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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번호 1648번 등록일 2004-02-07 00:00:00
글쓴이 이진우 글쓴곳  
발행호수 95   분야 3  
제  목 투표 해서 무엇하나



4월 총선과 노동운동

이진우 ∙ 투표? 해서 무엇하나!
최광은 ∙ 2004년 총선과 사회주의 진영의 대응
정종권 ∙ 선거, 진보정치 그리고 민주노동당

총선을 앞두고 있는 시기여서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아니 할 수는 없겠습니다. 자본주의라 는 계급사회에서는 정치도 계급적입니다. 단순하게 말한다면, 자본가계급의 정치란 노동자계급과 민중에 대한 지배, 그리하여 착취체제를 유지하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노동자계급의 정치란 노동계급이 사회의 지배계급으로 올라서고, 착취체제를 폐지하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한나라당, 민주당, 열린우리당이 쏟아내는 자본가계급의 정치로 세상이 온통 소란합니다. 소부르주아지는 낙선운동으로 자본가계급의 정치를 응원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본지 1월호(94호) 권두언 “조두증후군을 경계하고, 계급적 관점을 견지하자(채만수)”와 이번 호(95호) 권두언“총선을 눈 앞에 둔 한국정치지형과 그 이후(김세균)”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특집 글은 노동계급의 정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노동자민중이 선거와 정치에 대해 기본적으로 어떠한 관점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투표? 해서 무엇하나!”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노동진영의 총선주자로 나서고 있는 민주노동당과 사회당의 정치관과 총선전략에 대해 지구당과 중앙당에서 투고된 글을 소개합니다.
자본가 정당간의 열전과 민중들의 냉소가 교차하고 있습니다. 민중들의 열정과 격정을 불러일으키고, 희망을 만들어갈 노동자계급의 정치운동을 고대해 봅니다.


투표 ? 해서 무엇하나 !
이 진 우/ 한노정연 회원


내 손으로 만들었다면 내 것이야 한다. 그러나 …
이런 이야기가 있다. 농사꾼이 자식을 어렵게 키워서 검사를 만들었다. 아버지는 어느 날 서울에 있는 검사 아들집에 갔다. 마침 함께 있던 아들의 친구가 저 볼품없는 농사꾼이 누구냐고 물었다. 아들은 집 청소하는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듣고 아버지는 자살을 했다. 실화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이다. 초라한 몰골의 아버지는 민중의 모습이다. 그리고 야망에 불타 출세가도를 달리는 검사인 아들은 지배계급이다. 아버지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아들을 만들었다. 그러나 아들에게 아버지는 이미 함께 해야 할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민중의 아들이라는 것을 각인시키는 존재이기 때문에 부정해야 할 과거이다. 과거에 발목 잡히는 것은, 출세 즉 지배계급으로의 상승에 걸림돌이 될 뿐이다. 민중은 자신을 지배하고 착취할 지배계급을 만든 것이다. 계급상승이 가능한 (대부분 형식적 가능성이지만) 계급사회에서 발생하는 비극이다.
노동자들은 거대한 삘딩 숲, 도로를 가득 메운 자동차, 거리에 넘쳐나는 상품도, 공장도 기계도 모두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 냈다. 그러나 평생 기아의 공포에 쫓겨서 일하고, 못 먹고 못 입고 못 쉬고 갖은 천대를 받는다. 거리를 헤매다 얼어 죽는다. 모든 부를 자신이 만들었지만 부는 자신의 것이 아니다. 바로 자본가의 몫이다. 노동자들의 고통의 크기만큼, 빈곤의 크기만큼 자본은 꼭 그 만큼 거대해져 노동자의 목을 조인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모두 노동자민중의 손으로, 즉 투표로 만들었다. 그러나 언제나 결론 이렇다. “그 놈이 그 놈이다”.


내 손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고대노예들은 피라미드를 만들었고, 로마의 웅대한 신전을 만들었다. 파라오와 황제와 귀족과 군대, 즉 지배자들을 먹여 살렸고, 노예반란을 진압할 군인들의 손에 든 무기도 노예가 만들었을 것이다. 즉 노예제도를 재생산했던 것은 바로 노예자신들이다.
동일하게 왕족과 양반을 먹여 살려서 봉건제도를 재생산한 것도 바로 평민과 천민들이다. 노예와 평민들이 바로 자신의 노동으로 노예제와 봉건제라는 착취체제를 만들어 내듯이, 현대의 노동자 민중들은 자신의 노동으로 자본주의라는 착취체제를 만들어 낸다. 임금노동으로 자본가계급을 만들어내고 투표로 정치적 지배계급을 만들어 낸다. 그렇게 자본과 국가, 즉자본주의지배질서가 형성된다.


