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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번호 1609번 등록일 2003-12-24 00:00:00
글쓴이 채만수 글쓴곳  
발행호수 93   분야 4  
제  목 동북아 평화를 위한 노동자 국제연대 운동을


동북아 평화를 위한 노동자 국제연대 운동을!
― 제2의 한국전쟁을 막자 ―


채 만 수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소장

기 고




I
한국의 젊은이들 사이의 우스갯소리 중에 “공자 앞에서 문자 쓴다”는 말이 있습니다. 더 젊은애들은 더 익살스럽게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다”고도 하지요.
동북아 평화를 위한 노동자 국제연대 운동을!

자신보다 학문적 조예나 경험, 기예 등이 뛰어난 사람의 앞에서 학문이나 경험, 기예 등을 자랑하는 것을 일컬어서 하는 말인데, 제가 오늘 일본의 여러 동지들 앞에서 강연이랍시고 하려 하니까 왠지 정말 “공자 앞에서 문자 쓰는 격”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듭니다.
일본은 저희 한국보다 운동의 전통과 경험도 훨씬 풍부하고, 사회과학의 이론도 훨씬 발전해 있고, 또한 국제정세에 관한 정보도 풍부한데다가, 더구나 저는 ‘동북아 정세’에 관한 한 전문 연구자가 아니고 아마추어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그러한 두려운 마음으로 오늘 얘기를 시작합니다.

II
주제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용어 사용상의 몇 가지 애로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예컨대, 과거에 독일이나 베트남이 분단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독이나 서독 모두 자신들을 ‘Deutschland’․‘Deutschland 인’으로 불렀습니다. 베트남 역시 남․북 모두 ‘베트남’․‘베트남인’으로 불렀구요. 중국의 경우 지금 ‘하나의 국가’임을 주장하고 있어서 성격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아무튼 대륙 측과 대만 측 모두 ‘中華’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서 우리는 많이 다릅니다.
잘 아시다시피, 휴전선 남쪽에서는 자신들을 ‘대한민국’ 혹은 ‘한국’이라고 부르고, 더구나 자신들의 영토가 압록강․백두산․두만강에 이른다고, 그러니까 반도 전체와 부속 도서가 ‘대한민국’․‘한국’이라고 주장합니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헌법 제3조의 규정입니다.
그에 반해서, 휴전선 이북에서는 자신들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혹은 ‘조선’이라고 부르고, 마찬가지로 반도 전체와 그 부속 도서가 조선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헌법 혹은 기본법에도 그러한 영토 조항이 있지 않겠나 추측합니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휴전선 남쪽에서는 자신의 지역을 ‘남한’, 휴전선 이북의 지역을 ‘북한’이라고 부르는 것이 관행으로 되어 있고, 휴전선 북쪽에서는 거꾸로 ‘북조선’, ‘남조선’이라고 부르는 것이 관행으로 되어 있다고 추측하는데, 어떻습니까? 저는 이러한 용어법은, 역사적 맥락이야 어찌되었던지 간에, 심각한 정치적 문제를 안고 있다고, 상호간에 상대방을 현실적인 정치적 실체로서 인정하지 않는 적대적인 용어법이라고 생각하는데,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아무튼 저는 그러한 이유와 생각 때문에 휴전선 이남은 ‘한국’ 혹은 ‘이남’으로 호칭하고, 그 이북은 ‘조선’ 혹은 ‘이북’, 혹은 단순히 ‘북’이라고 호칭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반도 전체를 일컬을 때 참으로 난감합니다. 오늘 일본의 동지들이 주신 주제에는 “제2의 조선전쟁을 막자”로 되어 있지만, 위와 같은 이유 때문에 그것을 ‘한반도’라고, 따라서 ‘한국전쟁’이라고 하는 것도, ‘조선반도’ 혹은 ‘조선전쟁’이라고 하는 것도 엄밀하게는 정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마찬가지로 정치적 문제를 안고 있는 용어법이기 때문입니다. ‘코레아 반도’, ‘코레아 전쟁’ 해버리면 일응 문제가 해결되지만, 우리말이나 일본어로는 이는 또 너무나 익숙치 못하고 작위적인 용어법이라는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런 문제점을 알면서도 이와 관련하여 저는 오늘 ‘조선반도’나 ‘조선전쟁’이라는 용어 대신에 ‘한반도’나 ‘한국전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려 하는데, 제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감안하여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청중 중에 혹시 ‘총련’ 쪽에서 오신 분들이 계시다면, 아마 노엽기까지 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로서는 양해를 부탁드리는 것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또한 ‘인민’이라는 용어도 한국인인 저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난감한 용어입니다. 이제는 크게 금지어까지는 아니지만, 한국에서는 그 동안 오랫동안 그것이 사실상 정치적 금지어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제는 아주 낮선 말로 되어 있습니다. 응당 ‘인민’이라고 표현되어야 할 말도 조금은 부정확한 ‘민중’이라는 말로 대체되어 버렸고, 저 또한 그러한 용어법의 희생자입니다. 그리하여 오늘 제 말씀 중에도 아마 ‘인민’으로 표현되어야 정확할 것들이 대개는 ‘민중’이라는 말로 표현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안하고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III
사설(辭說)이 너무 길었습니다.
서둘러 본래의 주제로 들어가자면, 지금 한반도에는 전쟁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제2의 한국전쟁이 난다면,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그 전쟁은 한반도에만 국한되지 않고 필시 일본이나 중국의 일부를 포함한 동북아시아 전체로 확산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맑스라면 아마 “하나의 유령이 동북아에 배회하고 있다, 전쟁이라는 유령이”라고 표현했을 듯합니다.

