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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번호 296번 등록일 1997-01-01 00:00:00
글쓴이 블라디미르 빌렌킨 글쓴곳  
발행호수 17   분야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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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옐친 정권하의 러시아 노동자

옐친 정권하의 러시아 노동자
ꠏꠏꠏ 패배하고 있는 계급에 관한 기록

블라디미르 빌렌킨
옮긴이 : 채만수 ( 부소장 )


이 글은 Vladimir Bilenkin, “Russian Workers Under the Yeltsin Regime: Notes On a Class In Defeat,”(Monthly Review, November 1996, pp. 1 - 11)를 번역한 것이다.
참고로, 본문 가운데 ‘1993년 10월의 쿠데타’란, 1993년 9월 21일에 옐친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발표한 최고회의(의회) 해산 포고령을 계기로 절정에 달했던, 급진적 ‘개혁’ = 급격한 자본주의화 추진에 대한 저항, 곧 의회를 중심으로 한 반(反)옐친 운동을 옐친 정권이 군대를 동원하여 유혈 진압(10월 4일)하고, 그 여세를 몰아 의회와 지방의회, 기타 공산주의적 혹은 민족주의적 정치조직 등에 광범위하게 존재하던 반옐친 세력을 숙청⋅무력화시키면서 헌법 등을 개정하여 중앙정부의 권력을 강화했던, 러시아에서의 1993년 가을의 정치 변혁을 가리킨다.



1917년에 러시아의 프롤레타리아트가 인류 역사상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키고, 그에 이은 내전에서 착취계급들을 격파했을 때, 그들은 노동자들의 국가, 즉 계급 없는 사회로의 사회주의적 이행수단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79년이 지난 오늘날, 러시아의 노동자들은 하나의 독특한 사회계급으로 남아 있고, 그들은 1917년 당시의 노동자들이 꿈꾸었던 세상으로부터 어느 때보다도 더 멀리 떨어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세계사적 의미가 있는 패배를 겪고 있다. 관료 주도의 반혁명이 위세를 떨치고 있다. 그것이 쏘비에트의 노동자 계급에게 미치는 영향은 비참한 것이다.

I

1993년 10월의 쿠데타 이후 옐친 정권은 10월 혁명의 주요한 경제적, 사회적, 법률적 성과를 사실상 모두 폐기해 버렸다. 중요한 예외가 하나 있다. 지금까지 옐친 정권은 집단농장 농민들의 저항을 극복하고 토지를 탈국유화하는 데에 실패했다. 농촌에 자본주의적 관계를 재생시키는 것이 제2기 옐친 정권의 주요 목표가 될 것임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생산수단의 사유화와 노동의 상품화로 헌법상 보증되던 완전고용은 필연적으로 폐지되었다. 현재 최소한 1,200만 명, 곧 노동력의 15퍼센트가 사실상 아무런 적절한 사회보장도 없이 실업 상태에 있다. 쏘비에트 체제하에서는 대략 실질 생계비에 해당하던 법정 최저임금 및 연금이 지금은 실질 생계비의 단지 10퍼센트로 떨어져서, 겨우 노동자들의 노동력을 재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금액에도 훨씬 못 미치게 되었다. 노동자 가족의 실질 평균임금은 지금 1990년 당시의 25 내지 30퍼센트이다. 러시아 자본주의가 근로대중에 대한 초과착취체제(regime of super-exploitation)를 수립해 왔음은 이렇게 몇 가지 사실만으로도 명백히 증명된다. A. Zhukov, “Zarplata, chtoby zhit, a ne vymirat”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임금’], Profsoyuzy 8 (1995), p. 29.

