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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번호 751번 등록일 1999-10-11 00:00:00
글쓴이 최도은 글쓴곳  
발행호수 48   분야 5  
제  목 99한라중공업 여름 가을 이야기



최 도 은

회원, 민중가수









8월 18일 한라중공업 노동조합의 파업이 시작되어 10월 7일 현재까지 전면 파업 51일, 공장 점거 29일, 철야 농성 30일을 1,258명의 노동자와 그 가족들은 맞고 있습니다. 파업 소식을 접하고 8월 20일 목포역 집회에 한 걸음에 달려가 노래 공연을 하면서 나는 이들을 처음으로 대하게 됩니다.

그리고 10월 7일 오늘까지 한 번의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건만 이들은 아직도 싸우고 있습니다.


반바지에 슬리퍼를 끌고 규찰을 서던 동지들이 지금은 두터운 점퍼를 입고 모닥불을 쬐며 규찰을 서고 있습니다. 싸움은 깊어 가는 가을처럼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매일 매일 현대 자본에 의해 어처구니없는 일들만 벌어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언제 한 번 이 나라 노동자의 파업이 합법인적이 있었냐”는 동지의 말을 들으면서 이번에는 이번에는 꼭 승리의 노래를 불러 보겠다고 목포와 서울을 오르내리기를 십여 차례, 나의 노래가 이들의 지친 마음에 작은 위로라도 되길 바라며 오늘도 목포행 열차에 몸을 실어 봅니다.


공장을 들어가려면 몇 개의 바리케이트를 만나게 됩니다. 현장에서 끌고 온 철구조물로 세워진 바리케이트 위엔 ‘고용승계 보장없는 공장매각 결사반대’라는 플랭카드가 걸려있고, 그 옆으로는 산소통과 집에서 가져온 옷가지를 늘어놓고 거기에 신나를 부어 물리력으로 파업을 제압하려는 저들에 맞서 탄탄한 방어선을 구축해 놓고 있습니다. 각종 공구와 나사 그리고 폐타이어가 가는 길 곳곳마다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바리케이트를 보며 이 싸움의 긴박함을  다시 한 번 다잡게됩니다.

농성장 곳곳에서 동지들을 만나게 됩니다. 환하게 웃으며 반겨주는 동지들, 밥 먹었냐며 꼬박 꼬박 챙겨 주시는 동지들을 보면서 파업농성 51일을 끈질기게 1,258명이 버티는 힘이 여기에 있구나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여기서 물러서면 끝이라는 서로간의 공감대가 이들을 이렇게 뭉쳐 싸우게하는 힘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믿어지지 않을 만큼의 결속력을 가지고 지금 목포 한라중공업의 동지들은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공장 각 문에 철통같이 바리케이트를 치고, 태풍에도 끄덕 없는 이중의 텐트를 치고 1,258명의 동지들은 요구합니다.


첫째, 현대 자본은 실질적인 고용 보장을 지켜라! 진정한 고용 보장은 전출․배치 전환 부서외주 처리 등에 대한 사안이 발생했을 때 노동조합과 반드시 합의해야 한다는 것이며. 이 합의 조항을 수용했을 때만이 고용이 보장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 임금 복리후생 단체협약 원상회복 입니다. 임금 삭감도 부족하여 98~99  2년에 걸쳐 임금이 동결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2년 동안 물가 상승률만큼 임금이 삭감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임금을 인상해달라는 것이 아니고 97년 수준으로 원상 회복해 달라는 것입니다.


