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쿼터 존폐 논쟁이 다시금 불붙고 있다. 일부 경제관료들이
‘한미투자협정(BIT)’ 체결을 위해 스크린쿼터를 축소/폐지해야
한다고 제기한 이후, 몇몇 일간지들이 연일 스크린쿼터를 때리는
기사와 칼럼, 논설들을 쏟아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스크린쿼터
문제가 우리 사회의 주요 현안으로 등장하여 치열한 갑론을박이
진행중이다.
그러나 이 논쟁은 그 시작부터가 잘못된 것이다. 축소/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한미투자협정이 한국경제 발전을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전제를 깔고, 협정 체결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스크린쿼터를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과연
한미투자협정의 내용은 무엇인지, 투자협정이 투자유치와
대외신인도 상승을 보장하는 지에 대한 논의는 그 어디에도
없다. 스크린쿼터 존폐를 논의하기 전에 축소 주장의 전제인
한미투자협정에 대한 공론화와 합의의 과정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재정경제부 관료들을 중심으로 한 한미투자협정 찬성론자들은
찬성의 근거로 40억불 투자유치 효과, GDP 3% 상승효과,
대외신인도 향상, 북핵 위기의 안전판 마련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근거들이 사실이라면 굳이 한미투자협정을 거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협정 하나 체결하여 당장 40억불(약 4조
8천억원)이 들어오고, GDP가 3%나 상승한다면 오히려 조속한
체결을 요구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아무도
40억불이나 3%의 구체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증명하듯이 이러한 수치들이 철저히 가상의 시나리오에 근거한
숫자놀음에 불과하다는데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서 작성하고 재경부가 발표한 보도자료에
의하면, 2003년 4월 15일 우리나라의 외평채 가산금리는 120을
나타내고 있는데, 한미투자협정이 체결되면 가산금리가 100, 95,
90으로 하락할 것이라고 가정하고 있다. 그래서 외평채
가산금리가 100일 경우 외국인 직접투자가 32억 4천만 달러
추가유입이 예상되고, 이 때 GDP 증가는 2002년 기준 1.38%에
이른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외평채 가산금리가 95,
90으로 하락할 경우를 놓고 40억불이니, 3%니 하는 주장을
흘리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도 분명해지듯이 이들의 주장은
외평채 가산금리가 ‘반드시’ 하락한다는 전제 하에서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외평채 가산금리는 주식과 마찬가지로 극히
가변적인 것으로, 설사 투자협정 체결로 하락한다 하더라도 다른
정치경제적 요인에 의해 수시로 변동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재경부 관료들은 다른 복합적 요인들을 모두 무시한
체, 협정을 체결하면 무조건 하락한다고 가정해놓고 허황된
수치들로 국민을 현혹시키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가정대로
투자가 유치된다고 하더라도 투자된 외국인 자본은 기부금이
아니다. 이 자본이 거두어들이는 수익이 있고,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철수 가능하다. 그럼에도 경제전문가인 우리의
경제관료들은 상식에 속하는 이런 부분까지 철저히 도외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이 가당치 않은 숫자놀음 뒤에 감추려하는
한미투자협정의 본질은 무엇인가?
첫째, 한미투자협정은 철저한 불평등조약이다. 한미투자협정의
협상이란,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일방적으로 만들어놓은
협정안을 놓고 단지 예외조항에 무엇을 넣고 뺄 것인지를
합의하는 것이다. 달리 말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일방적으로 만들어 놓은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일 뿐이다.
둘째, 투자의 범위를 광범위하게 설정해 놓아 명백한
투기행위까지 보호가 된다는 것이다. 협정이 체결된다면, IMF
외환위기의 한 원인이 됐던 단기성 투기자본에 대한 규제가
불가능해질 수밖에 없다.
셋째, 투자 전단계에서부터 ‘내국민대우’가 적용되어, 그
투자가 공공의 목적에 부합하는 지 결정할 국가의 권리가
훼손된다.
넷째, 최고경영진에 대한 국적조항을 무효화시켜 공기업이나
국가기간 산업의 경영자를 내국인으로 제한한 국내법은 폐지
위기에 처하게 된다.
다섯째, 6조의 ‘의무이행 강제 금지조항’이 많은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이 조항은 기술이전이나, 현지 생산품 사용의무,
국내생산물의 전략 수출의무 등을 금지하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6조에 근거하여 공공의 목적을 위한 한국정부의 각종
정책을 이행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고용승계의무’, ‘내국인 일정비율고용’, ‘노동기본권
보장’ 그리고 ‘환경기준’ 등 수많은 정책들이 외국인
투자자와는 무관한 일이 된다.
