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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건강보험
민간의료보험과 의료시장개방 압력
이 진 규
평등사회를 위한 민중의료연합
1. 건강보험의 축소와 민간의료보험의 의료보장체계로의 재편
1) 민간의료보험 도입 배경
우리의 보건의료체계는 영리추구 민간자본 중심의 공급체계가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기 때문에, 서비스제공 및 이용과정에서 상업성이 강할 수밖에 없다. 한 마디로 한국보건의료체계의 특성은 사적 성격에 있다라고 규정할 수 있다. 시설 및 인력의 대부분이 영리추구를 지향하는 민간에 속한 상황에서 의료체계의 사적 성격을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사회보험으로서 건강보험체계뿐이다. 아직도, 많은 한계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급여범위 통제, 의료기관 강제지정제도, 정부의 수가결정권 확보를 통해서 의료체계의 공적 성격을 부여해주는 유일한 수단으로 자리매김되어 왔다.
■ 급여범위: 미용 목적의 의료 행위와 같은 특정 경우를 제외하고는 원칙적으로 모든 의료행위가 건강보험 급여범위에 포함되어 있어(비급여․미결정행위 등의 일부 예외가 존재) 사보험 개입 영역이 제도적으로 막혀 있으며, 이러한 포괄적 법적 규제는 의료체계에 대하여 정부가 광범위하게 개입할 수 있는 기본 조건을 만들어주고 있다.
■ 요양기관 강제지정제도: 요양기관 강제지정제도를 통해 모든 의료기관이 정부 통제 하에 위치하게 되며, 기본적으로 정부 정책을 거스르기 어렵게 되어 있다.
■ 수가 결정권: 현재 수가 계약제를 실시하고는 있지만, 의료행위와 재료에 대한 가격결정권을 기본적으로 정부가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수가 수준을 주요한 보건의료 정책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80년대 후반부터 격화된 의료기관의 경쟁심화는 새로운 시장조건의 창출을 기도하고 있다. 재벌 병원의 등장, 의료 기관간 경쟁심화, 보험회사의 건강보험 시장 진입확대, 의료시장 및 보험시장 개방 현실화와 같은 물적 조건의 변화는 의료자본의 경쟁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경쟁심화 속에서 의료자본과 보험자본은 이윤 창출의 장애요인을 제거하고, 자본에 유리한 시장 조건을 조성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주 타격대상이 사회보험 체계로서의 건강보험이다.
자본의 대안은 사회보험 체계로서의 건강보험의 기능축소와 민간보험을 의료보장 체계 안으로 편입시켜서 이윤창출 구조를 확대하는 것에 있다. 자본에 이로운 조건을 창출하기 위해서 자본은 민간의료보험 활성화를 위한 실질조건의 보장(위험률 산정을 위한 의료이용정보 공개, 세제혜택), 건강보험 급여범위 축소, 요양기관 강제지정제도 폐지, 민간보험 영역에서 수가의 자율계약 등을 보장받으려 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건강보험공단, 심사평가원, 민간보험회사 등이 참여하여 구성된 민간보험 활성화를 위한 태스크포스팀에서 12월 14일 발표한 ‘국민건강보험과 민간보험의 협력을 통한 의료보장체계의 개선방안’에 그러한 주장이 충실하게 반영되어 있었다.
2) 민간의료보험 도입방안의 문제점
(1) 건강보험 급여범위 축소
태스크포스팀이 제안하는 의료보장체계는 질병 영역을 기준으로 공적의료보험과 민간의료보험을 분리하여 운영하는 방안을 제시하였다(<그림 1>). 기본급여는 강제가입 형태로 건강보험이 담당하고, 보충급여는 임의가입으로 운영하되 민간보험회사간 경쟁하는 안과 민간과 건강보험이 함께 경쟁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만약 보충급여가 전체 급여비의 20% 정도를 차지하도록 나누어졌다고 가정해보자. 2001년 급여비 총액 14조원의 20%만 잡아도 건강보험시장의 급여비만 3조원에 이른다. 통상 보험시장에서 보험료 수입이 실제 급여액의 3~4배에 이른다는 점과 신규시장이 창출할 의료이용의 증가 등을 고려하면, 엄청난 시장의 창출을 뜻한다.
<그림 1> Task-Force팀 보고서의 기준을 고려한 기본급여와 보충급여 영역
새로운 시장의 출현을 기대하고 가장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는 것이 재벌병원과 재벌소유 보험회사들이다. 이미 재벌병원들은 협력병원체계를 통하여 전국에 수백 개의 의료기관들과 연계되어 있다. 민간보험상품이 본격적으로 시장에 진입하게 되는 시기에 재벌병원을 정점으로 연계된 의료기관체인을 매개로 한 보험상품이 등장하게 될 것이다. ‘우리상품에 가입하셔야만, S병원에서 걱정 없이 치료받으실 수 있습니다’라는 광고의 유혹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지 모를 일이다.