III-1
여기에서 우리는 먼저 이 전쟁위기의 원인 혹은 실체를 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른바 ‘북핵위기’인가, ‘미제국주의의 침략 위협의 위기’인가” 하고 말입니다.
여러분도 동의하시겠지만, 저는 분명히, 이북․조선을 자의적으로 ‘테러 국가’, ‘깡패 국가’, ‘악의 축’으로 규정하면서 ‘선제공격’ 운운하는 미 제국주의의 전쟁 위협이야말로 위기의 원인이고 실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마치 위기의 원인이 이북의 ‘핵 개발’에 있다는 전도된 선전과, 그러한 선전에 의해서 규정된 전도된 의식이 횡행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전도된 선전과 전도된 의식에 적극적으로 대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이나 그 동맹국들은 북의 ‘핵 위협’, ‘핵 개발’을 문제 삼고, 북의 NPT, 그러니까 ‘핵확산금지조약’ 탈퇴를 문제 삼고 있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핵’의 위험성에 대해서 심각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고, 그리하여 ‘핵 발전’에 대해서까지 반대의 입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추상적으로 생각하자면, 북의 ‘핵 개발’은 심각한 문제이고, 위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실로 오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둘러싼 국제 정세, 그 나라가 처한 입장을 고려하면, 지금 미국이나 그 동맹국들이 ‘핵’과 관련하여 벌이고 있는 반북 캠페인이 과연 타당한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비핵․NPT의 조건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한편에서는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의 보유 사실을 기정사실로 인정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그들이 그 핵으로써 비핵 국가들을 위협하지 않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미국은 이북이나 이라크, 이란, 리비아 등등, 자신들의 일방적 지배 의지가 관철되지 않고, 자신들의 제국주의적 정책에 저항하는 국가들을 이른바 ‘테러 국가’, ‘깡패 국가’, ‘악의 축’으로 규정하면서 부당하게 정권의 교체․전복을 꾀하고, 핵무기에 의한 공격을 포함한 ‘선제공격’ 운운하면서 그 생존을 위협해 왔습니다. 비핵․NPT의 조건이 무참히 유린된 것이지요.
이러한 조건․상황에서 어떤 자주적인 나라가 그에 저항하지 않고, 공격에 대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현 위기의 원인․실체와 관련하여 저는 무엇보다도 이 점이 먼저 확인되고 강조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III-2
다음에 현 위기의 원인을 극우적인 부시, 공화당, 그리고 이른바 ‘네오콘’의 문제로서 논하는 담론이 성행하고 있는 데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습니다.
‘네오콘’으로 불리는 부시 일당은 분명 전쟁의 원흉․화신이고, 세계 최강대국의 정권이 그들의 손아귀에 있다는 것은 정말 심각한 재앙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부시, 공화당, ‘네오콘’의 문제로 협소화․왜곡하는 제 동향을 우리는 비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예컨대 “미국공산당은 … 향후 17개월 동안 노동자계급과 그 동맹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긴급한 과제는 광범한 인민연합을 동원하여 2004년 선거에서 조지 부시와 극우 공화당을 패배시키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는 式의 지난 6월 29일의 미국공산당(CP-USA) 전국위원회의 정세인식과 대응은 비판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식의 정세 인식과 대응은 분명 본질을 외면한 피상적이고 편의주의적인 것으로서, 자칫 문제를 체제 차원에서 부르주아 정권 차원의 문제로 오인하게 하고, 그리하여 노동자 대중을 자신의 계급적 전망을 갖지 못하는 불모의 계급으로 오도할 위험이 크기 때문입니다.
실제로도, ‘상대적으로 진보적’이라는 미국의 민주당 정권은 물론, 서유럽의 사민당․사회당 정권들이 그와 한 패가 되어 벌인 코소보 전쟁은 물론, 클린턴 정권에 의해서 전쟁 직전까지 내달렸던 1994년의 한반도 전쟁위기도 망각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으면서도 자주 망각하는 점, 즉 침략의 충동이나 추진적 동기는 자본주의적 생산 자체에 내재한 것이고, 특히 자본주의적 생산의 전반적 위기가 격화되면서, 즉 신자유주의에 의해서 그 충동과 동기가 강화되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근본적인 극복의 전망을 가질 수 있는 것 아닙니까?