누구나 무료로 교육을 받고 의료 혜택을 받을 권리를 폐기하고 이들 써비스를 급격히 상품화시킨 것도 노동자 계급에게 또 하나의 커다란 타격이었다. 각급 교육은 모두 계급적 불평등을 구조화해 가고 있다. 자본주의의 재생을 위한 헌법은 무료의 완전한 중등교육조차도 더 이상 보장하고 있지 않다. 쏘비에트 시대에 거대한 그물망처럼 짜여 있던 국가 및 협동기업 소유의 탁아소, 유치원, 여름 캠프, 휴양 시설, 아동과 성인을 위한 문화 시설들은 사유화로 인해 황폐화되었거나 더 이상 노동자들이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그 결과 평균수명은 파국적으로 줄어들었고, 유아 사망률은 급격히 늘었으며, 결핵, 기아(棄兒) 그리고 매춘과 같은 사회적 질병이 확산되었다.
자본주의의 재생은 노동 계급의 여성들에게 특히 심한 타격을 주었는데, 그들은 유급의 임신 및 육아 휴가, 작업장에서의 여성의 안전을 위한 특별 조치들, 교육 및 직업 훈련에서의 기회 균등, 그리고 임금 및 승진에서의 남성과의 평등 등을 포함한, 성적 평등성을 보장하던 제권리를 상실하였다. 아이를 낳는 일은 이제 더 이상 국가와 사회가 지원해야 할 의무를 지는 사회적 기능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그것은 여성의 사적인 일로 되어 버렸다. 부르조아 국가에 의해서 버림받은 채, 노동 계급의 여성들은 시장의 최악의 폐해에 시달려 왔다. 맨 먼저 해고되고 맨 나중에 고용되면서, 그들은 전체 실업자의 약 80퍼센트를 구성하고 있고, 가장 숙련이 필요 없고 가장 보수가 낮은 일자리에 취업하고 있다. 일터에서는 성 희롱이 전혀 처벌되지 않은 채 만연하고 있다. 매춘이 많은 여성들에게 자식들을 먹여 살리는 유일하고 어쩔 수 없는 수단이 되고 있다.
새로운 특권 계급의 아들들은 쉽사리 군 복무를 피하는 반면에, 노동자 계급의 젊은이들은 체첸(Chechnya)의 피비린내 나는 내전에서 총알받이(cannon fodder)로 이용되어 왔다. 자본주의 러시아라는 위대한 신세계(the brave new world of Russian capitalism)에서는 버젓한 일자리를 얻거나 고등교육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은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경비직’(security services)이나 사병(私兵)으로 고용되고 있는데, 이러한 경비직이나 사병들은 각종의 금권정치배들이 경쟁자들로부터 그리고 빈곤해진 대중으로부터 자신들의 영지(領地)를 방어하기 위해서 창설하는 것으로서 지금 80만 명을 헤아리고 있다. 노동자 계급의 젊은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고용주는 거대한 국가 억압기구인데, 그것은 지금 쏘비에트 시절의 그것보다도 더욱 위협적이다. 오늘날 이 기구는 수적으로 군대를 능가하고, 더 높은 보수를 받으며 더 잘 무장되어 있다. 결국, 체제의 진정한 적은 내부에 있는 것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노동자 계급에게 아마 가장 위험한 사태는 국가를 탈공업화시키고, 그것을 원료와 값싼 노동의 공급지, 열등재(劣等財)와 낙후한 기술의 시장으로서 자본주의 세계경제에 통합시키는 데에서 전개되고 있다. ‘개혁’이 시작된 이후, 기술적으로 가장 발달된 산업들이 파괴되고 그 생산을 60에서 85퍼센트까지 줄임에 따라서, 고도로 숙련된 노동자들의 수가 급격히 줄어 왔다. 오늘날에는 산업 노동자 계급의 겨우 5퍼센트인 단지 1백만 명의 숙련 노동자만이 고용되어 있다. 그와 동시에, 지금 러시아에서 주민 10만 명당 관료의 수는 옛 쏘련에서보다 50퍼센트나 많다. 탈숙련화와 대량 실업은 갈수록 러시아 노동자 계급의 더 커다란 부분을 영락한 구휼민(déclassé paupers)으로 만들어 가면서, 그 계급을 분열시키려 위협하고 있다.
쏘비에트 시절의 헌법상의 제보장을 폐기해 버린 옐친 정권은 그 자신의 헌법도, 무엇보다도, 부르조아적 권리의 근본 규범인 계약법도 노골적으로 그리고 매일같이 유린하고 있다. 노동조합측의 소식통들에 의하면, 1996년 10월 현재까지 미지불 임금 총액은, 러시아 노동자 전체의 한 달 임금 총액에 가까운, 40조 루블(거의 US$75억)에 이르고 있다. Renfrey Clarke, “Russian Power Workers Fights for Wage Arrears,” labr. cis, Institute for Global Communication, September 24, 1996.
수백만의 노동자들이 몇 달이고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종종 노동자들에게는 그들이 생산하는 생산물이, 대개 종류를 가리지 않고, 임금 대신에 지급된다. 노동자들에게 널(棺)이 임금 대신 지급된 예도 있고, 성냥이 지급된 예도 있다. 영양실조로 많은 노동자들이 작업 중 실신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일찍이 어떤 통계도 표현할 수 없었던, 노동자들의 도덕적 정신적 차원의 좌절도 있다. 한 여성 섬유 노동자가 표현한 것처럼, “그들은 우리에게서 존엄성을 빼앗아 갔고, 사람은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다.” 쏘비에트의 대중들은 지금 그들 자신의 비참한 경험을 통해서, “만일 적이 승리한다면 죽은 자조차도 그로부터 안전하지 않을 것”이라던 월터 벤자민(Walter Benjamin)의 경고의 진실성을 배우고 있다. 승리한 적과 그 ‘지적 대표자들’(literary representatives)은 쏘비에트 노동자 계급의 물질적 재산만이 아니라 혁명적이었던 그의 선조들과 그들이 추구했던 해방에 대한 역사적 기억까지도 빼앗아 갔기 때문에, 이 기억을 그 계급에게 되돌려 주는 것이야말로 선진 노동자와 사회주의적 인텔리겐챠의 가장 긴급한 임무 중의 하나이다.