셋째, 해고자 원직복직입니다. 부도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을  무능력한 경영자들은 무자비하게 해고하였습니다. 따라서 이들의 원직복직은 반드시 이뤄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요구가 수용되었을 때 파업을 풀 수 있는 것이라며 동지들은 인생을 걸고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앞에서는 ‘통일시대를 여는 현대’를 외치고 뒤에서는 추잡하게 노동자와 그 가족을 말살하고 …  교섭은 추석전 날 결렬된 이후 지금까지 별 진전이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조합원들의 발을 꽁꽁 묶는 고소고발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10월 7일 현재 체포영장 발부 27명, 고소 고발 101명, 그리고 항시 긴급 체포가 가능한 사람이 200여명에 심지어는 사수대 중대장 2명의 아내에게까지도 출두 요구서가 날아 온 상태입니다. 농성 대오의 ¼이 넘는 조합원과 그 가족의 발을 묶는 자본과 정권의 총체적인 탄압의 현장을 보면서, 이 땅 노동자의 권리와 현 주소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일만이 넘었던 한라중공업 직원과 그 가족들의 생존을 파탄에 이르게 하고, 그들 가족을 일순간에 고통의 구렁텅이로 몰아낸 장본인들은 멀쩡하게 활개를 치는데, 왜? 우리 노동자들에게만 이러한 부당한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가 없는 세상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간파한 권성원 위원장은 10월 7일 야간 집회에서 “사수대 중대장의 아내에게까지 출두 요구서를 발부하는 그런 비열한 놈들과 교섭하지 않겠다. 교섭을 하기 전에 위 사항을 먼저 풀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교섭 안하겠다.”고 힘 줘서 이야기했고, 이에 농성 조합원들은 하늘을  찌를 듯한 소리로 “투쟁”이라고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알 수 없는 자본의 세상에 그나마 위안을 삼을 수 있는 유일한 힘은 동지들의 함성과 눈빛뿐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가족대책위 결성


농성이 길어지면서 남편들의 발이 묶이고 모든 여론으로부터 고립되어 있는 현실을 파악한 가족들이 마침내 투쟁에 나섰습니다. 유모차를 탄 아가와 아내들이 투쟁의 선봉에 나선 것입니다.

10월 2일! 남편들에게 걱정하지 말고 열심히 싸우라고 늘 뒤치다꺼리만 하던 아내들이 나섰습니다.

사원 아파트 복도 창가에 ‘온가족이 똘똘뭉쳐 생존권을 사수하자!’, ‘여보! 힘내시고 끝까지 싸웁시다!’라는 창대자보가 붙고 사원 아파트 앞 도로에 쭉 모였습니다. 처음엔 남편들 일이라 말리지도 나서지도 못했지만 부도 이후로 임금 반납과 늘상적인 체불을 겪으면서  대책은 싸워서 쟁취하는 일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이제 남편들이 바깥에 나가면 연행이 되는 상황 ― 지난 9월 27일 곡블럭 조합원 신ㅇ은씨는 장애 아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파업의 정당성을 알리는 거리 선전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함께 동참했던 해고 노동자 김용갑 동지를 연행하여 구속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에서 마냥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이 싸움의 진실을 알려낼 방법은 우리들 아내의 몫이라며 목포역 선전전에 나섰던 것입니다 처음 하는 일이라 유인물을 받아 들고서 아파트 앞을 나갈 때에는 무척 떨렸지만 막상 영산호를 넘어서니 내가 남편 대신 열심히 뛰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힘찬이 엄마 김ㅇ혜(파업 과정에서 알게 된 나와 동갑내기 예쁜 색시)는 말을 합니다. 김밥을 싸서 농성장에 찾아오던 그 손으로 어제는 목포 역전에서 유인물을 지나가는 사람의 손에 꼭 쥐어 주며 선전전을 한 것입니다.



경찰 가족대책위에 폭력을 휘두르다.