III-3
위기의 원인과 관련하여 마지막으로 쏘련 및 동유럽 사회주의체제의 붕괴로 제국주의적 충동에 대한 억제장치가 현저하게 약화되었다는 점도 지적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실 이 점은 20세기 사회주의에 대한 평가, 앞으로 새로운 사회를 구상하고 형성해 갈 때의 교훈, 준칙과도 관련된 부분이어서 여러분들과 많은 얘기를 나누고, 그런 속에서 배우고 싶은 바가 많습니다만, 시간이 허용하지 않는 점이 유감입니다.


IV
다음에는 미 제국주의와 그 동맹국들에 의한 전쟁 위협에 대항하는 반전․반침략의 장치와 힘들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습니다.

IV-1
그 첫 번째는 두말 할 나위 없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그 인민의 자주의식과 결의, 그리고 그 힘 자체라고 생각하지만, 이 문제는 한국민의 한 사람으로서는 참으로 언급하기 거북한 부분으로서 논의를 생략하려 합니다. 1928년이던가요? 당시 일본 군국주의의 ‘치안유지법’이 얼마나 정치적 굴종과 침묵을 강요했던가를 상기하시면서, 한국에는 지금도 그것을, 요즘 말로, ‘벤치마킹’한 국가보안법이 있어서 서슬이 퍼렇다는 점을 감안해 주시기 바랍니다.

