로 경계조가 차도를 잘 보고 있으면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 조장은 대오를 책임지고 인솔하며, 선전전이 제대로 진행될 수 있도록 한다. 구호를 외쳐서 주위를 환기시키고, 우리가 왜 총파업 투쟁을 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간단하고도 쉽게 선동을 한다.

3-5. 경찰에 대한 지침
- 사복 경찰이나 지하철 수사대는 2-3명씩 다니므로 시비를 걸면 무시한다.
- 병력이 오는 것이 확인되면 지하철로 이동하고, 지하철 안에서 시민들에게 선동을 하면서 선전물을 나눠준다.
- 병력에 치게 되면 산개 후 선전전을 독자적으로 진행하고, 이후 조별로 인원을 점검한 후 상황실로 보고한다.



4. 2000년 철도 공투본의 기동전, 타격전 운용 사례

4-1. 철도노조 탈환투쟁 (2차례)
4-1-1. 1차 탈환투쟁
4-1-2. 2차 탈환투쟁
4-2. 울진 백암 호텔 진입투쟁
< 개요 >
2000년 철도노조 김기영 집행부는 공투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3.7 대의원대회를 강행키로 하였다. 즉 전면적 직선제 규약개정을 통해 위원장을 선출할 것을 요구하는 공투본의 요구를 거부하고 간선제로 위원장 선거를 강행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 폭발적인 투쟁력을 가지고 있던 공투본의 위세에 눌려 울진 백암의 광광호텔에서 대의원 대회를 열고자 하였다. 공투본은 서울에서 버스 3대(150여명), 부산에서 버스 1대(50여명)을 파견하여 대회를 저지키로 방침을 세웠다. 철도노조 어용 집행부는 한국노총 이광남 직무대행의 비호아래 택시, 항운쪽 깡패 200여명을 동원하여 대회를 사수하고자 하였다. 이 깡패들은 화물운송노조의 신선대, 우암부두 지부 설립시 동원되어 테러와 폭력행사를 통해 민주노조를 탄압한 악명높은 집단이었다.
새벽 3:30분 공투본 서울 원정대가 도착했을 무렵 한국노총이 동원한 깡패들은 호텔 로비에 집결하여 원정대와 대치했다. 현관문을 걸어 잠근 깡패에 맞서 공투본 서울 원정대는 구호와 노래를 외치며 사기를 높였다. 새벽 5시경 부산 정비창을 주력으로 한 부산 원정대가 도착하였다. 공투본 지도부는 진입계획을 세웠다. 공투본 원정대는 사전에 지하 나이트 클럽으로 들어가는 통로를 발견하고 양동작전을 펼치기로 하였다. 즉 현관문 앞에서 구호와 노래를 외치며 문을 밀어붙이는 한편 주력을 지하통로를 통해 일시에 현관으로 진입했던 것이다. 원정대는 지하실에서 진입시 병과 상자를 집어던지는 한국노총 깡패들에게 선두에선 동지들이 다치기도 하였으나 현관을 돌파한 동지들과 합세하여 불과 5분만에 한국노총 깡패들을 제압하고 대회를 원천 봉쇄하였다.

< 유의할 점 >
- 양동전술(성동격서)에 대하여
- 사전 정찰시 경찰에 포착되어 곧바로 병력투입(오류)
- 기세에 대하여
- 정당성, 사기와 투지가 승패를 결정했다.

4-3. 스티커 도배투쟁
철도청의 공세에 맞서는 반격투쟁이다. 기동전과 기습을 배합한 투쟁이었으나 구로차량 소장 폭행사건으로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유의할 점>
- 시기를 놓친 투쟁으로 판단된다 : 총선 전 투쟁주장이 있었으나 철도청의 탄압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판단아래 실기했다.
- 스티커의 내용(청장비리, 노조탄압 등)을 총선 전에 미리 게시판에 게시하여 철도청의 저항력을 키워 준 것은 오류로 판단된다. 총선 전 공격주장과 총선 후 주장이 이런 식으로 절충되었다.
- 결정적으로는 돌발행동 때문에(구로차량 소장 폭행사건) 이 전술이 실패로 돌아갔다. 완강히 지속했으면 좀더 일찍 저항선을 칠 수 있었을 것이다.