경찰이 임신 4개월의 임산부(조ㅇㅇ)와 세살 먹은 그녀의 딸 효정이를 폭행한 기가 막힐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10월 6일 당시 상황은 KBS와 MBC의 편파 왜곡 보도에 대한 항의 방문을 마치고 가족대책위 동지들이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습니다. 영산호가 끝나는 곳에 있는 검문소를 지나려 하자 한라가족대책위 방송차를 영암초소의 경찰들이 가로막고 연행을 하려 했던 것입니다. 이유를 따져 물었습니다. 글쎄, 그 이유가 또 한 번 기를 막히게 했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동행한 방송차에 노조의 이름이 로고로 새겨져 있어서 이 방송용 승합차량이  업무방해 차량이기 때문에 그 운전자와 차를 연행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세상 천지에 차량에 한라중공업 노동조합 로고가 새겨 있다고 연행을 하겠다니 가족대책위 아줌마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빙 둘러섰습니다. 순간 차량 운전을 담당하던 노동조합 문선대 박ㅇㅇ동지를 연행하려하자 가족 대표  아내들이 길을 막고 차량 연행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일이라며 거부를 하자 초소의 경찰과 아줌마 부대간에 심한 몸싸움과 욕설이 오갔습니다. 그 와중에 가족대책위 가족 중에서 임신 4개월의 조ㅇㅇ씨와 그녀의 딸 효정이가 영암경찰서 김용승의 주먹에 얼굴을 맞은 것입니다. 이 순간 아내들이 못 간다고 막아서고 도로에 드러누워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강하게 농성을 전개하자, 그들은 가족대책위의 귀가를 허락했던 것입니다. 사태는 더 이상 번지지 않고 마무리되었지만 가족들은 노조로 와서 영암경찰서, 전남 도경, 그리고 청와대 민원실에까지 곳곳에 항의하고 책임자 문책을 요구했습니다만 아직껏 경찰서에서도, 도경에서도, 그리고 검찰과 청와대 민원실에서도 책임자 문책은커녕 수수방관하고 있습니다. 이 날 가족대책위 아줌마들은 양심도 없이 날뛰는 경찰놈들 위에 현대 자본이 있음을 또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입으로는 민중의 지팡이라고 떠들지만 그들은 민중의 지팡이가 될 기본적 자격도 없는 집단으로, 임산부와 세살 아기에게 폭력을 휘둘렀고, 다음 날 아침 폭력경찰 김용승은 술이 떡이 된 채로 노조에 전화를 걸어 사건을 없던 일로 마무리 하자며 로비를 제안하는 짐승보다 못한 짓거리를 하고 있습니다. 폭력경찰 김용승․한상렬․임호삼 영암 경찰서 소속 쓰레기 인간들의 문책을 위해 가족대책위 동지들은 돌아오는 월요일 11일에 경찰에 항의 집회를 가기로 했습니다. 



언론 위에 현대 자본이 있다!


10월 7일 오늘 아침에 일어난 사건으로는 집집마다 배달되는 신문 속 간지에 ‘영암․목포 지역교회 및 주민 일동’의 유인물이 배달되었습니다. 신문속 간지 유인물의 내용을 보면 파업농성 노동자를 폭도로 매도하는 내용을 부각시킨 유인물인데, 목포 영암의 집집마다 아침을 여는 새로운 소식으로 배달된 것입니다. 그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 해 보면 ―이 지역은 민주주의와 예절을 자랑하는 고장으로 광주 민주항쟁을 수호한 자랑스런 고장입니다. 우리 영암 목포를 사랑하는 목회자 및 주민 일동은 고용안정을 들어주겠다는 회사측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계속적으로 파업을 진행하고 있는 한라중공업 노동조합은 하루 빨리 파업을 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계속되는 파업은 지역 경제를 도탄에 빠뜨리는 것으로 한라중공업 노동조합은 신중하게 판단하시고 지역 경제와 지역 민주주의 질서를 위해 지역 민들의 충고를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지역 주민들은 회사측이든, 노조측이든, 각각의 입장에서 나오는 유인물을 보고 상황을 판단할 자유가 있는데 쇠파이프를 들고 와서 회사쪽 유인물을 빼앗아 가고, 폭력을 휘두르는 것을 더 이상은 두고 볼 수 없습니다. 이 지역에서 쇠 파이프를 휘두르는 것은 폭도의 짓거리이며, 한라중공업에 이렇게 폭도들이 회사를 점거하고 있는데 공권력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또, 한 밤에 주민들의 보금자리 아파트에서 가요제를 하고 떠들어대서 주민들이 소음으로 인한 고통이 말이 아닙니다. 한라 정상화를 위해 노동조합은 더 이상 농성 노동자를 속이지 말고 하루 빨리 회사를 정상화시켜야 합니다. 영암․목포 교회 및 주민 일동의 요구와 지역 민들의  따끔한 충고를 받아 하루 빨리 회사를 정상화시키십시오 ―한 마디로 기가 찰 노릇입니다. 회사측의 요구가 그대로 담긴 유인물이 지역 목회자 이름으로 신문의 간지처리가 되어 지역 주민의 안방을 공격하는 짓거리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노조에서 각 신문사에 간지의 출처를 항의하고 확인해 보니 청탁자가 회사측이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노조에서는 신문에 한라노동자의 농성 상황을 알리는 광고 한 번 하려 해도 1,800만원이 라는 광고비용 때문에 엄두도 못 내고 있었는데, 지금 저들은 그 동안  우리가 벌어 준 돈으로 목회자 집단까지 꼬드겨 가며, 할 짓 못할 짓 다 해 가면서 말로 다할 수 없는 엄청난 물량 공세를 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들은 파업 대오가 흐트러짐이 없자 언론을 통해 지역 사람들로부터의 고립, 완전 고사 작전을 펴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10월 3일에는 영산호 기념탑에서 지역 경제 단체들 주최로 ‘한라중공업 정상화 촉구 궐기대회’가 있어 노조의 파업 철회를 촉구하는 일이 있었고, 하늘에서는 목포 해양경찰대 소속의 헬기가 유인물을 살포하고 있으며, 영산호 초소에서는 검문 검색이 극도로 강화되는 등 저들은 모든 역량과 물량을 동원해서 이 파업을 파괴하려 하고 있습니다.