IV-2
한반도에서의 전쟁 위기에 대한 두 번째의 반전 장치는 이해당사자 및 주변국가들의 이해의 충돌․상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 ‘6자회담’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이나 일본의 입장에서야 이 ‘6자회담’을 ‘조선’을 압살하기 위한 국제적인 포위망으로 삼고 싶겠지만, 이들 주변국가들 간에, 특히 중국이나 러시아와 미․일 사이에는 한반도를 둘러싼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다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그것은 위기를 통제하고 조정하는 기구, 다만 불안정한 안전장치로 기능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 기구의 앞으로의 동향은 주의 깊게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IV-3
미 제국주의와 그 동맹국들에 의한 전쟁 위협에 대항하는 반전․반침략의 장치와 힘들과 관련하여 여기에서 제가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은 노동자․민중의 반전․반미․반제 운동과 투쟁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한 노동자계급의 국제주의․국제연대입니다.
노동자․민중의 반전투쟁, 반전 국제연대에 대해서 우리는, 제1차 대전 때의 서유럽 사민주의자들의 배신에서부터 베트남전, 그리고 최근의 아프간․이라크 전쟁에서의 그것까지의 다양한 경험을 가지고 있고, 다양하게 이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지나치게 경제주의적인 시각일지 모르지만, 저는 한반도 혹은 동북아의 전쟁위기까지를 포함한 현시대의 국제정세는, 앞에서도 간단히 언급했습니다만,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만성적인 과잉생산, 만성적․전반적 위기에 의해서 규정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근래 수십 년 간에 급진전한 과학기술혁명도 그에 의해서 촉진된 것이고, 이것이 또한 그러한 과잉생산․위기를 다시 격화시키는 원인이 되어 악순환하는 매카니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현재의 위기는 중․장기적으로 보면 1930년대의 대위기 이상으로 발전할 충분한 물질적 기초를 가지고 있고, 따라서 세계의 노동자․민중이 잘못 대처하면, 1930년대의 대공황이 제2차 대전으로 귀결되었던 것처럼, 인류 절멸의 대참화로 발전할 가능성도 전적으로 배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1930년대에 비해서 두 가지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 하나는, 유감스러운 상황의 전개로서 독점자본의 지배력․횡포가 강화되고 노동자계급이 경제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후퇴를 강요받고 있다는 점입니다. 바로 신자유주의인데, 이는 자본주의 선진국의 노동자계급이 1930년대 및 40년대에, 그리고 부분적으로 50년대에 획득한 성과에 안주한 나머지 그 이념과 사상, 투쟁이 후퇴한 결과이고, 시급히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되는 긴급한 과제입니다.
주체적으로는 각오와 조직, 투쟁을 새롭게 해야 하고, 객관적으로는 신자유주의의 공세가 너무나 가혹한 나머지 노동자․민중의 투쟁이 차츰 활발해지고 있는 점에 기대를 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자유주의가 스스로의 무덤을 파고 있는 것이지요.
다른 하나는, 다소 무정형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바람직한 상황의 전개로서, 제1차 대전 및 제2차 대전을 거치면서, 그리고 베트남 전쟁을 거치면서 얻은 교훈 때문에 노동자․민중 속에 광범하게 뿌리박고 있는 반전의식, 반전․평화의 연대입니다.
지금 상황은 제국주의의 전쟁을 사전에 저지할 만큼 그 투쟁이 위력적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반전․평화 투쟁을 무시하고서 제국주의가 그들의 침략전쟁을 확대하고 강화할 만큼 미약하지도 않다고 생각합니다. 주어진 과제는 이 반전․평화 투쟁을 더욱 조직․발전시켜 제국주의의 침략 전쟁을 억제하고, 그들의 전쟁을 그들의 결정적인 정치적 위기로 전환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때에 노동자계급이 전위적 주체가 되어 국내적․국제적으로 광범한 인민전선을 조직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단순히 시민주의적인 반전을 넘어 반제로, 그리고 종국적으로는 전쟁과 착취․억압이 없는 사회를 건설하는 사회혁명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제국주의자들의 전쟁 책동에 대해서 노동자․민중은 “만일 당신들이 전쟁을 벌인다면, 당신들을 위해서 총을 들고 당신들을 위해서 총알받이가 되는 대신에 당신들과 전쟁을 벌일 것”이라는 메시지를 확실히 전달하고,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조직과 투쟁을 서둘러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실제로 제국주의자들이 가장 경계하는 바가 그것 아닙니까?


V
다음으로는 한국에서의 노동자․민중의 반전․반미․반제 운동과 투쟁을 간단히 소개하고 싶습니다.