더욱 주목할 것은 기본급여와 보충급여를 나누는 기준으로는 ‘공공성’과 ‘비용효과성’을 제시한 점이다. 이 기준에 충실히 따른다면, 기본급여에 포함될 수 있는 서비스는 고작 위생관리 및 예방접종 등의 공중보건서비스와 급성전염성 질환에 대한 항생제 치료정도 밖에 없고, 대부분의 중증 만성질환은 ‘보충급여’에 속하게 되어 민간보험이나 공보험에 가입하여 추가적인 보험료를 부담하여야만 급여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현대의학에서 조차도 암․뇌졸중․심장병과 같은 대부분의 중증 만성질환의 경우 완치의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연장 혹은 삶의 질 향상을 목적으로 제공되는 보조적 서비스(완치가 아닌 돌봄)에 불과하며, 이러한 서비스의 대부분이 첨단장비와 숙련된 인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고가일 수밖에 없어서 이들 서비스는 기본적으로 비용효과성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만성질환에 대한 서비스는 부자들이나 만성질환으로 고생하기 때문에 높은 비용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만 보험급여의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된다.
한번 생각해 보라! 생활이 어려워 값비싼 보험료를 부담하기 어려워 민간보험에 가입도 못하고 지내다가 덜컥 암이라도 발견되면 값비싼 치료비를 전액 부담하느라 남은 가산마저 탕진하던가 아니면 수술 한 번 제대로 받아보지 못하고 쓸쓸히 사라져가야 한다면, 의료보험조차 없던 25년 전과 무엇이 다를지.
(2) 요양기관 계약제도의 실시
요양기관 강제지정제도가 폐지되고 계약제도로 전환되면,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기본급여를 담당하는 공보험 환자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자동적으로 갖게된다. 수익성이 낮은 기본급여보다는 보충급여를 선호할 수밖에 없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따라서 정부예산으로 운영되는 극소수의 국립병원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의료기관이 기본급여를 거부하거나, 기본급여환자에 대하여 차별적으로 대우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할 수 있다. 상당수의 민간의료기관은 ‘기본급여를 중심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보다는 ‘보충급여 중에서 비용이 높고 효과가 낮은 질환을 중심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으로 전환하고자 할 것이기 때문에, 의료이용의 장벽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지리적 장애의 문제도 적지 않다. 자율계약제로 변하게 되면, 가까운 거리에 의료기관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가입한 보험회사와 계약되어 있지 않은 의료기관이면 보험혜택을 전혀 받을 수 없게 되어 서울과 같은 대도시조차도 의료이용의 지리적 장벽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 응급상황에서는 생명을 잃을 수 도 있는 문제다. 계약된 의료기관이 많은 보험상품은 당연히 보험료가 더욱 높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의료서비스 이용에 대한 경제적 차별과 계급화 현상은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3) 현금급여의 문제
이번 발표된 안에는 보충보험은 현금급여를 원칙으로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말을 이용자 입장에서 쉽게 설명하면 보험급여가 현금급여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민간보험에 가입되어 있는 사람이라도 의료서비스 이용시점에서 의료비 총액을 전액본인부담으로 지불하고 나서 이후에 보험회사에서 급여부분만큼 되돌려 받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당장 아파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은 보험 가입여부를 떠나서 주머니에 현금이 없으면 의료서비스를 이용을 포기하거나, 돈을 대출 받거나 사채라도 얻어와야 한다는 건데 이러한 방식도 과연 의료보험제도라고 할 수 있는지 심각한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현금급여와 같은 비현실적 방안을 제출하게 된 배경을 가만히 살펴보면 더욱 기가 막힐 뿐이다.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보험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는 다수의 보험자와 급여범위 및 수가에 대하여 각기 다른 계약을 일정기간마다 채결하여야 하므로 관리비용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또한, 지금과 같이 의료제공자가 보험자로부터 직접 보상을 받는다고 생각해 보자(현물급여방식). 보험자마다 급여범위, 수가수준 및 체계가 다르기 때문에 급여절차가 매우 복잡해진다. 시간은 자연스럽게 지체되고, 보험회사로부터 의료비를 지급 받는 시간은 늦어져 그 이자 만큼 손해를 보면서도, 이전보다 많은 인력을 고용해야만 한다. 이렇게 절차가 복잡해진다면, 병원 경영자 입장에서 보험회사가 충분한 수가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면, 민간보험 활성화에 찬성할 이유가 별로 없어진다. 더욱이 보험회사와 급여 적정성을 둘러싼 마찰이 보다 많아질게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러한 문제를 돌파하기 위해서 제안된 것이 ‘보충급여는 현금급여를 원칙’으로 하자는 안이다. 현금급여제를 채택하게되면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서비스 제공시점에서 진료비 총액을 환자로부터 지급받기 때문에 청구지급에 소요되는 기간만큼의 이자가 고스란히 부가 소득으로 잡히게 된다. 이후 보험회사에 급여범위 만큼 지급해주면 그만이고, 보험회사와 진료비 심사문제로 갈등을 겪을 소지도 줄어들기 때문에 매우 매력적인 방안으로 바뀌어진다. 이 정도면, 원장입장에서 민간보험 도입에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다. 돈이 없는 이 땅의 민중들이 치료를 위해서 사채업자에게 마저 손을 내밀어야 하는 이유도 알고 보면 이 정도 수준밖에 안 되는 것이다.