의외로 담담하게


현대 자본과 김대중 정권의 총체적인 공격도 농성장 안에서는 별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는 ‘신문 간지 사건’, ‘헬기 유인물 사건’ 등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고 흥분하는데, 농성장 텐트 안에 동지들은 의외로 담담하게 사건을 대 하는 모습입니다. 그 동안 현대 중공업에서, 대우 조선소에 다니면서 볼 것 다 봤다며 의연히 농성장을 지키는 것입니다. 저들의 공격과 유언비어가 통하지 않는 이 곳에서는 오히려 곰장어를 손질하여 구워주겠다며 쏘주 한 잔 하자고 잠시만 기다리라고 합니다. 한라중공업 노동자들의 싸움이 꼭 승리할 것이라 나를 믿게 하는 일들이 농성장 구석구석 마다 펼쳐져 있습니다. 서로에게 군기가 빠졌다며 농을 거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번 확신합니다. 이 싸움은 우리가 이긴 것이며 반드시 우리 노동자가 승리한다고 확신하게 됩니다!  



낚싯대를 거머쥐고


지난 4년 동안 한라중공업에 입사해 가지고 ‘도크 게이트’ 위에서 낚시 한 번해 보는 것이 소원이었다는 슬기 아빠는 규찰 시간을 빼놓고 하루종일 도크에서 낚시질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부서원들 먹거리를 준비한다며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를 때까지 도크에 앉아 있습니다. 며칠전에 집사람과 슬기가 와서 모처럼 환한 오후를 보내면서 나를 보고서는 사진 한 장 찍자고 하시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낚싯대로 갈치를 낚던 솜씨를 자랑하던 슬기 아빠는 지금 이 시간에도 중문에서 규찰을 서고 있습니다.



현대는 거저먹는 거야 한라를…


조합에서 나를 찾는 연락이 왔다며 한 동지가 자기의 전화를 건네기에 무슨 중요한 일거리가 있나하고 급하게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전화의 용건은 뜻밖에 회 먹으러 오라는 소리였습니다.