V-1
아마 보도를 통해서 잘 아시겠지만, 한국에서는 지금 노동자․민중의 반전․반미․반제 운동과 투쟁이 과거 어느 때보다도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과거 어느 때보다도’ 라고 얘기할 때, 그것은 물론 한국전쟁 후의 시기를 말하는 것이지만 말입니다.)
노동자․민중․시민의 광범한 반전전선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있고, 시민운동으로부터 노동자․민중운동으로 그 이니셔티브가 이동 중에 있습니다.
시민주의적 반전운동과 노동자․민중의 그것은 운동의 방식과 양태에서 많은 차이를 보여주고 있는데, 다만, 한국 노동운동의 경제주의적 편향 때문에 반전․반미․반제 운동이 노동운동의 본질적 부분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는 데에 대한 인식은 아직 절실하지 못한 편입니다.
한편, 자유주의적 부르주아 정권으로서의 노무현 정권에 대한 환멸과 투쟁도 광범하게 퍼져 있고 전개되고 있습니다.
지난 4월의 이라크 파병, 그리고 추가파병 방침 등 노무현 씨가 집권 후 보여주고 있는 진한 친미 정책과 행각이 대중의 광범한 분노와 투쟁을 유발하고 있습니다.
심화되고 있는 경제위기와, 특히 1997년의 외환․경제위기 이후 본격적으로 강행되고 있는 신자유주의로 노동자․민중의 생존권이 파괴되어 생계 곤란으로 인한 일가족 집단자살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정부가 앞장서서, 파업을 이유로 노동자들에게 손해배상․가압류 처분을 하는 등 노동운동에 대한 억압적 정책이 강화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테러방지법 제정이 시도되고, 사실상 집회․시위를 금지하는 내용으로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의 개악이 시도되고 있습니다.
국민소득 2만불 시대, 동아시아 경제중심국가 등의 구호를 내건, 기타의 독점자본 위주 정책 등으로 노동자․민중의 광범한 분노와 투쟁을 유발하여, 분신․자결과 그에 의해 촉발된 대규모 투쟁도 빈발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자본은 그 동안 동남아시아 국가들로부터 ‘노동력을 수입’하여, 그 동안 이 이주노동자들을 노예 이하의 대접을 하면서 헐값으로 이용해 왔습니다. 그렇게 헐값으로 이용하기 위해 그들의 ‘불법 체류’도 묵인하면서 말입니다.
그리하여 지금 이주노동자들의 수가 40만 명에 이르게 되고, 장기체류로 정주(定住)하게 되는 사람들까지 다수 나타나자 정부는 방침을 바꾸어 4년 이상의 체류를 금지시키면서 이주노동자 사냥․추방을 벌이고 있는데, 이들의 권익을 위한 투쟁 또한 이주노동자들 자신에 의해서 그리고 한국의 노동자들과의 연대를 통해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중입니다.
WTO DOHA 라운드 및 한․칠레 FTA 협정에 반대하는 농민들의 투쟁도 역시 전투적으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모든 것은 노동운동이 전반적으로 침체해 있는 일본에서 동지들이 보기에 부러워하기에 충분한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V-2
하지만, 한국의 노동운동에는 시급히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되는 많은 한계도 많습니다.
운동이 전투적이기는 하지만, 그 기조 속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경제주의․조합주의가 그것입니다.
저는 무엇보다도 전략적․전위적 정치조직의 부재 혹은 미성숙 때문에 연유하는 성격이고 한계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전략적․전위적 정치조직의 부재 혹은 미성숙 때문에 운동과 투쟁의 주요한 부담이 모두 민주노총의 지도부에 지워지면서 운동의 이러한 한계를 더욱 조장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보고 싶습니다.
물론 한국의 노동운동에도 정치조직을 자임하고 또 객관적으로도 그러한 위치에 있는 조직들이 있습니다.
그 명성과 세력으로 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민주노동당일 것입니다. 특히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의 ‘공식적 지지’를 받는 조직입니다.
그러나 저는 민주노동당의 정치적 성격․노선 때문에, 그리하여 다름 아니라 민주노총이 그것을 ‘공식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데에 현시기 한국 노동운동은 더욱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노동당은 여러 정치적 경향의 집합체이나, 기본적으로 노동자․민중운동을 사민주의적 방향과 의회민주주의적 틀 속으로 몰고 가고 있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지난 해 말의 대통령 선거에서의 알량한 ‘성과’에 고무되어 당내의 ‘좌파’라는 사람들까지 공식적인 지면상에서 “한국의 정치가 나아갈 길은 미국과 같은 보수 양당제가 아니라 보수와 진보가 경쟁하는 서유럽이나 브라질 같은 구도이고, 이번 대선을 통해서 민주노동당은 그러한 가능성을 열었다”는 식의 발언을 서슴치 않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두 번째로는 당세는 미약하지만 ‘사회당’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 역시 노동자․민중운동을 기본적으로 합법주의와 의회민주주의라는 협소한 틀 속으로 몰고 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은 “반조선노동당․반자본주의”라는 정말 ‘재미있는’ (‘재미있는’이라는 표현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정말 ‘재미있는’ 깃발을 내걸고 있습니다.
제가 볼 때에는, 그리고 아마 여러분 중에 많은 분이 볼 때에도 정말 ‘재미있는’ 깃발입니다만, 한국의 노동운동 활동가, 진보적 지식인들 중에 그러한 깃발을 진지하게 움켜쥐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이 유감스럽지만 현실입니다. 일본에서의 상황도 아마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르주아지의 선전과 데마고기, 대중조작의 위력을 실감하게 하는 부분의 하나입니다.
다음에는 ‘노동자의 힘’이 있습니다.
저도 그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만, ‘노동자의 힘’도 역시 여러 면에서 아직 많은 과제와 한계를 가지고 있고, 아직 현실적인 힘도 미약한 편입니다.
무엇보다도 여러 정치적 경향의 집합체이면서도 그 정치적 노선의 통일을 위한 활발한 내부의 사상․이론상의 투쟁과 경쟁이 활발하지 못한 점을 지적해야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의 힘’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노동자의 힘’은 무엇보다도 노동자․민중운동을 합법주의․의회민주주의라는 협소한 틀 속에 가두지 않고 이른바 ‘비합법’까지를 포함한 모든 가능성, 모든 공간을 이용하고자 하고, 노동자계급, 노동자 대중이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정치적 역동성을 최대한 개발하고 조직하려고 하는 데에 그 최대의 장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회원들이 그러한 대의에 헌신적입니다.
그 때문에 커다란 투쟁이 벌어질 때마다, 조직의 규모에 비해서 많은 구속․수배자가 나오고 있습니다만, 저는 ‘노동자의 힘’의 그러한 정치적 원칙과 헌신성에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기타 한국의 노동운동에는 상당수의 이른바 ‘비합(주의) 단체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개인적으로 이들 단체 가운데에서 노동자계급의 진정한 정치조직이 성장해 나올 수 있다는 추상적 가능성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현실적으로는 별로 기대하고 있지 않습니다.
헌신적이고 활발한 조직․정치활동을 통해서 그들이 대중 속에 자신들의 존재와 노선을 설득력 있게 각인시키고 있지 못할 뿐만 아니라 대중집회 시 등에 뿌려지는 그들의 선전물의 내용이란 게 대부분 기껏 ‘민주노총 지도부의 관료주의’를 신랄히 규탄하고 그 타도를 선동하는 식의, 대책없이 과격하기만 한 판에 박은 공문구이기 때문입니다.
저의 이 발언은 많은 논란과 비난을 불러올지 모르겠지만, 저의 개인적인 판단은 그렇습니다.