4-4. SP 투쟁
- 스티커 투쟁이 실패한 뒤 시행한 투쟁이다. 고도로 훈련된 역량이 투입되었으며 결과적으로 철도청의 탄압을 저지한 효과가 있었다고 판단한다.
- 스티커 투쟁이후 부산정비창의 완강한 투쟁, 서울역 광고탑 농성, 용산역 구내 40미터 철탑 고공농성(40일 투쟁), 이와 결합한 대중집회, 철도청장의 MBC ‘인간시대’ 방송저지 투쟁, 명동성당 쇠사슬 단식농성 투쟁 등이 철도청의 탄압을 저지하고 역량을 보존시켰다. 이 하나 하나의 투쟁은 그 투쟁 자체만으로는 철도청의 탄압을 저지하기에 역부족이었으나 적시에 전술을 전환하며 파상적인 공세를 펼친 결과 철도청 경영진에게 반격의 두려움을 안겨줄 수 있었다.
- 이처럼 집중적 탄압기에 공투본 지도부 및 조합원 대중의 완강한 반격은 대투쟁 뒤에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자본의 탄압에 맞선 모범적인 반격으로 평가한다. 이런 반격은 87년 이후 노동조합 투쟁에서 예를 찾아보기 힘들다.

5. 2002년 세원테크 공장진입 투쟁 사례
용역깡패를 동원한 테러 및 폭행은 김대중 정권하에서 보편화된 노조탄압 수단이다. 세원테크 자본은 노조의 파업에 맞서 용역깡패를 동원, 공장 점거투쟁을 막아내고자 하였다. 세원테크 노동자들과 지역 연대투쟁 대오는 여러 차례에 걸쳐 공장진입투쟁을 벌였으나 용역깡패들의 무차별적인 폭력으로 많은 부상자를 내며 진입에 실패하곤 하였다.

6. 2002년 6월 천지산업 징계 반대 투쟁 사례
구로 공단의 천지산업 노동조합의 파업투쟁 또한 세원테크와 유사한 사례이다. 천지산업 노동자들은 징계위원회를 원천봉쇄하고자 하였으나 용역깡패들이 회사를 점하여 노동자들과 연대투쟁 대오에 맞섰다. 연대투쟁 대오는 징계위원회 날 회사 안 진입에 성공하기도 하였으나 끝내 징계위원회를 봉쇄하지는 못하였다.
이 투쟁은 다음과 같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
- 항상 진입날을 예고한 뒤 진입을 시도한 점, 이로 인해 용역깡패 대오를 증강시킨 점
- 진입 뒤 기세를 올리지 못하고 대오의 투쟁의지를 약화시킨 점, 경찰의 개입 및 상해로 인한 형사사건을 우려하였기 때문.
- 양동작전, 성동격서 작전, 기습 등 타격전에서 보편적인 기만전술을 쓰지 못한 점

7. 기타 사례들
- 94년 전지협 공동파업시 철도 대오의 기독교회관 진입사례
- 94년 전지협 파업투쟁시 서울 지하철의 고려대, 덕성여대 이동투쟁
- 99년 파업투쟁시 서울 지하철의 서울대 이동작전
- 99년 서울지하철 파업투쟁시 서울대 대오 경찰진입 기도시 대혼란 야기
- 91년 전노협 창립대회 사례(서울대 이동사례)

8. 시행못한 계획들
- 2002년 철도 파업시 기동전 운용
; 파업투쟁의 파괴력을 키우기 위함
; 기안했으나 집행부에서 받아 들이지 못함

9. 결론
- 기동전과 타격전을 위해서는 고도의 전술 지도부가 있어야 한다.
-기동전과 타격전을 위해서는 적어도 조장급은 전술의 대강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 자유자재로 전술을 구사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훈련이 필요하다.
- 특히 가두투쟁시 기동전 타격전을 운용하면 압도적인 경찰에 맞설 수 있다.
- 조장급을 선발, 훈련시키는 것은 물론 조합원 대중들 가운데 정예대오를 편성하여 기동전, 타격전과 같은 보조전술을 구사할 계획과 준비를 해야 한다. 특히 파업투쟁시 기동전, 타격전은 자본측을 혼란시키고 공포감을 가중시켜 투쟁승리의 유력한 지렛대로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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