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필요한 오해를 미리 차단하기 위해서 먼저 밝혀 두자면, 나는
결코 이른바 ‘대북송금 의혹사건’과 관련해 진행 중인 “특검
수사를 중단하라”는 주장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 진행
중인 특검은 실로 남북 간의 화해와 통일, 평화를 두려워하는
극우세력의 치밀한 음모의 소산이며, 따라서 그것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그리고 남북 간의 화해와 협력, 평화를 위한
노력은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최근 제기되고 있는 여러 ‘특검
중단론’을 비판한다.
왜냐? 그 논거, 전제가 전도되어 있어서, ‘특검 중단’이라는
당장의 주장만을 높이 사기에는 너무도 위험하기 때문이다.
(사)민족화합운동연합(이사장 주종환)의 6월 17일자 성명을 예로
들어보자.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애당초 대통령의 통치행위를 사법적 처벌의 대상으로 한 것
자체가 원천적으로 잘못이었다... 어느 나라이건 대통령에게는
외교나 국방에 관한 한 통치권자로서의 초법적 특권을 부여하고
있다. ... 대통령에게 그런 특권을 인정해야한다는 이론은
법학계의 가장 유력한 통설이다
....
이 시점에서 특검측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특검은 이제까지
조사한 내용을 국민에게 최대한 공개하는 한편, 전직 대통령의
통치행위로 이루어진 것임을 인정하고 대북송금에 관련된 모든
인사들에 대해 공소권 없음이란 단안을 내리고 수사를 종결해야
한다.”
법학이론상의 그 유명한 ‘통치행위론’에 근거한 주장인데,
오늘날 그것이 “법학계의 가장 유력한 통설”이라는 주장은
정말 위험하기 짝이 없는 어불성설이다.
왜냐? ‘통치행위론’이란 다름 아니라 파쇼의 법리이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국가보안법’이나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등과 같은 파쇼악법들을 그대로 둔 채 이른바 통치권자, 즉
대통령과 그 주변에 대한 적용배제만을 주장하다니! 이는
뒤집어보면, 결국 그들 파쇼악법들의 일반적 정당성을 전제한
위에서의 주장이 아닌가?
남북 간의 화해와 협력, 평화를 추구해야 하고, 그를 위한
하나의 이정표가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는 충정이야 백번
이해하고도 남지만, 사정이 아무리 급하고 딱하더라도 그럴 수는
없다. 그렇게 무원칙한 위험한 편의주의를 택할 수는 없다.
그리하여 나는 감히 주장한다. (사)민족화합운동연합의
성명에서는 반어법으로 제기된 다음과 같은 주장들이 사실은
법률적 진실이라고. 즉, 그 반어를 조금 수정하면 다음과 같이
되고, 그것이 현재의 법률적 현실에서는 바로 법률적 진실이다.
대북송금이 유죄인 것처럼, 김대중 대통령 등의 평양 방문과
6.15공동선언도 유죄이다. 마찬가지로, 국가보안법 및
남북교류협력법 상의 유사한 범죄를 저지른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등 전직 대통령과 그 막료들도 사법처리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되어야 한다. (많은 경우, 아직 형사시효가
소멸하지 않았을 테니까.)
생각해 보라. 국가보안법과 (범죄의 구성요건을 행정상의 절차와
관료의 자의에 맡기고 있는) 남북교류협력법이 시퍼렇게 살아서
사람들을 처벌하고 있는 상황에서 ‘법치’의 최소한의
원칙이라도 지키고자 한다면, 그렇게 유죄이고 그렇게
처벌되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다시 얘기하지만, 작금의 ‘특검 중단론’은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특검을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 자체에 잘못이 있는 것이 아니다.
다름 아니라 (비록 소극적, 암묵적이나마 명백히) 국가보안법 등
파쇼악법의 일반적 정당성을 인정한 위에서 악명 높은
파쇼법리인 ‘통치행위론’을 들고 나온 것이 잘못이다.
현재 진행 중인 특검의 중단은 국가보안법 등의 파쇼악법을
그대로 둔 채 파쇼법리인 ‘통치행위론’에 의거해 주장되어야
할 게 아니라, 명백히 국가보안법 등 파쇼악법의 폐지, 무효화를
전제로 주장되어야 한다.
전도된 전제 위에 선 작금의 ‘특검 중단론’과 파쇼악법의
폐지․무효화를 전제로 특검 중단론의 차이는 결코 작은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