모처럼 맛 좋은 우륵을 잡았다며 조합에 전화를 걸어 내가 있는 곳을 수소문하여 우륵 한 점 먹으러 빨리 오라는 전화였습니다. 듬직한 전ㅇㅇ선배와 탑재과 동지들, 이들 모두는 파업을 즐기고 스스로를 다지고 있었습니다. “질긴 놈이 이기는 긴데  즈그 놈들은 지금 작전 짜느라 머리 쪼매 아플 거고만”, “아~ 현대에서 놀랬다고 하드만 아~ 우째 노무 관리를 이 따위로 해 놓았냐며 즈그들 끼리 머리 터지고 있다 안 하나”, “말 끝 마다 위탁경영 철회하겠다는 데 정부에서 부채 다 탕감 해 줘서 쉬운 말로 그냥 누워서 거저먹는 것 아니냐고, 아~ 한라 마저 먹으면 세계조선 시장의 가격 동향을 즈그들 맘대로 쥐었다 폈다 하게 된 놈들이 우리의 고용은 보장 해 줄 탱 기니 파업 풀라고 하는디 말도 안되는 소리다! 인사권 을 우리가 쥐고 있어야 우리의 요구가 들어지는 것이지 파업 풀고 고용은 보장해 줄탱기 너는 저 그 가서 일하고, 아~ 너는 저 그로 가라고 하면 우리는 끝장이여! 도루묵 되는 거라 그거지” 거제 조선에서  이리로 왔다는 경상도 사투리의 이ㅇㅇ동지와 고향 찾아 울산의 조선소에서 이리로 왔다는 김ㅇㅇ선배는 앉아서 축지법을 쓰나 봅니다. 한라중공업을 헐값에 위탁 경영하게 된 현대그룹 측의 움직임을 낚시터(도크 게이트)에 앉아서 훤하게 알고 있으니 말입니다. 삼호만의 외로운  갈치를 벗삼아 이들은 이렇게 닫혔던 마음을 풀고 있습니다. 그러나 위원장님의 금주령 명령이 떨어진 날 저녁에는 도크에는 17만톤급 배를 지키는 사수대만이 질서 있게 규찰을 서고 모두 각 문에서 대기하고 있는 모습이 노동자 군대가 따로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앞에 나서면 다친다.


평생 앞에 서본 적 없다는 김더스틴 오빠(얼굴이 영화배우 더스틴 호프만을 꼭 닮은)는 일요일 저녁에 한․일전 축구를 보다가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 만났는데 무뚝뚝하니 말도 없다가 한다는 말씀이 앞에 나서서는 절대 안된다는 겁니다. 후배들에게도 앞에서면 다친다며 한 말씀하시더군요. 그래서 내 생각에 나서는 것도 그렇고 해서 주는 술만 받아먹다가 싸인을 부탁하기에 종이에도 해 주고, 티셔츠를 들어올리고는 배에다 해달라는 젊은 아우가 있기에 매직을 구해서 배에도 싸인을 해 주고 하면서 그 날의 만남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갈 때마다 신경이 쓰여서 한 번 씩 들려 보면 늘 아는 척 하시며 규찰도 서시고 천막 청소도 하시며 점심때 꼭 밥 먹으러 오라 하십니다. 앞에 나서면 다친다드만 갈 때마다 앞서서 궂은 일을 다하는 모습을 보니 파업이 사람 바 꿔놨구만 하는 생각이 듭니다.


30일 간의 철야농성 일 주일에 한 번 주말에만 A, B조로 나눠서 나가는 외박에도 1,258명의 노동자들은 불평 없이 농성장을 지킵니다. 외박을 마치고 와서는 어제 규찰을 섰던 동지에게 수고했다고 인사를 나누며 교대를 합니다. 집에서 가져온 땅콩과 밤 등을 구워 드시며 나에게도 먹어 볼 것을 권합니다. 집에 가보니 카드 빚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 처리가 되었다며 한 동지가 말문을 열자 여기 저기서 규찰을 서던 동지들이 걱정을 하며 “우리 모두 다 마찬가지 아닌가 하시며, 싸워서 이기는 것이 대책이다” 하십니다. 규찰을 서며 나누는 이야기를 듣자니 또 한 번 답답한 현실이 가슴을 짓누릅니다. 안되겠다 싶은지 나이 먹은 선배님께서  교대 끝나고 술 한 잔 하자 하십니다. 농성장에 술이 없다면 무슨 낙으로 살까? 옆에서 지켜보던 나도 한 잔 받아 마십니다. 평소에는 성대 보호한다며 입에 대지 않던 술이지만 동지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술이 약이구나 생각됩니다. 술잔이 몇 번 돌고 나니 무겁던 기분도  풀어지고 얼굴은 빨개지고 노래 한 곡하라는 소리에 멋지게 한 곡 부르고 점칠이(본명은 잘 모르고 얼굴에 조금 큰 점이 있어 그냥 점칠이 오빠로 부르기로 한 선배) 오빠에게도 한 곡조 부탁하고 이렇게 보내는 속에서 훈련소(규찰을 서는 문중에 하나로) 하루는 마감됩니다. 저 멀리 보이는 유달산 가로등 불빛과 노적봉을 그려보며 또 한 잔 하면서…