II

“이미 모든 것을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 조성되었고,
Hic Rhodus, hic salta!
여기에 그 장미가 있으니, 여기에서 춤을 추어라!(Here is the rose, here dance!)
라고 제조건 자체가 외치고 있는 것”처럼 보일는지 모른다.
아직까지도 대다수의 노동자들은 반혁명의 모든 파괴행위에 아랑곳없이 정치적으로 수동적인 채 남아 있다. 어떤 보이지 않는 족쇄에 묶여 있는 거인처럼, 러시아의 노동자 계급은 쏘비에트 노동자들이 수 세대에 걸쳐 창조한 자기 나라의 생산력을 관료배들, 범죄적인 부르조아지, 그리고 외국의 자본가들이 약탈하고 파괴하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피동성은 신자유주의적 인텔리겐챠들이 주장하는 것과 같은 노동자들의 ‘룸펜화’(lumpenization)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으며, 많은 좌파들과 심지어 일부 노동자들이 주장하는 것과 같은 ‘유산계급화’(embourgeoisement)와도 거의 관계가 없다.
노동자들이 자신들을 정치적으로 조직하는 것이 일시적으로 지체되고 있는 한 가지 명백한 이유는, 과거의 관료주의적 전제정치 체제하에서는 독립적인 계급의식을 가진 어떤 독립적인 노동자 계급 조직도 발전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 ‘페레스트로이카’라는 운명적인 수년 동안 각급의 견고한 관료제는 원자화되고 정치적으로 미숙한 노동자들에 대항하여 효과적으로 자기들의 공동이익을 방어하고, 심지어는 1989 - 1990년의 광부 파업의 경우에서처럼 그들의 항의를 교묘히 조작할 수 있었다. 고르바초프 정권 중기에 지배계급이 내부 분열로 약화되어, 자신을 잃고, 생산에 관한 통제 조치를 어쩔 수 없이 노동자들에게 양보했을 때(1987년 국가기업법) 투쟁을 성공적으로 조직하고 수행하지 못한 것은 특히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사유화가 생산에 대한 노동자들의 통제를 더욱 강화하고 관리자들(administration)로 하여금 노동자 집단에 대해서 보다 더 책임을 지도록 할 것이라는, 널리 퍼진 환상도 또 다른 부정적인 요소였다. Simon Clarke, “Privatisation and the Development of Capitalism in Russia.” In: Simon Clarke, Peter Fairbrother, Michael Burawoy, Pavel Krotov, What About the Workers?: Workers in the Transition to Capitalism in Russia (London: Verso, 1993), pp. 240 - 241.
이러한 환상은 그후 제2단계의 사유화가, 1993년의 쿠데타로 공식 허가를 받아, 경영자들(management)이나 외부의 주주로 하여금 기업에 대한 통제권을 강화할 수 있도록 하고 노동자들을 이전보다 훨씬 더 무력화시킴에 따라 사라졌다. 모스크바의 ZIL 자동차 공장 노동자들의 말을 빌리면, 그들은 “더 이상 정부와 대통령에게서도, 혹은 [공장] 관리자에게서도 어떤 좋은 일을 기대하지 않는다.” Boris Kagarlitsky, “Rabochee dvizhenie rabochie i mify” [‘노동운동과 노동 신화’], Svobodnaia mysl, 10 (1995) p. 123에서 인용.

