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집안일 반복 또 반복…여자라서 아내라서 여자라서
어머니라서…사랑의 이름으로 모성애의 이름으로 일할 의무만을
던져주고 일할 권리는 빼앗아갔네…나는 일이 필요해 당당하게
살아갈 일이 필요해
- 안혜경의 노래 “일이 필요해”중에서
“여성노동자의 이름으로 메이데이를 말한다.”
여성노동자의 70%는 비정규직이다. 이 수치가
특수고용노동자들을 포함시키지 않은 것이기에 실질적인
비정규직여성노동자 수는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은 남성과 여성 노동자 모두에게 똑같은 강도로, 똑같은
모습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99년 농협중앙회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사내부부 762쌍 중 688명의 여성노동자들이 해고를
당했다. 이 여성노동자들 중 66%는 퇴직 즉시 계약직 노동자가
되었다. 대개의 경우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의지를 꺾는 데 가장 빈번하게 쓰이는 전략은 여전히
성폭력이다. 이처럼 신자유주의는 사회적 약자인 여성에게 더
많은 희생을 요구하며, 신자유주의의 각종 전략은
여성노동자에게 더욱 더 폭력적으로 행사된다.
노동자로서의 여성과 남성이 처한 계급모순적 상황 속에서도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부딪히는 이들의 현실과 처지는 분명
다르다. 여성노동의 문제에 있어서는 계급모순과 함께
남성중심적 성별권력구조의 측면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쟁 현장에서 여성 노동자의 공간이 제대로
확보되지도 못하고, 여성노동자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도
못한다. 이런 현실에서 ‘여성노동자의 이름으로 메이데이를
말한다’는 것은 여성노동자의 목소리로 여성들의 노동과 노동
현장을 말하며, 여성노동자 사이의 소통과 연대를 추구하고,
여성노동에 가해지는 부당한 탄압과 억압을 극복해 내기 위한
하나의 시작으로 무척이나 반갑게 느껴졌다.
본 대회는 5월 1일 113주년 노동절에, 마로니에공원 한편에서
시작되었다. 결의대회가 시작되기 전에 집행단위인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측에서 참가자들에게 나누어준 유인물의
제목이 바로 ‘113주년 맞이 메이데이를 여성노동자의 이름으로
말한다!’ 였다. 진행자의 발언 이후에는 학생 단위에서
페미니스트 가수인 안혜경씨의 노래를 기타 반주에 맞춰서 불러
주었다. 이어서 학생 단위의 율동과 노래가 이어지면서 분위기가
조금씩 무르익기 시작했다. 무대에서 공연을 하는 학생들과
그들과 함께 노래를 하고, 앉은자리에서나마 율동을 따라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신나는 한 판을 만들어주었다. 마지막으로
대회를 마무리하는 행진과 함께 우리는
비정규직여성노동자결의문을 채택하였으며 제안된 투쟁 목표는
다음과 같다.
하나 / 저임금, 장시간 노동 철폐하고 여성노동권 쟁취하자!
하나 / 성차별, 노동착취 강요하는 신자유주의 반대하고
여성노동권 쟁취하자!
비정규여성노동자는 어디에 있는가?
결의대회 당일 오후 1시를 전후로 하여, 마로니에 공원 한편에
수많은 단위의 수많은 사람들이 비정규여성노동자결의대회에
참가하였다. 하지만 그 많은 사람들 대부분은 학생들이었고,
비정규여성노동자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1시를 넘겨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조금씩 참가했을 뿐이다.
앞서 말했듯 공식적인 수치상으로도 여성노동자의 70% 이상이
비정규직이다. 비정규직과 여성이라는 이중의 악조건 속에서도
이미 학습지 여교사, 골프경기보조원, 호텔 룸메이드와 같은
직종의 여성노동자들이 여성노동조합을 중심으로 결합해서
힘겨운 투쟁을 계속해 나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여성노동자결의대회’라는 이름으로 벌이는 투쟁의
장에 비정규여성노동자들을 찾아보기 어려웠던 이유는 무엇인가?
비정규여성노동자들의 목소리로, 그녀들의 노동과 삶을
이야기하고, 그녀들의 권리와 투쟁을 오롯이 담아내야 할 그곳에
그녀들이 자리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인가? 이런 문제 인식과
아쉬운 마음이 대회 내내 계속되었다. 대회를 마치고 자리를
떠나면서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의 결의대회 제안서,
대회에서 채택된 결의문 속에 뭔가 빠진 것 같은 것은 알 수
없는 허전함이 밀려들었다.
‘밥․꽃․양’을 기억하다
98년 현대자동차 노조 안에서 정리해고에 맞서 싸웠던 식당노조
아주머니들의 일련의 투쟁의 기록물인
‘밥․꽃․양’을 아직도 우리는 기억한다. 물론
사건의 발단은 IMF라는 경제위기의 상황에서 노조에게 가해진
대규모의 정리 해고 압력이다. 그러나 이에 대응하는 울산
현대자동차노조의 투쟁은 어떠했나? 그들은 파업 중에 천막을
치고, 여전히 밥을 해 나르면서 함께 투쟁해 온 여성노동자들을
정리해고로 내몰았다. 결의 대회 내내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나에게 남아 있는 그 무언가의 아쉬움과 허전함의
정체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새삼 이제 와서
밥․꽃․양의 이야기를 다시 하는 것은 우선은
노동계급 내부에서 여성노동자들의 자기 공간 갖기와 목소리
내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가 하는 문제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것이 비단 그 때 그 곳의 일이라고 만은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생각에서 이번 결의대회가 비정규직여성노동자들의
공간과 목소리를 담아내는 데 뭔가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계속된 것이다. 더불어 노조 바깥의 그리고 노조 안의 압력에
대응해서 끝까지 싸운 여성노동자들과 그녀들과 연대했던
여성들의 힘을 기억하고자 하는 것이다. 여성 노동권을
쟁취하자는 이번 결의가 무산되지 않으려면 계급모순과
성별권력구조가 모두 극복되어야만 하기에. 비정규여성노동자의
이름으로! 여성노동권을 쟁취하자!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