V-3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쏘련 및 동유럽에서 사회주의체제가 붕괴된 후에 ‘파괴적 종파주의’가 번성하고 있는 중이라는 점도 간단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또한,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 등 한국의 3대 일간자의 약칭입니다만,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극우언론․극우세력의 공격과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지의 포섭정책도 활발히 벌어지고 있다는 점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좌․우 사이에 치열한 이데올로기 투쟁이 진행 중이고,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지에 의한 목적의식적인 포섭정책이 활발히 전개 중인 것이지요. 이른바 ‘노사정위원회’로 대표되는 코포러티즘의 시도는 그러한 포섭정책의 집요한 예일 것입니다. 거기에 소부르주아 언론과 시민운동 단체들이 한 몫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의 노동운동의 이러한 한계, 정치적 혼란이 시급히 극복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는 데에는 외부로부터의 자극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특히 일본의 노동운동이 그러한 역할을 해 줄 수 있고 또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지금 일본에서 전개되고 있는, 또 근래 일본의 노동운동이 걸어온 심히 우려스럽고 유감스러운 상황․족적까지도 일본의 동지들이 앞으로 하기에 따라서는 훌륭한 타산지석의 교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VI
지금 일본에서 전개되고 있는 정치적 상황은 정말로 심히 우려스러운 것입니다. 예컨대, 지난 11월 9일이었던가요? 그 선거의 결과는 일본 사회가 급격히 우경화, 극우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고, 일본 공산당을 포함하여 일본의 좌익운동, 노동자․민중운동이 기존의 노선, 방식을 철저히 재검토하면서 거듭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늘 얘기를 시작하면서, “공자 앞에서 문자 쓴다”는 우스갯소리로 이들 문제를 언급하는 데에서의 저의 두려움을 말씀드렸습니다. 실제로 일본의 정치상황이나 노동운동이 전개되고 있는 구체적인 상황이나 일본의 동지들이 이에 대처하면서 겪고 있는 어려움을, 상상하고 대강 짐작은 하지만, 구체적으로는 알지 못하는 입장에서 어설프게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것은 정말 주제넘은 짓이라고 생각합니다.