“지고 들어가서는 안되지 싸움의 최대 중심 사항은  음…그러니까 전환 배치(공장간 이동)에 대해 노조가 막아내는 거지”. “우리가 바라는 것은 전환 배치에 합의를 요구하는 거거든”. “사측 놈들이야 이 문제를 파업을 풀고 논의하자고 하지만 노조에서는 절대 양보 못하거든, 파업이 끝난 후 현장에서 벌어질 공격에(노동력 유연화) 대해 노조가 막아 줄 힘을 지키는 것. 이것을 얻어내야 되지, 아 저 번 교육시간에 현자에서  온 이ㅇㅇ동지가 말하지 않던 감. 모든 요구는 싸울 때 지킬 수 있는 것이라고. 여기서 지면 지금까지 한 싸움의 의미가 없지 안 그런가”라고 규찰을 서던 건조부 김선배는 조분 조분 자신 있게 대답을 합니다.


싸움을 하면서 조합원들은 승리에 대한 자신감이 커 간다고 말합니다. 지난 4년의 한라중공업에서의 위축되었던 노동자가 아니라, 이제 투쟁으로 다시  선 노동자의 모습으로 만나는 거라 합니다. 그래서인지 규찰을 서는 동지들마다 웃으며 이야기를 건네는 모습이 이번 투쟁 과정에서 가장 기억되는 일로 나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난 51일 동안 파업을 진행하면서 사측의 온갖 협박에도 농성장안의 동력은 오히려 더 단단 해 지고 한 번 싸워 보자는 이야기뿐입니다.



조합원에게 자신감을 찾아준 노동조합


지난 9월 8일 새벽 5시 출근부터 관리자의 출입을 전부 막고서 시작된 공장 점거 파업투쟁은 추석명절에는 함께 차례를 지내면서 오늘까지 흐트러짐 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당선된 후 현 권성원 집행부는 당선하자마자 현장 내 산재 사망사고 싸움과 지난 해 11월부터 진행된 3차례의 합의 투쟁, 12월 체불임금 투쟁, 올 3월 체불임금 투쟁 속에서 노사 화합과 직권조인으로 얼룩져 무너져내린 현장의 권력을 회복하기 위해 애를 썼고, 매일 아침 6시 30분에 출근 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진행한 출근 선전전은 조합원의 마음을 움직이는 첫 단추였다고  봅니다. ‘임단협 원상회복’을 위해 ‘기획적인 투쟁’을 배치하고 마침내 프랜트 사업부 매각과 관련된 파업투쟁을 넘어 파업투쟁을 조선사업부로까지 확대해 내고 조합원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는데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8월 18일부터 8월말까지는 가족과 함께 하는 문화 행사와 낚시  대회, 족구대회, 축구대회, 편지 쓰기, 그리고 9월 6일 대의원 선거를 치뤄내면서 지난 기 대의원의 구성이 어용 9:민주 1의 비율을 민주 9:어영(?) 1로 바꿔내고 현장을 각 부서별로 편재하여 9월 7일 철야농성, 9월 8일 현장 장악, 각 문 바리케이트 치기 대회, 9월 13일부터 10월 4일까지 매일 다섯 개의 각 문에서 하루 한 시간의 노동자학교를 열어 외부 강사와 타 사업장 투쟁사례를 강의 해 왔습니다. 때로는 덥고 짜증이 나는 현실일 텐데 다 극복하고 한 사람의 이탈도 없이 서로 신뢰하며 지금까지 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탑재부 농성천막에서는 가족들이 몰려와 지짐을 부치고 곰장어를 구으며 나에게 먹으라 권합니다. 늘 와서 식량만 축내니 다음에는 투쟁기금을 들고 와야겠습니다. 통발이라도 사다 드려야지 늘 얻어먹으니 말입니다. 천막 한 곳에 눈길이 갑니다. 9살 아연이가 “아빠 힘내세요!”라며 꺾어온 붉은빛 코스모스가 어제보다 오늘 더 활짝 피어 있네요. 인간답게 살고싶은 한라 노동자의 승리를 바라는 듯이… 

한/노/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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