여섯째,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설정된 ‘수용’과 그에 대한 보상
규정 역시 큰 문제를 안고 있다. 예를 들어 정부의 특정한
사회적 규제가 외국인 투자자의 자산가치를 감소시키거나, 혹은
감소시킬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투자자가 국가를 상대로 보상을
요구할 수가 있다.
일곱째, 투자협정에 따르면 투자자는 일종의 치외법권적 지위를
갖는다. 특히 투자분쟁시 개인 투자자가 국가를 상대로 제소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는 그 어떤 무역협정이나 국제협정도
인정하고 있지 않은 치명적인 독소조항이다.
여덟째, 협정문 5조는 투자와 관련한 자유로운 송금을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이 문제가 되는 것은 IMF 사태와 같은 외환위기
상황에도 외환송금을 규제할 방법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아홉째, 한미투자협정은 10년간 효력이 지속되고, 이 기간 중의
투자에 대해서는 다음 10년간 유효하다. 또한 조약이 발효되는
시점에 기투자된 부분에 대해서도 조약은 적용된다. 대부분의
투자자본이 단기간에 회수된다는 점에서 볼 때, 이 조항은
투자자본을 지나치게 과잉보호하고 있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이처럼 한미투자협정은 우리사회 곳곳에 수많은 폐해를
불러일으킬 독소조항들로 가득한 ‘경제적 SOFA 협정’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일부 경제관료들은 왜 이 협정에 그토록
끈질기게 매달리는 지, 그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한미투자협정 자체의 문제를 밀어둔다 하더라도 투자협정
체결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제기하는 스크린쿼터 축소/철폐의
논리를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경제발전을 위해서
영화계가 양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스크린쿼터
현행유지는 문화적인 이유뿐만 아니라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도
지켜져야 한다. 정보기술의 발달은 영화를 중심으로 한
영상산업의 가치를 새롭게 만들고 있다. 비디오, DVD, 공중파,
케이블, 위성방송으로, 이제는 인터넷 컨텐츠와 모바일
컨텐츠까지. 영화를 활용할 수 있는 창구(window)는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출판, 음반, 광고, 캐릭터,
심지어는 관광산업까지 영상산업이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은 점점
커지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주요 선진국들은 문화컨텐츠 산업을
21세기 핵심 전략산업으로 집중 육성하고 있는 것이다.
제조업에서 중국의 추격에 좇기고 있는 우리의 입장에서
영상산업이 가지는 중요성은 더욱 크다 할 수 있다.
영화산업이나 영상산업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까지 미미하다. 그러나 이로 인해 영상산업이 가지는
가능성까지 외면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최근 스크린쿼터를
기반으로 한 한국 영화산업의 급속한 성장속도는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그런데 한국영화의 성장이 경쟁력을 갖추었으니 보호막을 걷어도
되지 않느냐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이는 세계 영화산업의
현실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 못한 주장일 뿐이다. 현재
할리우드 영화는 전세계 영화시장의 85%를 장악하고 있다. 이로
인해 대대수 국가의 영화산업이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고,
영화산업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의 산업규모를 갖추고 있는
나라는 소수에 불과한 실정이다. 할리우드는 막강한 자본력과
기술력, 인적자원을 바탕으로 전세계 영화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나마 자국시장에서 할리우드와 맞서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 프랑스를 포함한 극소수 국가뿐이다. 그런데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적극적인 자국영화 진흥정책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경우 영화표 금액의 11%와 각 방송국
전년도 매출의 3%를 거둬들여 자국영화 지원을 위한 재원으로
사용하고 있다. 또, 프랑스에서 방송되는 모든 영화의 60%는
유럽영화이어야 하고, 40%는 불어로 촬영된 영화여야 한다는
규정의 방송쿼터를 두고 있다. 영화와 방송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프랑스의 실정에 맞는 제도를 시행하여 영상산업의 발전을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는 스크린쿼터가 우리 실정에 맞는 영화
진흥정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스크린쿼터가 실질적 효력을
가지는 제도로 자리잡은 것은 90년대 중반의 일이다. 이때
이후로 한국 영화산업이 급속도로 성장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스크린쿼터는 제작된 한국영화가 관객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일정 수준 보장하는 제도이다. 아무리 잘 만든 영화라도
관객과 만날 기회가 없다면 그것은 단지 필름덩어리일 뿐이다.