사유화는 또한 새롭고 강력한 노동자 억압 수단을 소유자와 회사 경영자들에게 제공했는데, 실업의 위협, 작업장에서의 정치활동의 금지, 그리고, 갈수록 극심해지는, 이른바 경비직들, 즉 좀더 쉽게 말하면 소유자 및 관리인들에 의해서 고용된 무장 폭력배에 의한 노동자 활동가들에 대한 직접적인 육체적 테러와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이러한 심리적 육체적 위협은 노동자 계급의 실제 상황에 관한 침묵의 벽에 의해서 더욱 강화되고 있는데, 그 침묵의 벽은, 옛 쏘련의 국내 및 국제 노동운동 전문가 군단이 이제 어떻게 해야 노동자들을 가장 잘 분열시키고 노동자들의 자주적 조직화를 방지할 수 있는가를 (옐친) 정권에 조언하는 동안에, ‘민주적인’ 대중매체가 세운 것이다. 모스크바에 자유노조연구소(Free Trade Union Institute; FTUI)라는 작전 기지를 두고 있는 미국노동총동맹산업별회의 국제국(AFL-CIO international department)에 의해서 주도되는 서방의 친자본주의 노조들도 이를 돕고 있다.
경제 쇠퇴기에는 노동자들이 조직화되기가 가장 어렵다는 것도 익히 알려져 있으며, 우리가 지금 러시아에서 보고 있는 것은 경제적 파국이다. 생산 능력의 5 내지 10퍼센트밖에 가동을 안하고, 그나마 관료들은 그 공장들을 완전히 문닫아 팔아 치우고 리베이트나 챙기기를 고대하는 산업 현장에서 보통의 파업은 쓸모가 없다. 필사적인 러시아 노동자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단식투쟁에 호소해 왔는데, 이는 때로는 ‘민주적인’ 매체에 의한 보도 봉쇄에도 불구하고 ‘여론’에 호소하기 위해서이고, 또 때로는 철도 및 도로 봉쇄, 기업 장악, 그리고 관리인 몰아내기 등을 포함한, 그들 동료의 보다 전투적인 행동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이다. 노동자들의 대항 행동은 갈수록 더 세계 노동운동사에서도 그 유례가 드문 비극적 형태를 취해 가고 있다. 체보크사리 트랙터 공장(Cheboksary Tractor Plant)에서는 지난 해(1995) 12월 파업 중에 세 명의 노동자가 자기 가족들의 굶주림에 속수무책인 데에 절망하여 자살하였다.
노동자들은 또한 타락하고 있다. 족히 그럴 만하다. 수십 년 동안, 스스로를 공산주의자라고 부르던 사람들은 노동자들에게 노동자들이야말로 “쏘비에트 사회를 이끄는 힘”이자 국부(國富)의 창조자이고 소유자라고 말해 왔다. 그리고 이제 그들 대부분이 자신들을 반공주의자라고 부르면서 노동자들에게 말했다. “우리는 당신들에게 아무것도 빚지지 않았소. 당신들은 시장에 나가 자유롭게 당신 자신들을 팔 수 있고, 우리는 자유롭게 당신들을 살 수 있소.” 오늘날, 당과 ‘인민의 인텔리겐챠’로부터 배신당하여, 러시아의 노동자들은 홀로 서 있고, 방향감각을 잃고 타락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국제적으로도 고립되어 있다.
하지만, 현재 러시아에서의 계급투쟁은 노동자 계급이 처해 있는 객관적 조건과 계급의식 및 조직 수준 사이의 엄청난 불균형에 의해서 특징지워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사실은 노동자들 자신에 의해서 인정되고 있고 분석되고 있다. 타타르스탄 노동조합의 한 노동자 지식인은 이렇게 쓰고 있다.