VI-1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감히 몇 가지, 다만 주변적인 몇 가지에 대해서 고언을 드리고자 합니다. 오늘의 주제가 동북아를 아우르는 국제연대의 문제이기 때문이고, 또 무엇보다도 동북아에서 평화를 확보하고 구축하는 데에 일본 좌익, 일본의 노동자․민중운동의 역할이 극히 중요하고 그에 대한 기대가 크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봅시다. ‘한반도’에서 평화를 위한 남․북 노동자․민중 간의 연대와 협력은 극히 본질적이고 중요합니다만, 그것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현실적 조건 속에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한국의 국가보안법을 생각해 보십시오. 한국의 노동자․민중과 중국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남과 북, 한국과 중국의 노동자․민중의 관계는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이 심한 제약을 수반한 일종의 특수관계인 것이지요.
오직 일본의 노동자․민중만이 이들 특수성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이 현실입니다. 말하자면, 일본의 노동자계급은 본래적인 자신의 역할에다 동북아 국제연대에서 다른 관계도 매개해야 하는 역할을 짊어져야 할 처지에 있다는 것이지요. 그만큼 저는 일본에 계신 여러분 동지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그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말씀드리고 싶은 데, 우선 저는 제가 오늘 여기에 와서 이렇게 저의 의견을 얘기하고 그에 대한 토론과 비판을 통해서 상호간에 이해와 협력을 높여 가고 조정해 가는 것처럼, 노동자 국제연대에서 인적․정치적 교류는 중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VI-2
그런데 다른 한편에서, 예컨대 한․일간의 연대를 생각할 때, 만일 양국의 노동자 운동이 그 의지를 행동으로 관철할 만큼의 조직․투쟁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면, 그러한 교류, 공동의 논의가 얼마나 커다란 의의를 가질 수 있겠습니까?
그리하여 저는 양국의 노동운동이 그 조직․투쟁력을 높여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한국에서의 상황은 앞에서 간단히 말씀드린 대로거니와, 감히 말씀드리거니와 근래의 상황은 특히 일본 측이 더욱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듭 말씀드리거니와 일본의 정치․경제․문화․사회 상황을, 그리고 일본의 동지들이 부딛치고 있는 어려움을 구체적으로는 모르기 때문에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바다 건너의 한 관찰자로서 한 가지 감히 말씀드리자면, 일본의 동지들이 노동자 대중에게 문제를 제기하고 실천을 모색할 때, 그 내용에서도 방식에서도 좀 더 도전적이고 대담해질 필요, 좀더 Bold해질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예컨대, ‘평화헌법 수호’ 등의 투쟁도 극히 중요하지만, 때로는 아니 기본적으로는 그것을 넘어서 보다 근본적인 체제․국체․정체의 문제를 대중에게 대담하게 도전적으로 제기하고, 또 그에 걸 맞는 도전적인 방식의 실천이 모색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여기에서 다시 제가 ‘근본적인 체제․국체․정체의 문제’니 ‘도전적인 방식의 실천’이니 하고 ‘노예의 언어’를 쓸 수 밖에 없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무튼 조심스런 문제제기, 세련된 운동 방식이 중요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그 반대의 것이 요구되는 것 아닌가 하는 저의 생각을 말씀드립니다.