매수,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인간애 헌신 봉사 조국 민족 이러한 공동체적 가치들은 실종된 지 오래이고, 오직 빛나는 것은 차가운 금전거래 뿐이다. 권리가 돈이라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상식이다. 투표권을 거래하는 것은 전혀 부도덕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당연한 권리가 된다.
보수정치는 말한다. 나에게 표를 다오, 그러면 너에게 돈을 주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르주아정치가 표를 얻는 방법은 바로 매수이다. 그리고 매수의 형태는 다양하다. 유권자에게 돈 봉투를 돌리고 식사비를 계산하고 여행을 보내준다. 국회의원 후보자들은 게거품을 물고 말한다. 국회에 가서 돈을 끌어와 우리 지역에 쏟아 붓겠다고. 보다 고차원적인 매수―정책, 제도라는 형태로 표현되는―도 있다. 노무현은 대전으로 행정수도를 이전하여 돈을 대전으로 충청권으로 흘러들어가게 만들겠다고, 충청권의 표를 산다. 고속철도의 역을 밀양 구포에 추가로 만들어 경남지역의 표를 산다. 아이를 낳으면 돈을 주겠다고 여성표를 팔라고 한다. 전국 3,500만평의 땅을 군사시설보호구역에서 해제해 주겠다고 한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자신들이 있어야 호남, 경북으로 돈이 흘러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돈으로 권력을 사는 것이다. 돈이 바로 권력이다. 그러면 돈은 누가 제공하는가? 바로 자본가계급, 독점자본이다. 선거가 끝나면 독점자본과 정치권은 한패거리가 되고, 착취체제는 더욱 강화되고, 독점자본은 선거 때 투자했던 돈의 몇 배의 이익을 돌려받는다. 투자했으니까 이익을 얻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이렇게 권력은 자본가계급의 권력이 된다.
그러면 선거를 통해 무엇이 교환되었는가? 좀 더 자세히 보자. 민중들은 푼돈을 받았다. 게다가 선거 때 약속받았던 것들, 즉 외상거래는 대부분 부도수표가 되어 버린다. 자본가들은 값싼 정치를 원하기 때문에 정치가들에게 결코 넉넉하게 돈을 쥐어 주지 않기 때문이고, 정치가들 사이의 경쟁은 표의 값을 올리기 때문에 정치가들은 항상 부도수표를 남발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민중들은 자본가계급에게 무엇을 주었는가? 표를 주었다. 그러나 그 표로 보수정치가 복원되고, 자본가계급의 국가가 재건되고, 그리하여 자본주의체제가 재생산된다. 자본가계급은 푼돈으로 이 거대한 착취체제를 얻는 것이다. 그렇게 보수정치인들은 자본가계급의 전위로서 훌륭하게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한나라당 민주당 열린우리당은 우리가 더 비싸게 사줄터이니 표를 팔라고 한다. 최근에는 민주노동당도 가세했다. 부유세를 거두어 무상교육 무상의료를 주겠다고, 빈부격차를 해소(민주노동당 2004년 총선기본계획안) 하겠다고 표를 달라고 한다. 그러나 노동자 민중들이 아무리 비싸게 표를 팔아도 그 돈은 결국 자본가 계급에게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자본가 계급의 돈, 그것은 노동자 민중에게서 착취한 돈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결국 자본가 계급은 노동자 민중의 돈으로 노동자 민중의 표를 사는 것이다.