인민의 재산을 노골적으로 약탈하고 일반 인민의 기본적 권리를 유린함으로써 부르조아지 자신이 근로인민들의 혁명적 행동을 크게 도발하고 있다. 그러나 그 부르조아지는 그에 대한 대처 방안 역시 취하고 있다. 그들은 서방측 자본가들의 경험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어떻게 노동자들의 기를 꺾고, 혼란시키며, 비조직화할 것인가를 배워 왔다. 우리는 성공적인 대항 선전, 반박의 여지가 없는 전략, 현실적인 계획 등을 갖추고 있는가? 좌익 세력이 모두 단결되어 있다면 그러한 모든 것을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단결이야말로 우리가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다. 말하자면, 모든 객관적 요소들은 갖추어져 있다. 부족한 것은 바로 주체적인 요소이다. 오늘날 어떤 종류의 노동자 권력이 가능하며, 현재의 조건하에서 그것이 정확히 어떠한 구체적 형태를 취할 수 있는가를 대다수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A. Gubaidullin, “K voprosu o vyborakh” [“선거의 문제에 대해서”], Mysl, August 1995.


III

타락과 정치적 경험의 부재, 조합 지도자들의 배신과 인텔리겐챠의 적의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노동자들은 아래로부터 조직하고 반격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초기 단계에서 이미 우리는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노동자 계급 운동이, 노동조합과 정치조직을 제도적으로 구분함으로써, 서방측 노동운동의 형태보다는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 전통을 따를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새로 등장하고 있는 러시아적인 형태는, 특별 파업위원회, 상설 파업위원회, 공장위원회 혹은 노동자평의회, 시(市)노동자평의회 혹은 쏘비에트와 같은, 일찍이 본 듯한 무시무시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결국, 노동자 계급의 역사적 기억을 지우는 일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쏘비에트형의 권력의 역사적 중요성에 대한 트로츠키의 평가를 생각나게 한다. “쏘비에트 체제에서 처음으로 노동자들(toilers)의 지배가 실현되었는데, 그 즉각적인 역사적 부침(浮沈)이야 어떻든, 그것은, 종교개혁이나 순수 민주주의가 한창 때에 그랬던 것처럼, 대중의 의식 속에 되돌릴 수 없이 침투하였다.” The History of the Russian Revolution (Ann Arbor: University of Michigan Press), p. 15.
이러한 형태의 조직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파업위원회 차원에서도 순수하게 국지적인 요구와 정치적 슬로건을 대담하게 결합시키고, 어떤 경우에는 관리자들에 대한 노동자들의 통제를 확립시키려고 한다는 점이다.
꽤 전형적인 지방 파업의 예를 하나 들어 이 점을 설명해 보겠다. 블라디보스톸 시 제2발전소의 파업위원회는, 3월에 있었던 1일 경고 파업을 통해서 관리자들로 하여금 3개월 분의 밀린 임금을 지불하게 하는 데에 실패한 이후, 지난 4월에 무기한 파업을 결정하였다. 임금 미지불이라는 이러한 당면의 불만과 함께 파업위원회는 전력산업 해체의 즉각 중지, 대통령과 정부의 퇴진과 같은 요구를 강하게 내걸었다. 자신들의 산업을 지키려는 노동자들의 요구는 특징적이고 특별히 강조될 필요가 있다. ‘질서당’(party of order)으로 구성된 지배 도당들은 갈수록 더 범죄적 매판적 요소들에 의해서 좌우되었기 때문에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만이 산업 기반을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데에 절대적으로 헌신하는 유일한 계급으로 남아 있다.
파업 노동자들은 지역 당국자들에 대해서도 불신임을 표시하였다. 파업위원회는 총회를 소집하여 자위를 위한 전투부대를 구성하고 파업 기간에 음주를 금지하기로 결정하였다.
보다 높은 형태의 노동자 계급 조직은 보르쿠타 시 노동자평의회(Workers' City Council of Vorkuta)에서 그 예를 볼 수 있다. 보르쿠타 시는 광산업이 지배적인 지역의 중심이기 때문에 조직화가 보다 쉬웠다. 협의회의 재정은 거기에 대표자를 파견하는 공장위원회들이 내는 광산의 이익금으로 충당된다. 1995년 1월에 협의회는 지역 회의를 열었다. 그 회의록은 러시아 노동운동의 현황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를 제공한다.
그 회의에서 관리자들의 대표는 두 개의 제안을 내놓았다. 첫번째는 “평의회는 페레스트로이카 기간에 이미 그의 역사적으로 진보적인 역할을 다했기” 때문에 그것을 해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대의원들은 이 의견을 터무니없다고 판단하여 부결시켰다. 두번째의 제안은, 협의회의 재정은 공장위원회들(factory committees)에 의해서보다는 회사(corporation)에 의해서 중앙집중식으로 조달되어야 하며, 그 직원은 지역 회의에서 선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제안 역시 부결되었는데, 그 이유는, 대의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그 계획은 명백히 협의회를 대중적 기반으로부터 분리시키고, 그에 대한 통제권을 지역의 광산들에서 회사 관리자들에게 이전시키려는 의도를 가진 것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보다 급진적인 대의원들이 이 협의회를 자체 규약을 갖고 당비를 내는 지역 노동당으로 전화시키자고 제안했을 때, 회의는 그 계획을 “광부들의 정치적 행동이 낮은 상황에서 시기상조”라며 기각하였다. 양쪽의 예에는 모두, 지역 공장위원회들의 상급 대의기구들에 대한 통제를 유지한다는 단일한 원칙이 관철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역사적 경험을 통해서 노동자들은 정당은 통제되지 않는 기구(loose cannon)로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던 것이다. 대신에, 그 회의는 시 정부의 집행위원회에 협의회의 대표를 파견하기로 결정하고, 광산 도시 가운데 한 곳에서 노동자 전투부대를 창설하는 데에 동의했으며, 다른 지역의 광산들에 대해서는 장래에 지방 민병대로 전환될 수 있는 노동자 민병대의 분견대들을 조직하도록 호소하였다. 마지막으로, 대의원들은 러시아 시민들에게 보내는 정치선언에 동의했는데, 이 선언에서 그들은 체첸 전쟁을 비난하고 대통령과 정부의 퇴진을 요구하였다. Agenstvo sotsialno-politicheskoi informatsii Biulletin. [The Bulletin of the Agency of Social-Political Information], 2 (9), February 1995.