2. 의료시장 및 보험시장개방 압력
유럽연합, 일본, 미국 등이 병원서비스와 건강보험시장을 이미 개방하였거나 개방을 약속해 놓고 있는 상태에서, WTO 회원국으로서 규범준수의무 때문에 의료시장 및 건강보험시장 개방을 약속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다. 도하라운드 이후 정부는 시장개방의 불가피성을 공식적으로 천명하며, 민간중심의 의료시장개방 대책팀을 만들겠다고 발표한바 있다. 의료시장 개방의 핵심은 영리병원 인정과 건강보험과 관련된 규제 철폐에 있다.
영리법인 허용의 문제는 ꡔ매일경제신문ꡕ 1999년 7월 13일자 기사에 그 맥락이 잘 제시되어 있다.
… 미국 신장관련 의약․기기․서비스 공급 회사인 백스터社는 관계사인 RTS 코리아를 통해 국내에 신장투석관련 의원을 체인형태로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 이 회사가 운영중인 의원은 서울 합정동 등에 이미 개원중이며 9월 개원예정인 안국동 내과가 문을 열면 기존 분당, 대구, 부산, 울산, 제주에 있는 의원을 포함해 모두 8곳 체인의원으로 늘어나게 된다 …
이와 관련해 한 의료계 인사는 “미국 영리추구병원이나 제약회사, 물류회사 등은 이미 자국시장에서 수익성 높이기에 한계를 느끼고 신장 투석센터나 암센터 등 수익성이나 성장성이 있는 분야를 중심으로 외국시장에 눈을 돌리고 있다”고 밝혔다. 모 교수는 최근 개최된 한 세미나에서 “영리법인을 허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외국병원자본들은 한국 내 병원에 투자한 이윤을 본국으로 송환할 수 없다는데 가장 큰불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모 교수는 “현재로선 국내 의사를 원장으로 내세운 개인의원급 수준의 투자에 주력하고 있지만 7월부터 시행되는 내외동포 특례법을 계기로 교포의사를 통한 국내병원설립 방법이 그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보건복지부 이종윤 차관은 “비영리형태만의 투자를 인정하는 것은 상업차원의 영리를 추구하는 교역자유화와 상당한 거리가 있어 상대국에서 영리추구의 병원투자를 개방하면서 우리나라에도 개방요구를 하고 또 압력을 가한다면 현행 의료법의 유지가 쉬운 문제만은 아니다”라고 예상했다 …
건강보험과 관련된 규제 철폐 문제는 요양기관 강제지정제도와 의료수가의 제공자와 보험자간의 자율계약 두 가지 문제로 요약된다. 요양기관 강제지정제도가 지속되는 환경에서는 외국병원자본도 건강보험 체계의 통제 하에 편제되기 때문에 이윤추구에 걸림돌이 되어 이 제도의 철폐를 강력하게 요구할 것이다. 또한, 의료 수가의 경우도 영리를 추구하는 외국의료기관의 입장에서는 보다 높은 수가를 원하기 때문에 의료수가의 제공자와 보험자간의 자율계약 방식을 강력하게 원할 수밖에 없다.
4. 나오며
정부가 의료시장 개방에 대비책을 수립하겠다는 것은 외국자본의 이러한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국내 자본의 시장 대응능력을 높이기 위해서 조기에 민간보험 활성화와 이에 필요한 제반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머지않아 가시화 될 영리법인 인정, 건강보험시장개방, 요양기관 강제지정 철폐는 사회보험체계로 존재하는 건강보험을 민영화시키는 강력한 동인이 될 것이며, 건강보험 영역의 대부분을 민간보험 시장에 내어주는 결과를 초래할 것으로 보여진다.
위기의 건강보험에 대한 일차적 처방으로, 민간보험의 의료보장체계로의 편입을 통한 사회보험체계의 붕괴를 저지하기 위한 대폭적인 건강보험 급여확대가 이루어져야 한다. 동시에, 건강보험 재원마련의 원칙으로서 수익자 부담확대가 아니라 국가와 자본의 부담증가가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의료시장 개방 및 보험시장 개방이 초래할 국민건강상 침해를 중심으로 시장 개방의 문제점을 확산시키면서 시장 개방 저지투쟁을 펼쳐나가야 한다. 의료시장 및 보험시장 개방이 노동자․민중의 건강을 어떻게 파괴할 것인지에 대하여 적극적인 선전․선동을 주저할 여유가 별로 없어 보인다. 그리고, 대안적 체계의 토대로서 의료공급체계의 공공성 확보를 위한 투쟁이 시급하다.
한/노/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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