VI-3
이런저런 수사로 얘기가 길어졌습니다만, 마지막으로 자그마한 것 하나만 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예전에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래 왔지만, 최근 들어서 일본 우익의 ‘대한(對韓)․대중(對中) 망언’이 부쩍 잦은 것 같습니다. 예컨대, 아베 뭔가 하는 자민당 간부의 ‘창씨개명’ 관련 망언이나 이시하라 도쿄도 지사의 ‘한일합병’ 관련 망언들이 그것입니다.
그러한 망언이 있을 때마다 한국에서는 요란합니다. 과거 일제 식민지 지배에 협력했던 조선일보나 동아일보까지를 포함해서 수많은 지식인․정치가들이 분기탱천하여 ‘망언 규탄’을 벌이는 것이지요.
그러나 저는 그들이 그렇게 분기탱천하는 것이 어쩐지 가증스럽기만 합니다. 왜냐구요?
바로 그들이야말로 과거 식민지 지배에 부역하면서 호의호식했던 자들이고, 그러한 맥락 위에서 그들의 오늘이 있는 자들인데, 그들의 그러한 분기탱천은 사실은 그러한 과거를 은폐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실은,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그들이야말로 오늘날 망언을 일삼는 일본 우익의 한국 측 카운터 파트이고, 특히 오늘날 자신들이 벌이고 있는 친미 제국주의 부역을 은폐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근하게, 요즈음의 한국의 정치 상황을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지난해 대통령 선거 때에 정말 조직폭력배나 마피아를 뺨치는 방식을 통한 엄청난 범죄적 정치자금이 모금됐음이 밝혀지고 있고, 이를 둘러싸고, 결국은 새로운 권력으로의 재벌 줄세우기이지만, 여야 간에 생사를 건 투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와중에서도 여야는 나란히 손을 잡고 이라크 추가 파병문제를 합의해내고 있습니다. 저들의 친미 제국주의 행각이 얼마나 절실한 계급적인 이해, 정파를 초월한 계급적 이해를 반영하는 것인지 말해 주고 있는 것이라고 밖에는 달리 볼 수 가 없는 예 아니겠습니까?
제가 지금 구태여 이 문제를 꺼내는 것은, 사실은 이들 망언을 계기로 해서 보여 주는 일본 좌익의 대응과 과거 일본 군국주의․제국주의의 ‘악행’에 대한 인식에 약간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우익, 독점자본은 말하자면 과거의 ‘탈아(脫亞)’ 의식으로부터 면면히 이어져 오는 터무니없는 민족적 우월감에서 그러한 망언을 거듭하면서 과거 ‘대동아공영권’의 망상을 은밀히 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과거처럼 ‘미영 귀축’에 대항해서 이루려는 과대망상은 버리고 미 제국주의의 하위 파트너로서 이루려는 야망이지만 말입니다.
이에 비해서 일본의 좌익은, 제가 보기에, ‘조선’을 비롯한 동아시아 민중에 대한 ‘사죄의식’에서 이러한 망언과 새로운 제국주의적 책동에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도덕적으로 고결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좌익의 대응은 본질적, 실천적으로 일본의 대중을 향한 발언인데, 그 때 가장 먼저 문제로 삼아야 하는 것은 “우리 일본제국주의가 동아시아 민중에게 가하고 범한 고통과 죄악”이 아니라 “일본제국주의가 동아시아 민중에게 뿐만 아니라 우리 일본의 노동자․민중에게 가하고 범한 고통과 죄악”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제국주의․독점자본이 저지른 전쟁으로 희생당한 수백만 일본의 노동자․민중이 먼저 강조되어야 하고, 그리고 나서 아시아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고, “우리 일본제국주의가 동아시아 민중에게 가하고 범한 고통과 죄악”이 강조될 때, 일응 도덕적으로 고결하지만, 감히 말씀드리자면 거기엔 또 다른 얼굴의 내셔날리즘, 우월감이 숨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일본의 대중은 그 제국주의에 대해서 자신의 계급적 이해라는 관점에서 사고하는 대신에 허물어지기 쉬운 도덕적 관점에서 사고하게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어서는 대중이 저들 독점자본의 내셔날리즘 선동에 취약할 수밖에 없고, 그만큼 반전․평화를 위한 투쟁, 국제연대도 취약해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VII
사적유물론이 가르치는 바는, 세계는 기본적으로 계급적으로 분열되어 있다는 것이고, 세계는 동시에 국민국가로 분열되어 있지만, 이 역시 계급적 분열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하고 대응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국민국가로 분열되어 있다는 현실을 반영하여 우리는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국제연대’를 모색하고 있지만, 그 노력은 내셔날리즘을 불식하면서 철저히 계급적인 관점에 입각해야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한/노/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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