사기, 기만, 협박
이러한 경험을 반복하면서 민중들은 선거가 결코 자신들에게 이로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민중들의 삶이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민중들은 말한다. “투표는 해서 뭣하나! 그 시간에 장사나 하지!”.
매수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다양한 수단으로 민중들을 홀려 거짓 희망을 유포한다. 물갈이를 한다고 한다. 부패한 정치인을 공천에서 배제하고 젊고 참신한 정치인으로 물갈이를 하겠다 한다. 마치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가 자본주의 착취체제에서 발생하는 계급간의 적대에서 기인하는 문제가 아니라, 개인들의 도덕성의 문제인양, 그래서 사람을 바꾸면 민중을 위한 정치가 가능하다고 사기를 친다.
또 재벌(독점자본)에게 돈을 받지 않은 ‘깨끗한 정치인’은 민중을 위한 정치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이것도 사기이다. 재벌은, 이른바 ‘정치자금의 형태로’ 정당에만 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세금으로 국가에도 준다. 재벌에게 돈을 얻어내지 않으면―재벌의 세금부담을 높이지 않으면―‘민중을 위한 각종 정책’들을 어떻게 실행한다는 말인가? 민중의 세금을 올려서 민중을 위한 정책을 실행한다는 말인가? 자본이 세금의 형태로 민중을 매수할 돈을 부담한다면, 그 반대급부를 요구할 것이고, 정부는 자본의 착취를 유지강화하는 정책을 시행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국가는 자본가 국가가 되고, ‘깨끗한 정치인’은 다시 민중을 배신한다.
부패한 정치인을 뽑은 것은 바로 유권자들이니, 같이 책임을 져야한다고 기만한다.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신입사원을 뽑으면 기업에 세금혜택을 주겠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 임금을 동결하자’라고 허튼소리를 하며, 일자리에 목마른 노동자 민중에게 소금물을 먹인다. 지금도 임금이 부족해서 한사람이 두 세가지 일을 하면서, 또 장시간 노동을 하면서 다른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는데, 임금을 동결하면서 어떻게 일자리가 창출된다는 말인가?
자신의 정당이 패배하면 호남, 혹은 경북이 가난해질 것이라고 협박을 한다. 여당이 왜소해지면 국정, 나라가 혼란에 빠지고 경제가 흔들려 국민전체가 더 가난해질 것이라고 협박한다. 무능한 여당에게 국정을 맡기면 나라가 거덜난다고 협박한다.


노동자계급의 정치
그러나 갖은 방법을 다써보지만 민중들을 되돌릴 수는 없다. 투표율은 점점 떨어진다. 체제의 정당성과 안정성은 점점 떨어진다.
최근 가정에서 아이를 낳지 않고 있다. 향후 착취할 노동력기근을 우려한 자본은 돈으로 출산을 사려고 한다. 아직은 미미한 액수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노동력부족(=임금노예부족)이 심각해질수록 아동수당을 신설한다느니 하면서 그 액수는 점차 올라갈 것이다.
동일한 이유로, 투표율이 점점 더 떨어지면 각종 개량조치들을 동원해 표 값을 올릴 것이다. 그러나 표를 더 비싸게 파는 것이 노동자 민중의 목표일 수 없다.
바둑격언에 이런 것이 있다. ‘손 따라두면 진다’. 노동자 계급은 부르주아정치일정―부르주아 국가기구를 재생산하는 행사―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자신의 독자적 전망과 기획을 가져야한다. 선거 일정을 무시하고 노동자 민중 자신의 의제를 제기하며 거리정치 대중투쟁에 집중할 수도 있다. 선거거부운동을 벌일 수도 있다. 선거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도 있다. 주체적 역량과 객관적 조건을 판단하여 결정할 일이다.
선거기간은 억압적 지배질서가 이완되는 기간이고 상대적으로 노동자 민중의 정치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는 시기이다. 이 공간을 활용할 수도 있다.
노동자 계급의 정당은 결코 표를 매수해서도 구걸해서도 안 된다. 노동계급의 정당은 노동자 계급이 직접 권력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해야 한다. 부르주아지가 제공한 선거라는 공간을 노동자 계급과 민중을 기만하는 공간이 아니라 노동자 계급과 자본가 계급의 적대를 얼버무리는 공간이 아니라 선명하게 폭로하고 투쟁을 선전선동하는 공간으로 활용해야 한다.
진정 노동자 계급의 정당이라면 부유세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왜 자본주의는 극소수의 부유한 계급을 낳을 수 밖에 없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무상의료니 무상교육이니 하는 좀 더 많은 분배를 주장할 것이 아니라, 생산의 문제 생산수단 소유의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독점자본을 몰수하여 국유화해야 한다고, 토지를 국유화하여 주택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한다. 빈부격차를 해소하겠다는 막연한 선언이 아니라, 왜 빈부격차가 발생하는지를 폭로하고 자본주의 자체를 철폐하지 않고는 빈부격차는 결코 해소될 수 없음을 폭로해야 한다. 생산수단이 극소수의 자본가 계급의 손에 집중되어 있고 절대 다수의 대중이 무산자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민중들은 결코 실업의 공포로부터 해방될 수 없음을 폭로해야 한다. 일자리창출은, 생산수단을 사회가 공동으로 소유하여 사회구성원과 생산수단을 다시 결합시킬 때 가능함을 선전해야 한다. 한/노/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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