그렇다고 스크린쿼터가 관객에게 한국영화를 볼 것을 강요하거나
다른 영화를 볼 기회를 제한하는 제도는 아니다. 아무리
극장에서 한국영화가 상영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보기 싫은
영화를 억지로 보는 관객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스크린쿼터를
시행하고 있지만 이로 인해 수입되지 못하는 영화가 있는 것은
아니다. 몇몇 사람들은 스크린쿼터가 결과적으로 수준 낮은
상업영화의 범람만을 불러왔다고 지적하지만 쿼터가 없어진다면
한국의 영화사들은 생존을 위해 더욱 더 선정적인 소재의 영화를
만드는 데 매달리게 될 것이다. 또 저예산영화나 예술영화의
입지 축소를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한국영화가 위기를 겪던
때와 지금을 비교해 봤을 때, 어느 때 더 다양한 영화들이
나오고 완성도 있는 영화가 제작되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산업적으로 안정되었을 때, 다양한 영화가 만들어질
가능성도 높아지는 것이다.
자국의 실정에 맞는 영화진흥정책을 갖추고 있는 우리나라,
프랑스와 같은 나라들은 평균 40% 내외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면서 자국시장에서 할리우드 영화와 대등하게 맞서고
있다. 그러나 멕시코와 같이 개방압력에 밀려 진흥정책을 포기한
나라들은 영화산업 붕괴라는 결과를 맞고 말았다. 1993년
스크린쿼터를 도입하여 53편까지 확대되었던 멕시코 영화
제작편수는 94년 미국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로
스크린쿼터가 폐지되자 급속히 하락하여 98년에는 10편 수준에
머물렀다. 이상의 사례들은 스크린쿼터를 한국영화의 보호막이
아닌 안정적인 발전을 보장하는 문화정책으로 새롭게 인식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할리우드의 패권이 절대적인
상황에서 자국영화 진흥정책은 영화산업 발전의 필수적인
전제조건인 것이다. 또 하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미국의
스크린쿼터 폐지 요구가 방송산업을 장악하기 위한 의도의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미국은 계속해서 방송쿼터와 방송사의
외국인 투자지분제한 규정을 폐지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영화산업의 전면개방은 방송개방에 대한 본격적인 공세로 이어질
것이다. 결과적으로 스크린쿼터의 폐지/축소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영상산업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경제적인 이유로도 스크린쿼터는 현행대로 유지되어야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문화적인 이유이다. 문화는 한 공동체나 국가,
민족의 사상과 삶의 궤적을 표현하는 의사표현의 수단이다.
문화를 잃는다는 것은 한 공동체의 언어와 영혼을 잃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때문에 문화는 결코 일반상품과 똑같이
자유무역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우리말로 우리정서를
담아낸 영화라는 표현수단을 잃는 것은 그 어떤 경제적 가치로도
평가될 수 없는 막대한 피해이다. 그런데 소위 자유무역이라는
것이 확대되면서 인류의 문화환경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앞서 할리우드의 세계시장 장악을 언급했지만 방송이나 음반 등
여타 분야에서도 미국문화의 지배현상은 심각한 상황이다.
자유무역이 미국문화의 일방적 확대를 불러와 문화의 획일화를
획책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각 나라는 자국문화의 보존과
발전에 커다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소중한 문화의 전통과
자산들이 하나 둘씩 인류의 문화환경에서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위기상황은 미국을 제외한 대다수 국가들의
연대를 촉진했다. 현재 유럽, 캐나다, 아프리카, 남미의 많은
나라들은 문화의 획일화를 극복하고 인류의 문화다양성을
확대하기 위한 ‘문화협약’ 체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문화협약은 우리의 스크린쿼터와 같은 문화정책을 영구히
보장하고, 서로의 문화를 침해하지 않는 문화교류를 확대하기
위한 협약이다. WTO를 위시로 한 무역협정들이 문화의 파괴와
획일화라는 결과를 불러왔기 때문에 이에 맞서는 협약을
대안으로 마련한 것이다. 문화협약은 협력을 통한 문화산업
발전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이 우리 문화와 문화산업 발전의 대안인지는 분명하다. 일부
경제관료들과 언론들은 한미투자협정의 본질은 감추어두고,
스크린쿼터를 영화인들의 제 밥그릇 챙기기로 몰아붙이는 행태를
중단해야 할 것이다. 사라져야 할 것은 스크린쿼터가 아니라
잘못된 경제정책을 밀실에서 무리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경제관료들이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