우리가 보고 있는 보르쿠타의 상황은 이중 권력 상태로의 초기 발전단계이다. 협의회는 관리기구와 지방 정부에 자신의 대표들을 파견하고 있다. 그것은 자체의 노동자 민병대를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협의회는 지역 공장위원회들에 의해서 민주적으로 선출되고 그들에 의해서 긴밀하게 통제되는, 노동자 계급의 진정한 민중조직이다. 혁명적 상황이 벌어진다면 그 협의회는 그 도시와 주에서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전투적 참모부가 되도록, 그리고 나중에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입법 및 집행 기관, 즉 쏘비에트가 되도록 자신을 배치할 것이다. 아직까지 보르쿠타 노동자평의회는 대다수 노동자 계급 조직을 대표하고 있지 않다. 그것은 오히려 러시아의 노동자들이 내일 성취하게 될 것의 상(像)을 보여주는 편이다. 한편, 러시아에서는 수천 개의 공장위원회와 파업위원회들이 활동하면서 열심히 그들 자신의 정치학을 배우고 새로운 전투적인 노동 지도자들을 교육하고 있다.
러시아 노동자 계급의 역사에서 현시기는 쏘비에트 시절을 회상하면서 그것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선진 노동자들의 이론적 활동은 상당 정도의 궤변과 현실주의에 의해서 특징지워지고 있는데, 이러한 특징은 대개 옛 당의 소장 노멘클라투라와 중산층 지식인들에 의해서 좌우되던 ‘공식적인’ 러시아 공산주의 운동에는 없었던 것들이다. 이들 노동자들은 이론적으로 행동하고 실천적으로 사고하기를 원한다. 과거의 비극적 오류를 피하기 위해서 그들은 1917년 이후 무엇이 잘못 되어 갔는지를 정확히 알고 싶어한다. 모스크바에 있는 자동차 공장의 조직가인 바실리 시쉬카로프는 이렇게 말한다.

무엇이, 내 생각에, 공산주의 지도자들의 주요 오류였던가? ꡔ공산당 선언ꡕ 속에서 맑스와 엥겔스는, “공산주의자들의 당면의 목표는 기타 모든 프롤레타리아 정당들의 목표와 마찬가지로 프롤레타리아트를 계급으로 형성하여, 부르조아 패권을 타도하고,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해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 아다시피 ꡔ선언ꡕ은 당을 위해서가 아닌, 프롤레타리아트를 위한 정치권력의 장악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모든 식모가 국사(國事)를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 레닌이 의미했던 것도 바로 이점이었다. 그런데 프롤레타리아트 지도자의 후계자들인 총서기들은 맑스와 레닌의 견해를 왜곡하고 당의 권력을 수립하였다. 그 결과 노동자 계급의 전위였던 당은 관료 도당으로 되어 버렸다. Vasily Shishkarev, “My ne stanem pushechnym masom na rynochnoi voine.” [‘우리는 시장 쟁탈전의 총알받이가 되지 않을 것이다’], Pravda, October 5, 1994.


고전적 맑스주의의 근본 견해들을 재발견하는 것은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가 지적⋅정치적으로 각성해 가는 데에서 가장 중요한 발전이다. 노동자 계급의 역사적 임무는 자신의 프롤레타리아적 조직에 기반한 자신들의 의식적 활동에 의해서만 수행될 수 있다는 자각이 선진 노동자들 사이에 커 가고 있다. 이러한 깨달음은 쉽게 오는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위로부터 배양되어 온 대용주의(substitutionalism)와 관료적 온정주의 이데올로기가 노동자 계급의 의식 속에 남아 있으면서 그들의 정치적 상상력을 심각하게 제약하고 있다. 지금까지 일어난 사태를 ‘배신’과 ‘음모’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은, 노동자들에게 희생자의 역을 맡김으로써, 그리고 자신들을 역사적으로 수동적인 수난 집단으로서의 ‘인민’으로 보는 노동자 계급관을 강화함으로써, 노동자들에게 커다란 위해를 가하고 있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트의 진정한 계급의식은 (부르조아지의 계급의식과는 달리) 오로지 철저한 자기비판에 기초하고, 맑스주의가 이 계급에 제공하는 역사적 프로젝트의 관점에 서야만 발전한다. 레닌과 스탈린은 러시아 노동자들 자신의 장점과 약점을 표현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러시아의 노동자들은 아직 깨달아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노동자 계급이야말로 1917년 이래 일어난 모든 일에 대해서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새로운 혁명적 (자기) 교육학의 첫번째 임무는 러시아 노동자들의 정치적 발육부진, 곧 외부로부터의 정치적 지도에 대한 그들의 깊은 심리적 의존을 극복하는 것이다.
노동자 권력에 대한 근대적 개념과 그 권력을 획득하고 보존하기 위한 현실적 계획을 발전시키는 것도 또 하나의 긴급한 임무이다. 타타르스탄의 그 노동자 지식인이 문제의 복잡성을 아주 훌륭하게 요약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70년 동안의 쏘비에트 체제에서 해결되지 못한 그러한 문제들(즉, 관료주의화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고 있다. ...... 혁명이 일어나서 노동자 지도자들이 권력의 지위를 장악했다고 하자. 그 다음날 당장 해결되어야만 하는 첫번째 문제는 새로운 입법 및 집행 기관을 구성하는 일일 것이다. 노동자들의 권력이 어떻게 조직되는가에 관해서 옛날과 똑같은 사고가 노동자들의 머리 속에 남아 있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하에서는 ‘신사분들’과 관료들이 재빨리 다시 빨개져서 자신들의 혁명적인 과거 행적을 입증하고 다시 모든 공직의 우두머리가 될 것이 명백하다. 하지만, 혁명이 그에 따르는 모든 문제를 저절로 해결하지는 않는다. 그러한 결과들을 예방하기 위해서 필요한 자기 조직화에 관한 충분한 지식이나 경험을 노동자들은 갖추고 있는가? 결국, 노동자들은 어떤 절대적인 사상이 아니라 축적된 경험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를 실천 속에서 깨달아야 할 것이다. A. Gubaidullin, 같은 곳.


이것은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러시아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 전위의 목소리이다. 새로운 세대의 노동자 활동가들은 옛 노멘클라투라도 새로운 부르조아지도, 그들의 정당들도 그들의 정부도, 그들의 대중매체도 그들이 발표하는 선거 결과도, 신뢰하지 않는다. 노동자들은 오직 자기 자신들에게 의존해야 한다는 것, 노동자 계급이 고도의 정치의식과 자립을 획득하여야만, 그리고 다른 계급과 그 이데올로기들로부터 독립된 자신의 정당과 조합을 창설해 내야만, 그들의 투쟁이 승리를 가져올 것임을 지금 이 노동자 활동가들은 깨닫고 있다. 이 투쟁은 길고 힘들 것임을 그들은 알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또한 이렇게 말한다. “이번에는 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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